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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집배원

문진영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햇빛 마중』 중 「북극의 여인들」

나는 여느 때처럼 카페 바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내가 아는 얼굴 하나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였더라, 기억을 더듬는 사이 그 사람은 내가 있는 바로 그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울리는 순간, 기억났다. 그녀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시를 썼다. 문구점에서 스프링이 달린 천원짜리 연습장을 사서, 거기에 생각나는 것들을 아무렇게나 적었다. 낙서 같기도, 시 같기도 한 문장들을 가지고 노는 것이 재미있었다. 수학 시간마다 숨기지도 않고 시집을 읽다가 선생님에게 등짝을 맞기도 했다. 수학 선생님은 한번도 누구를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는, 아이들이 우습게 볼 정도로 순한 분이었다. 그런 선생님을 그렇게까지 화나게 했다니. 하지만 수업 시간에까지 시집을 읽었던 건 시를 향한 나의 열정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시 내게 그것 외에는 흥미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국어 과목 숙제로 시를 써 가야 했다. 1학년 7반 담임이자 국어를 가르치던, 바짝 마른 몸에 단 한 번도 치마란 것을 입지 않았던 서른일곱 살 고영숙 선생님은 그날 내가 숙제로 제출한 시를 나도 모르게 도 대회에 출품했다. 그 시는 최우수상을 받았고, 나는 상금으로 MP3 플레이어를 샀다. 그리고 선생님께 드릴 선물로는 동네 빵집에서 파는 7천 원짜리 롤케이크를 샀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인 걸까? 아무튼 그때 내가 쓴 시는 새벽 4시의 밤거리에 관한 시였다. 아무도 없는, 모든 게 정지된 듯한 밤거리에 관한 시였다. 아무도 없는, 모든 게 정지된 듯한 밤거리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들에 관해 적었다. 그녀는 그때 나를 교무실로 불러 ‘너는 앞으로도 계속 시를 쓰는 게 어떠니?’하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저는 그럴 생각이 없는데요, 그냥 심심해서 써본 건데요’하고 대답했다. 순간 그녀의 얼굴에 회한의 기미가 스쳤다. 나도 한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지. 그런 식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로 백일장에 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시인 같은 것은 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연습장에 낙서를 하고 있다. 마흔일곱 살 고영숙 선생님은 쟁반을 들고 잠시 카페 안을 둘러보더니, 내가 한쪽 끝에 앉아 았는 바 자리의 다른 한쪽으로 갔다. 자리에 앉아 머그 컵에 담긴 음료를 한 모금 마신 그녀가 문득 내 쪽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러고는 환하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녀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찻잔을 들고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어떻게 이렇게. 이렇게 정말 오랜만에.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말했다. 가끔 내 생각을 했다고. 가끔 내 이름을 검색해보고, 신간이 나오면 사서 읽었다고. 나는 두 달째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요? 그녀는

2025.02.20 천운영
나는 단골이고 싶지 않아서 | 조해주 「단골」

단골 조해주 내가 다니는 회사는 종로에 있고 근처에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나는 단골이 되고 싶지 않아서 어떤 날은 안경을 쓰고 어떤 날은 이마를 훤히 드러내고 어떤 날은 혼자 어떤 날은 둘이 어떤 날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다가 나오는데 어떻게 차갑게, 맞지요? 주인은 어느 날 내게 말을 건다 커피를 받아들고 나는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나 저어서 드세요, 빨대의 끝이 좌우로 움직이고 덜컥 문이 잠기듯 컵 안에 든 얼음의 위치가 조금 어긋난다 주인은 내가 다니는 회사 맨 꼭대기 층에 지인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혹시 김지현이라고 아나요? 나는 그런 이름이 너무 많다고 대답한다 그렇구나, 주인은 얼음을 깨물어 먹고 설탕처럼 쏟아지는 창밖의 불빛들 참, 내일은 어떻게 하면 처음 온 사람처럼 보일까 생각하면서 -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아침달, 2019)

2025.02.06 김언
전성태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여기는 괜찮아요』 중 「숲으로」

