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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는 볕이 들지 않는 습한 곳에 핀다

  • 작성자 온백
  • 작성일 2026-09-03
  • 조회수 49

어느새, 나의 팔과 다리에는 수놓인 멍자국

곰팡이를 닮은 검푸른 얼룩을 쓸어내리면

조여오는 아마도, 살아있음의 감각


삶에 버둥거리다 하나둘 맞은 자리에 생이 흘러나와

미지근하게 식은 자국 그대로 아물지 못하고

속으로 썩어버렸나


얼룩진 팔을 문대다 문득, 거울에 보이는 시체 한 구

온 몸에 곰팡이가 핀 채 바닥과 벽이 만나는 가장자리로

가만히 숨죽이고 웅크려본다


피부에 보이는 멍인지 곰팡이인지

아니면 살아있었음의 과거에 피어버린 꽃

아니면 방구석에 붙어버린 나


웅크린 구석에서 바닥을 덮은 볕을 피해 자라는 곰팡이

방바닥을 적나라하게 말려버릴 네모난 볕

나의 잘못을 깔끔히 드러내버릴 따스한 볕


그러나, 언젠가 질 볕


볕이 눈을 돌린 새 겨우, 이불 속으로 도망치는 나

흐르는 나를 감추는 네모난 천 속으로, 짓무른 푸르름을 그러안다

내일은 어쩌면, 스스로에 지쳐 잠들었지만


어김없이, 날 다시 비출 볕

또, 황급히 도망치는 나

그럼에도, 매일 아침 이불엔 흩날리는 아직, 꿈을 꾸는 붉은색 포자

온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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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상태변화

숨이 막혔습니다아마도 고체였던 나의 가슴이바다 밑바닥으로 떨어질 때의 수압만큼 짓눌린 것처럼작은 공기방울조차 나오지 못할 정도로그래서였을까요바다 밑바닥을 채울만큼 언어로 구체화되지 못한 마음에 온몸이 녹아내렸습니다녹아내린 육체 사이로 잡념만은 더욱 날카로워 어디라도 찌르고자 했지만보잘 것 없는 내 양심은,그 모든 고통이 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매시 상기시켜미약한 원망의 마음조차 서로만 찌르다 종국에는 미지근한 물처럼 되어버렸습니다물이 물컵을 채우듯 마음이 흘렀습니다흐르고, 또 흐르고 흘렀습니다그러다언어로 구체화되지 못한 미지근한 마음이아이러니하게도 녹아버린 눈꺼풀 사이를 비집고 나와 뜨거운 슬픔이 되었습니다그 뜨거운 슬픔이 타고 흘러내린 눈부터 뺨을 타고 입술, 턱을 지나 가슴께에 뚝뚝 떨어지자닿은 군데군데 녹아버린 마음이 다시 뭉쳤습니다아, 왜일까요. 그저 흐른 채 말라 사라질 날만 있을 줄 알았는데울컥 넘쳐서 구체화된 슬픔이 나를 적시자, 더운 물에 느껴지는 피부의 감촉.아, 나는 그제서야 결국 또 숨을 쉬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 온백
  • 2026-06-27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입니다. 몽유병

난 이따금씩 병을 앓아요볼 수 없는 눈을 떠올리곤이내 입으로 굴러떨어지는내 허물을 벗겨줄래요?내가 잊어버린 걸 줄래요?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독백을뱉어내고 주워먹는 밤아, 외로워요아니 그보단 답답해요견딜 수 없을 만큼구역질이 올라와그대 잔상이 느껴져요짓이기고 으깨진응어리를 토해낼게요밤이 깊어요토사물이 걸어다녀요온 바닥을 뒤덮어도 모자라죠나를 잡아요틈 사이로 춤을 춰줘요온 마음을 풀어내도 모자라죠난 당신이 정말 싫어요곱씹어도 뱉을 수가 없어내가 앓는 당신은 불치병입니다그대 언제쯤 죽어줄래요?차라리 잊혀져 줘요, 그만이미 다 저버린 우리 그 날을지독히도 되삼키는 밤이네요아, 아파요너무 너무도 애달파요참을 수 없을 만큼짙은 충동이 나를, 나를다시 일으켜 세우면밤을 밟은 걸음과발자국을 남겨볼게요춤을 추어요어질아찔 돌아다녀요온 집 안을 헤집어도 모자라죠귀가 보아요소리 없는 난장이네요온 새벽을 지새워도 모자라죠해가 뜨고 나면 발견하죠당신을 향한 나의 손길과식어가는 눈물이 붉게 흐르고널 벗겨내는 날 마주하죠우린 처음부터 글러먹었어요그래도 어쩌겠어요다시 하나하나 널 꿰매줄게요애초부터 어긋난 허울에너와 날 욱여넣곤 일어날게요아픈 밤은 잠시 뒤로한 채시린 아침을 마주할게요

  • 온백
  • 2026-06-15
뗏목

바다에 가본 적이 없지발을 떼고 결코 앞으로 가본 일이 없어땅에 그만, 발을 붙이고 있는 나는역시 저 바다로는 갈 수 없지나의 고향, 역사, 사랑이 새겨진 땅그것들에 뿌리를 두고 자라난 나는, 너는, 우리는돌덩이와 흙, 벌레. 같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어서로 위로만 향하는 재미없는 세계그래서 우리는 바다로 갈 수 없나 봐차라리 뗏목이나 될까봐요한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어여기 땅은 너무 안전해, 지루해, 따분해비들이 가끔 바다의 소식을 싣고 올때면언제라도 저 바다로 빠지고 싶어지네바다로 향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하나의 세계를 자르고 나를 죽여야만저기 저 바다로 갈 수 있어여기 안전한 땅은 나를 살아있게 해다만 나를 숲으로서, 내가 나로선 살 수가 없네나의 구속, 중력, 미련이 새겨진 땅그것들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 나는, 나는, 나는바다로 갈 수는 없을까?오늘 나는 바다로 갈래요드디어, 드디어 결심했어요.내가 나로서 죽을 수 있도록뿌리를 끊고 세상에서 가장 멀리 간 나무가 될테야나는 그래서 뗏목이 될래요스스로 발을 자르고 저 바다 위를 유영해머리가 물 속에 처박혀도가슴에 곰팡이가 자라나도난 자유로운 시체로, 서서히 차라리 죽어가고 말테야

  • 온백
  • 202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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