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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색윤슬빛 - 자유롭게 길 잃기
[레지던시 일기-협성마리나 G7] 자유롭게 길 잃기 윤슬빛 유난히 길을 잘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난히 길을 잘 잃어버리는 사람들도 있지요. 아무래도 저는 후자 쪽이라 어딜 가나 비슷비슷해 보이는 길 앞에서 매번 난감해지곤 합니다. 누군가에게 정확한 위치를 설명할 수도 없고 이 방향이 맞는지 저 방향이 맞는지 확신할 수도 없으니까요. 다행히 “모든 길은 다 연결되어 있다!”라는 아버지의 강건한 호언장담을 들으며 자란 터라,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하는 대책 없는 낙관으로 매번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간답니다. 언제든 어떻게든 가고자 하는 곳에 다다르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이랄까요. 오도카니 앉아 지난 기억을 되새기며 레지던시 일기를 쓰자니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낯선 부산역 주위를 하염없이 빙빙 돌았던 첫날이 떠오릅니다. 분명 지도에는 길이 있는데, 거의 다 온 게 맞는 것 같은데…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어김없이, 도무지 목적지가 보이질 않았지요. 안내문을 꼼꼼히 읽지 않아 자주 곤란해지는 사람에 대해 써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자분자분 오래 걸었습니다. 무작정 헤매고 있는데도 전혀 조급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오롯이 읽고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게 그저 기뻐서 다른 건 아무래도 괜찮았거든요. 일상으로 돌아와 비슷비슷한 하루를 무심코 흘려보내다 보면 문득문득 부산역 10번 출구를 가로질러 걷던 하늘광장이 떠오릅니다. 멀리 내다보이던 희부연 바다와 거세게 불던 바닷바람과 공사장의 소음이 제 안에서 소란스럽게 되살아납니다. 흔들거리는 그 길을 빈번히 걸으며,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과 어디선가 돌아온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이 도시를 잠깐 사랑하러 온 사람들도요. 혼자, 혹은 여럿이 빚어내고 있는 찰나를 슬쩍슬쩍 엿보며 ‘다들 이렇게 흔들리면서 사는 거겠지’ 싶어 괜스레 애틋해지곤 했지요. 일부러 비워둔 시간 사이사이에 모르는 사람들의 표정과 그림자가 천천히 스며들었습니다. 차근차근 쓰다 보니 사람, 사람이란 말을 참 많이 적고 있네요. 문학을 하는 일이 삶을, 사람을 들여다보는 일과 다르지 않아서인가 봅니다. 도저히 다 이해할 수 없는 이 불가해한 세계에서 불완전하게 살아가는 모두가 무엇을 붙들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지 헤아려보려면 잠깐 멈춰야 한다는 걸 다시금 배운 날들이었습니다. 돌이켜볼수록 참 귀한 3월이었어요. 호된 꽃샘추위에 웅크리고 다니면서도 종종 등 뒤가 뭉근히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더운물이 찰랑찰랑 차오르는 것 같던 오롯한 충만함 덕분이겠죠.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잘 상상할 수 없었는데 별 의미도 없이 느긋하게 사위를 둘러보던 그 순간만큼은 ‘영원히 이렇게만 살면 참 좋겠다’ 싶기도 했답니다. 헐겁던 읽기 목록이 다시 빼곡해졌고 흘려 쓴 것과 흘려보낸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채우기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쉼표와 마침표를 들여다보고, 물음표와 느낌표의 질감을
작성일 2026-06-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하신하 - 나미나라공화국의 이야기 요정을 보았니?
[레지던시 일기 – 남이섬 호텔정관루] 나미나라공화국의 이야기 요정을 보았니? 하신하 편집회의까지 마치고 마감을 이미 한번 연기한 장편 동화의 원고를 머릿속에 짊어지고 남이섬으로 들어가는 배에 올랐다. 배는 물길을 헤치고 유유히 남이섬으로 다가갔다. 나는 저 섬을 거나한 술판이 벌어지는 대학생 MT 장소로, 한여름의 활기와 젊음의 싱그러움이 가득 담긴 노래가 흘러나오는 강변가요제로, 또 유명한 드라마의 한 장면을 찍어 관광객이 북적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원지로 알고 있었다. 이후 남이섬에서 국제 규모의 어린이책 축제가 열린다는 유명세는 익히 들었지만, 직접 참여한 경험은 없었다. 배 안에서 들리는 말들이 서로 다른 걸로 보아 아시아의 다양한 국적으로 짐작되는 낯선 관광객 무리 속으로 조용히 스며 들어갔다. 남이섬에 도착해 배에서 내렸을 때 나는 ‘나미나라공화국’이라는 소인국 안에서 눈을 뜬 거인 걸리버가 된 기분이었다. 언제나 함께하는 물리적인 몸의 무거움에 마감을 넘겼다는 마음의 무게까지 더해져 나는 이미 거인만큼 천근만근이었다. 내가 지낼 숙소인 YUSOF 방의 문을 열자 말레이시아의 그림책 작가 유소프가 그린 코끼리들이 나를 반겼다. 나에겐 2주 안에 원고를 마무리해서 보내야 한다는 중압감이 코끼리보다 더 무거웠기 때문에 벽을 가득 채운 코끼리 그림은 한없이 천진난만하게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 여행의 즐거움에 들떠 남이섬 안을 훑고 다니는 관광객들의 무리에 속해있었던 터라 레지던시 숙소 근처의 한적함은 다른 시공간에 들어선 듯 낯설었다. 