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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숙 배우의 목소리로 듣는 김숨 소설가의 「벌」

  • 작성일 2024-06-27

   봄을 세 번 나는 동안 벌통들에서 차례로 벌들이 부활했다. 벌들로 들끓는 벌통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죽은 아버지가 되살아난 것만 같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온갖 여름 꽃들이 피어날 때,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마씨는 벌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벌통을 흰 모기장으로 감싸고 지게에 져 날랐다. 마씨의 뒤를 따르는 내 손에는 해숙이 싸준 김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깊이 드는 것 같아 주저하는 내게 그가 재촉했다. 

   “꽃밭을 찾아가는 거야. 조금 더 가면 꽃밭이 있지.”

   정말로 조금 더 가자 꽃이 지천이었다. 토끼풀, 개망초꽃, 어성초꽃, 싸리나무꽃··· 홍자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싸리 나무 아래에 그는 벌통을 부렸다. 

   벌통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씨와 내가 알몸으로 나뒹구는 동안 벌들은 꿀을  따 날랐다. 고슴도치 같은 그의 머리 위로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나는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 

   “당신 아내가 그러데, 나비를 기르면 좋을 거라고. 나는 나비가 벌보다 무서워. 우리 할머니가 나비 때문에 눈이 멀었거든. 도라지밭을 날아다니던 흰나비의 날개에서 떨어진 인분이 눈에 들어가서···”

   “해숙은 착한 여자야.”

   “착한 여자는 세상에 저 벌들만큼 널렸어!”

   “널렸지만 착한 여자와 사는 남자는 드물지.”


   여름내 마씨와 내가 벌통을 들고 산속을 헤매는 동안 해숙은 아들과 집을 보았다. 우리가 돌아오면 그녀는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려내왔다. 먹성이 좋은 마씨를 위해 그녀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잔뜩 넣고 찌개를 끓였다. 그녀에게 나는 산속에 꽃밭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이.

   “우리도 데려가면 안 돼?”

   그녀는 꽃밭을 보고 싶어 했다. 

   “꽃밭까지 가는 길이 험해서 안 돼. 가는 길에 무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무덤들 중에는 내 아버지 무덤도 있지.”

   “근데 읍내 정육점 여자가 내게 묻더라.”

   “뭘?”

   “사내 하나에 계집 둘이 어떻게 붙어사느냐고.”

   “미친년!”

   “정말 미친년이야. 내가 살코기하고 비계하고 반반씩 섞어 달라고 했는데, 순 비계로만 줬지 뭐야.”

   눈치챘던 걸까. 아니면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날도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해숙이 우리를 몰래 뒤따르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해숙은 산벚나무 뒤에 숨어 마씨와 내가 토끼풀밭 위에서 알몸으로 나뒹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은 마당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부엌 도마 위에는 해숙이 정육점에서 끊어온 돼지고기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돼지고기에서 흐른 핏물에는 파리들이 들끓었다. 

   엿새 뒤 해숙은 아버지의 산자락에 자리한 저수지에서 떠올랐다. 외지 낚시꾼들이 그녀를 발견하고 그물로 건져올렸다고 했다. 마씨는 해숙을 화장해 꽃밭에 뿌려주었다. 

   죽은 아버지가 남기고 간 산을 두고 오빠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 것은 그즈음이었다. 서울 가락시장에서 과일도매업을 하는 큰오빠가 장남의 권한으로 산을 팔려고 하자 작은 오빠들은 서로 산을 차지하기 위해 소송을 벌였다. 한 덩어리이던 산을 갈기갈기 찢어 각자 오천 평씩 나누어 가지면서 딸인 내게는 단 한 평도 주지 않았다. 오빠들은 오히려 유부남이던 마씨와 놀아나 죽은 아버지를 욕보였다며 나를 비난했다. 

   마씨는 벌통들과 아들과 나를 트럭에 태우고 도망치듯 내 죽은 아버지의 집을 떠났다. 

푸른빛이 감돌던 새벽의 고속도로 위에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거야?”

   “꽃밭을 찾아가는 거야.”


