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의 아까시
- 작성자 nana
- 작성일 202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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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수 2
- 조회수 295
학생
썩은 내 안 나요?
엘리베이터가 녹슬기 시작했다 녹이 진 것이 엘리베이터인지 그 버튼인지 바닥인지 게시판에 붙은 호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어디선가 쿰쿰한 씨앗 냄새가 났다
7층 아주머니는 파마를 하다 말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시큼한 파마약 냄새가 공기 방울을 토하게 했고 전등이 간헐적으로 발작했다 껌뻑 음산한 문장이 아주머니의 깜빡 잊은 신용카드를 타고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간다
어느 날은 어디선가 축축한 비린내가 났다 다만 묵고 찌든 내가 아니라 그저 축축한 물방개 소금쟁이 또 다른 애벌레 개미떼가 대피하는 소리 여름 새가 낮게 날았고 점자가 새겨진 버튼에서는 마치 눈물 같은, 눈물 같은 빗방울이 새어 흘렀다 예보되는 긴 비를 동반한 열대저기압
104동 엘리베이터는 침몰 위기입니다
침몰 위기에 처한 주민들 계단으로 등교하고 하교하고 출근을 퇴근을… 한동안 끊이지 않던 헉헉대는 숨소리 그런데 잠깐, 공지 방송을 한 건 누구야?
그건 아마 아무도 읽지 않던 호소문을 쓴 자일 테다 녹슬고 축축한 헐고 낡은 엘리베이터 한 차례의 침몰을 겪고 스무 세대의 주민 앞에서 속을 보인다 이제야 보인다 짭짤하게 젖은 호소문 하나의 쇼 불가피한 거짓을 내민 벼랑 끝의
바닥 틈으로 피어난 아까시 나무
바람에 날리는 흰 아까시 침몰하게 된다 하여도 반드시 너의 꽃, 꽃잎 곧게 난 하얀 잎사귀 그 나무 껍질 위로 애벌레 허물 집단울음이 팽배했다 흰 나비의 날갯짓 죽은 허물이 날아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갔다 고인 물 위로 물방개가 튀어 올랐다 그 순간 주민 중 하나가 개미가 되기를 자처했고
남은 열아홉 세대의 주민은 그들의 엘리베이터를 점령한 생물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하나둘 등을 돌려 녹음이 진 아파트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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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사랑분명한 때가 있었지만헷갈리게 또어긋나게 되면우리 언제 영원할 적이 있었나사랑자연재해처럼불가피하고도 충분한 핑계거리라지이기적이게, 당신전에 없던 음악을 들려줘신의를 말해줘 우리 사이 신발끈을 보여줘하나 둘 하면 학생들의 이인삼각처럼전에 없던 음악을아리랑, 하고두 걸음하고 엎어질 당신
- nana
- 2025-05-05
외투를 벗어날씨가 변덕이지만 대신 안아줄 수 있을 거야서린 봄에 다 녹았지만뭉친 탓에 녹지 못한 눈덩이가 사태처럼 무너져도무너짐을 다행이라고 하자그럼 우리는 몸집을 줄이고 웅크릴 수 있을 거야작아진 나도 무릎을 껴안은 낮잠을 잘 수 있게봄이야외투를 벗어날씨가 변덕이지만 대신안아줄래?
- nana
- 2025-03-22
그려지는 소리 하나도 빠짐없이 고꾸라지고건반은 환상일 뿐이지사뿐히 걷는 고양이를 짓밟는 플랫된 음들미끄러질 수 있다는 건 필수 교양이지만 아무도 속삭여주지 않았어 교양 없는 자식이라거나 가정교육을 운운할 때손가락 마디가 움츠러들지 난 클래식을 모르는 피아니스트어쩌면 건반을 덮고 자는데차원 위로 보이지 않는 걸 봐야 한다는 거야 참 어렵지어쩌면 환상 속에 사는데꿈은 매번 고꾸라지지 키 클 징조라나 헛말들을오선지 곧은 소리아빠는 눈만 봐도 알아그리는 것 절뚝이며네 동공만 봐도 알아, 피아노 너의 흑건피아니스트 움츠러드는 것마저 연출일까성장의 척도를 알아줘 아빠플랫 플랫 플랫 내려가는 계단에서 강당에서 오페라홀에서어깨가 곱을 때 교정해주는 소리가 있다면쇼팽의 34번 남바쓰리 걸걸한 외침이지?즐거운 고양이의 자장가도약한다
- nana
- 2025-02-15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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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안녕하세요, 김선오입니다. nana 님의 <벼랑 끝의 아까시> 잘 읽었습니다. 디스토피아적인 풍경 속에서 아까시 나무가 피어나는 이미지가 인상적이었어요. 시에서 장면들을 다루는 방식, 인물을 등장시키고 리듬을 활용하는 방식들도 좋습니다. 가능성이 많이 보이니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시 많이 쓰면 좋겠어요. 월장원 공지글의 추천 콘텐츠에 소개된 다양한 한국 현대 시집들을 찾아 읽어보고 자신의 어법을 만들어나가길 응원합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
감동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