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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호

문장웹진 vol.253 2026년 5월호

[5월호를 열며] 저는 시력이 좋지 않습니다. 물론 ‘좋지 않다’라는 건 (모든 사안이 그렇듯이) 상대적인 법입니다. 그래서 정확히는 이렇게 정정해야 하겠군요. “저는 우리 부모님 직계 가족 가운데 시력이 가장 좋지 않습니다.” 유전적인 탓인지 모르겠지만, 저희 직계 가족(부모님, 여동생)은 시력이 아주 좋은 편입니다. 사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십 대 초엽 어느 시점부터 제 시력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칠판 글씨가 보이지 않게 되었고, 친구들과 축구할 때 자주 공을 놓치는 등 일상생활에 지장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우리 직계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안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왜 갑자기 제 시력에 문제가 생긴 걸까요. 부모님은 그 원인을 책에서 찾습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 겁니다. 제가 안경을 쓰게 될 즈음부터 책을 가까이 두고 읽는 편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책은 제 갑작스러운 시력 저하의 결정적인 원인은 아닙니다. 저만 아는 진실이 따로 있습니다. 바로 게임입니다. 열한 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미니컴보이(닌텐도 게임보이의 한국 발매판)가 제 급격한 시력 저하의 주범입니다. (당연히 부모님 몰래) 손바닥 크기도 안 되는 아날로그 흑백 도트 화면에 푹 빠져 밤새 게임을 했던 나날이 떠오릅니다. 그게 성장기 시력에 끼친 ‘악영향’이 꽤 컸습니다. 하루하루 제가 체감할 정도였습니다. 어린 시절처럼 밤새워가며 게임에 몰입하던 시절은 제게 이미 지나가 버렸습니다. 여전히 게임을 즐기고 좋아하지만, ‘미니컴보이 시절’의 열정과 체력이 없습니다. 그 시절은 제 몸에 시력 저하라는 형태로 새겨져 있습니다. 부모님은 여전히 ‘눈 나빠질 정도로 책을 좋아하더니 결국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 되었구나’라고 생각하지만, 유년 시절 독서보다는 저의 시력에 게임이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믿습니다. 저는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종종 읽고 쓰기와 게임(플레이)의 상관관계를 생각합니다. 백지에 새겨진 잉크 얼룩(문자)을 눈으로 더듬어 갈 때 혹은 워드 프로세서로 하얀 스크린을 나만의 흔적으로 메꿔 나가는 순간이 흑백 도트 화면 흐름에 몸을 맡기는 유년기 게임 체험의 연장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실제로 읽고 쓰기에 따른 시력 저하가 심해지고 있는 터라, 이런 감각이 갈수록 짙어집니다. 물론 이는 아무 근거 없는 개인적인 경험의 발로이지만, 여기에도 일말의 진실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한 시절일지라도 진심을 다한 몰입이나 애호는 인생 전체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쳐 함께 한다는 것. 그것이 비록 시력 저하처럼 일견 좋지 않은 형태일지라도 말입니다. 저는 미니컴보이를 원망하거나 그 시절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때만큼 아무 생각 없이 즐거웠던 시절이 없거든요. 다시 돌아가도 저는 시력과 맞바꾸어 미니컴보이를 택할 것입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대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세계상의 시력 저하가 만성으로 굳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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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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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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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2026.05.01
