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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의 아까시

  • 작성자 nana
  • 작성일 2024-11-30
  • 조회수 129

학생

썩은 내 안 나요?


엘리베이터가 녹슬기 시작했다 녹이 진 것이 엘리베이터인지 그 버튼인지 바닥인지 게시판에 붙은 호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어디선가 쿰쿰한 씨앗 냄새가 났다


7층 아주머니는 파마를 하다 말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시큼한 파마약 냄새가 공기 방울을 토하게 했고 전등이 간헐적으로 발작했다 껌뻑 음산한 문장이 아주머니의 깜빡 잊은 신용카드를 타고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간다


어느 날은 어디선가 축축한 비린내가 났다 다만 묵고 찌든 내가 아니라 그저 축축한 물방개 소금쟁이 또 다른 애벌레 개미떼가 대피하는 소리 여름 새가 낮게 날았고 점자가 새겨진 버튼에서는 마치 눈물 같은, 눈물 같은 빗방울이 새어 흘렀다 예보되는 긴 비를 동반한 열대저기압


104동 엘리베이터는 침몰 위기입니다


침몰 위기에 처한 주민들 계단으로 등교하고 하교하고 출근을 퇴근을… 한동안 끊이지 않던 헉헉대는 숨소리 그런데 잠깐, 공지 방송을 한 건 누구야?


그건 아마 아무도 읽지 않던 호소문을 쓴 자일 테다 녹슬고 축축한 헐고 낡은 엘리베이터 한 차례의 침몰을 겪고 스무 세대의 주민 앞에서 속을 보인다 이제야 보인다 짭짤하게 젖은 호소문 하나의 쇼 불가피한 거짓을 내민 벼랑 끝의 


바닥 틈으로 피어난 아까시 나무


바람에 날리는 흰 아까시 침몰하게 된다 하여도 반드시 너의 꽃, 꽃잎 곧게 난 하얀 잎사귀 그 나무 껍질 위로 애벌레 허물 집단울음이 팽배했다 흰 나비의 날갯짓 죽은 허물이 날아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갔다 고인 물 위로 물방개가 튀어 올랐다 그 순간 주민 중 하나가 개미가 되기를 자처했고


남은 열아홉 세대의 주민은 그들의 엘리베이터를 점령한 생물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하나둘 등을 돌려 녹음이 진 아파트를 떠났다

n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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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처럼

살던 비가 내리고순환해야 하는 숙명수평으로 뛰고 싶어 멈추고 싶어 딜레마에 빠진 빗방울 방울 방울 방울자아가 합쳐지고 나뉘고 또 붕괴되고 그러다 딜레마를 잃었다비는 살 수 없지 사실머물 수 없으니까물은 계속해서 죽어나느라 바빠부유하는 순간부터 방울 방울 방울향할 수 없는 날들좁은 창문에 부닥치는절 봐달라고 소리치는 것들문득 낙타가 되고 싶다오목한 그릇을 창밖에 두어도 어느새 흐르고 넘치고 부유하고 증발하는향할 수 없는 것들나는 낙타처럼 굽었음에도굽은 만큼 담지 못해서 대신 선인장을 살까그렇게 안고 싶다따갑게

  • nana
  • 2024-12-02
베케이션

왠지 물렁거리는 감촉이 볼에 닿았지 그건 죠우의 손이었고대어주려던 건 포카리스웨트 캔이었을 텐데서툰 귀가 빨갛다정말 투명한 계절이었어비어 있는 비가 내리고어쩌면 구름이 비는 과정이니까 모순은 없다고 치자정말 빗방울 안이 비어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결핍된 순간처럼 그럼 기꺼이 축축하게 안아줄 텐데 우리처럼청사진은 죠우가 더듬고 눈치 살피다 말하던 것이 될 수도 있고필름 상자에 쏟아버린 포카리스웨트가 될 수도 있으려나그맘때는 파랬다 비었고그러나 가득 차 있었고밀물처럼 즐겼다 이런 비어 있는 모순들여름이 가면 할 수 없겠지까닭: 모든 것이 다시 원색으로 돌아올 테니까슬프기 전에 만나자 한 달 남짓 남은 솔직하기 위한 바람 축축히 안으며죠우!

  • nana
  • 2024-11-29
자주 쓴 혀

연속적인 커피는 가끔 안쓰럽지커피를 생각해봐 퐁당하고 녹아드는 각설탕이라든가 펌프를 누르는 기다란 손가락이라든가 김이 오르는 혼잡한 신호등이라든가바쁘게 오가는 횡단보도에서 하염없이 초록불을 바라보는어떤 여자를생각해 봐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건지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고요하다그 여자는 매일 아침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자주 쓴 혀 잠이 오지 않는 아침아무리 걸어도 빨간 불이 나오지 않는 횡단보도그 여자는 플랫슈즈를 신는다이번 겨울은 처음으로 긴 얼굴을 가지고절단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부럽다이번 눈은 유난스럽게도 내렸다위로 곧게 솟는 김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한 횡단보도플랫슈즈는 빠르게 걷는다비스듬하게 김이 솟는다 빨리 더 빨리 멈추지 않는 초록색 횡단보도를 달리는 쓴 커피를 마시는 시럽 펌프를 계속해서 누르는 연속적으로 커피를 멈추지 않던 타자기와 플랫슈즈 손가락 그리고 시간을생각해 봐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건지눈을 감았다곧게 솟아오르고 있는 김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 nana
  • 202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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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30 10: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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