수아는 그 나무를 알아보았다. 마을에서 보자면 대숲 가운데에 꺼멓게 머리를 내놓은 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수아는 그들이 대숲 어디쯤에 와 있는지 가늠이 되었다. 바람 많이 타던 오른편 능선 중턱이었다. 할머니가 손전등을 왼편으로 돌렸을 때 재우리만한 빈터가 나타났다. 수아는 봉긋한 흙더미를 보았고 이내 그것이 묘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 않아도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잔뜩 긴장해 있던 수아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풀 한오라기 없는 묘지는 무덤이라기보다 정말 흙무더기 같았다. 할머니는 묘지 앞에다가 짚을 깔고 음식을 차렸다. 숙모에게 종지를 건네 술을 따르게 해서는 무덤 이쪽저쪽에 나누어 뿌렸다. 절도 없는 성묘는 금세 끝나고 이내 셋은 돌아섰다. 수아는 숙모에게 누구 무덤이냐고 숨죽여 물었다. 숙모는 강씨 할아버지 묘라고 말해주었는데 수아는 그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기억에 없었다. 수아는 그 무덤의 내력을 집안 여자 어른들에게서 들었다. 여러 밤 제삿날의 부엌 담화를, 조각난 파편들을 꿰어 짐작하게 된 사연이었다. 증조할머니가 과부로 살다가 떠돌이 계절노동자를 만나 새살림을 차렸는데 그 할아버지는 성실하고 의붓자식들도 잘 돌보았다. 그가 혈육도 남기지 않고 늙어 죽자 의붓자식들이 장례를 치러줬다. 선산에는 못 가고 앞산에다가 묻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 묘지는 남부끄러운 묘지가 되었다. 그래서 문중에서 묘지 주변에 대나무를 심었다. 온 산이 대숲이 되는 데는 십년도 걸리지 않았다. 수아는 그 이야기가 기묘하고 아름다웠다. 대숲이 조성된 사연이 기묘하고, 할머니들의 야행은 아름다웠다. 묘지 가에 대나무를 심은 집안 남자들의 용렬한 행태보다도 여자들이 밤길로 다닌 성묘가 인간적으로 보였고, 성인이 되어서는 관습에 대한 저항으로도 여겨져 마음으로 아끼게 되었다. 그 성묘가 얼마나 더 지속되었는지는 모른다. 수아는 어른들이 음식을 해서 대숲에 드는 걸 그 뒤로 목격하지 못했다. 금이가 재혼하고 몇 해 있다가 큰집 부엌에 발을 들이게 되고, 수아는 마치 교대하듯이 부엌에서 물러났다. 어린 딸들까지 부엌에 넣는다고 금이가 싫어했다. 아마 성묘는 집안 할머니들이 살아 있을 때까지 지속되지 않았을까? 큰어머니나 숙모들도 얼마간 성묘를 다녔을지 모른다. 이제 부엌의 여자 어른들이 대부분 세상을 등졌고 도회지로 나간 어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일전에 대밭 매매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강씨 할아버지의 묘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궁금해서 금이에게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처음 듣는 소리처럼 반응했다. 그러면서 금이는 도둑 제사가 동티를 피하려는 이 집 여자들의 욕심이 한 짓거리라고 혀를 찼다. 남자들보다 더 악랄하다고, 금이는 차갑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수아는 놀랐다. 모든 제사라는 게 산 자들의 발원에서 비롯한 행위이기도 하므로 그 일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금이가 보인 적의가 전에 없던 거라 당혹스러웠다. 뒤미처 수아는 재취로 들어온 금이의 피해의식이라든가 섭섭한 마음 같은 걸 새삼 헤아려보게 되었다. 수아로서는