그만두기 연습 차현지

그만두기 연습 차현지 올리브는 무언가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을 때마다 적외선 치료기의 빨간 불빛을 떠올리곤 했다. 훈련이 끝나면 이비인후과에 가서 대기실 벽 한쪽에 나란히 걸려 있던 길쭉한 원통형 기계의 전원을 켰다. 벽을 마주 보고 앉아 수화기를 들 듯 치료기를 한쪽 귀에 대고 꾸벅꾸벅 졸았다. 염증으로 늘 귓구멍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뜨겁고 날카로우며 압력이 가득 차는 듯한 통증은 아직도 생생했다. 언젠가 잠수 훈련을 하던 날이었다. 손가락으로 모자이크 타일을 하나씩 짚을 수 있을 만큼 수영장 바닥 가까이 내려가 잠영하던 중, 갑자기 퍽 소리가 나면서 뭔가가 찢기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얼마 안 있어 수경 너머로 연한 선홍빛 액체가 서서히 퍼지는 것이 보였다. 올리브의 오른쪽 귀에서 난 출혈이었다. 몸을 밀어 올려 수면 위로 향하는 아주 짧은 순간에 올리브는 생각했다. 이제 더는 지금처럼 수영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즈음 올리브는 사춘기에 막 접어들었다. 하루에 많게는 반나절 가까이 물속에서 체력을 다 소진한 탓에 베개에 늘 침 자국을 잔뜩 내며 꿀잠에 들곤 했었는데, 언젠가부터 잠에 드는 것이 어려웠다. 누우면 자꾸 잡생각이 났다. 하계 수련회에 갈 때 버스는 누구랑 같이 타지. 정혜는 짝을 구했나. 왜 나는 단짝 친구 하나 없는 거지. 이게 다 수영 때문이야. 아, 수영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의 꼬리를 물다 보면 금세 자정이 가까워졌다. 훈련하느라 올리브는 늘 혼자였다. 친구들이 모닝글로리에 가서 샤프펜슬을 살 때도, 삼삼오오 모여서 만화를 그릴 때에도 올리브는 그들 사이에 끼지 못했다. 심지어 같이 수영을 시작한 친구들이 샤워실에서 그녀를 못 본 척 짝지어 수영복 물기를 짜고 있을 때도. 넌 선수반 갔잖아, 이제 우리랑은 못 놀지. 그 애들이 샤워실 밖으로 나갈 때까지 올리브는 연신 샴푸질을 했다. 거품이 많아져 눈꺼풀에까지 흘려내려도 쓱쓱 닦아내면서. 그러고는 아무도 없을 때 수영복의 물기를 짰다. 너무 많이 짜서 손아귀가 얼얼할 만큼. 됐어, 혼자여도 괜찮아, 까짓거. 주문을 외듯 혼잣말을 하면서. 올리브는 물속에 있는 것보다 물 바깥의 생활이 더 갑갑했다. 레인 안에서 일렬로 쭉쭉 직진, 턴, 직진, 턴만 하면 되는 반복적인 훈련이 그리웠다. 오로지 숫자와 기록으로만 이루어진 세계, 사회적 교감 따위 없는 속 편한 물속이. 너무 외롭다는 느낌이 들 때면 올리브는 심야 라디오에 편지를 썼다. 직접 손 글씨를 쓰며 사연 받을 주소를 불러주던 디제이가 더듬더듬 영…등…포구…… 여의…도…동…… 하며 나직하게 말을 이을 때면 올리브도 똑같이 편지지 봉투에 주소를 또박또박 적곤 했다. 사연이 채택되지는 않았다. 중학생은 너무 어리단 건가. 그래서 다음엔 대학생인 척 보내보았다. 봄이 되면 새내기 대학생들 사연을 자주 읽어주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올리브는 성별과 직업을 바꿔가며 계속 사연을 보냈다. 우푯값이

소설 2026.05.01
모래 유원지 김소라

모래 유원지 김소라 할아버지는 나를 기다리고, 나는 마을버스를 기다린다. 매일 오후의 풍경이 그렇다. 계단을 내려가는 내 발소리가 신호가 되었다. 저벅이는 소리가 가까워지면 할아버지는 낚시 조끼 주머니에서 투명한 아스피린 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동그란 알약 두 개를 손바닥에 덜어내 입안에 톡 털어 넣고는 물도 없이 삼켜버렸다. 아주 보란 듯. 때때로 입이 말라 단번에 삼키지 못하면 얇은 입술에 힘을 주고 한참을 우물거려 침을 모았다. 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닿았다. 그다음엔 어김없이 할아버지의 혼잣말을 닮은 이야기가 시작됐다. 귀담아들을 정도로 대단한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에 대한 것. 그러니까 대부분은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어 나는 모르는 사람들. 