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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단 한 사람』

  • 작성일 2024-07-25

   이제 목화에게 그분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알 필요가 없다. 우주에 마음이 있는가? 그저 존재할 뿐이다. 목화는 선하면서 악한 사람을, 의롭고도 불의한 이를, 그러므로 완전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동안 목화는 줄곧 나무에게 질문했다. 대답은 없었다. 목화는 나무를 느꼈다. 나무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시를 바랐다. 그 나무는 어디에 있는가?

목화는 나무를 찾으려고 했다. 없애고 싶었다. 나무를 없애면 온전한 자기 의지로 자기만의 삶을 살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무는 정말 나무로서 존재하는가?

목화는 그 나무가 자기 숨통을 쥐었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구할 때도, 구토에 시달릴 때도 자기 수명이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 사람을 구하는 순간에도 나무의 명령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 나무는 대체 무엇인가?

   나무에게 집중할수록 나무의 의미는 비대해졌다. 나무에게 호소할수록 나무의 힘은 강해졌다. 목화의 질문과 호소에 개의치 않고, 고통스러워하거나 안도하거나 상관없이, 악하든 선하든 관심 없이 나무는 영원히 거기 있다. 

   그 나무는 너무나도 오랜 세월 존재했다.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생물이 나타났다가 멸종했고 진화했으나 도살되었다. 돌로 만든 무기로 동물을 사냥하고 무리 지어 이동하며 빠른 소도로 다른 생물을 몰살시키던 인류는 순식간에 핵폭탄과 우주선을 만들었다.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를 학살하고 자연을 파괴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면 과연 인류라는 종을 돕고 싶을까. 살리고 싶을까. 나무가 주는 생명은 은총이 아닐 수도 있다. 삶이라는 고통을 주려는 것인지도. 그러나 삶은 고통이자 환희. 인류가 폭우라면 한 사람은 빗방울, 폭설의 눈송이, 해변의 모래알. 아무도 눈이나 비라고 부르지 않는 단 하나의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것은 금세 마르거나 녹아버린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어쩌면 그저 알려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를 보고 있다고. 생명체라는 전체가 아니라, 인류라는 종이 아니라 오직 너라는 한 존재를 바라보고 있다고. 


   죽음을 바라보는 일을 거부하고 싶었다. 사람을 구하고도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에 피하고 싶었다. 구한 자가 악인 같을 때는 마치 한통속인 것처럼 괴로웠다. 중개 때문에 자기 삶을 온전히 살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 목화를 지배하는 것은 나무였다. 나무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구한 사람들처럼 단 한 명인 목화는, 세상의 모든 사람처럼 오직 단 한 번의 삶을 살아가는 신목화는 임천자의 죽음과 장례를 지켜보며 마침내 운명을 수긍했다. 기꺼이 받아들였다. 목화가 인정하고 받아들인 이상, 온전히 자기 것으로 거둔 이상 이제 그것은 목화의 것이었다. 


   임천자의 단 한 명은 기적. 

   장미수의 단 한 명은 겨우. 

   신목화의 단 한 명은, 단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다. 


   내가 원하는 삶. 

   목화는 생각했다. 

   그건 바로 지금의 삶.

   목화는 원하는 삶 속에 있었다. 다시, 목화는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죽음.

   임천자가 수없이 연습한 것처럼 신목화도 매일 준비하고 싶었다. 멀리서 죽음의 실루엣이 보이고 차차 선명해질 때, 당황하지 않고 의젓하게 그를 맞이할 수 있도록. 마음 깊이 그리워한 친구를 만난 듯 진심 어린 포옹을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럼 육신에 편안한 표정을 남길 수 있겠지. 되살리지 않아도 좋을 죽음 또한 많이 목격했다. 목화는 그들의 마지막을 기억했으며 그와 같은 죽음을 원했다. 그러므로 남김없이 슬퍼할 것이다. 마음껏 그리워할 것이다. 사소한 기쁨을 누릴 것이다. 후회 없이 사랑할 것이다. 그것은 목화가 원하는 삶.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나무처럼 삶과 죽음 또한 나눌 수 없었다.


   최진영, 『단 한 사람』, 한겨레출판, 2023, 231p~233p

소설가 천운영
최진영 소설가의 『단 한 사람』을 배달하며

   집 옆에 감나무가 하나 있어요. 담장과 담장 사이 좁은 공간에, 용케 잘도 살아 남았다 싶을 만큼, 볼품 없이 생긴 나무죠. 감이 많이 열리는 것도 아니어서, 굳이 따 먹자 생각을 안해요. 그래서 감은 오롯이 새들 차지입니다. 해 뜨기 직전에 까마귀가 오고, 까치, 지빠귀, 참새순입니다. 까마귀는 은밀하고 까치들은 시끄럽고 참새들은 겁이 많아요. 지빠귀은 하나가 왔다가 돌아가서 친구들을 끌고 옵니다. 그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배가 불러와요. 그래서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 감나무의 안부를 묻죠. 감꽃이 피고 질 무렵 방제도 하고요. 그러면서 내가 감나무를 보살피고 있다고, 새들을 위하고 있다고 뿌듯해 합니다. 

   이 얼마나 오만방자한 생각인지요.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자만. 인간이 망친 지구의 생태계를 인간의 힘으로 구해낼 수 있으리라는 오만. 누가 누구를 구할 수 있다는 건지, 한없이 부끄러워질 무렵 최진영의 『단 한 사람』은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나무의 명을 받아, 단 한 사람만을 구할 수 있다면, 그 한 사람을 살리는 동안 수많은 죽음을 목도해야 한다면, 당신은 그 명을 받을 수 있겠는가? 인류는 과연 구할 만한 존재인가? 그럼에도 그 일을 기꺼이 하겠다는 마지막 말이 무척이나 뼈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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