2025.01.23 천운영
이자켓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복어 가요」

복어 가요 이자켓 합정까지 걸을까? 추운데 목도리 빌려줄게 너는? 난 추위 잘 안 타 추워서 머리가 멈췄나 봐 겨울이라 그런가 차디찬 골짜기인 거야 그곳에 도달한 생각들은 모두 얼어붙는 거지 그 골짜기 다 녹여주고 싶다 그럼 범람할 거야 아무 말이나 쏟아져 나올 거야 그건 안 돼 왜? 저거 들려? 뭐? 구세군 종소리 연말이긴 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뭐 해? 요즘 살쪘나 봐 패딩 탓인가 나 부해 보여? 조금 떨어진 채 빗물 언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한적한 합정에는 이 거리 끝에도 저 거리 끝에도 담배 태울 곳이 없어서 ‘그런지’라는 카페를 지나고 솔방울식당 지나고 푸르게 칠한 건물과 목련이 자라는 주택 지나 어둑한 골목에 들어섰다 불을 붙이고, 신발 뒤축으로 얼어버린 물웅덩이를 부수었다 얼음 조각이 이리저리 튀었다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다 맥없이 나뒹굴었다 종소리가 한 번, 두 번 이편저편 맴돌았다 10번 출구가 보였다 목도리를 돌려받았다 조심히 가 너도······ 넌 뒤돌아보지 않고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매끄럽게 사라졌다 점점 작아지는 뒤통수를 보다 돌아섰다 코트 주머니에는 킹 크룰의 앨범이 들어 있었고 움켜쥔 목도리는 방어 태세의 복어만큼 부풀어 올랐다 - 시집 『거침없이 내성적인』(문학과지성사, 2023)

2025.01.09 김언
안보윤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알마의 숲』

올빼미가 말하길. - 정어리를 먹어. 올빼미가 말했다. - 난 정어리에 대한 글을 쓸 작정이었다. 한 달 내내 정어리만 생각했지. 정어리, 정어리, 정어리, 매일 백 번씩 말했다. 아니, 이백 번은 말했겠군. 정어리통조림이나 정어리를 넣은 샌드위치를 생각하고, 정어리를 가공하는 공장과 정어리를 잡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정어리처럼 생긴 비쩍 마른 남자아이에 대해서도 생각했지. - 정어리를요. - 그래, 정어리다. 오로지 정어리였지. - 그래서 그건 어떤 이야기가 되었나요? 유쾌하고 흥이진진한 이야기? 건조하고 냉정한 이야기? - 못 썼다. - 왜요? - 난 정어리를 본 적이 없거든. 먹어본 적도 없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정어리, 라는 단어에 빠져 있었던 거겠지. 아이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공주나 왕자에 빠져드는 것처럼, 한 번도 보지 못한 마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나는 하필 정어리에 빠졌던 거다. 정어리에 대해 매일 생각했지만 그건 진짜 정어리가 아니었지. 내가 상상해낸, 정어리와는 전혀 다른 무엇이다. 그러니 내가 뭘 쓰더라도 그건 정어리에 대한 글이 아니게 되는 거다. -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알마가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 아저씨 때문인가요? - 남 탓을 하다니, 정말이지 촌스럽기 짝이 없군. - 역시 아저씨 때문이었군요. - 됐다. 다시 정어리얘기로 돌아가자. 아니 더럽게 재미없고 지루한 네 얘기로 돌아가지. 너는, 그런 거다. 넌 네가 죽어야 할 만큼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말하지만 정작 네가 경험한 건 아주 짧은 단어 한 개, 순식간에 스쳐지나간 장면 하나에 불과한 거다. 내가 정어리, 라는 단어를 읽고 그것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처럼 너도 어디선가 고통이나 죽음 같은 단어를 보고 거기 동화되기 시작했겠지. 나는 정어리라는 단어밖에 모른다. 정어리에 대한 책을 백 권쯤 쓴다 해도 거기 진짜 정어리는 없지. 너도 마찬가지다. 넌 아직 삶도 죽음도 논할 자격이 없지. 어떤 것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정어리를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내가 정어리가 비리다거나 기름지다거나 담백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너도 네 삶에 대해 한마디도 할 수 없을 거다. 넌 유 서를 쓰지 않은 이유가 네 엄마가 이유를 알지 못해 고통스럽길 바라서였다고 했지? 그건 거짓말이다. 너는 한 줄도 쓸 수 없었을 거다. 네가 왜 죽으려고 하는지, 뭐가 널 그리 힘들에 만드는지 너도 몰랐을 테니까. 그냥 죽어버릴까, 하고 쉽게 결심한 거지. 어린애답게 말이다. - 아저씨도 내가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 너는 그냥, 서툰 거겠지. 어린애들의 특권이다. 멍청하고 성급한 건. 어린애니까 가끔은 그런 식의 엉뚱하고 어리석은 결론을 내기도 하는 거다. 괜찮겠지, 그 정도는. 난 어설프고 서툰 것들이 싫지 않다. 그런 건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채워지거든. - 숲에 떨어지는 동물들처럼요? - 그래, 멍청한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처럼. - 난 멍청하지 않아요.

