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한국문학 비평 아카이브

  • 아동문학평론 | 2024년 겨울호(제193호)

한국 공상과학소설의 독보적 개척자 ― 한낙원 과학동화론

박상재 문학평론

* 전주고등학교, 서울교육대학교 졸업, 단국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 전공(문학박사) * 1981년 <아동문예> 동화 신인상, 1984년 한국일보신춘문예에 동화 당선 * 제2차 세계아동문학대회 집행위원장(서울임페리얼호텔), 2023 세계방정환학술대회 조직위원장(서울 프레지던트호텔), 2024 세계방정환학술대회 조직위원장(수원 컨벤션센터) * 한국아동문학학회 회장(역임),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역임) 한국교원대 겸임교수, 단국대 대학원 외래교수 역임 * 현재 한국아동문학학회 자문위원, (사)한국아동문학인협회 고문,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아동문학사조> 발행인 * 새벗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한정동아동문학상, 박경종아동문학상, 김영일아동문학상, PEN문학상, 이재철 아동문학평론상, 생명과문학 작가상 등 수상 * 저서: 이론서 <한국창작동화의 환상성 연구>, <한국동화문학의 탐색과 조명>, <한국동화문학의 어제와 오늘>, <한국 대표아동문학가 작가작품론>, <동화시의 매력>, <동화 창작의 이론과 실제>, 동화: <도깨비와 메밀묵>, <영웅레클리스>, <꽃이 된 아이>, <하지아저씨와 삽살개> 등 140 여권

Ⅰ. 들어가는 말

 

  한낙원(韓樂源, 1924~2007)1924114일 평안남도 용강군 서화면 자복리에서 부친 한희룡(韓羲龍)1)과 모친 정희화(鄭羲嬅) 슬하 2남 중 차남2)으로 태어났다. 19433월 평양의 사립 명문인 숭인상업학교를 졸업했다. 1943년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 영문과에서 2년동안 수학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19465월까지 평양방송국 아나운서로 근무했다. 19468월부터 19508월까지 평양공업전문학교(야간) 전임강사로 근무하며 월간지 <공업지식>을 편집했다.

  194811월 평양제2여자중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하던 다섯 살 연하의 이춘계(李春桂)와 혼인하였다. 19499월 장남 권일(權一)3)이 태어났다. 19506.25 전쟁이 발발한 후 평양이 수복되자 10월 평양방송국 방송부장으로 재건 사업에 참여했다. 12월에 월남하여 19523월까지 공군 제1전투비행단 작전처 번역문관으로 근무했다.

  19524월부터 19545월까지 주한 유엔군 심리작전처 공보교육국(CIE) 방송부장, 한국민사원조처(KCAC) 방송 고문으로 근무했다. 1953년부터 KBS, CBS 등을 통해 과학방송극 「100년 후의 월세계」, 「화성에서 온 사나이」, 「별의 고향등을 발표하는 등 1960년대까지 방속극 분야에서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였다. 19532월 차남 권식(權植)4)이 출생하였다.

 19545월부터 195712월까지 월간 <농민생활> 주간으로 근무했다. 1957년부터 <새벗><이상한나라의 엘리스>를 번역 연재하고, <우리들의 과학> 시리즈를 592월호까지 연재했다. 19578월 딸 애경(愛卿)5)이 출생했다.

  1959년부터 <새벗>에 장편 화성에 사는 사람들1년간과 연재하고, 연합신문에 장편 잃어버린 소년88회 연재했다. 그 후 1990년대까지 <학원>, <학생과학>, <소년>, <새벗>, <소년동아일보> 등 가종 잡지와 신문에 우주항로』, 『우주벌레 오메가호』, 『스그마X』, 『해저도시 탐험대』, 『타이탄 구조대』, 『세글자의 비밀』, 『등재 밑의 비밀등 과학소설을 비롯해, 모험 추리소설을 연재했다. 분야에서 선구적인 개척자로 활동했다. 그뿐 아니라  쥘 베른의 바다 밑 2만 리』(1974), H.G. 웰스의 우주 전쟁』(1982) 등을 번역 출간해 국내에 소개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금성 탐험대196212월부터 19649월까지 <학원>에 연재된 과학모험소설로 한낙원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19606월부터 3년동안 기독교복리회 한국연합회(CCF) 상무이사겸 <동광>지 주간으로 일했다. 19644월부터 사회복지법인 <계명원> 이사를 맡아 2000년대 까지 일했다. 19688월부터 19752월까지 국제라이온스클럽 한국본부의 <라이온>지 한국어판 편집을 맡았다. 19753월부터 198312월까지는 인제의과대학 백병원 원장비서실장겸 홍보실장으로 일했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1989년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는 제10회 한국어린이도서상(『돌아온 지구 소년』), 1992년 제2회 방정환문학상(『페기별의 타임머신』)을 받았다.

  한낙원은 서울에 거주할 때 중구 신당동에서 살다, 서대문구 창천동, 강서구 신월동 등으로 이주해 살았다. 수영과 등산을 좋아했던 그는 2007312일 갑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되어 83세로 타계했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에 있는 동화경모공원에서 영면6)하고 있다. 2014년 유족들에 의해 <한낙원과학소설상>이 제정되어 시행7)되고 있다.

 

 

 

Ⅱ. 한국 공상과학소설의 개척자

 

  한낙원은 한국공상과학소설의 개척자이자 대부이다. 그가 쓴 공상과학소설의 특징을 집약하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보통 2인 이상의 청소년이 등장하며 여성은 주체가 아닌 보조자로 포함시켰다. 이는 흥미를 더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남성중심의 시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등장인물을 복수로 설벙한 것은 우주여행을 하기 때문에 기계를 작동할 때 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낙원 과학소설에는 미래세계에 펼쳐지는 사건을 비판적 시각이 아니라 우호적이고 평화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는 미개척분야인 우주과학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시하여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미래에 펼쳐질 우주시대를 상정하여 문명간의 대화와 타협없는 충돌은 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점을 인식시키기 위한 집필 의도이다. 그 때문에 전체적으로 외계인과의 관계를 대립이 아닌 우호적인 관계로 설정하여 평화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다.

 

l.  한국 청년이 펼치는 우주 대모험, 『금성 탐험대

 

  『금성 탐험대』8)는 한낙원의 대표작이자 한국 공상과학소설9)의 서막을 연 작품이다. 끊임없이 전개되는 서사가 흥미진진하고 우주로 향한 꿈과 도전이 풍부하다. 외국 과학소설과 달리 한국인 청소년들이 중심인물로 활약하는 데서 동질감과 친화력을 느낄 수 있다. 독자들은 소설 속 주인공들과 함께 우주선을 타고 여행을 떠난 듯한 상상을 맛보게 된다. 과학적 상상력으로 펼치는 세계는 여전히 청소년 독자들에게 지적 호기심과 정서적 자극을 안겨 준다.

  『금성 탐험대는 미국 소련 간 우주 개발 경쟁이 치열했던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우수한 파일럿들이 연쇄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하자 미국은 금성 탐험호를 비밀리에 쏘아 올릴 계획을 세운다. 하와이 우주 항공 학교의 한국인 학생인 고진과 최미옥도 우주로 향할 꿈에 부풀지만, 고진은 출발 직전 괴한에게 납치되고 만다. 고진이 도착한 곳은 바닷속 어느 원자력 잠수함 안이다.

  다채로운 여정 가운데 열혈남아 고진이 보여 주는 가식 없는 열정과 패기는 복고적 멋과 설렘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며, 마치 TV 만화 연속극에서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건들은 지금 읽어도 손에서 책을 내려놓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한 긴장과 재미를 선사한다.

  이 시대는 달에 인류의 발자국이 찍히기도 전이었으나 한낙원은 작가다운 관심과 상상력으로 금성 탐험이라는 새로운 우주 개척담을 빚어냈다. 한낙원은 과학소설 창작의 이유를 학생들에게 모험심을 기르고 어려운 난관에 부딪치더라도 이겨 낼 수 있는 지혜와 담력을 길러 주기 위해”10)라고 밝혔을 만큼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도전 의식을 일깨우고자 했다.  

  한낙원은 작품을 통해 낯선 세계의 토양을 조사해 지질학적 분석을 내놓는다. 또한  나비의 움직임을 관찰해 방향을 찾는 장면 등에서도 과학에 대한 지식과 애정을 선보인다. 이는 대체로 과학 기술의 한계를 제기하는 요즘 SF와는 거리가 있는 부분으로, 초창기 과학소설이 지닌 고전적 재미와 순수함을 느끼게 한다.

  『금성 탐험대가 미·소의 대립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착작된 이야기임에도 화해와 평화의 가치를 전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은 소련 우주선에 한국인이 탑승한다는 설정으로 냉전 시대이던 당시대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다. 이 작품은 당시 청소년 사이에 많은 인기를 끌었다.

  연재를 시작하기 1년 전인 19615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미의회 연설에서 "향후 10년 안에 사람을 달에 보낼 것"이라고 '아폴로계획'11)을 발표했다. 대부분의 세계인들은 "터무니없는 허언"이라고 비웃었으나, 이 예언은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며 닐 암스토롱이 달에 첫발을 딛게 됐다. 우주가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던 시절 한낙원 또한 우주 개척을 예언한 선지자인 셈이다.

    

금성 탐험대는 미국과 옛 소련 간의 우주 개발 경쟁이 뜨겁던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미국 정부가 금성을 탐험할 우주선을 쏘아올릴 예정인 가운데 하와이 우주항공학교의 제10기 한국인 학생 고진과 최미옥도 우주로 향할 꿈에 부푼다. 하지만 발사 직전 고진은 괴한에 납치돼 어디론가 끌려간다. 최고의 우주조종사인 고진을 잃은 채 출발하게 함으로서 독자들의 불안감과 궁금증을 사로잡게 한다.

 

태평양 한복판의 거센 파도가 흰 거품을 일으키며 하와이 해안의 고운 모래를 깨물고 있었다./ 야자와 종려 잎들이 해풍에 설레었다./ 바나나와 사탕수수 잎들이 뙤약볕을 가려주었다. 열대의 짙은 빛깔의 꽃들이 활짝 피어 지나는 손을 반겼다./ 소풍을 나온 젊은 남녀들은 손에 손을 잡고 야자수 우거진 해변 길을 거닐었다./여기 낭만이 가득한 하와이에 세계적인 로켓 우주공항이 생기고, 또한 우주항공학교가 선것은 동남아의 젊은이들에게는 요행이 아닐 수 없었다./누구나 치열한 경쟁에 이기기만 하면, 중학을 나오자 이곳 우주항공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것이다./ 고진이란 부산중학 출신과 최미옥이란 서울 출신의 두 젊은 한국의 남녀가 호놀룰루 우주항공학교에 와서 공부한 지도 벌써 4년이 지났다.  