   김숨, 「벌」,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문학동네, 2017, 148p-151p

소설가 천운영
김숨 소설가의 「벌」을 배달하며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시대인가요. 인간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동물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만큼 가능한 일일까요? 그럼 동물이 되어보자, 모험을 감행한 이도 있다더군요. 맨몸으로 자연에 뛰어들어 오소리처럼 냄새를 맡고 수달처럼 물고기사냥을 하고 한겨울에 사슴과 함께 서 있어도 보고. 그렇게 지렁이 맛을 보며 굶어 죽을 뻔 얼어 죽을 뻔하면서 알게 된 것은? 이 세상이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다운지. 지구상에 인간 외의 다른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어떤 위안이 되는지. 그리하여 그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보고 싶었다 합니다. 

   그렇다면 김숨 작가 식으로 동물이 되어본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쥐가 되고 염소가 되고 자라와 벌이 된다는 것은. 너른 들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염소를 떠올리지 마세요. 해부대 위에서 염소 해부는 처음인 학생들에 둘러싸여 심장은 누가 꺼내나 췌장은 누가 꺼내나 의논하는 소리를 듣고 있을 테니까요. 꽃가루를 몸에 묻히고 달콤한 꿀을 빠는 꿀벌이 되어볼 수는 없을 겁니다. 여왕벌의 삶을 떠올리지 말고 여왕벌의 죽음을 상상해 보세요. 섬뜩하게 아름다운 꽃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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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17
김성중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화성의 아이』

나 같으면 하루도 못 견뎠을 것 같은데······ 털 달린 짐승이라면 질색이니까. 벼룩까지 있는 개라면 더 싫고 저 깡통 로봇은 한눈에 봐도 수명이 다 됐다.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건 친근한 관계 속에 편안히 붙박여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것. 나아가 하나의 육체에 고정되어 형식이 통일되는 것이다. 다시 몸을 갖춰서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고?” 내 소망을 들은 마야가 의아스러운 듯이 되묻는다. “너는 줄곧 혼자 지냈고 지금은 몸도 사라져 사념체 같은 상태인데. 그런 채로도 지구에 가보고 싶다고? 그러기 위해서 내 도움이 필요하고?” “그래.” ‘도움’이라는 말에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왜냐면 그게 우리 DNA에 새겨진 최종 명령이니까. 지구로 귀환하는 건 눈먼 동물의 본능 같은 거야.” 너무 대놓고 털어놓은 것 같아서 나는 좀 더 길게 덧붙였다. “게다가 지금은 분열 중인 세포처럼 불안정한 상태야. 줄곧 안정화의 방법을 찾았지만 요원했지. 난 시간을 접었다 폈다 하는 것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어. 시간의 바느질을 터득했기 때문인데 먼 거리를 이동하다 보면 저절로 얻게 되는 능력이지. 내가 죽인 사람들, 그건 사실 죽인 게 아냐. 만화경을 돌려 패턴을 바꿔놓은 거지. 라포르투나호를 타고 온 사람들은 어차피 지구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서 죽을 운명이야. 난 그들의 미래에 잔인한 이미지만 살짝 덧씌운 것이고. 네 친구들이 돌처럼 굳어 있는 것도 잠깐 시간을 정지 시켜놔서 그래. 똥을 바르던 남자는 지금쯤 악몽에서 깨어났을 거야.” “갑자기 왜 솔직해지는 건데?” “난 너무 약해서 이제는 기생물이 되는 도리밖에 없어. 네가 내 피난처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어.” “라이카는 벼룩을 네 마리 키워. 하지만 난 굳이······” “난 벼룩이 아냐! 네가 지구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내 도움이 필요할 거야.” “내가 왜 지구로 돌아가야 해? 여긴 가족과 친구가 있어. 키나 말을 들어보면 지구는 아주 형편없는 곳이던데 거길 뭐 하러 가?” 저 순진한 표정을 보니 잘만 구워삶으면 내 숙주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면 너도 나처럼 여행자니까.” 네가 아는 모든 존재는 여행자고 너 또한 또 다른 세계와 모험을 갈망하게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네 몸에도 나와 같은 유랑 벽이 있을 거라고 덧붙이면서. “라이카는 열 살이 되기 전에 실험견으로 뽑혀 우주로 보내졌어. 데이모스는 지구에서 화성으로, 화성에서 위성으로, 위성에서 다시 화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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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흑토끼
    최고에요

    김숨 작가의 작품 - ‘벌’ 문장도 좋았지만 천운영 작가의 생태적 스펙트럼이 넓은 전하는 말도 강렬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으로 배달될 문장도 기대하겠습니다.

    • 2024-06-29 15:33:22
    흑토끼
    최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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