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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윤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알마의 숲』

  • 작성일 2024-12-27
  • 조회수 215

   올빼미가 말하길.


   - 정어리를 먹어.

   올빼미가 말했다. 

   - 난 정어리에 대한 글을 쓸 작정이었다. 한 달 내내 정어리만 생각했지. 정어리, 정어리, 정어리, 매일 백 번씩 말했다. 아니, 이백 번은 말했겠군. 정어리통조림이나 정어리를 넣은 샌드위치를 생각하고, 정어리를 가공하는 공장과 정어리를 잡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정어리처럼 생긴 비쩍 마른 남자아이에 대해서도 생각했지.

   - 정어리를요.

   - 그래, 정어리다. 오로지 정어리였지.

   - 그래서 그건 어떤 이야기가 되었나요? 유쾌하고 흥이진진한 이야기? 건조하고 냉정한 이야기?

   - 못 썼다.

   - 왜요?

   - 난 정어리를 본 적이 없거든. 먹어본 적도 없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정어리, 라는 단어에 빠져 있었던 거겠지. 아이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공주나 왕자에 빠져드는 것처럼, 한 번도 보지 못한 마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나는 하필 정어리에 빠졌던 거다. 정어리에 대해 매일 생각했지만 그건 진짜 정어리가 아니었지. 내가 상상해낸, 정어리와는 전혀 다른 무엇이다. 그러니 내가 뭘 쓰더라도 그건 정어리에 대한 글이 아니게 되는 거다.

   -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알마가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 아저씨 때문인가요?

   - 남 탓을 하다니, 정말이지 촌스럽기 짝이 없군.

   - 역시 아저씨 때문이었군요.

   - 됐다. 다시 정어리얘기로 돌아가자. 아니 더럽게 재미없고 지루한 네 얘기로 돌아가지. 너는, 그런 거다. 넌 네가 죽어야 할 만큼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말하지만 정작 네가 경험한 건 아주 짧은 단어 한 개, 순식간에 스쳐지나간 장면 하나에 불과한 거다. 내가 정어리, 라는 단어를 읽고 그것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처럼 너도 어디선가 고통이나 죽음 같은 단어를 보고 거기 동화되기 시작했겠지. 나는 정어리라는 단어밖에 모른다. 정어리에 대한 책을 백 권쯤 쓴다 해도 거기 진짜 정어리는 없지. 너도 마찬가지다. 넌 아직 삶도 죽음도 논할 자격이 없지. 어떤 것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정어리를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내가 정어리가 비리다거나 기름지다거나 담백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너도 네 삶에 대해 한마디도 할 수 없을 거다. 넌 유 서를 쓰지 않은 이유가 네 엄마가 이유를 알지 못해 고통스럽길 바라서였다고 했지? 그건 거짓말이다. 너는 한 줄도 쓸 수 없었을 거다. 네가 왜 죽으려고 하는지, 뭐가 널 그리 힘들에 만드는지 너도 몰랐을 테니까. 그냥 죽어버릴까, 하고 쉽게 결심한 거지. 어린애답게 말이다. 

   - 아저씨도 내가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 너는 그냥, 서툰 거겠지. 어린애들의 특권이다. 멍청하고 성급한 건. 어린애니까 가끔은 그런 식의 엉뚱하고 어리석은 결론을 내기도 하는 거다. 괜찮겠지, 그 정도는. 난 어설프고 서툰 것들이 싫지 않다. 그런 건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채워지거든.

   - 숲에 떨어지는 동물들처럼요?

   - 그래, 멍청한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처럼.

   - 난 멍청하지 않아요.

   - 그래, 어리지. 그것뿐이다. 그러니 돌아가. 돌아가서 제대로 정어리를 먹는 거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남김없이 먹은 뒤에 비리거나 느끼하거나 토할 것 같단 생각이 들면.

   - 들면? 그땐 어떻게 해요?

   - 뱉어. 뱉고 입을 헹궈. 삶이란 건 원래 그런 식으로 살아내는 거거든. 정어리를 먹고, 그게 맛이 없으면 뱉고, 그다음엔 고등어나 고래를 먹는 거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지.

   안보윤, 『알마의 숲』, 은행나무

소설가 천운영
안보윤의 『알마의 숲』을 배달하며

   잠 못 드는 밤. 불현듯 집에서 나와 산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들끓는 마음이 그랬는지, 술기운이었는지, 몇 주째 지속되는 열대야에 머리가 녹아버렸는지. 뭣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뭣에 홀린 듯 갔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깊이 들어가진 못했습니다. 무서웠거든요. 어둠도 무섭고 나무도 무섭고 산짐승도 무섭고 인간은 더 무서웠죠. 그래서 그냥 산 초입에 있는 벤치에 좀 누워 있다 왔습니다. 이상하게 고요했어요. 새는커녕 풀벌레 나뭇잎 흔드는 바람소리 조차 없었죠. 거짓말처럼. 살짝 잠이 든 것도 같고, 요상한 꿈을 꾼 것도 같고. 그러다가 또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죠. 어쩌면 그때 올빼미를 만났을 수도 있어요. 정어리를 먹으라고 말해주는. 먹고 먹다가 질리면 뱉고 입을 헹구고 다른 걸 먹고. 살아내고 살아지고 살게 되는 삶에 대한 이야기. 한밤에 다녀온 그 숲이 꼭 알마의 숲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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