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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vol.236

2024년 12월호
2024년 12월호
문장웹진

소설

문장에서
만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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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2024.12.01
다른 겨울

다른 겨울 최유안 음습한 바람이 무리의 발소리를 갑작스레 가뒀다. 육중한 무게가 계단을 수시로 눌러 내리는 탓인지 천장에 붙은 낡은 철제 안내판 한쪽이 불규칙하게 덜컹댔다. 거, 애도 있는데 앞으로 자꾸 밀지 마시고. 신경질적인 영어에 앞쪽 무리에 끼어 있던 몇이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녀 한 쌍이 눈치를 보며 그의 주위를 빙 돌더니,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들이 빠져나가는 지하철 입구를 올려다봤다. 나 말고도 작은 소요에 신경 쓴 사람이 더 있었는지 고개를 튼 방향에 시선이 여럿 뒤섞여 있었다. 출구 끄트머리 너머 작은 간판이 눈에 띄었다. 남자가 안정을 찾은 목소리로 말했다. 츄러스 먹을까?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여자아이가 신이 나는지 까르륵 소리를 냈다. 빨간 털모자가 단번에 눈을 사로잡았다. 두 돌 정도 되어 보였다. 아이 소리에 힘이 난 남자가 끙 소리를 내며 큰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같은 줄에 서서 걷는 남자와 내 뒤로, 수십 명이 굴리는 발걸음이 코뿔소 떼처럼 광광거렸다. 계단참에 짧은 치마 차림의 여자가 카메라를 들고 멈춰 섰다. 사람들이 그를 피해 둥글게 호를 그리며 밖으로 빠져나가거나, 혹은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구도로 앵글을 잡았다. 한데 몰려 있던 찬바람이 안쪽으로 거세게 밀려 들어왔다. 지하철 입구가 아랑곳없이 사람들을 쏟아냈다. 단어들이 하얗게 내뿜는 입김을 타고 구슬처럼 흘러나와 공기 중에 분사됐다. 북적이는 관광객 틈에는 한국인도 여럿 섞여 있었다. 깔깔거리는 소리에 익숙한 단어들이 튀어나와 저마다의 파동으로 멀어져 갔다. 누군가는 여행을 오기 전에 유럽에서 동양인 경멸이나 무시가 빈번하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했고, 여긴 그나마 괜찮아, 하는 자조 섞인 말도 들렸다. 게다가 지금이 연초보다 더 멋질 게 분명해, 하고 아직 마주하지 않은 새해 풍경을 확신하기도 했다. 불안을 기만하는 방식으로 불가해한 미래를 정당화하는, 인간은 오만하다. * 간간이 부는 시린 바람 사이로 빵 굽는 냄새가 옅게 났다. 멀리 성당 종소리가 아득했다. 걷는 행위에 극심한 피로를 토로하는 나를 배려해 희용과 혜미는 속도를 조절하며 앞장섰다. 희용은 오른편에, 혜미는 왼편에 있었다. 오가는 사람이 많은 탓에 희용은 약간 비틀린 채 서서 인도와 차로를 번갈아 걸었다. 한 아이가 다가와 거칠게 희용의 옆구리를 밀치며 지나갔다. 앞서간 아이를 멈춰 서 바라보는 희용의 곧게 선 뒤통수가 홧홧해 보였다. 희용을 치고 지나간 아이 뒤로 비슷한 또래의 아이 둘이 장난치며 뛰었다. 뒤따라 어른 몸집만 한 아이가 달려들더니 희용의 어깨를 치고 지났다. 희용의 귀에서 에어팟이 빠져나와 바닥에 내리꽂혔다. 아, 씨. 희용은 포장된 도로 위를 굴러가는 에어팟을 주워 올리며 멀리 아이들을 바라봤다. 벌써 저만치 뛰어가는 중이었다. 얼굴을 구긴 희용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 끼어 걷던 내 옆으로 다가왔다. 괜찮아? 내가 물었고 희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보는 목소리가 걱정스러웠는지, 에어팟

소설 2024.12.01
흑건(黑鍵)

흑건(黑鍵) 임희강 요셉이 정수용을 만난 건 약 두 달 전의 일이다. 요셉은 좁은 골목의 치킨 가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치킨집 바로 오른쪽에는 50년 전통의 순두부 가게가 있었다. 치킨집의 왼쪽엔 50년 전통의 순두부 가게 사장의 아들이 운영하는 아구찜 가게가 있었다. 그 외에도 갈비찜, 감자탕, 굴보쌈과 족발을 파는 가게가 차곡차곡 잘 맞춘 블록처럼 쌓여 있는 골목이었다. 두 사람이 지나기도 빠듯한 골목에는 서로 다른 음식에서 사용한 간마늘과 참기름 냄새가 진동을 했다. 예스럽고 한국 음식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지만 누가 봐도 서양의 클래식 음악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요셉은 가진 옷 중 가장 깔끔한 재킷을 챙겨 입고 치킨 가게로 출근했다. 치킨 가게 사장은 바로 요셉의 이모부였다. 가게를 인수할 때 내부에 있던 낡은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를 보고 이모부는 놀고 있던 요셉을 불러 연주를 부탁했다. 요셉이 가장 좋아하는 연주곡은 〈흑건〉이었다. 〈흑건〉은 쇼팽의 에튀드 G Major. Op.10 No.5를 말한다. 백건반이 아닌 흑건반으로만 주요 선율이 이뤄져 있어서 ‘흑건’이란 별칭이 붙었다. 어느 대만 영화에 메인 테마곡으로 등장해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곡이었다. 〈흑건〉의 박자는 비바체였다. 대단히 빠르지만 급한 티를 내면 안 된다는 점에서 프레스토 박자와 구분된다. 프레스토를 사용하는 곡으로는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Flying of bumblebee)〉이 있다. 요셉이 생각하기에 그 곡은 손가락 훈련 곡에 지나지 않았다. 우아함을 따지자면 〈흑건〉이 훨씬 우세하다. 요셉은 품격을 잃지 않는 선에서 경쾌하게 연주를 이어나갔다. 건반에 묻어 있던 기름때가 손에 묻으며 쩍쩍 소리가 났다. 연주자만 들을 수 있는 소리라는 점에서 요셉에겐 특권처럼 여겨졌다. “제대로 밟을 줄 아는군요.” 연주가 끝났을 때 정수용이 다가와 말했다. 페달을 다루는 스킬을 알아봐 주는 손님은 드물었다. 그럼에도 요셉은 그가 말을 걸어온 게 반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가게에서 말을 거는 사람은 십중팔구 취객이었다. 요셉은 처음 연주를 했을 때 60대 남성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그는 이미 옆 가게에서 지인들과 굴보쌈에 소주 6병을 해치우고 넘어온 상태였다. 등산복 차림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반갑진 않았지만 연주를 알아봐 준 것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요셉이 인사를 하려고 그의 곁에 다가갔을 때 남성은 몸을 휘청거렸고 그대로 바닥에 뒹굴었다. 요셉은 이후 손님과 대화를 삼갔다. “시끄럽지 않으셨다니 다행이에요.” 요셉이 수용에게 말하곤 카운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 가게는 피아노 연주를 듣기 위해 찾는 곳은 아니다. 요셉이 소리가 증폭되는 뎀퍼 페달 대신 소리를 줄이는 시프트 페달을 밟은 이유다. 손님들은 치킨 가게에서 피아노 연주를 해 준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소리가 너무 커

소설 2024.12.01
이수정 - 제브라다니오

제브라다니오 이수정 수돗물 소리에 가려 자경은 영수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용케, 도배란 단어는 건질 수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작은 방을 도배할 때가 됐다고 말했을 터였다. 자경은 대꾸 없이 싱크대 한쪽으로 가 요리책 사이에 낀 상가 전화번호부를 꺼내 들었다. - 마음에 안 드는군. 돌아서 가는 영수의 등에서 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주체가 누군지 바로 짚이지 않았다. 자경일 리 없었다. 로라가 쓸 방의 도배를 새로 하자고 한 사람도 자경이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랬다고···. 이 말도 했다. 열세 살 아이를 놓고 쓸 비유는 아니었다고 금방 후회는 했다. 도배한 지 얼마 안 된 방에 도배를 또 하게 생겼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자경은 불만이 없었다. 아주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긴 했다. 같은 말을 되뇌고 또 되뇌는···. 땀 찬 고무장갑을 힘겹게 벗으며 자경은 그 말을 또 중얼거렸다.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그 말은 늘 존댓말로 나왔다. 별일 아니에요. 아기가 시간을 뛰어넘어 열세 살이 되어 나타나는 것뿐이에요. 출근하고 오전 내내 문자 한 줄 없다가 영수는 점심나절에 이메일을 하나 보내왔다. 문자로 말하기엔 긴 내용이란 뜻이어서 이메일을 열 때 자경은 숨이 한번 깊게 쉬어졌다. 다행히, 도배에 관한 내용은 아니었다. 이제 물잡이만 끝나면 되니 당신도 하나 골라 봐. 베타, 몰리, 비파, 보티아, 네온테트라, 프리스텔라···. 적도 가까이에 있는 이국의 여자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름이었다. 그 속에서 얼핏 ‘로라’를 본 것 같아 자경은 저도 모르게 눈을 모니터에 바짝 댔다. 맨 끝의 ‘엔젤피쉬’ 덕분에 그게 다 물고기 이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영수는 자경에게 물고기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건 영수가 로라하고만 나누는 이야기였다. 정말 어쩌다 자경더러 할 때도, 로라 엄마와 이혼하기 전에 길렀던 구피 이름을 로라가 알더라는 식으로, 여지없이 로라가 등장했다. 고작 두 해 같이 산 부녀의 취미가 희한하게도 같다고 말할 때면 참는데 안 된다는 듯 영수의 입꼬리가 비대칭으로 올라갔다. 일요일 저녁마다 부녀가 나누는 화상통화에서 영상으로만 보는 로라가 자경은 가끔 가상의 인물처럼 느껴졌다. 로라가 곧 이 집에 살러 들어온다는 사실이 실감 안 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로라는 물고기를 골랐을까···. 티브이 옆에 들인 수조는 영수가 로라를 위해 준비한 환영 선물이었다. 수조가 차지하고 앉은 자리에는 원래 장식장이 있었다. 삼 년 전, 신혼집을 꾸밀 때 영수가 고른 소파는 사방 각이 분명해 자경이 점찍은 고풍스러운 장식장과 어울리지 않았다. 드물게 길었던 대화 끝에 두 사람은 각자 원하는

소설 2024.12.01
반감기

반감기 이기호 1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현명한 내 제자가 불쑥 이런 말을 건네왔다. “교수님, 혹시 여유자금 좀 있으세요?” “여유자금?” “1300만 원쯤······ 더 있으면 더 좋구요.” 나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제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자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연구실 원목 테이블 등고선 무늬를 제 손가락으로 따라 그리고 있었다. 얘가 진짜 문제가 있네. 나는 제자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속으로 단정지었다. “돈은 뭐하게?” “교수님, 자유롭게 해 드리고 싶어서요.” 하아.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 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제야 제자가 내 눈을 바라보았다. 짙은 눈썹 때문인가, 유독 흰자위가 깊어 보이는 눈이었다. 성우정. 그게 그 친구의 이름이었다. 검정고시를 본 후 22살이 되던 해 대학에 입학했고, 주민등록상 거주지인 서울 목동을 떠나 학교 앞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원룸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던 3학년 친구. 1학년 땐 학과 행사에도 종종 얼굴을 비추고, 따로 스터디나 소설 동인 활동에도 참여하는 듯했으나, 2학년 1학기 때부터는 영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강의 시간은 물론 기말고사 기간에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서 학사경고를 받았고, 그건 2학년 2학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은둔의 랜선 종결자 과 친구들은 성우정을 그렇게 불렀다. 줄여서 ‘은랜종’. 학교에선 잘 볼 수 없었지만, 랜선에선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동기, 가끔 게임 아이템도 쏴 주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전자책이나 영화 파일을 후배들 커뮤니티에 공유해 준 뒤 바람처럼 사라지는 선배, 학과 홈페이지가 모바일 버전과 PC 버전 사이에 버그를 일으켰을 때도 말없이 자취방에서 말끔하게 해결해 준 학과 조교의 구원자. 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 아무나 랜선 종결자라는 호칭을 얻을 순 없는 법. 성우정이 ‘은랜종’으로 불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학년 2학기 때 있었던 압수수색의 영향이 컸다. “교수님, 우정 선배 압수수색 당한 거 아세요?” 나는 그 소식을 강의 쉬는 시간, 학생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다가 듣게 되었다. “압수수색? 뭐 그것도 무슨 은어야?” “아니요. 진짜 압수수색. 법원에서 영장이 발부된.” 학생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솔직히 나는 좀 놀랐다. 이건 내 경험 밖의 일이었으니까. 갑자기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아니, 걔가 무슨 일 때문에······?” 내가 그렇게 묻자, 바로 난리가 났다. 누구는 불