영영 소식이 끊긴 아들이라든가 단골손님이라든가. 또는 이 동네에 관한 것, 그리고 저 동네에 관한 것. 전파사 문 앞에 놓인 접이식 철제 의자가 할아버지의 자리였다. 앙상한 다리를 꼬고 구부정하게 앉아 주절주절, 내가 탈 마을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중얼거렸다. 말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내 눈을 마주치는 법이 없었다. 이 대화가 아주 일방적이라는 것을 본인도 아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할아버지에게 꼭 필요한 일인 것 같아 나는 늘 내버려두었다. 할아버지는 ‘결국’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는데 그 사실까지는 의식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 줄 알아? 그러다가 결국엔 말이야. 결국 이렇게 된다구. 그 말버릇 때문에 할아버지는 마지막을 다 아는 듯도 했고, 모르는 듯도 했다. 기대하는 듯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얼굴이었다. 할아버지가 입을 뗄 때마다 나는 마지막을 기다리게 된다. 결국 어떻게 될까. 그 질문을 길잡이 삼아 대단할 것 없는 이야기를 기꺼이 따라가곤 했다. 천변을 따라 마을버스가 느리게 다가왔다. 이 버려진 동네는 물이 바짝 말라버린 개천을 사이에 두고 알파벳 U자를 길게 늘여 놓은 모양으로 생겼다. 나와 할아버지는 가장 끝, 휘어진 부분의 막다른 곳에 살았다.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올망졸망한 단층 건물들을 굽어보는 유일한 3층짜리 건물이었다. 3층엔 내가 세 들어 있었다. 혼자 사는 남자에게 딱 알맞은, 방 두 개짜리 작은 집이었다. 2층엔 건물의 주인인 할아버지가 살았고, 1층엔 오래전 할아버지가 운영했던 전파사가 문을 닫은 채 남아 있었다. 이 깊숙한 곳에서 마을버스를 타는 승객은 오로지 나 하나뿐이었다. 푸쉬시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버스 문이 열리고 내가 올라타는 동안에도 할아버지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오게 되어 있거든, 결국. 버스 유리창 너머로 할아버지가 뻐끔거렸다. 여전히 시선이 엉뚱한 곳에 가 있는 모습이었다. U자 모양의 천변길을 벗어나 두 정거장을 더 가면 지하철역이 나왔다. 단 두 정거장을 지나왔을 뿐인데 그 사이 풍경은 TV 채널을 돌린 것처럼 완벽히 바뀌었다. 고르게 망해버린 천변과 달리 지하철역 주변에는 고층 건물들이 즐비했다. 그럴싸한 카페와 서점, 은행, 최신 휴대폰을 파

소설 2026.05.01
우릴 떠난 채식주의자와 불을 끄는 돼지들 김아인

우릴 떠난 채식주의자와 불을 끄는 돼지들 김아인 1 산길의 고지를 넘자, 훅 안개가 끼는가 싶더니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권은 전조등을 상향으로 바꾸고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밤 기온이 뚝 떨어지는 늦여름이면 곧잘 있는 일이었다. 권은 턱을 당기고 운전대를 단단히 잡았다. 좁은 2차선 도로에 굴곡마다 급커브를 도는 가파른 산길이었다. 늦은 새벽에 비까지 더해지면, 아무리 익숙히 오가는 길이라 해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권은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1시 반이었다. 이대로면 집에 들어가는 건 세 시나 되어서일까. 권은 어금니를 맞붙이며 나오는 하품을 흘려보냈다. 왠지 평소보다 몸도 찌뿌둥하고, 눈도 뻑뻑한 기분이었다. 권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걸어가든 기어가든, 일단 굴러가곤 있다는 게 중요했다. 회사 차량─주행거리 36만 킬로미터의 다마스 트럭이 말썽을 피우거나, 도로가 끊기기라도 하는 날에는……. 권은 눈살을 찌푸렸다. 축축한 기억 하나가 머릿속 깊은 곳에 얽혀있는 배관 속을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 지나갔다. 권은 그것이 뒤로 남긴 끈끈한 발자국을 되짚어 다시 한번 그 냄새와 습기를 떠올려냈다. 그리고 자신이 그걸 잊고 있었던 게 아니라, 단지 그 무게에 익숙해져 있었을 뿐이란 걸 깨달았다. 2 권의 별명은 권이었다. 권. 태극권. 