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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명 마종기
  • 영문/한자명
  • 홈페이지
  • 소개

    마종기 시인의 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고려해야할 두 가지 존재 조건이 있다. 우선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식민지 시대 최고의 예술가들이었다는 점(그의 아버지는 동화작가이자 출판인인 마해송, 어머니는 무용가 박외선이다.). 그리고 그가 의사라는 점이다.

     

    그는 인텔리 양친 덕분에 일찍부터 예술적 교양체험을 풍부히 할 수 있었고, ‘의사’라는 그의 직업은 그의 시세계에 보다 풍부한 물질적 지적 토양을 제공하였다. 특히 어릴 때부터, 음악회, 전람회 등을 다니면 익힌 예술적 감수성은 그의 시 전반에 흐르는 따뜻한 감성의 향연을 그리 가볍지 않게 만들어주었고, 의사로서의 생활은 그로 하여금 일찍부터 인간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 통찰을 가능하게 하였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인정하듯, 늘 환자의 죽음을 맞이할 마음의 채비가 되어있어야 하는 그의 직업은 그의 시에 비록 두드러지게 외면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의 시의 배면에 흐르는, 인간 존재와 죽음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통찰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그의 시세계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 두 가지 조건은 그의 역사적 체험과 맞물릴 때, 더욱 강고한 내공을 선사한다. 그것은 일제 말기의 대동아 전쟁과,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의 체험 등, 순식간에 한 마을이 몰살되고, 방금 전까지 뵈었던 동네 어른이 하루아침에 싸늘한 시체로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한 10대 초반의 체험은, 그의 예술적 교양이 단지 헛바람이 지나지 않도록, 또한 그의 시가 단지 밋밋한 기교에서 멈추지 않도록 그를 제어한다. 거기다 의대를 다니던 대학 초년병 시절에 겪은 4?19. 흰 가운이 붉은 피로 물들어가도록 수많은 환자를 돌보아야 했던 시절의 체험은 그의 시가 삶에서 멀어져 관념의 유희에 빠지는 것을 막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거기다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미국에서의 삶 역시 그에게 ‘모국어’(언어)에 대한 진지한 인식을 잊지 않게 한다.

     

    그래서였는지, 이처럼 잔인한 인생체험을 두루 겪어야 했던, 39년생 시인 마종기의 시에는 흔히 유랑의 냄새가 난다고 한다. 식민지 시대 동경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돌아온 그가 다시 미국으로, 떠나기까지의 기나긴 여정, 그리고 종종 참을 수 없는 그리움에 돌아오는 조국행의 연속은 그의 세계인식이, ‘진리의 부재와 그 흔적의 현존’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부재하는 현존’으로서의 흔적들 사이를 헤매는 유랑인의 모습을 시인의 존재태로 떠올리게 한다. 거기다 공군재직 중 ‘재경문인 한일 회담 반대 서명’에 참여한 것이 문제가 되어 공군 방첩대에 체포되었던 정치적 경험까지, 아버지의 죽음이후 도망치듯 미국행을 택한 그의 인생 여정은 그의 유랑의식에 보다 의미 있는 존재론적 근거를 더해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경험의 질 속에서 형성된 그의 시세계는 매우 단단하다는 점이다. 중학교 때 만난 평생 친구 황동규와의 인연, 경복고등학교 동창인 김영태와의 우정, 그 외에 대학시절 김병익과의 인연 등은 그의 시세계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짐작하게 한다. 1960년 처녀시집 『조용한 개선』을 시발로, 68년과 72년, 황동규 김영태와 함께 출간한 3인 시집 『평균율』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초기시를 관통하는 것은 자신도 체험했듯, 삶의 고통과 존재성의 버거움을 따뜻하고 지적인 언어로 담담하게 부조해 내는 것이다.  「해부학 교실」 등에서 보이는 존재와 죽음의 관계에 관한 성찰부터, 「연가」연작에서 드러나는 사랑에 관한 존재론적 성찰, 등은 그의 시세계를 쉽게 언어의 조작에 이르거나, 조급하게 구호를 외치는 시들과 변별하게 한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그가 사물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는 해부학의 시체들을 바라볼 때에도 그 사물의 외면을 묘사하는 것보다는 그 사물을 바라보는 시적 자아의 내면적 고통에 초점을 맞춘다. 마음이라는 정서적 양태를 깊이 있는 언어로, 지적으로 부조해내는 것, 그러나 그것이 가볍지 않게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바탕으로 다가오게 하는 것이 바로 그의 시의 미덕이다. 이것은 물론 60년대 소위 문학과 지성의 시단을 이끌었던 황동규, 정현종, 오규원의 시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점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보다 형이상학적 문제에 천착한 데 비해, 그의 시에는 끊임없이 일상의 사물이 등장하면서 삶을 노래하는 구체성이 확보되고 있다.

     

    정과리는 최근의 그의 시에서, 초기 시에서 끊임없이 변주되었던 ‘나’란 존재 의식에서 벗어나 ‘타자의 발견’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 아직도 감각적 감수성이 예민하게 살아있는, 그의 시에서 언뜻언뜻 내비치는 해탈의 경지는 시인의 연륜을 느끼게 한다. 우선 이러한 변모는 우선 견딜 수 없게 밀려드는 존재의 고통을 이겨내게 한 그의 종교의 힘에 의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림그리기를 시작했다/... 어둡고 긴 내면의 길을 핥기 시작했”다고 나직히 속삭이던 그의 초기시에서부터 계속된 그의 지난한 내면의 탐사가 인간의 육체적 고통을 치유하면서, 다다른 삶에 대한 진한 내공에서 이루어진 것이리라.  《문장》

  • 출생일 19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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