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 작성자 방백
- 작성일 2025-12-13
- 좋아요 0
- 댓글수 1
- 조회수 337
초등학교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는
어떻게 시작하면 딱 좋을까?
문득 물어보는 친구의 목소릴 따라
아침 산책 시간
오리는 바다에도 살 수 있다는
선생님 얼굴이 떠올랐다.
솔방울이나
낙엽이 밟히는 감각.
바삭바삭하게 마른 땅만 골라 밟는 기분.
간지럽고 조금 짜릿하고 괜히 우쭐해지는 마음으로 오리가
자꾸 떠오르는데 어떡하지.
-졸업식 날 목도리를 매 주시던 손길로 시작하면 어때.
내가 딴 생각을 하는진 모르고
친구는 자꾸 조잘거린다.
오리가 바다에서 사냐, 되물어보던 친구들은 다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서로가 아는 겨울은 천천히 착지해
뺨을 꽁꽁 얼려 버린다.
나는 지나간 길이 어색해
괜히 콧노래를 불러 본다.
있지 파도가 치지 않는 해안가에서
동동 떠다니는 오리를 보면 당황스럽겠지.
몇 년 전에 전학 간
친구가 보내준 사진
거긴 눈도 없는 온통
갈색 풍경이지만,
그래도 다시 만났을 때
오리 얘기 정돈 할 수 있겠지.
우리가 손을 맞잡았을 때
조금 다른 손.
어느날 카멜레온, 도마뱀, 개구리 같은 걸로
꿈속에 나타날 것만 같은
매끄럽고 살짝 서늘한 손.
물가에서 가장 동그란 돌을
발로 한 번 차 본다.
철없는 어린애처럼 가슴부터 시원한 바람이 분다.
갑자기 초등학교 선생님 얘길 꺼낼 정도로
끝도 없이 낯설어지는 동네.
가볍게 떠오르는 입김을 보면서
갑자기 마주친 사람들에게
무작정 낙엽을 밟자고 해 볼까.
그럴 때 잘 어울리는 인삿말을 하나씩
하나씩 하나씩
고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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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얇고 깊은 물줄기그 아래에서 숨 쉬고 있는 우리 언니들언니들을 생각할 때면 곧잘비장해지곤 하는 내 입술단단하게 부풀어오르는 나의 마음괜찮아요 죽지 않아도 돼요 그렇게 말하는 언니들의 품 안에서나는 행방불명된 신원미상자...어느 전봇대에 걸려 있을지 몰라그렇지만 눈에 거슬리는 곤충들의 몸통을지긋이 밟아버리고 싶어지는 이유나의 언니들, 생각하면힘을 주지 않고는 걸을 수가 없어 문구점에서 도둑으로 몰린 아이처럼입안에선 방부제 친 색깔 사탕언니들은 고요한 유속의 물 아래서마치 백 년 동안 썩지 않을 것처럼 아름답지 폭풍 소리와 함께 축축한 전봇대문구점의 뽑기 기계, 그 길을 마구 뛰쳐나와 춤을 추는 내 몸짓머리 위로 쏟아졌다가 내려간다 나의 고개도 함께 그렇지만 한쪽 팔은 치켜세워야 해 그것을 반복하며 겁이 없는 스텝커다란 힘으로 쾅쾅 내려찍지 그 아래에서단단하게 부푼 몸통을 숨기려는 두 사람비는 그쳤는데 발 아래엔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지렁이나뭇가지로 건드리다 언니 생각에죽지 마, 죽지 마, 멀리 멀리 도망친다혀끝으로 색깔 사탕 와드드득 무너진다
- 방백
- 2026-01-13
부러워.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은 축축하고 차가웠다 우리는 어색한 사이었지만 특별히 인사랄 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함께 걸었다 주머니 속엔 둥근 형태의 무선 이어폰이 만져졌다 음악을 듣진 않았다 정류장엔 밝고 환한 빛이 켜져 있었다 내가 타야 하는 버스가 먼저 왔다 나는 그 애를 지나치면서 뒤돌아 손이라도 흔들까 고민했는데, 결과적으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버스도 제때 타지 못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애가 부럽다고 말하면서엉엉 울었기 때문이었다*한밤에는 뭐라도 써야겠다는혹은 대단한 걸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그럴 