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듬 시인이 글티너에게 전하는 편지 / 2026 글틴이 뽑은 오늘의 문학
- 작성일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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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청소년 작가님들에게
안녕하세요!『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가 ‘2026년 글틴이 뽑은 오늘의 문학』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무척 놀랐고 기뻤습니다. 내일은 저의 시집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를 읽어주신 글티너 패널들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직접 만나 대담 행사를 하기로 한 날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김소은 선생님이 행사 마지막 순서로 편지를 낭독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주셨어요.
저는 지금 나무 그늘에 앉아 이 편지를 씁니다. 제 방에서 나와 꼭 스무 걸음 걸으면 목련 나무가 있거든요. 우듬지가 4층 주택 지붕에 닿을 만큼 높고 둘레가 한 아름 넘는 우람한 고목입니다. 벌써 새잎 돋우고 흰 꽃송이 피울 채비를 하려는지 나무는 자꾸 누르스름한 낙엽을 떨구네요. 차가운 어둠 속으로 더 깊이 뻗어 나아가고 있을 뿌리의 시간을 생각해봅니다. 제 옆에 온 고양이가 배를 드러내고 다리를 뻗어 기지개 펴는 모습에 잠시 웃었습니다.
목련 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하죠. 수억 수천만 년 전 벌과 나비조차 없었던 공룡시대부터 존재해온 나무는 최초의 문학보다 오래되었네요. 저는 고전을 좋아하지만, 갓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들의 문학에 더한 매력을 느낍니다. 여러분과의 만남을 앞두고 설레고 긴장되어서 어제는 새벽까지 뒤척이다가 글틴 작가님이 쓴 작품들을 읽었습니다. 몇 가지 구절만 옮겨보겠어요. “꿈속에서만 자라나는 나무에 기대며” “온몸을 다해 너를 써 내린다”(송희찬, 「여광 뿌리」), “내가 내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시를 쓰지 않았겠지 시는 / 손에 잡히지 않는 천사의 낮잠처럼 / 미끄럽게 흘러내렸겠지”(방백, 「악몽의 집」), “나는 모래 위에 하트를 그렸는데 파도가 와서 절반을 지우고 가 물음표만 남았다”(시유레, 「여름에 두고 온 것」), “고체가 된다는 것은 이토록 끔찍하게 외로운 일이다.” “수분을 머금은 채 질척하게 울고 있다는 것을”(미빈, 「시멘트의 양생(養生) 기간」) “사랑하면 잊지 못할 것 같다고 짖는 개”(양현서, 「눈보라 놀이」), “부서져도 남아 있는 게 있다고 믿으면서 얼기설키 뭉친 톱밥 그러모으면 새로운 의자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 (서벽,「목수는 앉고야 말겠지」)라는 시의 이 구절들은 저에게 주는 우정어린 위로의 인사 같았습니다. 빛나는 다른 작품들도 많지만 다 언급할 수는 없네요.
다만 제가 청소년이었을 때 끄적거린 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하게 아름다운 작품들을 ‘글틴’에서 읽었습니다. 문학플랫폼 글틴에 자신이 쓴 글을 자유롭게 발표하고 현직 작가들의 멘토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온몸을 다해 작품을 쓰며 자신을 발견하고 물음표를 가진 채 질문하며 액체적인 사유를 품는 청소년 작가들, 열렬히 새로운 의자와 의지를 만들고 반려로서의 문학을 사랑하는 모습에서 저의 예전 나날이 떠올랐습니다.
중고교 시절 저는 침울할 때가 많았어요. “너만 없으면 우리집이 평화롭겠다.”라고 새어머니가 말할 땐 대들기도 했지만, 죽어버릴까 싶었죠. 하지만 눈물 훔치며 책으로 도피하는 방법이 있더라고요. 수전 손택이 “독서는(...) 내 자그마한 자살이에요.”라고 한 것처럼 잠깐 이승을 벗어나 다른 낯선 세계에 몰입하며 글도 쓰다 보니 어느새 문학이 저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어두운 삶을 연료로 시의 빛을 결 수 있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저는 후배 작가 여러분을 항상 응원하고 사랑하며 함께 나아가기를 고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시 「후배에게」를 읽고 편지 낭독을 마치고자 합니다. 2026년 문학주간, ‘글틴이 뽑은 오늘의 문학’ 행사에 참여해주신 글티너들, 객석에서 마음을 주시는 모든 분. 그리고 사회를 맡아주신 김태선 평론가님과 사랑하는 소설가 임선우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후배에게
음악을 좋아해?
걷는 걸 좋아해?
맛있는 걸 좋아해?
네가 사는 것도 좋아하면 좋겠다
너를 기다리는 카페에서 옆자리 사람들의 대화를 듣는다 아이들 점수, 아이들 담임, 아이들 친구, 아이들 운동장, 아이들 급식......
학부모 회의 마치고 온 두 사람은 세 시간 넘게 아이들 이야기에 몰입한다 한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멜빵바지를 입었어 둘 다 4학년 2반이며 한 아이는 수학을 잘하는 여자아이, 한 아이는 강아지를 좋아하는 키가 작은 남자아이인 걸 나도 알게 되었어
사랑하는 대상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가장 많이 말하는 거라면
나는 너를 다섯 번 생각했다
이리하여 쓴다
사는 게 뭘까?
연말 퇴근길에 너는 말했지
다른 부서 과장의 부친상에 조의금 부쳤고 야근을 했고 배고파 죽겠다고
회사 가는 게 괴롭다고 했어
사는 게 뭔지 달아나고 싶다고
안경 벗으면 딴사람 같은
너는 김연아와 에디 레드메인과 인천 사는 친구를 좋아하지 얇은 티셔츠에 청바지 입길 좋아하고 초코우유와 망원한강공원을 좋아하지 빨래하고 누워서 웹툰 보길 좋아하지
일과중에 나는 너를 기다리는 이 시간이 제일 좋아
널 만날 약속 없었다면 온종일 끔찍했겠지
나도 너처럼 습관적으로 한숨 쉬지만
네가 얼굴 뾰루지랑 새치를 걱정하면서도
솟아오르는 웃음을 터뜨리면 좋겠어
어쩌면 삶에 의미가 있을지도 몰라
의미 없어도 생생하지
사는 걸 꽤 좋아하면 좋겠어
2026년 9월 20일
김이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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