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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보기최선교 문학평론가의 기획 비평은 2026년 9월부터 11월까지 로 3회 연재됩니다. 여자에게 말하게 하라 최선교 김혜순은 2002년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을 시작으로, 2017년 『여성, 시하다』를 거쳐 2019년 『여자짐승아시아하기』, 2026년 『공중의 복화술 : 문학은 어디서 시작할까?』에 이르기까지 여성과 여성시를 대상으로 한 시론을 세워왔다. 명백히 여성과 여성시를 위한 시론이다. 그녀는 여성에 대해서 말한다. 그녀는 여성시에 대해서 말한다. 이 진술에 대해 해명하거나 덧붙이고 싶은 말은 없다. 그녀의 시론은 기존의 ‘여성적 글쓰기’ 범주에 속하면서 ‘들림’이나 ‘바리데기’ 등의 동양 무속적 상상력을 통해 개성을 확보한다. 한국에는 ‘여류시’라는 말이 있(었)다. 김혜순은 생물학적 성차 개념에 기반을 둔 ‘여류시’라는 일종의 멸칭으로부터 ‘여성시’의 범주를 구분하려고 했다. 시론의 대상이 되는 ‘여성’이 생물학적 정체성이 아님을, 공중을 자유롭게 떠돌아다니지만 어떤 순간에는 생생하게 발악하기도 하는 구성적 개념임을 설명하고자 했다. 김혜순의 시는 종종 난해하다거나 초현실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녀 본인은 그러한 평가가 ‘현실’이나 ‘환상’의 개념을 남성적 관점에서 해석한 결과라고 비판한다. 현실이 무엇이고, 환상이 무엇인가. 무엇이길래 나의 시를 초현실이라고 부르는가. 그들이 환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곧 여성이 현실이라면? 그리하여 그녀는 여성이 쓴 시, 여성시를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발성기관, 새로운 발성법에 대한 해독이 필요”1)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구체적인 시 형식을 향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2022년 11월에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의 개정판을 펴내며 김혜순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무엇보다도 여성시는 여성의 형식을 발명한다. 면면히 내려오는 말하기 방법 말고 다른 말하기 방식 말이다. 무엇을 말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말하는가가 여성주의적 발성의 창안이라고 할 수 있다.”2) 이는 김혜순이 여성 시론을 적어나가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말하기 방식을 통해 ‘여성시’의 범주를 설계하고자 함을 암시한다. 단지 생물학적 여성에 의한 시가 ‘여성시’가 아니다. 여성이 말하는 시가 바로 ‘여성시’인 것이다. 시 형식에 대한 김혜순의 관심은 1990년대 한국의 ‘여성문학’ 담론이 가지고 있었던 한계로부터 시작한다. 1990년대 한국 문학장에서 ‘여성문학’을 둘러싼 담론들은 그 당시의─대부분 남성이었던─비평가들의 논리를 받아들인 것일 경우에만 미학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김혜순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여성 시론을 만들
분노의 하나비(花火) ─ 구소현론1) 하혁진 썩은 과일에 사랑을 담아 건네면 신선해진다고 믿나. 정말 그런가. 다시 살아난다고 믿나. 정말 그런가. ─ 「요술 궁전」 중에서 * 오랜만이다. 이런 소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데 한동안 뜸했던 것은 사실이어서, 구소현의 소설을 읽는 내내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잔뜩 화가 난 소설이라니. 이렇게까지 눈치 안 보고 나쁜 소설이라니. 분노의 감정이 차갑게 벼려진 폭력적인 장면들이 설령 보기 좋은 (혹은 보고 싶은) 장면들이 아니더라도 어쩌겠는가. 뒤표지의 표현처럼 그 마음 역시 인간이 가진 ‘진짜’ 마음인 것을. 고백건대 분노가 가득한 이야기를 읽는 동안, 그것이 불순한 마음임을 알면서도 적지 않은 해방감을 느꼈다.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세상인데,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우리 소설이 그 화를 지나치게 참고 있다고, 너무 오래 참아 왔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무튼 구소현의 소설에는 곪을 대로 곪은 마음의 종기를 터뜨리는 것 같은 장면이 여럿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장면. 은호는 피곤한 날에 꼭 꿈을 꿨다. 그녀는 꿈에서 죽이고 싶었던 사람들을 죽였다. 평생 꾼 꿈 중에서 최고로 기분 좋은 꿈이었다. 흉기로 목과 가슴과 배를 수차례 찔렀다. 