소설 2024.11.01
모로

모로 김영은 개수대의 뚜껑 아래에 언제 생긴 것인지 모를 초파리 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 틈에 손톱만 한 자두 조각이 껴 있었다. 규민이 엊그제 저녁에 마트에서 특가 세일로 산 것이었다.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알을 제거한 후 과탄산소다를 섞은 뜨거운 물을 부었다. 초파리가 생긴 것은 무더위와 습기, 자두 조각 때문이었지만 관리를 소홀히 한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규민에게 초파리 알이 가득한 개수대 사진을 보내려다 그만두었다. 이런 모습까지 공유하고 싶진 않았다. 내친김에 흐트러진 이불과 베개를 정리하고 아무렇게나 널린 옷가지들을 고이 개켜 두었다. 밀린 빨래를 하고 분리수거를 한 다음, 창틀 먼지를 닦고 화장실 청소까지 했다. 오 평 남짓한 원룸은 금방 깨끗해졌다.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분주히 움직였건만 고작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선풍기를 켜고 창문을 열었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던 전자 담배를 꺼냈다. 인위적인 복숭아 향이 콧속을 간질였다. 거리의 소녀, 사회의 품으로. 워드 파일 속 굵은 글씨체로 적힌 글귀가 떠올랐다. 정 선생님께서 전달해 준 것이었다. 그는 가출 청소년을 심층 취재하고자 쉼터를 드나드는 기자에게 내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했다. 나는 가출 청소년 중에서도 우수한 사례에 속했다. 유년기의 상처와 중학교 시절부터 지속된 방황, 쉼터의 도움을 받아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치르고 재수 끝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기까지의 과정은 사회에서 소외된 청소년이 기관의 관심과 도움으로 자기 삶을 개척할 수 있게 된 훌륭한 결과였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쉼터의 사정을 모르지 않는 터라 외면하기 어려웠다. 가출 청소년 ‘이후’의 스토리가 담긴 긍정적인 기사가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었다. 적어도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세금이 적절하게 활용되고 있음을 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어쩐지 손이 잘 가지 않았다. 파일을 받은 지 이 주가 지났음에도 간단한 답변 하나 작성하지 못했다. 이런 나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규민은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말하다가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라고 덧붙였다. 방송 PD를 꿈꾸며 프리랜서로 영상 편집 일을 하는 규민은 솔직함, 날것, 진정성 같은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런 것이 있기나 할까. 나는 선풍기의 바람 세기를 더 높였다. 복숭아 향이 빠르게 흩어졌다.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으니 무슨 말이라도 답변을 해야 했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화면에 띄운 워드 파일 속 커서를 응시했다. 커서가 점멸등처럼 깜빡였다. 질문은 열두 개였다. 간단한 자기소개부터 가출하게 된 계기, 가출하는 동안 겪었던 사건이나 어려웠던 점, 기억에 남는 일화, 가출을 후회했던 적, 지금 상태에 대한 만족도, 대학 졸업 후 구체적인 진로 계획, 쉼터에서 받은 도움 등등이었다. 그러나 거리의 소녀, 그 문장이 가시처럼 목에 걸렸다. 안녕하세요, 저는·····&mi

소설 2024.11.01
불안을 모르는 마누엘

불안을 모르는 마누엘 임택수 마누엘은 이면도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열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호수에 손을 넣으면 금방이라도 화상을 입을 것 같은 폭염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자동차 트렁크에서 시클라멘 화분과 청소 도구를 챙겨 공동묘지 후문 쪽으로 걸어가면서 더위에 지쳐 가는 온몸의 감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실눈을 뜨자 통행로에 깔린 흰 자갈이 잔설처럼 보였다. 알록달록한 조화와 반듯한 형태의 무덤들이 대낮의 정적에 갇혀 있었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한번 쓱 둘러보았다. 전과 달리 어딘가 훤해진 느낌이었다. 저 멀리 반대편에 있는 북문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마누엘은 묘지의 청청했던 나무들이 대부분 잘려 나간 것을 알아차렸다. 이 주 전 이곳에 들렀을 때 해충 때문에 골치가 쑤신다고 불평하던 관리인이 떠올랐다. 외래종 날벌레라며 여기서 성장한 해충이 지역의 포도밭까지 퍼져 심각한 피해를 준다며 구시렁거렸다. 마누엘은 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서쪽 구역으로 걸음을 떼었다. 수돗가 나무 그늘에 있던 벤치도 보이지 않았다. 마누엘은 그 벤치에 앉아 아버지의 무덤에 닿은 가죽나무 그림자가 시계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을 지켜보곤 했었다. 문짝만 한 자주색 평석 위에 놓인 화분들은 바싹 말라 있었다. 마누엘은 애도의 문장이 새겨진 책 모양의 석판과 시든 화분들을 바닥에 내려놓고 평석을 솔질했다. 여기저기 굳어 있는 새똥을 손톱으로 긁어낸 뒤 페트병을 열어 물을 뿌렸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토도독 떨어졌다. 마누엘은 평석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 주위로 석판과 시클라멘 화분을 올려놓았다. 아버지가 만족할지는 알 수 없지만, 모든 게 제자리에 놓인 것 같았다. “아버지, 저 가요.” 그는 빈 페트병과 솔을 챙기고는 사인을 보내듯 발끝으로 평석 옆면을 툭툭 건드렸다. 묘지의 나무가 사라지자 묘지의 그늘도 사라졌다. 햇빛이 정수리를 달구고, 등과 겨드랑이가 끈적거렸다. 지붕을 얹은 석실 안 조각상들은 눈을 내리깐 채 만돌린을 뜯고 있었다. 마누엘은 버릇처럼 망자들의 이름을 읽어 나가다 한 무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매번 처음 발견했던 때처럼 발길이 멈춰졌다. 평석 없는 무덤은 미처 장례를 다 끝내지 못하고 서둘러 묻은 것처럼 맨땅을 허술히 드러내 보였다. 색 바랜 조화가 땅바닥에 그대로 놓여 있고, 그 뒤로 달걀만 한 흑백 사진을 박은 묘비가 기우뚱 세워져 있었다. 사진 속 얼굴은 동양 남자였다. 망자의 가운데 이름은 Chang, 이었다. ‘창’은 푸르거나, 창문이거나, 무기가 아니면 노래일 거라고 언젠가 문규가 알려주었다. 꽃다발을 든 초로의 여인이 중앙 구역까지 와서는 중얼대더니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묘지 분위기가 달라져 헷갈리는 모양이었다. “마중을 나올 수도 없을 텐데.” 마누엘이 혼잣말하고는 피식 웃었다. 길을 헤매던 여인은 정문 앞 키오스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경비실에서 관리인이 나와 그녀에게 뭐라 묻더니 팔을 뻗어 북쪽

소설 2024.11.01
숲 바깥쪽으로

숲 바깥쪽으로 김선재 1. 선을리가 서쪽 산의 중턱 어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출발한 지 40분 남짓 되었을 무렵이다. 섬 서쪽은 산세가 험해 동쪽보다 개발이 덜 된 지역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덕분에 우리가 지금 거길 가는 거라고 소영은 말한다. 나는 그 말을 흘려들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확대해 선을리 근방을 훑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낯선 동리나 동산의 지명뿐이다. 선을은 식당이나 카페는커녕 편의점조차 없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에 위치한 모양이다. 도착하면 투어가 시작되기 전까지 고작 30여 분의 시간이 남는다는 걸 확인한 나는 맥이 빠진다. 30여 분 동안 먹을 수 있는 게 뭘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검색했던 여러 메뉴를 떠올린다. 블로그에서 본 해물찜은 재료가 실해서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고 한치도 한창이라고 했다. 또 해풍에 말린 해초를 주재료로 한 수타 우동은 너도나도 후기를 남길 만큼 유행이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이지만 30분은 그런 걸 먹기에는 어림도 없는 시간일 거다. 홀쭉해진 배를 문지르며 생각한다. 메뉴를 고르는 건 고사하고 뭘 먹을 수 있기는 할까. 늦은 아침을 먹은 후로 뭘 먹은 기억이 없다. 몇 달 만에 만난 소영과 회포를 푸느라 평상시보다 늦게 잠들었다가 느지막한 시간에야 일어났다. 산책 시간도 여느 때보다 길었다. 날씨 때문이었다. 오늘은 정말 온종일 보기 드물게 시야가 좋고 바람도 잔잔한 날이다. 큰 귀를 펄럭거리며 공을 물고 해변을 뛰어다니는 마이가 너무 즐거워 보여 좀처럼 돌아오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배를 좀 채워야 할 텐데. 나는 운전 중인 소영이 들을 수 있도록 전방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린다. 늦어도 30분 전까지는 입장해야 한다고 했던 거, 잊어버린 거 아니지? 소영이 상기시킨 건 리플릿에 적혀 있던 세 가지 주의사항 중 첫 번째다. 아. 나는 짧은 탄식을 터트린다. 뭘 물으면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게 그 애의 말버릇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소영의 질문은 자주 비난이나 빈정거리는 것처럼 들려서 크고 작은 말다툼으로 이어지곤 했다. 네가 삐뚤어져서 그런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소영은 종종 그렇게 물었다. 기우는 햇빛이 차 안으로 쏟아진다. 상반신과 무릎 언저리가 뜨겁다. 나는 달려오는 일몰을 선바이저로 가리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해안선에 늘어선 나지막한 건물들 사이로 수평선이 빠르게 흘러간다. 과감한 디자인의 알록달록한 옷을 걸친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거주민과 관광객은 대개 옷차림으로 구별된다는 걸 이제 안다. 당분간 저 풍경 속에 내가 낄 일은 없을 거다. 오늘의 끼니를 고민하고 마켓에 올라오는 구인 목록을 살펴보다가 해가 질 무렵에는 마이와 함께 동쪽 해안가를 쏘다니는 게 요즘 내 일과의 대부분이다. 생존과 생활. 요즘 나는 밥그릇 앞의 마이가 그런 것처럼 무섭도록 그 단어들에 집중하며 지낸다. 투어가 끝날 즈음에는 문을 연 식당이 없을 텐데. 불안을 삼키며 소영을 흘깃거린다. 흰색 테두리의 검정 선글

