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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호

문장웹진 vol.256 2026년 8월호

[8월호를 열며] 일 년에 한두 번씩, 인천 강화에 있는 한 펜션에 가곤 했습니다. 넓고 깊은 저수지에 맞닿은 그곳은 너무도 고요하고 적막하여 제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그런 곳인데요, 처음 그곳에 간 것은 이십 대 중반으로, 이제는 제가 거길 처음 알아냈던 것인지 같이 간 사람이 알아냈던 것이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합니다. 그곳에 가면 필연적으로, 오래전 함께 왔던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몇몇과는 여전한 사이지만 몇몇과는 지난 꿈처럼 흐릿한 잔상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그곳에 간 것은 삼 년 전으로, 친구와 달걀 요리를 해먹은 뒤에는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고독한 사람들인 것처럼 종일 저수지에 쌓인 눈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때로 한 문장이라는 것은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도 모르는 채, 다만 마주하는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게 합니다. 「읽지 않음」이 그랬습니다. 저조차도 그 이유를 모른 채로 속절없이 그렇게 되었는데요, 시의 도입부를 읽자마자 지난 계절의 사람들과 그곳을 부유하던 먼지들, 적막과 고요와 듣지 못한 이야기들이 안팎에서 제게로 모여들었습니다. 아니, 하나의 형상으로 성큼, 나타난 것에 가까웠지요. 그리하여 저는 요 며칠 발신음과 신호음에 대해 생각했고 길을 걸었고 하늘을 보았고 사람은 지날 수 없는 교량을 건넜습니다. 사람은 안 되고 떨어지는 나뭇잎이나 새들은 될지도 모르는, 그런 곳이었고, 언뜻 한여름과는 어울리지 않을 생각일지 모르지만 슬픔의 어지러움이 언제 그런 것을 따졌던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면 역시 큰 상관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낯설었던 감정이 어느새 익숙해졌다는 사실을 쉽게 말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한여름의 폭염과 장마 속에서 문장웹진 8월호와 함께 해주신 분들께, 함께 해주실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모쪼록 무탈하시기를 바랍니다. ㅡ 이주란 소설가 외 문장웹진 편집위원 일동 2026년 8월호 ⓒ 정김소리 8월호 표지 그림 작가의 말 “흐린 얼굴들을 떠올리며 제자리 줄넘기” 문장웹진 2026년 8월호 목차 구분 작가 제목 시 김려 읽지 않음 팔도열차 김유림 그 선물 그 선물 이자켓 염 제인 이주빈 소문내 1956 일몰 최동은 산당화 필 때 새장이 텅텅, 꿈속이 텅텅 최재원 지지 못하는 별 잠 못 이루는 밤 최필립 투구게 모델링 무이기 위해 잠시 유였던 단편소설 박우연 하인즈 이갑수 내 마음이야 장희원 장정호 주나영 늦은 새해 평론 이은지 [연재] 포이에시스, 오토포이에시스, 심포이에시스 (3) 박상현 미워하는 만큼 사랑하기 ― 예소연과 주디스 버틀러를 읽으며 오웅진 당장 주워 쓸 수 있는 견출지가, 이름과 이름 사이 틈에 떨어져 있었다면― 동시대 문학 존재론에 관한 재고 기획 문장웹진 다시읽기 김진선 [연재] 그러니까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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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2026.08.01
하인즈 박우연

