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재미나요
소설
문장에서 만나는 이야기-
소설 김이설 - 흉통
흉통 김이설 놀라지 말고 들어. 엄마의 첫 마디에 고개를 들고 허리를 세웠다. 책상 위에는 가맹운영신청서, 가맹점 운영계획과 자기소개, 가맹개설자금축적주계좌잔고 등의 서류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하루에 검토해야 할 지원자 서류는 끝이 없었고, 서류 심사 후 면접자와 점주 선정은 매일 누적되었다. 전화벨 소리와 통화하는 목소리, 조심성 없이 자판 두드리는 소리에 신경질적으로 딸깍거리는 마우스 클릭 소리까지 사무실은 분주했다. ㅡ 은수야, 듣고 있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ㅡ 듣고 있어. 말해. 큰 숨을 들이켠 후 엄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ㅡ 엄마가 며칠 병원에 입원했었어.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느냐는 원망은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 잠깐만. 나는 조용히 일어나 사무실을 나가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부장과 이야기를 하던 서 과장이 힐끔 나를 쳐다보았다. 전화기 너머 멀찍이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소리쳤다. 아니, 거기 말고. 그 안쪽에! 다시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고, 엄마의 대꾸. 전화 끝내고 해줄게, 지금 그게 급한 게 아니잖어! 그사이 나는 옥상에 마련된 휴게실로 들어갔다. 카페의 야외 테라스처럼 꾸며 주로 흡연실로 사용되는 곳이었다. 세밑의 공기가 매서웠다. ㅡ 그래서? 병원에서는 뭐라는데? ㅡ 네 아빠가 갑자기 안방을 정리한다고 다 들쑤시고 있다. 왜 저런다니. ㅡ 엄마. ㅡ 그래, 알았다고. 그저께 엄마가 혈변을 눴어. 그래서 네 아버지랑 응급실로 갔는데, 이것저것 검사하더니 입원시키더라고. 거기서 또 뭘 검사하라고 해서 다 검사받고. 어제 퇴원했어. 엄마는 내 질문과 상관없이 자기가 준비한 대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새해가 되면 엄마 나이 일흔여섯. 사십대 때 큰 병 앓은 이후로 별다른 잔병치레 없이 이제까지 잘 버텨 준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다시 생각하니 적은 나이는 아니었다. 나는 담배를 꺼냈다. ㅡ 은수야, 듣고 있지? 놀라지 말고 잘 들어. 오빠가 은수야 시간 있니? 라고 묻는 것보다, 동생이 언니 지금 바빠? 라고 묻는 것보다 무서운 말이 엄마가 건네는 놀라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만큼 놀랄 이야기라는 뜻. ㅡ 직장암이래. 그런데 어쩐지 놀랍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 당황하고, 경황없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 얼마나 진행되었대? 나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너무 사무적인 말투였나. 잠시 뜸을 들이던 엄마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ㅡ 많이. 나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제야 엄마가 긴 한숨을 내뱉었다. 언제 올라왔는지 홍보팀 직원 둘이 내게 눈인사를 하고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 과장이 어깨를 툭 친 건 막 엄마와 전화를 마친 후였다. “심각한 일?”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눈은 못 속이는데. 분명 무슨 일 있어. 오빠가 또 속 썩여? 아니면 동생? 석훈 씨는 아닐테고.” 한 팀
작성일 2024-04-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1 댓글수 0 조회수 965상세보기 -
소설 이원석 - 알파벅스
알파벅스 이원석 사라진 마을의 이름은 소몽笑夢이었다. 소몽리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유속과 깊이가 적당한 계곡이 가까워 외지 사람들이 많이 찾던 관광지로, 몇몇 주민들은 일찍부터 부업으로 관광객들을 재워 주며 얼마간의 돈을 벌었다. 그러던 중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의 촬영과 유명 연예인의 방문이 화제가 되어 마을이 여러 매체에 소개되고 관광객이 늘어나며, 생업과 부업의 위치가 바뀌기 시작했다. 살던 집을 개조해 전문적으로 민박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더니 종국에는 마을 주민 대부분이 그 일로 먹고살게 되었다. 처음에 그들은 같은 마을 주민들끼리 동종 업계 종사자가 되었다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다. 자신이 손님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일 때는 다른 집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소개받은 집에서는 소개해 준 사람에게 작은 보답을 하는 일종의 중개업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한동안 그들의 사회적 유대감이 혈족의 그것 이상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사회학자들도 있다. 