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꺼기
- 작성자 다만
- 작성일 2026-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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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수 1
- 조회수 278
누군가와는 다르게 나는
목욕이 스스로의 위로가 되는
능력이 없다
물을 맞고,
몸을 문지르고,
오늘 묻혀온 먼지와
어제 나였을 부스러기를
매몰차게 밀어내고
본의 아니게 커다란 거울에 문득문득 비추며
본연이 순수해지는 듯한 거름을 느끼는
능력이 없다
가벼운 것들은 물로써 저 하수구로 쓸려가고
그렇게 땅으로 하느작 날아가고
남은 건 적당하게 무겁고 큰 골디락스 존
땅에게도 하늘에게도 선택받지 못하고
체에 간신히 매달린
그래서 나는 아무 효험도 없이
욕실에 숨기만 한다
땅과 하늘에게서도 숨기로 한다
빛나는 것으로도 날아가지 않고
어디로도 날아가지 않고
그래서 나는 숨지 않을
겨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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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가 큰데도 참 달아요입 속의 새빨간 혀가붉은 과육부터감쳐가고아삭한 끝쪽만이앞니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큰 딸기는 이렇게물이 많고 단단한 부분이싫다니까큰 건 싫어,달다고 한 건 언제고,뭐, 달기야 달죠, 달기야 달죠. 나는 순식간에무의식 중에걸러진 아삭함을 손톱으로 잡아 빼냈다채 붉어지지 못한 하얀 부위우리 몸 안에도 있을까 쓰레기통에 내던져버린다면분명 남의 질타를 받겠지같은 딸긴데병든 것도 아닌 것을고 작은 한 알에서기어이골라내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 하고 우리 몸 안에도 있을까 앞니 사이에서 비틀려 빠져나온 아삭은식물적인 섬유를 뻗은 채마치 기관과도 같았다 그러니까 딸기는여느 짐승이나 줄기와는 다르게여린 것으로 단단한 것을 감싸고 있는 셈이다여물었으나 무르익지 못한 것을 앞니로 살살 긁어대자아삭함의 경계는 묘연해지고 연속적이고 마치 해, 달, 날처럼그러다 서서히 익어버리고저기 바람이 스며들듯이 그러니까 딸기는시간이 흐르면 언젠가잊혀지고 말 속을꽁꽁 감추어 지키고 있는 셈이다여문 것이 아니라고 둘러대지기 전에 어린 시절에 세워둔하얗고 하얗고 단단한 뼈를무른 살갗에 숨긴 채로쩔쩔매는 것은 흔한 일이려나그래도 달기야 달죠. 딸기는 우리 몸 안에 있을까
- 다만
- 2026-02-10
나는 같은 몸을 뒤집어쓰고설렁설렁 장소에 왔는데사람이 없다!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가물한 데다숫자도 색깔도 가락도 나눈 적 없는 사람을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생텍쥐페리 가라사대어른들은 숫자를 참 좋아하는데그것은 결코 본질이 아니라는데나한테는 무엇도 없으니,나는 미처 어른도 아이도 되지 못했나 웃음밖에 없을 건조한 겨울 날씨,나는 사람 모양 구멍을울창한 빗소리 사이로 뻥 뚫어가며 간다그래 나는장소밖에 기억해내지 못하고같은 몸을 뒤집어쓴 채 기어이 이곳에 왔는데 한 발 늦게 따라오려다 부서지고 마는빛 알갱이는네가 장소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만 하고공명정대한 밤께서는 심지어저기 반 발짝 뒤의 녀석과이 몸 안쪽의 녀석은영 다른 놈이라고 하신다 혈관 벽에 세차게 몸을 부딪는빗소리의 인,남겨두고,걸음걸음의 연,너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 다만
- 2026-02-06
나는 정신의에게 상담을 하고 말 뻔했다. 아차, 그래 나는 그저 진료를 보는 중이었지. 정신의는 내가 남몰래 앓던 것을 평범한 척 손을 매만지며 꺼내놓은 이야기를 피상적으로 코멘트를 달았다. 그것은 그가 정신의이지 심리상담사가 아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사람이기 때문일까? 내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바삐 움직이는, 무언가를 써내려가는 그의 손만이 나를 안심시킬 뿐이었다. 2년 반 만이로군요, 선생님. 잘 지냈냐고요, 선생님. 2년 반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나요, 선생님. 잘 지냈다는 말밖엔 드릴 수가 없겠군요...확률은 간단하게 1 대 1로 두죠. 내가 내 인생을 모두 체크하면서 살 겨를은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기분이 좋은 날과 좋지 않은 날 말이에요, 그 비율요. 아, 난센스로군요. 하루가 다 일색이 아님에도 이렇게 가르려고 하다니요. 어쨌거나 공평하고 매끄럽게 하나씩 나눠 갖는 게 상책이죠, 이렇게 판단이 곤란할 때는 말이에요. 예로부터 사랑을 그렇게들 말하잖아요. 너무도 편리하게. 네, 제가 지금은 기분이 좋으니까...좋고 안 좋고는 그다지 영 좋지 않은 표현이었어요. 이 둘은 너무 붙어있잖아요. 둘 중에 하나일 수밖에 없죠. 부정이 곧 반대인 관계라니, 숨이 막혀요. 고치죠. 네, 제가 지금은 저 마루에 있으니까요. 정말로 잘 지낸 기분이거든요. 다 버무리고 나니 잘 지낸 것 같은 느낌이거든요. 마루요, 네, 곡선에서 최대값을 갖는 쪽이요. 네, 네. 지금이 골에 있을 때가 아니니 다행이죠. 골의 나는 내 대척점에 있어요, 그렇겠죠, 선생님. 조금만 생각해봐도요, 선생님. 하지만 골 아니면 마루예요. 그 사이의 곡선은 탈락된 나일 뿐이다. 아, 골에 있을 때는 어떤 대답을 했겠느냐고요, 선생님? 잘 지냈다는 말밖엔 드릴 수가 없겠군요...
- 다만
- 202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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