하인즈 박우연 도해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누운 채로 바라본 아킬레스건이다. 분리형 원룸의 미닫이문 너머, 도해는 냉장고 앞에 서 있다. 잠옷으로 입는 헐렁한 티셔츠 밑으로 뻗어 나온 맨다리. 그럴 때면 나는 잠시 내가 누운 곳이 어딘가에 대해 생각했고 곧 도해의 침실 바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먹어?” 언젠가 도해의 등을 향해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도해는 냉장고 문을 닫은 뒤에야 돌아보며 대답했다. “유산균.” 찬장에서 컵을 꺼내다 말고 도해는 바닥에 누워있는 나를 흘낏 보았다. 너도 먹을래? 아주 잠깐이었지만 명백한 사이를 둔 채 날아든 질문에 나는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섬유유연제 없이 빨아 방 안에서 말린 뻣뻣한 수건이 목 뒤쪽에서 까끌거렸다. 도해는 원룸에 옵션으로 딸린 싱글 침대에서 혼자 자고 싶어 했기 때문에 나는 늘 바닥에 얇은 요를 깔고 수건을 말아서 베고 잤다.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가자 하인즈는 언제나처럼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안락의자에 몸을 기대고 도해가 유산균을 물과 함께 두 번에 나누어 삼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냉장 보관이 필수인, 한 박스에 육십 캡슐이 든 그 유산균은 하루에 한 번 두 캡슐을-되도록이면 공복에-먹어야 했다. 그 계산대로라면 도해는 한 달에 유산균 값으로만 월급의 십분의 일 가까이를 써버리는 거였다. 그때 나와 도해는 대학가에 있는 바에서 일하고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저녁 여섯 시부터 새벽 한 시까지. 최저시급이 사천팔백육십 원이던 시절이었고, 열 시부터는 야간 수당이라는 명목하에 칠천이백구십 원을 받았다. 가끔 주말 근무자가 대타를 부탁할 때 생기는 수입과 주휴수당, 손님이 주는 팁까지 모두 긁어모아도 월급은 백이십만 원이 채 안 됐기 때문에, 십이만 원짜리 유산균은 실로 불가사의한 지출이었다. 전공 교과 성적이 뛰어나지 않은 경영학과 학생이 보기에도 그랬다. 장이 안 좋은 편이야? 내가 묻자 도해는 한쪽 입술만 움직여서 웃었다. 그리고 비밀이라도 알려주듯이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했다. 이게, 힘이 되거든. 그러고는 몇 개의 단어를 입속에서 굴렸다. 힘이랄지, 배짱이랄지, 든든함이랄지……. “왜, 억울한 시비가 붙거나 말도 안 되게 나쁜 일이 생길 때 있잖아.” 도해는 자신의 배꼽 언저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럴 때 내 뱃속에 십이만 원짜리 유산균이 같이 있다고 생각하면, 몇천억 마리나 되는 애들이 날 위해서 뭔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 언저리에서 실존적인 힘이 솟는 느낌이야.” 실존적, 이라는 단어를 도해는 좋아했다. 딱히 철학적인 사유가 필요하지 않은 순간에도 늘 그 표현을 썼다. 내가 도해처럼 쿨한 언니 같은 느낌으로 머리를 자르고 싶다고 했을 때도 도해는 정색하며 말했다. 어떤 스타일인지, 좀 더 실존적으로 묘사해 봐. 나는 도해를 비사이드(B-side)라는 이름의 바에서

소설 2026.08.01
내 마음이야 이갑수

내 마음이야 이갑수 퇴근하고 싶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신나는 음악을 듣는다. 눈을 감고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린다. 졸업, 제대, 여행, 생일파티, 800만 원 복권 당첨, 첫 키스…… 아니 첫 키스는 빼자. 그리고 명상을 한다. 생각을 비우고 차분하게. 절대 조금이라도 우울해선 안 된다. 어제도 제시간에 퇴근하는 데 실패했다. 우리 회사가 정부의 근로자 지원프로그램 시범 기업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 지난달부터 퇴근하기 전에 우울증 지수를 체크 한다. 보건복지부가 대학 연구소와 산학협력으로 개발했다는 ‘뉴진’이라는 우울증 측정기는 헬스장의 인바디 측정기처럼 생겼다. 악력기처럼 생긴 손잡이를 잡고 발판 위에 올라서면 우울증 지수가 100분위로 표시되는데, 우울증 지수가 50이 넘는 사람은 상담을 받으러 가야 한다. 어떤 원리로 우울증을 측정하는 건지는 모른다. 아무리 사람의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몸을 측정해서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몸을 통하지 않고는 마음을 알 방법이 없으니 둘 사이의 어떤 메커니즘을 알면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시범 사업이 끝나고 일반에 공개가 되면 측정 원리도 밝혀질 테니 기다리면 곧 알게 될 일이다. - 80.00 오늘도 실패다. 점점 더 올라가고 있었다. 첫날에는 51이었고, 그날 상담은 5분 만에 끝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신기한 체험을 하는 기분이었다. 정신과 상담을 받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 요즘 기분은 어때요? 강 박사의 첫 질문은 항상 똑같다. -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요. 그냥 괜찮습니다. 처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 무감각한 것도 우울증세일 수 있어요. 일단 지켜봅시다. 강 박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가 지난 한 달간 나를 지켜본 결과는 부정적일 게 분명하다. 내가 상담을 받으며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수치가 올라가고 있으니까. 정시에 퇴근하는 직원들을 부러워하며 상담실로 올라갔다. 내 앞에 대기자는 일곱 명, 네 명은 자주 보는 얼굴이고, 세 명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우울증 지수가 높아서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니 당연한 거겠지만, 다들 정말 우울해 보였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표정이 어떨지 알 것 같았다. 상담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사이로 강 박사의 얼굴이 보였다. 이 지원프로그램은 경력형 일자리 사업의 일환이기도 했다. 은퇴한 의사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으니까. 정부 입장에서는 두 가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좋은 정책이었다. 강 박사도 대학병원에서 정년 퇴임한 정신과 전문의다. 강 박사는 슬램덩크에 나오는 안 감독님을 닮았다. KFC의 샌더스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흰 양복 대신 흰 가운을 입고 있다는 것 빼면 정말 똑같았다. 강 박사를 보면 치킨이 먹고 싶었다. - 요즘 기분은 어때요? 자리에 앉자마자 강 박사가 모니터의 차트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전에 없이