관광객들이 배를 타고 빠져나간 밤에는 침묵과 어둠이 숙소 주위에 깊게 내려앉았다. 남이섬을 산책하는 새벽과 저녁 시간에 나는 거인국에 도착한 작디작은 걸리버가 되었다. 화려한 깃털로 있는 힘껏 자신을 뽐내는 공작과 내가 방문을 열고 나오면 아는 척을 하며 다가와 내가 가지고 다니는 견과류를 뺏어가는 토끼들. 일정한 동선으로 직원처럼 일하는 듯한 오리와 거위 무리. 뺏어갈 천적이 없는 듯한데도 무언가를 숨기느라 바쁘디바쁜 다람쥐와 청설모, 그리고 마감의 시간 또한 지나가리라며 천천히 흐르는 물과 이 모든 풍경을 내려다보며 감싸주는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서 나는 작고도 작은 사람이었다. 자연의 한구석을 차지한 작은 걸리버는 조용하고 겸손하게 다른 생명체들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으며 돌아다녔다. 식당이나 카페, 도서관이나 미술관에는 최대한 관광객처럼 위장하고 들어갔다. 하지만 잠시 머뭇거리고 있으면 어디에선가 지켜보고 있던 남이섬의 직원들이 “작가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며 반갑게 웃으며 다가온다. 어디를 가든 늘 한 사람쯤은 다가와 혹시 우리가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무리 속 위장술이 뛰어난 내가 관광객이 아니라 레지던시 작가라는 것을 남이섬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 직원들은 미소를 띠고 심리적 안정을 보장하는 일정한 사회적 거리를 두고 바라보지만, 내가 신호만 보내면 당장이라도 뛰어오겠다는 서비스
작성일 2026-06-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서윤빈 - 당신 이야기의 유령 콘셉트는 낙관적인 것이지요? 유령이란 존재 자체가 사후세계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 아니오? 그러니 낙관적이지요.
[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당신 이야기의 유령 콘셉트는 낙관적인 것이지요? 유령이란 존재 자체가 사후세계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 아니오? 그러니 낙관적이지요.1) 서윤빈 우선 하나 고백하면서 시작하겠다. 나는 여태 진실한 에세이를 써 본 적이 없다. 일곱 권의 책을 냈으니 적어도 일곱 번은 에세이 내지는 에세이격에 해당하는 작가의 말을 썼다는 뜻인데, 그중에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되지 않은 것은 단 한 편도 없었다. 아주 현실적으로 보이는 몇 편의 글에서도 나는 아무도 알지 못할 거짓말을 섞어 넣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쓸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별로 인기가 없는 사람이고, 인기가 없다는 건 내가 별로 흥미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일 테니까.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주는 건 작가로서 죄를 범하는 일처럼 느껴졌으니까. 문제는 이 글에서는 거짓말을 하기가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원고 청탁 내용 자체가 호텔 프린스 ‘소설가의 방’ 사업에 선정된 작가의 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소설가의 방’이 10년이 넘는 연식을 가진 장수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상반기, 하반기에 각각 6명의 작가가 머물렀다고 치면 대충 추산해 봐도 여태 120명 이상의 소설가가 호텔 프린스에 머물렀다는 결론이 나온다. 만약 무언가를 꾸며내어 쓴다면 그들 중 누군가는 분명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어깨가 딱딱하게 굳으면서 글이 턱 막혔다. 망상과 기현상 없는 글은 어떻게 쓰는 거였더라? 일단은 내가 벌인 조금이라도 재미있는 일들을 떠올려 보자. 틀렸다. 호텔에 머무는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유튜브 영상을 몇 편 찍은 것, 장편 소설 원고를 쓴 것, 가능한 조식을 챙겨 먹으려고 애쓴 것 정도가 전부였다. 남들 다 한다는 산책도 거의 하지 않았고, 그렇다 보니 명동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없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시트를 갈아주는 새하얀 침대의 느낌이 꽤 각별하기는 했으나… 그거야말로 120여 명의 작가가 다 아는 지루한 이야기겠지. 하지만 그게 꼭 내 잘못이기만 할까? 지금 객실에 관해 생각하면 객실의 공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먼지 냄새와 함께 감돌던 어떤 끈적한 기운. 그 기운은 내 몸에 부드러이 달라붙어 나를 잠으로 이끌곤 했다. 혹시 그 기운이 수많은 작가가 거쳐 간 흔적이었던 건 아닐까? 얼핏 깨끗해 보이는 객실의 벽지와 침대 시트에 사실 앞서 머물렀던 작가들의 땀과 한숨, 권태가 지층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다. 작가 레지던시답게 ‘소설가의 방’ 중 한 객실에는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 귀신 역시 축적의 산물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귀신은 한밤중에 슬쩍 나타나 소설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이렇게 속삭이겠지. — 특별한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아. 너도 알잖아. 물론 내 방에는 귀신이 나오지 않았으니 귀신이 정말로 어떤 스타일인지 나는 잘 모른다. 내가 오해했다면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하지만 나도 서
