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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호

문장웹진 vol.258 2026년 10월호

[10월호를 열며] 저는 대체로 한 글자로 된 단어를 좋아하고, 그 다음으로는 두 글자로 된 단어들을 좋아합니다. 밤새 적어내려갈 수도 있으나 바로 떠오르는 것들을 열거해보자면 어제, 후회, 체념, 고민, 결정, 눈물, 가을, 백미, 수면, 선물, 사랑, 쿠키, 인사, 이별, 사람, 저녁, 소설, 세계, 그리고 불화가 있겠습니다. 실제로 후회라든지 이별이라든지 불화不和라는 단어들이 지칭하는 상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이 단어들을 좋아하는 겁니다. 이 단어들이 세계와 불화하던 저를 살게 해주었기 때문인데요, 저로서는 세계世界라는 단어가 좀 거창하게 여겨지지만, 돌아보면 그때의 제게는 그 세계만이, 세계,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모르던 세계는 문학 안에 있었습니다. 아는 것이 아니라 안다고 ‘생각’했기에 궁금해한 적 없는 시간과 사람들, 감정과 이야기들이 다른 얼굴을 하고서, 그곳에 있었던 것이지요. 내가 모르던 세계는 사실 알고 있었으나 잊고 있었던, 어쩌다 잠깐 놓치고 말았던 그때 그거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저는 안도하는 동시에 불편하였는데, 놀랍게도 약간의 단차를 두고 나타난 두 현상을 오가는 일은, 그것들이 뒤섞였던 순간들을 되짚는 일은 쓸모가 있고 즐거웠습니다. 안전감과 위험함의 경계가, 누군가 작은 이야기를 쓰게 해주었다는 걸 짐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호 기획에서는 박인성 문학평론가의 사회로 위수정 소설가와 이미상 소설가와 함께「안다무(安穩-多情-無害) 시대와 위험한 소설들」이라는 주제의 좌담을 마련하였습니다. 세 분의 이야기를 통해 소설적 미학과 구체적 방법론에 대해, 소설이라는 장르의 맨얼굴에 대해, 내 안의 그 무엇과 세계가 불화하던 소설적 순간들에 대해 환기해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라며, 늘 문장웹진과 함께해주시는 독자들과 필자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ㅡ 이주란 문학평론가 외 문장웹진 편집위원 일동 2026년 10월호 ⓒ 윤연우 10월호 표지 그림 작가의 말 “내 집에는 안온하고, 다정하고, 무해한 것들이 가득 채워져 있어. 그래도 난 그 바깥에 있는 낯설고 새로운 이야기를 찾고 싶어.” 문장웹진 2026년 10월호 목차 구분 작가 제목 시 공도이 옮긴이의 말 Perfect Day 김유자 신의 휘파람 미완성 김이듬 덩굴성 문장 발굴한 감정 김지숙 공원의 빛 중성미자 박정대 리스본, 파리,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진부, 겨울의 뭐랄까 봄의 그런 거 있잖아 우은주 사랑 전의 일들 미미 장현 레시피 케이크 단편소설 박선우 암순응 손호영 보트 아래 윤해서 베일 이서수 공유자의 기록 장편소설 강대호 그림자 신을 탐구하는 순례자를 위한 안내서(2회) 박세회 아직 여기 있습니까(2회) 신다다 백 퍼센트 소년(2회) 양수빈 해로(2회) 이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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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호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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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2026.10.01
암순응 박선우

