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문장의 시선 전체보기이은지 문학평론가의 기획 비평은 2026년 6월부터 2026년 8월까지 로 3회 연재됩니다. 포이에시스, 오토포이에시스, 심포이에시스 (2) 이은지 1. 인간됨의 성찰에서 자동화된 소외로 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인간됨을 기술 환경과의 연관 속에서 조정하며 견인해왔다. 타자기 이전에, 손글씨 이전에, 인간에게 주어진 최초의 도구이자 기술이었던 언어의 발생에서부터 그러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헤르더가 1772년 발표한 논문 는 당대 철학계의 주류 담론이었던 언어의 신적 기원론과 동물적 기원론을 모두 부정하며 신과도 동물과도 무관한 인간 고유의 성질로부터 언어가 유래했음을 증명한다. 자신이 태어난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유전적으로 고정된 본능을 발현하며 살아가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그러한 본능이 ‘결핍’되어 있다. 그러나 본능이 결핍되어 있다는 바로 그 점으로 인해 인간은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한다. 각인된 본능의 맹목적인 발현으로 벌집을 짓는 벌이나 거미줄을 치는 거미와 달리 인간은 “동물의 기술적인 능력에 뒤처져” 있기에 오히려 “자신을 비추어 볼 영역을 찾을 수 있고, 자신 속에서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게 된다.”1) 종의 본능에 따른 반응이 아닌, 각각의 고유한 개체가 세계에 대해 갖는 느낌을 표현하고 또 표상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언어를 탄생시킨다. 자기 외부의 대상을 식별하고, 사물과 사물을 구분 짓고, 이에 대한 경험을 축적하여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인간이 된다. 세계와 사물에 대한 자아의 경계를 확정하고 그러한 자아로 이루어진 타자와의 집단적, 사회적 교류를 형성하며 그로부터 습득한 것들을 세대를 이어 전수함으로써 인간은 더욱 인간이 된다. 언어를 매개로 하여 발현되는 이러한 인간됨의 사슬은 동물적 본능과 달리 고정되지 않는다. “구분을 많이 짓고 그것들을 서로 정돈할수록 그의 언어는 더 정돈”2)되며, “언어의 지속적인 형성” 속에서 “삶의 모든 상태는 성찰을 통해 발전적인 통일체가 된다.”3) 즉 인간에 의해 발명된 언어가 인간으로부터 독립된 대상으로 머물지 않고 인간을 거듭 새롭게 발전시키며 인간의 일부이자 핵심적인 본질을 형성하는 것이다. 언어를 사용할수록 인간의 인간됨이 발전하는 한편, 언어 또한 고도화된다. “모든 기술은 생성에 관련”4)된다고 했을 때 이는 언제나 기술 자신에도 해당한다. 기술은 자신이 투여된 대상 혹은 영역에서의 생성과 더불어 기술 자신에서의 생성 또한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무한히 순환하며 어딘가로 계속해서 나아간다. “기술과 그 기술을 적용시키는 인간 사이에는 하나의 복잡한 피드백 관계가 존재하고 있다.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의식은 변화된 기술을 요청하고, 변화된 기술은 그 의식을 변화시킨다.&r
불운에 대처하는 화자들 배민정 한때 유행했던 ‘머피의 법칙(Murphy's law)’이라는 말은 개인이나 집단 차원에서 발생한 ‘불운한 사건들’을 설명하는 가장 흔한 키워드였다. 마음에 드는 이성은 꼭 짝이 있고, 오랜만에 찾은 목욕탕은 정기 휴일이라는 식의 노랫말1)처럼 불운은 개인의 일상 속 ‘재수 없는 우연’에서부터, 갑작스레 발생하는 사회적 재난, 전염병, 범죄까지 아우른다. 이런 예기치 못한 불운을 맞닥뜨렸을 때, 개인이나 집단은 늘 그에 대한 설명을 요구해왔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의 원인을 규정함으로써 고통을 위로받고, 같은 불행이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치는 이러한 사건들을 문제화하고 적절히 관리하기 위해 특정 장치들을 동원한다. 가령 불운의 원인으로 초자연적 힘을 내세워 단숨에 공동체의 균열을 봉합하는 것이 ‘주술’이라면, ‘신정론(神正論)’은 사건의 원인을 사회 구조와 문화적 차원에서 접근해 집단의 성찰과 개혁을 도모한다. 한편, ‘보험’은 사건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추궁하기보다 피해 손익 측정과 보상 계약을 통해 신속한 사후 처리를 꾀한다.2) 이처럼 정치는 예상치 못한 불운을 관리 가능한 영역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다양한 통치 기술을 활용한다. 서로 다른 해법이 경합하는 정치의 장에서 시스템이 붕괴될지 모른다는 대중의 공포는 통제되고,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 또한 제도적 일상 안으로 안착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개인이 겪는 상실감과 두려움은 어떤 제도적 규범이나 보상금으로도 온전히 메워지지 않는다. 