작성일 2026-06-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하유정 - 어디로든 데려가는 것
[문학의 곁] 어디로든 데려가는 것 ― 열심히 책과 흘러가는, 출판 마케터 ‘파도’(@pado.sil) 하유정 책만 믿고 서울로 온 지 4년이 지났다. 옷이 좋아 패션디자인학과에 진학했던 스무 살에게는 상상하지도 못할 전개라 종종 미안할 때가 있다. 하지만 더 미안한 건, 나는 항상 20대 초반의 기억을 늘 지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때는 돈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실습이 많은 과라 돈은 권력 같았는데 나는 그 한 글자가 없어서 항상 눈치를 살폈다. 필요한 재료를 사기 위해 시장에서 발품 파는 친구들 옆에서 나는 가성비를 따진다는 번지르르한 말로, 그저 저렴한 것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값비싼 브랜드를 이야기하는 대화에서도 나는 그 옷을 사기 위해 몇 시간을 일해야 하는지 계산하다 실소를 터뜨리며 꿋꿋이 생계를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패션은 얼마나 유행이 빠른지, 일주일만 지나도 비슷한 옷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혼란에서 트렌드라는 생애 주기에 맞춰 가격을 보지 않고 턱턱 사는 동기들을 보며,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흘기며 참던 날들이 계속 마음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게 죽도록 싫었던 나는 점점 작아졌고 결국 권태기가 온 연인처럼 옷과 멀어지게 되었다. 좋아하면서 관심 없는 척하는 현실이 쪽팔려서, 그 알량한 자존심이 싫어서 가장 더럽게 헤어지는 일, 옷과 잠수 이별을 택했다. 좋아하는 게 싫어지면 도망칠 구석이 없어진다. 인생에 불호만 남은 날이 이어지자,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방을 둘러보았다. 책상에 언제 산지 모르는 몇 권의 책이 있었다. 두껍고 단단한 물성,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그대로 남아 있는 글자들이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알려주는 듯했다. 몇 장을 읽으니 내가 그토록 원했던 그 말,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라는 위로가 곳곳에 묻어있었다. 비어 있는 지갑이 티 나지 않는 곳, 모두가 공평한 자격으로 둘러볼 수 있는 서점을 자주 갔었다. 유명한 작가와 책, 출판사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아는 거 없지만 갈 곳이 없어서 틈만 나면 갔다. 그 당시 가장 놀랐던 것은, 분명 한 달 전에도 순위에 있던 책들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그 의미가 베스트셀러 혹은 스테디셀러라는 것을 알지만, 내가 알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만 지나도 흥미가 떨어지는 게 당연한 거였는데, 사람들은 책을 질려 하지 않는구나.’ 감출 수 없는 의아함을 품은 채 책 한 권을 집었고, 그때 만난 장류진 작가의 책 『달까지 가자』가 내 인생을 전혀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갔다. 나의 고향 부산은 제2의 수도라고 하지만, 결국 지방이기에 작가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고 그때는 더욱더 없었다. 책을 향한 관심이 깊어지던 어느 날, 부산 동구 초량동에 있었던 창비부산에서 ‘4인 4색 소설 토크’ 행사 진행 소식을 접했고, 장류진 작가가 온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신청하여 운 좋게 선정되었다. 더불어 출판사 측에서
작성일 2026-06-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포엠맥 - 정말뻔하고재미없는말이지만그래도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문학의 곁] 정말뻔하고재미없는말이지만그래도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배동훈 “언젠가 시가 내 인생을 구원해 주면 좋겠어.” 8년 전, 어느 군인의 일기에 적혀있던 문장입니다. 그렇습니다. 뻔하지만 사실 제가 쓴 문장입니다. 오랜만에 여름옷을 챙기러 들렀던 본가에서 오래된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공군에서 근무하던 2018년 당시에 썼던 일기장이었습니다. 아직 군대 내에서 휴대폰이 자율화되기 전이라, 매일 점호가 끝나고 10분씩 짬 내서 썼던 일기들의 조각이 모여있는 다이어리 중간쯤에 써 있는 맥없는 문장, 시가 내 인생을 구원해 주면 좋겠다. 시기를 보니 아마 일병 말에 썼던 일기 같은데요. 꿈과 희망이 없는 군부대에서 20대 청춘을 보내다 보면 정신이 반쯤 돌기 마련입니다. 저런 가엾은 문장도 그때의 파편 중 하나일 것입니다. 과연 까까머리 공군 청년은 마침내 시에게 구원 받았을까요? 그 이야기,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출발 비디오 여행 톤으로). 안녕하세요. 포엠매거진입니다. 