암순응 박선우 스트레칭의 마지막 단계는 아기 자세다. 우선 바닥 매트에 두 무릎을 꿇고 발뒤꿈치에 엉덩이를 내려놓으며 앉는다. 상체를 숙이면서 두 손을 머리 위로 곧게 뻗는다. 그러면 어깨의 삼각근과 등허리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얕은 신음이 절로 나온다. 그대로 이마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고 또 내려가는 것. 그리하여 더는 내려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 자세를 갖춘 뒤에는 호흡을 가다듬는다. 속으로 하나, 둘…… 서른까지 세다 보면 몸의 뒤틀린 부위들이 바로잡히는 게 느껴진다.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제자리에 끼워 맞춰지는 기분. 신체가 교정되는 감각은 정신 상태로도 이어진다. 머릿속이 한결 맑아지는 듯하다. 힘이 다하면 매트 위에 드러눕는다. 두 눈을 감은 채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뱉어낸다. 몸이 이완되는 감각에 집중한다. 그러면 호흡이 잦아들면서 주변의 모든 것이 서서히 멀어져감을 느낄 수 있다. 아득해지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도. 어느 순간에는 나 역시도. 스트레칭을 마친 후에는 몸을 일으켜 방문 앞으로 간다. 나는 번번이 문손잡이를 쥔 채 망설이다가 문을 열어젖힌다. 거실로 나가면 가죽 소파에 길게 누운 아버지가 보인다. 올해 일흔넷의 아버지는 한 손을 이마에 올려둔 채 나지막이 코를 골고 있다. 더는 염색을 할 수 없어 백발이 성성해진 머리카락과 고목 껍질처럼 버석하고 거무스름해진 얼굴, 움푹 파인 볼, 살집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앙상해진 팔다리로 맥없이 축 늘어져 있다. 매일 아침 나는 그 모습을 본다. 하루가 다르게 기력을 잃으며 쇠약해지는, 무시로 잠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어 헤어나질 못하는 아버지를 마주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더디게 흐르다 못해 한순간 뚝 멈춰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현실과 유리되면서 내가 아버지의 세계에, 그러니까 산 자들의 세계에서 죽어가는 자들의 세계에 휩쓸려 들어와버린 것만 같다. * “이대로면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사실 겁니다. 항암을 하시면 6개월에서 1년쯤이고요.” 혈액종양내과 허 교수는 아버지의 검사 결과를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말해주었다. 초진을 맡았던 소화기내과 전문의와 위암센터 외과의가 입에 지퍼라도 채운 양 말을 삼갔던 것에 비하면 훨씬 나았고, 어쩐지 속 시원한 감정마저 들었다. 처음으로 상급종합병원 의사에게 신뢰감을 느낀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허 교수의 소견에서 새로운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전이성 위암 말기 환자의 여명’ 같은 키워드로 검색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내가 느낀 속 시원함은 아버지가 시한부 환자임을 누군가 육성으로 선언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그동안 가족은 물론이고 지인들조차 쉬쉬해온,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그러니까 네 아버지는 얼마나 남은 거니?”―공식적으로 논할 수 있게 된 후련함 말이다. 그래, 내가 의사에게 원하던 게 바로 이런 거였어. 우리가 환자에게 도

단편소설 2026.10.01
보트 아래 손호영

보트 아래 손호영 한때 나는 얀의 말대로 집 앞을 비추는 보안카메라를 설치했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상상해 보곤 했다. 그가 사랑해 마지않던 햇빛, 무심히 우리 집을 침범하던 빛을 나도 결국 사랑하게 되었을까? 그 도시에 뿌리내렸다면, 나의 세계는 바라던 만큼 넓어졌을까? 어쩌면 우리는 아기를 낳아 키웠거나, 혹은 결혼했을지도…… 이런 생각들은 물의 파동처럼 하나의 점으로부터 사방으로 원을 그리며 뻗어 나가곤 했다. 나는 그를 떠나며 가족 핑계를 댔다. 여기서는 영원히 가족을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는 짐짓 놀라며,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나에게 너는 오래전부터 가족이었다고. 글쎄. 정말? 찰나였지만, 얀은 정말 상처받은 것처럼 보였고, 나는 승리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지난 일들을 여러 번 되감아 보면서 나는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이었는지 원점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정말 그의 견고한 세계에 작은 생채기라도 낼 수 있는 존재였는지를. * 암스테르담 출장에 김수오를 데려간 건 박 대표 부탁 때문이었다. 그곳에 살 때부터 눈여겨보았던 로컬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와 국내 독점 유통 계약을 맺으려던 참이었다. 수 개월간 메일과 화상 회의로 대략의 조건 조율이 끝난 단계여서 큰 부담은 없었다. 현지 스튜디오와 쇼룸을 돌아보는 일정까지 포함해 4박 6일 출장 계획을 보고했는데, 박 대표가 그제야 김수오에게 시킬 만한 일을 고민해 보라고 말했다.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오 년을 살다 이 년 전쯤 귀국했다. 반년 넘게 하릴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던 내게 해외 바잉과 상품 기획을 총괄하는 차장 자리를 제안하며 손을 내밀어준 게 대학 선배인 박 대표여서, 나는 그의 지시라면 가급적 따르는 편이었다. 김수오는 박 대표 친구의 아들로 올해 스물일곱 살이었고 몇 달 전 정직원으로 채용됐다. 그의 아버지는 치아 교정 전문의로 전국에 네트워크 병원이 30곳쯤 있는 치과 체인의 대표라고 했다. 잘은 몰라도 박 대표는 김수오의 아버지에게 얼마간 빚을 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불쑥 남의 사무실을 찾아와 맡겨둔 듯 자기 아들 일자리를 요구할 수 있겠느냐고, 그것도 정규직을, 의사라면 상식이 있는 사람일 텐데, 하고 직원들끼리 수군댔다. ─우리 아들이 올해 졸업하는데 패션을 하고 싶다네. 그러면서도 아주 당당하거나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박 대표에게 전해 들으니 그 집안은 대대로 의사였는데, 김수오가 삼수를 하고서도 의대 입시에 실패했다고 했다. 메디컬 편입을 하라고 생명공학부에 보내놨더니, 학점 관리는 뒷전에 갑자기 패션MD를 하겠다고 선언해 집안이 뒤집어졌다는 것이다. 경력직 뽑아달랬더니 낙하산 신입이 웬말이냐고 투덜대는 직원들에게 박 대표는 김수오가 비싸고 좋은 것들 많이 보고 자랐으니 감각은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미감이니, 취향이니, 요즘 그런 거 없는 애들도 있어요? 내가 말했다. ─말하자면 그렇단 얘기지.