영춘권. 북두의 권. 사실 그가 다니는 곳은 주먹질과는 거리가 먼 유도 도장이었지만, 또래 아이들에겐 별 다를 바 없는 이야기였다. 처음부터 권이었고, 전혀 다른 곳에 가도 권이었고, 유도가 뭔지 알 만큼 아는 이들 사이에 속해도, 이상한 일이지만, 그는 권이었다. 권이 유도를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열여섯은 선수를 목표로 하고 운동을 시작하기에 이른 나이는 아니지만, 그에겐 소질이 있었다. 우선 신체적 조건이 좋았다. 체격이 크고, 힘과 유연성이 좋았다. 처음 찾아간 도장의 관장이 한 말에 따르자면 균형감각이 굳세고 순발력도 탁월했다. 하지만 진짜 소질은 따로 있었다. 권은 상대 선수의 사전정보를 바탕으로 전략을 짜거나 여러 파훼법을 미리 염두에 두지 않아도, 본능에 따라 승리를 위한 최적의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관장은 그걸 두고 재능의 영역에 있는 감각이라고 말했다. 머리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이 그런 본능적인 감각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란 거였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마. 너는 생각하기 시작하면 굼떠져. 알겠어? 그 순간의 판단을 믿고 바로바로 움직이라고. 너는 그게 맞아.” 권은 그 말을 따랐다. 그는 반년 만에 청소년부를 떠나 성인부에 들어가게 됐고, 일 년이 좀 더 지나선 체급과 나이를 통틀어 지역 내에 붙을 만한 상대가 없게 되었다. 다른 학교나 시설, 다른 지역과의 교류를 할 때도 주목받을 만큼 두각을 드러냈다. 관장은 권을 자랑스러워했고, 권도 자부심을 느꼈다. 추천으로 체육대학에 입학한 후, 권은 더 많은 시간을 유도에 쏟아부었다. 자잘한

소설 2026.05.01
보희 공현진

보희 공현진 * 아이돌을 넘어 훗날 국제 영화제를 휩쓸며 글로벌 스타가 될 연습생 보희는 세 달 넘게 생리를 하지 않았다. 네 달이었나? 가물가물한 만큼 보희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체 생리 주기가 불규칙했다. 두 달을 넘기기는 예사였고 반년 가까이 생리를 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에 대해 불안하게 여겨본 적은 없었다. 보희를 불안하게 하는 건 피 따위가 아니었다. 일주일 단위로 레벨 테스트가 치러졌고, 월말마다 방출과 잔류가 결정됐다. 노래와 춤 연습을 치열하게 하는 건 당연했다. 땀은 흘리되 먹지는 않아야 했다. 탄수화물이 극도로 제한된 식단을 유지했다. 습관이 되어 어렵진 않았지만 간혹 컵라면이나 순댓국 같은 게 불쑥 머릿속을 떠다니면 명상에 들어갔다. 소용없으면 밖으로 나가 달렸다. 가로수와 반짝이는 건물들과 주인을 앞지르는 개들을 지나며 달렸다. 토할 때까지 달렸다. 먹은 게 없어도 몸 안에서 쏟아지는 것들이 있었다. 몸 안에 들인 적 없는 것 같은 토사물을 확인하며 보희는 안도와 두려움을 느꼈다. 반신욕을 하며 두려움도 몸 밖으로 쫓아내고자 애썼다. 피곤도 근심도 없어 보이는 맑은 피부를 위해. 살면서 노력이 배신당하는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특별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속상하고 억울해도 별수 없다. 세상은 노력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다행히 보희는 노력이 배신당하지 않는 특별한 쪽에 속했다. 타고난 능력도 있었다. 아름다운 몸, 보희는 자신의 몸이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을 알았다. 간혹 몸을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 운운하는 이들도. 보희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잠시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가엾게 여기지 않으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보희 역시 몸은 껍데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껍데기라 하여 왜 중요하지 않은가. 