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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소리
문학광장 〈문장의소리〉는
2005년부터 시작된 문학 라디오입니다.
2024년 새롭게 개편된 〈문장의소리〉는
연출 유계영 시인, 진행 우다영 소설가, 구성작가 문은강 소설가가 참여합니다.
문학집배원
동지(冬至) 마윤지 12월에는 흐린 날이 하루도 없으면 좋겠다 그런 약속이 있으면 좋겠다 놀이터엔 애들도 많고 개들도 많으면 좋겠다 살도 안 찌고 잠도 일찍 들면 좋겠다 조금 헷갈려도 책은 읽고 싶으면 좋겠다 어디든 갈 수 있는 차표를 잔뜩 사고 안 아프면 좋겠다 30만 년 전부터 내린 눈이 쌓이고 눈의 타임캡슐 매일의 타임캡슐 다 흘러가고 그게 우리인가 보다 짐작하는 날들이 슬프지 않으면 좋겠다 묻어 놓는 건 숨기는 게 아니라 늘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지 그 무엇보다 많이 만져 보는 거지 나중엔 번쩍 번개가 되는 거지 오렌지색 같은 하늘이 된다 맛도 향기도 손가락이 열 개인 털장갑 이를테면 깍지 햇빛의 다른 말이다 - 시집 『개구리극장』(민음사, 2024)
그 순간을 꽤 선명히 기억한다. 백영중학교 건물은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고, 덕분에 학교 전경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운동장에는 세로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야구부 아이들이 기합을 외치며 트랙을 돌고 있었고, 담장 근처 등나무 그늘에는 늦은 시간까지 동아리 활동을 하는 방송부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 중이었다. 야구부 애들이 나아갈 때마다 그림자가 점점 길어졌다. 그 그림 같은 배경 안으로 달음박질하려던 순간이었다. 내 하늘색 컨버스화 끈이 풀려 있었다. 나는 허리를 숙여 이제는 회색에 가까워진 흰 끈을 단단히 동여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왜 이렇게 눈이 시린 걸까. 양손으로 두 눈을 비벼 보있다. 눈은 여전히 시렸고, 눈앞에는 믿기 힘든 낯선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푸르른 기운이 무성한 6월의 학교에 내리는 함박는. 그것은 그 해의 녹지 않는 첫눈이었다. 때아닌 함박눈에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운동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눈송이를 손으로 받고, 고개를 쳐든 채 방방 뛰며 팔을 휘저었다. 건물 안의 아이들은 창가에 다닥다닥 붙어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 진풍경은 화면에 고스란히 담겼다. 나는 현관에 서서 팔을 뻗어 떨어지는 눈 한송이를 받았다. 내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그 결정체는 꼭 모형처럼 딱딱했으며, 차갑지 않았다. 차갑지 않은 눈이라니. 이게 정말 눈이 맞을까? 눈송이는 높은 기온과, 내 체온에도 녹지 않았다. 6월 충순, 초여름이었고, 등교 직전 뉴스에서 본 기온은 27도를 웃돌았다. 결정체의 모양이 일반적인 눈송이와는 달리 불규칙적이었다. 그리고 훨씬 밝게 반짝였다. 꼭 진짜 눈을 흉내 내어 만든 모형처럼. 그런데 곧 눈송이를 받치고 있던 손바닥 주위로 불그스름한 반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발 늦게 가려움이 밀려들었다. “아, 따가워.” 소리가 나는 곳을 좇았다. 운동장과 이어지는 계단에 앉아 있던 두어 명이 건물 처마 밑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머리와 체육복에 묻은 눈들을 털어 낶다. 그들의 몸에서 떨어지는 눈은 눈이라기보다는 조금 입자가 큰 모래알 같아 보였다. 잔 우박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박처럼 차갑지도 부서지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녹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쌓였다. 맨 처음 따갑다고 외쳤던 단발머리가 둥얼거렸다. “왜 이렇게 따갑지? 이거 뭐야? 나 새우 먹어서 알레르기 반응 올 때 꼭 이러는데.” “내 손도 그래. 이 두드러기들 뭐야? 징그러워.” 소매 밖으로 드러난 손목과 손등이 온통 붉었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하늘 곳곳을 수 놓은 하얀 점들이 보였다. 눈송이들은 조명을 받은 보석처럼 반짝이며 떨어졌다. 그 비현실적인 풍경에 정신 팔려 잇던 나를 깨운 건 운동장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였다. 제일 먼저 뛰쳐나왔던 1학년 아이 한 명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운동장 바닥을 구르고 잇었다. 황토색으로 물든 하복 교