소규모 민박집이 성행하던 어느 날 ‘물꼬리 펜션’이라는 이름의 첫 대형 독채 펜션이 문을 열었고 관광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넓고 쾌적한 시설, 안전한 보안과 차량 픽업 서비스 등은 특히 가족 단위 손님들이나 젊은 세대 단체 손님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읍에 하나 있는 2금융권 은행에는 대출 상담을 받는 주민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그리하여 소몽리는 다시 한 번 변화의 바람에 휩쓸렸다. ‘물꼬리 펜션’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른 개가 넘는 크고 작은 독채 펜션이 생겨났고, 일대에서는 가장 유명한 펜션 단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대를 이어 펜션을 운영하는 집도 있었고 외지인이 지은 펜션의 관리인으로 일하는 주민도 있었다. 관광객들은 해마다 늘어 갔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전보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을 거라고 사회경제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숙박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은 여름 한철 외지인들이 쓰고 간 돈으로 겨울을 견뎌야 했다. 규모가 커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숙박객 유치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했고, 여름이면 집과 집 사이로 고성이 오가거나 주먹다짐이 일어나는 일도 빈번했다. 산을 잘 모르는 외지인들의 부주의한 행동도 골칫거리였다. 술을 먹고 입수하는 외지인은 해마다 몇 명씩 있었고 출입이 금지된 곳에 억지로 들어가 뱀에 물리거나 말벌에 쏘여 구급차에 실려 가는 사람도 많았다. 몇몇 부덕한 업주들이 성수기 숙박 요금을 지나치게 올려 받아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주민들이 외지인을 대상으로, 외지인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일으키는 범죄의 빈도도 날이 갈수록 잦아졌다. 어느 순간부터 주민들은 ‘이래서 사람을 믿으면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간혹 어린아이가 태어나도 가장 먼저 그런 것을 가르쳤다. 다른 사람을 믿지 않는 법. 타인에게 다가가지 않는 법. 그러나 영특한 아이들은 어른들
작성일 2024-04-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931상세보기 -
소설 김나현 -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 김나현 1 엄마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원룸 안에서 그 냄새를 해결하지 못할 거라고 했지만, 결국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를 끓였다. 수프는 메인 재료가 양파와 토마토가 맞나 의심이 들 만큼 동그란 기름이 둥둥 떠 있었다. 돼지고기에 붙은 비계 때문이거나 양파를 볶을 때 버터가 들어간 탓인 듯했다. “이렇게 먹어야 제 맛이야.” 제 맛?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에 과연 그런 게 있을까? 엄마의 기분에 따라 혹은 우리 가족의 재정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수프의 맛이었다. 그러고 보면 금전적 여유가 있을 땐 소고기가 잔뜩 들어가곤 했다. 여유랄 게 없을 땐 몇 조각의 고기만 들어간 야채수프에 가까웠다. 그 수프는 마녀 수프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다이어트 음식으로 각광받기 훨씬 전부터 우리 집의 시그니처 메뉴였다. 다른 집 엄마들이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특기로 내세울 때, 엄마는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를 주력으로 삼았다. 깊은 맛의 토마토 수프, 따뜻한 쌀밥, 그 위에 계란 프라이를 올리면 특별히 다른 반찬이 필요하지 않았다. 엄마의 수프에 특별한 비법은 없었다. 냉장고 안의 남은 재료에 양파와 토마토를 넉넉히 넣고 끓일 뿐이었다. 그래서인가 그 수프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가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종종 그것을 토마토가 들어간 양파 수프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쨌거나 내가 먹어 본 어떤 수프도 엄마가 만든 수프 맛을 따라오지 못했다. 이웃들이 엄마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해도 그 맛은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것은 엄마의 장기이자 우리 집의 자랑이었다. 그 수프가 이제 내 신경을 건드렸다. 방 안에 겹겹이 쌓인 냄새 때문에 짜증이 밀려왔다. 어떤 냄새든 밀폐되면 지독해진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주방 후드의 환풍기를 켜고 침대를 밟고 올라가 창문을 열었다. 쌀쌀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들이마시자 어딘가 모르게 매캐함이 밀려왔다. 그건 이웃집에서 흘러온 담배 냄새 따위가 아니었다. 