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스위치
- 작성자 은
- 작성일 202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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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51
고통이 너무 커서 보지 않기를 택합니다.
고통은 덩치를 너무 키워버려서
공포라는 이름이 되었고
마치 코즈믹 호러처럼
내 눈앞을 가득 채웁니다.
심장 소리의 규칙은 암묵적입니다.
암묵이 깨지고
쿵쿵거릴 때면
심장 소리가 발자국임을 느낍니다.
고통 곧 공포가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입니다.
내 몸을 울려댈 만큼,
내 기분을 무기력하게 만들 만큼 큰 걸음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들을 수 있고 보이지 않는 이유는 너무도 커다랗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선을 돌립니다.
그곳에는 네모나고 작은 화면이 있습니다.
내 한 손에 다 들어차고
내가 마음대로 조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통이 다가오는 바람조차 느껴지지 않도록
집중할 것들을 찾습니다.
찾아 헤맵니다.
헤엄쳐 허우적거립니다.
그러고 나면 하루가 지납니다.
시침과 분침이 맞물려도
내 밤은 끝나지 않습니다.
나는 눈을 감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공포는 분노를 불러옵니다.
나는 잠을 자지 않습니다.
내 시간을 보장받기 위해 나는
전사처럼 눈을 부릅뜨고 자리를 지킵니다.
그런다고 내 시간은 생기지 않습니다.
자는 시간은 줄어들어
기분을 더 갉아먹습니다.
화가 납니다.
불길이 나를 삼킵니다.
기름 냄새가 납니다.
내 마음은 기름을 흘리며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젠 물이 아닌 불이
내 심장을 감쌉니다.
뜨겁고 아프고 그리고 화가 납니다.
그 이전에는 자기혐오와
슬픔이 가득했다면
이번에는 해소할 수 없는
울분이 차오릅니다.
나의 마음은 진흙밭이고
겉이 메말라 바스러지고 있습니다.
고통은 곧 공포인 그것은 차라리
나를 짓밟을 만큼 거대했다면
맞서 싸울 준비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배로 나를 힘들게 합니다.
땅을 가꿔야 하는 것이 인간인데
내 밭은 가꿔지지 않았고
발로 차고만 있습니다.
까만 하늘이 나를 덮어줬으면 합니다.
내가 보이지 않게.
우리가 같은 편이도록.
장막의 뒤에서 모든 걸 지켜보도록.
누군가가 스포트라이트를 바랐답니다.
그것은 과거의 나였고 나는 아니었습니다.
곤란하고 버거운 상황은
인생에서 자주 찾아옵니다.
마치 단골손님입니다.
나는 손님에게 상품을 내어주어야 하고
그것은 나의 안식과 평온입니다.
그들의 재화는 불안과 공포입니다.
나는 어느덧 부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무엇을 해야 내가 나아가고 있다는 걸 증명받을 수 있을까요.
낮엔 소복이 쌓인 눈밭의 까만 활자가
나의 발자국일 것이고
밤엔 검은 하늘에 이어 붙인 흰 구름이
나의 꼬리일 것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다시 지면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면이란 내 손바닥 안의
네모난 화면을 뜻합니다.
내게 이곳이 곳 종이이며
땅인 것은 이곳에 초고가
쓰였고 그럼에도 언젠가
밟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옛날 추억을 붙잡아 봅니다.
아니 내 영혼을 붙잡아 봅니다.
내 다리는 진흙 아가리 속으로 빠져들고 있고
내 손은 미동 않는 굳은 영혼을 붙잡고 늘어집니다.
영혼은 찢어질 듯하면서도 붙어있습니다.
그 이유를 아는데도 감사를 표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치고 허덕이며 무엇보다
그럴 기분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내가 나를 찢고 날 가라앉히고 날 태우니
이것은 형벌인가 싶습니다.
괜찮을 거라 되뇝니다.
괜찮을 거란 마지막 희망이 있습니다.
영혼은 아직 찢어지지 않았고
떠내려가지 않았으니
희망을 주워 챙깁니다.
바지 주머니 가득 채워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파편이니
괜찮을 거라 되뇝니다.
이 시 간 이 끝 나 지 않 고 이 글 이 끊 이 지 않 도 록 나 는 줄 을 풀 고 또 풉 니 다. 줄 줄 이 꿰 어 이 어 붙 입 니 다. 글 은 구 슬 이 고 구 술 보 다 오 래 남 습 니 다. 오 래 남 는 것 은 가 치 도 오 래 갑 니 다. 나 도 오 래 남 았 으 면 합 니 다.
별빛과 창문 빛 중 더 좋은 건 무엇입니까.
나는 도무지
고를 수가 없습니다.
멀리서 보면 별도 별이고 빛도 별입니다.
저 별 안에 나와 같은 또 하나의 세계가
살아 숨 쉬고 있다니 나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 별은 텅 비어있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도무지
고를 수가 없습니다.
인위는 아름답고 무위는 경이롭습니다.
고로 나는 경이롭고 아름다운 생명.
어딜 가든 길을 내고
버팁니다.
잘해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고 싶습니다.
내가 웅크린 몸을 펴서
내가 공포를 잡아먹고
내가 고통을 삼켜
내가 발걸음 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진흙탕도 심해도 불길도
큰 발로 밟고 지나갈 수 있을 겁니다.
내 심장의 기름을 핥아내고 진흙을 발라
고칠 겁니다.
까맣게 그을리고 진흙투성이에 축축할 테지만
잘 뛸 겁니다.
수축과 이완을 반복해 불은 순환하고
불의 사람이 될 겁니다.
나는 무너진 적이 없고
극복해오기만 했습니다.
나는 단 한 번도 부서져 내린 적이 없고
조각을 모아 끼워 맞춰 갔습니다.
무릎 꿇었대도 쓰러지지 않았고
머리를 내려쳐도 피는 보지 않았습니다.
진보하는 인간은 앞을 봅니다.
두렵다면 눈을 가리고
고개는 정면을 향합니다.
빛과 어둠은 구분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글을 보고 내 공허를 보고 내 공포를 보고 내 고통을 봅니다.
아직은 내 화면이 빛이지만
어둠을 길잡이로 삼을 때까지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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