소설 2024.11.01
구하고 원하는 자에게

구하고 원하는 자에게 윤치규 조사실 안에서 윤구민은 호주에 관해 생각했다. 호주에 있는 아버지를 떠올린 것은 아니었고 정확히 말하면 호주가 섬인지 대륙인지 고민했다. 만약 아버지였다면 이런 질문을 들었을 때 너무나도 간단히 호주는 섬이면서 동시에 대륙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윤구민은 그것이 이치에 맞는 말일지라도 정답이 될 수 없다고 여겼다. 마찬가지로 호주가 자체적인 지각판 위에 있다거나 독자적인 생태계를 갖고 있기에 대륙이라는 주장도 마땅히 받아들일 수는 있으나 정답이 될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아시아와 유럽은 하나의 대륙이었고 마다가스카르도 섬이 아니라 얼마든지 대륙이 될 수 있었다. 18세기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 호주 동쪽 해안에 처음 도착했을 때 호주는 섬이 아니라 대륙이어야만 했다. 스페인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영국의 왕립학회도 미지의 남방대륙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를 찾아내야만 했다. 영국이 호주를 신대륙이라고 선언했을 때 다른 나라는 인정하지 않았다. 영국은 호주가 섬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대륙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했다. 그중 윤구민이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그린란드보다 큰 섬은 앞으로 대륙이라는 것이었다. 그건 정답을 찾은 것이라기보다는 만들어낸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방식이야말로 정답이라는 것의 본질과 가장 가까운 형태인지도 몰랐다. 호주의 원주민이었던 애보리진에게 호주는 섬도 아니고 대륙도 아니었으며 그저 완벽하고 절대적인 단 하나의 세계일 뿐이었다. 영국이 호주를 침략하고 호주는 대륙이 되었고 애보리진은 현생 인류 중 가장 진화하지 못한 열등한 종족이 되었다. 생김새가 오랑우탄과 흡사하고 뇌 용량이 다른 호모 사피엔스보다 작다는 게 이유였는데 윤구민은 궁금했다. 호주에 정착한 영국인이 그토록 수많은 애보리진을 죽인 이유는 그들이 도저히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죽여 놓고 보니 너무할 정도로 많이 죽여 버려서 애보리진을 인류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스스로 속이게 된 것일까? 1996년 전두환에게 사형이 구형된 뒤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가 다음 해 사면되는 과정을 뉴스로 지켜보면서 윤구민은 거짓말이라는 것도 뻔뻔하게 반복하다 보면 정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윤구민에게도 너무 오랫동안 반복한 거짓말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가 호주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 학교에서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하거나 친구 부모님이 아버지 직업을 물어 볼 때마다 윤구민은 그렇게 대답했다. 왜 하필 호주였을까? 아마도 미국이나 중국처럼 너무 뻔한 나라보다는 다소 생소한 지명이 더 그럴듯해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 무렵 캥거루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유년 시절 윤구민이 나쁜 길로 어긋나지 않게 보살펴 준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이 들통 나지 않도록 유복한 집안에서 사랑받으며 자란 듯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예의 바르게 굴었으며 옷차림에도 신경 썼다. 윤구민은 비싼 브랜드 옷을 입을 수 없어도 가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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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예술’, 전통, 세계화

‘K-예술’, 전통, 세계화 - 88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공연계 문화교류 담론에 대한 단상 전지니 (한경국립대학교 교수, 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 Visiting Scholar) 1. 88 서울올림픽과 문화 세계화 최근 국립극장 전속 단체인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겸 단장 유은선)이 제작한 가 영국 바비컨센터에서 관객과 관계자의 호평 속에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무리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을 한국적으로 각색한 해당 작품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주영국한국문화원이 주관한 제11회 ‘K-뮤직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공연되었다.1) 주지하다시피 K-POP 및 K-드라마의 전세계적인 흥행은 K-콘텐츠의 세계화라는 화두와 관련하여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또한 맨부커상에 이은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번역의 난관을 가로질러 국내 소설이 다른 언어권의 독자와 어떻게 호흡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창극 의 성공과 관련하여 공연예술의 해외 진출이라는 화두는 이 시점에서 어떻게 논의될 수 있을까. 이 글은 K-공연예술의 세계화 가능성에 대해 논하는 대신, 그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된 1988년 서울올림픽 전후의 공연계 상황에 대해 논한다.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이라는 문제와는 별개로 1950년대, 곧 전후 이미 세계 진출의 방향성을 논의하던 영화계와는 달리2), 공연계에서 세계 시장과 평단을 바라보게 된 시점은 1980년대 중후반이었다. 관련하여 1989년 한 언론에는 “한국문화 세계에 심자”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다. 이 기사는 한국문화의 세계화 전략에 대해 논하며 전통예술의 해외 나들이가 활발해지고 있고, 특히 올림픽을 전후하여 헝가리, 동독 등 공산권 공연이 활발해지고 있음을 언급한다.3) 그렇다면 당시 ‘우리’ 공연의 세계화는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당시 문화공보부(이하 문공부) 산하 단체인 국립극장이 목표하고자 했던 한국 공연예술의 해외 진출 및 세계화의 방향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이 글은 냉전체제의 종식과 동구권 문호 개방이라는 당대의 화두와 관련해 공연예술의 세계화라는 목표가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었는지에 대해 살피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국립극장이 발행하는 정기간행물(당대 제호 《국립극장 소식》) 및 언론 기사를 통해 전통을 내세운 관 주도 문화교류의 명암에 대해 고찰할 것이다. 2.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지구촌 문화 축제’ 언급한 것처럼 정부 차원에서 국내 공연의 해외 진출을 본격적으로 권장한 것은 1980년대 이후다. 당시 LA올림픽(1984)와 서울아시안게임(1986)을 거쳐 서울올림픽에 이르기까지 국립극장은 물론 지자체와 민간 극단이 국제 협력과 문화교류 사업의 일환으로 전통 공연의 해외 진출을 모색했다. 1980년대 중후반 공연계의 화두는 ‘문화올림픽’과 &ls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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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의지

실패의 의지 - 최근 퀴어 가족 서사에 관하여 박민아 1. 내부의 외부 - ‘그런 것은 없다’ 행동심리학자인 프란스 드 발은 원숭이 실험을 통해 원숭이들이 불평등을 혐오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 실험을 통해 드 발은 현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불평등보다 ‘평등’이라는 전통이 인간종보다도 더 오래된 개념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실험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우리에 갇힌 두 마리의 원숭이에게 일정한 행동의 수행을 요구한 후 그에 대한 보상으로 왼쪽 원숭이에게는 오이를 주고 오른쪽 원숭이에게는 포도를 준다. 같은 행위의 결과로 오이만을 지속적으로 전달받은 왼쪽 원숭이는 오이를 거부하거나 급기야 오이를 집어던지며 분노한다. 우리는 이 실험을 통해 ‘평등’이 인간종에게만 있는 특수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1) 그런데 그보다 이 실험에서 재미있는 지점은 불평등한 보상 체계에 분노하는 왼쪽 원숭이가 아니라 오른쪽 원숭이의 반응에 있다.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오른쪽 원숭이는 불공정한 보상 체계를 의심하지 않으며 자신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지 않는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만약 평등에 대한 전통이 인간종보다도 더 오래된 개념이라면, ‘불평등’에 대한 전통 역시 그에 못지않게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불평등 구조에서 수혜의 당사자는 평등에 별 관심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오른쪽 원숭이에게 이 게임의 불공정성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보이지만 외면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너무나 ‘당연’한 무엇일까. 만약 이후에 두 원숭이가 경쟁을 통해 포도를 획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 경쟁에서 패했을 때 오른쪽 원숭이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김보영의 SF소설 「얼마나 닮았는가」2)에서는 ‘성차별이 없다고 가정되는 세계’에 대한 일종의 ‘사고실험’을 보여 준다. SF에서 ‘사고실험’은 “만약?”을 질문하고, “우리가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현실” 또는 사회적 규범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3)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되는 유로파용 보급선은 성차별에 대한 정보값이 입력되지 않은 ‘일종의 폐쇄 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 소설 내 문제 상황은 크게 세 가지 층위에서 작동한다. 먼저 토성의 위성 타이탄에서 온 구조 신호에 응답할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신념의 충돌이 갈등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면, (여성) 의체에 인격을 탑재한 위기관리 AI 컴퓨터 훈의 (인간/비인간의 경계를 위협하는) 타자로서의 지위에서 발생하는 취약성과 그에게 가해지는 남성 선원들의 폭력이 두 번째 층위에 있다. 그리고 이 사태를 진압해야 할 훈의 눈에 보이지 않는, 모종의 이유에 의한 선내 폭동에의 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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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시민과 세계시민 사이

이등시민과 세계시민 사이 ― 소수자 시민권의 기획과 해외 이민의 상상력 오혜진 ‘탈조선’이라는 모험과 자기 계발의 윤리 2015년을 기점으로 확산된 ‘헬조선’ 담론은 계급 세습이 고착화된 한국사회를 풍자하는 ‘수저론’과 결합하며 당대 가장 대중적인 정치 담론으로 회자됐다. 잘 알려졌듯 이 담론은 한국사회를 더는 진보의 기획이 불가능할 정도로 도태된 미개한 공간으로 정의하며, 젊은 세대를 새로운 역사적 주체로 호명하려는 기성세대의 욕망 또한 단호히 거절한다. 헬조선 담론과 함께 부상한 ‘죽창론’ 역시 ‘리셋’에의 강렬한 열망을 내세웠지만, 이는 사회변혁에 대한 의지라기보다는 ‘죽으면 끝’이라는 자기 파괴의 제스처에 가깝다고 해석된다.1)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2015)2)는 청년 세대의 분노와 좌절, 자조의 정동이 주조한 헬조선 담론을 발 빠르게 포착해 선동적인 대중 서사로 가공한 사례다. 전작들에서 ‘자살’(『표백』, 2011)과 ‘덕질’(『열광금지, 에바로드』, 2014)을 통해 “저항하는 잉여”3)로서의 청년 형상을 부조한 바 있는 작가는 『한국이 싫어서』에서 ‘해외 이민’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제출한다. 다만 그가 모종의 “도발”4)을 의도한 것과 달리, 독자들에게 이미 ‘탈조선’의 상상력은 불온하다기보다는 또 다른 차원의 ‘노오력’을 요하는 규범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소설은 ‘해외 이민’이라는 선택지를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두 가지 정황을 제시한다. 하나는 ‘평범한 여성’은 한국사회에서 시민권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이등시민”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엔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싫어서』, 44쪽)라는 진단이 ‘홍대 나온 20대 후반 여성’ ‘계나’의 자기인식이다. 즉 계나는 학벌과 외모, 가족의 경제적 지원을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파악한다. 또한 그는 어릴 적 자신의 할머니가 새벽에 폐지를 줍기 위해 무단 횡단을 하다가 뺑소니 사고로 사망했다고 회고함으로써 ‘폐지 줍는 할머니’의 형상을 돌이킬 수 없는 실패이자 비참한 미래로 의미화한다.5) 다른 하나는 소수자들이 연대해 사회구조를 변혁하고 지배체제에 저항하는 일이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게 멋있다는 건 나도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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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사람

기억하는 사람 ―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최의진 1. 기억 당신이 나의 일상에서 멀고, 당신의 고통을 내가 곁에서 함께 겪을 만큼 가깝지 않다면, 당신이 기억난다는 말은 이런 것이다. 당신을 떠올리게 하는 계절이 지나면 어느덧 제삼자가 된 것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먼발치에서 살아왔다는 것. 잊으려 애쓴 적 없고, 오히려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나, 그럼에도 그 기억 곁에 항상 머물러 살지는 않았다는 것. 물론 이는 분명 망각과 구별되며, 머릿속 어딘가에 당신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기억함’과 닮았으므로 우리는 때로 외부 요인에 의해 촉발되는 ‘기억남’이나 ‘떠올림’을 다른 누군가 없이도 당신을 계속해서 내 안에 간직하는 ‘기억함’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4·3, 5·18, 4·16··· 혹은 제주, 광주, 팽목항···처럼 뭉툭한 날짜와 지명으로 적히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살아 있는 당신을 마주하게 되면 내가 ‘기억함’이라 믿어 왔던 모든 순간은 다시 의심에 넘겨진다. 어디선가 당신의 이름을 마주치거나, 때가 되면 당신이 기억났지만, 그 이상으로 지속되지 않았던 기억의 공백들은 당신을 계속해서 기억하려는 의지가 내게 없었음을 짚고, ‘기억남’과 ‘기억함’의 사뭇 다른 무게를 증명한다. 매해 봄이 오면 세월호가 기억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을 넌지시 ‘기억함’으로 여겨 왔으나, 10년을 상실에 꿰뚫린 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살아온 사람, 그리고 그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 서기 위해 삶을 바쳐왔던 사람과 실제로 마주 앉자, 나는 당신들을 기억한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것처럼. 익숙하게 기억한다 말하던 자리가 낯설고 무거워지는 것이 ‘나’1)와 당신의 끝이 되지 않도록, 문학은 ‘기억남’에서 ‘기억함’에 이르는 길을 놓는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작별하지 않는 ‘기억함’을 단지 당위와 윤리로 여기는 대신, 끊임없이 질문하며, ‘기억남’이 몰고 오는 고통과 ‘기억함’이 품은 의지가 심장에 불을 켜는 삶 사이를 횡단한다. ‘기억남’은 어떻게 해야 ‘기억함’이 되는지, ‘나’가 ‘기억함’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 ‘나’에게 정말 이 길만이 유일한지. 2. 밀물과 썰물 소설의 1부를 이루는 축은 “그 도시의 학살”2)에 대한 책을 집필한 후, 그리고 친구, 인선의 부탁을 받아 오로지 새 한 마리를 살리기 위해 제주의 중산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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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에서 젠더를 끄집어낼 때 : 2024년 무대에 오른 셰익스피어 연극과 ‘칼 든 여자들’