이제는 제 본명인 배동훈보다 포엠매거진이라는 이름으로 저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 익숙하군요. 그만큼 제가 인스타그램의 망령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포엠매거진은 인스타그램에서 시를 소개하는 채널입니다. 소개한다기보다는 ‘영업’한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콘텐츠가 제 취향을 배경으로 하거든요.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시와 시가 가진 매력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마치 시식 코너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거 맛있으니 함 무봐라” 홀로 외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 저는 2년 동안 시를 영업하고 있을까요? 이유야 당연합니다. 시를 좋아하기 때문이죠. 그것도 아주 많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물론 그 일로 돈을 벌고,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경우라면 조금 다르겠지만, 저는 정말 감사하게도 어찌저찌 2년째 먹고살 만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것만큼 짜릿한 일이 있을까요? 저는 이 상황이 너무 황홀해서 매일 밤 내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 지저귀는 새에게 영어로 말을 걸곤 합니다(공주풍 레이스 잠옷을 입고 있음). 물론 포엠매거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어요. 저는 포엠매거진을 하기 위해 대기업에서 나왔거든요. 정확히 말하자면, 오직 포엠매거진을 위해 퇴사했던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많은 일의 배후에는 늘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저는 재직하던 회사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었고, 더 늦기 전에 시를 활용해서 뚜렷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무언가가 포엠매거진이라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단지 어떤 형태로든 ‘시를 알리고 싶다!’라거나, ‘최초로 시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 막연한 바람뿐. 그렇게 다니던 회사를 나오고 약 일주일 뒤에 바로 ‘@poem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1상세보기 -
모색구돌 - 토끼가 사는 섬
[레지던시 일기-남이섬 호텔정관루] 토끼가 사는 섬 구돌 남이섬은 1.4km의 직선과 그를 감싸는 호로 이루어진, 긴 달 모양의 섬이다. 본래 홍수가 나면 물에 둘러싸이던 곳이었는데, 1944년 댐이 들어서며 북한강 수위가 높아진 뒤 완전한 섬이 되었다. 모래땅이던 곳에 나무를 심고 길러 지금은 3만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숲을 이루었다. 2025년 문학 레지던시를 열었고, 나는 2026년 3월, 그곳에 보름간 머물렀다.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세 번째 작가라고 했다. 그곳 역시 나의 세 번째 레지던시였다. 첫 번째는 도시 한복판에, 두 번째는 인적 드문 산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남이섬은 유명한 관광지였다. 앞선 두 곳의 조건이 묘하게 겹쳐졌다. 야생동물과 마주치는 숲길 옆에는 갤러리와 카페가 있었고, 인파가 넘쳐나다가도 어느 순간, 나는 섬에 혼자였다. 한 시기마다 한 명의 작가만 초청하는 남이섬 레지던시의 특성은, 섬 안의 섬처럼 온전한 고립을 만들어주었다. 고립. 내가 레지던시에 들어간 목적이다. 작년 말 나는 모든 모임에서 빠져나왔다. 친구들에게도 반년간 연락이 닿지 않을 거라 말해 두었다. 그러고는 묵언수행을 하는 명상원에 들어갔다. 열흘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어느 절에서 묵언수행자의 등을 멀찍이서 본 적이 있는데, 그때의 나는 그가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지쳐 있었다. 끝까지 타 흘러내린 초의 자국처럼 책상 위에 눌어붙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낸 일은 전생인가 싶었다. 작년까지 나는 수험생 두 명과 살았고, 둘을 차례대로 대학에 보내 놓고 고립을 택한 건,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그런데 남이섬에 들어오기 전날 밤, 그중 한 명이 재수를 선언하는 게 아닌가. 나는 눈을 뜨자마자 급히 짐을 쓸어 담고 택시에 탔다. “남이섬이요! 최대한 빨리 가 주십시오.” 섬에서 눈을 뜨면 러닝화부터 신었다. 숙소의 왼쪽 길은 그대로 긴 달 모양의 외곽선과 이어져 있었다. 남에서 북으로 곧게 뻗은 직선 길을 달리다 섬의 끝에 다다르면 거대한 돌탑을 8자로 턴하며 돈다. 북에서 남으로 커다란 호를 그리며 달려 돌아온다. 해가 떠오를 무렵이라 뿌연 물안개가 수면에 낮게 깔려 흐르고 물안개를 가르며 오리 떼가 줄을 지어 따라왔다. 러닝을 마치면 아침으로 황태국을 먹었다. 황태국은 운동 후 단백질을 보충하기에 적당했고,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작업실로 출근했다가, 오후가 되면 숲길을 걸었다. 해가 질 녘의 섬은 언제나 다른 그림을 보여주었다. 낮 동안 사람의 발걸음에 맞춰 땅에서 걷던 공작새는, 어두워지면 높은 나뭇가지로 날아올라 밤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나도 작업실로 돌아와 온 섬의 불이 꺼질 때까지 책상 앞에 있었다. 작업실은 남이섬 측에 별도로 요청드린 공간이었다. 그림책 작업 중이어서, 자료를 펼쳐 놓고 볼 수 있는 커다란 책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0인용 원목 책상 맞은편 벽에 족자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는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하가람 - 내가 만났던 서랍
