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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태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여기는 괜찮아요』 중 「숲으로」

  • 작성일 2025-01-23

   수아는 그 나무를 알아보았다. 마을에서 보자면 대숲 가운데에 꺼멓게 머리를 내놓은 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수아는 그들이 대숲 어디쯤에 와 있는지 가늠이 되었다. 바람 많이 타던 오른편 능선 중턱이었다. 할머니가 손전등을 왼편으로 돌렸을 때 재우리만한 빈터가 나타났다. 수아는 봉긋한 흙더미를 보았고 이내 그것이 묘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 않아도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잔뜩 긴장해 있던 수아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풀 한오라기 없는 묘지는 무덤이라기보다 정말 흙무더기 같았다. 할머니는 묘지 앞에다가 짚을 깔고 음식을 차렸다. 숙모에게 종지를 건네 술을 따르게 해서는 무덤 이쪽저쪽에 나누어 뿌렸다. 절도 없는 성묘는 금세 끝나고 이내 셋은 돌아섰다. 수아는 숙모에게 누구 무덤이냐고 숨죽여 물었다. 숙모는 강씨 할아버지 묘라고 말해주었는데 수아는 그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기억에 없었다. 

   수아는 그 무덤의 내력을 집안 여자 어른들에게서 들었다. 여러 밤 제삿날의 부엌 담화를, 조각난 파편들을 꿰어 짐작하게 된 사연이었다. 증조할머니가 과부로 살다가 떠돌이 계절노동자를 만나 새살림을 차렸는데 그 할아버지는 성실하고 의붓자식들도 잘 돌보았다. 그가 혈육도 남기지 않고 늙어 죽자 의붓자식들이 장례를 치러줬다. 선산에는 못 가고 앞산에다가 묻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 묘지는 남부끄러운 묘지가 되었다. 그래서 문중에서 묘지 주변에 대나무를 심었다. 온 산이 대숲이 되는 데는 십년도 걸리지 않았다. 

   수아는 그 이야기가 기묘하고 아름다웠다. 대숲이 조성된 사연이 기묘하고, 할머니들의 야행은 아름다웠다. 묘지 가에 대나무를 심은 집안 남자들의 용렬한 행태보다도 여자들이 밤길로 다닌 성묘가 인간적으로 보였고, 성인이 되어서는 관습에 대한 저항으로도 여겨져 마음으로 아끼게 되었다. 

   그 성묘가 얼마나 더 지속되었는지는 모른다. 수아는 어른들이 음식을 해서 대숲에 드는 걸 그 뒤로 목격하지 못했다. 금이가 재혼하고 몇 해 있다가 큰집 부엌에 발을 들이게 되고, 수아는 마치 교대하듯이 부엌에서 물러났다. 어린 딸들까지 부엌에 넣는다고 금이가 싫어했다. 아마 성묘는 집안 할머니들이 살아 있을 때까지 지속되지 않았을까? 큰어머니나 숙모들도 얼마간 성묘를 다녔을지 모른다. 이제 부엌의 여자 어른들이 대부분 세상을 등졌고 도회지로 나간 어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일전에 대밭 매매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강씨 할아버지의 묘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궁금해서 금이에게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처음 듣는 소리처럼 반응했다. 그러면서 금이는 도둑 제사가 동티를 피하려는 이 집 여자들의 욕심이 한 짓거리라고 혀를 찼다. 남자들보다 더 악랄하다고, 금이는 차갑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수아는 놀랐다. 모든 제사라는 게 산 자들의 발원에서 비롯한 행위이기도 하므로 그 일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금이가 보인 적의가 전에 없던 거라 당혹스러웠다. 

