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 「시, 부질없는 시」
- 작성일 201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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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 「시, 부질없는 시」
시로써 무엇을 사랑할 수 있고
시로써 무엇을 슬퍼할 수 있으랴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시로써
무엇을 버릴 수 있으며
혹은 세울 수 있고
허물어뜨릴 수 있으랴
죽음으로 죽음을 사랑할 수 없고
삶으로 삶을 사랑 할 수 없고
슬픔으로 슬픔을 슬퍼 못 하고
시로 시를 사랑 못 한다면
시로써 무엇을 사랑할 수 있으랴
보아라 깊은 밤에 내린 눈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아무 발자국도 없다
아 저 혼자 고요하고 맑고
저 혼자 아름답다.
▶시_ 정현종 -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65년 《현대문학》을 등단했다. 시집 『사물의 꿈』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세상의 나무들』 『갈증이며 샘물인』 『견딜 수 없네』 『광휘의 속삭임』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경암학술상(예술 부문), 파블로 네루다 메달 등을 수상했다.
▶낭송 - 최영미 - 화가. 등 그룹전 다수 참여.
배달하며
새해, 첫 번째 배달하는 시는 「시, 부질없는 시」이다.
실용과 쓸모와 계산에만 매인 삶이여, 그 짐승 이빨 속에 끼인 시를 놓아다오.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와 매사에 파이팅! 파이팅!을 외치는 구호와 긍정의 과잉은 자칫 얼마나 고단하고 속된 삶인가. 사방엔 비명과 발악, 그리고 날카로운 발자국들 가득하다. 그 발자국 위에 저 혼자 내리는 눈처럼 저 혼자 내렸다가 저 혼자 녹아버리는 시를 배달한다.
희망과 위로와 행복을 외쳐대는 새해의 클리셰(cliche)를 던져버리고 덧없고, 부질없고, 무용(無用)한 것들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위해 축배!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고통의 축제』(민음사)
▶ 음악_ 자닌토
▶ 애니메이션_ 제이
▶ 프로듀서_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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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늙은 신갈나무처럼」 몸을 침범하는 벌레를 중심을 어지럽히는 곰팡이를 속을 갉아먹는 나무좀을 그 속에 둥지 트는 다람쥐나 새를 용서하니 동공이 생기는구나바람을 저항할 힘을 선사하는 양선희 - 1960년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태어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87년 계간 《문학과비평》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나리오가 당선되었다. 시집 『일기를 구기다』, 『그 인연에 울다』와 장편소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를 펴냈으며, 이명세 감독과 영화 의 각본을 공동으로 집필했다. 에세이로는 『엄마 냄새』, 『힐링 커피』가 있다. 낭송 - 나지형 - 배우. 성우. 연극 ‘9살 인생’, ‘대머리 여가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에 출연. 배달하며 지난여름은 지독한 불볕이었다. 그 중에도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불길하고 끔찍한 뉴스들이었다. 세상 어디를 손가락으로 찔러 보아도 더러운 악취가 새어나왔다. 시정신이 없는 혼탁한 기회주의 시인을 향해 어떤 시는 “이 땅은 방부제도 썩었다”라고 탄식했다.신갈나무는 도토리가 달린 참나무의 다른 이름이다. 그 이파리를 짚신의 신발창처럼 갈아 쓴다하여 신갈나무라 불렀다고 한다. 참나무 잎으로 신발을 갈아 신어야 할 것 같다. 온갖 설익은 말, 벌레 먹은 말, 끔찍하고 억지스러운 말, 다 가리고 크게 다시 숨 쉬고 용서하고, 가을 밤 하늘에 새로 떠오르는 처녀별 같은 그런 시가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폭력적이고 기형적인 언어의 흙탕물 속에서 싱싱한 생명의 시를 골라 배달하겠다고 했던 첫 인사말이 떠올라 가슴 아릿하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 『그 인연에 울다』(문학동네) ▶ 음악_ Tune ranch-orchstral-2 중에서 ▶ 애니메이션_ Alice Jiyu▶ 프로듀서_ 김태형