외면과 내면의 경중을 따지는 것이 더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보희는 굳이 반박하지 않고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곤혹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열여섯 살의 보희는 특출나게 아름다웠다. 저녁이 되어 소속사 근처 샐러드 가게에 가면 가게 사장은 보희가 세계적 스타가 될 거라고 단언했다. 사장은 자신의 젊은 시절이 걸어오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수많은 연예인을 보았지만 보희가 뿜어내는 찬란한 빛은 본 적 없다고 말했다. “얼굴에 아무것도 하지 마. 네 나이 때는 네가 얼마나 예쁜 줄 모르겠지만 말이야.” 보희는 소스를 뿌리지 않은 샐러드를 먹으며, 맞은편에 자리 잡고 앉은 사장의 말에 은은한 미소로 화답했다. 보희는 모르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얼마나 어리고, 얼마나 예쁜지. 보희는 꽤 객관적으로 자신의 외모와 매력을 판단했다. 자기 객관화가 상당했기에 자신감과 불안이 함께했다. 소속사에서 가상으로 데뷔 그룹의 조합을 짤 때마다 늘 그 안에 들어갔다. 대개 메인 자리를 차지했다. 그렇다고 보희는 과도한 자신감으로 자신을 망치지 않았다. 그런 어리석음으로 결국 이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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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하는 기억의 공간 3] 『자작나무 숲』과 쓰레기의 정치학 박서양

박서양 문학평론가의 기획 비평은 2026년 3월부터 2026년 5월까지 으로 3회 연재됩니다. 부패하는 기억의 공간 ㅡ 『자작나무 숲』과 쓰레기의 정치학(3) 박서양 1부에서는 「빈집」을 중심으로 쓰레기가 공적 처리 시스템에 들어가기 이전, 사적 공간에서 수행되는 ‘버림 노동’과 그 경계의 문제를 살피고, 『자작나무 숲』에서 할머니가 거주하는 쓰레기 집을 통해 쓰레기의 인접성과 배치의 정치성을 검토했다. 2부에서는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손녀의 글쓰기를 중심으로 개연성이 무엇을 서사로 승인하고 무엇을 배제하는지를 살피며, 그 과정에서 탈락한 이야기들이 어떻게 쓰레기와 인접하게 되는지를 분석했다. 이제 연작의 마지막이 될 3부에서는 이러한 배제와 잔여를 가능하게 해 온 서사의 구조를 검토하며, 수직적 깊이에 기반한 개연성의 조직이 어떻게 흔들리고 수평적 배열로 전환되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1. 개연성과 중심: 서사의 수직적 구조 주지하듯 개연성은 사건들이 인과적 필연성에 따라 조직되며 서사적 설득력을 획득하는 원리다. 그러나 이 인과는 서사를 하나의 구심점에 수렴시키기 위해, 핵심을 향해 응집되지 못하는 요소들을 배제하고 제거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인과관계에 맞지 않는 사건은 이야기에서 제거되고, 반복되는 일상의 노동, 신체의 미세한 감각, 명확한 동기로 설명되지 않는 충동들은 쓸모없다고 판단되어 버려진다. 다시 말해 개연성은 서사 내부에서 질서에 어긋나는 요소들을 걸러내는 원리로 기능한다. 이때 서사의 개연성을 따르지 않는 것들은 언어화되지 못한 채 잔여로 남아 서사 바깥의 영역을 형성하고, 이는 매끄러운 서사 구조에 균열을 내는 잠재적 가능성으로 실재한다. 하지만 이때 무엇을 개연적인 서사로 인정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개연성의 원리는 때로 현실의 권력관계와 결합하여 특정한 인과를 필연적인 것으로 구성하고, 그 과정에서 불균등한 배치를 정당화하거나 재생산한다. 물질적 층위에서도 유사한 방식의 배제가 일어난다. 더 이상 사용되거나 교환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의미와 가치를 상실한 쓰레기로 간주된다. 요컨대 서사의 구조에서 탈락한 경험과 물질의 층위에서 배제된 쓰레기는 세계를 하나의 중심으로 정리하려는 질서가 필연적으로 남기는 잔여다. 『자작나무 숲』에서 개연성의 질서에서 벗어난 서사적 잔여와, 가치의 질서에서 배제된 사물(쓰레기)이 나란히 놓이며 공명하는 것은 이들이 동일한 배제의 구조에 놓여 있음을 드러낸다. 모든 인물이 명확하고 일관된 동기를 가져야 하고, 뿌려진 복선은 회수되어야 하며, 결말은 갈등의 원인을 해명해야 한다는 소설 작법은 목적론적이고 합리적인 주체를 전제한다. 이러한 전제는 무엇이 이야기로 인정될 수 있는지를 가르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쓰레기 집을 만들고 사체를 은닉하는 할머니의 행위나, 합리적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열정 속에서 부유하는 여성들의 궤적은 이 기준 앞에서 개연성이 결여된 것으로 처리되며, 괴담이나 소문으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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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을, 너에게 전철희

