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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명 설정식
  • 영문/한자명 薛貞植
  • 홈페이지
  • 소개

    이명찬(문학박사)

     

    설정식의 생애에 대해서는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해방기 삼년간 활발한 문학 활동을 했으나 자진 월북했고,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 북한에서조차 처형당했기 때문이다. 남북한의 어디에서도 그에 관한 자료 조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바가 없고 연구 또한 마찬가지다. 드물게 행해져온 몇 편의 연구 작업과 회고 문건들을 통해 그의 생애를 재구해 보면 대강 다음과 같다.

     

    설정식은 1912년 함경남도 단천(端川)의 한 중농(中農) 선비 집안에서 태어났다. 중농이라고 자술하고는 있지만, 그가 중국을 거쳐 국내에서 전문학교를 다니고 다시 미국 유학 생활을 했던 이력을 생각하면 그의 집안은 상당한 정도의 재력을 가진 집이었던 듯하다. 8살이 되던 1919년에 서울로 이주해온 설정식은, 농업학교(학교명 미상)에 다니던 1929년 광주학생사건에 연루되어 퇴학당했다. 이듬해 만주 봉천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려 했으나, 만보산 사건으로 한중 양국 학생들간에 충돌이 생기자 북경으로 옮겼다가 1932년 다시 귀경하여 연희전문을 졸업했다. 1936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주 마운트 유니온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명문 컬럼비아 대학으로 적을 옮겨 2년을 더 수학하였다. 1940년을 전후하여 귀국했지만 아무 일자리도 얻지 못하고 독서와 저술에만 매달렸다.

     

    해방이 되고 미군이 남한에 진주해 들어오자 설정식은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민족적인 의미로도 그것을 커다란 기회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연희전문 은사의 권유를 받아들여 미군정청 공보처 여론국장으로 재직하는 한편, 미군정청 과도입법원의 사무차장직을 맡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시기에 그는 공산당의 지하조직에 가담하게 된다. 미국에 대한 막연한 신뢰가 무너진 때문이었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은 “자기네 군사기지가 있는 나라에 대한 관심보다 군사기지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며, “부패와 인권의 억압을 못 본 체하고, 무자비한 독재자 이승만을 전폭적으로 믿고 있”*는 나라였다는 것이다. 미국에 대한 그의 이상주의적 기대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군정청 사임 후인 1948년에는 영자(英字) 신문 <서울 타임즈>의 편집자로 일하기도 했다.

     

    이승만 정권에 의해 시집이 판매 금지처분을 당한다거나 잡지에 연재 중인 글이 게재 중지를 당하는 등의 압박을 받았던 설정식은 1949년 무렵에는 햄릿로미오와 줄리엣 등 셰익스피어 작품들의 번역에 매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인민군에 자원입대하여 월북을 길을 걸었다. 월북 후 그의 행적은 자세히 알 길이 없으며, 1951년 7월 무렵에 개성 휴전회담의 인민군 대표단 통역원으로 일했다는 정도가 알려져 있다. 1953년 8월 김일성이 패전의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부수상 이승엽 일파를 미제 스파이로 몰아 숙청할 때 임화와 함께 처형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는 남북 어디에도 깃들 수 없는 경계인이었던 것이다. 《문장》

     

    *T. 머레이, 「한 시인의 추억」, 《사상계》, 1962.9.

  • 출생일 1912년
  • 출생지 함경남도 단천
  • 주요 장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