단편소설 2026.10.01
베일 윤해서

베일 윤해서 ∴ 배달을 끊을 수 없다. 이번 달에만 12번째 같은 메뉴를 시켰다. 분리수거 배출일은 월요일이다. 월요일 18시부터 23시까지만 재활용 쓰레기를 배출할 수 있다. 일주일치 쓰레기를 모아 월요일 밤에 내다 버린다. 조명을 환하게 밝힌 주차장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커다란 이케아 봉투 가득 플라스틱 용기를 들고 온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 그 사람과 말없이 번갈아 비닐, 플라스틱, 종이, 캔을 분리 배출한다. 내가 이번 달에만 열두 개째 버리고 있는 똑같은 플라스틱 뚜껑 아래 색색의 플라스틱이 가득하다. ∴ 두 개의 점이 있다. 점을 번갈아 본다. 어떤 움직임이 점을 만들 때 점에 내려앉는 건 뭘까. 같은 크기의 점을 찍을 뿐인데. 무엇이 점과 점 사이에 차이를 만드나. ∴ 면허 갱신 안내 문자를 받았다. 최근 6개월 내 찍은 사진이 있어야 하고,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 증명사진을 찍는 일은 언제나 불편하고 어색하다. 어딘가 제출했을 최초의 증명사진을 앨범에서 발견했는데, 5살의 나는 입을 꼭 다물고 뭔가를 참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증명사진을 찍을 때마다 흑백사진 옆에 모아두었는데 조금씩 다른 사진 속 얼굴이 모두 흑백사진 속 얼굴과는 기묘하게 닮아 있다. 내가 사진관을 선택할 수 있게 된 후로는 계속 같은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다. 몇 년 만인지 그 사이 사진관은 이사를 했다. 큰길가에서 골목 안쪽으로 이동한 것을 확인하고 찾아갔는데 이전 사진관 크기의 절반도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 의자와 카메라가 놓여 있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왼쪽으로 조금 갸우뚱. 이런 지시를 하던 사장님이 답답했는지 가까이 다가와 고개를 이리저리 조금씩 움직였다. 보정을 거친 사진 속 나는 거울로 매일 보던 나와 달랐다. ∴ 금을 넘는 데 몰입하던 때도 있었다. 충동이 휘두르는 대로 휘둘리면서.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거나 휴대전화를 없애고 오래 걷거나 새벽까지 놀이터에 앉아 있거나. 보고 싶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 토끼 머리 위에 쌓인 먼지를 털고, 알람이 울리는 것을 듣고만 있었다. 토끼는 세 마리. 접시 하나를 들자고 매끈한 토끼 셋이 두 손 모으고 있다. 예외는 있을 수 없어 사이좋게 나란히. 어떤 날 접시 위에 사과를 올리고 토끼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아래층 사람이 천장을 두드리기 시작해서 팔 아프겠다, 생각하다가. 아래층 천장 위에 웅크리고 깜빡 잠들었다. 해가 지려는지 집은 어둑하고 에어컨 바람이 서늘했다. 눈을 뜬 건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기 때문. ∴ 통 속에 손을 집어넣는 기분. 통의 깊이를 알 수 없다. ∴ 큰 화분 2개와 작은 화분 2개가 있다. 작은 화분 중 하나에서 꽃대가 올라왔다. 이렇게 더운데. 꽃이 피었다. 역대 최대. 역대 최고. 이런 표현이 매일 반복되고 있다. 에어컨을 틀어 갇힌 공기를 식힌다. 2주 전에는 짧았던 꽃대가 일주일 만에 길어지더니 다섯 송이의 꽃이 피

