다람쥐 쳇바퀴
- 작성자 방백
- 작성일 202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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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454
언닌 정말 지긋지긋한 사람이야.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하면서 언니는 헤드폰을 쓰고 침대에서 돌아눕는다 분명히 귀에는 헤비메탈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드럼이 쿵쿵거린다 나에게도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엇박으로 쳐지는 하이햇. 나는 그냥 궁금할 뿐이다. 언니는 왜 그렇게 말해야만 하는지. 왜 언니는 못되고 자극적인 단어로만 언니를 설명해야 하는지. 슬퍼서 눈물이 난다. 슬퍼서 잔뜩 긴장한 소동물처럼 락 음악같은 박자로 가슴이 뛴다. 그저께 이사한 집 있잖아. 윗층에. 방 빼고 나니까 냉장고만 있었대. 열어보니까 스텐 반찬통이 있었대. 다람쥐가 죽었어. 뭐라고? 다람쥐가 죽었다고. 냉동실 칸 반찬통 안에 다람쥐를 넣어 두고 얼린 거야.
다람쥐는 겨울잠 자잖아.
그렇지.
살아 있을 수도 있잖아.
몰라.
언니가 노래를 듣는 척 나를 무시했다는 건 이로써 확실해졌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 언니는 정말 지긋지긋한 사람이다. 언니는 폭력을 폭력이라고 말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다 같이 평화롭게 삽시다-라고 말하는 사람 뒤에는 침을 뱉는다. 나는 머리채가 뜯겼고, 배에 열두 번 멍이 들었고, 흙탕물을 뒹굴었다고 아리송한 얼굴 앞에 유혈의 이미지를 심어 주어야만 한다. 그런 언니가 정말 싫다. 문득 창 밖을 바라보니 사십 분 전의 겨울 별자리가 그대로 한 칸 밀려나 있다 추워. 문 닫아. 알겠어 언니. 쾅 소리 나게 창을 닫는다. 내 귀에는 아직도 헤비메탈, 아니면 락, 그런 종류의 강한 음악들이 맴도는 것 같다.
지구는 챗바퀴 같지.
어느날 언니는 그렇게 말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고 대꾸하고 싶었다
별자리만 봐도
지구는 둥그렇게 돌잖아.
자전도 하고 공전도 하고 아무튼,
거기서 살고 있는 우리도
참신하지 않은 문장이지만 공감하기에는 좋았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도로가 있다.
우리 동네가 보통 그런 편이었다.
바닷가 가까이의
항구와 공장 지대 불빛
화물을 옮기는 기차 매연
따뜻한 바다에서 잡히는 어류들
그 길을 계속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숨이 찼다
너무 숨이 차고 목이 말라서 입 안에 피 맛 같은 생 굴 향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 길을 계속 달리다 보면 언니 생각이 났다.
지구가 쳇바퀴 같다던 언니.
언닌 불쌍한 사람이다.
지겨운 만큼 불쌍하다.
평생 패배만 느끼고 살아서 패배가 당연한 줄 아는 언니.
그렇지만 이것보다 조금 더 조금만 더 나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던 언니
언니는 참 바보같지.
동그란 하이햇이 쳐진다
지구가 한 번 들썩인다
고등학교 운동회 날 무르팍에 상처를 입곤 다시 일어나서 역전을 한 언니는 계속 달리고 싶다고 했다. 계속 달리고 싶다고. 달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했다.
일 등을 하고 싶다 했다. 언닌 이미 일 등이잖아. 그래도 일 등을 하고 싶다고. 그러던 언니는 언제나 일 등을 했다. 체육도 일 등. 공부도 일 등. 사랑도 일 등. 결혼도 일 등. 그렇지만 인생은 한 번도 일 등 하지 못 한 것처럼 전전긍긍하면서. 그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함께 겨울 별을 보러 한적한 컨테이너 지대를 걸었을 때. 여자 팀에서가 아니라 남자 팀에서도 일 등을 하고 싶다고 고백하던 말투. 왜? 언니는 여자잖아. 여자라서 일 등 하고 싶은 거야. 아 그래. 덧붙인 뜻도 없는 불친절한 말. 어릴 때는 몰랐겠지만 지금은 알았다. 그 말의 의미를. 세상을 비평할 능력은 없지만 무작정 일 등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왜? 너는 여자잖아. 여자여서 일 등 해도 이 등인 거야.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엄마는 언제나 지긋지긋해! 봐. 엄마는 내가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해도 엄마는 꼼짝도 못 하잖아.