   뒤미처 수아는 재취로 들어온 금이의 피해의식이라든가 섭섭한 마음 같은 걸 새삼 헤아려보게 되었다. 수아로서는 살아오면서 의식하지 못하고 지낸 일이었다. 금이는 수아에게 그냥 엄마였다. 생모는 기억에도 없고 그리운 적도 없다. 물론 집안사람들이, 아버지를 포함해 다른 가족들이 어떻게 대했는지, 금이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수아 입장에서는 금이가 저에게 혹여 섭섭한 마음이라도 품었다면 속상했다. 물론 조심스러워 묻지 못한 얘기도 있다. 어린 나이에 낳아서 남자 집에 앗겼다는 아들. 최근에야 더러 아들을 만나기도 하는 눈치지만 금이가 무슨 말을 비치지 않는 이상 알은체할 수 없었다.

   언제 한번은 수아가 동네 언니들을 따라 갯벌로 가서 바지락을 캐 온 일이 있었다. 길이 멀어서 다저녁때 돌아왔는데 금이는 양동이를 들여다보며 대견해했다. 

   “오매, 조막만 한 손으로 많이도 주워왔네. 여문 것 좀 봐라.”

   “줍는 게 아니라 캐는 거여.”

   수아가 말했다. 

   “그랴? 그 진 데서 이걸 다 캤어? 장하다. 난 산골에서 자라서 갯것은 못 해 보고 자랐어야. 이걸로 낼은 술국을 내놔야 쓰겄다.”

   금이는 싱글벙글했다. 그제야 수아는 금이가 술을 마신 걸 알았다. 눈자위가 불콰했다. 금이가 술청에서 손님과 대작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래도 금이가 기분이 좋아 보여 수아는 괜찮았다. 금이는 일찍 가게 문을 닫았다. 바지락도 씻고 펄 묻은 옷도 빨자고 금이는 수아를 앞세우고 우물로 내려갔다. 수아는 대장간 할머니가 은근히 걱정되었다. 금이에게 이야기했더니 걱정 말라고, 쥐 죽은 듯이 씻고 오자고 했다. 동굴 같은 그 우물에 두레박을 던지고 서너번은 줄을 채서 물을 긷는데 소리 없이 해낼 재간은 없었다. 어김없이 울타리 너머에서 욕설이 넘어왔다.

   “뉘 집 년이여? 뉘 집 년이 해 떨어진 샘에서 나대는 거여, 부정 타게!”

   금이와 수아는 우물가에 납작 쪼그렸다. 

   “뭔 팔자를 씐 년이길래 그래 밤에 샘에 기어드냐고. 아나, 복쪼가리 좋겄다! 자손이 잘되겄어! 천지분간을 하고 살아야제 미친년 소리를 안 듣제.”

   어둠 속 낮은 자리에서 금이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그러더니 금이는 흐느껴 울었다. 금이는 곧 우물 바닥에 퍼더버리고 앉아 목을 놓아버렸는데 수아는 두레박 끈을 잡고 어쩔 줄 몰랐다. 울타리 너머도 조용해지고, 그 집 며느리가 노인을 몰아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 나서 이내 금이도 잠잠해졌다. 금이는 치마를 툴툴 털고 치맛자락을 끌어서 눈구석을 훔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수아에게 그만 올라가자고 말했다. 

   수아는 이제 와 그 밤을 생각해 낸 게 무람하다. 노인이 눈물꼭지를 따준 탓에 실컷 울어버린 금이. 금이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는 걸 잊고 살았다. 묻지 못한 것. 말하지 못한 게 많은데 금이가 그냥 엄마였다고 할 수 있을까.


   전성태, 『여기는 괜찮아요』 중 「숲으로」(창비, 2024), pp.57~62

소설가 천운영
전성태의 『여기는 괜찮아요』를 배달하며

   어느 하나를 고르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단편집 『여기는 괜찮아요』를 읽으면서 책장 귀퉁이를 여럿 접었거든요. 마음이 쿵 내려앉는 장면들. 마음을 헤아려보고 싶은 인물들. 마음이 쓰여서 마음을 다해 마음에 가닿고 싶은 마음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줄줄이 딸려 나와요. 감자 덩굴이 쑥 뽑혀 나온 것처럼. 