셰익스피어에서 젠더를 끄집어낼 때 : 2024년 무대에 오른 셰익스피어 연극과 ‘칼 든 여자들’1) 전지니 (한경국립대학교 교수, 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 Visiting Scholar) ‘여성혐오적’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소환하는 것 몇 차례 언론에서 보도될 만큼 올해 눈에 띌 만큼 빈번하게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무대화됐다. 이 같은 흐름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데,2) 국내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극보다는 비극이 선호되는 편이다. 이에 대해 관계자들은 사회 불안과 관련한 대중의 심리, 한동안 현장성이 강한 작품이 선호되면서 부차화되었던 ‘이야기성’의 복원, 중장년층 관객의 유입 등을 꼽았다.3) 복잡한 내면을 가진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셰익스피어의 소위 ‘성격 비극’은 주로 매체에서 활동하는 스타들의 연극 출연을 독려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배우 황정민이 셰익스피어의 사극 와 에 연이어 출연했고, 조승우가 오랜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오는 이 공연될 예정이다. 브로드웨이에서는 2025년 봄 오랜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오는 덴젤 워싱턴과 제이크 질렌할의 가 관객과 만난다. 이 글은 2024년 셰익스피어를 재해석한 연극, 그중에서도 ‘젠더’ 문제를 전경화한 국내외 작품 3편에 대해 논의한다. 물론 셰익스피어 연극의 ‘여성혐오’가 논의된 것이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니다. 희비극을 가리지 않고 16세기 후반~17세기 초반의 보수적 분위기와 조응한 가부장적 정서나 주제 의식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2000년대를 전후하여 몇 편의 논문에서 지적한 바 있다.4) 의 구성을 해체하여 그의 아내인 ‘레이디 맥베스’ 중심으로 재구성한 한태숙 연출의 심리극 (1998년 초연) 역시 일정 부분 원작에 대한 비판의식과 맞닿아 있다. 물론 오늘날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공연할 때 원작을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셰익스피어 연극은 저작권이 진작에 소멸된 만큼 창작진의 초점과 문제의식에 따라 자유로운 각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편성이 있는 문제를 다루며, 극장을 잘 찾지 않은 관객이 진입하기에 용이한 데다 얼마든지 재해석이 가능한 셰익스피어의 연극, 그중에서도 국내 관객이 선호하는 극적 파토스를 조성하기에 적절한 비극이 빈번히 공연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처럼 보인다. 이 지면에서 다루고자 하는 작품은 국립극장 제작 (김미란 각색·연출_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024.6.13.~16.), 국립극단 제작 (정진새 각색·부새롬 연출_명동예술극장, 2024. 7.5.~29.), 그리고 어바인 대학(UC Irvine) 뉴스완 셰익스피어 센터(New Swan Shakespeare Center_이하 뉴스완 센터)5) 제작 Measure for Measure(adapted and directed by Beth Lopes_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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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음악을 듣는다

시는 음악을 듣는다 —허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2020)를 톺아보며, 정원 1. 시를 읽고 때로 달라지는 경험을 한다. 허연의 경우, 그것은 감각의 왈츠와 같아 때론 휘몰아치고 때론 내리누르고 멈추게 하고 가만히 걷게 하는, 어떤 리듬을 통과하는 느낌이다. 허연이 빚어내는 각양각색의 파토스는 대개 화려한 색채를 지니고 있어 독자는 그 색채와 무늬에 매료되기 쉽다. 그러나 사실 허연의 시의 마력은, 감각의 형식을 재현하는 파토스가 리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죽었다 살았다 하는 깜박이는 보안등 아래서 얼굴 반쪽이 있다가 없기를 반복한다”(「이별은 선한 의식이다」)는 문장은 ‘죽었다’와 ‘살았다’의 상반된 감각을 ‘교차’하고, 그와 비슷한 모양의 보안등이 ‘깜박’거리는 이미지와 불빛에 의해 ‘있다, 없다’ 하는 얼굴 반쪽의 이미지를 ‘중첩’하면서 감각을 몇 배로 증폭시킨다. 말하자면 감각을 ‘교차’하고, 이미지를 ‘중첩’시키면서 시의 음악성-리듬과 그 의미를 ‘증폭’하는 이 감각의 형식으로 하여금 허연의 시는 그 파토스를 분화(噴火)하고, 독자는 그러한 시의 리듬과 시집의 멜로디 라인에 자연스레 몸을 맡긴다. ‘자유시’ 개념이 들어온 이후로 이처럼 현대시는 나름의 개성적인 방식으로 음악성을 실현한다. 2009년 월간 『현대시』에서 기획한 ‘한국시의 리듬이 탈옥할 순간이 왔다’라는 제목의 특집은 현대시의 음악성-리듬에 관한 연구의 한 대목을 보여주는데, 이는 이전의 자유시 개념을 한층 증폭시키는 것이었다. 김춘수는 “자유시에서의 자유란 이러한 운율로부터의 자유”1)라고 지적하면서 리듬론을 제시한 바 있다. 이렇듯 운율과 같은 외연적인 음향 요소로부터 해방된 자유시는 대개 내연적인 방면에 핀트를 주는 건축적인 구조를 지향하면서 형식으로부터 자유를 추구해 왔다. 중요한 점은 형식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말을 형식이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정형적인 틀로부터 해방된다는 의미에서이지, 형식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한 편의 시가 지어지면 하나의 형식이 탄생한다. 그러니까 운율에서 벗어난 현대 자유시는 개척의 재평에서 생각보다 많은 잠재적 원동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잠재성의 근거로 허연의 시가 의미심장한 이유는 그의 시가 가지는 특별한 음악성 때문이다. 그것은 음악의 음악성을 타진하면서 시의 음악적 효과를 강화한다. 음악의 음악성이란 곧 리듬이다. 멜로디나 하모니를 가지지 않는 음악은 있어도 리듬이 없는 음악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 음악성을 타진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리듬이다. 리듬은 ‘음의 장단이나 강약 따위가 반복될 때의 그 규칙적인 음의 흐름’이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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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24.12.01
자전거 도둑

[에세이] 자전거 도둑 장은진 나에게는 15년 된 자전거가 있다. 생김새는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여성용 삼천리 자전거다. 분홍색 프레임에 분홍색 안장과 스테인리스 바구니가 달린, 작고 낮은 자전거. 본래는 엄마 거였는데 건강이 안 좋아지고 자전거 타는 게 자신 없다며 나에게 물려주었다. 그렇게 그것은 가족 공용이 아닌 내 개인 소유의 자전거가 되었다. 자전거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배웠다. 그러나 내게는 배우기 과정에서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장면들을 찾아볼 수 없다. 보호 장비를 착용한 아이의 자전거가 넘어질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부모가 뒤에서 잡아 준다거나 흔들흔들 비틀대다 서너 번 정도 넘어지며 균형 잡는 법을 터득해 가는 모습들. 애초부터 자식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부모를 가진 아이는 혼자서 자라고 혼자서 배우는 일에 익숙하다. 익숙하기에 그런 아이는 혼자 뭔가를 이뤘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 혼자 하게 내버려둔 부모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걸 눈치로 알고 몸으로 단단히 익혀서다. 일테면 그것은 겨를 없는 부모의 아이라면 일찍부터 습득하게 되는 자립성이다. 눈치 있는 단단한 몸을 가졌기에 초등학생의 나는 자전거를 단번에 배웠다. 보호 장비도 없이. 뒤에서 잡아 주는 부모도 없이. 넘어지는 시행착오나 하나의 상처도 없이. 그것은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패를 모르던, 완전무결한 성공이었다. 너무 식은 죽 먹기라 인생도 자전거 타기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하지만 시시할 만큼 쉽게 이룬 건 인생을 통틀어 그때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자전거를 탈 때의 기분은 절대 시시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단숨에 성공했을 때는 물론이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시시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상하게 그랬다. 지상에서 두 뼘쯤 떠올라 있는 몸과 발이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갈 때 나는 하늘을 난다고 생각했다. 새가 된다면 꼭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나는 새가 아니므로 자전거를 탈 때마다 새가 되는 기분이 시시해질 리 없었다. 수백 번 수천 번을 타도 그럴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자전거가 시시할 수 없는 이유는 자가용 없는 나에게 특히 소중한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기름이나 전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내 몸의 에너지로 움직여서 환경에도 무해한 이동 수단. 차를 타기에는 가깝고 걷기에는 먼 거리일 때 자전거의 위력은 더 대단해진다. 애매한 거리에서 자전거는 나의 빠른 발이 되고, 애매한 거리인데 그것이 없으면 눈앞을 막막하게 해 필수품이 된다. 자전거는 부지런한 이동 수단이라서 그것을 애용하는 사람은 매사에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넘어지지 않고 목적지까지 가려면 멈추지 않고 계속 페달을 밟아야 하므로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내 주변만 봐도 게으르고 움직이기를 귀찮아하는 사람은 자전거로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콜택시를 부른다. 추우니까, 더우니까, 비가 내리니까, 짐이 무거우니까란 핑계로. 게으른 사람에게 자전거는 쓸모와 필요가 약한 물건이라서 대개

기획 2024.12.01
낯선 것을 낯설게 받아들이기

[에세이] 낯선 것을 낯설게 받아들이기 이주라 역사 없는 사극 언젠가부터 사극과 시대극에서 역사가 사라진 지 오래다. 2000년대 초반 팩션(faction)의 열풍을 시작으로 역사적 자료는 상상의 원천이 되었고, 역사극은 역사적 사실에 현대적 상상력을 덧입힌 트렌디한 드라마로 재탄생하였다. 영화 나 드라마 은 조선왕조실록의 단 한 줄짜리 기록에서 시작하였다. 역사적 공간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일이 판타지 세계를 창조하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이후 대중문화 속에서 역사극은 더 이상 역사적 고증이라는 부담을 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사실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서 역사극을 볼 때 역사적 고증이 잘 되었냐 아니냐로 판단하는 기준은 의미 없다. 역사극 자체가 역사적 허구이고, 이미 허구적 상상의 세계로 재구성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허구의 세계 속에서 대중이 원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재미이기 때문이다. 물론 재미가 있다고 해서 역사적 왜곡을 쉽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대중 수용자는 역사적 허구를 허구로 인지하고 있으며, 허구적 재현 속에서 왜곡된 부분에 대해서는 관련 논쟁을 통해 문제 사실을 인지하고, 스스로 정보 검색을 통해 역사적 왜곡을 수정할 만한 충분한 판단력과 사고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극을 볼 때 너무 고지식하게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재현했냐 아니냐로 판단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요즘에 역사극 드라마를 보면서 문득 다른 걱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팩션의 시대 이후로 최근 역사극 드라마들이 대부분 ‘한복 입은 로맨스’가 되기는 했지만, 그래서 역사극을 볼 때 역사적 고증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고 수없이 되뇌기는 하지만, 그래도 계속 마음에 찜찜하게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하게 잡아낼 수 없어서 아예 역사극을 보지 않는 해결책을 찾기도 했다. 재밌자고 보는 드라마 아닌가. 알 수 없는 답답함 때문에 휴식의 시간을 날릴 수는 없었다. 그러다 최근 우연히, 일 년 전쯤 방영한 ‘한복 입은 로맨스’를 보게 되었다. 조선 시대 양반가의 딸이 자신만의 옷을 몰래 만들어 팔다가 타임슬립을 하여 21세기 한국에 오게 되고 거기에서도 한복 디자이너로 활약하면서 조선 시대 자신에게 닥쳤던 곤경을 해결해 나간다는 이야기다. 여주인공은 조선 시대에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갑작스럽게 죽게 되었는데, 현대 한국으로 타임슬립해 보니 조선 시대의 인간관계가 똑같이 반복되었고, 여기에서 힌트를 얻은 여주인공은 이 살인 사건에 숨겨진 전모를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조선 시대로 돌아가 자신을 죽인 범인을 잡는다. 예상외로 재미있었다. 하지만 결국 걸리는 부분이 생겼다. 문제는 조선 시대로 돌아간 여주인공이 범인을 잡는 장면이었다. 여주인공이 갑자기 말을 타고 활을 쏘며 범인을 쫓아가는 것이다. 마침내 여주인공이 범인을 잡는다. 이 범인은 덩치 큰 남자 하인으로, 몽둥이를 들고 쫓아온 여주인공 집 노비들도 이미 물리치고