공기 질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도로변 오피스텔은 어쩔 수 없었다. 미세먼지가 있든 없든 주위는 옅은 안개에 휩싸여 흐릴 때가 많았다. “그만 내려와. 상이나 펴.” 접이식 탁자를 펼치고 엄마와 마주 앉으니 다섯 평 원룸이 꽉 차는 듯했다. 받침대에 냄비를 내려놓은 엄마는 할 말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편안히 수프 맛을 음미하기에는 엄마의 눈치가 보였다. 나는 무슨 소리를 들을까 내심 마음을 졸이며 먼저 입을 열었다. “저번 집보단 낫지 않아?” 그 집은 방충망에 벌레가 자주 들러붙었다. 작은 날벌레도 아니고 엄지만 한 크기였다. 그게 집으로 날아 들어오곤 했다. 오래된 주택의 2층집에 딸린 셋방이었다. 화장실은 밖에 있었다. 부엌은 없었다. 그에 비하면 여긴 화장실이 집 안에 있고 부엌도 딸려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줄곧 말이 없었다. 한동안 이어진 침묵에는 그 돈을 갖고 겨우 이런 곳밖에 구
작성일 2024-04-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982상세보기 -
소설 고은경 - 원형극장
원형극장 고은경 부유하는 청춘의 페르소나. 그를 수식할 때 곧잘 쓰이는 말이었다. 초미세먼지가 서울 전역을 뒤덮은 지 닷새째였다. 우리는 지하철역 앞에서 만났다. 두이는 마스크 끈을 최대한 당겨써서 눈 밑이 도드라진 모습이었다. 결막염에 걸린 그녀의 눈이 빨갰다.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크고 돌출돼 보였다. 그녀가 쓴 마스크도 내 것보다 큼지막했다. 뭐가 저렇게 커 하고 생각하다 두이의 얼굴이 내 얼굴보다 작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보다 키가 크고 얼굴은 작은 두이. 나보다 시선을 끄는 매력이 있는 두이. 아무 옷이나 툭 걸쳐도 자신만의 아우라를 풍기는 그녀였다. 신경 써서 입어 봤자 어딘가 촌스러운 나와는 달랐다. 오늘도 두이는 언뜻 부조화한 느낌의 후드 티와 체크 스커트를 입었지만 꽤나 멋스러웠다. 싸구려 시계조차 두이의 손목에 둘러져 있으니 빈티지해 보였다. 공연 시작까진 이십 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포근한 날이 반갑지 않다고 시시덕대며 우리는 극장을 향해 걸었다. 두이가 예매한 연극이었다.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발레든 재즈 콘서트든 한 달에 한 번 공연을 보는 것이 우리의 공동 취미이자 최고의 호사였다. 두이는 라이브 연주가 있는 카페에서 피아노를 쳤고 나는 백화점 행사 매대에서 자잘한 액세서리를 팔았다. 아르바이트 수입으로 대형 공연을 관람할 때면 적잖이 부담이 됐지만 어릴 때부터 계속해 온 습관 같은 것이라 그만두지 못했다. 대신 우리는 다른 부분에서 소비를 아꼈다. 옷과 가방, 비싼 화장품 같은 물건들을 거의 사지 않은 덕분에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무슨 냄새지?” 두이가 물었다. “코 막힌 거 알잖아.” 나는 비염이 심해 냄새를 잘 맡지 못했다. “시궁창 냄새 같기도 하고, 구려.” 아까보다 시야가 흐려져 있었다. 공기가 뿌옇다 못해 누런빛을 띠었다. 두이는 그 공기에서 냄새가 난다며 툴툴거렸다. 찌푸린 얼굴을 보자 가면의 뚫린 곳으로 튀어나온 코처럼 기억 하나가 불거졌다. “초등학교 때 기억나? 우리 연극했던 거. 두이 넌 왕이었고 난 요리사였잖아.” “그래, 기억나. 근데 네가 왕 아니었나?” “아냐. 내가 던진 닭다리가 네 얼굴로 날아갔었어.” “맙소사, 그랬지. 그 기름진 게 내 뺨을 맞혔었어.” “애들이 어찌나 웃어댔는지. 그런데도 넌 눈 하나 깜짝 안 했어. 내 사과를 받으면서 구린 느낌을 생생하게 얼굴로 표현했지. 그때 내가 무슨 생각 했는지 알아?” “무슨 생각?” “두이는 큰 인물이 될 거야.” “큰 인물은 개뿔. 입에 침이나 바르고 얘기해.” 전깃줄에 까마귀 떼가 앉아 있었다. 먼지구름을 몰고 온 전령들처럼 촘촘하고도 기괴한 모습이었다. 까마귀 너머 멀찍한 곳에선 신축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렇게 먼지
작성일 2024-04-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324상세보기 -
소설 김유담 - 상속
상속 김유담 너는 길 건너편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냥 건너오라는 손짓을 해도 너는 꼿꼿이 서서 녹색불이 켜지기를 기다렸다. 유령이 저렇게까지 교통법규를 철저하게 지킬 필요는 없지 않나, 나는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 건너편에서 우르르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사람들 중에서도 너는 단연 눈에 띄었다. 나를 향해 걸어오는 네 모습이 마치 런웨이를 걷는 모델 같았다. 나는 미니스커트에 가죽 코트를 걸쳐 입고 부츠를 신은 네 모습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법정에 가는 옷차림치고는 좀 요란하다 싶기도 했다. 오늘 같은 날은 최대한 후줄근하게 입는 게 낫지 않나, 혼자 생각에 잠겼다가 너는 옷차림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걸 아차차 하고 깨닫는다. “안 늦었지? 강남은 올 때마다 복잡하고, 사람이 많아서 긴장돼.” 원래 키가 큰 편인 데다 굽 높은 부츠까지 신은 네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너를 잠깐 올려다보았다가 이내 사거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을 마주치는 게 어색했다. “밥, 어디서 먹을까? 먹고 싶은 거 있어?” 