단편소설 2026.10.01
공유자의 기록 이서수

공유자의 기록 이서수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가 나를 데려간 곳은 엉뚱하게도 낡은 정자 앞이었다. 아버지는 육모정이 있는 그 땅을 세 조각으로 잘라 친구들과 나누어 가졌던 사실을 내게 처음 알려주었다. 사다리꼴 모양의 땅 둘레에 소나무와 중국 단풍나무, 벚나무가 띄엄띄엄 심겨 있었다. 파란 셔츠를 입은 아이가 정자 마루 끄트머리에 앉아 휴대폰 게임을 하며 발끝으로 축구공을 굴렸다. 그 모습이 무척 편안해 보여 부근에 사는 아이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세 사람이 삼분의 일씩 갖고 있어. 그러니까 이 땅의 삼분의 일이 네 몫이라고. 아버지에게 땅이 있었는지도 몰랐기에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게다가 내게 증여할 생각이라는 말이 더욱 놀라웠다. 아버지가 다른 가정을 만들면서 우리의 관계는 소원해진 지 오래였다. 한편으론 번듯한 건물이 아니라 낡은 정자가 지어진 땅을 물려받게 된 사실이 약간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정자 앞은 너른 공터였고 지도 앱을 통해 확인한 주변엔 초등학교와 파출소, 보습학원과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정자를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지으면 가치가 얼마나 오를지 궁금했다. 정자는 저대로 내버려 둬. 그건 지켜. 아버지가 내 속내를 읽은 듯이 말했다. 나는 미약하게 항의했다. 땅을 이렇게 놀리는 사람이 어딨어? 놀리는 게 아니지.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잠시 말이 없던 아버지가 입을 뗐다. 올해 우리가 자식들에게 땅을 증여하기로 다 같이 합의를 봤어. 왜 그런 결심들을 하셨는데? 그냥 때가 된 거지. 상념에 잠긴 표정을 짓던 아버지는 퍼뜩 정신을 차린 듯하더니 갑자기 일이 생겨 빨리 돌아가 봐야 한다고 말했다. 땅에 대한 설명이나 해명이 더는 없었다. 나는 의구심을 삼키고 정자와 나무를 한 프레임 안에 담아 사진을 찍었다. 그러곤 어색함을 적당히 감추며 아버지와 정자 앞에서 헤어졌다. 해마다 한두 번씩 오가던 안부 연락마저 뜸해지던 때였기에 서울로 함께 돌아갈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생전에 재산을 미리 처분하려는 아버지의 태도가 못내 마음에 걸렸던 나는 결국 한 통의 문자를 보냈다. ―아버지, 혹시 어디 아파? ―건강해. 그때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분명 건강했던 것 같고, 나는 언젠가 그 땅에 대해 아버지와 길게 얘기할 기회가 다시 있을 줄 알았다. 3년이 훌쩍 흐르고 겨울 산행을 나선 아버지가 실족사로 세상을 뜰 줄은 까맣게 모르고서. * 부고장엔 그들이 아버지의 자식으로 되어 있었다. 내 이름이 없는 온라인 부고장을 들여다보다 장례식에 가지 않을 결심을 세웠다. 그러곤 동네 성당으로 가 나름의 작별 인사를 했다. 자식에게 지은 죄가 있긴 하지만 좋은 곳으로 가시게 해달라고 두 손 모아 빌었다. 세상을 먼저 떠난 이들의 안식을 위해 켜둔 초를 바라보다 아버지의 봉헌초도 마련해 불을 밝혀 두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친족의 도리로 그 정도는 하고 싶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새 초가 보이지 않아 나는 스스로 초가 되어 아버지 생의 일면을 조용히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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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공화국 문학 선언 윤재민