언니는 아기도 일 등. 이혼도 일 등이다. 그렇지만 언니는 언제나 패배자다. 왜? 언니는 여자니까. 언니의 딸이 가방을 집어던지면서 깨진 무르팍으로 운다. 언니는 언니의 딸이 왜 우는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우는지 다 알면서, 가끔 모르는 척 하고 산다. 왜? 글쎄 왜 그럴까. 남자처럼 되고 싶어서지. 그러나 남자는 모르는 종류의 슬픔을 너도 모르는 척 하고 싶은 거야. 그렇지. 그러면 언제나 일 등을 한 것 같은 마음으로 살 수 있으니까.
언니의 딸이 내가 한 것과 똑같은 말을 하면서 언니와 똑같은 무릎으로 운다.
폭력을 폭력이라고 말해야만 직성이 풀리던 우리 가족. 나는 가끔 이 가족이 지긋지긋해서 죽이고 싶다. 분명 더 나은 곳으로 가고 싶어서 계속 달리고 있는데 왜 항상 똑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지? 엄마는 내가 어떻게 사는지 몰라. 엄마가 편하자고 아빠를 버리면, 그만큼 난 더 슬퍼지는 거야. 언니의 딸이 조그많게 중얼거린다. 엄마는 그렇지. 엄마는 한 번도 아빠를 사랑해본 적 없지. 그렇지?
왜 우리는 폭력적인 단어로만 우리를 설명할 수 있는 걸까?
얼마든지 좋은 말이 많잖아. 세상에는.
언니의 사랑은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
언니는 사랑해야 하니까 사랑했다는 걸.
왜? 언니는 여자니까.
그래서 언니는 이혼해선 안 됐던 거야. 결국 언니가 진 거야. 언니는 영원히 사랑해야 했던 거야. 그게 누구든. 언니는 여자니까. 사랑이란 감정만큼 편하게 여자를 구속시킬 방법은 없거든.
언니는 결혼해야 하니까 결혼해야 했다는 걸.
왜? 나는 여기에 대해서 더 파고들고 싶지 않다. 결혼처럼 편하게 여자를 부려먹을 수단은 없으니까.......
언니는 아기를 낳아야 하니까 낳았다는 걸? 아니 그만 그만해!
그러니까 세상은 자꾸... 자꾸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침대 위에 돌아누운 채로 얌전히 죽었다.
너. 넌 그렇게 간단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니지. 절대 아니지. 네가 죽는다는 건 그렇게 가벼운 죽음이 아니야. 언니와 언니의 딸은 결국 비극에 한 칸 가까워진다. 더 흥분되는데. 왜냐하면 여자의 죽음은 정말 좋은 쾌락-
-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데 너는 혼자서 착각하고 있어. 불길한 예감은 그냥 무시해버려. 그런 일은 언제든지 대비하되 결정적인 순간 소리쳐서는 안 돼.
끔찍하게 죽은 여자들을 상영하는 스크린을 바라보며 그날 밤 나는 영화관에 남아 있다
누가 우리 가족을 죽였을까?
글쎄 모르겠다.
부서진 모양은 동그라미 언제나
상처 입는다고는 할 수 없어, 모서리가 없잖아
쿵쿵 울리는 드럼 소리
아주 조그많게 울리는 핸드폰 스피커 속 헤비메탈, 아니면 락.
들린다.
나는 방바닥에 앉아 있다.
겨울인가 봐. 아주 춥네.
그런데 텔레비전에 시선이 간다. 자꾸. 리모컨을 돌릴수록 전자파의 종류가 바뀐다. 나를 적시는 텔레비전의 불빛들. 나를 아주 흠뻑 적시고 이 세상을 둥글게 굴린다.