한낙원 과학소설 선집』 261~262(이하 선집)

 

  이 작품에서 작가는 미국우주항공학교가 있는 배경을 하와이주 호놀룰루로 설정했다. 하와이 제도(Hawaiian Islands)를 구성하는 섬 중에 가장 큰 섬의 이름이 하와이이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체 섬들을 흔히 하와이로 통칭한다. 하와이 제도의 주도인 호놀룰루는 세번째로 큰 오하우섬에 있다. 한낙원이 미 항공우주국과는 전혀 무관한 하와이를 배경으로 설정한 것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인들이 사탕수수 농장에 이주했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게는 비교적 친숙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하와이 정부는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장을 경영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불러들였다. 처음에는 중국인이 그다음으로 일본인 노동자의 이민이 시작되었으며, 초반엔 가장 큰 노동집단이었으나 파업을 일으키고, 농장에서의 이탈도 많아지자 대체 이민 노동자로 1903년부터 한국인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4.19혁명으로 실각한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로 망명하여 한국인에게 익숙한 지명인 것도 이유가 될것이다. 그런데 정작 미국 최대 항공 우주기지는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다.

 

그래서 실은 고 군을 부른 거야. 고 군은 전자공학에 뛰어난 성적을 나타냈고, 또 우수한 파일럿이기도 하니, 군의 힘을 좀 빌리려고 하는데 어떤가?”/“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고마워. 그럼 내일 모레 아침 금성탐험호를 탈 준비를 해주게.” -중략-

그렇지만 저는 달에는 가봤지만 금성엔 못 가본걸요.”/“누군 가봤나. 모두 처음이지.”/홉킨스 소장은 지금까지 진행해온 금성 탐험을 위한 유인 우주선 발사 계획을 대충 설명하였다.

선집 265

 

  월리엄은 고진과 최미옥이 재학하는 우주항공학교의 교관이다. 우주항공학교 유니폼은 하늘색이고 스쿨버스의 색깔도 하늘색이다. 월리암 교관은 두 후보생을 우주공항 사령관이 호출하였다고 전한다. 홉킨스 소장은 고진 후보생을 반갑게 맞이한다. 홉킨스 소장은 공항에서 달로 떠난 우주선 3척의 조종사가 모조리 죽었다고 말한다.

  홉킨스의 말에 의하면 금성탐험을 위한 유인 우주선 발사 계획은 1962년부터 시작되었다 한다. 그 동안에 5,60회에 걸쳐 무인 우주선을 발사하여 금성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고, 드디어는 유인 우주선을 발사하게 된 것이다. 홉킨스는 고진에게 금성탐험호를 타고 금성을 탐험하라는 제의를 한다. 고진은 달 착륙의 경험이 있는 우주인으로 통신원으로 최미옥과 동행하기를 원한다. 스미스 중령은 기장이 되고, 고진은 부기장이 되어 금성탐험을 하기로 결정된다. 하지만 발사 시각이 다 되어가는데도 스미스와 고진이 탑승하지 못한다. 결국 월리암 교관이 기장이 되고, 박철 후보생은 부기장이 되어 금성 탐험호가 발사된다.

 

고진 후보생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비로소 자기가 우주선을 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진후보생은 자기 앞에서, 우주선을 조종하고 있는 니꼴라이 중령을 보았다. 그리고 중령의 옆에  앉은 여자 통신원을 보자, 모든 기억이 되살아났다./‘저 여자가 니꼴라이 중령이 말하던 한국계 소련 처녀로구나.’/고진 후보생은 블라디보스토크 우주공항에서, 니꼴라이 중령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처녀가 방긋이 웃으며 고진 후보생을 돌아보았다. 그 때서야 니꼴라이 중령도 고진 후보생을 돌아다보았다.  선집 297~298

 

  스미스 중령은 잠수함으로 고진을 납치하여 소련의 브라디보스톡에 간다. 스미스 중령은 소련의 스파이였던 것이다. 이 작품은 첩보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자주 접하는 작법인 스릴과 서스펜스(suspense)를 활용하고 있다. 고진은 스미스를 따라 소련 우주공항 사령관실로 간다. 사령관은 스미스를 니꼴라이 중령으로 부른다. 결국 고진은 스미스 중령과 함께 였던 것이다. 전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니콜라이 중령의 모습에는 당시 소련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동시에 윌리엄 중령의 모습에서는 소련과의 우주전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미국의 모습도 엿보인다.

 

  니꼴라이 중령은 우주모를 쓰고 우주선 밖으로 나갔다. 고진 후보생도 그 뒤를 쫓아 나갔다. 캄캄한 우주의 하늘은 먹칠을 한 것처럼 펼쳐져 있다. 그러나 우주선의 한쪽을 쪼이는강력한 햇빛은 뜨거운 열을 사정없이 우주선 한쪽에 퍼붓고 있다./ 니꼴라이 중령은 그 뜨거운 우주선을 더듬으며 열쇠를 찾아다녔다.“열쇠가 어디 갔어? 우주선의 인력으로 열쇠가 우주선에 붙은 것은 틀림없을 텐데.”/ 중략- 니꼴라이 중령은 고진을 한참동안 노려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자네가 그 열쇠를 찾아내야 해…. 만일 못 찾으면 우주선 안에는 들여놓지 않을 테니까, 알았지?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 해.”/ 니꼴라이 중령은 분풀이를 하듯이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리고 말았다.  선집 310~311

 

  『금성 탐험대는 이렇게 시대 현실을 반영한 상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960년대 미소 냉전체제에서 우주산업 경쟁이 한창인 시기에 출간되었기에 우주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미소 시대, 냉전체제와 우주전쟁 현실을 잘 묘사한 부분이 인상 깊다. 눈앞의 새로운 별을 떠나 금성으로 향하는 모습에서는 우주 탐사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이 작품은 미·소 두 진영의 대립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러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한국인 인물들이 활약은 더욱 도드라진다. 이는 지구는 하나야…….”, “모든 민족은…… 적이 될 수 없어……. 형제야……. 싸워선 안 돼…….”(383)라는 니콜라이 중령의 마지막 전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냉전시대의 논리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할 수 없지만, 미래 세대에게 전할 가치에 대해 고민했던 작가 의식이 각인된 작품이다.

  또한 우주선, 괴조, , 알파인, 공룡 등 여러 소재들이 단순히 주인공의 모험의 방해물로 나열되고 있을 뿐 역할이 없다는 것은 이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있는 단초가 된다.

 

 

2. 국격을 높인 SF 『잃어버린 소년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은 과학적 사실이나 가설을 바탕으로 우주 공간이나 미래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과학소설을 말한다.

  『잃어버린 소년은 세계연방정부가 수립된 미래 시대를 배경으로 삼는다. 이 작품은 연합신문12) 어린이연합판에 실렸으며, 삽화는 신동헌 화백13)이 함께 했다. 우주기지는 한국의 제주도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 흥미롭다. 세계는 유엔이 발전하여 세계연방이 된다. 각 나라 대표가 모여 세계연방 정부를 만들고 연장전부 원수를 뽑는다. 한국은 우수한 과학선도국가가 되어 원일박사와 같은 노벨물리학자도 탄생한다.

  제주도에 자리잡은 한라산 우주과학연구소의 소장은 원일 박사로 세계적인 전자물리학자이다. 이곳에서는 우주여행에 필요한 새로운 에너지를 연구한다. 특별 훈련생 용이와 철이, 현옥 세 젊은이14)가 특별 임무를 띠고서 우주선에 올라 우주정거장을 향해 이륙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나 우주선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가고 주인공들은 유리 바가지를 쓴 우주 괴물들과 싸움을 벌인 끝에 폭발하는 우주선을 탈출해 지구로 귀환한다.

 

현옥이가 뇌까리며 먼저 우주복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온통 옆으로 주름이 잡히 ㄴ아래 위가 잇달린 옷이다. 그 위에 장갑과 장화를 신고 안테나가 달린 헬멧 모자를 썼다. 등 뒤에는 물론 비상용 산소 탱크가 메어져 있었다.-중략-/발사대에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X·50호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것은 상어처럼 날씬한 몸집을 하고 있었다. X·50호는 X·15가 발달한 자그마한 로켓  비행기였다. 그래서 큰 우주선 몸집 안에 들어갈 수도 있게 마련이었다./ 세 훈련생은 이 애기에 올라탔다. 사다리가 떼어지고 문이 다쳤다./용이가 제일 앞머리 조종사석에 앉고 철이는 그 옆의 부조종사석에 앉았다. 현옥이는 그 뒷자리 레이더 조종석에 앉았다

선집 100-102

 

  용이는 월세계에서 낳고 월세계에서 자란 소년이다. 아버지가 월세계 우주선 기지의 기사로 일하기 때문에 1972년15)에 가족도 따라 그곳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용이가 열세살 때 로켓 폭발 사고로 순직을 했다. 철이는 열 한살 때 고등수학을 푼 천재이다. 철이와 그의 누나, 용이는 한라산 우주과학연구소에서 특별 훈련을 받고 있었다. 어느날 원박사는 세 훈련생에게 큰 비밀편지를 가지고 우주정거장 코레아호에 가 있는 허교수에게 전하라는 긴급 명령을 내린다.  

  그 때 용이는 급해서 꼭꼭 잠근 문 안으로 날아들어온 노란 봉투의 과상한 편지를 주머니에 넣은 채 꼬마 우주선에 탄다. 또 현옥이는 우주선 레이더에 빨간불이 켜진 것을 본다. 위험하다는 신호다. 그러나 웬일인지 곧 제대로 되어 우주선 X·50호는 그대로 떠나고 만다.

 

그 종소리는 로켓배가 제일 위험할 때 울리는 마지막 경종이었다./ “째르르릉---”

철이는 다시 눈을 치뜨고 속도계를 보았다. “! 7만마일! 마지막이다! 용이! , 현옥아!”/ 철이는 소리를 질렀다. -중략- 속도는 차차 7만 마일에서 6만 마일 ... 그리고 드디어는 3만 마일까지 내려가고야 말았다. 이제야 비로소 제 속도를 얻은 것이었다. 이 배는 한 시간에 3만 마일의 속도로 공기가 있는 대기권을 뚫고 나가게 되어 있다./세 훈련생은 인제야 조금씩 간신히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중략- ‘그 파란 불빛이 괴물이다! 보이지 않는 괴물....’