제6공화국 문학 선언1) ― 사변적/편집증적 한국문학 시론 ― 윤재민 1. 한국 문학사라는 유령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싶다. 아주 진부한 대목으로 운을 띄우며 글을 시작할 테니까. 심지어 다음과 같이 약간의 패러디까지 가미해서. 하나의 유령이 한국 문학계를 떠돌고 있다. 한국 문학사라는 유령이. 지금부터 관철하고자 하는 사안을 유령론만큼 적확하게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는 내가 문학과 관계하는 진부하면서도 일견 특수한 위치에서 나타난 ‘문학사적 충동’의 발로이다. 그것은 기존 문학사 서술에 대한 모종의 불만에 기인하는데, 그렇다고 문학사를 다시 쓰겠다는 욕망과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기존 문학사와 전혀 다른 시간성에 한국문학을 내던지고 싶다는 충동에 가깝다. 내가 이런 독단적인 문학(론)을 욕망하게 된 계기는 아래의 대목에 사로잡히고 나서부터다. 한국 문학사가 개별 문학이라는 의미는 한국 문학사의 기준이 한국사 총체 속에 있다는 사실의 소박한 인식을 뜻하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볼 때 이러한 진술은 편협한 지방성, 파행성의 노출로 오해되기 쉬우며 심지어는 배타적 독선적 쇼비니즘 내지는 문화의 보편성을 압살하는 사고방식으로 간주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체 민족의 행복에 감성적으로 작용하지 않는 문화 파악력은 역사의 추진력이 될 수 없을 것이다.2) 김윤식·김현 『한국문학사』(1973)의 한 대목이다. 두 사람의 문학사 시도는 임화 이래 이식문학론의 성취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민족 공동체의 근대적 주체성을 한국문학 성립의 당위로 삼은 ‘총체적 민족 문학사’의 한 전범으로 남았다. 근대 맹아론으로 간편하게 정리되기도 하는 『한국문학사』의 총체적 관점은 이 시대에는 설명력의 한계가 뚜렷하다. 이식문학론이든 근대 맹아론이든 간에, 더 이상 한국문학에 대한 총체적 서술이 불가능하다는 건 이미 상식이다. 내가 『한국문학사』에서 매혹된 사안은 『한국문학사』의 서술 방법이 아니다. 문학사 서술의 당위를 ‘주체 민족의 행복에 감성적으로 작용하는 문화 파악력’에서 구한다는 대목이다. 이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가. 공동체의 행복과 역사 운동의 작동이 양립할 수 있는가. 위 인용문에 표명된 ‘행복’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두 사람은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 모호한 대목에 사로잡혀, 그 의미를 내 식대로 번역해본다.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아도르노는 행복을 현실에서 온전히 실현할 수 없는 가치로 본다. 폭력과 모순으로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가 억압되고 핍박받을(말 그대로 행복을 박탈당할) 잠재성이 상존하는 가운데, ‘현세의 행복’이란 이를 망각케 하는 허위이자 기만이라는 것이다.3) 그러나 아도르노 같은 현자가 아니라면 누가 ‘현세의 행복’을 쉬이 포기하겠는가. 그 양태가 허위이든 기만이든, 우리는 각자의 행복을 추구한다. 나의 행복이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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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포기 : 남성적 돌봄의 주권을 반송하는 소설적 방법들 김건형

상속 포기 : 남성적 돌봄의 주권을 반송하는 소설적 방법들 김건형 최근 소설장에는 가부장이 남긴 재산과 권력, 그리고 그에 딸린 ‘돌봄’의 형태를 상속할 것인가를 두고 머뭇거리거나 항의하는 소설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가령, 성해나의 「스무드」1)는 광장의 ‘아스팔트 극우’ 노인들과 낯선 조우를 통해 한국 사회 고유의 가부장적 희생과 돌봄이 어색한 형상으로 되돌아온 경위를 되살펴 보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독자와 평론의 주목을 받았다. 직접적으로 동시대의 광장을 경유하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가 구축해 온 고유의 남성적 돌봄과 그 유산을 손에 쥐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후속 세대의 곤혹과 고민을 다루는 소설들이 연작에 가깝게 제출되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 계절의 소설에서 “남성의 몸이 시들시들한 수동으로 묘사되”는 “허약한 남성성”이 자주 탐구되고 있으나, 그것은 “서사적 분출구 없이 사실적이기만 한 재현”이었다는 날카로운 진단이 한 입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2) 어쩌면 그 수동적이고 허약한 남성들이 서사에서조차 분출구를 찾을 수 없는 것 자체가 동시대의 젠더·정치적 풍경에 대한 적확한 발견일지도 모른다. 다만, 굳이 남성(성)의 분출구를 대신 찾아주는 것보다는, 그토록 서사적 분출, 즉 ‘건강한’ 해법을 찾을 수 없는데도 자주 발견되는 남성(성) 재현이라는 패턴에 주목하는 것이 증상적인 독해가 될 것 같다. 할아버지의 유산, 역사를 다시 마주하는 오싹함 서장원의 「뱀이 있는 곳」3)과 김지연의 「무덤을 보살피다」4)는 모두 사촌지간인 손자, 손녀들이 죄 많은 할아버지의 무덤과 적폐를 ‘파묘’하는 이야기다. 이 소설의 화자들은 모두 할아버지의 유산이 과연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실체적인 힘이 있는 것인지를 반신반의하면서도, 실은 그저 자신이 과민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면서도, 끝내 각자의 집안이 숨겨왔던 비밀의 핵심에 다가가서 그것을 기꺼이 파괴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끝내 지연된다. 「뱀이 있는 곳」은 할아버지의 유산이 있는 ‘솔잎산장’으로 가는 길 내내 “하진에게 잘못한 사람들”(183쪽)에 대한 생각을 하며 시작한다. 성폭력 무고죄로 고발당한 하진은 자신을 도와줄 직장 동료들의 증언을 기대하지만, 사람들은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하면서 하진을 외면하고 있다. 이를 전해 듣는 정인은 “그런 비겁한 선택들이 세상을 망친다고 생각”(184쪽)하며 부아가 치민다. 명백한 성추행 혐의를 고발해도 이를 상업화하는 법조계 자본의 힘에 의해, 깔끔하게 무죄판결이 나고 마는 세계인 것이다. 그런데 잘못한 사람들과 비겁한 선택들을 회상해 보면 그뿐만은 아니다. 사소하게는 대책 없이 낭만적이고 무능한 부모들도, 좋은 대학에 갈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 하는 기숙형 재수학원에서 만났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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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게 말하게 하라 (2) 최선교

