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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명 설총
  • 영문/한자명 薛聰
  • 홈페이지
  • 소개

     김유경(문학박사)

     

    설총(薛聰)은 신라 때의 대학자로 이두를 집대성했다. 자(字)는 총지(聰智)이며, 관직은 한림(翰林)에 이르렀다. 육두품 출신이며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경주설씨(慶州薛氏)의 시조로 기록되어 있다.

     

    재주가 많고 경사(經史)에 두루 통했으며, 우리말로 구경(九經: 중국 고전인 아홉 가지의 경서. 『주례(周禮)』『의례(儀禮)』『예기(禮記)』『좌전(左傳)』『공양전(公羊傳)』『곡량전(穀梁傳)』『주역(周易)』『시경(詩經)』『서경(書經)』또는『주역』『시경』『서경』『예기』『춘추(春秋)』『효경(孝經)』『논어(論語)』『맹자(孟子)』『주례』)을 읽고 후생을 가르쳐 유학자의 중요한 중심 계통이 되었다. 그리하여 신라의 10대 현인(賢人) 중 한 사람에 들며, 또 강수(强首)? 최치원(崔致遠)과 더불어 신라의 3대 문장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1022년인 고려 현종 13년에는 유학을 넓힌 데 공이 있다고 하여 홍유후(弘儒侯)라는 시호(諡號)가 추증(追贈)되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그는 천성이 명민(明敏)하여 슬기로웠으며 나면서부터 도(道)를 깨달았다고 하며, 세상에 그의 글이 전해지는 것이 없으며 다만 그 당시 남쪽 지방에 더러 그가 지은 비명(碑銘)이 있으나 글자가 빠져 없어져 읽을 수가 없어 끝내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원효대사(元曉大師), 어머니는 요석공주(瑤石公主)인데 그의 출생에 대해서는『삼국유사』‘원효불기(元曉不羈)’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원효대사가 하루는 거리에서 노래하되, “누가 나에게 자루 빠진 도끼(沒柯斧)를 허락하려나? 내가 하늘을 버틸 기둥을 깎아 볼까나.”라고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뜻을 알지 못하였는데 오직 당시 임금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이 듣고, “스님이 귀부인을 얻어 어진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나라에 매우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 있으면 그 이로움이 매우 크도다.”라고 하여 당시에 과부가 되어 요석궁(瑤石宮)에 홀로 거처하던 공주와 맺어주려 하였다. 이에 관리를 시켜 원효대사를 찾아 요석궁으로 데려 가라 하였는데, 관리가 스님을 찾으니, 스님은 일부러 냇물에 떨어져 옷을 적셨다. 관리가 스님을 데리고 요석궁에 가서 옷을 갈아입게 하게 하여 스님이 그곳에 머물렀고 그 이후에 공주가 과연 잉태하여 설총을 낳았다.

     

    출생일 654?661년 추정

  • 출생지
  • 주요 장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