2024.12.27 천운영
마윤지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동지」

동지(冬至) 마윤지 12월에는 흐린 날이 하루도 없으면 좋겠다 그런 약속이 있으면 좋겠다 놀이터엔 애들도 많고 개들도 많으면 좋겠다 살도 안 찌고 잠도 일찍 들면 좋겠다 조금 헷갈려도 책은 읽고 싶으면 좋겠다 어디든 갈 수 있는 차표를 잔뜩 사고 안 아프면 좋겠다 30만 년 전부터 내린 눈이 쌓이고 눈의 타임캡슐 매일의 타임캡슐 다 흘러가고 그게 우리인가 보다 짐작하는 날들이 슬프지 않으면 좋겠다 묻어 놓는 건 숨기는 게 아니라 늘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지 그 무엇보다 많이 만져 보는 거지 나중엔 번쩍 번개가 되는 거지 오렌지색 같은 하늘이 된다 맛도 향기도 손가락이 열 개인 털장갑 이를테면 깍지 햇빛의 다른 말이다 - 시집 『개구리극장』(민음사, 2024)

2024.12.12 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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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야훼의 탄식

*이 시는 종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이로 인해 혹여나 불편함을 느끼셨다면 뒤로 가기를 권장드립니다.십자가, 십자가, 붉은 십자가를 걸자.너의 마음에도 나의 마음에도모두 다 같이 십자가를 걸자.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인생,응어리진 가슴에 십자가를 걸자.흰 염소의 찬송가와양치기 소년의 성경을 듣고우리 모두 다 함께 행진을 하자.사랑이 가득한 들판에서총칼이 깃든 깃팔을 펄럭거리면그곳이 바로 자유의 낙원.순종, 순종, 티 없이 맑은 순종을 하자.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인생,동방 황금빛 고원에 트리카부트의 씨앗을 심자.

2025.03.23 gksgPdnjs
바람에 떠밀리고 싶으니까

흔들흔들,시야의 상이 있다면 그 흐름에게는 뭐든 뚜렷하지 않을 테고,무릇 눈이 좋지 않다면 안경을 쓰라 듯이 형체 없는 향에게는 색이 무엇보다 절실할 터.다만 그저 얽힌 채 동요하는 상이 말하길.그건 아무래도 너무 나간 소리 같다고.만일 우리가 흔들려 색이 필요한 것이라면.아니 애초에 허무한 소리 말고 헤쳐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라고.야단을 치며 등진 나를 이끌어 억지로 고개를 돌려서.이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거슬러, 앞머리가 양옆으로 갈라지면서,아침의 고단한 노력이 무너지는 것에 상처가 생기고,이 밖으로 나서 여태껏 바람에 생긴 상처들이 쓰라려,그럼에도 미련하다는 소리를 들으며,바람의 선회 궤도를 헤아리는 미련한 아픔마저 흔들려,이 맘때면 후끈해지는 열기가 굽이쳐 땀을 말리기를 기대하는 건 다음 계절에게로,마치 실망하는 내게 사과하듯 몰아치는 바람에 또다시 흔들려 손을 놓치자.흔들흔들,시야의 상이 있다면 그 흐름의 선회에 매번 무너지고, 부러지고, 망가질 테고.문뜩 눈이 좋지 않아서 무심코 안경을 햇빛에 비추자 쌓인 이물질들은 전부 색을 원한 것의 심술일 터.다만 그저 얽힌 채 아파하는 상이 말하길,그건 아무래도 너무 매몰찬 것 같다고.만일 색이 필요해서 우리가 흔들리는 것이라면.그럼에도 우리에게 인식되어 흔들려 선회하며 곡절을 겪고 있으니 흐름에 휩쓸려주자고.부드럽게 등을 떠밀며 어느새 우연의 품으로,바람의 상으로,더 이상 쓰라림 없이 흔들릴 터,흔들흔들, 바람에 구원받아 떠날 테니까,그렇게 떠밀리고 싶으니까.