최선교 문학평론가의 기획 비평은 2026년 9월부터 11월까지 로 3회 연재됩니다. 여자에게 말하게 하라 (2) 최선교 김혜순이 말하는 여성성과 그 의의를 이해하기 위해 1990년대 여성적 글쓰기 담론을 경유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에 들어서며 민족민중문학의 하위 범주로 여성문학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문화』(이하 『또문』)은 1985년부터 2003년까지 총 17호에 걸쳐 발간된 여성문학 무크지이다. ‘또문’은 여성운동이 가시화되던 1980년대에 유학파이면서 사회과학 분야에 있던 여성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이지만, 동인의 구성원으로서 주부와 대학생까지 포함하면서 불평등한 성 문화를 타개하기 위한 대안 문화를 실천하고자 한 단체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또문』의 초기 호에서는 가사노동이나 육아 등 ‘여성’의 재생산 노동의 전면적인 재사유를 촉구하는 기획이 돋보인다. 『또문』이 추진했던 여성적 글쓰기 담론의 의미와 한계를 살펴볼 때 김혜순 시론의 여성성 개념이 갖는 특이점이 드러난다. 1980년대 여성문학이 민족민중문학 진영의 하위 범주로 인식되었던 것과 달리, 1990년대에 들어서 여성문학 진영의 관심사는 젠더와 섹슈얼리티, 계급, 민족을 포함하여 정체성의 복합적 성격을 탐색하는 지점으로 나아간다. 특히 『또문』이 여성적 글쓰기에 보인 관심은 남성중심적 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문화적 실천 대안의 일종이었다. 1992년 발간된 『또문』 9호는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를 특집 주제로 내걸며 다음과 같이 적는다. “우리는 이 책에서 여성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한다. 말 자체를 의심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남성의 말과 전쟁을 벌이려고 남성의 말에 맞추는 것, 그 말로 많은 것을 말할수록 자신의 언어를 더욱 잃게 되는 그 자가당착에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우리를 가두어 두고 싶지 않다. (...) 프랑스에서는 언어와 정신분석학을 연결하는 매우 이론적인 논의로 ‘몸으로 글쓰기’의 단어가 최근에 크게 부각되어 왔다. ‘몸으로 글쓰기’라는 것은 결국 기존의 언어가 여성의 체험을 풀어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자 하는 여성들이 해온, ‘머리’만도 아니고 ‘가슴’만으로도 아닌 온몸으로 쓰는 모반 행위라 할 수 있다.”1) 이 글은 여성이 부당한 억압을 향하여 억울하다는 외치는 주장을 잠시 멈추고, 근본적으로 여성이 사용하는 말 자체를 재사유해보자고 주장한다. 여성이 남성중심적 권력에 대항하여 자신의 경험을 재현하기 위해 ‘주체적으로’ 사용한다고 여겨지던 말들은 이미 남성중심적 의미 체계에 의해 오염된 것이므로, “말 자체를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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