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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꽃분홍 배우의 목소리로 듣는 최지은 시인의 「가정」

  • 작성일 2024-11-14
  • 조회수 388

   가정

최지은


   우리는 말이 없다 낳은 사람은 그럴 수 있지 

   낳은 사람을 낳은 사람도 

   그럴 수 있지 우리는 동생을 나눠 가진 사이니까 

   그럴 수 있지 


   저녁상 앞에서 생각한다 


   죽은 이를 나누어 가진 사람들이 모두 모이면 한 사람이 완성된다


   싹이 오른 감자였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푸른 감자 

   엄마는 그것으로 된장을 끓이고 

   우리는 빗소리를 씹으며 감자를 삼키고


   이 비는 계절을 쉽게 끝내려 한다


   커튼처럼 출렁이는 바닥 

   주인을 모르는 

   손톱을 주웠다


   나는 몰래 그것을 서랍 안에 넣는다

   서랍장 뒤로 넘어가버린 것들을 생각하면서


   서랍을 열면 사진 속의 동생이 웃고 있다  

   손을 들어 이마를 가리고 있다

   환한 햇살이 완성되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다


   우리가 눈 감으면 

   우리를 보러 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거기 있었다


   -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창비, 2021) 

시인 김언
최지은의 「가정」을 배달하며

   저녁상 앞에서 생각합니다. 혼자가 아니라면 몇이 더 있을 수 있습니다. 둘이든 셋이든 넷이든 저녁상 앞에 모여 식사하는 사람들. 흔히들 가족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 중에는 누가 되든 먼저 떠난 사람도 있을 겁니다. 천수를 다 누리고 가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어린 나이에 속절없이 떠나간 가족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싹이 오른 감자처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멍에만 남기고 간 가족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가족에서 이탈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또 영원히 가족으로 머무르는 사람. 그를 가족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는 여전히 그들의 가족입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모두 죽고서야 그는 더 이상 가족도 아니고 사람도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망자(亡者)가 되는 거겠지요. 그 전까지는 “죽은 이를 나누어 가진 사람들이 모두 모이면 한 사람이 완성”되는 시간이 계속될 겁니다. 완성은 물론 불완전한 완성입니다. 저마다 망자에 대한 기억이 불충분하듯이(알게 모르게 “서랍장 뒤로 넘어가버린” 기억이 얼마나 많을까요), 그 기억이 모여서 완성되는 망자도 불충분하기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다만 모자란 기억일지라도 망자를 가장 오래 기억하는 이들로 가족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잊히지 않는 망자가 되기 위해 우리는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택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싫다고 하면서도 가정이라는 생활 공동체를 끝내 버리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를 가장 오래 기억해줄 사람, 가족은 죽어서도 나를 기억해줄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죽어서도 나를 찾아오고 우리를 찾아오는 것이겠지요. 가족으로 찾아온 그가 있어 우리는 여태 가족으로 있는지도 모릅니다. 가족이 아니면 또 누가 찾아와서,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 우리를 물끄러미 들여다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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