- 2016-09-26
손 세실리아, 「갠지스강, 화장터」 다홍 천 턱까지 끌어올리고 장작더미에 누운 여자 기척도 없다 불길 잦아들도록 끝끝내 이글거리던 가슴뼈와 골반 회(灰)가 되어 허물어진다 한 때 소행성과 대행성이 생성되고 해와 달과 별이 맞물려 빛을 놓친 적 없던 여자의 집, 감쪽같이 철거당했다한우주가 사라졌다 시_ 손세실리아 - 북 정읍에서 태어나, 2001년《사람의 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기차를 놓치다』, 『꿈결에 시를 베다』와 산문집『그대라는 문장』이 있다. 낭송 - 나지형 - 배우. 성우. 연극 ‘9살 인생’, ‘대머리 여가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에 출연. 배달하며 힌두(Hindu)의 삶은 갠지스에서 시작되고 갠지스에서 끝난다. 갠지스 성스러운 물에 몸을 담그는 세례로 시작하여 그 강에 회로 뿌려지는 것으로 끝난다. 물로 시작하여 불로 끝을 맺는 제전이다.이 시는 장작더미에 누워 화장을 기다리는 여자의 자궁속의 해와 달과 별이 맞물리는 윤회와 인연을 포착하고 있다. 그녀의 자궁 속에서 진행되던 생명의 달거리, 소행성과 대행성을 품었던 생명 원류로서의 여자의 집! 이 시는 그것이 장작더미 불길에 의해 감쪽같이 철거되고 한우주가 사라졌다고 했다. 하지만 걱정 말라! 갠지스에 뿌려지면 죄는 사라지고 다시 생명으로 돌아온다고 하지 않는가. 그 장엄한 회귀를 위해 그녀의 발목에 화장의 삯으로 은발지가 걸려있었을 것이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출전_ 『기차를 놓치다』(애지) 음악_ 07-A Simpler Time 중에서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김태형
- 2016-09-19
강영은, 「허공 모텔 꽁무니에 바늘귀를 단 가시거미 한 마리, 감나무와 목련나무 사이 모텔 한 채 짓고 있다 저, 모텔에 세 들고 싶다 장수하늘소 같은 사내 하나 끌어들여 꿈 속 집같이 흔들리는 그물 침대 위 내 깊은 잠 풀어놓고 싶다 매일매일 줄타기하는 가시거미처럼 그 사내 걸어 온 길 칭칭 동여맨다면나, 밤마다 그 길 들락거릴 수 있으리 그 사내, 쓰고 온 모자 벗어버리고 신고 온 신발도 벗어던져 돌아갈 길 아주 잃어버린다면사내 닮은 어여쁜 죽음 하나 낳을 수 있으리 그 죽음 자랄 때까지 빵처럼 그 죽음 뜯어먹으며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는 날개 옷 한 벌자을 수 있으리 저, 허공 모텔에 들 수 있다면, 시_ 강영은 - 1956년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났다. 2000년 《미네르바》로 등단했으며, 시예술상, 한국시문학상 수상 및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시집으로 『녹색비단구렁이』, 『최초의 그늘』, 『풀등, 바다의 등』 등이 있다. 낭송_ 권나연_ 배우. 연극 ‘갈매기 2013’, ‘리어왕’ 등에 출연. 배달하며 거미줄로 만든 허공 모텔? 그곳은 기억과 상상력의 공간이다. 집이 아니라 굳이 모텔인 것은 삶의 공간이 아니라 떠돌이 노마드의 공간이기 때문이다.장수하늘소 같은 사내가 시인에게는 어쩌면 시(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속 집같이 흔들리는 그물 침대인 거미줄에는 모기나 날파리나 하루살이 정도가 걸려들기 도 한다. 소나기 지난 후 이슬이 걸리고 이슬 속에 하늘이 영롱하게 걸려있을 때도 가끔 있지만.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 『녹색비단구렁이』(종려나무) ▶ 음악_ guitar SFX 중에서 ▶ 애니메이션_ 송승리▶ 프로듀서_ 김태형
- 2016-09-12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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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시도 좋고, 음악도 좋고, 무엇 하나 빠질 것이 없습니다. 잘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