[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내가 만났던 서랍 하가람 2026년 2월 13일 체크아웃을 하고 탄 기차에서 내가 앉은 자리 대각선으로 전자책을 보고 있는 남자가 있다. 그가 읽고 있는 것은 ‘작가의 말’이고 첫 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만났던 서랍을 잘 잊지 못한다. 문득 던진 시선이 정지한다. 실눈을 뜨고 한참을 들여다본 후에야 내가 ‘사람’을 ‘서랍’으로 잘못 읽었음을 알아챈다. 내가 만났던 서랍.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나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글을 쓴다. 주로는 두어 개의 카페를 전전하지만 몇 년 전 팬데믹으로 카페가 폐쇄되었을 때는 호텔에 묵으며 작업하기도 했다. 집에서는 왜 글을 쓰기 어려울까. 언젠가 본 영상에서 한 요리사는 말했다. 국물이 들어간 음식에는 10시 1분의 맛과 10시 3분의 맛이 있다고. 나는 매일 그날 하루에만 쓸 수 있는 문장과 장면이 있다고 믿는다. 많은 날 나는 나룻배 위에 있다. 검은 호수의 수면은 잔잔해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늘 무언가 부유하고 있다. 헤엄치는 물고기나 신발 한 짝, 썩은 과일 같은 것들이 내 주변을 흐른다. 검은 호수에서 나는 매번 다른 것을 건져 올린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변하는 것은 없건만 내 자세는 달라진다. 한 호수에 오래 머물다 보면 바짝 세웠던 허리가 굽어지고, 어제 잡은 물고기나 오늘 잡은 물고기나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는 생각이 밀려들기 마련이다. 익숙한 공간은 나를 무르게 만든다. 몸이 고되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별수 없이 집에서 작업하지만 그럴 때조차 집을 낯설게 만드는 의식이 필요하다. 영국 성당이나 사찰 ASMR을 틀어 공간의 공기를 바꾸고 평소에 쓰지 않는 향수를 방 안에 뿌리기도 한다. 정작 호텔 같은 곳에 들어가면 나는 반대로 군다. 문고리를 돌려 방 안에 들어서는 순간 마주하는 전경―빳빳한 침구와 가지런한 가구의 배치―은 처음 만난 이의 얼굴만큼이나 서먹하다. 나는 잠시 얼어붙은 채 그 얼굴을 응시한다. 처음 만난 사람과 친밀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내 물건을 소개하는 것이다. 쪼글쪼글한 핸드크림과 아끼는 티백, 인공눈물처럼 사소한 것들을 그에게 나누어주기. 짐을 풀자마자 나는 차가운 서랍 속에 소지품을 집어넣는다. 내 속내를 내어 보이듯 그 방 곳곳에 손길을 뻗는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어떤 공간을 나는 원하는 걸까? 내가 만났던 서랍.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다 보면 꼭 서랍 속에 물건을 두고 오는 일이 생기곤 한다. 체크인 직후에는 맨 먼저 서랍을 열어 물건을 채워 넣으면서도, 체크아웃을 할 때는 방을 나서는 순간까지 서랍을 열어볼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다. 그저 눈에 보이는 물건만 챙기기에 급급한 것이다. 왜 떠나는 나는 도착하는 나보다 언제나 조금 더 무심할까. 대개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곳에 물건을 놓고 왔다는 것을 알아챈다. 아니, 확신하지는 못한다. 그것이 사라졌던 시기를 돌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임택수 - 빛의 카르토그라피
[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빛의 카르토그라피 임택수 여행지의 호텔에 며칠 묵게 되면, 나는 꽃을 샀다. 야생의 빛 같은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방은 나를 밀어내듯 납작해졌다. 유리컵이든 값싼 꽃병이든 물을 담아 꽃을 꽂아두면, 방 안에 없던 높이가 생겼다. 오늘은 미모사 한 줄기. 만지면 부서지고, 멀어지면 공기 속으로 풀어질 것 같은 꽃송이들, 흩어지기 직전의 햇빛 알갱이 같다. 모네처럼, 아버지처럼 평생 정원을 가꾸며 살고 싶었지만 나는 여러 장소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주소는 자주 바뀌었고, 도착한 곳의 계절은 늘 막 시작되거나 막 끝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래 머무는 일보다, 잠시 머문 것들에 눈길을 주었다. 지나가는 빛이나, 금세 사라질 장면 쪽으로 조용히 서게 되었다. 서울프린스호텔에서 걸어서 오륙 분, 남산 초입에 모교가 있다. 언제나 열려 있는 정문, 비좁은 마당, 대극장의 파사드. 창의 배열과 입면의 분절이 만드는 리듬에 따라 시선을 옮긴다. 스물다섯에 입학한 학교는 경기도로 이전했고, 옛 건물은 부속 캠퍼스가 되었다. 오래전, 이 공간을 공유했던 사람들. 