가정 최지은 우리는 말이 없다 낳은 사람은 그럴 수 있지 낳은 사람을 낳은 사람도 그럴 수 있지 우리는 동생을 나눠 가진 사이니까 그럴 수 있지 저녁상 앞에서 생각한다 죽은 이를 나누어 가진 사람들이 모두 모이면 한 사람이 완성된다 싹이 오른 감자였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푸른 감자 엄마는 그것으로 된장을 끓이고 우리는 빗소리를 씹으며 감자를 삼키고 이 비는 계절을 쉽게 끝내려 한다 커튼처럼 출렁이는 바닥 주인을 모르는 손톱을 주웠다 나는 몰래 그것을 서랍 안에 넣는다 서랍장 뒤로 넘어가버린 것들을 생각하면서 서랍을 열면 사진 속의 동생이 웃고 있다 손을 들어 이마를 가리고 있다 환한 햇살이 완성되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다 우리가 눈 감으면 우리를 보러 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거기 있었다 -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창비, 2021)
정오가 되자 태양이 머리 꼭대기 위에 떠올랐다. 슬슬 직장인들이 몰려와 테이크아웃을 해 갈 시간대인데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당연했다. 이런 땡볕에 에어컨도 안 트는 카페에 올 손님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 틈을 타 나는 유리와 함께 카페 테이블에 얼굴을 대고 늘어져 있었다. 평택호 바로 앞 관광단지라는 특성 때문에 원래가 직장인보다는 뜨내기손님이 더 많은 가게였다. 단골도 별로 없다. 주변에 같이 장사하는 가게 사장님들 외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라 버스나 지하철을 탈 필요가 없다는 게 유일한 장점이었다.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테이블에 반대쪽 볼을 갖다 댔다. 테이블에서 올라오는 찬기로 얼굴이 조금은 시워해져서 이러고 있으면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점장님은 이러고 누워 있는 우리를 보고 나무늘보가 따로 없다고 잔소리를 하시지만. 볼을 바꿔 대려고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던 스킨답서스 화분에서 불길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듣는 순간 테이블에 엎어져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킬 정도로 놀랐다. “부점장님,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정도로 놀란 것도 오랜만이었다. 소리가 들린 것 자체가 오랜만이긴 했다. 지난달 초에 한 번 듣고 이번 달에 처음 듣는 거니까 얼추 두 달 만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유리가 불안해할까 봐 다시 테이블에 볼을 갖다 대고 누웠다. 누운 채로 점장님이 있는 포스기 쪽을 향해 물었다. “점장님, 저희 화분 몇 개만 더 뺄 수 없을까요?” 카페 내부에는 보이는 자리마다 화분이 깔려 있다. 어스프레소는 대대적으로 친환경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펼치곤 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커피 브랜드로도 유명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플라스틱 제로가 아니라, 여기 평택 에코시티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신소재 플라스틱만 사용한다는 뜻이지만 신소재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과 달리 금방 썩는다는 특징이 있으니 크게 다른 말은 아니다. 평택이 신소재 플라스틱 시번 사용 도시, 에코시티로 지정된 지 이제 10년째였다. 평택 구도심 아래쪽, 평택호 인근 지역이 에코시티로 지정된 이후 시티 내에서는 사용하는 플라스틱 양에 제한이 없어졌다. 신소재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만큼 탄소 배출도 타 지역보다 20퍼센트까지 더 가능하다.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최근 들어 공장이나 기업의 본사가 에코시티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스프레소의 본사만 해도 에코시티 내에 있었다. 그러니까 가게 내부에 가득한 화분은 어스프레소의 친환경 브랜드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어스프레소 사장님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게 내 업무 환경을 저하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었다. 점장님에게 매일 우리 화초 좀 몇 개만 빼자고 말해도 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점장님이 말했다. “명색이 에코시티인데, 초록이 좀 많아야 보기도 좋지 않니?” 초록, 저도 참 좋아하는
창원 조성래 창원으로 갔다 이제 두 달도 더 못 산다는 어머니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에 서명하러 갔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일단 도착하면 나는 그곳과 너무 가까운 사람이었다 먼 곳은 먼 곳으로 남겨 두기 위하여 나는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먼 곳이 너무 싫어서 먼 곳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세상의 모든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속속들이 모든 먼 곳을 다 알고 모든 먼 곳을 파악하고 모든 먼 것들의 사정을 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전지하신 하느님께 