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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명 문병란
  • 영문/한자명 文炳蘭
  • 홈페이지
  • 소개

    유병관(문학박사)

     

    시인. 1935년 3월 28일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에서 출생했다. 광주사범학교를 거쳐 1961년 조선대 문리대 문학과를 졸업했다. 1959년부터 1962년에 걸쳐 김현승 시인의 추천을 받아 「가로수」, 「꽃밭」, 「밤의 호흡」등의 작품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순천고. 광주일고. 전남고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조선대 사범대학으로 적을 옮겼으나 당시 이사장의 전횡과 비리가 만연했던 조선대에서 거기에 ‘저항’하다가 강단을 떠난다. 다시 돌아간 전남고에서도 학생 시위와 관련해서 스스로 사직했다. 제도권 학교를 떠나 입시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의 시는 점점 불합리한 사회와 민족현실에 눈을 돌리고, 아울러 그 속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사상 탄압이 극심했던 유신 말기와 신군부에 의해 정권이 탈취된 80년대 초, 그의 민족, 민중, 통일을 향한 자유의 노래는 당국의 제제를 받는다. 다시 간행된 『죽순밭에서』(1979)에 이어, 『벼들의 속삭임』(1980), 『땅의 연가』(1981)가 모두 판매금지나 압수 조처를 받은 것이다. 그 중 『죽순밭에서』의 판매금지 처분은 "외설스럽고 민족정신을 부정했으며 일본 국기를 모독했다."는 아이러니컬한 이유였다. 문병란은 이러한 납득할 수 없는 판매금지 조처에 대해 문공부에 ‘항의문’을 제출,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충격과 영향을 미쳤다. 특히 문인들, 그 중에서도 광주와 전남의 문인들에게는 더욱 깊은 상흔을 남겼다. 문병란은 ‘배후 내란 음모 선동자’로 구속 수감되었으며,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은 군인들의 총칼에 의해 무참하게 진압되었다. 이후 문병란의 시와 삶은 광주의 5월정신의 계승에 바쳐졌다. 그는 각종 재야 단체에서 주관하는 수많은 강연과 추모제에 직접 관여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한 실천에 앞장을 섰으며, 시작 활동 또한 스스로 ‘열정과 다작의 시기’로 규정하듯이 왕성하게 이루어졌다. 이런 활동에 대해 미국의 <뉴욕 타임>지는 그를 일컬어 “화염병 대신 시를 던진 한국의 저항 시인”이라고 했다.

     

    문병란은 1988년 6월 항쟁이 끝나고, 학내 민주화가 실현된 조선대의 강단에 다시 서게 된다. 1980년대가 지나면서 그의 시는 이제까지 그가 확고하게 유지하던 현실과 시대의 고민으로부터 점차 개인 내면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역사의식이나 현실인식이 무디어진 것은 아니다. 사회민주화가 점차 진전되고, 거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시대적 분위기도 변했으며, 문병란 개인으로서도 이제까지의 열정적 삶을 반추하고 성찰하는 여유가 주어졌을 따름이다.  《문장》

  • 출생일 1935년
  • 출생지 전남 화순
  • 주요 장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