때 책상 앞에 앉아 몇 달 동안 세 장을 넘기지 못한 일기장이라도 펼쳐 놓고 볼펜을 굴리고 있으면문득 내가 지금 쓰는 말이 어디선가 본 장면을 그대로 옮기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는데그 익숙한 장면을 찾기 위해서지난주 들렀던 독립 영화관을 다시 방문했다도보로 삼십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일주일을봤던 영화보고 또 봤지만일기장에 적었던 감상과 비슷한 분위긴 하나도 없었다재작년 가을에는 엄마가 돌아가셨다집이 꽤 힘들었다 마음뿐 아니라 재정적인 면에서도많이는 아니지만 근근히 살아가는 하루에 엄마가 일해서 버는 돈은 무시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갑자기 알바를 구하고, 휴학을 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본가에 내려오라던 아버지의 간절한 눈빛눈이 내릴 듯한골목을 지친 걸음으로 지나가다 그 앞에서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시선이 마주쳤을 때 깨달았다 내가 찾았던 장면, 머릿속 희미하게 울리다가 아무도 모르는 첫눈처럼사라지는 기억부러워.나도 모르게 중얼거려 보았다 그 애가 예전에버스 정류장에서 그랬던 것처럼부러워 부러워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는데, 그 말이 계속 나왔다. 친구는 멈춰 서서 날 봤다. 이상했다.
- 방백
- 2026-01-01
1.이 우주는 내가 떠나온 바다처럼 넓다만약 과거에 바다를 모두 정복하려던 배가여태까지 살아있었다면이 열차는 그 배의 환상일 것이다우주 횡단 열차내가 우주 횡단 열차를 타고 우주를 건넌다ㅡ우주 횡단 열차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좌석에서 움직이지 말 것 오래된사막을 가로지르는 갓 태어난 유성우를어둠 속에서 오랫동안바라보는 골짜기처럼 깊어질 것나는 긴 머리를 바닥에 늘어뜨리며긴 긴 꿈을 꾼다 꿈속에서 언니들은내게 마법 같은저주를 거는데나는 우주 아버지가 내게 준마음들을 끌어안고 놓지 못하고 있다오랫동안 불타올랐다가식으면서 겉면에오묘한 광택이 나는 이것을 창밖으로 던질 수 있을까, 나는 점점 깊어진다언니, 언니꿈속에서 언니들은 머리칼을 자른다, 이제, 언니에겐 전부일텐데 아름다움을그것들을 모두 잘라 거친 파도 속에 휩쓸린다 머리칼은 갈갈이 찢겨 버린다 눈부신 거품과 함께 나타난 결전의 칼 그렇지만 언니가 쥐여준 칼을 나는 휘두를 수가 없다,아, 언니들은 간절하게 팔을 뻗어 내 손을 잡아 준다언니, 언니어떡해요 이곳에서 나는 항의할 수가 없어요차가운 궁전에서 나는 제대로 걸을 수도 없어요나는 젊어요, 아름다워요, 사랑스러워요내겐 순결, 순수, 사랑만이 남았어요 언니 나를 용서하세요! 제가 어떻게살아갈 수 있겠어요?*그렇다 나는 그의 심장을 찌를 수 없는 팔을 가졌다 몇 번이고 허공에 헛손질만 한다 한 번도 칼을휘둘러 본 적 없었기에 이가느다란 팔이 미워 머리를 쥐어뜯고 우는데 기묘한 밤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간절히 비는 내게 새벽은 종말처럼 밝아오고 방 안으로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뺨 위에서 최후의 칼날처럼 미끄러지는데늙고, 추하고, 번쩍이는 꼬리를 가진 자유로운 언니들 나를 본다거품처럼 불타오른 나를 보며 눈물로천 년 동안 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꿈!나는 꿈에서 깨어난다*1.내 머리칼이 길어져 열차의 바닥에 천천히 깔린다그 바닥에서 모든 여자들이 태어나 창밖으로 떨어지는데매일 같은 꿈을 꾸는 영상이 딱딱한 마음 속에서 반복 재생우주 아버지는영혼이 된 나를 횡단 열차 좌석에 앉히고천 년 동안 길어지는 머리칼에 순결순수사랑 사랑 사랑을 엮으신다
- 방백
- 202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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