거짓을, 너에게 - 당신이 김애란의 소설을 읽으며 궁금증을 느꼈겠지만 차마 에서 답을 찾지는 못했던 문제들에 대하여 전철희 1. 환상의 끝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소녀 김애란의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는 2005년에 출간됐다. 이 책을 처음 볼 당시 나는 애니메이션 (이하 으로 약칭)이 떠올랐다. 그때의 문단에서는 “근대문학의 종언”과 “미래파”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다. 문학인들이 고담준론을 나누는데 초신성의 소설에서 애니메이션을 연상한 내가 부끄러웠다. 이제 20년이 지났고 김애란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동안 나는 등단을 했고 평론가의 책무가 비약과 과장이라는 하스미 시게히코의 말에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연식을 쌓았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20년 전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김애란의 작품들을 복기해 보려 한다. 거두절미하자면 『달려라, 아비』의 주제는 하얀 거짓말(white lie)이다. 이 책의 표제작 「달려라, 아비」는 편모가정에서 자란 딸의 이야기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오래전 가출했다. “나쁘면서 불쌍하기까지 한 사람”1)이었던 아버지는 가족부양의 책무를 벗어던지겠다는 무책임성 내지는 다른 여자를 만나려는 욕망 때문에 집을 나간 것으로 보인다. 딸은 그런 정황을 알면서도 아버지가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전 세계를 누비면서 달리기를 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소설의 뒷부분에서 아버지의 허접했던 인생이 폭로되지만 그럼에도 딸은 자신의 상상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의 맹목적 ‘믿음’은 자기방어 기제의 산물이다. 자식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무능함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몸에 패배자의 피가 흐름을 긍정한다는 뜻이고, 아버지가 금의환향해서 명예나 재산을 상속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아버지가 이기적인 무뢰한이었다면 버려진 가족들로서는 그에 대한 원한과 분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불신과 미움은 본인을 병들게 하는 감정이다. 아버지가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거짓된 믿음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라이너스의 담요로 유용하다. 당시 주목받은 작품 중 하나였던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는 소녀와 아버지의 대화 장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소녀는 아버지에게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요?”라고 묻는다. 농담에 가까운 거짓말로 일관하던 아버지가 진실을 말하려던 찰나 소녀는 잠이 들고 자신의 탄생에 대한 상상을 시작한다. 소녀가 아버지의 답을 회피한 이유는 쉽게 짐작 가능하다.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요?”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답은 밋밋하고 초라하다. 남녀가 성관계를 할 때 정자가 난자에 착상과 수정을 해서 아기가 생겼다는 생물학적인 설명은 낭만적이지 않다. “부모님이 사랑해서 자식이 태어났단다”라는 말은 손발이 오글거리고 “너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갖고 태어났단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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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서 두 번째 폭력 이미진