용이는 뿌예져가는 자기 정신 한구석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꼬마 우주선 X·50호는 정신을 잃은 세 훈련생을 싣고 자꾸만 더 속력을 내서 어디론지 솟아오르고 있었다

선집 111~119

 

  서기 1995년 크리스마스 전날 한라산 우주과학연구소에서는 큰 사고가 일어난다. 소장인 원일 박사의 긴급명령으로 우주선 코레아호로 떠난 X·50호는 웬일인지 미칠 듯한 속력으로 길을 헛가고 있었다. 이 꼬마우주선에는 용이와 철이, 그리고 철이의 누나 현옥이가 타고 있다.

  대원들과 눈싸움을 즐기다 지하실의 비밀실로 들어간 나기사는 보이지 않는 괴물들이 비밀 설계도를 훔쳐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비행판을 타고 바다로 쫓아갔다. 나기사와 괴물은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인다. 나기사는 비행접시 광파무기의 단추를 누르려 한다. 그러나 그는 과물의 공격으로 바다에 떨어져 죽고만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원박사는 한없이 슬퍼했다. 그러나 세 훈련생은 아직도 괴물에게 끌려 헛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앞에 괴물은 차차 얼굴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결국 세 훈련대원은 이 문어를 닮은 괴물의 우주선으로 잡혀가게 된다.


두 남매가 총대를 쥐고 옥신각신 다투고 있는데 또다시 무슨 힘이 그들을 끌어당기는 것을 느꼈다. 보자 짙은 파란빛이 그들을 감싸는 것이었다. 그 빛줄기 안에서 두 남매와 용이의 몸은 괴물의 큰 배 있는 쪽으로 끌려가는 것이었다./ 두 남매는 그 빛 속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려보았다. 그러나 버둥거리면 거릴수록 그 파란 빛은 짙어지고 그들을 끌어당기는 힘은 더 세지는 것을 느꼈다. 인제는 세 소년의 몸이 무슨 노끈에 묶인 것처럼 움직이지도 못하고 자꾸만 괴물의 배 있는 곳으로 끌려갔다.  

선집 160

 

  우주 개척자자가 되려는 꿈을 가졌던 철이는 무기력하게 죽게 되는 것이 억울하고 분하다. 그는 총의 방아쇠를 마구 당긴다. 그러다가 정신을 잃는다. 세 훈련생은 어떻게 끌려갔는지 어느새 그 둥근 괴물의 배 안에 들어가 있었다. 철이와 현옥이가 그것을 안 것은 얼마쯤 뒤였다. 그들은 모두 우주복이 벗겨진 채 스키복 같은 자기 속옷을 입고 있었다. 철이가 좀 떨리는 손으로 테이블 옆 조종판 같은 곳의 단추를 누르자 문어 모양의 괴물은 네 다리로 덥석덥석 방안에 들어왔다. 그 괴물이 유리 바가지 같은 핼맷을 벗자 울퉁불퉁하고 맨숭맨숭한 머리에 세 눈방울이 디굴디굴 굴었다.

 

그렇지, 먼저 용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아볼 것, 그 다음에는 내 우주복을 다시 찾을 것, 그 다음에 이 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조사하고 도면을 그려둘 것, 할 수만 있다면 이 배를 빼앗아가지고 지구로 돌아갈 것.’/이까지 생각하자 철이는 마치 자기가 읽던 과학모험 소설의주인공이 된 것같이 신바람이 나기 시작하였다.-중략- 현옥이는 그 빨강 딸기 같은 것을 다 먹고 침대에 뒹굴고 있었다.-중략-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괴물이 노랑 포도알 같은 것을 담아가지고 들어왔다.-중략- 그것을 보고 철이도 두어 알 입에 넣었다. 정말 그 맛은 별난 것이었다.  

선집 166~167

 

  외계인들이 먹는 그 포도알 같은 음식은 입에 들어가자마자 혓바닥에서 녹는다. 인단16)처럼 시원하면서도 꿀처럼 달고 향긋한 음식이다. 이 우주선에는 우주복을 입지 않고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철이는 초록빛으로 빛나는 지구를 바라보자 문득 우주과학연구소가 생각나고 부모님이 그리워진다. 철이는 괴물이 나 기사로부터 탈취한 설계도 봉투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빼앗으려 한다. 괴물은 설계도 봉투를 감싸안고 함장실로 간다. 그곳에는 죽은 줄 알았던 용이가 있어 반갑게 재회한다. 괴물은 설계도의 비밀을 알려고 두 대원을 심문하지만 입을 열지 않는다.

  우주정거장 코레아호에 있던 허진 교수는 X·50호 같은 꼬마우주선이 우주정거장을 밑으로 지나 딴길로 달리다가 지구의 인력에 끌려 지구를 도는 인공위성이 되려는 것을 쫓고 있었다. 허교수는 원박사의 호출을 받고 부랴부랴 한라산 기지로 돌아온다.   세계의 신문은 우주의 괴물이 내습한 사실을 알리고, “잃어버린 세 특별 훈련생”, “가까워오는 지구 최후의 날!” 등의 제목으로 앞다투어 보도한다. 뉴욕에 잇는 세계정부는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원일 박사를 지구방위위원회위원장으로 뽑는다. 원박사는 지구를 지키기 위하여 세계정부가 가지고 잇는 모든 우주선을 동원하여 적을 격퇴시킬 준비를 한다. 원박사는 허교수에게 설계도를 복사해 둔 필름을 건넨다. 원박사는 세계정부 재판소에서 보이지 않는 괴물이 지구를 쳐들어왔다는 유언비어를 퍼ㄷ뜨렷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게 된다. 허교수는 새로운 우주선을 완성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원박사는 증거자료를 통해 무죄 선고를 받고 한라산으로 돌아오고 세계는 더욱 공포에 싸이게 된다. 세 대원은 괴물들이 밥먹는 시간을 이용해 배에서 도망치려는 계획을 꾸민다. 마침내 나 기사가 빼앗겼던 비밀 설계도와 괴물 우주선의 설계도까지 빼앗아 괴물들이 타던 유리 바가지를 타고 달나라로 탈출한다.  

 

용이는 벌써 저만치 앞서서 달을 향하고 있었다. 현옥이는 그 뒤를 따랐다. 그러자 괴물 우주선에서 괴물들이 탄 유리 바가지가 연거푸 날아나왔다. 잠시 동안에 하늘에는 벌 떼처럼 유리 바가지의 꽃이 피었다. 괴물의 유리 바가지는 두 소년을 뒤쫓았다. -중략- 철이는 다이얼을 돌리고 그 벽장에서 설계도를 꺼냈다. 그것을 움켜서 가슴 속에다 집어넣었다. -중략- 철이가 유리 바가지 있는 데까지 와서 바가지에 탔을 때는 온몸이 비에 젖은 것처럼 땀이 배어 있었다

선집 193-195

 

트럭터가 필코 산 밑으로 가자 현옥이는 벌써 죽은 듯이 팔다리가 축 늘어져서 허우적거리며 떨어지고 있었다./터릭터 안에서 우주복을 입은 구호반 두 사람이 재빨리 문을 열고 나와서 현옥이의 몸을 트럭터 안으로 안아 들였다. -중략- “아니, 저런 알몸뚱이로....”하며 구호반은 재빨리 달려가서 두 소년도 트럭터 안으로 끌어들였다./세 훈련생은 트럭터 안에서 응급 치료를 받으며 한 시간에 3백 마일씩 달리는 속도로  땅 밑에 지은 기지로 달려왔다

선집 201

 

  기지의 병원에서 정신을 차림 철이는 옷속에 숨겨온 비밀 설계도를 텔레비를 통해 한라산 우주과학 연구소에 보낸다. 이윽고 세계정부에서는 달나라 상공에서 원자탄을 터뜨린다고 했다. 달나라 지상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지하사무실로 대피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허진 교수가 지휘하는 우주선 30척이 달나라 상공에 도착하여 원자탄을 떨어뜨리려 하지만 괴물의 방해공작으로 실패하고 만다. 용이와 철이는 무게 없는 우주 공간에서 허교수와 극적으로 합류한다. 그런데 우주선이 모스코바와 아프리카에 떨어지고, 뉴욕에서는 로켓비행기가 석 대나 행방불명된다. 괴물들은 지구 곳곳의 도시를 공격하여 지구 멸망이 눈 앞에 다가오고 있다. 용이와 철이 현옥은 허교수와 함께 괴물의 배 안으로 끌려 간다.

 

철이와 허 교수가 먼저 괴물의 배 안에 들어왔다./용이가 현옥이를 이끌고 뒤따라 들어왔다. 입구에 여러 놈의 괴물이 지키고 있다가 네 사람을 둘러쌌다. 그리고 한 사람에 두 놈씩 붙어서 네 사람을 선장실로 데리고 올라갔다. -중략- 선장은 그제야 괴상한 웃음을 지으며 자기 옆의 담벽으로 갔다. 그 벽에는 수많은 단추며 스크린이며 구멍들이 보였다. 선장이 스크린 옆의 단추를 누르자 스크린 위에 괴물 한 놈이 나타났다. -중략- 괴물 선장은 골이 잔뜩나서 외치며 문어발로 철의 목을 감았다. 숨이 답답했다. 철이는 침대 있는 방으로 끌려가고 있었다.-중략- 허교수가 선장의 눈통을 내리쳤다. 다시 엎치락 뒤치락 서로들 맞붙어서 뒹굴었다. 그러는 동안에 현옥이가 흰 단추를 눌렀다

선집 236~240

 

  괴물의 배는 단추로 명령이 하달된다. 흰 단추를 누르면 유리 바가지를 타고 우주선 밖으로 날아간다. 노란 단추는 옆방과 트인 벽이 닫히는 스위치이다. 파란 단추를 누르면 유리바가지들이 돌아오라는 신호이다. 금빛 단추는 우주선의 바깥을 거울처럼 반사시키는 단추로 통행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단추를 통해 명령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단추를 잘 못 누르면 엉뚱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허교수와 싸우다 발 다리가 떨어져나간 괴물 선장은 입으로 기관실을 폭파시키는 도화선을 물고 있었다. 용이는 괴물의 입에서 꼭지를 뺀 후 유리 바가지를 타고 탈출을 시도한다.