기어가는 도중에도 계속 뒤쫓아가 마구잡이로 난도질을 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안면을 가혹할 정도로 가격했다. 눈알을 터뜨리고 광대뼈와 턱뼈를 으스러뜨렸다. 그 뒤 꿈에서 깨기 이전까지는 사람인지 연체동물인지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극악무도하게 시체를 훼손했다. 누군가 ‘꿈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묻는다면 은호는 어떠한 비난도 감수하고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324쪽)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과 실제로 그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면 곤란하다. 조시 코언은 “우리는 분노하면 종종 공격을 연상하며, 심지어 둘을 혼동하기도 한다”라고 지적하며, “하지만 공격은 분노와 달리 행동의 범주에 속한다”2)라고 짚어낸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구소현의 인물들은 느끼고, 행한다. 인용한 장면에서 은호는 죽이고 싶었던 사람들을 ‘극악무도하게’ 그리고 ‘기분 좋게’ 죽인다. 꿈이니까 괜찮다고? 그렇다면 소설은 현실인가 꿈인가. 은호가 말하는 ‘꿈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독자들은 꿈속에 있는가 현실 속에 있는가. 일단은 이렇게 대답해 두자. 끝없는 분노를 생산하고 심지어 부추기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분출할 출구는 마땅치 않은 상황, 즉 “분노와 공격의 병목 현상”3)으로부터 이 소설들이 나왔다. 감정은 땅에서 솟거나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감정은 언제나 ‘무언가에 관한 것’
사랑의 여백, 퀴어한 정동의 자리에서 ― 박상영 문학 읽기 황석현 회색빛 갯벌, 우연히 스며든 사랑 박상영의 소설 세계 「대도시의 사랑법」 도입부에는 연인 규호와 연애를 시작한 지 200일이 지난 시점에서 규호가 홀로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고영의 실수로 규호 홀로 떠나게 된 여행에서 고영은 공항철도 창밖을 바라보다, 감정의 리듬과 직면한다. “나 홀로 공항철도를 탔다. 창밖으로 회색빛 갯벌이 계속 이어졌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대도시의 사랑법」, 184-185면) 이 짧은 문장은 연인 규호와의 단절 이후의 감정을 '슬픔'이나 '외로움'으로 바로 치환하는 것이 아닌, 반복되는 비어 있음, 스스로를 검열하는 감정적 카메라, 종종 회색빛으로 필름이 씌워진 삶의 프레임으로 보여준다. 고영은 ‘갯벌’ 속에 발이 빠지듯 감정적 침몰을 겪으면서도 공허에 침전되지 않으며 곧이어 감정적 전환을 시도한다. 섹시한 팝가수 카일리 미그노 앨범과 립밤. 즉각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립밤을 찾는 행동은 감정을 파국으로 밀어 넣지 않기 위한 자기 정동의 능동적 복구 행위이다. 촉촉한 립밤을 바르며 감정의 표면을 다듬는 조심스러운 생존술로 읽을 수 있다. 입술은 말을 시작하는 신체 기관인 동시에 키스·식사·호흡 등 생존과 욕망의 경계 지점이다. 이는 사랑이 머뭇거리는 자리에서 지금 여기 다시 관계의 준비를 하는 미세한 제스처이다. 이는 관계를 살아낸 몸이 감정을 지속하려는 퀴어한 생존술이자 정동적 자기 조율 방식이다. 연인 규호와의 감정적 관계는 기계적 시간이 흐를수록 왠지 모르게 끝나가 보이지만, 여전히 감정은 끝나지 않고, 새로운 삶은 도래하지 않을 듯도 보인다. 이 글은 그러한 지속 불가능한 단일한 감정의 리듬, 끊어졌으나 끝나지 않은 애착, 그리고 삶을 살아내기 위한 감정적 생존술을 퀴어 정동1)의 관점에서 따라가 보고자 한다. 「대도시의 사랑법」과, 「늦은 우기의 바캉스」가 보여주는 감정의 구조, 감각과 기억의 귀환, 기쁨의 부재가 어떻게 문학적 윤리로 전환되는지를 추적해본다. 로런 벌랜트는 『잔인한 낙관(Cruel Optimism)』에서, 우리가 삶을 지속하게 해주는 어떤 대상이나 관계가 오히려 그 삶을 지속 불가능하게 만드는 모순적 조건으로 변할 때의 정동 상태를 ‘잔인한 낙관’이라고 설명한다(윤조원·박미선 옮김, 후마니타스, 2024). 현대의 주체는 여전히 ‘좋은 삶(good life)’의 약속을 좇지만, 그 약속 자체가 자기착취적 생존을 강화하거나 정서적 고통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기도 한다. 박상영 소설 속 고영과 규호의 관계 역시 이러한 양가적 구조 안에 놓여 있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애착을 통해 버티고 살아가지만, 그 관계는 사회적 제도와 생물학적 조건 속에서 점차 유지되기 어려운 형태로 변하며, 그럼에도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삶의 내부에 잔존한다.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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