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 안쪽은 통화 중입니다
- 작성자 희몽
- 작성일 20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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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아 거북이는 아직도 카메라를 켜지 않았어요 어쩌면 화면 뒤에서 나를 보고 있는 걸지도요 머리를 내밀라고 했더니 자꾸 등을 보이네요 등을 내민다는 건 사실 뒤로 물러난다는 뜻이에요 뒷걸음질은 춤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너무 혼내면 안 돼요
거북아 무음 모드로도 소통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거북이가 아무 말이 없어서 크림치즈만 남았어요 껍질도 까지 않은 상태에서 열무김치랑 어울릴 수 있을까요 구워 먹는다는 말은 꼭 협박 같아서 무서워요 그래서 저는 구워 먹지 않으려구요 대신 오븐을 예열했어요 당신이 따뜻해질 수 있도록요
머리를 내밀면 인사를 해줄게요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는 흐리고 당신이 조금 서늘해서 담요를 덮었어요 말은 꼭 정답처럼 할 필요 없어요 저도 자주 틀리거든요 어제는 투표를 잊었고 오늘은 고백을 잊었어요
사실 거북이는 투표도 고백도 안 하는 편이지만 아주 예쁜 손을 가지고 있더라구요 손이 있다는 걸 아무도 몰랐지만 저는 알아요 껍질 안쪽엔 아무도 모르는 방이 있고 그 안에 비밀처럼 말이 말없이 웅크리고 있는 걸요
거북아 무섭지 않아요 당신이 안 나온다고 해도 저는 계속 말을 걸 거예요 오늘도 내일도 에어프라이어에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렇게 매일 인사하면 보관기한이 늘어난대요 썩지 않는 대화를 위해서
우린 서로 말하고 싶은 말을 뱉고 적절한 대답은 하지 않기로 해요 대신 이상한 말들, 너무 이른 말들, 맞지 않는 단어들로 구워지지 않고 서로를 익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북아 내일은 껍질을 열고 한 마디만 해줘요
예를 들면
안녕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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