반갑다는 인사 대신 내가 꺼낸 말이었다. “이 근처에 오면 꼭 가고 싶었던 맛집 있어. 거기 가보자. 서초동에 해운대암소갈비 분점이 있더라고. 해운대에서 먹었던 갈비를 여기서 먹을 수 있다니, 설렌다. 고기 괜찮지?” 내 대답도 듣기 전에 너는 앞장서 성큼성큼 걸었다. “괜찮아?”라고 묻지 않고, “괜찮지?”라고 묻는 것은 네 아버지의 질문 방식이었다. 정확히는 “괜찮제?”였다고, 기억한다. “갈비는 좀 헤비하지 않나? 간단한 걸로 먹어. 사실 나 점심 생각도 없어.” 너를 좇아가며 네 뒤통수에 대고 내가 말했다. “중요한 날이잖아, 든든하게 먹고 들어가자.” 너는 뒤돌아선 채로 나를 향해 손짓했다. 재판까지는 두 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미리 만나 밥을 같이 먹자고 한 건 너였다. 너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돈 주고 사 먹을 수 있지만 난 그럴 수가 없단 말이야. 떼를 쓰듯 말하는 너를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 아버지들끼리 절친한 친구 사이라 너와 나는 어려서부터 자주 만났다. 서로의 집을 격의 없이 오갔고, 계절마다 같이 나들이를 다녔다. 매년 봄 진해에 가서 벚꽃을 봤고, 여름이면 남해로 휴가를 다녀왔으며, 가을마다 가야산 단풍 구경을 빼먹지 않았다. 겨울에는 무주에 가서 스키도 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계절을 가장 만끽할 수 있는 명소를 찾고, 제철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너의 아버지 지론이었다. 네 아버지는 좋은 것을 누려 왔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너희에게는 그런 여유가 있었다. 학창 시절, 내 아버지는 학교에서 손꼽히게 가난한 축이었고, 네 아버지는 그 학교에서 가장 부유하기로 소문난 학생이었다. 너의 조부는 부산 지역에서 이름난 유지
작성일 2024-03-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284상세보기 -
소설 지강숙 - 손상
손상 지강숙 차가 안개를 헤치고 철문 앞으로 다가섰다. 반쯤 열린 철문에 ‘출입제한구역'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표지판 앞에서 민호가 머뭇거렸다. 방금 지나온 캠핑장을 돌아보았지만 이미 만원이라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민호는 할 수 없이 철문 안으로 차를 전진시켰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를 지나니 샛길이 나 있고 길 끄트머리에 숨어 있던 공터가 나왔다. 공터 한편에는 미니버스 크기의 캠핑카 한 대가 서 있었다. 희수가 자세히 보려 차창을 내렸을 때, 사람 한 명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키가 작고 다부진 어깨를 가진 남자였다. 그는 두 팔을 휘저으며 차를 한쪽으로 몰았다. 희수는 차에서 내려 소나무 숲 건너 언뜻 보이는 캠핑장을 부럽게 바라보았다. 차는 여기 두시고, 저어기 계곡 건너편이 조용할 거예요. 남자는 캠핑카와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공터에서 내려다보이는 계곡의 맞은편에 간신히 텐트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보였다. 희수는 준비해 온 카메라를 트렁크에서 꺼냈다. 캠핑카 앞에도 촬영 장비가 즐비한 것을 보니 남자 쪽도 놀러 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서로의 화각을 생각하면 피차 손해 볼 것 없는 제안이었다. 희수와 민호는 텐트와 조리도구, 음식 재료가 담긴 아이스박스를 짊어지고 계곡을 건넜다. 번쩍. 캠핑카 앞을 지날 때, 플래시가 터지는 것 같았지만 희수는 돌아보지 않고 차가운 물에 발을 디뎠다. 백화점의 캠핑 코너는 몇 개의 유명 브랜드를 빼고 대부분 비슷한 물건을 팔았다. 중소 브랜드의 경우에는 전주 매출에 따라 매대 위치가 정해지는 터라 경쟁이 치열했다. 매니저들은 타사에 밀리지 않으려고 백화점에서 금지한 가매출을 공공연히 자행했다. 자신의 카드 한도로 모자라면 신입이나 수습 같은 말단 직원에게 구매를 강요했는데, 다음 달에 실적이 없어 취소를 못 하면 직원이 고스란히 빚을 떠안기도 했다. 희수는 말단 직원을 괴롭히는 대신 자신이 고생하는 편을 택했다. 밤늦게까지 트렌드를 분석하거나 캠핑 용품의 기능을 공부해 와 고객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매출을 올렸다. 희수의 언변으로 타 매장에서 텐트를 산 고객이 환불을 받고 희수 매장에서 구매한 일도 있었다. 자산 규모가 미미한 업체임에도 희수의 매대는 작년까지 이벤트 홀 가장 좋은 자리를 제일 많이 차지했다. 매일 저녁 블로그나 유튜브로 유행 아이템을 살펴보고 설명할 말을 다듬는 일은 고단했다. 하지만 희수는 자신의 노력에 따른 보상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 희수도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둔 신생 브랜드 P사의 공격적 마케팅은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P사는 입점 행사로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대의 물량 공세를 퍼부었다. 희수가 봤을 때 기능 면에서 희수의 제품이 훨씬 뛰어났지만 고객들은 희수의 설명에 잠시 멈췄다가도 결정의 순간에는 P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희수는 아무리 설명을 잘해도 고객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도 대책 없이 줄어드는 통장 잔고가 억울하기만 했다. 하지만