저 멀리서 히잡과 포르노를 동시에 쓰고 달리는 언니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채널을 바꿀 때마다 바뀌는 여자들. 모든 여자들이 다 언니 얼굴 같다. 나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다. 나와 텔레비전을 가릴 수 있게 이불을 뒤집어 쓰고 조금 더 가까이. 아주 예쁜 언니와 언니의 딸. 아니 내가 모르는 여자들인데. 아닌가, 아닌가,
언니와 언니의 딸이 정말 예쁘다. 눈도 크고, 코도 오똑하고, 입술도 붉다. 가늘가늘한 팔다리. 날씬한 배. 저 몸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 난 잘 모르겠어. 항상 일 등을 하고 싶었는데 끝까지 언니와 언니의 딸에게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따라붙는다. 우리에게는 사랑 없는 삶이 허락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런가. 그런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너무 오래 살고 있었던 것 같아. 마침내 모든 채널이 포르노를 찍는 화면으로 바뀐다. 정말 싫어. 화면에는 오랫동안 죽어가는 여자의 모습이 담긴다. 그런데 남자는 어디 있는 거지. 나는 마치 사랑에 빠진 여자처럼 텔레비전 화면에 오랫동안 키스를 한다. 오래달리기를 하는 동안 입 안에 차올랐던 그 맛, 회상하자 씁쓸하게 바뀌는 것 같은데, 눈, 감는다, 팔, 벌린다, 당신 앞의 무언가를 안고 천천히 옆으로 쓰러진다. 이대로 우리 가족이 박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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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얇고 깊은 물줄기그 아래에서 숨 쉬고 있는 우리 언니들언니들을 생각할 때면 곧잘비장해지곤 하는 내 입술단단하게 부풀어오르는 나의 마음괜찮아요 죽지 않아도 돼요 그렇게 말하는 언니들의 품 안에서나는 행방불명된 신원미상자...어느 전봇대에 걸려 있을지 몰라그렇지만 눈에 거슬리는 곤충들의 몸통을지긋이 밟아버리고 싶어지는 이유나의 언니들, 생각하면힘을 주지 않고는 걸을 수가 없어 문구점에서 도둑으로 몰린 아이처럼입안에선 방부제 친 색깔 사탕언니들은 고요한 유속의 물 아래서마치 백 년 동안 썩지 않을 것처럼 아름답지 폭풍 소리와 함께 축축한 전봇대문구점의 뽑기 기계, 그 길을 마구 뛰쳐나와 춤을 추는 내 몸짓머리 위로 쏟아졌다가 내려간다 나의 고개도 함께 그렇지만 한쪽 팔은 치켜세워야 해 그것을 반복하며 겁이 없는 스텝커다란 힘으로 쾅쾅 내려찍지 그 아래에서단단하게 부푼 몸통을 숨기려는 두 사람비는 그쳤는데 발 아래엔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지렁이나뭇가지로 건드리다 언니 생각에죽지 마, 죽지 마, 멀리 멀리 도망친다혀끝으로 색깔 사탕 와드드득 무너진다
- 방백
- 2026-01-13
부러워.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은 축축하고 차가웠다 우리는 어색한 사이었지만 특별히 인사랄 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함께 걸었다 주머니 속엔 둥근 형태의 무선 이어폰이 만져졌다 음악을 듣진 않았다 정류장엔 밝고 환한 빛이 켜져 있었다 내가 타야 하는 버스가 먼저 왔다 나는 그 애를 지나치면서 뒤돌아 손이라도 흔들까 고민했는데, 결과적으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버스도 제때 타지 못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애가 부럽다고 말하면서엉엉 울었기 때문이었다*한밤에는 뭐라도 써야겠다는혹은 대단한 걸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그럴 때 책상 앞에 앉아 몇 달 동안 세 장을 넘기지 못한 일기장이라도 펼쳐 놓고 볼펜을 굴리고 있으면문득 내가 지금 쓰는 말이 어디선가 본 장면을 그대로 옮기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는데그 익숙한 장면을 찾기 위해서지난주 들렀던 독립 영화관을 다시 방문했다도보로 삼십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일주일을봤던 영화보고 또 봤지만일기장에 적었던 감상과 비슷한 분위긴 하나도 없었다재작년 가을에는 엄마가 돌아가셨다집이 꽤 힘들었다 마음뿐 아니라 재정적인 면에서도많이는 아니지만 근근히 살아가는 하루에 엄마가 일해서 버는 돈은 무시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갑자기 알바를 구하고, 휴학을 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본가에 내려오라던 아버지의 간절한 눈빛눈이 내릴 듯한골목을 지친 걸음으로 지나가다 그 앞에서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시선이 마주쳤을 때 깨달았다 내가 찾았던 장면, 머릿속 희미하게 울리다가 아무도 모르는 첫눈처럼사라지는 기억부러워.나도 모르게 중얼거려 보았다 그 애가 예전에버스 정류장에서 그랬던 것처럼부러워 부러워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는데, 그 말이 계속 나왔다. 친구는 멈춰 서서 날 봤다. 이상했다.