2025.03.23 별무리
소설 prologue

어느 화창한 날에 사라와 함께 그네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흙길과, 다음 경작을 준비하며 잠시 쉬고 있는 땅과, 구름 한 점 없는, 어쩌면 가끔가다 한 점 정도는 지나갈 법도 한 푸른 하늘과, 곧 떨어질 듯한 해와, 저 멀리 설산의 봉우리와, 밑동에 이끼가 낀 나무 그네밖에 없는 교외의 어느 이름 없는 길이었다. 사라는 내게 물었다.“신을 믿어?”“관심 없어.”“관심 있을 줄 알았는데.”“뭐에.”“신이 있는지 없는지…”“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관심이 많지.”“근데 왜 관심 없다 그랬어.”“정확히 말하자면 상관이 없어.”“왜?”“있든 없는 달라질 건 없거든.”“흠… 그런 거야? 근데… 어떻게 신이 없을 수가 있는 거야?”“없을 수도 있지.”“넌 이렇게 아름다운걸.”“아름다운 거랑은 상관이 없어.”“네가 이렇게 복잡하고 조화로운 거랑도 상관이 없다는 거야?”“내가 조잡하고 기괴하더라도 상관이 없어.”“그렇지만… 그럼에도 너는 이렇게 아름다운데… 왜 널 만든 이가 없다고 믿을 수 있어?”“진화생물학.”“너는 네가, 결국 네가 지금 이해하지도 못하고 결국 영원히 이해하지도 못할 우연으로 네가 만들어졌을 뿐이라는 거야?”“아니.”“그럼 네 창조주를 인정하는 거네?”“아니.”“아니 그럼 뭔데.”“있든 없든 상관없어.”“어떻게 상관이 없을 수 있는 거야?”“있든 없든 결론은 같을 테니까.”“신이 너를 창조했다는 걸 왜 믿지 못해? 넌 우연으로 만들어졌다고 믿는 것도 아니면서…”“그래, 신이 존재하는 걸 믿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신이 있는 거니까… 교리를… 따라야겠지?”“교리를 왜 따라야 되지?”“그야 신이 너를 만들었으니까.”“비겁하잖아. 나를 만들었다고 따라야 한다니.”“아니, 너를 만든 이가 네 주인인게 당연하지.”“그가 내게 행동을 강제할 수 있다면 진작에 그렇게 했겠지. 나는 신이 있든 없는 자유로워.”“그건 죄야. 신이 있는데도 따르지 않으면 죄라구.”“그래, 죄를 지을게. 그럼 어떻게 되지?”“내세에서 처벌받겠지 바보야.”“처벌받을게. 신이 내게 여리고에서 했던 일을 하라고 한다면 차라리 지옥에 가서 영원히 불탈 거야.”“두렵지 않니?”“두려움으론 믿을 수 없어.”“네 행동은 신이 시킨 것이니 네 책임이 아니잖아.”“내 의지로 막을 수 있는 일을 막지 않은 것에 대해서 내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신이 시킨 것에 봉사하면 천국에 갈 수 있을 거야.”“보상을 기대하고 믿을 수도 없어.”“왜 믿을 수 없다는 거야? 보상도 두려움도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는 건데?”“글쎄. 그냥. 그냥 그렇게는 믿기 싫어서.”“그래도… 신이 있다면 그 말을 따르는 게 합리적인 거 아니야?”“합리라니. 처음 듣는 걸.”“뭔 소리야. 처음 듣는다니.”“어떤 목적에서 합리적이라는 거지? 신의 말을 듣는게?”“그가 너를 창조했으니까?...”“내 의지와 양심에게서 도망치려는 비겁한 변명으로밖엔 들리지 않는걸.”“창조주는 선한 분이야.”“그렇다면 나는 선을 따르는 거지 창조주를 따르지는 않는 거 아닐까.”“하지만 창조주께서 선을 만드셨는걸

2025.03.22 기능사
껴묻은 포옹을 나누자

외투를 벗어날씨가 변덕이지만 대신 안아줄 수 있을 거야서린 봄에 다 녹았지만뭉친 탓에 녹지 못한 눈덩이가 사태처럼 무너져도무너짐을 다행이라고 하자그럼 우리는 몸집을 줄이고 웅크릴 수 있을 거야작아진 나도 무릎을 껴안은 낮잠을 잘 수 있게봄이야외투를 벗어날씨가 변덕이지만 대신안아줄래?