기획 2024.12.01
하루와의 대화

[에세이] 하루와의 대화 양안다 #1 안다 : ‘××× ××××’라는 가제로 시집을 준비 중이야. 현시대와 ××××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접근했어. 마무리가 다 되어 가고 있는데, 아마 몇 편을 새로 써서 교체할지도 몰라. 하루 : 혹시 가장 애착이 가는 시나 아직 공개하지 않은 시 한 편을 살짝 보여줄 수 있어? 안다 : 가장 애착이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쓴 시 중에서 마음에 드는 시야. 뉴욕 헤럴드 트리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 수 있는 걸까. 아무도 우릴 듣지 못했으면 좋겠다. 레아, 네가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좋겠어.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쳐다보지도, 손 흔들지도 않았잖아요. 나는 떠나기 싫어‧‧‧‧‧‧. 내가 마음이 변했다고 한 적 있나요. 그저 새 장갑을 사러 가겠다고 했을 뿐이에요. 내가 다른 사람과 같이 가도 괜찮겠어요? 나는 광장을 걷다가도 꽃다발을 구매했다. 혁명이 일어날 거라는 소문이 가득했고 온 도시가 불안으로 떠들썩했다. 레아는 어디 있는 거지? 이렇게 중요한 때에 무얼 하고 있는 거야? 날이 추우면 장갑을 끼면 되지만 폭염이 쏟아지니 손 가죽을 벗길 수 없더구나. 어젯밤의 꿈 얘기를 할 때에는 귀신들이 듣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단다. 레아가 몸을 숨기고 있는 호텔에서. 복도는 언제 끝나는 걸까. 항상 이런 식이다. 세상에는 문이 너무 많고 열쇠‧‧‧‧‧‧ 그것은 이빨이 너무 많다. “나도 노력했는데 바뀌지 않았다고요. 증오는 우리를 먹고살게 해 줄 수 있어요. 사랑, 사랑, 사랑, 이젠 다 지겹다고요! 위선자들!” 사건은 지난달 블랙 먼데이에 발생했다. 나무보다 더 많은 불이 숲에 있었다. 나무보다 더 많은 연기가 숲에 있었다. 숲에는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레아, 그날부터 너는 호텔에 오지 않았다. 삶이 끝난 뒤에 혁명이 성공하면 무슨 소용이야? 복도는 언제 끝나는 걸까. 보고 싶나요? ‧‧‧‧‧‧손톱만큼. 듣고 싶나요? ‧‧‧‧‧‧샹송 조금. 중간에 자주 서지만 내일 오전이면 도착할 겁니다. 열차에서 내린 곳은 도시 외곽의 들판이었다. 폭염이 쏟아지는 어느 여름. 하염없이 걷다가 길을 잃을 뻔했지. 나는 머리끈으로 들꽃을 묶어 너에게 주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눈치채기를 바라면서. 이곳은 수질이 좋지 않나 봐요. 손등에 붉은 반점이 올라와요. 빈혈기가 도지고 신물이 올라오는데도 레아, 나는 너와 함께 끝없는 들판을 걸었다. 땀 맺히는 손등을 벅벅 소리 나도록 긁어대며. 쏟아지는 코피를 움켜쥐고. 새로 산 장갑인데 다 버려서 어떡해요. 흰 장갑이었던 것이 흰 꽃 사이로 내던져졌다. 레아는 맨손으로 나의 얼굴을 문질렀다. 들꽃으로 피를 닦아 주다가, 붉게 물든 손등을 핥다가, 주근깨가 들썩이도록 웃으며 레아가 말했다. &ldqu

기획 2024.12.01
류영진 - 작가의 창

[기획 : 문장웹진×문학기반시설상주작가] 〈2023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선정된 우수도서관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강화를 위하여 독서 강국인 북유럽(스웨덴&노르웨이) 탐방과 도서관 운영 우수사례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024년 9월 24일부터 30일까지 이어진 5박 7일간의 이야기를 문장웹진에서 만나보세요. 작가의 창 - 손서은 작가 인터뷰 류영진 2023년 도서관 상주작가사업의 성과로 2024년 9월 24일부터 9월 30일까지 스웨덴, 노르웨이 해외연수를 가게 됐다. 그곳에서 손서은 작가를 만났다. 손서은 작가는 2020, 2021 원주에서 상주작가를 지내고 2024년 9월부터 12월까지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에 레지던스 작가로 참여 중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예술네트워크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스웨덴에 가게 된 손서은 작가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스웨덴에 살러 온 손서은입니다.” 유쾌하고 당찬 자기소개였다. 나는 살러 왔다는 말이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손서은 작가는 말 그대로 3개월의 레지던스 기간 동안 관광객 마인드가 아닌 스톡홀름에서 현지인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말이라 했다. 상주작가 때 문학큐레이터에 실렸던 인터뷰 내용이 떠올랐다. 도서관 직원들과 파티를 하고 싶었다는 이야기였다. 도서관의 한 귀퉁이를 차지했으니 도서관 식구들과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어디를 가든 그곳을 살아가려는 손서은 작가의 마음이 느껴졌다. 스톡홀름대학교에서 레지던스 생활을 시작한 손서은 작가에게 공식적으로 주어진 강의는 두 번이었다. 하지만 열정이 넘치는 손서은 작가에게 두 번의 강의는 너무도 짧은 것이었다. 손 작가는 스톡홀름대학교의 한국학과 학생들과 짧은 소설 쓰기로 하고 싶어 했다. 일기식으로라도 좋으니 한국말로 글쓰기를 하고 싶고, 그들이 쓴 글을 봐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더 친밀하게 만나길 원했다. 상주작가 기간에 ‘뭘 해서 사람들을 도서관으로 데려오지? 뭘 해서 책을 읽게 하지?’ 하는 기획자 마인드로 임했던 손 작가는 레지던지 작가로서도 같은 마음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공식적인 강의는 두 번이지만, 더 하고 싶고, 더 많은 학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과 글을 쓰며 그 속에 어울리고 싶어 했다. 이에 학교 측도 손 작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 준 것 같다. 레지던스 기간 동안 어떤 계획을 갖고 있냐는 질문에는 ‘계획은 없어요. 계획하지 않지만 공상할 뿐이에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학생들과 글쓰기 하고 싶은데, 글쓰기 하자고 하면 모일까?’ 걱정하던 차에 미래인 출판사에서 자신의 책 40권을 보내 줬다고 한다. 강의 시작 전 책이 도착했고, 함께 한국어책 읽어 보자고 하니 학생들이 모였다고 한다. 덕분에 모인 학생들과 함께 자신의 책을 읽으며, 공상만 하던 글쓰기 단계로 갈 수 있었고. 나아가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기획 2024.12.01
이상수 - 북유럽 도서관 탐방기 ① - 스톡홀름과 쿨투어후셋도서관

[기획 : 문장웹진×문학기반시설상주작가] 〈2023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선정된 우수도서관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강화를 위하여 독서 강국인 북유럽(스웨덴&노르웨이) 탐방과 도서관 운영 우수사례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024년 9월 24일부터 30일까지 이어진 5박 7일간의 이야기를 문장웹진에서 만나보세요. 북유럽 도서관 탐방기 ① - 스톡홀름과 쿨투어후셋도서관 양정작은도서관 이상수 스웨덴까지의 여정은 만만치 않았다. 인천에서 도하까지 10시간, 다시 스톡홀름발 비행기에 탑승하여 7시간을 더 날았다. 하늘길에서 20시간을 보낸 후여서인지 유럽의 공기는 달콤했다. 스톡홀름은 통나무(Stockar)와 섬(Holmar)의 합성어이다. 1255년 무렵 구시가에 통나무로 성을 쌓아 도시의 기초를 마련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13세기 중반 현재의 감라스탄 지역의 언덕 위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요새를 만들고 도시를 형성해 발전시켰다. 방문하기 전, 이 도시는 내게 심리학 용어로만 존재했다. 1973년 8월,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 강도가 침입했고, 이때 인질로 잡혔던 한 여성이 강도에게 사랑을 느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스톡홀름 증후군’이었다. 도서관 앞 광장 호텔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섰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세르겔 광장은 퇴근하는 시민들로 붐볐다. 늘씬한 키와 금발의 하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이곳이 이국임을 실감케 했다. 남녀 모두 수수한 옷차림으로 큰 가방을 메거나 등에 진 사람들이 많았다. 왕궁과 의회가 있는 감라스탄, 철도와 지하철노선이 교차하는 센트럴역 등 스톡홀름의 모든 길은 이곳 광장으로 통한다고 한다. 쿨투어후셋도서관의 외관은 쇼핑몰처럼 보였다. 광장 분수 안에 세워진 자수정 탑 같은 조형물 때문인지도 몰랐다. 모든 차는 분수를 중심으로 돌아 나갔고 건물 앞에는 넓은 광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도시의 가장 중심에, 상업 시설이 아닌 문화공간을 조성한 것을 보니 이 나라에서 도서관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막 트램이 도착했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쿨투어후셋도서관 내부 쿨투어후셋은 ‘문화의 집’이란 뜻에 걸맞게 공연장, 전시 공간, 6개의 도서관으로 이루어졌다. 한 건물에 6개의 도서관이 있다니. 안으로 들어서자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체스판이었다. 스웨덴의 도서관이라면 반드시 마련된 공간으로, 체스대회가 열리기도 한단다. 공원에서 바둑 두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와 달리 젊은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가 어울려 체스를 즐기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초록과 연두 그리고 오렌지로 채워진 가구로 인해 도서관이라기보다 서점 같은 분위기였다. 낮은 서가에 진열된 책과 빽빽하게 채워진 CD, 감각적인 책꽂이에서 고른 책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의자가 단연 눈길을 끌었다. 또한 꽂힌 책들이 잘 보이도록 세심

기획 2024.12.01
이상수 - 북유럽 도서관 탐방기 ② - 노르웨이 미래숲도서관

[기획 : 문장웹진×문학기반시설상주작가] 〈2023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선정된 우수도서관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강화를 위하여 독서 강국인 북유럽(스웨덴&노르웨이) 탐방과 도서관 운영 우수사례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024년 9월 24일부터 30일까지 이어진 5박 7일간의 이야기를 문장웹진에서 만나보세요. 북유럽 도서관 탐방기 ② - 노르웨이 미래숲도서관 양정작은도서관 이상수 노르웨이 미래숲도서관을 방문한 날, 공기는 서늘했다. 우리 일행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천천히 푸른 서가를 거닐었다. 숲을 도서관으로 만들겠다는 최초의 발상은 어떻게 하게 된 것일까. 스코틀랜드 예술가 케이티 패터슨은 한 세기 동안의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세계적으로 엄선된 백 명의 작가에게 일 년에 한 명씩 원고를 제출케 하고, 백 년 후 종이책으로 출판하는 것이었다. 여기엔 나무를 심고 키우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외곽의 ‘노르마카’에 미래도서관 숲을 조성한 후, 가문비나무 1,000여 그루를 심었다. 선정된 작품의 원고는 한 세기 동안 읽히지 않은 채, 오슬로의 공공도서관 ‘침묵의 방’에 각각 보관된다. 2114년이 되면 모든 원고의 봉인을 풀고 이 나무들을 베어 책으로 펴낸다. 2018년에는 한강 작가가 그 주인공이 되었다. 오슬로에서 숲으로 가는 길, 홀멘콜렌 스키 점프대가 한 마리 독수리처럼 날개를 펴고 비상을 꿈꾸고 있었다. 근처 호수에서 신을 벗고 발을 담그니, 한겨울 살얼음이 낀 동치미를 먹은 듯 청량감이 느껴졌다. 피오르 해안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트래킹을 시작했다. 길섶엔 갈색빛의 버섯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어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촌락 같았다. 개미들이 가문비 나뭇잎을 끌어모아 고층 집을 지어 놓았다. 잘 익은 블루베리와 라즈베리가 장식처럼 붉었다. 퇴고하지 않은 초고의 숲은 뿌리가 땅 위로 자라고, 이끼가 그 위를 덮어, 또 다른 문장을 쓰고 있었다. 한국의 가을 하늘이 새파랗게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노르웨이의 하늘도 그에 못지않았다. 잘 뻗은 가문비나무가 입구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숲에는 곳곳에 두 가지 색이 칠해져 있었는데, 붉은색은 스키 길을, 하늘색은 트래킹 길을 의미한다고 했다. 수문장 나무에 두 색이 함께 칠해진 걸 보니, 여기는 누구든 출입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로 뻗어 오르는 가지는 내 어깨와 키를 맞추기도 했지만, 머리 위로 쑥 솟아오르기도 했다. 쑥쑥 자라 질 좋은 펄프를 생산할 것 같았다. 노르웨이에서 크리스마스트리는 반드시 가문비나무를 쓴다. 이 나무는 최대 오십 미터까지 자라며 수명은 수백 년이나 된다. 작년에는 칠십 년 된 이십 미터짜리를 런던시에 선물하기도 했다. 바이올린의 공명판으로는 그 나무가 최고라고 한다. 추위 속에서 고요히 자라는, 단단한 나이테 덕분이라고 한다. 장 지오노의 소설

