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임선우 소설가가 글티너에게 전하는 편지 / 2026 글틴이 뽑은 오늘의 문학

  • 작성일 2026-09-28
  • 조회수 128

글틴 여러분, 안녕하세요.

임선우입니다.

 

어젯밤에는 잠결에 일어나 창문을 열자 찬바람이 불어오더라고요.

바야흐로 선선한 가을이구나, 더운 이마를 식히며 행복을 느꼈어요.

글틴 여러분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여러분께서 저를 올해의 작가로 뽑아 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기쁘고 놀랐습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어요. 여러분께서는 제 소설에서 어떤 마음을 읽어 주신 걸까요? 누군가는 제 소설이 유독 슬프다고 하던데, 여러분께서도 혹여나 자신 안의 슬픔과 마주했던 것은 아닌지 순간 마음이 쓰이기도 했고요.

 

제가 시를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열여섯 살이었는데요, 그때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버스입니다. 당시 저의 취미는 아무 버스나 골라 타서 무작정 새로운 곳으로, 최대한 멀리까지 가보는 것이었거든요. 창밖을 구경하면서 가다가 흥미로워 보이는 곳에서 내려 해가 질 때까지 낯선 동네를 탐험하고는 했습니다. 그런 날이면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 동안 속으로 생각했어요.

가족들은 내가 어디까지 갔다 왔는지 모르겠지?

내가 얼마나 새로운 것을 보았는지 말이야.

아무도 모르는 저만의 비밀이 생겼다는 사실이 좋았고, 그보다 더 좋았던 것은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기꺼이 뛰어들었다는 사실이 가져다주는 작은 긍지였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

그렇습니다, 열여섯의 저는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어요. 학교는 갑갑했고,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았어요.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밀려들 때면 버스를 탔습니다. 어느 날에는 수업 시간 도중에 일어나서 버스를 타러 나간 적도 있었어요.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 낯선 공간으로 가려고, 새로운 풍경을 눈에 담으려고, 때로는 그저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기 위해서.

그렇게 새로운 동네를 탐험하고 돌아온 날 밤이면 일기를 썼습니다. 낯선 동네를 돌아다니는 동안 눈에 들어왔던 것들, 혹은 낯선 동네까지 와서도 끊임없이 떠오르던 생각들을 적었어요. 왜 유독 그 장면이 눈에 밟혔을까, 왜 낯선 곳에서도 나는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 답을 모르는 채로 오래 상상해 보는 일이 좋았어요.

 

돌이켜 보면 제가 지금까지 글을 쓰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것 같아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해하지 못하는 채로 조금 더 오래 바라보기 위해서요.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가장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래도 사람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소설을 쓰면 쓸수록 오히려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는 그 모름조차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모른다고 해서 돌아서는 대신,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한 번 더 상상해 보는…… 문학은 우리에게 그런 이상한 시간을 허락해 주는 것만 같습니다.

 

저는 언젠가 글틴 여러분께서 그렇게 오래 들여다보는 마음이, 다른 누군가의 마음보다도 부디 여러분 자신의 마음이기를 깊이 바랍니다. 어느 날 여러분께서 슬픔을 느끼셨다면 가만 바라봐 주세요. 그 슬픔은 푸른 돌처럼 단단했나요, 젖은 수건처럼 축축하고 무거웠나요, 밤이 되어도 꺼지지 않는 복도 등 같았나요, 혹은 전혀 다른 무엇이었나요. 어쩌면 문학은 이름 붙일 수 없는 마음 곁에 오래 머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가 다소 길어졌네요…….

그래도 여러분, 이 말만은 꼭 덧붙이고 싶어요. 지금 제가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지만요, 사실 글 쓰는 일에 있어서 선배들의 말, 선생님들의 말은 그다지 힘이 없습니다. 돌이켜 보면 가장 중요했던 것은 내가 내 글을 믿어 주는 마음이었어요, 때로는 그 마음이 글 쓰는 데 필요한 전부인 것 같기도 합니다.

솔직하게 이 말을 꺼내기까지도 한참이 걸렸는데요, 사실 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제 글에 대한 자신이 없었어요. 제가 쓰는 글이 남에게도 의미가 있을지 의심했고, 제 글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바보같이 느껴져도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다만 괴로움 속에서도 꾸준히 써나갔습니다.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도망치지는 말자고 다짐했어요.

 

그러다 몇 년 전 ‘나름’이라는 단어를 손에 쥔 뒤로 마침내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나름의 사전적 정의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방식. 또는 그 자체’라고 해요. 저는 그 단어가 너무 좋았던 나머지, 제 책에 ‘나름대로 쓸 것이고 나름대로 살 것이다’라고 적어 두기까지 했는데요, 이는 사실 다른 누구도 아닌 저를 위해 쓴 문장이었어요. 제가 글을 쓰다가 용기를 잃을 때, 언제든 이 문장을 떠올리며 긍지를 되찾을 수 있었으면 했거든요.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도 ‘나름’이라는 단어를 손에 쥐여 드리고 싶어요. 가끔 글을 쓰다가 용기를 잃는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어요. 내가 쓰는 글에 확신이 없을 때, 스스로 의심하게 될 때가 문득 찾아온다면 기억해 주세요. 나에게는 나만의 고유한 시선과 문장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언제나 나름대로 쓰며 또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저는 지금도 글을 쓰다가 용기를 잃을 때면 나름이라는 단어를 손에 쥐고 열여섯의 제가 올라탔던 버스를 떠올립니다. 처음부터 어디에 도착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시작하지 않아도,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더라도, 심지어는 잘못 내린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내 두 다리로 움직이는 만큼, 내 두 눈에 담는 만큼 넓어지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에요. 여러분께서도 자신의 내면에서 고유해지는 세계를 믿어 주세요. 저는 여러분께서 자유롭게 세상을 탐험하며, 마음 가는 대로, 무엇보다 나름대로 쓰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그리하여 언젠가 여러분이 쓴 문장들을 다시 마주하는 날이 오면 묻고 싶어요.

어디까지 다녀오셨나요? 그리고 무엇을 보고 오셨나요?

그 이야기를 듣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임선우 드림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세요.
  • 욕설, 비방, 혐오 표현 및 과도한 홍보성 내용은 제한될 수 있습니다.
  • 운영 정책에 위반되는 댓글은 사전 안내 없이 숨김 또는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