 

잠시후 세 대의 유리 바가지가 불꽃처럼 괴물의 우주선을 튀어나왔다. 세 유리 바가지는 한라산으로 방향을 잡고 전속력으로 달렸다./그들이 괴물 우주선에서 한참 멀어지자 연거푸 일어나던 폭발하는 빛이 한층 더 빛났다. 선장실이 폭발하는 빛이었다. -중략- “철이! 바다는 왼쪽이다! 몸을 외로! 몸을 외로 기울엿!”/용이가 자꾸만 뒤에서 소리쳤다. 그제야 철이는 억지로 몸을 외로 털었다. -중략-철이와 현옥이는 비행기 편으로 한라산 병원에 돌아왔다. 용이와 허 교수도 타가온 유리 바가지를 찾지 못했다

선집 245-251

 

  유리 바가지를 타고 괴물 우주선을 탈출한 세 대원과 허 교수는 바다로 떨어진다. 철이와 현옥이는 독도 근방으로, 용이와 허 교수는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발견된다. 철이와 현옥이는 고기잡이 하던 그물에 걸려 살아나고, 용이와 허 교수도 헬리콥터가 구조하여 한라산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고령의 원 박사는 건강이 악화되지만, 괴물의 습격이 사라진 세계는 평온을 되찾고, 세 대원은 세계적인 영웅이 된다. 세계 우주과학자들은 원 박사의 우주선을 완성하도록 연구 자료를 보내온다.

  세 훈련생은 허 교수와 함께 원 박사의 우주선을 완성하는 총 책임자가 된다. 신문에서는 세계정부가 410일을 지구의 평화와 자유를 되찾은 기쁨을 축하하는 날로 정하고 공로 표창과 상금을 1억달러를 준다고 보도한다. 용이는 장거리 텔레비 전화로 심사위원장에게 호의는 고맙지만 상은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한다. 위원장은 용호의 제안을 받아들여 세 대원 외에 원 박사와 허 교수, 나 기사, 비밀 연구 결과를 보내온 일본 후지산 연구소의 야마다도 공동수상자로 결정한다.

 

대통령이 단 앞으로 나왔다./“독재하던 괴물의 과학문명은 우리 지구의 젊은 세 소년을 당하지 못하고 망해버렸습니다. -중략-우리는 이들 세 소년과 우주 개척에 이바지한 분들에게 공로상을 드리게 되 넋을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이 말을 듣자 청중들은 위뢰 같은 박수를 보내왔다./식은 원박사의 시상식을 위하여 한라산 병원으로 옮겨졌다. 텔레비를 보는 사람들은 장면이 바뀌지만, 국제연합 강당에서는 벽의 스크린을 지켜야 했다. 이 스크린에 한라산의 시상식 광경이 비치는 것이다. 중략-/원 박사는 갑에서 금빛 열쇠를 한 개 꺼내 들었다./“이 열쇠로 우주의 비밀을 열어주십시오!…. 이것은 내 서류 금고의 열쇠입니다….”/하고 원박사는 열쇠를 쳐들었다. 천지를 진동하는 박수와 만세 소리가 세계를 뒤흔들었다./“우리 소년 영웅 만세! 우리 희밍 만세!”/이 소리는 특별 훈련생의 노래와 함께 전파를 타고 우주의 한끝으로 퍼져나갔다

선집 259-260

 

  이 장편 소설의 에필로그이다. 시상식장은 국제연합 빌딩의 대강당으로 정해지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각국 언어로 세계와 달나라와 화성에 중계한다. 세계 방방곡곡에는 꽃글씨와 네온이 반짝이는 아치문들이 장식되고 불꽃놀이를 벌인다. 달나라와 화성에 간 개척단에서도 축하의 메시지가 날아온다. 세계 시민들의 눈과 귀는 텔레비로 국제연합 빌딩 대강당으로 쏠린다. 단상 오른쪽에는 세 대원과 허 교수, 야마다와 나 기사의 유가족이 앉고, 그 왼쪽에는 세계정부대통령과 사회를 맡은 심사위원장이 앉아 있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1950년대 말 청소년들에게 과학강국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불어넣었던 작품이다.

 

 

Ⅲ. 나오는 말

  한낙원은 한국 과학소설 분야에서 선구적으로 활동한 개척자이다. 일찍이 1950년대 말부터 과학소설 창작에 매진하여 잡지 <학원>,  <학생과학>, <새벗>, <소년> 등과  어린이신문 소년동아일보’ ‘소년한국일보등에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첨단 과학 및 우주 개발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작품들은 당시 아동ㆍ청소년 독자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며, 그를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잃어버린 소년』(연합신문)1959화성에 사는 사람들』(새벗)과 함께 한낙원이  연재한 공상과학소설이다. 이 작품은 해방 이후 최초의 창작과학소설로 새연방정부가 수립된 미래 시대를 배경으로 삼는다. 한낙원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금성 탐험대는 미국과 소련이 벌이는 우주 개발 경쟁과 함께 로봇을 부리는 외계인과의 싸움을 그린 우주 활극이다. 『별들 최후의 날은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은하계의 두 별 사이의 우주 전쟁을 그렸다.

  이밖에도 우주 항로』, 『해저 왕국』, 『별들 최후의 날』, 『미래소년 삼총사』,   『UFO 기지를 찾아라』, 『특명! 지구 대폭발 구출작전등과 과학방송극 달에서 들리는 소리』, 『화성에서 온 사나이』, 『우주 소년 이카러스를 비롯해 중단편소설 25, 장편 38, 방송극 35편 등이 있다.

  2014년 한낙원의 유족에 의해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한낙원 과학소설상>이 제정되어 2024년 현재 제11회를 시상하고 있다.

 

한낙원 연보

- 1924년 평남 용강 출생  

- 1953년 외국 방송극 자유인각색

- 1959.12.20 -1960.4.7 과학모험소설 잃어버린 소년연합신문에 연재

- 1964잃어버린 소년』(배영사) 출간

- 1962.12 -1964.9 『금성탐험대학원지에 연재(22)/학원사 출간(1967)/삼지사 출간(1969, 10)/소년세계사 출간(1971)

- 1968길 잃은 애톰』(삼성당)

- 1972우주도시』(아리랑사)

- 1977우주항로』(계몽사)

- 1980할아버지 소년』(예림당)

- 1982해저 왕국』(삼성당), 『세 글자의 비밀』(아동문학사), 『비밀에 쌓인 섬』(교학사), 『별 총총 나 총총』(아동문학사)

- 1983마라 3』(예림당)

- 1984별들 최후의 날』(금성출판사)

- 1988돌아온 지구소년』(카톨릭출판사)

- 1989인조인간 피에로』(예림당)

- 1990사라진 행글라이더』(삼익출판)

- 1992특명, 지구 대폭발 구출작전』(정원)

- 1994우주소년 프로그』(꿈나무)

- 1996미래소년 삼총사』(정원)

- 2007312일 서울에서 별세

  • 1) 국가 독립유공자로 1990년 광복절에 정부에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함. 199361일에는 국가에서 국가유공자증을 수여함.
  • 2) 형은 25세 때 사망함
  • 3) 도미하여 풍력발전회사 지사장으로 근무함
  • 4) 현재 인력 채용 회사인 헤드헌터에서 일함
  • 5) 서울대에서 영문학박사를 받고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로 근무하였다. 사위 송진호는 서울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원자력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일했다.
  • 6) 그의 묘비에는 한국공상과학소설의 선구자라고 새겨져 있다.
  • 7) 어린이와 문학이 공모와 시상을 주관하고 사계절출판사에서 작품집을 펴내고 있다.
  • 8) 이 작품이 잡지 <학원>에 연재된 것은 196212월부터 19649월까지이다.
  • 9) 과학적인 지식을 토대로 하여 시간과 공간의 테두리를 벗어난 일을 주제로 한 소설
  • 10) 본지 학생 기자의 5분간 인터뷰」, <학원> 19685월호
  • 11) 미국이 우주 개척 분야에서 소련에 연이은 굴욕을 당하자 1961년에 취임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70년까지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아폴로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를 위해 우주발사체 전용 발사장이 필요했고, 이에 따라 미국 공군기지 인근에 별도의 우주기지를 지었는데 이것이 케네디 우주센터이다.
  • 12) 1949122일 양우정이 창간했다. 1953년 국제간첩단사건으로 주필 정국은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을 당한다. 발행인이었던 양우정도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음으로써 신문발행이 불가능해졌다. 이후 19543월에 부사장이었던 김성곤에게 인수되어 계속 발행되었다. 기사 위주로 된 편집체제와 적극적인 가두판매 방식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4·19혁명 이후인 1960711일자부터 서울일일신문으로 제호가 바뀌어 발행되다가 196211일 자진 폐간했다. <어린이연합>12. 20일자부터 연재되었다.
  • 13) 신동헌은 김용환, 김성환 등과 함께 해방 이후 한국만화를 개척한 대표적인 ‘1세대 만화가이다. 1927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출생했다. 1947<스티브의 모험>을 통해 데뷔한 이후 여러 신문과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며 한국 만화 초기 역사를 개척했다. 특히, 그의 이름은 만화가로 거론되면서 동시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초기역사를 개척한 애니메이터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967년에 한국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을 발표했으며, 같은 해 <호피와 차돌바위>도 선보이면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선구자로 꼽힌다. 1994년에 타계한 신동우와 함께 형제만화가로도 유명하다.
  • 14) 현옥의 나이는 열셋, 철이는 열다섯, 용이는 열여섯으로 설정되어 있다.
  • 15) 5912. 20~ 60.4.7 되었다. 불과 12년 후인 72년을 시공적 배경으로한 것은 시기 상조이다. 70여년 후 쯤으로 설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16) 일본 삼하남양당(森下南陽堂)에서 개발한 약으로 창업자 모리시타 히로시가 1895년 대만에 군인으로 출병했다가 현지인들이 복용하는 것에서 착안해 감초, 계피, 생강 등 13가지 약재로 제조한 생약이다. 원래 붉은색이었는데 은으로 감싼 은립(銀粒) 형태로 바뀌었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07년 무렵이며 주로 은단으로 불렸다.