   접은 책장을 다시 펴며 문장을 새겨보았어요. 이것은 흙의 상상력, 대지의 상상력이구나. 보듬고 키우고 순환하고 소생하는 힘. 그 힘으로 길을 내고 있구나. 그 길에 깡통을 가방에 담아 가는 소년이, 유골함을 번갈아 안으며 온기를 느끼는 자매들이 있어요. 

   길의 서정이라 해볼까요? 이제 눈을 감고 그려봅니다. 어느 은밀한 야행을. 한밤중에 대숲을 지나 무덤을 찾아가는 여인들을. 정종병을 가슴에 안고 엉겁결에 따라나선 어린 여자이를. 그 길 끝에 기묘하고 아름다운 무덤의 이야기가 있죠. 여기는 괜찮아요, 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이야기들. 거기는 괜찮지요? 묻고 싶어지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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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장지기
  • 202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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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장지기
  • 202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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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으면 하루도 못 견뎠을 것 같은데······ 털 달린 짐승이라면 질색이니까. 벼룩까지 있는 개라면 더 싫고 저 깡통 로봇은 한눈에 봐도 수명이 다 됐다.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건 친근한 관계 속에 편안히 붙박여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것. 나아가 하나의 육체에 고정되어 형식이 통일되는 것이다. 다시 몸을 갖춰서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고?” 내 소망을 들은 마야가 의아스러운 듯이 되묻는다. “너는 줄곧 혼자 지냈고 지금은 몸도 사라져 사념체 같은 상태인데. 그런 채로도 지구에 가보고 싶다고? 그러기 위해서 내 도움이 필요하고?” “그래.” ‘도움’이라는 말에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왜냐면 그게 우리 DNA에 새겨진 최종 명령이니까. 지구로 귀환하는 건 눈먼 동물의 본능 같은 거야.” 너무 대놓고 털어놓은 것 같아서 나는 좀 더 길게 덧붙였다. “게다가 지금은 분열 중인 세포처럼 불안정한 상태야. 줄곧 안정화의 방법을 찾았지만 요원했지. 난 시간을 접었다 폈다 하는 것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어. 시간의 바느질을 터득했기 때문인데 먼 거리를 이동하다 보면 저절로 얻게 되는 능력이지. 내가 죽인 사람들, 그건 사실 죽인 게 아냐. 만화경을 돌려 패턴을 바꿔놓은 거지. 라포르투나호를 타고 온 사람들은 어차피 지구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서 죽을 운명이야. 난 그들의 미래에 잔인한 이미지만 살짝 덧씌운 것이고. 네 친구들이 돌처럼 굳어 있는 것도 잠깐 시간을 정지 시켜놔서 그래. 똥을 바르던 남자는 지금쯤 악몽에서 깨어났을 거야.” “갑자기 왜 솔직해지는 건데?” “난 너무 약해서 이제는 기생물이 되는 도리밖에 없어. 네가 내 피난처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어.” “라이카는 벼룩을 네 마리 키워. 하지만 난 굳이······” “난 벼룩이 아냐! 네가 지구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내 도움이 필요할 거야.” “내가 왜 지구로 돌아가야 해? 여긴 가족과 친구가 있어. 키나 말을 들어보면 지구는 아주 형편없는 곳이던데 거길 뭐 하러 가?” 저 순진한 표정을 보니 잘만 구워삶으면 내 숙주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면 너도 나처럼 여행자니까.” 네가 아는 모든 존재는 여행자고 너 또한 또 다른 세계와 모험을 갈망하게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네 몸에도 나와 같은 유랑 벽이 있을 거라고 덧붙이면서. “라이카는 열 살이 되기 전에 실험견으로 뽑혀 우주로 보내졌어. 데이모스는 지구에서 화성으로, 화성에서 위성으로, 위성에서 다시 화성으로

  • 문장지기
  • 202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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