작성일 2024-03-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1071상세보기 -
소설 신주희 - 킨츠키 클래스
킨츠기 클래스 신주희 유리 조각을 주워 그 애의 집으로 갔다.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이층집. 피아노 레슨 중인 그 애를 기다리는 동안 그 집의 장난감들을 가지고 노는 것은 자유다. 예컨대, 그 애가 아끼는 인형의 옷을 갈아입히거나, 그 인형의 이름을 다르게 부르거나. 침대에 눕는 것도 가능했다. 굳이 눕고 싶다면 그래도 되었다는 뜻이다. 나의 경우, 그러니까 초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그 애의 침대가 좋았다. 늘 좋은 냄새가 나고, 귀여운 만화 캐릭터 시트가 깔려 있는, 나로서는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앙증맞은 침대였으므로. 나는 그곳에 누워 차마 피아노곡이라 말할 수 없는 도, 미, 솔, 솔, 솔을 들으며 끝끝내 무엇인가 다른 것을 원하는 상태가 된다. 길에서 주워 온 유리 조각을 꺼내 햇빛에 비춰 본다. 그러니까, 그래서, 그렇지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결심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꼭, 그 애의 매끄러운 피아노에 깊은 흠집을 내버리기로. * 수업 준비는 늘 최고이면서 최악이었다. 나는 매일 산산조각이 난 접시나 찻잔, 사발을 들고 온 수강생들에게 그것은 복원 중일 뿐 아직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러니 인내심을 가지기를. 끈기를 가지고 다음 수업 예약을 꼭 해주기를. 나는 구차함을 떨쳐내며 테이블 위의 수업 계획서를 가지런히 모아 놓는다. 지난 수업과는 조금씩 다르게 이어 붙인 문장들 사이에서 틈이라는 글자가 내 시선을 붙잡는다. 깨진 도자기를 복원하는 기법 중 하나인 킨(金) 츠기(継ぎ)는 상처 난 영혼을 치유하는 것에 비유됩니다. 틈을 금으로 이어 붙인다는 뜻으로 파편의 경계를 감추지 않고 오히려 살려서 사물의 일상성을 회복시키는 의미 있고 아름다운 작업입니다. 나는 틈을 메우는 일에 보람을 느끼면서도 내게 틈이 생기는 것을 싫어한다. 고작 틈, 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절망이나 좌절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나는 비관을 포기한 사람으로 서른 중반까지 사모님으로 살았지만 마흔이 된 지금은 누군가를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처지가 되었다. 꽤 큰 규모의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남편의 회사가 최종 부도 처리되자 집 안 곳곳에는 압류 딱지가 붙었다. 죽고 싶을 만큼 처참했다. 동시에 처절하게 이를 악물고 살아남고 싶기도 했다. 밑 빠진 독을 채우는 일처럼, 눈앞에 던져진 모든 것을 허겁지겁 해치웠다. 끝내 이혼과 재산 분할, 양육권 분쟁으로 이어진 일련의 시간이 들이닥쳤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깨뜨려 본 사람은 안다. 한번 깨진 것은 본래의 것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것을. 아무리 긴 시간과 정성을 들여도 완벽한 복원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 뒤로 알 수 없는 허기가 나를 집어삼켰다. 공포스러울 만큼 왕성한 소화력과 끝이 없는 식사. 순식간에 불어난 몸이 거대한 틈처럼 느껴졌다. 때문에 나는 시시때때로 벌어지는 틈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 집은 항상 정리된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규칙적으로 다이어트를 하며, 적
작성일 2024-03-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2 댓글수 1 조회수 925상세보기 -
소설 박서영 - 나경
나경 박서영 누구나 나경을 지난다. 도약하기 위해 존재하는 장소. 수만 개의 지향이 도로 위로 얽히고 오래된 주택들은 암시처럼 골목을 밝힌다. 머무는 것만이 그곳에서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꿈을 이루지 않고 다만 꾸기만 한다. 나는 한때 나경에서 지냈다. 그리고 오늘은 오랜만에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출장이 있어 남쪽 도시로 왔다가 다시 북쪽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었다. 딱딱한 등받이에 몸을 붙이고 불편하게 자다 형체가 불분명한 무언가에 쫓기는 꿈을 꿨다. 수면을 통제하는 신체 스위치가 눌리듯 저절로 눈이 뜨였다. 버스는 차체의 백색소음이 옅게 깔려 있을 뿐 고요했다. 드문드문 앉은 승객들은 자거나 핸드폰을 보며 각자 할일을 했다. 나는 창문 커튼을 젖히고 바깥을 바라보았다. 산들이 석양을 등진 채 서로 엉기듯이 달라붙어 있었다. 그늘을 덮은 탓에 화재라도 입은 것처럼 새까맸다. 나는 버스 맨 앞 상단의 모니터를 봤다. 현재 지나는 위치가 명시되어 있었다. 남과 북의 한가운데, 나경이었다. 나는 이제 나경으로 가지 않는다. 그곳에 있던 외할머니도 십 년 전에 죽었고 몇 없던 친척들도 다른 도시로 떠나버렸다. 나경은 원래 그러라고 있는 곳이다. 이 말을 처음 해준 이는 내 초등학교 3학년 시절 담임인 장 선생님이었다. 학교에서 유일한 남자 교사였고 초임이었다. 