추천 콘텐츠

정원 견고한 삶의 조건 ― 박참새, 배시은, 신이인의 시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위의 인용문은 육조 혜능의 '풍번문답(風幡問答)'을 변형한 것으로서 영화 '달콤한 인생'(2005)의 도입부 내레이션이다. 질문을 간파하고 있는 스승의 답변은 제자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었을 테고, 그것은 물론 관객의 심금을 휘저었을 것이다. 파편화된 불안을 쓸어 담는 이 명쾌하고 즉각적인 해답의 카타르시스는 그러나 찰나에 불과하다. 제자의 마음이 '왜' 흔들리고 있는지, 동요하는 그 마음의 원인은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궁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궁리하고 싶지 있다. 바쁜 현대인은 보이지 않는, 보여지지 않는 그렇기 때문에 무용한 그 '느낌'이라는 것을 숙려할 만큼 한가한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무감각하려는 노력 끝에 불안은 우리 현대인의 매우 증상적인 형태로 떠올랐다. 그것은 우리의 고질병이다. 불안, 외로움, 확신 없음이라는 결핍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기로에 선다. 고독을 선택하거나, 의존을 선택하거나. 전자는 불안에 대한 직면이고, 후자는 불안에 대한 외면이다. 그러나 바쁜 우리는 언제나 후자를 선택하는 것에 주저 없다. 세상에 고독한 것은 이제 고독, 그 하나다. 사용되지 않은 고독은 밀린 과제처럼 하릴없이 쌓여간다. 사라지지 않는다. 고독을 외면한 후폭풍은 그에 비례하는 불안의 성장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고독하지 않으려는 것은 고독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혹은 고독을 다른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울감, 외로움, 불안감, 소외감 등의 통각이라고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 감각은 직면하는 대상으로서의 그것이지 결코 정념의 주인이 아니다. 고독은 머무름의 상태가 아니라 나아감의 과정이다. 키에르케고어식으로 바꾸어 말하면 고독이란 '자기-이해'의 과정이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존재의 모호함과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실존적 과정"1)이다. 직면과 견인의 과정으로서 '나'의 발본적 반성을 꾀는 고독은 많은 시간과 심리적 통증을 수반하는 힘겨운 비포장도로이지만 그러나 뒤돌아보면 그 길은 당신에 의해 아주 단단히 포장되어 있을 것이다. 다시 그 길을 걷게 되더라도, 그 길은 이제 너무 쉬운 길이다. 허나 우리는 당장의 고통을 상쇄하기 위해 의존을 택한다. '불안-의존-불안-의존-……'의 악무한은 거기에서 발생한다. 이 악무한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이다. 그러나 혼자만의 싸움이 혼자만 하는 싸움은 아니다. 우리가 고독하고자 할 때, 시는 우리보다 먼저 그곳에서 싸우고 있다. '불확실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시와 고독은 함께 간다. 유일무이한 개별자로서 '그'만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시를 보면서 우리는 '나'의 세계에 대한 가능성을 탐색한다. 비록 그 세계가 하잘것없을지라도 시는 당신과 함께 고독하다. 그리고 때로는 그 투쟁의 이미지가 너무 닮아서 단번에 요체로 휘몰아 넣는 시가 있다. 2024년 계간지 가을호에 실린 시편들이 대개 그러했다. 그것들은 고독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증상에 직핍하는 표정을 하고선 우리의 불안을 응시하고 있다. '응시하는 시'를 응시하는 우리는 홀연 고독의 과정으로 진입한다. 시는 그 자체로 기꺼이 고독의 과정이 된다.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의 불안을 응시-진단하는 시편들을 하나하나 톺아보면서 고독의 여정을 걸어보자. 미리엄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생각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았고 어찌되었건 버렸던 것들, 쓰지 못한 것들, 아직 못한 것들에 대해 미리엄은 마음을 뺏기지 않을 수 없었다 미리엄은 자신을 설명하는 식으로 늘어져가고 있었다 미리엄은 미리엄 같은 사람이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쌍한 미리엄 자기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불쌍한 미리엄은 바빴다 설명하느라 바빴고 대체되지 않으려고 몸부림 치느라 바빴다 그러면 자연스레 낡아지고 늙어가고 쪼그라들고 그리고 무엇보다 절박해진다 불쌍한 미리엄 온종일 나를 기다리는 미리엄은 버럭버럭 화를냈다 화를 내는 미리엄이 순간 유효해 보였다 미리엄이 악다구니를 쓸 때에야 미리엄의 전체가 설명되고 빛난다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고 어차피 미리엄은 그것을 신경쓰지 않을 테니까 다음부터 늦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만 하루종일 무언가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고 나는 일갈할 수밖에 없었다 넌 네 삶이 없어? 하고 말콤은 미리엄이 키우는 개다 말콤은 미리엄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좋아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말콤은 미리엄을 좋아하고 불쌍해한다는 것이다 말콤은 수동적인 주인 미리엄이 충동적으로 산책을 나가지 않거나 밥때를 놓쳐도 재촉하지 않는다 말콤 역시 미리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 하루종일 너만 기다렸어 이 망할 기집애야 하지만 말콤의 생각에서 미리엄은 한없이 불쌍한 인간이므로 개 말콤은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말콤은 개로서 누려야 할 삶의 일부를 포기한 것 같았다 (……) 미움받지만 않게 해주세요 누구로부터를 말하는 것이냐 뭘 물어요 당연히 미리엄이죠 열두 마리의 개를 키운 경험이 있는 신이 말콤의 턱을 간지럽히며 말한다 아이고 불쌍한 새끼 계속해도 무언가가 빠져나간다 빠져나가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이 시는 나로 시작했지만 나로끝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또 무언가를 빠뜨리는 바람에 또 내가 나와야만 하는 상황이 생겼다 내가 나오면 미리엄은 또 하루종일 나를 기다릴 테고 그랬다는 이유로 나에게 화를 낼 것이고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말콤은 삶이란 게 정말 불쌍한 거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 누구도 신경쓰이지 않고 덜 중요하거나 더 중요한 것도 없다 나는 빨리 이 이야기를 끝내고 싶다 때마다 뺨을 후려 맞아도 자꾸만 돌아오게 되는 이곳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그리고 제때 미리엄을 만나러 가고 싶다 그러면 말콤과 산책을 나갈 수 있을 것이고 산책하는 말콤은 정말 행복해 보일 것이다 나는이런 게 좋다 이런게 더 좋다 - 박참새, 「시작된 것」 부분, 『문학동네』 2024년 가을호 "넌 네 삶이 없어?" 당신이 이 문장에 머무른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문장이 애틋한 이유는,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스스로 목줄을 달아매고 누군가의 손에 그 줄을 쥐여주었던 경험, 꽁꽁 숨겨두고 싶었던 가슴 아픈 그 불안의 경험이 위의 문장으로 하여금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리엄은 현대인들의 불안 형상을 정확히 반영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정확히는 '해명'하기 위해 상대방을 기다린다. "버렸던 것들, 쓰지 못한 것들, 아직 못한 것들"에 대한 '자기-수치심'을 해명하고 "미리엄 같은 사람이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라는 '자기-효능'을 타인으로부터 (재)확인받기 위해, 자신의 가치를 입증받고 수용받기 위해. 따라서 '나'(타인)가 오지 않으면 그는 그 수치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겠거니와, 그 효능을 되찾을 수 없다. 고독이라는 일련의 자기-이해 과정을 거치지 아니하고 타인에게 자기규정을 의탁하는 것이다. 삶의 주체성을 스스로 박탈시킨 그의 가치는 그러므로 '나'의 반응에 따라 좌우된다. 그런 점에서 '미리엄-나'의 관계에서 미리엄의 위치는 '말콤-미리엄'에서의 말콤의 위치와 상응한다. 미리엄은 말콤의 주인으로, 말콤은 온종일 미리엄을 기다리고 미리엄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개로서 누려야 할 삶의 일부를 포기"한다. 말콤의 삶의 주인이 미리엄인 것처럼 미리엄의 삶의 주인은 '나'이다. 말콤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미리엄의 삶은 따라서 개 같은 삶이다. 그 삶은 (자기 의지에 의해) 시작'한' 것이 아닌, (타인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첨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어느 때보다 시작'된' 삶을 살고 있다. sns를 통해 자기 삶을 전시하고 그 삶에 대한 타인의 긍정적인 반응('좋아요'와 팔로워 숫자 등)을 기대하면서 오직 그것을 위해 '의식적'이고 '선택적'으로 일상을 공유하고 실제적 자신의 모습, 즉 '실존적' 자기 모습을 방치한다. 타인의 반응이 내 삶의 양식을 결정하게 내버려둔다. 문제적인 것은 여기서 타인은 '내가 얼마나 멋진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증명의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타인의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너무 쉽게 그들을 미워해 버리고, 반응이 긍정적이면 또 너무 쉽게 사랑해 버린다. 빠르고 반복적으로 변주되는 감정 속에서 지쳐버린 자아는 당장의 휴식을 위해 타자에의 의존을 택한다. 불안을 즉각적으로 해소해 주기 때문에 의존하지만, 의존하기 때문에 불안하다. "뺨을 후려 맞아도 자꾸만 돌아오게 되는 이곳"은 그러므로 불안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디스토피아의 풍경이다. 그곳에서 우리의 삶은 보란 듯이 참혹해진다. 배시은의 시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한 사람들」은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우리의 강박증적인 내면 상태와 그 징후를 정확히 짚어내면서 그에 대해 시인이, 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처방을 내리고 있다. 