소설 2026.08.01
장정호 장희원

장정호 장희원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공기가 차고 맑은 곳. 다른 곳보다 해가 빨리 뜨고 지는. 다른 누군가의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희재에게서 그가 지내고 있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우듬지 너머로 뜨는 어슴푸레한 새벽 동이나 찹찹한 분위기,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 같은 임야를 떠올렸다. “죽어버렸으면.” 희재는 허공 속의 한 점을 보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그곳에서 죽어버렸으면. 희재는 어머니가 복수가 찬 채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도 같은 말을 했다. 분명히 그때와는 다른 뉘앙스가 있다고 느꼈는데,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이른 아침부터 희재와 나는 서둘렀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입을 헹구고, 어제 벗어두었던 청바지를 주섬주섬 입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희재는 작게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양손으로 손잡이를 쥔 채 창문으로 머리를 기댔다. 저기 뭐가 죽은 것 같아. 아니다, 다시 보니까 없어. 진짜 아무것도 없어. 희재는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혼자 말하고 답했다. 한참 후 주위가 고요해진 것 같아 옆을 보니 희재가 입을 벌린 채 잠들어 있었다. 우리는 휴게소에서 백반과 우동을 나누어 먹었다. 밥을 다 먹고도 시간이 남아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통유리창 너머로 구름 한 점 없이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하늘과 휴게소 뒤편으로 펼쳐진 강줄기를 바라보았다. 완연한 가을 날씨였다. 휴가철이 지나서인지 대체로 가는 곳마다 사람이 없었다. 그럴 필요까지 없었는데 왜 그렇게 서둘렀냐고 묻자 희재는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희재의 아버지 얼굴을 보고 안부를 확인한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그는 삼 년 전 아내가 간경화로 죽고 난 후 홀로 지내다 언제부턴가 야산에서 지내고 있었다. 양산에 있던 그가 어떻게 산천에 있는 그곳으로 들어가 살게 됐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는 미처 주변을 정리하지도 않았다. 아직도 그가 살던 집 냉장고에는 그가 먹다 남긴 반찬들이 썩어가고 있을 터였다. 희재의 어머니가 살아있을 적부터 기르던 식물들, 호야 나무, 산세비에리아, 스투키가 말라비틀어진 채 죽어 있을 것이다. 나는 먼지가 가득한 집을 떠올렸다. 어렸을 적부터 희재와 희재의 가족이 살았던 집. 희재와 나는 명절이면 그곳에 가서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 돌아오곤 했다. 간간이 희재와 희재의 어머니, 내가 웃을 때면 그는 크고 검은 눈으로 이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사람이니까.” 그가 왜 그런 곳까지 가게 되었을까 하고 묻자 희재가 대답했다. 자신도 우연히 그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뿐 더는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뭐든 다 자기 멋대로인 사람.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에 다른 사람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그냥 그런 사람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죽어버렸으면. 나는 희재의 말을 떠올렸다. 내가 본 그는 그저 평범한 남자였다. 말이 없고 등이 조금 굽은 왜소한 노인. 그는 묵묵히