2025.03.22 nana
감상&비평 사랑을 깨닫는 것 - 김복유 <레아의 노래>를 듣고

*종교적 관점에서 쓰인 글입니다. 야곱은 날 외면하여도 주님은 날 보아 주신다야곱은 날 무시하여도 주님은 날 들어주신다야곱은 날 떠나갔지만 주님은 다만 안으신다야곱은 날 인정 안 해도 주님은 나만 인정하네Shout of the 유다 내게 행복을 주신 분께Shout of the 유다 나를 사랑한다는 분께Shout of the 유다 나를 좋아하시는 분께Shout of the 유다 유다 유다너는 아주 특별해 아주 많이 특별해사람들이 뭐래도 너는 아주 내게 아주 특별해세상은 널 외면하여도 주님은 널 보아 주신다세상은 널 무시하여도 주님은 널 듣고 안고 껴안아세상은 널 떠나갔지만 주님은 다만 안으신다세상은 널 인정 안 해도 주님은 너만 너만 너만 -<레아의 노래>(부분 삭제) 이 찬양은 성경 중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 이야기는 이러하다. 야곱은 형이 밖에 나간 사이에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대신 받고, 그 때문에 자신을 죽이려는 형을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한다. 라반에게는 딸이 두 명 있었는데 첫째가 레아이고 둘째가 라헬이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해서 라반에게 7년을 무보수로 일하고 라헬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7년 후, 라반은 그를 속여 레아를 대신 보낸다. 그리고 결혼 다음 날 아침에 야곱이 그 사실을 알고 따졌을 때, 동생이 언니보다 먼저 시집가는 경우는 없다고 하며 7일을 채우면 라헬도 줄 테니 이후로 7년을 더 일하라고 한다. 그래서 야곱은 그렇게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레아이다.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했기에, 레아는 결혼 후 남편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첫째 아들부터 셋째 아들을 낳을 때 계속해서 야곱의 사랑을 갈구한다.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도 그가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짓는다.첫째의 이름은 ‘르우벤’으로 ‘보라, 아들이라’라는 뜻이다.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자신을 사랑하리라는 것이다.둘째는 ‘시므온’으로 ‘듣다’라는 뜻이다. 첫째를 낳았음에도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자, 자신의 기도를 들으셔서 또 아들을 주셨다고 생각한 것이다.셋째는 ‘레위’고 ‘묶다, 연합하다’라는 뜻이다. ‘이제는 정말 그가 날 사랑하겠지’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그런데 넷째인 유다를 낳을 때 레아의 마음이 바뀌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다’라는 이름은 ‘찬양’이란 뜻이다. 유다를 낳으며 레아는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했다. 야곱의 사랑에 목말라 그의 사랑을 위해 아들을 낳은 전과 달리, 이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지 않고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고, 위로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사랑하시는 그분께 찬양을 드리게 된 것이다. 찬양 <레아의 노래>는 넷째 유다를 낳고 난 후의 레아의 고백에서 나온 찬양이다. 이 찬양의 가사를 보면 레아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아무도 나를 보지 않고 외면할 때 나를 보시는 분-모두가 날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을 때 내 말을 들어주고 날 인정하시는 분-누군가가 나를 떠나갈 때 나를 안

2025.03.22 가엘
맑은 날에 만나야 하는 남자

그와는날이 맑을 때 만나야 한다조금이라도 바람이 부는 날이면꽁꽁 숨겨놔 나한테까지도 잘 보이지 않는그 죄책감의 응어리들이날개를 달고 나에게로 불어올 것이다조금이라도 더운 날이면그를 감추려 쌓아놓은 내 마음의 방벽이서서히 녹아버려 나도 모르게내 주변 사람들은 서서히 떠나가겠지.그렇지? 선생님.그러니까 맑은 날에만나를 불러줘그리고 항상 나를 당신의 칠판 한구석에 새겨놔줘.

