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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명 서거정
  • 영문/한자명 徐居正
  • 홈페이지
  • 소개

     이대형(문학박사)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달성(達成),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 혹은 정정정(亭亭亭),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권근(權近)의 외손자이다. 조수(趙須)ㆍ유방선(柳方善) 등에게 배웠다. 천문(天文)ㆍ지리(地理)ㆍ의약(醫藥)ㆍ복서(卜筮)ㆍ성명(性命)ㆍ풍수(風水)에까지 관통하였으며, 문장에 일가를 이루었다.

     

    19세 1438년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고, 25세 1444년에 식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일찍이 조맹부(趙孟?)의 「적벽부(赤壁賦)」 글자를 모아서 칠언절구 16수를 지었는데, 매우 청려(淸麗)하여 세조가 이를 보고 감탄하였다고 한다. 31세 1450년에는 중국사신 예겸(倪謙) 등을 맞아 글을 지어 칭찬을 들었다. 36세 1456년 세조 즉위 후 사명(辭命)의 대부분을 찬술하였다

     

    38세 1457년에 문과 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1458년 정시(庭試)에서 우등하여 공조참의 ? 지제교에 올랐다가 곧이어 예조참의로 옮겼다. 세조의 명으로 『오행총괄(五行摠括)』을 저술하였다. 40세 1459년에 왕명으로 정인지(鄭麟趾) ? 신숙주(申叔舟) ? 구종직(丘從直) 등과 함께 사서오경(四書五經)의 구결(口訣)을 정하였다. 41세 1460년에 사은사(謝恩使)로서 중국에 갔을 때 통주관(通州館)에서 안남사신(安南使臣)을 만나 시재(詩才)를 겨루어 탄복을 받았다.

     

    47세 1466년에 발영시(拔英試)에 합격하여 예조참판이 되고, 이어 등준시(登俊試)에 3등으로 합격하였고, 『경국대전』 편찬에 참여하였다. 1467년에 형조판서로서 예문관 대제학과 성균관 지사(知事)를 겸하여 문형(文衡)을 관장하였으며, 국가의 전책(典冊)과 사명(詞命)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51세 1471년에 순성명량좌리공신(純誠明亮佐理功臣)에 녹훈(錄勳)되고 달성군(達城君)에 봉하여졌다. 56세 1476년에 원접사(遠接使)가 되어 중국사신을 맞이하였는데, 수창(酬唱)을 잘하여 기재(奇才)라는 칭송을 받았다. 이해 우찬성에 오르고, 『삼국사절요』를 공편하였다. 다음해 대제학을 겸직하였고, 곧이어 한성부 판윤에 제수되었다. 45년간 여섯 왕을 섬겼다.

     

    『동국통감(東國通鑑, 1485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1481년)』 편찬에 참여했으며, 왕명을 받고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국역(國譯)했다.  『동인시화(東人詩話, 1475년)』, 『동문선(東文選, 1478년)』, 『역대연표(歷代年表, 1478년)』,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1477년)』, 『필원잡기(筆苑雜記, 1486년)』 등을 저술하였고, 문집으로 『사가집(四佳集)』이 있다. 《문장》

  • 출생일 1420년
  • 출생지
  • 주요 장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