소설 2026.08.01
늦은 새해 주나영

늦은 새해 주나영 우기 막바지인 3월 아침, 조식당에 안까지 빗소리가 크게 들렸다. 직원은 사다리에 올라 창에 붙은 검은 시트지를 문질렀다. 들뜬 가장자리를 손바닥으로 몇 번이고 눌렀지만 쉽게 붙지 않았다. 저렇게까지 해서 창을 가려야 하나 싶었다. 어젯밤 체크인할 때 받은 안내문 상단에는 영어로 ‘침묵의 날(녜삐 데이)’이라는 낯선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루 동안 발리의 불빛과 소음을 줄이며, 투숙객의 호텔 외부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안내문을 건네던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새해 첫날을 아주 조용하게 보내는 풍습이 있거든요.” 나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호텔 직원들은 목소리를 낮췄고, 손님들도 주변을 살피며 말을 줄이는 듯했다. 사다리 위의 직원은 테이프를 한 조각 더 잘라 시트지 가장자리에 붙였다. 그래도 한쪽이 다시 들뜨자 시트지 한 장을 떼어 사다리 아래로 내려보냈다. 창의 절반쯤이 드러났고, 유리 바깥 면을 따라 빗물이 흘러내렸다. 남편은 케이지-프리 에그 화이트 오믈렛을 주문했다. 쉰을 넘긴 뒤부터 식단과 운동에 부쩍 엄격해졌다. 디종 머스터드 병을 열어 숟가락으로 접시 귀퉁이에 덜어 놓은 뒤, 오믈렛을 잘라 찍어 먹었다. 면도를 공들여 한 듯 턱끝이 말끔했다. 맞은편에 앉은 혜리는 빵 바구니에서 올리브 치아바타를 집어 들더니 박혀 있는 올리브만 손끝으로 빼 먹었다. 덜 마른 머리카락이 어깨에 들러붙어 있었다. 머리를 귀 뒤로 넘길 때마다 손가락에 물기가 묻었다. 나는 냅킨 상자를 혜리 쪽으로 밀었다가 멈추었다. 혜리는 이미 옆에 놓인 냅킨으로 손끝의 물기를 닦고 있었다. 커피는 식어 있었다. 혜리는 남편과 전처 사이의 딸이다. 남편은 나보다 열다섯 살 많고, 혜리는 나보다 열다섯 살 어리다. 혜리가 초등학생 때 엄마와 함께 호주로 건너간 뒤, 남편은 일 년에 한두 번 혜리를 만났다. 생일과 크리스마스에는 빠짐없이 선물을 보냈다. 남편이 서재에서 혜리와 영상 통화를 하는 날이면 나는 거실에서 텔레비전 소리를 조금 줄였다. 주방에 갔다가 웃음소리가 들리면 물병만 꺼내 돌아왔다. 통화가 길어지는 날에는 먼저 씻고 침실로 들어갔다. 남편은 통화를 마친 뒤 혜리의 학교생활과 새로 키우기 시작한 동물에 대해 말해 주었다. 나는 그가 보여 준 사진을 몇 장 넘겨본 뒤 휴대전화를 돌려주었다. 혜리는 빵에서 올리브를 하나 더 빼 입에 넣었다. 남편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접시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는 혼인신고를 했지만 결혼식은 혜리가 성인이 될 때까지 미뤄 왔다. 결혼식은 석 달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사흘 정도 쉬고 오자고 한 것도, 한국과 호주의 중간쯤인 발리에서 혜리를 만나자고 한 것도 남편이었다. 출발 전날 밤, 남편은 서재에서 청첩장이 든 봉투를 가져왔다. 구겨지지 않도록 얇은 파일 사이에 끼워 여행 가방 안쪽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닫았다. 혜리는 아보카도 스프레드를 빵 위에 고르게 펴 발랐다. 한입 베어 물자 빵 껍질이 바스러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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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에시스, 오토포이에시스, 심포이에시스 (3) 이은지