얼굴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담장에 바투 붙어 걷던 뒷모습 같은 것. 그리운, 스승의 방에서 흘러나오던, 주먹만 한 물방울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내는 소리 같은 음악. 이해한 만큼 오해한 시간. 나는 입을 다문 채, 늘 바람 속을 걸어가는 사람 같다. 겨울이므로, 칼바람이 분다. 조금 더 늙은 기분이 든다. 뺨부터 천천히 지워지는 것 같다. 밤이 내려오자, 명동의 창들은 하나둘 불을 밝힌다. 머릿속에 펼쳐진 지도 위로 맥락 없이 떠올랐다 끊기는 장면들. 누구의 것도 아닌 시간이 잠시 눈앞에 머무른다. 어떤 기억은 슬픔으로 남는다. 그 기억이 나를 이곳까지 데려왔을지도 모른다. 십 대에 일했던 을지로입구 인쇄골목은 이미 지도에서 사라진 지 오래. 삼십 대의 직장과 디가 살던 충무로 적산가옥. 각각의 시절이 명동 주위의 위성처럼 가물거린다. 무력한 그리움. 명동이 아니라면, 나는 더 기꺼이 미쳤을 것이다. 저만치, 남산타워가 붉게, 느리게 깜박인다. 눈이 녹은 길 위에 염화칼슘이 뿌려져 있다. 큰길의 경사는 그대로인데, 안쪽 골목은 말끔히 정비되었다. 지워진 자리일수록 정돈된 얼굴을 하고 있다. 예술관은 기억보다 작게 보이고, 주변에는 게스트하우스가 눈에 띄게 들어섰다. 국적을 특정할 수 없는 얼굴들과 생소한 언어들이 궤도를 따라 떠다닌다. 어떤 식당에서는 히잡을 쓴 단체가 치킨을 먹고 있다. 닭을 볼 때마다 나는 김수영 시인을 떠올린다. 오래 머물지 못한 빛. 어쩌면 그가 남긴 짧은 밝음이야말로 우리가 통과한 벨 에포크였는지도 모른다. 네온이 쏟아지는 밤거리는 눈이 시리다. 불 꺼진 환전소 앞이 별안간, 환해진다. 눈을 떼면 사라질 것 같은 세 사람이 빛 속에 서 있다. 담배를 문 사람이 나를 똑바로 본다. 그의 두 눈에는 이미 끝이 와 있다. 현실은 늘 늦는다. 시는 그보다 먼저 간다. 그가 그렇게 말했는지, 내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고혜원 - 익숙한 경로에서 벗어나기
[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익숙한 경로에서 벗어나기 고혜원 익숙함을 좋아하는 수동적 도전자 나는 익숙한 경로를 좋아한다. 산책을 가더라도 평소에 자주 가던 길로만 가고 글을 쓸 때면 자주 가는 단골 카페에서 작업한다. 그 카페에 자리가 없다면 2순위, 3순위까지 정해져 있다. 사실 노트북과 글을 써야만 하는 내가 있다면 어느 카페든 상관이 없겠지만 나의 발걸음은 익숙한 곳을 향해 간다. 언제였을까. 이직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직 전 회사와 이직 후 회사는 2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중심으로 정반대에 있었는데, 자연스레 이전 직장 방향 지하철에 몸을 실으려는 걸 간신히 정신줄을 부여잡고 내렸던 적이 있다. 아직 내 삶의 경로가 바뀐 걸 몸이 인식하지 못했구나 싶었다. 그만큼 몸에 배어있는 행동들이 나를 지배한다. 출근 시간이나 퇴근 시간에 별다른 약속이 없다면 자동으로 몸이 움직여 회사 또는 집으로 나를 데려간다. ‘어디로 가야지’라는 어떠한 의지가 배제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멍을 때리다가도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회사로 나가기 위해 합정역 10번 출구 쪽으로 몸이 향한다. 몸이 기억하는, 현재진행형인 내 삶의 경로다. 그래서 주말마다 작업하기 위해 가는 장소도 대부분 정해져 있다. 주말인데 글 쓰러 나왔다고 말하면 오랜 지인들은 ‘오늘도 거기?’라며 메시지를 보내곤 한다. 그럼 나는 ‘네, 마감이 있어서.’라고 대답한다. 거기에 없는 날은 마감이 없거나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없는 날이다. 그럼 이따금 지인들은 글 쓰는 나를 찾아와 지나가다 들렀다며 인사하고 갈 때도 있다. 이럴 때면 마치 게임 속 NPC가 된 기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머무는 공간에 익숙해져야 긴장이 풀리고 효율이 좋아지는 나에겐 내가 잘 아는 공간, 내가 예측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꽤 중요하다. 그런 내가 6주 동안 새로운 공간으로 내 몸을 던지는 건, 도전이었다. 굳이 새로운 곳에, 무거운 짐을 풀고 적응해야 하는 곳에 ‘지금 내가 가야 하는 이유가 뭘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 신청할 때는 4주만 신청했었다. 너무 길게는 힘들 것 같아서. 그렇지만 입주 전 통화로 담당자님께서 진짜 4주로 충분하겠냐고 재차 물어보셨다. 다들 더 지내고 싶어 하신다고. 그 제안에 나는 그렇다면 6주를 꽉 채워 지내보겠다며 마음을 바꿨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레지던시 지원사업’에 왜 신청하게 되었는가에 관한 의문이 자연스레 따라올 거다. ‘낯선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굳이 왜?’ 그러니까 나는 도전을 좋아한다.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고 반 페이지에 걸쳐 외쳤지만 그 와중에도 새로운 것을 곁에 두는 건, 내 호기심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언젠가 나는 왜 이럴까, 하며 고민하던 내가 나를 정의하는 단어로 ‘수동적 도전자’라는 수식을 만들었다. 익숙한 걸 좋아하면서 이따금 아예 새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진보라 - 날마다 이방인
