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린아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양동이」
- 작성일 2024-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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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이
이린아
그해 여름 양동이 속에
머리를 넣고 살았다
양동이는 늘 밖에서부터 우그러진다
우그러진 노래로 양동이를 펴려 했다
그때 나는 관객이 없는 가수가 되거나
음역을 갖지 못한 악기의
연주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잘 보세요, 얼굴에서 귀는
유일하게 찌그러진 곳입니다
보컬 레슨 선생이 말했다
가끔 내 목소리가 내 귀를 협박하곤 했다
세모 눈썹, 불타버린 미간을 펴며
귓속과 목구멍의 구조를 샅샅이 뒤지는 소리를 내려 했던
여름 노래,
그해 여름에 배운 노래는 반팔이었고 샌들을 신었고
목덜미에 축축한 바람이 감기는 그런 노래였다
양동이 속에서 노래는
챙이 넓은 모자를 뒤집어쓰곤 했다
골똘한 눈, 꺾인 손등으로 받치고 있는
청진의 귀를 향해
벌거벗은 노래를 불렀다
양동이 속에서 듣던
1인용 노래
허밍과 메아리의 가사로 된 노래를
우그러진 모자처럼 쓰고 다녔다
- 시집 『내 사랑을 시작한다』 (문학과지정사, 2023)
내 노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래를 혼자서 불러서 할까요? 혼자서 들어야 할까요? 한창 노래 실력을 키울 때, 곁에서 노래를 들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선생님이나 동료가 없을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결정적으로 어떤 문턱을 넘게 하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의 몫일 겁니다. 자기가 자기를 바로 보지 않고서는 자기 실력도 한계도 개성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 겁니다. 한여름에도 머리에 양동이를 뒤집어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노래 연습을 하는 이유. 제대로 발성하기 위해서도 자기한테서 나오는 소리를 똑바로 듣는 연습이 필요해서겠지요. 어떤 소리든 그 소리가 나오는 자기를 똑바로 보는 연습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자기를 똑바로 보고 듣는 과정이 어디 노래에만 필요한 일일까요? 시를 비롯해서 숱한 예술에서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자기를 직시하는 과정일 겁니다. 바깥의 날씨가 여름이든 겨울이든 상관없이, 자기 소리가 잘 나오든 못 나오든 상관없이 일단은 들어야 하고 보아야 하고 그래서 스스로 감옥을 만들듯 양동이 속에 들어가서 고행하는 사람. 고행하듯이 때로는 신음하듯이 때로는 짐승 소리와 다름없는 소리를 내면서 조용히 미쳐가는 사람. 우그러진 양동이처럼 귀도 우그러지고 얼굴도 우그러지고 인상도 우그러지는 사람. 종내에는 영혼까지 우그러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세상에 나와서 선보이는 작품도 그래서 우그러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왕이면 반듯한 영혼을 담아 세상에 내보이면 좋겠지만, 이미 피땀 흘려가며 연마할 때부터 우그러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했던 사람에게 반듯하게 생긴 결과물을 기대하는 자체가 욕심일 겁니다. 적어도 예술의 영역에서는 우그러짐이 필수이고 숙명이고 그래서 오히려 즐겨야 할 덕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그러진 노래로 양동이를 펴”듯이, 우그러진 예술이 때로는 우그러진 세상을 밀고 나가서 똑바로 펼 때도 있습니다. 기적적으로 세상을 반듯하게 펴는 순간이 있기에 우리는 예술가의 그 우그러진 힘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밍과 메아리의 가사로 된” 1인용 노래를 “우그러진 모자처럼 쓰고” 다니는 이를 내내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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