기획 2024.11.01
바다는 요약이 없다

[에세이] 바다는 요약이 없다 이서안 “샘, 꼭 전문 다 읽어야 해요? 수능에 안 나올 수도 있잖아요.” 매 수업마다 이런 대사를 읊는 학생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간다. “전문 줄거리 요약한 건 없나요?” ‘요약한 것?’ 가슴 언저리를 뭔가 콕콕 찌른다. 시간이 부족해 그것도 걷기 중에 영화 줄거리와 결말을 보는 내 모습이 돌연 떠오른다. 나에게 꼭 집어달란다, 수능에 나올 작품들만. 중편 분량에도 못 미치는 소설을 혹 가다가 추천하거나 충분한 시간을 주어 과제를 내면 “이걸 언제 다 읽어요?”라며 지겹다는 낯빛을 단번에 드러낸다. 현대소설은 너무 길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든 데다 주제가 애매해 문제 풀기 어렵다나······ 고전소설은 글자가 아니라 기호 같다고······ 지겹지 않도록 강약을 조절하며 한껏 신나 가르침에도 괴로운 표정으로 시간을 견디는 학생들에게 나도 조금씩 지쳐 간다. 비단 소설 외에 다른 장르라고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의 이야기꾼 전기수들은 낭독의 귀재들이었나. 그들은 얼마나 맛깔나게 지은이의 숨은 의도까지 찾아내 상상력을 더 보태 구연했을까? 소설책을 구하기 힘든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 시대의 애독자들은 세책점에서 신간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가슴 저민 스토리에 같이 공감하고 감동 어린 몸짓으로 전기수들에게 반응했다. 장터나 마당에 앉아 전기수에게 귀 기울이는 애독자들이 있는 현장으로 마구 달려가고 싶어진다. “영웅소설의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게 놀랍지 않나요? 옛날에는 남성 중심 사회였잖아요. 그러나 여러분이 만난 홍계월전에서는 무엇보다 오랑캐와 싸우는 계월, 평국의 활약이 두드러지죠······.” 오늘 읽은 고전 소설은 그렇게 재미없는 소설이 아니었다. 그 시대를 앞서가는 근대적 가치를 담을 줄 아는, 진보적 소설인 동시에 핫한 소설이었다. 도적 때문에 강에 버려진 계월이 조력자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구출되고, 신분을 감추기 위해 남장한 긴장 모티브도 있었고, 여성이 중심인물이 되어 나라를 구한 박진감 넘치는 활약의 절정과 사이사이 평국과 보국의 쿵쿵 로맨스와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해피 엔드까지······. 하나 내 생각과 달리 나는 다른 색깔의 언어로 학생들을 간곡하게 유혹해야 했다. “얘들아, 홍계월전 만화책으로 나온 것도 있으니 그걸 보면 좀 쉽게 이해가 될 거야.” 학생들에게 제시한 유혹 계책에 씁쓰레하면서 ‘지금의 학생들은 영상세대들이잖아. 난 합리적 제안이라고 봐’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다가도 잠깐이나마

기획 2024.11.01
애도편지

[에세이] 애도편지 - 내 것이 아닌 모든 것들에게, 그리고 모든 것으로부터의 나를 김종연 1 믿음의 가장 큰 일은 믿음이다. 2 누리의 없음을 지체 없이 받아들였다, 라고 쓰고 그날은 무엇도 더 적지 않았다. 무용함의 유용함, 그 얇은 가지를 누군가 뚝, 뚝 부러뜨려 주고 있어서,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나는 가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잃고 있었다. 무관심을 잃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은 가능성으로 비어 있다는 말과 같다. 다만 위로가 되는 건 불가능성 또한 그와 같다는 것이다. 3 알고리즘은 상실을 알지 못한다. 까치발을 들고 불 꺼진 거실로 나가 물을 따라 마실 때, 나는 이것이 어디에서 연원했는지 알지 못한다. 오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 어머니와 언제나 쉬이 잠드는 아버지 그 사이에, 눈과 귀를 잃은 누리가 누워 있곤 했는데. 가장 나중에 떠나는 것은 목소리일까 생각했다. 안락사를 하는 사람은 마지막까지 귀가 살아서 모든 소리를 듣고 간다는데, 들었으니 해야 하는 말은, 이 모든 것을 거부해서라도 토해 내야 하는 그 마지막 말은. 불을 켜면 그 목소리가 들릴까 두렵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누워 듣는다. 밤의 혼곤 속에서 들려오는 낑낑거림을. 무언가 마음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그 소리를. 4 시(의) 구조는 무수한 병렬의 직렬로 존재한다. 불이 켜진 A가 불이 꺼진 B를 마주하여 밝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B의 밝음은 아니다. 그때 보이는 것은 B의 어두움이며, 동시에 B에게서 어두움이 발견될 만큼 충분히 밝지 못한 A의 어두움이다. 그 순간 둘 사이에서 C가 나타난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그렇기에 존재를 주장할 권리를 가장 강력하게 획득하게 되는 그것. 그것은 몸 없이 보는 자다. 기관도 없이 기능하는 자다. 지워진 자는 무(無)가 아니다. 그것의 시선은 그것을 보려는 자의 시계에서 존재한다. 5 네가 기뻐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하겠지만, 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나는 무엇도 하지 않을 것이다. 6 우리가 관찰하려는 것이 공기와의 접촉에서 시작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조건을 마련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0%를 시작할 수 있는가? 0이라는 것의 공간을 어떻게 완벽히 비워낼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보여주기를 그만두고 비유가 되어 비유를 중단할 수 있는가. 7 누리를 보기 위해 카메라 앨범을 되감는다. 그리고 그것에 도달하기 전에 끈다. 선언의 힘은 실패에 있다. 탑은, 사람이 아니라 탑에 의해 쌓이기 때문이다. 누리는 개의 나이로 백 년을 살았지만, 사람의 나이로 이십 년을 살았다. 나는 누리의 나이로 백칠십 년을 살았다. 너무 긴 시간은 종종 너무 짧게 축약된다. 누리가 있었고 지금은 없다. 가능성과 불가능성은 모두 삶으로 이어진다. 불가능이 있어서 죽는 사람은 없다. 가능성이 없어서 죽는 사람만이 있다. 꿈을 읽는 방법을 배운 뒤로 꿈은 내게 지나치게 직설적인 장면만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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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2024.11.21
이영녀와 윤심덕과 그리고 나

이영녀와 윤심덕과 그리고 나 신은수 등장인물 김우진. 이영녀. 오일삼. 윤심덕. 1925년, 늦은 저녁. 상성합명회사의 작은 사무실 안. 한쪽 벽면엔 업무 서류들이 쌓인 책장. 전화기가 놓인 책상에는 쓰고 있던 원고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사무실 안에는 작은 테이블과 소파가 있다. 수화기를 들고 통화하는 김우진. 옆에 놓인 물컵과 약봉지. 김우진 하루하루 정말 미칠 지경이야··· 돈과 직위?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내가 가꿔 이룬 것들이라면 애착이라도 있겠지만, 모두가 아버지 것들인데··· 난 그저 장남으로 태어난 책임으로 꼭두각시처럼 있는 거라고. 아무리 좋은 먹이를 매일 갖다 줘도··· 새장 속의 새가 행복하겠나. 지금 내 신세가 꼭 그래, 누구보다 자유로워야 할 예술가가 말이야. 이러다간 날개가 퇴화돼··· 어느 때부턴 나는 법조차 잃어버릴까 두렵다고. 약봉지를 힘겹게 뜯으며. 김우진 그래서 오늘도 쓰고 있다네. 이런 밤늦은 시간에 부친께서 앉힌 사장 역할이 끝나면, 나는 법을 잊지 않으려 말일세. 지금 쓰고 있는 것 말인가? 조선판 입센의 인형의 집, 노라인데··· 잘 풀리지가 않아. 막바지 3막으로 가고 있지만, 과연 지금의 조선 현실서 착취 속에 사는 궁핍한 여성이 자아를 찾아간단 것이 가능한 얘기인지··· 써 본들 사람들이 보고도 공감 못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뭐라 했나, 윤심덕? 당황해 말을 더 이어가지 못하고. 김우진 이보게, 몇 번을 말해도 소용없다고. 안 만날 걸세, 지금 윤심덕이가 어디 살고 있던 내 알 필요 없잖은가?! 그래, 그 추잡한 소문들을 여기서도 전부 다 듣고 있다고!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면, 밖을 향해서. 김우진 밖에 누군가. (수화기에) 잠시만··· 급하게 원고들을 구석에 숨겨 놓으면, 조심스레 문을 열고 오는 오일삼. 오일삼 접니다, 사장님. 김우진, 안도하는 표정. 오일삼 아! 전화 중이신데··· 불쑥, 실례했습니다. 김우진 (수화기에) 회사 직원이야, 신경 안 써도 돼. 나도 잘 모르겠네··· 언제 완성될지는. 얘기했잖은가, 마지막 부분에 글이 막혔다고. 다 쓰면 우선은 자네가 있는 토월회 쪽으로 보낼 테니, 한번 읽어 보라고. 오일삼 하하하. 편하게 계속하십시오. 김우진 이영녀일세. 주인공 이름 그대로가

시·시조 2024.11.05
「직전의 양」외 6편

직전의 양 임지은 잠이 오지 않을 때 그만 좀 불러냈으면 좋겠어 사람들은 양털로 옷도 이불도 해 입으면서 잠까지 덮어버릴 셈인가 봐 가을이 오면 확연하게 줄어든 몸무게에 양이 얼마나 어리둥절해하는지 모르면서 내가 아는 제일 불면증이 심한 사람은 양을 구십구만 구천 마리까지 셌지만 잠이 오지 않았대 세기를 그만두자 그제야 잠에 들었다지 좁은 방에 아침까지 불러 모은 양들이 서로를 밟고 올라섰다지 이런 사정을 아는 동물 애호가는 양 대신 말, 소, 사자들을 불러 모았대 함께 있기에는 긴장감이 넘치는 사이라서 밤새 뜬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지 이런 얘길 들으면 내 마음이 조금 약해지긴 해 그래서 생각해 본 건데 컵이나 상자를 부르는 건 어때? 쌓아 올리기도 쉽고 무너지기도 쉬운 게 잠이잖아 쏟아진 잠 밑에 깔려 상자에 구멍을 내고 그 안을 들여다봐 보면 하얗고 부들부들한 털이 그게 설마··· 양이 아니라면 대체 뭐겠어 한낮의 잎맥처럼 활짝 펴지는 잠, 수증기 가득한 욕실의 콘센트처럼 짜릿한 잠, 일주일째 닦지 않은 안경처럼 흐릿한 잠, 프라이팬 위에 터진 노른자처럼 중심이 없는 잠, 그런 잠을 자기 위해 사람들은 계속 양을 부르고 좀비 소원 깨고 나니 좀 이상했습니다 욕구라고 부를만한 게 없어졌습니다 더는 먹고 싶지도 자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늦장 부리다가는 정말 지각이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화가 난 걸까요? 하지만 저에겐 기분이라고 할 게 없어졌는걸요? 그래도 습관이라고 할 게 남아 있어 학교에 갔습니다 이가 빠진 것처럼 듬성듬성 비어있는 의자들 ㅂ ㅂ ㅂ ㅂ ㅂ 선생님이 소원을 적어 실내 나무에 걸라고 합니다 소원이라는 건 이루어질 수 없는 거잖아요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소원이라 할 수 있나요? 연필 끝을 씹는 동안 준호가 시아를 깨물고 시아가 영재를 깨물고 나는 깨끗한 종이에 소원을 적고 있었습니다 진우를 더 이상 못 만나게 해달라고요 진우는 사인펜도 잘 빌려주고 내 얘기에 많이 웃어줍니다 진우를 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소원은 벌써 어긋나버렸나 봅니다 진우가 내 손을 잡고 달리고 있습니다 못 만나게 해달라고 했는데 진우는 하필 나를 만나서 숨을 몰아쉬면 진우는 깨물기 좋은 목덜미를 가졌고 아주 이상한 맛이 납니다 소원이라는 건 이루어질 수 없는 거잖아요? 어떤 소원은 정말 이뤄지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새로 생긴 점 코 위에 점은 미인 점이라 부르고 손가락 위에 점은 재주가 많다는 뜻이라죠? 입술에 점이 생기면서 할 말이 많아졌습니다 친구가 손에 샤프 점이 생겼다고 했을 땐 반투명한 점이 참 신기했는데 나도 없던 점이 생기길 바란 적 있습니다 한 번 마음 먹으면 진짜 해내는 점

