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장마철에는 비가 내리지 않을 것 같아
- 작성자 아기호랑이
- 작성일 202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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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73
땀은 여름에만 나는 게 아니었다
가열된 시선을 가둔 교복이 질척거리면
몸 깊은 곳에서 올라온 열기가 만들어내는
자조 섞인 한숨
이산화탄소로 머리가 지끈거릴 때쯤
나는 이것을 지구온난화라고 정의했다
이상기후로 사계절 내내 속이 뜨겁고
한숨은 구름이 되어 비를 내린다
교복이 젖어가는 장마철에는
우산도 소용이 없군
아래서부터 차오른 물은 기반을 흔들고
싱크홀에 빠지면 사람이 죽었으므로
우산을 벗어던지면 양말 대신 손이 젖었다
학교에서 잠만 자던 녀석은
공으로 사람 맞추기 좋아하고 어쩌면
눈 오는 날에만 양말이 젖는 사람
그의 발끝으로 많은 것이 구멍 났고
그중에는 나의 오존층도 있었다
자외선 같은 시선에 목이 따갑지만
축축하고 끈적한 손으로
날아오는 공을 잡는다
사람을 향해 공을 던지지 못하는 어린 내게
시선은 받아내기 너무 버거웠던 것
산성비에 두피가 상하고
척추가 보일 정도로 말라버린 나는
저수지에서 썩어버린 나뭇가지 같아
고인 물에서는 냄새가 나는데
여름이면 허파에 박힌 공이 녹아내리고
숨보다는 말이 막혔다
방학이면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 했건만
눌어붙은 고무 파편을 끄집어내기 위해
더 이상 자책하며 살고 싶지 않아 쓴 소설*
소설은 나를 살게 해주었고
때로는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눈을 맞고 싶었다
눈을 만질 때보다 언 손을 녹일 때
더 아프다는 사실도 모르고
소설을 쓰면서 많이 위로받았다
고백에 서툰 나이
비밀을 간직하고자 온갖 비유로 점철했지만
너무 많은 이들에게 전해진 나의 비보
훗날 그걸로 상을 받고도
홀가분한 마음은 없었나
한마디 말도 없이 홀로 떠난 주인공처럼
나는 도움받는 데 인색한 사람
지금 생각해 보면 꼭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주었던
친구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구온난화를 어떻게 버텼을지 모르겠다
죽어가는 행성 곁에 남아주어 고마워
언젠가 너희에 관해 쓰고 싶었는데
이제야 조금은 해낸 것 같아
나를 미소 짓게 해주었던 너희를 보면
이번 장마철에는 비가 내리지 않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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