2025.03.22 소탈
눈부심

아름다웠던 그 빛이푸른 섬광이 되어눈을 멀게 합니다보지 않으려뒤를 돌아도눈을 감아도섬광의 잔상은눈앞을 아른거립니다그 환하고도 추한 빛은얼룩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다른 아름다움 앞을 막아섭니다그 빛 앞에 눈을 뜨는 다음 날에는그저 환하기만 했으면 합니다그 화려함에 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2025.03.22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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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2025년 문학레지던시(협성마리나G7) 공고문

2025.03.12
공지사항 2025년 문학레지던시(호텔프린스) 공고문

2025.03.12
공지사항 2025년 문학레지던시(남이섬) 공고문

2025.03.12
공지사항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2025년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참가지원

※ 2025년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추가공모 사업에 대한 공통 안내문입니다. 사전에 확인 후 세부 공고문 확인바랍니다.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문학)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참가지원 1. 사업개요 ○ 사업명 :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Kyoto Writers Residency) ○ 사업기간 : 2025. 10월 중순 ~ 11월 중순 (1개월) ○ 사업장소 : 일본(Japan) - 교토(Kyoto) ○ 주요내용 : 오프닝 포럼, 클로징 이벤트 등 교토작가레지던시 개최 프로그램 참여 및 작가 개인 창작활동 수행 ※ 사업 세부소개 • 해외협력기관 :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Kyoto Writers Residency) • 홈페이지 : https://kyotowriters.org/ • 기관/사업소개 - 교토에 있는 대학의 문학 학자들과의 연계를 통해 2022년에 설립된 국제 문학 레지던시 - 전 세계의 작가 및 번역가들이 교토에 머물며 창작활동과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 • 세부 프로그램 - 레지던시 공식행사인 오프닝 포럼 및 클로징 이벤트 2회 ※ 모든 프로그램은 통역 없이 영어로 진행되며, 공개 행사에 한하여 영어-일본어 통역 진행 예정 2. 지원신청자격 ○ 문인(시, 소설, 아동·청소년 문학) - 시, 소설, 아동·청소년 문학 : 최소 1권 이상의 발간 실적이 있는 문인 ※ 그림책, 희곡, 비문학(에세이 등) 제외 - 영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자 ○ 선정자는 레지던시 공식 행사 필석 3. 지원규모 및 항목 ○ 참가 예술가 직접 지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선정자 보조금 지급/지원신청서 내 예산 편성) 구분 선정 인원 지원규모 자부담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1인 (후보군 3~5인 내외) 100만원 내외 총 사업비(보조금+자부담)의 10% 이상 - 프로그램 참가를 위한 왕복 항공료(이코노미석 기준 실비 지원) ※ 비자 발급비, 현지 체재비 등은 참가자 개인 부담 - 회계법인 회계검증수수료 ※ 회계검증수수료는 문예진흥기금 지원신청 공통안내사항 내 가이드라인 참조 ○ 기타 지원항목(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번역가/제작업체 지급) - 문학 분야 작가키트 제작비 및 작품 번역비(시 15편, 소설 30페이지 내외) : 400만 원 ※ 작가키트 제작비 및 작품 번역비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해당업체, 번역가에게 직접 지급 ○ 프로그램 참가비(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해외협력기관 지급) - 프로그램 참가비 : ¥430,000 ※ 숙박비, 일부 식사, 공식 행사 관련 통역료(영어-일본어), 프로그램 운영 등 각종 비용 포함 ※ 현지 체류 중 지급되는 현지 체재비 외 추가분은 참가자 개인 부담 ※ 해당 지원 내역은 해외협력기관과의 협의에 따라 조정될 수 있음 4. 제출서류 및 자료 (필수자료 총 3개) ※ 우편 및 방문 접수 불가 제

2025.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