시·시조 2024.11.05
「모자의 줄」외 6편

모자의 줄 박소언 그리운 적막이 투명하게 걸려있다 마르지 못하는 목매단 모자 하나가 바지랑대를 하늘 높이 세우면 가장자리를 중심으로 두 줄이 생긴다 젖은 옷가지들과 모자가 걸린 문이었으므로 하늘이 내린 경계에서 하루의 동거가 바짝 말라간다 맨살을 비비적거리는 살갑던 허공을 헤아려본다 두들기던 얼룩이 서성대다, 발버둥 치다, 뜨거운 태양에 몸을 맡긴다. 자리매김한 여분도 없이 넘나들다, 휘날리다, 사지가 갈리면 문을 닫고 눈을 감고 싶다 두 개의 집게에 물려 벼랑에 설 때마다 하늘과 땅 사이를 맥없이 자맥질하는 무지개를 동반한 비바람의 날들이 가까스로 씻겨나간다 바람 너머 저 홑청 속으로 얼비치는 아홉 살 여자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등에 밥물을 잡는다 뒷산에 해가 걸리면, 아궁이에 군불을 지핀다 매운 눈을 비비며, 육자배기 노랫가락에 아들 타령 늘어진 아버지가 ”아~ 신라의 밤이여” 털레털레 삽짝 문을 열고 갈지자로 휘청거린다 “아버지 내가 커서 아들 낳아드릴게요” 버스럭버스럭 벗겨내던 슬픈 말꼬리가 아들 없는 빈소를 기억하며 하얗게 운다 구멍 뚫린 양말이 늙지도 못한 채 유품처럼 마당가에 서 있는 빈 바지랑대 줄에 걸린 검정 두루마기가, 술 취한 혼잣말이 낮 그림자에 나풀거리며 자꾸만 손짓한다 흙 마당에 고꾸라진 짝 잃은 속디디미처럼 종종걸음하며 방향을 잃고 몸부림쳐대는 꼴이라니 옷가지 거두어간 자리에 방울방울 물음표만 걸리는 속알속알 느낌표만 걸리는 저 섬망 같은 세월을 하염없이 일으켜 세운다 허공 의자 한 사내가 높다란 허공 의자에 앉아 바람을 타고 있다. 창문에 매달린 꿈을 꾸며 리듬을 갈之자로 가른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순간이다. 밧줄에 매달려 좌우로 흔들리는 난간에서 무거운 몸통을 거미처럼 붙여 놓고 사내는 끝없이 추락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빌딩 외벽에서 사내가 환상을 찾아 떠난다. 반짝반짝 별자리에 머물렀던 적 있었던가. 절벽 같은 유리창에 매달려 흔들흔들 안락의자를 기웃거렸을 뿐이다. 울렁울렁 목을 잡아당기던 밧줄에 맞춰 기어올랐을 벽과 빌딩 사이, 이곳저곳 희망에 꿰차고 앉아 날개를 달기도 했다. 높다란 저녁별 마주 보며 떨어지는 어둠에 하루치의 밧줄을 말아 잡아당겼다. 바람의 끝에서 홀로 앉아 있던 사내의 앉음새가 스르륵 풀어졌다. 핑 도는 어지럼증이 발아래로 튀어 오르자 사내는 그제야 허공 의자에서 내려오는 그때 유리창 아늑한 방안에서 아장아장 기어 나오는 아기가 두 손을 꽉 쥐고 까르르 웃는다. 하늘 높이 날아오를 포즈로 나는 그네 타기 놀이에 빠져든다. 은지화 애오라지. 손바닥만 한 딱지에 물고기와 아이들*이 놀고 있다 은물결 팔딱이다 헤엄치다 긴한 말들이 아로새겨진 활자 같다 꼬리꼬리한 비늘이 까르르 뒹굴면 깊은

시·시조 2024.11.05
「복선」외 6편

복선 윤인숙 참 이상하지 빨간 가운을 걸치면 몸에서 죽은 쥐 냄새가 나 유리 머리 폭탄 웃음 마음 바다 어느 쪽이 더 좋아 수족관에 손 하나가 어슬렁어슬렁 손도 키우시나요 그럼 물도 매일 갈아 줘야겠어요 손톱에 물때가 낄 테니까요 깨진 유리 구겨진 웃음 진심으로 고마웠다니, 이런 환멸은 처음이야 머리를 틀어 올리고 다리를 오므린다 온도가 중요해 시시때때로 변하는 손바닥 얼룩같이 두 눈이 없어도 잘 느낄 수 있는 늪의 악어 알처럼 수국을 움켜쥘 때의 기분 모든 첫 중에 첫, 한 입 복숭아 수국을 손바닥으로 움켜쥘 때 무른 복숭아의 즙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거기를 만질 때 조금 젖을 때의 침이 꿀꺽 넘어가는 물고기가 찌를 물고 달아나는 산꼭대기 고사리 밭 층층나무의 향기 이끼 아래 바위 복숭아 살을 손으로 뭉개 봤다면 밀가루 반죽을 휘휘 저어 봤다면 끝물이라는 말 그 여름이 뜨거웠다는, 뼈의 화목 나무가 이름을 얻는다 적막이 가만히 가라앉고 있다 흰 항아리 한 줌 다섯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뼈의 화목 허공은 잠시 눈을 감았다 밖은 따뜻하고 속은 부서지는 중 골목을 들어서며 느리고 크게 부르던 노래도 낡아, 노래뿐이다 기억은 가뭇없고 폭풍이 쓸고 간 듯 먼 길이 생겨나고 있다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한다 풀이 풀의 어깨에 기대 흐느낀다 목덜미에 내려앉은 나비의 날갯짓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다 나무의 이름이 살갗 아래 새겨진다 얕은 밤 고개를 젖혔다가 퉤, 하고 누런 가래를 뱉을 때, 가래가, 누런 가래가 땅바닥에 ‘척’하고 달라붙은 거 같죠. 척하고 뭉개지는 거죠. 산산이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처럼요 발끝으로 쓰윽 뭉개지 말아요. 진득한 실이 달라붙을지도 몰라요 영원이 알을 슬어 놓을 것 같아요 어느 순간에도 꽃은 피니까요 어떤 순간도 영원이 될 수 있으니까요 꽃이 피기도 전에 시든다는 걸 일깨워 주진 말아요 왜 그런지, 선명한 것은 가여워요 얕은 밤에 꿈은 무르익고 계절은 저쪽에서 이쪽으로 슬금슬금 와버려요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야 할까요 전 언제나 지는 쪽이 더 좋기는 해요 숨 비 오고 라일락이 막 피려고 해요 꽃향기 비눗방울처럼 터져요 다정한 소문 같아요 향기는 몸이 없고 소문은 멀리 가고 비 오는 날, 오른손을 높이높이 볼륨을 올리고 몸을 흔들어요 온몸에 풍선 달고 가라앉는 배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요 아아 목 놓아 노래 불러요 꿈틀꿈틀 드디어 다른 몸이 되려나 봐요 괴로움은 역사가 짧아 우리 엄마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춤으로 노래로 하늘로 하늘로

아동청소년문학 2024.11.05
「승강기 옆 나무의자」외 6편

승강기 옆 나무의자 한상순 전철 승강기 옆 쪼루루 나무 의자 네 개 저렇게 얌전한 척 앉아 있지만 난, 다 봤지. 사람들이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불끈 네 다리에 힘을 주는 걸 승강기 문이 열릴 때마다 함께 타려고 엉덩일 들썩이는 걸 한밤중엔 둘씩 짝지어 승강길 타고 오르락내리락 장난치고 놀지도 몰라 저 봐, 얼마나 놀았는지 엉덩이가 밴질밴질 윤이 나잖아. 상상이라는 아이 딱, 몇 초 만에 세상 어디든 갈 수 있어. 구름 위를 날기도 하고 바다 위를 저벅저벅 걸을 수도 있지. 물론 110층 빌딩 벽을 맨손으로 오를 수도 있어. 물구나무로 뚜벅뚜벅 걸어서 학교에 가기도 해. 늦잠을 잔 날은 휘리릭, 해리포터 빗자루를 타고 날면 되지. 숙제 안 한 날은 비둘기로 잠깐 변신, 숙제 검사가 끝날 때까지 창가에 앉아 꾸룩꾸룩 노래하면 돼. 이 아인 꼬리가 길 때도 있고 짧을 때도 있어. 도마뱀 꼬리처럼 뚝뚝 끊어지기도 하지. 하지만 금세 새 꼬리가 생겨나니 걱정 없어. 쉿! 비밀인데 나는 이 아이의 주인이야. 눈물 저금통 새해엔 저금통 하나 마련해야겠어. 눈물을 모으는 저금통. 어쩌다 울게 되면 주먹으로 씩씩 닦지 말고 저금통에 방울방울 모아야겠어. 방울방울 눈물방울 저금통에 담기면 할머니 눈에 인공눈물 대신 눈물방울 톰방톰방 넣어드려야겠어. 자꾸자꾸 태어나 자꾸자꾸 태어나 비 오는 날, 올챙이들이 차 앞유리창 연못에서 꼬물꼬물 자꾸자꾸 태어나 악어 입보다 큰 와이퍼가 입 쩍, 벌리고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자꾸자꾸 태어나 꼬물꼬물 자꾸자꾸 태어나 쓰읍-싹 쓰읍- 싹 와이퍼 괴물이 한입에 꿀떡꿀떡 삼켜버려도 자꾸자꾸 태어나 꼬물꼬물 자꾸자꾸 태어나 석수장이 석수장이 할아버지 망치 한 개, 정 하나로 툭,툭,툭,툭, 돌 껍질 벗기고 강아지를 꺼낸다. 양을 꺼낸다. 낙타를 꺼낸다. 어떤 때는 돌 속에서 부처님도 모시고 나온다. 이럴 땐 석수장이 얼굴도 마냥 부처님 얼굴이다. 공갈빵 소보루빵슈크림빵단팥빵단호박빵소세지빵소금빵 호밀빵소라빵바게트빵흑임자빵밤빵고구마빵완두앙금빵 빵빵빵들이 빵빵하게 이름을 걸고 빵빵하게 앉아 있다. 그 옆에 속없는 공갈빵 엉덩이에 바짝 힘을 주고 더 빵빵하게 버팅기고 있다. 누가 미루나무에게 노랠 시켰나 강가에 서 있는 미루나무 이파리들이 파르르파르르 떤다 교단 위에 서서 노래 시험 보는 나처럼 파르르파르르 자꾸 떤다 저러다가 노랠 부르면 들으나 마나 나처럼 목소리도 파르르르 떨려 나올 텐데 도대체 누가 미루나무에게 노랠 시켰나

