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진영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햇빛 마중』 중 「북극의 여인들」
- 작성일 202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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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느 때처럼 카페 바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내가 아는 얼굴 하나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였더라, 기억을 더듬는 사이 그 사람은 내가 있는 바로 그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울리는 순간, 기억났다. 그녀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시를 썼다. 문구점에서 스프링이 달린 천원짜리 연습장을 사서, 거기에 생각나는 것들을 아무렇게나 적었다. 낙서 같기도, 시 같기도 한 문장들을 가지고 노는 것이 재미있었다. 수학 시간마다 숨기지도 않고 시집을 읽다가 선생님에게 등짝을 맞기도 했다. 수학 선생님은 한번도 누구를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는, 아이들이 우습게 볼 정도로 순한 분이었다. 그런 선생님을 그렇게까지 화나게 했다니. 하지만 수업 시간에까지 시집을 읽었던 건 시를 향한 나의 열정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시 내게 그것 외에는 흥미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국어 과목 숙제로 시를 써 가야 했다. 1학년 7반 담임이자 국어를 가르치던, 바짝 마른 몸에 단 한 번도 치마란 것을 입지 않았던 서른일곱 살 고영숙 선생님은 그날 내가 숙제로 제출한 시를 나도 모르게 도 대회에 출품했다. 그 시는 최우수상을 받았고, 나는 상금으로 MP3 플레이어를 샀다. 그리고 선생님께 드릴 선물로는 동네 빵집에서 파는 7천 원짜리 롤케이크를 샀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인 걸까?
아무튼 그때 내가 쓴 시는 새벽 4시의 밤거리에 관한 시였다. 아무도 없는, 모든 게 정지된 듯한 밤거리에 관한 시였다. 아무도 없는, 모든 게 정지된 듯한 밤거리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들에 관해 적었다. 그녀는 그때 나를 교무실로 불러 ‘너는 앞으로도 계속 시를 쓰는 게 어떠니?’하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저는 그럴 생각이 없는데요, 그냥 심심해서 써본 건데요’하고 대답했다.
순간 그녀의 얼굴에 회한의 기미가 스쳤다. 나도 한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지. 그런 식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로 백일장에 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시인 같은 것은 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연습장에 낙서를 하고 있다.
마흔일곱 살 고영숙 선생님은 쟁반을 들고 잠시 카페 안을 둘러보더니, 내가 한쪽 끝에 앉아 았는 바 자리의 다른 한쪽으로 갔다. 자리에 앉아 머그 컵에 담긴 음료를 한 모금 마신 그녀가 문득 내 쪽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러고는 환하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녀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찻잔을 들고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어떻게 이렇게. 이렇게 정말 오랜만에.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말했다. 가끔 내 생각을 했다고. 가끔 내 이름을 검색해보고, 신간이 나오면 사서 읽었다고. 나는 두 달째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요? 그녀는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오늘 아침 문득 생각이 나서 이곳에 왔다고 했다.
예전에는 휴일도 방학도 너무 짧았는데, 요즘엔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져. 세 시간 가까이 차를 달려 이곳에 왔는데 이제 겨우 점심때라니 이상하지 않니. 쉬는 날이면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시계를 보면 겨우 삼십분도 지나지 않은 거야. 예전에는 하루가 너무 짧았는데. 이상하지 않니. 그녀는 중얼거렸다.
카페를 나서자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했다.
또 눈이 올 건가봐요. 내 말에 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누가 제안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해안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윽고 솔숲이 나타났다.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는지, 어젯밤 내린 눈이 발목 높이로 쌓여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발자국을 만들며 걸었다. 이따금 소나무에서 후드득 하고 눈덩어리가 쏟아졌다.
나는 겨울이 좋아.
왜요?
내가 되묻자 그녀가 말했다.
춥고 추울수록 따뜻한 게 더 잘 느껴지니까.
그녀는 은퇴 후에 북극에 가는 게 꿈이라고 했다.
정말로 정확한 북극은 바다 한가운데 있대. 그곳에서는 스물 네 개의 시간대가 동시에 겹치지 때문에, 시간이라는 것의 의미 자체가 사라져버린다는 거야. 그 지점은 배를 타고서만 갈 수 있다는데, 만약 어느 날 내가 그곳에서 표류한다면 나는 시계를 볼까? 일기를 쓸까? 나이 드는 것을 어떤 속도로 느끼게 될까? 자그마치 6개월 동안 밤이 계속된다는데······ 거기선 별도 보이지 않는다는데······ 쓸쓸할까? 편안할까?
문진영, 「북극의 여인들」, 『햇빛 마중』(마음산책, 2022), pp.97~103
은퇴 후 북극에 가는 게 꿈이라 말하는 여인의 시간을 가늠해 봅니다. 숙제로 제출한 제자의 시를 알아보고 대회에 몰래 출품해 준 국어교사. 어쩌면 시인의 꿈을 품고 살았을 테지만, 그 꿈을 과거완료와 현재진행과 미래 중 어디에 두어야 할지 자신 없어 하는, 서른 일곱 살 여인의 시간. 휴일에 그저 멍하니 소파에 앉아 시간이 왜 이렇게 느리게 가는 걸까 의아해 하는 마흔 일곱 살 여인의 시간. 그녀의 꿈은 이제 시인이 아니라 아주 먼 북극 바다 한가운데 북극점에 있고, 그 꿈의 시점은 아직 한참 남은 은퇴 후. 새벽 세 시의 밤거리를 쓴 십 년 전의 제자와, 시간의 의미가 사라지는 북극점에 가 닿을 이십 년 후의 선생이, 눈길에 나란히 발자국을 만들며 걷고 있습니다. 그 길 위에 새로운 눈이 소복이, 시간을 지우고 공간을 엽니다. 그리하여 한 여인의 아니라 두 여인, 북극의 여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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