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세계를 향해서
- 작성자 화자
- 작성일 202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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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1,185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이름이 사방팔방 펴져있는 세상
텍스트가 불러오는, 의식 저편에서 고착화된 관념적 객체의 이미지
이 이미지가 이름 속에서 솟아올라 당신과 나 사이에 양가적 세계를 창조한다
당신의 세상과 나의 세계
양자가 격렬히 충돌해서 몸을 맞대고 부대껴 또다른 창조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시는 그 공간을 일컫는 이름.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 이름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서로 몸을 맞대야만 할까
너무 지치지 않나요
모든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모든 이미지 하나하나에 둘러쌓여,
서로 나아간다기보단 꽉 막혀 있다고 느낄 때,
난 숨 막혀 죽을 거 같던데
당신은 당신
나는 나
내 앞에 당신은 없고
나 역시 당신 앞에 없어
"모든 독서의 역사는 오독의 역사" 였다는 폴 드 만의 말마따나
협소한 기호들만이 당신과 나 사이를 느슨하게 연결짓거나, 혹은 완전히 단절 시키고 있을 뿐.
그렇기에 텍스트가 만들어낸 감각, 감정, 이미지는 결코 정순한 것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 사이에 불확실하게 존재하던 어떠한 단어를,
당신의 무의식에 주관적이고 관념적으로 내제되어있던 것으로 이미지화시키며 타자의 언어를 왜곡하는 간접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있지는 않은가?
단어와 단어가 만들어낸 감각,
이름과 이름이 만들어낸 시각
묘사와 이미지들,
그 모든게 부조리하다
난 기호를 치워버리고 당신과 대면하고 싶어
진실을 보여주고 싶어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거야
우리가 부딪히기 이전
당신이 텍스트를 읽기 바로 직전
글이 쓰이기 전으로
같은 출발점에서 동시에 같은 걸음을 걸을 수 있도록
이미지를 파괴하고,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백지. 백지를 떠올려보자.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기에
물질성이 없으며, 시간성 역시 망각되어 있다
오직 그(녀)와 나
우리는 이름없이 그곳을 떠돌고 있다.
그 세상에서
걸음걸음 나아간다
그 걸음에는 인칭명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호성 속에서
나아가는 행위만이 알멩이가 되어 남고,
텍스트가 만들어내던 수사들은 전부 증발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걸음은 부딫침을 잃고
언어와 이미지의 특권으로부터 벗어나
서로의 걸음이 될 가능성을 품는다
나와 당신에서
우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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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나 소속 등 모든 것들이 날 때부터 써온 색안경처럼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공감이 가는 시에요. 후반부가 되게 아름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