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만찬
- 작성자 구운복어회
- 작성일 2026-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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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수 1
- 조회수 119
잘 세팅된 커틀러리 사이에
새하얀 접시를 밀어넣는다
문이 열리고, 네가 들어온다
천 사백개의 꽃다발 사이
검게 그을린 비닐이 끼어있었다
너는 묻은 꽃가루마저 탈탈 털어버리고서는
접시 위에 올려두었다
나의 머리가 바다거북이로 바뀌었다
목을 길게 빼고, 나이프는 들지도 못한 채
접시에 얼굴을 처박았다
산산조각난 유리 접시의 조각과 함께,
검은 비닐을 목 뒤로 넘겼다
식탁보만 남았을 때 머리를 숙이면
발 아래 차오르던 물이 멈춘다
그리고 천천히 말라간다
물에 닿았던 엄지발가락이
작은 바다거북이의 다리로 변했다
카펫이 전부 마르고
해조류의 머리를 한 웨이터가 들어왔다
그는 잠시 나의 발을 바라보다가
다시금 새하얀 접시를 두고 떠났다
웨이터와 엇갈려 들어오는 너는
커다란 트레이를 가지고 왔다
트레이 위의 덮개를 치우자 커다란 칼이 보였다
너는 나의 팔을 잡고
관절 사이로 나를 도살했다
철퍽, 나의 팔이 새하얀 접시 위에 닿자
오목한 그릇 사이를 핏물이 가득 채웠다
네가 방을 나가자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그 사이로 간간히 쓸려오는 나뭇잎이 내 몸을 스쳐갔다
그 자리엔 상처가 남았다
머리가 사자로 변했다
이번에는 한 손으로 팔을 뜯어먹었다
갈기가 젖어들어도 붉은 식탁보 위에는 티가 나질 않았다
살점을 다 뜯어먹고 고개를 들었다
강한 송풍기 바람은 멈출 줄을 모르고 돌고 있었다
나는 남은 뼈를 잡고 으득으득 씹어먹었다
이빨이 하나 빠졌다
바람이 멈추고, 나뭇잎에 스친 자리에 사자의 털이 났다
상처의 피가 멎을 때
뿔이 부러진 사슴의 머리를 한 웨이터가 들어와
접시를 들어 비닐을 깔고
그 안에 든 피를 비닐 위에 흩뿌렸다
그는 나를 바라보지 않고
뒷걸음질로 문을 빠져나갔다
비닐에 피가 눌러붙을 때
네가 커다란 비닐봉투를 질질 끌며 들어왔다
봉투를 식탁 위에 올리고
웨이터가 두고 간 비닐 위에 쓰레기를 부었다
네가 비어버린 비닐봉투를 들고 나가자
매캐한 연기가 방 안에 스며들었다
내 버리에서 찰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쓰레기들을 먹으려 손을 뻗자 털로 뒤덮힌 팔이 보였다
두 손으로 쓰레기 더미를 머리 안에 집어넣었다
떨어진 캔은 검은 바닥에도 걸죽한 고등어 수프의
흔적이 남는다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다리부터 캔이 뒤덮었다
캔은 따개비처럼 내 다리 깊숙히를 찔렀다
쓰레기 더미를 전부 집어넣자 몸이 딱딱하게 변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짭잘한 바닷물이 발 아래 퍼져있었다
머리가 달리지 않은 웨이터가 들어와
식탁을 모두 치웠다
웨이터가 나가기도 전에 네가 들어왔다
너의 머리는 커다란 고래로 변해
바닥에 툭 쓰러졌다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가 너의 몸에서 났다
의자에서 일어나자 펑 터져버린 너의 머리가
방을 뒤덮었다
따개비의 머리를 한 웨이터가 들어와
부서진 식탁을 치웠다
나는 그 뒤를 따라
너의 다리를 잡아 끌었다
한 걸음 걸을 때 마다
바닷물이 내 몸에서 흘렀다
문 앞까지 따라 걸었을 때
웨이터가 멈춰섰다
그는 허리를 굽혀 나를 검은 비닐 속에 넣었다
뒤를 바라보니, 아직까지도 문을 빠져나오지 못한 너와
줄줄히 떨어져있는 쓰레기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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