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비평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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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민 문학평론
계간 파란 2025년 봄호(제36호)
위무의 두 가지 방식
겨울을 지나고 봄을 맞이할 때 반가움보다 피로가 앞서는 것은 지난 계절이 지나치게 소란했기 때문일까. 이별 뒤에는 긴 피곤함이 있다는 돌아간 철학자의 말1)을 곱씹는다. 시절의 시곗바늘에 정확히 때맞추어 걸음을 옮길 수 없을 때 환절기는 더욱 길어진다. 이것도 하나의 사태라면 사태다. 사건이 아니다. 한계는 아직 임박하지 않았다. 그런 탓에 피로는 늘상 ...
이찬 문학평론
계간 파란 2025년 봄호(제36호)
천의 얼굴로 일렁이는 “정든 유곽”의 빛다발 ― 이성복 『서시』
천의 얼굴로 일렁이는 “정든 유곽”의 빛다발 - 이성복의 「서시」 읽기 1 스물 언저리를 청춘의 열꽃으로 신음했던 사람이라면, 이성복 시집 『남해 금산』이 괴로움과 깨달음이 겹쳐 울리는 “물결무늬 자국”으로 번득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단번에 알아챌 수 있으리라.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오래 고통 받는 사람은」, 『남해 금산』)가 ...
정원 문학평론
계간 파란 2024년 여름호(제33호)
그럼에도, 다시 한번, 야생으로
1. '너'가 존재하는 한 '나'는 단속된다. 너는 나의 복장을 단속하고, 도덕성을 단속한다. 그리고 표정과 감정을 단속한다. 아니, 사실 너는 나를 단속하지 않는다. 다만 '너'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의 불안과 내면의 유약함이 '나'를 단속한다. '너'의 시선 속에 사로잡혀 출현한 '나'는 그 시선에 대상화된다. 곧 자기 고유의 절대적인 자유는 균열을 ...
황유지 문학평론
계간 파란 2024년 여름호(제33호)
어차피 비극인 세계를 걸어가는 몇 가지 방식 ― 이지아, 『아기 늑대와 걸어가기』, 민음사, 2023
1. 서사시의 방식: 비루한 운명과 이야기 일찍이 그리스인들은 삶이 잔혹하고 무상하며 어두컴컴한 것임을 알았다. 고통에 대한 예민한 감각으로 삶의 냉혹함을 염세적으로 받아들인 이들은, 비극을 통해 염세주의와 대결하기로 한다. 삶의 비통을 극으로 올려 기어이 마주함으로써 필연적 간극의 삶을 총체성으로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1) 당연하게도 예술의 형식...
최다영 문학평론
계간 파란 2024년 봄호(제32호)
믿음의 내용을 인식하는 시 ― 박영기 시집 『흰 것』(파란, 2023)
줄리엣 아이비의 「we’re all eating each other」은 모두가 결국엔 죽어서 꽃의 일부가 되고, 후손들이 그 꿀을 모닝티에 넣어 마실 것이므로 결국 우리는 서로를 먹게 된다는, 생과 사의 타당한 순환에 관한 노래이다. 박영기의 시집 『흰 것』 또한 죽음의 장면에 오래 시선을 두고 있지만, 이는 다시 생으로 돌아가는 어떤 원리에 대한 사유로 ...
최가은 문학평론
계간 파란 2024년 여름호(제33호)
‘묘’가 뛰어다닌다
문학이, 시가 우리를 어딘가 이상한 세계로 이끄는 것은 흔한 일이다. 시를 읽는 독자는 그 특별한 안내를 유난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세계의 낯섦에 그토록 흔쾌히 몸을 맡길 수 있는 것은 그의 강한 의지 때문만은 아니다. 어떤 시들은 시를 향한 우리 자신의 열린 자세를 직접 추동한다. 말하자면 이때 우리의 적극적 열림의...
박동억 문학평론
계간 파란 2024년 봄호(제32호)
북방의 시인, 곽효환 ─ 곽효환 시집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문학과지성사, 2023)
떠나간 이는 어떻게 기억되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간직하려는 의지 속에서 기억은 증언이 된다. 그러나 증언은 불완전한 회상이다. 죽은 자의 얼굴과 목소리는 어렴풋하게 우리의 입술을 맴돈다. 현상적으로 죽은 이는 불투명한 것, 유령으로서만 회상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증언은 불평등한 대화의 입안이기도 하다. 증언하는 자는 그저 수동적으로 죽은 이와의 추억을...
이찬 문학평론
계간 파란 2024년 겨울호(제35호)
1961년 5월 16일: ‘樂夫天命’을 위한 ‘공-실존’의 몸부림 ― 도연명으로 김수영 읽기
1 김수영을 대상으로 삼았던 몇몇 문헌들에서 한결같이 강조해왔던 것처럼, 그의 “신귀거래(新歸去來)” 연작은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와 접맥된 상호 유비(類比)의 맥락 속에서 읽어야만 한다. 그것의 예술적 특이점과 시인의 문학사적 위상이 수미일관한 차원에서 낱낱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양자의 촘촘한 대비를 통해서만 그가 일찌감...
이찬 문학평론
계간 파란 2024년 가을호(제34호)
“길은, 가면 뒤에 있다.” ―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텍스트와 침묵” 읽기
1 황지우의 시집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1985)는 오래전 한 비평가가 갈피 지었던 ‘세 계열의 시인’을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그러나 이 시집이 북돋는 감응의 불꽃은, ‘일상적인 삶에 매몰된 자아를 노래하는 것’, ‘과장이 적절한 지적인 통제를 받아 야유・통제・유머로 변용되어 나타난 경우’, ‘짙은 서정성의 계열로 그의 서정성은 감각적인 ...
이찬 문학평론
계간 파란 2024년 여름호(제33호)
“지평선”의 아름다움 ― 『中庸』으로 김수영 읽기
“양극의 긴장”과 “대극”의 사유 김수영 시론의 중핵을 구성하는 「시여, 침을 뱉어라」의 “양극의 긴장”이나 「<죽음과 사랑>의 대극은 시의 본수(本髓)」에서 등장하는 “대극”이란 말은 ‘중’(中和, 中庸, 中正, 中道, 時中, 得中, 中孚)의 사유와 세계관이 그의 텍스트 전체를 가로지르는 핵심 단자(單子)임을 시사한다. 서로 맞수를 이루는 것들끼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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