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SNS 바로가기 인스타그램 SNS 바로가기 유투브 SNS 바로가기 네이버 SNS 바로가기

작가/필진 상세보기

뒤로가기

  • 작가명 단종
  • 영문/한자명 端宗
  • 홈페이지
  • 소개

    이대형(문학박사)

     

    단종(端宗, 1441-1457)은 문종(文宗)과 현덕왕후(顯德王后)의 아들이며, 비는 정순왕후(定順王后)이다. 1448년 8세 때 왕세손(王世孫)에 책봉되고,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왕세자(王世子)로 책봉되었다. 1452년 5월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훙(薨)하자,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다. 문종의 고명(顧命)을 받은 영의정 황보인(皇甫仁), 좌의정 남지(南智), 우의정 김종서(金宗瑞) 등이 측근에서 보좌하였다.


    1453년 10월 단종의 작은아버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이 권람(權擥)과 한명회(韓明澮)의 계책에 따라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살해한다. 이들의 죄명은 안평대군(安平大君)을 추대하여종사(宗社)를 위태롭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른바 ‘계유정난(癸酉靖難)’이다. 이로써 안평대군은 사사(賜死)되고 정치의 실권은 수양대군에게 넘어간다. 수양대군은 김종서의 천거로 함길도(지금의 함경도) 도절제사가 된 이징옥(李澄玉)을 파면시킨다. 이에 비로소 정변을 알게 된 이징옥은‘대금황제(大金皇帝)’라 칭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소멸되었다.

     

    1455년 윤6월 수양대군이 왕의 측근이자 자기 동생인 금성대군(錦城大君) 이하 여러 종친?궁인 및 신하들을 모두 죄인으로 몰아 각 지방에 유배시키기를 청하자, 하는 수 없이 그대로 따랐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단종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는, 상왕(上王)이 되어 수강궁(壽康宮)으로 옮겨 살았다.


    1456년 6월, 집현전 학자로서 세종의 신임이 두터웠던 성삼문(成三問), 형조참판 박팽년(朴彭年), 직제학 이개(李塏), 예조참판 하위지(河緯地), 사예 유성원(柳誠源) 등과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成勝)과 무인 유응부(兪應孚) 등은 상왕을 복위시키려고 계획한다. 그리하여 명나라 사신을 창덕궁에 초대하여 연회하는 날, 그 자리에서 세조와 측근 세력을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시키려 하였으나 계획이 어긋나고, 동모자였던 김질(金?)과 정창손(鄭昌孫)의 고발에 의하여 결국 실패한다. 이 일로 죽은 성삼문?박팽년?유응부?이개?하위지?유성원 등을 사육신(死六臣)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권자신(權自愼)?김문기(金文起) 등 70여 명이 이 일에 연루되었다고 하여 처벌을 당하였다.

     

    단종은 이 사건으로 인하여 1457년 6월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고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다. 이해 9월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다시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어 하옥되었고, 단종도 노산군에서 서인(庶人)으로 강봉 된다. 그리고 결국 금성대군은 사사(賜死)되고 단종 역시 죽음을 당하였다. 이후 숙종 때에 가서야 대군(大君)으로 추봉했다가 복위되어 묘호(廟號)를 ‘단종’이라고 하였다.《문장》

  • 출생일 1441년
  • 출생지
  • 주요 장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