[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날마다 이방인 진보라 그날의 감각이 여전히 선명하다. 서울의 한파가 절정에 달해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던 날, 따뜻한 부산에서는 볼 수 없는 함박눈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배정받은 방의 문 앞에 내 이름이 적힌 ‘소설가의 방’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본래 호텔 객실이란 철저히 익명의 장소다. 하루, 혹은 며칠 단위로 주인이 바뀌며 앞선 이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내는 것이 그곳의 가장 큰 책무일 것이다. 누군가의 존재를 증명하는 표식을 남기지 않는 것, 그것이 호텔이라는 공간이 지닌 엄격한 불문율일 테고. 그 견고한 익명의 공간이 기꺼이 나를 제 일부로 받아들여 주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를 위한 소설가의 방은 마치 이 공간이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려왔다는 정중한 방증 같았다. 집이 있는 부산을 떠나 이토록 긴 시간 서울의 심장부에 거처를 둔 것은 내 생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짐을 풀기도 전에 창가로 다가가, 흰 눈의 눈부신 비행을 한참 동안 구경했다. 바닥에 내려앉은 부드러운 눈이 세상을 덮으며 명동의 소음을 지워가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정처 없이 서울을 떠도는 유랑자가 아닌, 비로소 머무는 자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호텔 투숙객의 90퍼센트는 외국인이었다. 로비에는 늘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가 들렸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은 매일 새로운 얼굴로 교체되었다. 그들은 짧으면 이틀, 길어야 일주일 사이에 짐을 싸서 떠났다. 누군가 잠시 머물다 흔적 없이 증발하는 곳. 이 공간의 본질은 본래 머무름이 아니라 스쳐 감에 있었다. 처음엔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호텔의 배경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호텔 직원들에게 나는 수많은 익명의 투숙객 중 하나였을 테니. 나 역시 그들의 친절한 마스크 너머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런데 호텔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되던 어느 아침, 직원 한 분이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작가님, 오늘도 일찍 나가시네요.”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익숙한 이를 발견한 반가움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나를 기억하는 자의 눈빛이었다. 매일 새로운 얼굴을 맞이해야 하는 이들에게, 날마다 같은 자리에 나타나는 나는 어쩌면 일종의 균열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방 번호 뒤에 숨지 못하고, 익숙한 얼굴과 기척으로 호텔이라는 공간에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과, 나라는 사람을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위화감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할 무렵, 역설적으로 내가 여전히 철저한 이방인이라는 감각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들이 나를 기억하기 위해 들인 시간보다, 내가 그 공간을 홀로 기억해 온 시간이 훨씬 깊고 무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공용 세탁기가 몇 시에 제일 붐비는지 체감했고, 조식 식당 창가로 들어오는 서울의 아침 볕이 몇 시쯤 따스해지는지를 알아냈다. 엘리베이터에서 스쳐 지나간 수십 개의 무표정한 얼굴들 속에서 어제 본 눈매를 찾아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천운영 -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인 날들
[레지던시 일기-협성마리나 G7]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인 날들 천운영 1. 여행과 나날 여행 짐 꾸리는 데는 꽤 능숙하다 자부하는 사람이지만, 이번만큼은 좀 고심을 많이 했다. 여행자와 거주자를 오가는 ‘여행과 나날’을 위해 필요한 것들. 가방 하나에 담을 수 있을 만큼만, 있어야 하는 것과 있으면 좋은 것 사이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필요한 것만 추려서. 목표는 기내용 캐리어 하나였는데, 추울까 불편할까 모자랄까 들었다 놓았다 하다 보니, 24인치 캐리어에 백팩까지 꽉 채우고 말았다. 그런데 또 막상 가서 풀어 보니 텀블러는 두 개나 챙겼으면서 꼭 필요한 약주머니는 통째로 두고 왔다. 비상약이야 그렇다 치고 일정 시간에 복용해야 하는 처방약들은 어쩌란 말인가. 짐을 풀다 말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내과를 찾아갔다. 딱 보기에도 연식이 오래된 병원이었다. 새로 진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진단서로 약만 처방받으면 될 일이니 상관없었다. 나이 든 간호사와 더 나이 든 대기실의 환자들. 대화로 짐작건대 서로의 사정까지 다 알고 지내는 단골들만의 병원인 듯했다. 