인구가 4만 명인 나경군에서 4년째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도시의 학교로 부임하고 싶어 했는데, 그러려면 시골에서 오 년을 근무해야 한다고 했다. 시골은 인기가 없고 도시는 인기가 많아서다. 나는 그렇게 불평하는 그의 어투를 매일 듣고 완벽히 외웠다. 목소리와 음의 높낮이까지 똑같이 따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교실의 장 선생님 책상에는 스테인리스 전기포트가 있었다. 그는 조회 시간마다 전기포트로 끓인 물을 육개장 사발면에 부었다. 면이 다 익을 때까지 늘어지게 하품하고는 우리에게 조용히 하라고 면박했다. 나는 맨 앞자리였다. 다 익은 라면을 장 선생님이 후루룩 소리 내며 먹는 광경을 정면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른이 되면 자기 마음대로 아무 때나 라면을 먹을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배가 고팠다. 어른이 되고 싶었다. 우리 가족이 나경으로 이사한 건 내가 열 살 때다. 나보다 일곱 살 많은 언니의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경리 언니는 태어날 때부터 살가죽이 일정 부분 돌처럼 굳는 피부병을 앓았다. 돌처럼 굳은 표피는 잘게 부서져 가루가 되었다. 언니가 머문 자리마다 조밀한 입자가 남았다. 그것은 까말 때도 있었고 하얄 때도 있었다. 정확한 병명은 병원에서도 모른다고 했다. 엄마는 밤마다 때수건으로 언니의 피부를 벅벅 벗겨냈다. 돌이 떨어진 부분에는 붉은 자국이 남았다. 그 위로 병원에서 받아온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랐다. 병원에서 면봉으로 바르라고 했지만 엄마는 그냥 맨손이었다. 그러다가 부아가 치밀어 오르면 손바닥으로 철썩 소리가 나게 언니 등을 내리쳤다. 씨팔. 대체 어떤 귀신한테 씌어서. 언니는 학교에 다닌
작성일 2024-03-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80상세보기 -
소설 정은우 - 그중 하나
그중 하나 정은우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그녀는 문을 열었다. 실수였다. 올 사람도, 올 물건도 없었다. 음식 배달도 하루에 한 번 시킬까 말까였다. 뒤늦게 손잡이를 잡아당겼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새까만 구둣발이 문 사이에//문틈 사이로 끼어든 후였다. 구둣발은 그녀에게 전할 말이 있다고 했다. 순간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였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사건 사고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은 그녀를 불쌍히 여기는 한편 누가 먼저 문을 열었는지 짚고 넘어가려 할 터였다. 그녀는 그 어떤 교훈의 사례도 되고 싶지 않았다. 저는 신을 믿지 않는데요. 저도 신을 믿지 않습니다. 뭘 살 돈도 없어요. 뭘 팔려고 온 게 아닙니다. 구둣발은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한낮의 복도는 조용했다. 그녀가 사는 오피스텔은 관처럼 길고 좁은 원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였다. 사는 사람은 많아도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 도와주리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그녀는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올 사람이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구둣발은 말만 전하고 가겠다고 받아쳤다. 다음에 오면 안 되냐고 물었다. 구둣발은 시간이 없다며 딱 잘랐다. 문밖에서 말하라고 하자 본인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면서 문만 열어달라고 했다. 그녀는 결국 문을 열었다. 구둣발은 신고 있는 구두처럼 옷이며 가방, 손에 든 패드까지 온통 검은색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평범해 보였다. 내일이라도 금방 잊을 만큼 흔한 얼굴이었다. 구둣발은 패드와 그녀를 번갈아 본 다음, 약속대로 간단하게 말했다. 죽어주십시오. 그녀는 뒤로 물러섰다. 앞으로 달려가서 구둣발을 밀어내고 문을 잠그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몸은 움츠러들기만 했다. 구둣발은 흉기를 꺼내거나 달려들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녀는 물었다. 왜 절 죽이려고 하세요? 저는 죽이겠다고 하진 않았습니다. 살인은 위법입니다. 죽어달라면서요? 어디까지나 권고입니다. 죽여버리겠다는 말이라면 모를까 죽어달라니, 권할 만한 사안도 아니었고 부탁치고는 무례했다. 하다못해 정수기 판매사원만큼의 정성은 있어야 하지 않나. 구둣발은 그녀에게 미안해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정수기 판매사원들은 언제 어디서든 정수기의 과학적 구조며 필터의 효능 등 정수기의 장점들을 줄줄이 읊어댔다. 듣다 보면 집에 정수기 한 대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약정 기간과 위약금, 싱크대를 뚫고 일정 주기로 필터 점검이 필요하다는 건 계약 이후에서야 알았다. 제가 왜 죽어야 하나요? 당신이 왜 살아야 합니까?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딱히 둘러댈 거리가 없었다. 즐겨 보던 드라마는 오래전에 끝났고, 다니던 회사는 망했다. 사귀던 사람과는 헤어진 지 오래였다. 그녀의 삶은 단순했다. 늘 둘 중 하나였다. 일하거나 일하지 않거나, 눈을 감거나 뜨거나. 중학생이었을 적 그녀는 변호사를, 고등학생이 돼서는 동시통역사를 꿈꿨다. 둘 다 돈