따라서 정치가 불운한 사건을 공적으로 의미화하여 체제의 정상화를 선언할 때, 문학은 그 수면 아래 방치된 개인의 실존적 문제들을 끌어안으면서 정치의 공백과 마주한다. 이 공백 안에서, 크고 작은 불운에 빠진 시적 화자들은 그 불행을 계기 삼아 그간 인식하지 못했던 현실 구조를 감지하고, 새로운 주체화의 순간을 경험한다. 즉 화자들에게 있어 불운은 역설적으로 체제에 길들여진 존재들의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주체화의 과정인 셈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불운의 대처법을 통해 제도화될 수 없는 고통이 시적 언어로 복원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 한 남자가 머리를 하러 미용실에 들어선다. 평소처럼 자리에 앉아 거울을 바라보는데, 어라, 뭔가 이상하다. 남자는 그동안 자신이 남들보다 적은 이발비를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왜 자신만 만 원을 받느냐고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은 가히 충격적이다. “숱이 없어서 금방 한다고.”(민구, 「거울 속의 신」, 『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해』, 아침달, 2021) 개인의 의지나 노력 바깥에서 마주하는 원치 않는 상황을 ‘불운’이라 한다면, 이 시의 화자는 불운한 사람이 맞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호감 가는 외모 조건 중에 적은 머
사라짐을 위한 유희 —황유원론1) 오경진 그는 불안에서 도망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불안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불안을 사랑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불안에서 도망치려고 하기 때문이다. 쇠렌 키르케고르 밤의 해변에서 저기, 꿈(夢·몽)과 환상(幻·환)을 물거품(泡·포)과 그림자(影·영)로 새겨넣으려는 시인이 있다. 나직한 그의 목소리가 파도에 떠밀리듯 들려온다. 잠깐 여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죽어도 된다 우린 그날 저승처럼 컴컴한 해변에 앉아 있다가 안전요원들의 눈을 피해 하나둘 밤바다로 뛰어들었지 … 잠들면 안 돼! 우린 여기서 밤새 놀다 가야 하니까 어차피 죽음을 삶에 좀 섞어보는 거다 그 역(逆)이 아니라 … 내가 더 이상 해변에서 잠들지 않으므로 간혹 해변이 내 곁으로 와 쓰러져 잠드는 밤이 있고 그런 밤이면 몰래 자리에서 일어나 어둔 밤의 해변을 홀로 거닐기도 했다 젖은 모래 위에 如, 夢, 幻, 泡, 影 손끝으로 한 자 한 자 써보며 꿈 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다는 말 또 그림자 같다는 말을 문신처럼 새겨넣었다 우리 조금만 더 죽자 진짜 죽음이 있기 전에 하고 기도하던 밤이 있었다 「여몽환포영」 부분, 『초자연적 3D 프린팅』 “문신”(文身)처럼 새겨넣은 그것은 “어둔 밤의 해변”의 “젖은 모래 위” 하나의 형상으로 기록돼 있다. 결국에는 지워지고 사라질 글쓰기. 꿈이 그렇듯, 허깨비가 그렇듯, 물거품이 그렇듯, 그림자가 그렇듯. 어른거리다가 없어지는 것. ‘있음’으로 피어올랐다가 ‘없음’으로 되돌아가는 것. “죽음을 삶에 좀 섞어보는” 것. 설령 그것이 진짜 문신이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몸은 어차피 스러지는 것, 몰락하는 것, 죽는 것. “진짜 죽음”이 오면 그것 역시 꿈처럼 허깨비처럼 물거품처럼 잊힐 것이다. 그러면 시 쓰기는 다 무엇일까. 저 『금강경』의 마지막 게송조차도 결국 망각의 무로 돌아갈 것인데, 그 게송으로 시를 지어봤자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삶은 “저승처럼 컴컴한” 해변을 거니는 것과 같고, 시 쓰기는 어차피 파도가 들이쳐 지워 없어질 모래 위에 “여몽환포영” 하고 한 자씩 새겨 넣어보는 일이다. 세계의 무상(無常) 속에 스러질 것, 그것을 우리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제사는 절대적인 무(無) 앞에 선 인간의 운명을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불안을 사랑하는 우리는 불안에서 도망치고자 한다. 우리는 불안에서 도망치고 싶지만, 불안을 사랑한다. 불안의 포로인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시를 짓는다. 문학을 한다. “불안은 가능성에 앞선 가능성으로서의 자유의 현실성이다.”2) 무(無)에서 시작되어 무(無)로 흩어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