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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명 박두진
  • 영문/한자명 朴斗鎭
  • 홈페이지
  • 소개

    혜산(兮山) 박두진은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하였다.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고장치기’라는 마을은 넓은 들판 한가운데 스물 남짓한 오막집이 엎드려 이는 쓸쓸하고 가난한 마을이었다. 그 마을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혜산의 집 형제 정도였다. 그의 집도 농가는 아니었지만 댓 마지기 남의 땅을 소작하며 가난한 생활을 했다. 일요일이나 방학 때면 지게를 얻어 지고 나무를 하러 산으로 갔다. 새소리 물소리를 따라 혼자 산골짜기로 들어가면서, 그는 소박한 자연에 대한 강렬한 애착과 신비한 교감을 얻었으며 고독에 대한 매력과 멀고 영원한 나라에 대한 동경을 배웠다.

     

    《문장》 추천 이전의 그의 학력이나 여타 경력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그가 서울에 올라온 것은 열여덟 살 때였다고 한다. 이후 등단하기까지의 6, 7년 동안 그는 고독과 비애와 가난 속에서 절망하면서 문학과 종교를 인생의 가치로 삼기로 했다. 시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준 은총이며 시로써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신에게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그는, 우리 근대시사의 시들이 너무 감상적, 퇴폐적이거나 경박한 외래 취향적인 것에 불만과 반발을 가지고, 보다 더 스케일 크고 싱싱한 야성의 시를 쓰리라 마음먹었다.

     

    서울 근교의 산을 오르내리며 금식, 기도, 명상, 시 창작의 생활에 전념하던 그는 1939년 《문장》에「묘지송(墓地頌)」과 「향현(香峴)」을 추천받아 등단한다. 추천자인 정지용은 박두진의 시적 체취가 “삼림에서 풍기는 식물성의 것”이라서 시단에 하나의 ‘신자연(新自然)’을 소개한다고 하였다.

     

    혜산의 시는 청록파의 일원으로서 자연을 공통된 소재로 했으면서도 현실에 대한 도피처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싱그러운 생명력의 원천으로서 자연을 노래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어둠/빛’의 대립을 주조로 하는 이미지는 그의 시가 비관적 현실 인식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강한 희망을 노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기독교의 메시아 사상의 영향이 큰데, 그의 초기시는 현실의 고통을 참고 메시아가 올 것을 믿고 기다리는 자의 환희를 힘있게 표현하고 있다.

     

    역사 속에서 해방이 왔을 때, 그 메시아의 도래는 ‘해’로 표상된다. 시집 『해』는 한국 시사에서 유례 없이 밝고 희망찬 노래로 가득 차 있다. 환희의 감정을 제어할 수 없어, 그의 시에는 호격과 쉼표, 생략부호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감정을 절제하지 않고 발산하는 특유의 유장한 산문시의 리듬은 풍요로운 자연의 이미지와 독창적인 상징어들과 어울려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세계를 보여주는 데 기여한다.

     

    1946년 그는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청록집』을 간행하였으며, 이후 10여 권의 시집을 내는 등 정력적인 창작 활동을 펴나갔다. 1955년 연세대 교수로 취임한 후 1981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그는, 4?19를 비롯한 역사적 격랑의 현장에서는 정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보여주었다. 6?25와 4?19를 겪은 후 그의 시에는 자연 사물보다 관념어가 많이 등장하고 그것은 자유와 죽음의 대위법으로 나타난다. “자유여! 학살되어 바다 속에 버림받은 자유여!” 하고 분노하는가 하면 “우리들은 아직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라고 예언자의 목소리를 담은 사회 참여의 시편들을 쓰기도 하였다. 자연사와 인간사, 신성사가 하나로 합쳐지는 시를 희구했던 그는 후기의 『수석열전』에서 돌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그것을 종합한다.  《문장》

  • 출생일 1916년
  • 출생지
  • 주요 장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