작성일 2024-02-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1 댓글수 0 조회수 976상세보기 -
소설 정선임 - 십일월이 지나면
십일월이 지나면 정선임 1 어느 것이든 참여해야 했다. 노래자랑, 볼링, 농구, 윷놀이, 탁구, 축구. 루시아가 줄줄이 나열하는 단어들이 생소했다. 이런 종류의 선택과 마주한 것이 언제였더라. 까마득한 대학 신입생 시절 이후 처음이지 않을까. 소영은 손을 들까 말까 움찔거리다 고개를 돌려 대식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대식은 윷놀이를 일찌감치 골랐다. 고집스럽게 다물고 있는 입을 보자 숨이 턱 막혔다. 소영은 욱신거려 오는 왼쪽 발목을 주물렀다. “노래자랑과 축구만 남았습니다. 아직 정하지 않은 보호자님?” 망설이는 사이 선택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노래자랑만은 피하고 싶어 소영은 엉거주춤 손을 들었다. 축구라고 해봐야 테이블 게임기였다. 소영과 동시에 누군가 손을 들었다. “김해숙 마리아 보호자님과 윤대식 요한 보호자님, 축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 사람도 파란색 줄로 된 보호자용 명찰을 목에 걸었다. 명찰에는 정민재, 라고 적혀 있었다. 사실 소영은 자기소개를 할 때부터 민재를 의식하고 있었다. 보호자와 함께하는 5박 6일 교육 프로그램은 요양원 입소 전 절차였다. 이곳에 입소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다른 병이 아닌 암이어야 했고 혼자서도 거동할 수 있어야 했다. 보호자가 교육 프로그램에 동행해야 한다는 규정이 제일 까다로웠다. 스무 명 정도 새로 입소하는 환자들의 보호자는 대부분 배우자였다. 보호자로 자녀가 동반한 경우는 소영과 민재뿐이었다. 60대도 어리다는 소리를 듣는 곳에서 그들은 가장 젊었다. 휴가철도 아니고 연휴도 없는 11월 평일에 엿새간 시간이 되는 40대가 얼마나 될까. 다른 입소자와 보호자들이 착한 딸, 아들이라고 칭찬했지만 내심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소영도 민재가 궁금했으니까. 요양원은 충북 청주 시내에서 떨어진 마을 근처에 있었다.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고 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터라 기도하는 곳도 마련되어 있었다. 단점은 거의 없었다. 공항 근처여서 비행기가 지나갈 때마다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무엇보다 다른 요양원보다 가격이 저렴해 신청자가 꽤 많았다. 소영은 여름이 시작될 무렵 대기 신청을 걸어 두었다. 그사이 왼쪽 발목이 골절됐고 수술을 받았다. 통깁스와 목발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직 걸을 때면 절룩거렸고 오래 걸으면 부었다. 자리가 생겼다고 연락을 받았을 때 물리치료를 더 받아야 하는 상태였으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환자는 물론 보호자에게도 세 끼 식사가 영양식으로 제공된다는 블로그 후기를 훑어보면서 공기 좋은 곳에서 쉬고 오는 셈 치자고 좋게 생각했다. 일 년 전, 대식이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소영은 냉정하게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 대식이 수술을 받고 입원한 며칠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일상을 지켰다. 간병인을 구했고 오빠와 나눠서 비용을 보탰다. 그럼에도 대식은 소영을 끊임없이 호출했다.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이 간병이라는 몫을 짊어지게 된 사례를
작성일 2024-02-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1 댓글수 0 조회수 1374상세보기 -
소설 이예린 - 전국노래자랑
전국노래자랑 이예린 1. 오늘 시애는 다시 이십대가 되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잠이 덜 깬 채로 거울 속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어제 본 뉴스가 떠올랐다. 오늘부터 만 나이가 도입된다고 했다. 다음 달이 시애의 생일이므로 겨우 보름 남짓일 뿐이었지만 어쨌든 이십대였다. 이십대라니,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고, 사실 그건 서른이 되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시애뿐 아니라 갑자기 한두 살씩 어려진 사람들 모두가 같은 마음이겠지. 모두 다 같이 어려지니 대단한 이점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도 시애는 까먹지 않으려 애쓰듯 새로 부여받은 제 나이를 몇 번씩 곱씹어 보았다. 그렇게 하면 완전히 다른 마음가짐이 되어 새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는 것처럼. 이불을 개고, 짧게 스트레칭 하려는데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애는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일곱 시도 안 되었는데······. 어젯밤 엄마는 시애에게 일찍 일어나 할머니 아침 식사 좀 차려 드리라고 신신당부했다. 