시를 쓰지 않고 있으면서 생각한다. 내가 쓴 시를 사람들이 읽어주면 좋겠다고. 아직 쓰지 않은 시를 사람들이 미리 읽고 있으면 좋겠다고. 사람들이 미리 읽고 있는 나의 시를 훔쳐보고선 옮겨 적고싶다. 재빠르게 적으면 감쪽같을 거라고. 시간의 장난 같은 거라고.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한 사람들. 사람들이 미리 읽고 있는 나의 시 제목을 옮겨 적었다. 이상하다. 나라면 이런 제목을 짓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만 사람들은 일찍이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한 사람들을 읽고 있다. 이미 벌어진 일은 항상 그런 모양이라는 듯이. 나는 여행을 가지 않는 대신 여행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는 그것으로 여행을 대신한다. 나를 포함하여 여행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여행 가는 대신에 다른 것을 한다. 어느 곳으로도 이동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이 있을 수밖에 없는 그곳에 앉거나 눕거나 서서 그냥 있는다. 그냥 있는 것이 움직이는 것을 대신한다. 아무것도 깨닫지 않는 것이 깨달음을 대신한다. 이상하다. 나라면 여기서 연갈이를 하지 않았을 거야. 여기서 시를 끝내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만 시는 이미 끝났다. 시를 옮겨 적는 일은 끝났다. 시를 쓰면서 생각한다. 할 수 있다면 무언갈 만들어야만 한다고. 무언가 만들 수 있는 때는 너무 짧다. 생각을 하고. 단어와 문장 등을 떠올리거나 받아 적고. 고개를 움직이고. 책상에 앉고. 신체 부위의 기능을 사용해 창작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순간은 매우 희소하며 예상만큼 충분히 남아 있지 않다.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하다는 것을 이 시는 알고 있다. 그것이 시의 효용이다. - 배시은,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한 사람들」 부분, 『창비』 2024년 가을호 "사람들이 미리 읽고 있는 나의 시를 훔쳐보고선 옮겨 적고 싶다"는 바람은 다시 말해 독자 마음에 쏙 드는 시를 쓰고 싶은 시인의 소망이다. 그러나 옮겨 적은 시는 어쩐지 제목부터 시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의 마음에 드는 것이 나의 마음에는 들지 않을 때가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그 순간에 우리는 기로에 선다. 네 마음이냐, 내 마음이냐. 당신이 시작'된' 삶을 살고 있다면 선택은 물론 전자일 것이다. 그리고 전자를 선택하면서 우리는 자신의 퍼스낼리티를 잃어가고 이윽고 모호한 정체성과 동시에 끊임없는 불안을 경험한다. 위의 시는 그것을 여행에 비유하고 있다. 여행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 무엇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사람은 여행조차 갈 수 없고, "어느 곳으로도 이동할 수 없"다. 여행을 가는 대신에 "자신이 있을 수밖에 없는 그곳에 앉거나 눕거나 서서" 그 자리에 "그냥" 있을 뿐이다. 휴식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잘 쉬는 사람과 잘 쉬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본인의 취향과 호오를 잘 아는 사람과 그것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다. 타인에게 삶의 목줄을 내어준 사람에게 휴식이란 그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이다. 잘 쉬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불친절하다. 자신에게 불친절한 사람이 건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남들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때때로 친절은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의 방어 기제로 드러난다. '건강하지 않다'는 것은 실존적인 '나'의 상태이고, '친절하다'는 것은 사회적인 '나'의 모습이다. 건강한 사람은 친절하지만 친절한 사람은 건강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사회적인 모습이 중요한 우리는 건강하지 않아도 건강한 '척' 친절하다. 이때 친절은 건강하지 않은 마음을 숨기고 싶은 일종의 방어 전략으로 쓰인다. 어쩌면 건강하다고 자신을 속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실존적인 상태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사회적인 모습으로 치장하는 것이다. 당신의 상태는 이제 아무도 진단할 수 없다. 허나 시는 알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하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이 시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당신이 스스로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심급의 기회일지 모른다. 시가 응시하고 있는 사실을 응시해 보자. 때로는 누군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된다. 그 '누군가'는 나 자신이 될 수 있다. 사실 시는 진단하거나 처방하지 않는다. 기꺼이 고독의 기회를 내어줄 뿐이다. 바로 "그것이 시의 효용이다." 삶을 응시하고 다시 한번 되돌아보면서 견고한 삶을 살고 싶을 우리에게 고독이라는 자기-이해 과정은 이제 건너뛸 수 없는 삶의 발달과업이다. 견고하다는 말은 빈틈없이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빈틈 있음'마저 기꺼이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이다. 당신의 약점도 당신이다. 고독은 그러므로 집요하게 약점을 파고들어 기꺼이 '나' 자신을 승인하게끔 한다. 신이인 「새」는 그것을 딱따구리에 비유하면서 약점이 받아 온 그간의 오해를 풀어낸다. 2017년 2월 3일 딱따구리를 데리고 있다. 이것은 내 약점이다. 딱따구리는 어디든 구멍을 낼 수 있으니까. 사람의 머리통에도. 딱따구리는 내 머리 옆쪽에 구멍을 뚫어주었다. 그건 정말이지 환상적인 사고였다. 귀가 생겼다. 딱따구리가 어찌나 청명하게 나무문을 쪼고 다니는지가 다 들렸다. 난 비로소 듣는 사람이 됐다. 나의 방문은 말할 줄 몰랐다. 내가 듣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방문은 딱따구리를 통해 내게 말을 전할 수 있다. 나는 그걸 즐겁게 들을 수 있다. 딱따구리가 부리를 사용하는 이유, 날 즐겁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이나 벽 또는 모자걸이의 말을 발굴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멍을 뚫기 위해서, 자기 몸이 통과하기에 충분한 길을 내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 내가 가진 견고한 것에는 모두 구멍이 나 있었으며, 딱따구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 어쩌면 딱따구리는 도망간 게 아닐지도 몰라. 아예 내 안쪽으로 들어온 거야.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딱따구리가 느껴질 수는 없어. 이 느낌에 대해 나 여전히 말을 멈출 수 없어. 가장 깊숙한 곳에 너 잘 살아 있어. 집인 줄도 모르고 흔들렸던 집이 너를 선명하게 품고 있어. 구멍으로 볕과 공기가 들이닥쳐. 너 거기 있구나. 덕분에 나는 구석구석 파여가며 안쪽이 하는 말을 받아쓸 수 있게 됐다. 비로소 쓰는 사람이 됐다. - 신이인, 「새」 부분, 『문학과 사회』 2024년 가을호 딱따구리는 약점에 대한 절묘한 표상이다. 그것은 "어디든 구멍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약점이 될 수 있고, 또 그러한 이유로 약점이 될 수 없다. 인식의 층위에서 그가 뚫어낸 구멍이 메워야 하는 '어떤 것'이라면, 그것은 당신의 약점이 될 수 있다. 반면에 그 구멍이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라면, 그것은 당신의 약점이 될 수 없다. 눈, 코, 입, 그리고 귀라는 구멍이 당신의 약점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어디든' 존재하는 그 구멍이 통로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딱따구리(약점)에게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은 'where'이 아니라, 'why'일 것이다. 딱따구리는 '왜' 구멍을 만드는가? 그것은 "날 즐겁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이나 벽 또는 모자걸이의 말을 발굴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멍을 뚫기 위해서, 자기 몸이 통과하기에 충분한 길을 내기 위해서"이다. 즉 딱따구리가 구멍을 내는 이유는 '너'가 아니라 그 자신을 위해서이다. 어쨌든 약점은 상대적인 것이라서 '너'가 존재하는 순간에 탄생한다. '너'를 즐겁게 하기 위해 뚫은 구멍은 '너'가 즐겁지 않으면 메워야 하는 어떤 것으로 전락하고 바로 약점이 된다. 그 순간에 그것은 숨기고 싶은 치부, 떼어내고 싶은 악성 종양으로 우리의 삶을 옥죄인다. 약점에 대한 오해는 여전히 '너'의 시선에 얽매여 있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why'를 던지는 순간, 시선은 '너'에게서 '나'에게로 옮겨지고 약점에 대한 오해는 곧 이해로 변모한다. 우리가 가진 약점의 형태가 어떠하든 그것은 고독으로 진입하는 하나의 창구일 수 있다. 구멍 없이 어떻게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겠는가. 안에 들어가 보지 않고 어떻게 밖을 내다볼 수 있겠는가. 시인은 말한다. 약점은 '나'를 이해하는 고독의 진입로가 되고, 이윽고 뚫린 길은 '너'라는 또 하나의 세계를 이해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그렇게 우리는 견고해진다. "견고한 것에는 모두 구멍이 나 있"다. 고독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황홀감이다. 고독이 거듭될수록 성장하는 고독'력'은 당신이 삶을 영위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고독이 아니라 고독하지 않는 것이다. 구원은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 계절의 시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1) 류호인, 「정신분석학: 존재에 대한 물음 : 실존적 불안과 자유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소고」, 『현대정신분석』, 2024, 제26권 제1호.