이은지 문학평론가의 기획 비평은 2026년 6월부터 2026년 8월까지 로 3회 연재됩니다. 포이에시스, 오토포이에시스, 심포이에시스 (3) 이은지 1. 마음의 신체화 무목적적인 ‘제작’에 경사될 수밖에 없는 기술(기계)의 한계를 인간이 ‘실천’적으로 조정함으로써 인간의 삶과 기술의 삶이 함께 나아가는 전망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여기서 다시금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를 소환해 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작을 견인하는 수단인 기술(techne)에 대해서는 “참된 이성이 수반하는 제작할 수 있는 마음가짐”1)으로, 실천을 견인하는 수단인 실천적 지혜(phronesis)에 대해서는 “인간의 좋음과 관련하여 행동할 수 있는 이성적이고 참된 마음가짐”2)으로 정의한 바 있다. 여기서 제작과 실천의 수단이 모두 “마음가짐”으로 정의된 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마음’이 아닌 ‘마음가짐’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자신이 의도하는 마음의 상태에 부합하게끔 처신하는 것으로서, 행위이자 태도를 가리킨다. 즉 마음가짐이란 특정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몸가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제작과 실천을 위한 수단을 발휘하는 일이란 제작하거나 실천하는 마음에 상응하는 몸의 상태를 갖추는 일이 되는 셈이다. 우리는 맨 처음의 글에서 은둔을 바탕으로 한 마루야마 겐지의 창작론이 “몸과 마음의 균형에 집중되어 있는 것”3)을 확인했었다. 또한 푸코가 이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신체를 단련하거나 글 쓰는 훈련과 같은 반복적인 연마를 통해 ‘자기 제작’의 실천에 도달하는 ‘자기 수련(askêsis)’을 강조했던 것을 살펴보았었다. 두 사례는 제작과 실천이 몸과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전 글에서는 외부의 입력을 무방비하게 받아들이는 ‘열린 체계’로서의 기계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의식을 형성하는 ‘닫힌 체계’로서의 인간과의 접속을 통해 함께 변화하는 피드백 관계를 형성한다고 설명했었다. 이때 이 순환 관계의 핵심 요소이기도 한, “오직 인간에게만 고유한”4) 의식이란 인간이 환경과 자신의 관계를 성찰하고 의미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여기에서도 언제나 몸의 접촉, 몸의 작용이 선행하고 있다. 이처럼 “‘마음’은 환경과의 지속적인 결합을 통해 생겨나는 과정이다. 마음은 신체화된 경험적 과정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그리고 그것과 관련해 있는 것이다.”5) 마음과 정서, 느낌 등을 연구하는 인지과학 분야에서는 해당 학문이 태동한 이래로 “마음을 컴퓨터처럼 일정한 규칙에 따라 기호를 처리하는 체계”6)로 본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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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는 만큼 사랑하기 박상현

미워하는 만큼 사랑하기 - 예소연과 주디스 버틀러를 읽으며1) 박상현 1. 사랑할 수밖에 걔가 뭐가 그렇게 좋아? 여사가 물었을 때 나는 고민조차 하지 않고 대답했다. 똑똑해. 그러자 현구 아저씨가 다른 점은 없느냐고 물어보았다. 대충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다른 점도 분명 있었다.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애였다, 이해신은. 그곳이 어떤 곳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대충 느낌으로 이야기해보자면…… 조금 더 어른스럽고 규칙 같은 것이 그나마 존재하며 내가 아무렇게나 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게끔 하는…… 어느 정도 보통의 인간으로 존재하라는 압박이 주어지는 그런 세계. (「너의 나쁜 무리」, p. 95-6) 그 순간 나는 여사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상상을 했고 그건 어떤 최초의 결심과 영영 실패할 다짐과도 같았다. (「너의 나쁜 무리」, p. 112) “그런 세계”에 대한 이 고집스런 애착을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우리에겐 ‘보통의 삶’에 대한 많은 서사적 자원이 있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그 반대편의 삶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학창 시절에는 부모님,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수험생활에 열중하다가 남부럽지 않은 대학에 진학하고, 스펙 쌓기와 연애를 잘 병행하다가, 사랑하는 이와 결혼하여, 어느덧 자신도 누군가의 부모가 될 것이라는 기대로 연상되는 보통의 삶에 한편, 예소연의 소설 속 인물들은 정작 자신이 왜 그토록 이런 삶에 집착하는지 ‘보통의 인간’이 되기를 염원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나를 싫어하는 아이들보다 나처럼 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더 미웠”(「아주 사소한 시절」, p. 71)던 이들에게 이 애착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것은 좋든 싫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한 번쯤 보통의 삶이 주는 환희를 만끽해보았느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다. 다만 이들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최소한으로라도 살기 위해서는 최대한으로 노력해야”(「너의 나쁜 무리」, p. 94) 한다는 사실 뿐이다. 보통의 삶에 대한 이들의 애착은 정말이지 막연한 것이다. 「너의 나쁜 무리」를 보자. 자신의 손녀(‘나’)에게 은밀하고 사소한 연애사들을 훌훌 털어놓고, 당신은 아쉬울 게 없는 것 같다며 손녀에게 개평을 준 남자친구(‘현구 아저씨’)의 뺨을 때리는 ‘여사’는 누가 보아도 보통의 인간이 되기는 글러 먹었다. 차라리 아주 난잡하고 무람없게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방식”(p. 110)이라고 정당화하는 게 현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사’는 좀처럼 보통의 삶에 대한 애착을 거두질 못한다. “나(=여사)는 그러지 않고 살기가 힘들어. 너는 그러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면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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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주워 쓸 수 있는 견출지가, 이름과 이름 사이 틈에 떨어져 있었다면 오웅진

