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026년 8월 월 장원 선정 / 서윤빈 소설가
- 작성일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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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틴 소설 게시판 여러분.
이번 달 월장원을 선정하는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이번 달에는 유독 스케일이 크고 밀도 높은 작품들이 많아서 고민이 깊었던 한 달이었습니다. 후보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한강을 건너다>, 구포대교
가출한 형을 찾아 서울로 올라온 화자가 결국 형을 찾으러 온 게 아니라 형을 보지 않기 위해 왔음을 깨닫는 이야기입니다. 쓰레기로 뒤덮인 괴물이라는 은유를 오랜 시간 누적된 가족의 죄책감과 포개어놓는 솜씨가 인상적이었고, 자신도 모르게 형이 겪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화자의 아이러니가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다만 분량에 비해 사건이 진전되는 속도가 다소 느슨한 대목들이 있어, 조금 더 압축되었다면 그 여운이 한층 선명했을 것 같습니다.
2. <친애하는 프란츠 요제프에게>, 서벽
불멸 기술 ACS와 화성 프로젝트를 향한 비밀 생존자 명단을 둘러싸고, 뮐러가 백 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옛 동료 요제프에게 진실을 고백하는 서간체 SF 소설입니다. 백 년 만에 도착한 요제프의 편지가 이야기 전체를 재구성하는 마지막 반전과, 불멸을 택한 뮐러의 정체된 삶과 대조를 이루는 카를 쾨르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이 작품의 철학적 무게를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야기 소제목들이 각 장의 내용을 선명하게 정리해주지는 못했고, 이토록 발전한 기술을 가진 세계관임에도 증기 시대에 가까운 복고적 배경이 별다른 설명 없이 병존하는 점은 다소 의아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럼에도 방대한 세계관과 서간체 형식을 이만한 밀도로 끝까지 밀고 나간 뚝심이 돋보인 작품이었습니다.
3. <해질녘>, 드시코
아버지의 폭언을 목격하며 자란 소년이 극단적인 복수 환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다가 결국 아버지를 밀어버리는 것으로 끝나는, 강렬하고 고통스러운 이야기입니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장치와 동물원의 갇힌 짐승 은유가 소년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그려냈고, 마지막 문장의 절제된 서술이 앞선 폭력적 상상과 날카로운 대비를 이루며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다만 반복되는 동물 은유와 다소 설명적인 서술들이 그 절제된 마무리의 힘을 조금 덜어내는 지점들도 있었습니다.
고심 끝에 이번 달 월장원은 <친애하는 프란츠 요제프에게>, 서벽 님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서벽 님. 앞으로도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 추천 콘텐츠
### <유령 연구>, 그레이스 M. 조
한국계 미국인 사회학자 그레이스 M. 조의 에세이 겸 철학서입니다. 저자의 어머니는 한국전쟁 이후 기지촌에서 일했던 이른바 '양공주' 출신으로, 미국인 선원과 결혼해 이주한 인물입니다. 이 책은 그런 어머니의 삶과, 한국 근현대사가 은폐해온 기지촌 여성들의 수난사가 어떻게 개인의 트라우마로 응고되어 대를 이어 무의식 속에 자리 잡는지를 추적합니다. 저자는 이 삭제된 존재들을 '유령'이라 부르며, 그들이 어떻게 생성되고 어떻게 산 자들의 주변을 배회하며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촘촘히 밝혀냅니다.
저자는 어머니의 구체적인 생애사를 서술하는 동시에, 그 이야기가 왜 침묵당했는지, 그 침묵이 어떤 구조적 폭력의 산물인지를 이론적으로 짚어내며 두 층위를 오갑니다. 이번 달 글틴에 올라온 작품들 중에도 가정 안에 묻힌 트라우마나 세대를 거쳐 반복되는 침묵을 다룬 글들이 더러 있었는데, 그런 소재를 다룰 때 인물의 개인사만을 서술하는 것과 그 개인사를 낳은 더 큰 구조(사회, 시대, 제도)를 함께 응시하는 것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하는 분들께 이 책의 방법론이 좋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 <오릭스와 크레이크>,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로 잘 알려진 마거릿 애트우드가 2003년 발표한 장편소설로, 이후 <홍수의 해>, <미친 아담>으로 이어지는 '미친 아담 3부작'의 첫 권입니다. 유전자 조작과 생명공학이 극단으로 치달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인류가 거의 전멸한 이후 홀로 살아남은 주인공 '스노우맨'이 자신이 만든 신인류 '크레이커'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에서 눈에 띄는 점은 서술 구조입니다. 소설은 인류 멸망 이후의 황폐한 현재와, 지미가 크레이크, 오릭스와 얽혀 들어가며 파국을 향해 걸어가는 과거를 계속해서 교차시킵니다. 녹슨 물건이나 문득 떠오르는 문장 같은 사소한 단서에서 촉발되는 회상들이 마치 땋은 머리처럼 두 시간대를 엮어나가면서, 정작 인류 멸망이라는 핵심 사건의 전모는 소설이 거의 끝날 때까지 유보됩니다. 독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보다 "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궁금해하며 페이지를 넘기게 되고,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지미 자신이 그 파국에 결정적으로 연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는 글티너 여러분들이 자주 시도하는, 결말의 정보를 앞부분에 흩뿌려두고 뒤늦게 회수하는 구조와 같은 원리입니다. <오릭스와 크레이크>는 이 원리를 장편 전체에 걸쳐 어떻게 지치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유보된 정보가 왜 결말에서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주인공의 죄의식이라는 감정적 무게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본보기입니다. 비선형적 시간 구조로 긴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분들께 특히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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