비평 2024.11.05
‘모르는 여성’에서 ‘아는 여성’으로 : 강화길론

‘모르는 여성’에서 ‘아는 여성’으로 : 강화길론 하혁진 소설로 충분하다 2020년 여름, 강화길의 두 번째 소설집이 우리 곁에 도착했다. 화이트 호스(White Horse), 백마(白馬)를 타고. 자신이 공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소설 속 그녀들은 더 이상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지 않는다. 때마침 동명의 노래인 Taylor Swift의 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I`m not princess, this ain`t fairy tale. (···…) Now it`s too late for you and your white horse to come around.” 강화길은 표제작인 「화이트 호스」에서 스위프트의 가사를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나는 공주가 아니고, 이건 동화도 아니란다. 나는 너의 화이트 호스가 필요 없단다.” 이렇듯 변화를 경험한 그녀들은 왕자 대신 백마 위에 올라타 고삐를 쥐고 속도와 방향을 직접 ‘선택’한다. 요컨대 그녀들은 선택이라는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행위 주체라는 지위를 회복한다. 누군가를 기다리지도, 무엇인가를 기대하지도 않으면서 그녀들은 동화 바깥의 현실을 ‘살아간다’. 두 번째 소설집에서 수록된 소설만큼이나 눈여겨볼 만한 것은 작가의 말이다. 강화길은 마지막 두 문장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다시는 작가의 말을 이렇게 길게 쓰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내게는 소설로 충분하다.”(작가의 말 297쪽). 이 의미심장한 선언 뒤에 감춰진 진의는 무엇일까. 두 페이지 앞으로 가 보자. “당시 나는 이름을 걸고 일을 하는 것에, 그러니까 나를 향한 일부 비평에 대해 상당한 피로와 염증을 느꼈다. 신인 작가 입장에서 꽤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글도 있었고, 그간 내가 여성으로서 받아 온 어떤 평판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글도 있었다,”(작가의 말 293쪽). 이쯤 되면 ‘소설로 충분하다.’는 비장한 선언 뒤에는 모른 척 지나치기 어려운, 혹은 모른 채 지나쳐서는 안 되는, 숨겨진 내막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대체 어떤 평판들이 그녀로 하여금 ‘작가’로서의 ‘나’와 ‘여성’으로서의 ‘나’가 겹치는 경험을 하게 한 것일까. 다른 인터뷰도 함께 살펴보자. 실제로 이 소설을 쓸 때 이런저런 비평에 시달릴 때라서 여러 가지 감정이 혼재된 상태였어요. 평가를 받는 일에 계속 시달리는 게 부당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비평적 언어와 내가 가진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제가 쓴 소설을 보호하고 싶기도 했고요. 개인적인 경험에서 쓰기 시작한 소설이지만 쓰는 과정에 깨달은 건, 저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어요. 여성 작가들이 여성 문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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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하기 위해서 거꾸로 걷기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하기 위해서 거꾸로 걷기 - 현장 방문 및 문장서포터즈 이유빈 지난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개최된 제20회 에 방문했습니다. 올해의 주제는 ‘공존으로의 여정’이었어요. 이는 팬데믹과 기후 위기, 그 밖에 다양한 사회적 갈등 등이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공존이란 단순히 타자를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타자를 통해 내가 변화할 수 있으며, 나 역시 타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열린 자세에서 출발해요. 문학과 예술, 자연과 인간, 기술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대화하는 장이 바로 이번 이었습니다. 20여 곳의 출판사가 참여한 만큼,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여러 도서 판매 부스들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페미니즘, 기후 위기 등과 관련된 사회학 서적부터 다양성과 포용력을 주제로 한 동화책까지 다양한 도서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었으며, 업사이클링 굿즈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건물 내부에서는 제10회 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어린이 독자들을 위한 컬러링 체험존도 한창이었어요. 이외에도 에서는 다양한 포럼들을 통해 작가와 독자가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10월 12일 서교스퀘어에서 진행된 에 참여해 보았어요. 한국과 캐나다의 작가가 국경을 초월하여 ‘다양성과 포용’을 주제로 협업한 앤솔러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해』를 출간했으며, 기념행사와 책 판매를 이번 에서 진행했습니다. 이번 앤솔러지에는 한국 작가 김멜라, 김애란, 윤고은, 정보라와 캐나다 작가 리사 버드-윌슨, 얀 마텔, 조던 스콧, 킴 투이가 참여했어요. 그중에서도 제가 들은 에서는 박혜진 평론가가 진행을 맡았으며 김멜라, 윤고은, 조던 스콧, 킴 투이 작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작가들의 각기 다른 사회적 배경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의 의미와 힘, 정체성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가장 먼저 「판사님」이라는 단편소설로 엔솔러지에 참여하신 킴 투이 작가의 이야기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킴 투이 작가는 난민이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며 사랑과 포용의 가치를 말씀하셨어요. “퀘백의 난민 캠프에 있던 어린 시절에 너무 추웠던 기억이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나는 아시안으로서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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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같은 하루,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선물 같은 하루,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문장서포터즈 배연주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선선해진 날씨가 마음을 사색에 잠기게 만들어서 그런 것 같다. 나에게는 ‘가을’하면 독서 말고 떠오르는 게 또 있다. 혜화역 2번 출구를 나오면 보이는 단풍으로 물든 마로니에공원. 약간 쌀쌀한 아침 바람 냄새. 외투를 입고 접수처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 나는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에 참가할 때마다 가을이 왔다는 걸 실감한다.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은 올해 42회째로 개최됐다. 보도 자료를 보면 ‘미등단 여성이 참여 가능한 국내 여성 백일장 중 가장 오래된 대회’라는 수식이 붙어 있곤 하다. 그 의의를 빼고 보아도 백일장이 42회째 사라지지 않고 지속해서 열리는 건 크게 가치 있는 일이다. 42회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원고지에 자신의 마음을 펼쳐 놓고 갔을까. 헤아려 보면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은 존재 자체가 문학계의 한 역사 같다. 나도 그 역사에 38회부터 함께 하고 있다. 올해까지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에 5회 연속 참여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온라인으로 백일장이 열렸다. 백일장 당일 실시간으로 글제가 공개되었고, 시간 내에 원고지 형식 한글 파일에 글을 써서 제출했다. 친구를 만나러 부산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노트북을 펴고 참여했던 것도 이색적인 경험이었지만, 역시 백일장은 오프라인 현장에서 즐기는 게 더 좋았다. 2022년부터는 원래 역사대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진행 중이다. 백일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프로그램 구성과 이벤트들이 조금씩 달라졌다. 작년에는 ‘마로니에 온라인 백일장’이 신설되었고, 올해는 당일 프로그램 중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할 수 있는 ‘어린이 도슨트 투어’가 생겼다. 이처럼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은 글만 쓰고 끝나는 단순한 백일장이 아니라 참여자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 행사이기도 하다. 올해도 사전에 열린 ‘제2회 마로니에 온라인 백일장’의 대상 수상자 분을 개회식에서 뵐 수 있었다. 이재숙 님은 환한 미소를 띤 채 상을 받고 수상 소감을 말씀하셨다. 개회식이 끝나고 인터뷰를 요청드렸다. 제2회 마로니에 온라인 백일장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마로니에공원에 오시면서 많이 설레셨을 것 같아요. 마로니에 온라인 백일장은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온라인 서핑하다가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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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읽는 ‘시’간 속에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서로를 읽는 ‘시’간 속에 문장서포터즈 팅팅 삭막한 회색의 도시를 잊게 하고, 쉼을 허락해 주는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지친 마음을 따스하게 위로해 주는 시. 내가 사랑하는 자연과 시가 어우러지는 곳이 있다면, 내가 그곳에 가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처음으로 방문하게 된 평창엔 깨끗한 날씨, 고요한 풍경, 그리고 시를 통해 소통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 가을, 각자의 시를 품은 그들은 그곳 대관령에 모여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찍어 주신 분의 작은 실수 덕분에 모두가 환하게 웃을 수 있었던 소중한 순간 ‘어느 가을, 시가 내게 말을 걸었다’라는 이름의 이번 시 캠프는 서울의 책방 ‘풀무질’과 ‘초록길 도서관’, 그리고 평창의 책방 ‘선인장’이 협력하여 ‘문학주간 연계 권역별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프로그램이다. 우리는 시를 매개로 점점 가을이 깊어지기 시작하는 때에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시 캠프에서 마주한 풍경과 가장 어울리는 색이 있다면 가을의 황금빛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게 가을의 빛깔은 단체 사진 속 사람들의 웃음에 담긴 따스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관령으로 출발하는 날, 태풍이 다가오고 있어서 그런지, 아침의 바람은 유난히 세차게 불어왔다. 하지만 서울은 여전히 여름의 더위를 떨쳐 내지 못하고 있었다. 목적지인 대관령에 도착했을 때, 서울에서 불던 바람은 대관령까지 나를 따라와 후덥지근한 늦여름을 어느새 선선한 초가을로 바꾸어 주었다. 그날 오후, 낭독회가 시작되기 전 이미 도착한 사람들은 책방 ‘선인장’에서 서로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책방 밖에서는 강아지 방글이의 짖는 소리가 우리를 환영하는 듯 반갑게 들렸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을 기다리는 동안, 서로의 대화 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 그리고 방글이의 발톱이 나무 바닥을 탁탁 울리는 소리가 우리가 있는 공간을 부드럽게 메우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분명 소란스러운 듯했지만 그 속에서도 생동감 넘치는 이 소리들은 낯선 장소에서의 긴장된 마음을 서서히 진정시켜 주었다. 문득 이번 낭독회에서 함께 읽을 김고니 시인의 시들 중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동시에 숨을 쉬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 / 외롭지 않다고.” 이 시를 처음 읽은 것은 며칠 전, 잠 못 이루던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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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주간2024〉 : 소극장에서 울려 퍼지는 작가와 글틴의 진심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문학주간2024〉 : 소극장에서 울려 퍼지는 작가와 글틴의 진심 문장서포터즈 채미나 지난 9월 말, 종로에서 문학 주간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문학 주간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2016년부터 주관하고 있는 행사로, 문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 향유 분위기를 조성하여 한국문학 진흥의 토대를 굳건히 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프로그램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저는 9월 28일에 개최된《고선경 시인/김멜라 소설가와 함께하는 ‘글틴이 뽑은 2024 오늘의 문학 북토크》에 참석하기 위해 종로까지 향하였습니다. 글틴은 글과 TEEN이 만나 붙여진 이름으로, 문학에 관심 있는 청소년들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과 소통을 연결하기 위해 2005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운영해 오고 있는 국내 유일한 청소년 온라인 문학 플랫폼입니다. 만 13세에서 만 18세라면 누구나 글틴 친구가 되어 글을 나눌 수 있답니다. 저의 첫 문학 지면이 되어 준 ‘글틴’에서 지금은 어떤 글틴러들이 활동하고 있는지, 요즘 글틴러들이 주목하고 있는 시인과 소설가는 누구인지 얘기를 들어 보고 싶었어요. 문학 주간은 아주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마로니에 공원에 누가 보아도 문학 주간을 즐기러 온 듯한 사람들이 각자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거든요. 저는 마로니에 공원 한가운데서 ‘스핀오프’ 부스를 즐기는 글틴 친구들과 주임님을 발견하였습니다. 글틴 친구들은 쑥스러워하면서도 대화에 성실하게 참여해 주었습니다. 친구들을 따라 저도 스핀오프 부스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참여하였어요. 좋은 시 혹은 소설 일부의 구절에 구멍을 내어놓고, 참여자의 마음대로 구멍을 채운 뒤 SNS에 인증하면 인센스를 주는 행사였습니다. 친구들은 마로니에 공원 의자에 앉아 열심히 고민하며 저마다의 빈칸을 채웠습니다. 저 역시 그 열정에 힘입어 빈칸을 채우고 신경림 시인의 시 구절이 적힌 아름다운 인센스를 받았어요. 스핀오프 부스 옆에는 ‘올해의 한국 작고 문인’ 전시 부스도 함께 있었어요. 운문은 김소월 시인, 산문으론 염상섭 작가가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두 문인의 활동 기록들과 함께 옆 팻말에 시집과 작품집 소개가 정성스럽게 적혀 있었어요. 혼자 팻말들에 적힌 글들을 읽으면서, 한국문학의 역사가 유구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이런 문인들이 있기에 지금의 문인들도 있는 것이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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