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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 소설

격월간 릿터 2025년 6월-7월호(제54호)

당연하다고 믿었던 모든 것 ― 『고독한 용의자』

추리소설을 즐기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범행의 수법과 실현 가능성을 정밀하게 따지는 사람과 그런 건 알 바 아니고 왜 사건이 일어났는지 동기에 연연하는 사람.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물론 그 모두를 종합적으로 즐길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추리소설’ 독자겠지만……. 나의 경우는 명백하게 후자다. 동생과 투니버스에서 주말 밤마다 「소년탐정...

황유지 문학평론

월간 현대문학 2025년 8월호(제848호)

말이 달리는 방향

사회가 충분한 대화를 연습할 겨를 없이 월드 와이드 웹 체제로 진입한 것은 어쩌면 재앙이 아닐까. 표현의 자유와 의사 개진의 평등이 얼굴을 가린 채로 재빠르게 닮은 꼴을 찾아 커뮤니티란 이름으로 뭉칠 수 있는 곳은 기어이 ‘다크’한 것을 필연적 찌꺼기처럼 만들어낸다. 특정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만 접근이 가능한 인터넷 통신망을 의미하는 다크 웹은 마약 거래...

박다솜 문학평론

월간 현대시 2025년 12월호(제432호)

말미잘 하는 몸

김혜순의 신작 시집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난다, 2025)를 손에 쥔 독자라면, 모종의 물리적 비약을 감행해 책의 마지막에 실린 ‘김혜순의 편지’를 가장 먼저 읽어야 한다. 그 편지는 시인 김혜순이 우리 독자들에게 보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동안 고통 속에서 시를 써왔는데, 이번 시집에 묶인 시들은 이전과는 달리 웃으며 썼다고 고백한다. 『...

하혁진 문학평론

계간 창작과비평 2025년 여름호(제208호)

말을 잃은 아버지들 ― 이미상, 성혜령, 예소연의 소설을 중심으로

1985, 2005, 그리고 2025  여기, 두 명의 아비가 있다. 첫 번째 아비는 허수아비를 만들고 있다. 낡고 녹슨 재료로 고작 허수아비를 만들면서도 그 태도는 사뭇 진지하다. 아비는 자신이 만든 "넝마들"을 향해 준엄하게 명령한다. "황산벌에 계백 장군 임하시듯 / 늠름하게 쫓아뿌라, 잉". 그러나 허수아비를 만드는 아비는 정작 자신이 허수아비라는...

최진석 문학평론

월간 현대시 2025년 9월호(제429호)

요절의 윤리와 미학 ― 차도하와 김희준, 죽음에 대한 시적 태도로부터

1. 죽음, 시간의 부재와 매혹 우리는 모두 죽는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재산과 신분에 상관없이, 이상과 신념이 어떤 것이든, 누구나 결국 죽는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기에 논쟁할 필요조차 없다. 자연의 사실로서 죽음은 늦거나 빠르거나,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닥치는 필연적인 운명이다.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죽음은 항상 사고다. 동시에 죽...

최진석 문학평론

계간 파란 2025년 여름호(제37호)

간-절기, 밤을 불러내는 주문의 시간 ― 2025년 봄, 환절의 시편들

1. 밤의 주문 간절기(間節期). 계절과 계절 사이의 이행기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를 지칭하기에 환절기라고도 부르며, 매운 더위의 여름과 날 선 추위의 겨울로 넘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여유로운 시절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봄가을이 점점 짧아지다 못해 거의 사라지고 여름과 겨울만 남아버린 요즈음, 예전과 같이 계절 사이를 지나는...

전기화 문학평론

계간 창작과비평 2025년 여름호(제208호)

미래를 짓는 애도의 서사

작년 세월호참사 희생자 10주기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세월: 라이프 고즈 온」(장민경 연출)은 참사 유가족 유경근씨를 좇아가는 가운데, 그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출연한 다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함께 품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중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와의 대화에서 인상적인 문답이 등장한다. “진짜 세월이 약인가요?”라고 묻는 유경근씨의...

임지훈 문학평론

계간 청색종이 2025년 여름호(제16호)

세상의 모든 추한 것들에게 바치는 헌사

생각해보면 한때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은 모두 ‘나’ 아닌 것들이었다. 타오르듯 싱그럽던 나무의 잎사귀 같은 것들이나 그 아래의 무수한 기척 같은 것들, 땡볕 아래 타오르듯 일렁이듯 작은 돌멩이나 창틀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 같은 것들, 혹은 녹아내리는 시간 속에 서 있던 한 사람까지. 우리가 진정 사랑했던 그 모든 것들은 나와 닮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다르...

민가경 문학평론

계간 포지션 2025년 여름호(제50호)

밀폐된 투명, 시간의 연금술 ― 최하연 시집

유리의 원재료는 모래이다. 유리는 모래로 만들어지고, 유리는 깨어질 때 다시 모래로 돌아간다. 어쩌면 시간도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시간은 모래알 같은 기억들에 의해 흐릿하게 재구성되고, 시간이 지나갈 때 모든 기억은 미세 입자 형태로 산산이 흩어져버린다. 그러나 시간이 유리와 조금 다른 것은 그것이 늘 깨지고 있는 무엇이라는 점이다. 시간은 지금도 지나...

김영삼 문학평론

계간 문학들 2025년 여름호(제80호)

아름다운 헤테로토피아 ― 정택진, 『곳』, 문학들, 2025.

1. 정택진의 소설 『곳』은 기억의 심층에 박힌 유년 시절의 한 장면을 소환하면서 시작된다. 청산도의 어느 낡은 집, 윗목 모서리에 걸린 등잔에는 ‘초꼬지불’이 졸고 있는 저녁이다. 대대로 가난했을 것이 분명하건만, 여느 때와 달리 걸게 차려진 밥상이 풍성한 밤이다. 밥상머리 앞에 한 꼬마가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서 있고,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아기를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