계간 청색종이 정원 고독불안자기이해실존키르케고르 2024
정원 그럼에도, 다시 한번, 야생으로

1. '너'가 존재하는 한 '나'는 단속된다. 너는 나의 복장을 단속하고, 도덕성을 단속한다. 그리고 표정과 감정을 단속한다. 아니, 사실 너는 나를 단속하지 않는다. 다만 '너'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의 불안과 내면의 유약함이 '나'를 단속한다. '너'의 시선 속에 사로잡혀 출현한 '나'는 그 시선에 대상화된다. 곧 자기 고유의 절대적인 자유는 균열을 일으킨다. 한편 '너'는 끊임없이 태어날 것이기 때문에 '나'는 끊임없이 단속될 것이다. 타자에 의해 대상화되지 않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그 시선과 투쟁해야 한다. 개인의 실존적 차원에서, 타자의 시선에 억압되었던 자기의식을 회복하고 자기효능을 되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각자 진정한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타자와 그 시선의 억압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것에 억압된 자신을 객관적으로 응시해야 한다. 응시는 똑바로 본다는 말이다. 똑바로 봐야지 똑바로 안다. 반성의 지평에서 출현한 시는 따라서 인간의 삶을 무엇보다 객관적으로 응시한다. 그리고 타자를 직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직시함으로서 삶의 오류를 발견하려는, 그런 시가 있다. 202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노이즈 캔슬링」과 함께 출현한 윤혜지는 첨단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삶에 기꺼이 구식(舊式)의 삶을 틈입시킨다. 이윽고 그것은 타자의 시선 아래 구식, 혹은 비극으로 취급될 우리 각자의 진실한 꿈과 그 미래를 구출한다. 그런 점에서 윤혜지의 시작(詩作)은 그 시선과의 투쟁의 시작(始作)일 것이다. 그 시선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그리하여 구식의 삶, 야생의 삶을 견인하기 위해, 시인은 먼저 그것을 응시한다. 그가 그려나간 궤적은 자기의 존재가 타자의 시선 아래 짓눌리고 밀려났던 경험을 면면히 보여준다. '나'의 침대가 아니라 "남의 침대에 너무 오래 누워 있었"(「너무」)음을 고백하면서, "고개를 쳐들"고 다양성이 말살된 "하늘을 뒤덮은/보급형 드론들"(「언캐니」)을 똑바로 바라본다. 바야흐로 "내가 발을 갖고 있었구나 내 발로 나를/옮길 수 있"(「근사」)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인은 "해변에 가득한 돌을 골라"(「희고 흰 빛」)내듯, '타자의 시선'이 아니라, 온전히 '자기의 시선'으로 고유한 자기의 꿈과 그 정체성을 확보해 나간다. 지금 살펴볼 「사로잡힌 세계」에서 시인은 자기의 세계가 타자의 세계에 사로잡힌, 그 세계를 기꺼이 응시하면서 자신의 유약함을 진단한다. 아무 때나 전화하고 싶어서 연인을 만들었어요 굴착기를 좋아하는 사람 병원 침대에 누워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자신이 부순 어떤 마을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 그것 참 쓸쓸하군요, 하며 웃다가 병이 깊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엔 저수지에 가라앉은 목각 인형을 건져 올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굴착기 끝에 닿은 인형의 마디마디가 부러져 나무 조각에 불과해져 버렸다고요 나도 인간의 형체가 바닥났어요 그냥 조그맣고 쪼글쪼글한 조약돌일 뿐이에요, 라고 하자 그는 달걀을 깨뜨리지 않을 만큼 얌전하게 내 어깨를 다독여주었습니다 뜨겁고 달고 부드러운 것을 먹이다 포기한 사이 모든 것을 으스러뜨릴 수 있는데도 모든 병을 긁어낸 듯 말끔하게 나은 것만 같아 그가 좋아하는 것을 타고 함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 「사로잡힌 세계」 중에서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그는 병실의 적막이 두려운지, 병태의 실감이 두려운지, "아무 때나 전화하고 싶어서/연인을 만들"었지만 연인의 이야기로 무성한 통화 내용은 그의 "병이 깊어지"게 만들 뿐, 적막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하물며 연인의 이야기는 "그것 참 쓸쓸하"다. 전화하고 싶다는 말은 일방의 청취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쌍방의 '대화'를 하고 싶다는 말이다. '너'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얽히고설키면서 '우리'의 이야기가 탄생하는 것. 한편 일방적인 청취를 당하고 있던 '나'는 결국 "인간의 형체가 바닥났"다. 타자에 의탁해 상황을 모면하고 모종의 감정을 유예하려던 계략은 종국에 타자로 하여금 '나'를 "달걀도 깨뜨리지 않을 만큼 얌전하게" 다루어야 하는 유약한 존재로 치부한다. 아직 "모든 것을 으스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몸은 회복되지 않았지만, 유약해진 '나'는 강력해진(타자에 자기를 의탁하면서 타자는 '나'보다 강력한 존재로 부상한다) 타자 앞에서 그저 "모든 병을 긁어낸 듯 말끔하게 나은 것만 같"다고 말한다. 시인의 세계는 그야말로 타자에 의해 "사로잡힌 세계"가 된다. '나'가 아니라, "그가 좋아하는 것을 타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면서 세계의 편위는 더욱 명백해진다. 이렇듯 윤혜지는 자기의 세계가 타자의 세계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그 유약함을 직시한다. 이제 그는 그 시선에 억압되었던 자기를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데 기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 시작한다. 2. 어제 꿈에 나온 언니는 오갈 데 없는 나를 받아주었다 몸집이 작고 짧은 데님 바지를 입은 언니 요를 펴고 잠든 나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다른 이에게 물어보았다 얘는 언제쯤 깨어날까 냉장고에서 내 몫의 아이스크림을 꺼내 놓고 싶어서, 녹을 게 분명한데, 그 수고조차 들이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느껴져 꿈속에서도 좋았다 마음은 생생하고 그윽하고 선한 사람보다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문장이 적힌 책을 읽었다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꿈속에 등장한 사람들은 당신의 그림자입니다 그렇다면 언니도 하염없이 그림자구나 우리가 나무이고 지금 서성이는 저들이 드리워진 잎사귀인 것처럼 (…)언니가 흐느꼈고 우리들은 꿈을 지우다 부러뜨리다 뭉개다 꾹꾹 누르고 반죽하다 많은 것들이, 퍽 많은 것들이 나왔다 간혹 용서에 관한 이야기도 했지만 그 생각은 연약해서 곧 다른 걱정, 그러니까 관습적인 생각들로 덮어졌다 언니는 어른이었다 한 종류의 울음밖에 없는 인간 누군가 지친 문을 열고 음식을 내왔다 이것 좀 먹어봐 여름 야채를 가득 넣고 키슈를 구웠어 랩을 씌워둔 키슈는 오래되었고 길이 잘 들어 온순하다 이것을 만든 엄마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텐데, 저렇게 곯아떨어졌는데 키슈는 영문도 모르게 포실하구나 싶어 울었다 사실 선한 사람과 온전한 사람이 같지 않다는 이야기는 엄마의 맑은 탕이다 모두가 조금씩 떠먹고 떠난 자리에서 오가는 사람을 헤아려보는 사실 이 부분은 망친 시에서 오려온 것이다 상해버린 삶에서 시를 도려내듯 - 「그림자 언니」 중에서 "꿈속에 등장한 사람들은 당신의 그림자"라는 점에서 "오갈 데 없는 나를 받아주"고, 재워주고 내가 "수고조차 들이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진 "어제 꿈에 나온 언니"는 시인의 그림자, 곧 자신의 일부분이다. 꿈속의 나의 수고를 기꺼이 대신해 주려는 꿈속의 언니, 그러니까 시인의 그림자는 그러므로 '온전한 사람'보다는 '선한 사람'에 가까울 것이다. 나는 마음이 불안할 때 특히 삼시세끼를 꼬박 잘 챙겨 먹고, 7시간 이상 숙면을 취하며, 1시간 이상 유산소 운동을 하는데, 그렇다고 누가 나를 선한 사람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무거운 짐을 들고 있을 '너'를 위해 그 짐의 일부를 대신 들어주고, 사무실 바닥에 커피 쏟은 '너'의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을 헤아려 그것을 대신 닦아주고 있을, 그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선하다고 할 것이다. 기실 선한 사람은 타자로의 사려 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반면 온전한 사람은 타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잘 돌보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자일, 선한 사람이 등장하는 그 "꿈을 지우다 부러뜨리다 뭉개다 꾹꾹 누르고 반죽하"는 시인의 모습을 미루어 볼 때, 그는 아마도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었나 보다. 여태 선한 사람으로 살았을 시인의 삶은 "랩을 씌워둔 키슈"처럼 "길이 잘 들어 온순하"고 누르면 푹하고 꺼질 것처럼 "포실하"다. 시인은 그 삶이 "상해버린 삶"이라고 말한다. 온전하지 못한 '그 삶'을 말하며 "울었다"는 그를 두고 혹자는 삶에 대한 후회라고 볼 수 있겠으나, 나는 이 울음이 이제라도 타자의 시선에 굴복하지 않는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에서 오는 벅차오름이라고 확신한다. 회피해버릴 수도 있을 '그 삶'을 객관적으로 응시한 끝에 시인은 자기 삶의 방향성을, 진정한 자기 정체성을, 그렇게 확립한 것이다. 3. 타자에 의한, 타자를 위한, 타자로 인한 삶에서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시인의 노력은 다만 '자기 삶' 하나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삶으로 확장된다. 그는 타자로부터의 모든 인간의 자유를 꿈꾼다. 내가 아무리 '너'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 한들, '너'가 '나'의 시선을 의식해서 '너' 자신을 단속한다면 '나'는 또한 그 사실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도 나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나'는 전연 자유로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맥락의 생활」은 그 사실을 기저에 두고 이 시대 아이들의 삶을 응시하면서 그것의 오류를 들추고 있다. 거대 쇼핑몰의 한 쪽에서 우리는 아이스링크의 인공 얼음을 지치는 우리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빙질이 훌륭하다 숲의 끄트머리에 있던 그 호수가 아니니까 금이 가도 아무도 죽지 않을 것이다 여기저기 있는 불운 따위 잊어버리고 우리는 남은 커피를 마시고 서로 좋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곳은 사랑이 넘치고 훈훈해서 금방이라도 아무나 커버릴 것 같다 (…) 아이스링크의 유리벽 너머로 부모라고 주장하는 한 떼가 이야기의 도입부를 잊어버렸다 (…) 너는 내 에피소드를 들어도 웃지 않는다 울어준다 - 「고맥락의 생활」 중에서 위 시에서 시인은 아이들의 삶에는 크게 두 가지 세계관이 있다고 말한다. 즉 거대 쇼핑몰 한 쪽의 "아이스링크"와 "숲의 끄트머리에 있던 그 호수"이다. 물론 위 시에 등장하는 "우리의 아이"가 살아가는 세계는 전자의 것이다. "빙질이 훌륭한" "인공 얼음"으로 만들어진 그곳에서 아이는 "여기저기 있는 불운 따위"는 고민하지 않는다. 거대 쇼핑몰의 아이스링크는 이미 어른들에 의해 단단하게 건조(建造)된 안전한 얼음판일 테니, 아이는 어떤 중대한 고민 없이 그 위에 오를 것이다. 더구나 "아이스링크의 유리벽 너머"에는 언제든 아이의 불운을 쫓아줄 "부모라고 주장하는 한 떼"가 있다. 곧 나보다 강력한, 어른이라는 타자가 만들어 놓은 세계 위에서, 부모라는 타자의 시선 아래, 아이는 자기 주체성을 잃어간다. 한편, 후자의 "그 호수" 앞에서 아이는 생각한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얼음판이 깨지면 죽을 것이고, 깨지지 않으면 살 것이다. 아이는 또 생각한다. 그 위험을 감수하고 얼음판 위에 오를 것이냐, 오직 살기 위해 다시 숲으로 돌아갈 것이냐.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어떤 결정이든 그것은 아이의 독자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이스링크"에서의 생활은 어떤 배경지식이 필요 없고 단순하게 관계에 의존하는 '고맥락의 생활'이다. 반면 "그 호수"에서의 생활은 가치 독립적이고, 자기 확신에 의한, 주체적인 '저맥락의 생활'이다. 시인은 이미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는 고맥락 문화의 오류를 응시하면서, "이야기를 들으면 울도록 만들어"진 보급형 로봇(「사랑과 공」)처럼 사라져가는 아이들의 주체성과 그 태도로 하여금 그들의 자유가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통제되고 단속될 것을 염려한다. 이처럼 시인은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속박되고 통제되고 있을 인간의 삶을 객관적으로 응시하면서 끊임없이 그 시선과 투쟁한다. 4. 그리고 시인은 말한다. 각자의 진정한 정체성 확립을 위해, 타자의 시선에 억압되었던 자기의식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각자 "야생"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무덤 위는 미끄럼 타기 좋아 (…) 한 번도 온전하게 겹치지 않는 눈송이 눈송이 손가락 위로 하나씩 받아 혀로 가져간다(…) 무덤가에서 눈을 뭉치고 굴린다 여긴 잊어버려 이제 넌 오지 않을 거야 다른 것이 될 거야 (…) 가방을 부려 놓으면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사랑하던 것들이 있고 이제 그것들은 죄다 미니어처처럼 보인다 이렇게 시간이 가는 건가 봐 대답 대신 눈송이 - 「야생의 눈사람」 중에서 위 시에서 시인은 무덤 위에서 미끄럼 타던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상한다. 펄펄 내리는 눈송이를 "손바닥 위로 하나씩 받아 혀로 가져"가기도 하고, "무덤가에서 눈을 뭉치고 굴"리기도 한다. 시간이 가면서 유년의 기억들이 이제는 "죄다 미니어처처럼 보"이는 지금, 그는 다시 한번 "대답 대신 눈송이"를 말한다. 온전한 사람으로 살고 싶을 그는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눈송이를 감각하던 그때, 그 야생의 시절이 그리운 것이다. 시에서 아홉 번이나 "눈송이"를 언급한 것은 야생의 꿈, 그러니까 자신이 진정으로 순수하게 좋아하는 일을 다시 한번 꿈꾸고 싶은 그 열망에의 외침일 테다. 그리고 타자의 시선과 현실에 굴복하지 않은 끝에, 우리 곁에 시인 윤혜지가 있다. 윤혜지의 시는 분명 우리를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제 그것을 동일화하고 내면화하는 능력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과연 무엇일지 마음을 솔직하게 진단하고 타자의 시선에 잠식당하는 진실한 꿈을 구출하자. 기실 그것은 '나'와 '너', 우리 모두의 자유를 보장할 것이다.