끝에서 두 번째 폭력 - 최은미의 「김춘영」과 현호정의 「달빛」 이미진 1. 오르페우스는 뱀에 물려 죽은 아내를 도로 데려오기 위해 타르타로스로 내려갔다. 그의 슬픈 음악을 들은 하데스는 잔인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오르페우스에게 에우리디케를 이승으로 데려가는 것을 허락했다. 하데스는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에우리디케가 햇빛에 안착할 때까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었다.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의 리라 소리를 따라 캄캄한 통로를 올라갔고, 오르페우스는 자기가 햇빛에 안착한 그 순간 비로소 그녀가 아직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를 영원히 잃었다.1) 팔레스타인 문제를 꾸준히 다루어 온 일본의 비평가 오카 마리는 『기억/서사』에서 탈 자아타르 포위와 학살 사건을 다룬 리아나 바드르의 소설 『거울의 눈(1991)』이라는 작품을 소개한다. 베이루트 교외에 있는 탈 자아타르 난민 캠프는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쫓겨온 사람들이 30년간 난민 생활을 하고 있던 곳으로, 1975년부터 1976년에 걸쳐 레바논의 기독교도 우파 민병대에 의해 몇 개월간 지속적으로 파괴되었다. 『거울의 눈』은 이 학살 사건에서 살아남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작가가 7년에 걸쳐 인터뷰한 증언들을 토대로 집필된 소설이다. 오카 마리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소설 중반부 돌연 등장했다 사라지는 ‘나’라는 인물이다. 그가 캠프 밖에서 안으로 잠입했다는 설정은 그간 비인칭의 시점을 따라 캠프 안의 상황에 몰입했던 독자에게 갑작스러운 거리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 거리감은 캠프 안의 전사 중 한 사람인 하산이 캠프 밖의 전사들을 비판하는 다음과 같은 말로 대변된다. “뜨거운 물 속에 손을 넣고 있는 사람은 찬물에 손을 넣고 있는 사람과 똑같이 느낄 수 없다.”2) 오카 마리는 하산의 말보다는 캠프 밖의 사람이면서 동시에 안의 사람이기도 한 ‘나’라는 인물이 놓인 이중적인 위치에 더욱 관심을 갖는다. 『거울의 눈』의 작가가 왜 ‘나’라는 인물을 통해 독자에게 혼란을 초래하는지를 말이다. 『기억/서사』에는 또 다른 소설 발자크의 「아듀」도 등장한다. 이 소설은 귀부인이었으나 전쟁 중 처참한 일을 겪어 기억을 잃어버린 스테파니와 그녀를 사랑한 필립의 이야기다. 재회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스테파니를 보고 절망한 필립은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 그녀에게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주고자 한다. 하지만 힘겹게 기억을 되찾은 스테파니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3) 2. 나는 쫓겨날 것이다.4) ‘사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사건’을 온전히 말할 수 없으므로5) 다른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지그프리드 크라카우어는 『끝에서 두 번째 세계』의 이라는 챕터에서 에우리디케를 잃어버린 오르페우스를 역사가로 호명함으로써, 그에게 ‘상실 이후’의 임무를 부여한다. 오르페우스와 마찬가지로 역사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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