당장 주워 쓸 수 있는 견출지가, 이름과 이름 사이 틈에 떨어져 있었다면 ― 동시대 문학 존재론에 관한 재고 오웅진 이언 보고스트는 아마존 사이트에 게재되었던 하나의 책 리뷰를 통해 비평이라는 행위의 본성에 관하여 질문한다.1) 그 리뷰어의 견해에 따르자면 지젝이라는 이름의 이 평론가는 자신의 책 제목을 『Looking Awry: An Introduction to Jacques Lacan Through Popular Culture』2)로 결정하는 과정에 있어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 평론가가 이 책을 통해 비평의 주제를 조명하고자 한 것인지, 혹은 단지 비평 행위 자체를 조명하고자 한 것인지 혼동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젝은 세상의 많은 현상들을 소급적(retroactive) 인과 관계로서 진단하는데 이는 라캉의 일부 시선을 빌린 결과이기도 하다. 그레이엄 하먼은 지젝의 이러한 소급적 인과성이 지나치게 인간 지각에 제한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모파상이 아직 세상에 도착하지도 않은 프루스트의 소설을, 혹은 그것의 태도를 예상하여 표절한다는3) 식의 환상(적인, 그러나 환상을 통해서만 능히 해석될 수 있는 현실 곳곳의 풍경)은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세계의 바깥에서도 충분히 쓸모를 지닌다. 인간이 파악하거나 감각할 수 없는 형태의 시공간에 관한 문학의 응전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질문할 수 있다. 이것에 이미 많은 문학이 자신만의 언어로 대답한 바 있다. 그리고 이 글은 이러한 다수의 시도 속에서 특히 평론이 무엇을,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하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객체로 잴 수 있는 것, 잴 수 없는 것 메이야수는 FHS(Fiction Hors-Science)라고 직접 이름 붙인 특정한 문학 장르를 제안한 바 있다. 그것은 SF소설과는 구별되는, ‘과학의 바깥 세계에 관한 소설’을 뜻하며 그는 FHS 소설의 대표적인 예시로 르네 바르자벨의 『대재난』을 언급한다. 소설에선 전기가 사라진 이후의 세계 풍경이 묘사되는데, 그 묘사된 내용과 설정으로부터 메이야수는 SF 이상의 문학적, 그리고 존재론적 시도를 본다. 하지만 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네, 젊은 친구. 그것이 사라졌다면, 우리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고 말 거야. 우리는 무로 돌아갈 거라네. (…) 하지만 갑자기 모든 게 변해서 설탕이 써지고, 납이 가벼워지고, 돌을 놓았을 때 돌이 떨어지는 대신 날아가는 것을 막는 것은 없다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야.4) 사변은 형이상학과 구분된다. 형이상학이 대상들 사이의 고저(高低)를 정렬하는 작업이라면 사변은 차라리 현재보다 더 큰 규모의 ‘보편·일반’을 회복하려는 행위에 가깝다. 그러니 지향하는 운동(impetus)이 완전 다르지만 지금-여기라는 울타리 너머를 기웃거린다는 이유만으로 종종 비슷한 것처럼 오해받는다. 그러면서도 좀 더 작은 이름, 보다 더 작은 이름(보다 더 작은…)을 향해 먼저 달려가 깃발 꽂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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