계간 파란 정원 단속정체성시선타자고맥락저맥락윤혜지 2024
정원 형식을 개척하는 형식 : 이지아, 『아기 늑대와 걸어가기』

1. 『아기 늑대와 걸어가기』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이들"(「운명과 자두와 힘」)이 있다. 형식을 가져오되 그 형식의 기존 관념을 깨려고 한다는 시인의 한 인터뷰 기사를 미루어 보았을 때, 그는 기존의 (서정)시 형식과는 많이 다른, 아주 오래된, 잠들어 있는 어떤 시의 형식, 그러니까 과거라는 시간에 잠재되어 있는 서사시와 극시의 형식을 깨우려고 한다. 아니, 그것은 이미 깨어 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이들"처럼. 잠들어 있는 것은 우리다. 시인은 잠들어 있는 우리를 깨우기 위해, 그것으로서 '시'를 가호하기 위해 시의 본질에 천착한다. "레고 놀이를 만들 때보다, 만들고 나서, 해체할 때가 제일 좋았다"는(「투영하는 물질들」) 시인은 단단하게, 혹은 답답하게 굳어져 온 시의 형식을 해체하고 분해하며 그 본질 찾기에 매진한다. 본질을 잊은 건축은 언젠가 반드시 내려앉는다. '시'라는 장르의 소멸을 잠자코 지켜볼 수 없는 시인은 그러므로 시의 본질을 찾으려고 애쓴다. 「운명과 자두와 힘」은 서사시의 형식으로 그 본질 찾기 여정에 우리를 초대한다. '나'는 "어떤 집안을 케어하고 그들이 원하는 심부름이나 애완동물을 돌보는 일"을 하는 하녀로서 크로스베너 집안의 제일 막내인 '폴'을 돌본다. 폴은 "언제 기분이 나빠져서 폭발할지, 언제 울지, 언제 소리를 지를지 정말 예상하기 힘"든 네 살배기 떼쟁이 아이다. 하지만 '나'는 폴이 울면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화자를 '시인'이라고 해보자. 시인에게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을 선사하는 것은 세상에 '시'밖에 없다. 남자와 여자의 육체적 결합으로 여자의 몸에 아이가 배고, 출산하는 것처럼 시인이 세계를 만날 때 세계의 것이 그 몸에 육화되고, 시가 탄생한다. 곧 시인과 시의 관계는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 다름없다. 그러므로 시가 아프면 시인도 아프다. 시가, 시가 되기 위해서 기표는 기의를 필요로 하고, 기의는 기표를 필요로 한다. 시가 아프다는 것, 그러니까 '아픈 시'는 그 둘이 동등하지 못한, 한쪽으로의 편위를 가진 시다. 인간의 정서나 세계의 이미지는 가늠할 수 없이 쏟아질 "윤곽의 폭포들"이지만 그것을 감당할 오늘날의 시의 형식은 가늠할 수 있는 것이라서, 어떤 것들은 "쏟아지지 못"할 때가 많다(「생강이 된다는 것」). 그것들은 "자주 어딘가로 떠나자고 울어 재"끼는 폴처럼 대개 원초적이고, 예측 불허한 정서 혹은 이미지일 것이다. 오늘날 단단하게 굳어진 (서정)시의 형식이 담아내지 못할 그 '나머지' 정서들, 어쩌면 소외되었을 이 정서들은 "아직 기저귀도 떼지 않아, 뭘 쌌는지" 모를 "뭉툭한 엉덩이" 같은 미지의 감각이다. 시인은 이 방대한 감각을 어떻게 돌봐야 할까. 무리하게 그 형식에 욱여넣을 수는 없을까. 아니, 그러면 "폴이 잠을 못 잔다. 폴이 울면 모두가 깨어나고 모두가 피곤하고 모두가 분노하고 모두가 나의 책임으로 돌린다. 모두가 나를 공격한다". 그렇다면 '나'는 폴이 원하는 열매를 가져다주면 된다. 곧 시인은 쏟아지고 싶지만 쏟아지지 못하는, '윤곽의 폭포들'이 원하는 시의 형식을 가져오면 된다. 화자는 결국 폴을 위한 "마법의 열매"를 획득하고, 이 시는 다 쓰여진 것만으로 그 과제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열매를 찾는, 곧 내용에 걸맞는 운명적인 형식을 찾는 이 여정은 바로 '서사시의 형식'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인과 함께 서사시의 형식을 찾아가는 한편, 역설적이게도 이미 서사시의 형식과 당면하였다. 서사시의 형식으로 서사시를 발견한 것이다. 2. 중요한 점은 잠재된 형식의 기침이 다만 부활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인은 생경한 형식을 깨우지만 그것의 기존 관념을 답습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서사시는 신이나 영웅을 중심으로 하여 쓰이지만, 그의 시는 비주류의 세계를 넘나든다. 앞서 살펴본 시의 화자는 물론 영웅이 아니라 '하녀'였다. 서사시의 형식으로 쓰인 또 다른 시편 「조약돌 소극장」의 화자도 물론 주류에서 버려진, 한 소극장의 무대 바닥을 닦는 서른 살의 청소부이다. 그러나 "우리 극장은 딱히 어떤 소재나 주제를 따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그의 시에서 중요한 것은 소재가 아니다. 비주류의 세계가 서사시라는 거대한 형식과 부딪고 갈등하면서 탄생한, 고유한 혹은 고귀한 서사가 귀중한 것이다. 서사시의 형식으로만 추출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 그러니까 형식의 지평이 넓어지면 '시'라는 장르가 감당할 수 있는 세계의 지평이 넓어진다. 시인의 다른 세계를 견인하는 힘은 다른 형식을 차용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극시의 형식으로 쓰인 이 시집의 마지막 시편 「번역 불가능한 혼합인격과 극시」는 서사시의 형식과는 또 다른, 낯설고 기이한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면서 시의 지평을 넓혀간다. 1. 목화 인간 1 (독백형식) 텍스트,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생각 내 식탁 위의 바게트, 바게트 연구, 왜 오늘의 아침 식사는 나무보다 바게트에 더 관심이 가는지 행여, 텍스트의 구조와 뼈대, 얼마든지 비극이 될 수 있다는 생각 (…) 나는 감정이 변할 때마다, 몸에서 목화꽃이 피어나 내가 목화꽃을 얼마 안 가지고 있는 건 감정이 몇 개 안 된다는 것뿐. 감정의 피부병이라고 하지. 의학에선 여기저기에서 나는 추방되었어. 계속 쫓겨 다녔지. 전염병처럼. 하지만 여기선 나를 목화인간이라고 불러…… 이곳은 내가 사는 육지의 남쪽 끝. 버려진 항구 도시야. 정부에서는 우리 도시를 관리하지 않아. 유령의 도시라나. 들어오면 모두 죽는다는 곳. 하지만 말이지. 여기 사는 사람들은 참 정상이고 누구보다 평화주의자이며 배려심이 깊어. - 「번역 불가능한 혼합인격과 극시」 부분 이 시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독백형식으로 등장하는 '목화인간'은 "감정의 피부병"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추방되었다. 하지만 "여기", 말하자면 '극시'라는 형식 안에서 그는 "목화인간"으로서 세계에 머무르고, 자기의 이야기를 발화한다. 마찬가지로 이어지는 에피소드에서 시인은 '동생은소금구이, 동생은생선구이, 블루문, 얼룩소, 컵, 북극곰 스너글러'와 같이 현실에서 도무지 찾아볼 수 없을 전혀 다른 세계의 존재들을 등장시킨다. 시인의 고유한 상상력에서 비롯된 그들은 각자 나름의 고유한 이야기를 가지고 발화한다. 극시의 형식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일한 무대이다. 응당 그러하겠지만, 그들의 존재는 물론 시인으로부터 파생되었다. 따라서 그것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은 기실 인간의 내면을 성심껏 살피는 일이다. 다시 말해, 극시는 어렴풋한 시인의 내면의 목소리를 보다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들어주는 형식이다. 그런 점에서 그 형식은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인간의 내면을 일부 반영할 수 있다. 우리 내면에 피어나는 "번역 불가능한 혼합인격"의 목소리는 극시로 말미암아 미미하게나마 번역된다. 시의 본질과 인간의 본질이 다르지 않다면,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살피는 극시의 형식은 무엇보다 시의 본질에 가닿는다. 내가 이 시의 내용보다 형식에 집중한 이유는 번역 불가능한 혼합인격들의 이야기를 명백히 번역할 수 없거니와, 그들의 성질은 아무렴 하나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곧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을 그리워하고, 인간을 염려하고, 인간을 기다린다. 그것은 물론 시인의 가장 원초적인 마음일 것이다. 따라서 이 극시는 상당히 희극이다. 시집을 다 읽고 나면 어쩐지 마음이 든든하다. 그래도 내가 죽는 날까지는 시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서사시와 극시의 형식은 여전히 낯설지만, 그것은 '시'의 존속을 위해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시를 결박하고 있는 형식에 대한 편견을 허물어뜨리자. 당신이 정녕 시를 사랑한다면 그 본질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노력은 기꺼이 고독한 길을 걷고 있는 시인의 비극이 희극이 되는 그날까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계간 자음과모음 정원 이지아서사시극시독백형식본질 2024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