할머니가 진료실에 들어간 지 꽤 지났는데 나올 기미가 안 보이자 간호사가 내게 다가와 변명하듯 말했다. 치매야 치매, 하루가 멀다 하고 와서 약 내놓으래. 소화 안 되고 허리 쑤시고. 약을 그렇게 드시니 소화가 안 되지. 오늘은 아들이 돈 훔쳐 갔다고 하소연. 원장님은 그걸 또 다 들어줘. 힘들게 왜 그걸 다 받아 주고 있냐고. 환자의 비밀인지 간호사의 하소연인지. 정감 있다 해야 할지 대책 없다 해야 할지. 오랜 기다림 끝에 들어간 진료실에서 마주한 것은, 데스크 간호가 왜 그리 세세히 문진을 했는지 알겠는 의사의 상태. 허리가 기역자로 꺾여 머리가 거의 책상에 닿을 것 같았는데, 그나마도 목을 못 가누는 어린애마냥 흔들흔들 매가리가 없는 것이, 의사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환자처럼 보였다. 의사가 내게 물었다. 어디 불편해? 불편한 거 있으면 나한테 다 말해. 다 들어줄게. 요즘 뭐 힘들어? 뭐라고 답해야 하나. 고지혈증약을 먹어야만 되는 몸 상태를 말해야 하나. 하도 글이 안 써져서 이 먼 곳까지 왔다 말해야 하나.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자 의사가 재촉했다. 지금 고통스러운 게 뭐야? 다 말해 봐. 저 깊은 곳의 통증까지 끌어올려야 하나 어쩌나. 여기가 내과인가 정신과인가 성당인가. 그냥 처방전이나 내주시라고요, 하고 싶었다. 내게 들을 하소연이 없다는 걸 알았는지 이번엔 다른 걸 들어야겠다 나섰다. 어디 심장 소리 좀 들어 보자. 의사가 다짜고짜 청진기를 들이댔다. 숨소리도 아니고 심장소리. 나는 얼결에 외투를 벌리고 가슴을 밀었다. 이곳저곳 청진기가 지나갔다. 거기서 무슨 소리가 들리겠나 싶은 곳까지 구석구석. 이제 그만하시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을 때, 의사가 마침맞게 청진기를 떼며 웃었다. 잘 뛰고 있네. 잘 뛰고 있어. 못 뛰고 있으면 여기 왔겠냐고요, 할 뻔했다.
작성일 2026-04-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김휴일 - 신춘회관, 봄을 아카이빙합니다
[문학의 곁] 신춘회관, 봄을 아카이빙합니다 ― 신춘문예를 사랑하는 모두를 위한, 신춘회관(@Sinchun.co.kr) 김휴일 1. 2024년 10월의 마지막 주. 퇴근길의 지하철은 언제나처럼 붐볐다. 3호선의 고질적인 문제인 스크린도어 고장으로 출발은 한참이나 지연되었다. 출발 즈음에는 서로의 몸으로 잔뜩 끼어 버려 손잡이를 잡을 필요조차 없었다. 불특정한 사람들의 불쾌한 체취를 참아 내며, 나는 이 시간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집에 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어야지. 침대에 누워 영화나 보아야지. 바라기엔 너무나 소박하고 초라한 소망들만 떠올랐다. ‘신춘문예’는 그 답답한 열차 내에서 불현듯 떠오른 단어였다. 2015년. 국어를 전공했지만 글을 쓰지 않고, 시집 한 권 제대로 읽어 본 적 없이 대학교 3학년이 되었다. 내가 대학교 3학년이라니. 뭘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어느새 선배였고, 대학교는 언제나 1, 2학년을 위한 공간이었다. 익숙해진 모든 것들로부터 조금 치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인생에 노인이 있듯이 고등학교에는 고3이 있는 법이었고, 대학교에는 3, 4학년이 있는 법이었다. 내년이면 내가 졸업반이 되는구나. 그렇게 취업전선에 뛰어들겠구나.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복잡했다. 몹시 두렵고 조급했다. 좀 알 만하면 떠나야 하는 게 대학 생활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 3학년의 봄은 그렇게 왔다. ‘시창작특강’을 수강 신청한 이유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들을 수업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텐데, 첫 강의를 들은 날부터 시에 매료되어 졸업에 이르기까지 내 대학 생활의 포커스는 오로지 시 쓰기가 되었다. 교수님의 권유로 학과 내 문학 창작 동아리에 뒤늦게 들었고, 시를 읽고 쓰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세상을 시로 보고, 시를 통해 세상을 보니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눈이 생긴 기분이었다. 시를 진지하게 써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새로운 눈 하나를 얻는 일이라는 것을. 길을 걸으며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시로 보였다. 비유의 세상에서 모든 것은 모든 것이 될 수 있었다. 타이어와 사랑을 연결하는 것도 가능했고, 낙지젓갈과 미래를 연결하는 것도 가능했다. 전혀 관련 없는 것들을 연결하고, 일상의 사건 사이 낯선 감정들을 구태여 파고들면서, 모든 생각을 시로 재구성하던 그 시절은 정말 행복했다. 졸업 후의 삶도 나름대로 다채롭고 재미있었지만, 먹고살 걱정을 하면서 시와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더 이상 읽지도, 쓰지도 않는 삶이었다. 오며 가며 만나는 아저씨들이 “국문과 나왔다고? 나도 한때 작가의 꿈을 꿨었는데.” 하는 말들에 헛구역질을 하던 나는 어느새 ‘한 때 시인이 꿈이었다’고 말하는 30대가 되어 있었다. 영원히 낭만적일 거라 호언장담했던 그 시절의 나를 가볍게 배신하고, 시의 세계에서 도망쳤다는 사실이 몹시 부
작성일 2026-04-01 댓글수 0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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