합장하고 기도 올리는 성모마리아······ 파티마 병원에 어머니는 누워 계셨다 빗자루에 환자복을 입혀 놓은 것처럼 바싹 말라서 아직 살아 계셨다 내 손을 잡고 울다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다 조금 뒤면 자기가 죽을 것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처럼······ 내가 하나도 밉지 않은 듯이, 어제도 날 본 사람처럼 웃었다 다음 생에는 안 싸우고 안 아픈 곳에서 함께 있자고 이제 당신이 내 자식으로 태어나라고 내가 당하겠다고 당신도 당해 보라고 눈물이 끝 모르고 흘렀다 눈물 흘릴 자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식 된 사람인 것처럼······ 그 시각 모든 일이 먼 곳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선 엄마도 죽고 나도 죽고 끔찍한 날 피해 자리를 비킨 동생도 죽고 모두 죽어서 죽고 나서 웃고 있었다 모두 지난 일이라는 듯 모두 지나야 했던 일이라는 듯······ 그러나 그건 나 혼자서 듣는 소리였다 어머니는 홀로 죽을 것이며 나는 여전히 어떤 현실들에 마비된 채 살아도 되는 사람처럼 살아서 살아 있는 것 같은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닐 것이다 —시집 『천국어사전』(타이피스트, 2024)
도경이 사는 곳은 용희가 익히 경험해 본 장소였다. 대학 시절 같은 과 동기의 자취방이 꼭 저랬다. 여름에 동기의 자취방은 주변에 햇빛을 가려 줄 만한 큰 건물이 없어 작은 냉장고에 몸을 쑤셔 넣고 싶은 집으로 탈바꿈했고, 매서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는 동면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뼈 시리도록 반성케 하는 집으로 변모했다. 도경의 집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가림막 하나 없는 여름 한낮의 옥탑방은 재난 지역으로 선포해도 무방했다. 딱 한 가지 좋은 점은 상쾌한 가을밤이 내려앉았을 때 옥상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캔 맥주가 손에 들려 있으면 더 좋았다. 용희는 옥탑방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경에게 캔 맥주 한 박스를 몰래 사다 주는 것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용희는 긴 한숨을 내쉬며 언덕길을 내려다보았다. 도경이 검은 봉지와 막대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서 자신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도경이 용희를 알아보는 데 쓰인 10초는 용희에게 머나먼 북극의 바다를 두어 번 갔다 오는 시간만큼 길게 느껴졌다. 당황한 용희는 마찬가지로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도경을 향해 소리쳤다. “제가 지구에 커튼을 쳐 드릴게요!” 도경은 입을 벌린 채로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용희는 도경의 집 옥상에 놓인 평상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지난 5년간 얼핏얼핏 그려 왔던 일이, 지난 이틀간 문득문득 상상했던 순간이 눈앞에 당도했다는 기쁨에 용희는 이마에서 얼굴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방울도 잊은 채 자신의 심장 소리에만 주의를 기울였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에도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그러나 그 역시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 날뛰는 소리는 아니었다. 용희는 심장이 악보 없는 음악에 홀려 무작위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처음으로 천문대를 찾았을 때 광활한 우주를 탐사하며 느꼈었던, 거대하고 두려운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예측불가능한 불안함 속에서도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몸을 떨던 때의 심장 소리였다. 그때, 도경이 옥탑방에서 나와 유리컵 두 개와 감자칩을 담은 그릇을 평상에 내려놓았다. 도경은 평상에 편하게 앉더니 검은 봉지에 든 맥주 세 병을 꺼냈다. “병맥주 한 병을 마셨을 때 기분이 제일 좋아요. 그제 제 주량이에요. 더 마시면 정신 줄 놔요.” 용희는 물었다. 그런데 왜 세 병을 샀느냐고. “술이 술을 부르니까.” 용희는 빙긋 웃었다. 도경은 용희의 컵에 맥주를 따른 후 자신의 컵을 스스로 채웠다. 건배 없이 도경이 먼저 맥주를 들이켰다. 용희도 마셨다. 도경이 말했다. 정말 화를 참을 수 없었다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내 탓은 아닌 것 같은데, 정말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r
글틴
