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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억 문학평론

월간 현대문학 2025년 7월호(제847호)

시간의 분유(分有) ― 문학적 시간이란 무엇인가 4

1. 나누어 가진 시간 이렇게 정리해 보자. 시간은 능력이다. 시간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능력이다. 끝없이 변화할 뿐인 물리적 우주 속에서 사람이 세계의 유의미함을 추궁할 때, 비로소 내면의 시간은 흐르기 시작한다. 이와 맞물려 흥미롭게도 사람은 죽음을 확신한다. 사람은 세상의 물질적 순환에 순응하는 대신 죽기를 두려워한다. 내면의 절망과 신체적 고...

함윤이 소설

격월간 악스트 2025년 7월/8월호(제61호)

소설 또는 그림자 반죽 ― 이연숙『아빠소설』(위즈덤하우스, 2025)

내게 벌어진 일, 내가 겪은 일, 내가 통과한 일…… 어떻게 표현해도 좋다. 그게 무엇이든, 삶에서 직접 경험한 일을 활자로 옮기는 일에는 분명 어떤 의미가 있다. 그 행위를 직접 체험한 이라면 해당 명제 자체를 부정하긴 어려울 테다. 삶의 한 부분을 글로 쓰는 순간, 쓰는 주체에게 벌어지는 ‘현상’은 그토록 선명하다. 하나 이 현상의 정체가 무엇이며 우리...

조예은 소설

격월간 릿터 2025년 6월-7월호(제54호)

당연하다고 믿었던 모든 것 ― 『고독한 용의자』

추리소설을 즐기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범행의 수법과 실현 가능성을 정밀하게 따지는 사람과 그런 건 알 바 아니고 왜 사건이 일어났는지 동기에 연연하는 사람.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물론 그 모두를 종합적으로 즐길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추리소설’ 독자겠지만……. 나의 경우는 명백하게 후자다. 동생과 투니버스에서 주말 밤마다 「소년탐정...

황유지 문학평론

월간 현대문학 2025년 8월호(제848호)

말이 달리는 방향

사회가 충분한 대화를 연습할 겨를 없이 월드 와이드 웹 체제로 진입한 것은 어쩌면 재앙이 아닐까. 표현의 자유와 의사 개진의 평등이 얼굴을 가린 채로 재빠르게 닮은 꼴을 찾아 커뮤니티란 이름으로 뭉칠 수 있는 곳은 기어이 ‘다크’한 것을 필연적 찌꺼기처럼 만들어낸다. 특정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만 접근이 가능한 인터넷 통신망을 의미하는 다크 웹은 마약 거래...

황유지 문학평론

월간 현대문학 2025년 6월호(제846호)

비좁게 버티며 잇기 - 읽기

아무래도 삶은 고통에 가까운 걸까? ‘잘 먹고 잘살자’는 슬로건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쪽으로 옮겨가다가 아주 보통의 하루를 소명으로 살라 한다. 결코 그것을 초과하지 말라는 듯 점차 쪼그라드는 소망의 크기는 퍽 현실적이라 그건 또 트랜드라 명명된다. 노동의 자리는 차츰 더 쪼개진다. 비정규, 비전임, 하청, 임시, 기간제와 같은 용어를 앞세운 계약의 ...

공현진 소설

격월간 악스트 2025년 7월/8월(제61호)

참을 수 없는 가려움 ― 김남숙, 「보통의 경우」(『파주』, 자음과모음, 2024)

피부로 와닿는다는 말이 이렇게 들어맞는 소설이 있을까. 소설 「보통의 경우」를 읽는 내내 머리가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아니, 간지러움을 넘어 두피를 박박 긁고 싶다가, 자칫 너무 긁어대서 피가 날까 봐 두렵고 서늘한 기분이었다. 어느 정도는 이미 긁고 있는 것도 같은, 그러니까, 소설을 읽는 내내 생생하게 깨어나는 몸이 있었다. 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소...

공현진 소설

격월간 악스트 2025년 5월/6월(제60호)

포기를 받아들이는 순간 ― 김지연, 「포기」(『조금 망한 사랑』, 문학동네, 2024)

내가 지금껏 포기한 것들, 포기할 수밖에 없던 것들, 포기한 줄도 모르고 포기에 이르렀던 것들……을 헤아리면 지면을 넉넉히 채울 것이고, 눈물이 앞을 가릴 듯하다. 이 글을 막 적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구구절절하게) 무얼 포기했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 라고 생각했는데 쓰다 보니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무얼 포기했는지도 모르고 ...

심진경 문학평론

격월간 릿터 2025년 8월-9월호(제55호)

구구(求球)하고 구구(懼救)하고 구구(區區)한 세계 - 『혼모노』

성해나는 소설이라는 무대를 넓게 쓰는 작가다. 이는 성해나 소설이 특정 세대나 지역, 젠더, 계층을 중심으로 씌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혼모노』(창비, 2025)에 실린 작품 속 공간과 인물만 보더라도 그렇다. 입주민만을 위한 갤러리와 미슐랭 레스토랑이 갖춰진 최고급 아파트에서부터 극우 집회가 열리는 광화문 광장, 무당이 신령을 모셔놓는 신당, 치앙마이의...

김나영 문학평론

월간 현대문학 2025년 5월호(제845호)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소설의 상상력 ― 조해진, 『우리 세희』

그럼에도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하다. 그럴 때 내가 떠올리는 것은 슈테판 츠바이크, 파울 첼란, 장 아메리, 프리모 레비 같은 ‘디아스포라 지식인 선배’들이다. 그 ‘선배’들은 하나같이 인간성이 지닌 외면하고 싶은 추악함과, 그럼에도 희미하게 빛나는 숭고함에 관한 깊은 고찰을 남기고는 스스로 삶을 저버렸다. 나는 ‘디아스포라’라는 존재를 정의할...

전철희 문학평론

계간 문학인 2025년 여름호(제18호)

아마도 2020년대의 가장 자주적인 평론집 ―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창비, 2024)

내 박사논문의 주제는 1970년대 민족문학이다. 내가 논문 주제를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군부독재 시절 민족문학은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때는 사회문제에 관심 있는 지식인들이 민족문학에 관심을 보이고 문학인들 자신도 진보적 사회운동에 앞장서던 시절이었다. 만약 앞의 두 문장이 옳다면 민족문학에 대한 복기는 문학사 서술에 기여할 뿐 아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