- 방백
- 2026-01-01
1.이 우주는 내가 떠나온 바다처럼 넓다만약 과거에 바다를 모두 정복하려던 배가여태까지 살아있었다면이 열차는 그 배의 환상일 것이다우주 횡단 열차내가 우주 횡단 열차를 타고 우주를 건넌다ㅡ우주 횡단 열차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좌석에서 움직이지 말 것 오래된사막을 가로지르는 갓 태어난 유성우를어둠 속에서 오랫동안바라보는 골짜기처럼 깊어질 것나는 긴 머리를 바닥에 늘어뜨리며긴 긴 꿈을 꾼다 꿈속에서 언니들은내게 마법 같은저주를 거는데나는 우주 아버지가 내게 준마음들을 끌어안고 놓지 못하고 있다오랫동안 불타올랐다가식으면서 겉면에오묘한 광택이 나는 이것을 창밖으로 던질 수 있을까, 나는 점점 깊어진다언니, 언니꿈속에서 언니들은 머리칼을 자른다, 이제, 언니에겐 전부일텐데 아름다움을그것들을 모두 잘라 거친 파도 속에 휩쓸린다 머리칼은 갈갈이 찢겨 버린다 눈부신 거품과 함께 나타난 결전의 칼 그렇지만 언니가 쥐여준 칼을 나는 휘두를 수가 없다,아, 언니들은 간절하게 팔을 뻗어 내 손을 잡아 준다언니, 언니어떡해요 이곳에서 나는 항의할 수가 없어요차가운 궁전에서 나는 제대로 걸을 수도 없어요나는 젊어요, 아름다워요, 사랑스러워요내겐 순결, 순수, 사랑만이 남았어요 언니 나를 용서하세요! 제가 어떻게살아갈 수 있겠어요?*그렇다 나는 그의 심장을 찌를 수 없는 팔을 가졌다 몇 번이고 허공에 헛손질만 한다 한 번도 칼을휘둘러 본 적 없었기에 이가느다란 팔이 미워 머리를 쥐어뜯고 우는데 기묘한 밤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간절히 비는 내게 새벽은 종말처럼 밝아오고 방 안으로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뺨 위에서 최후의 칼날처럼 미끄러지는데늙고, 추하고, 번쩍이는 꼬리를 가진 자유로운 언니들 나를 본다거품처럼 불타오른 나를 보며 눈물로천 년 동안 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꿈!나는 꿈에서 깨어난다*1.내 머리칼이 길어져 열차의 바닥에 천천히 깔린다그 바닥에서 모든 여자들이 태어나 창밖으로 떨어지는데매일 같은 꿈을 꾸는 영상이 딱딱한 마음 속에서 반복 재생우주 아버지는영혼이 된 나를 횡단 열차 좌석에 앉히고천 년 동안 길어지는 머리칼에 순결순수사랑 사랑 사랑을 엮으신다
- 방백
- 202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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