시애는 알았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불가능하리라는 걸 알았다. 할머니는 언제나 꼭두새벽에 일어났고, 단둘이 있을 때면 할머니가 시애의 식사를 챙겼다. 평소에 전적으로 엄마에게 주방을 맡기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할머니에게는 그게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마 시애가 할머니보다 일찍 일어나 식사 준비를 했더라도 잠귀가 밝은 할머니에게 칼과 도마를 금세 빼앗겼을 것이다. 무엇보다 할머니는 시애가 주방에 들어서면 불안해했다. 목이 말라서 냉장고 문만 열어도 무얼 하느냐고 추궁하듯 캐물었다. 그러면 시애는 ‘물 마시려고요.’ 하고 이유도 모른 채 자꾸 변명했다. 할머니의 그런 태도는 손녀를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자신의 역할과 영역을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에 가깝다고 시애는 늘 생각했다. 할머니는 압력밥솥 앞에서 주걱을 들고 서 있었다. 시애가 나오자 조급해졌는지 재빨리 밥솥 추를 빼는 게 보였다. 뚜껑에서 김이 요란하게 올라왔다. 시애는 아침 인사를 한 뒤 냉장고로 향했다. 엄마가 만들어 둔 밑반찬들을 꺼내 하나씩 식탁에 올렸다. 수저도 나란히 놓고, 정수기에서 물을 떠다가 할머니 자리에 두었다. 국은 없었다. 엄마는 시금치를 넣고 된장국이라도 끓여먹으라고 했지만, 할머니가 그냥 먹자고 해서 냄비를 꺼내려다 도로 집어넣었다. 시애는 평소 아침을 먹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와 단둘이 있는 날엔 어쩔 수 없었다. 할머니 혼자서 드시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이것 좀 먹어 봐, 엄마가 맛있게 무쳐 놨어.” 할머니는 자꾸만 나물을 먹어 보라며 반찬 통을 시애 쪽으로 들이밀었다. 대부분 당신이 하천가나 뒷산에서 캐온 것들, 혹은 시장에서 싸다며 한보따리씩 사온 것들이었다. 시애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열심히 집어 들었지만 쉬이 넘기지는 못했다. 참나물, 취나물, 미나리, 방풍나물에 씀바귀··&midd
작성일 2024-02-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4 댓글수 0 조회수 1401상세보기 -
소설 서고운 - 복숭아 심기
복숭아 심기 서고운 물줄기는 맹렬한 기세로 솟아올랐다. 시장 주차장이 있던 자리에 주상복합이 들어선다고 했고, 한창 땅을 파던 중에 수맥을 건드렸다. 수천 년 넘게 땅 아래를 누볐을 지하수가 터졌다. 5미터가 넘는 높이의 물기둥 주위로 서른다섯 가구가 대피했다. 공사는 중단되었지만 물을 멈추기는 어려웠다. 시장은 잠정적 휴업에 들어갔다. 동네 전체가 거대한 아쿠아리움이 된 듯 보였다. 벌써 일주일째였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자매의 빌라 아래로도 물줄기는 선명하게 보였다. 금정은 어제와 똑같은 모양으로 베란다에 서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니.” 은정의 부름에 금정이 초점 없는 눈으로 돌아보았다. 우리 집은 괜찮을 거야. 은정은 위로 비슷한 말을 건넸다. 물론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금정과 살림을 합치면서 겨우겨우 이사를 마친 지 석 달도 되지 않았다. 자매는 말없이 잠시간 같은 곳을 바라본 채 서 있었다. “너는 몰라.” 금정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뭐를?” “자꾸 죽는단 말이지.” 금정은 무언가 심기를 좋아했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달걀 껍데기를 말리고 빻아서 흙에 뿌렸다. 작은 바질 모종을 키워 꽃을 피우고 씨를 털어내 바질 2세를 만들기도 하고, 레몬의 씨앗을 하나하나 파내서 심기도 했다. 아보카도를 먹고 나선 아보카도 씨앗을, 사과를 먹고 나선 사과 씨앗을 심었다. 타일 바닥에는 흙이 버적버적 밟혔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정원은 아니었다. 금정은 풀을 키워냄으로써 구원을 찾으려는 듯 아등바등 씨를 파내고 심고 물을 주고 수시로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엄마 바질의 잎은 하루가 다르게 축축 늘어졌다. 쑥쑥 자라나던 아기 바질들은 생장을 멈추고 점차 검어졌다. 사과 싹은 손가락 하나만큼 자라더니 갑자기 말라 죽어버렸다. 물을 너무 안 주었나. 아니면 많이 주었나. 뭘 해도 탈이 나는 게 제 모습 같다며 금정은 풀이 죽었다. 금정 역시 점차로 말라 가는 듯했다. 일까지 그만두고 집 안에만 처박힌 지 벌써 일주일이 넘어갔다. “이상해.” “뭐가?” “다들 죽는다니까.” 죽는다니? 은정의 마음 한쪽이 따끔해졌다. “키우다 보면 좀 시들 때도 있는 거지. 겨울이잖아.” 금정은 푸석해진 레몬 잎사귀를 차례로 쓰다듬으며 도리질했다. “너는 시간이 어제보다 오늘 더 빨라진 걸 못 느끼겠니?” 금정은 어느새 복숭아 화분을 붙잡고 은정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두 달 전 복숭아를 먹고 나서 만든 화분이었다. 복숭아 씨앗은 단단한 껍데기로 둘러싸여 있어서 신발장을 뒤져 찾아낸 망치로 두들겨야 했다. 그렇게 꺼낸 뽀얀 속씨를 손바닥 크기의 화분에 심었다. 한 달 만에 아주 작은 싹이 트더니 이제 손가락 두 마디쯤 자라났다. “어쩌면 중력이
작성일 2024-02-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4 댓글수 0 조회수 1626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