-머리말-내가 이 책을 처음 접했던 것은 2022년 겨울 강남의 작은 서점에서였다. 채식주의자라는 한없이 무해할 것만 같던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점잖은 척 하지 않는 직설적이고도 시적인 문장들로 나를 책 속으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서 있는 자리에서 나는 하나의 단편을 전부 읽어버렸고 다음날 도서관에 가서 이 책을 빌려 밤새 읽었다.책은 2005년 한강이 이상 문학상 수상작 ‘몽고반점’이라는 단편 외에 두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있는 연작 소설이다. 단편마다 이야기의 서술자가 바뀌는 독특한 구성을 띄고 있다. -본문-책을 읽다 알게된건 내가 영혜의 삶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영혜는 어느 날 자신이 겪어야만 했던 겪어야하는 것들이 부조리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부조리의 인식은 꿈을 통해 이루어진다. 영혜는 소설이 시작하기 전까지 자신을 세상에 끼워 맞추기 위해, 세상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수 없이 깎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꿈을 계기로 영혜는 달라진다. 그 속의 폭력성을 깨닫기라도 한 듯 저항하기 시작한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통해. 이는 거대한 메타포이다. 이 책은 거대한 메타포로 가득하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우리는 채식주의자라는 말로 영혜를 판단한다. 책을 읽기 시작함에 있어도 제목을 보고 우리는 선입견을 가진다. 하지만 채식주의자라는 말이 영혜를 잘 설명하는가? 나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영혜를 설명하는데 있어 아주 적은 부분일 뿐이다. 이는 성급한 일반화가 낳은 폭력이다. 영헤의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영혜를 제단하는 데에 있어 급급했다. 마지막까지 착한 사람이고 싶었던 영혜의 언니 마저도 ‘아픈애’ “그저 겉보기에만 유순해진 것” 등의 말로 그녀를 심판하고 단정짓는다. 책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존재한다. 육식, 사회적 규범에 의해 발생하는 폭력, 가부장제에 의한 폭력, 폭력을 거부하기 위한 폭력. 영혜의 삶은 폭력으로 가득하다. 여기서 말하는 폭력이란 일반적으로 정의되는 폭력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띤다. 나는 카뮈의 말을 빌려 이를 부조리라고 하겠다. “온순하나 고지식해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던 영혜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고, 다만 그 모든 것을 뼛속까지 받아들였을 것이다.” 아버지의 폭력은 대표적인 부조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의 언니는 비겁했다. 아버지의 부조리에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였으며 그에 맞는 삶을 살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반면 영혜는 아버지가 행하는 부조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에 따르지도 반기를 들지도 않는다. 변화시키기엔 자신이 너무 나약했기 때문에 그것이 그녀가 보일 수 있는 유일한 태도였을 것이다. 결국 그녀는 육식으로 대표되는 아버지의 폭력에 거부하다가 사회에서 추방당한다. 영혜는 채식을 통해 폭력에서 벗어나려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 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욕심 없는 이의 지우개 나는 욕심이 없다.그래서 지우개를 집는다. 나의 목그의 욕그녀의 비유 없는 시에 담긴 괴로움 그런 힘듦에 지우개를 대고 문지른다.부디, 우리의 힘듦이 지워지기를
끝까지 녹여먹은 사탕처럼언제가 끝이었는지 모르겠어단 맛은 물을 넘겨도잔향을 남긴 채, 입 안에 서성이잖아 한 번쯤 깨물어 봤으면 폭죽되어 장식됐을까
땅이 식는다. 요란하게 지나가는 차들과, 꿈틀꿈틀 움직여가는 패딩들과,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아래 깔린 땅이 식는다. 식은 땅에 깃털을 한껏 흩날리고는 쓰러져 누워서 차츰 밝아지는 별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별은 여기서도 차갑게 웃는다. 분명히 별에 닿는 법을 매일같이 배우고 익혔다. 하지만 떨어지는 법을 배우지는 못했다. 텅텅 비어버린 가슴과 이따금씩 경련하는 심장과 깃털도 다 떨어진 날개를 가지고 뭘 한단 말인가 다시 별을 찾아 날갯짓을 해보라지만 더 이상 태울 것도 뭣도 없다. 그러나- 새 한 마리와 가로등 땅에 떨어져 길냥이들에게 파 먹히고 남은 흩날린 깃털 속에 살 몇 점과 그걸 가만히서 따뜻하게라도 덥혀주는 주황빛의 키다리 가로등 날개는 잘라내 버리고 가로등이나 되련다 내가 쏘아주는 빛이 별보다는 훨씬 따듯할 테니
정확한 사각형 속내비치는 햇빛일정하게 들리는 새소리와불안정하게 내지르는 소리,그 둘의 조화가 햇빛이다.아아, 평정의 빛이여뭐가 그리 급급하게 숨는가가리고 싶은 이 없으나가리는 이 있으니. . .이 빛이 없어, 지기 전에모든 소리를 담고 싶다네정확한 사각형 속하지만 이 조화를 완벽한자취로 남기기에는내 역량이 온전할까이 빛은 이제 저물지만사각형은 여전하니나도 그 속을 계속 주시하련다. . .
처,녀,구,매붉은 색의 원색적인 글자가 창문 하나에 하나씩 붙어있었다. 창문도 그렇고 건물도 그렇고 민망할 정도로 낡아 있었다. 왠지 사기가 의심되고 혹여 들어갔다 간이라도 떼일까 그는 다시 돌아가려 했다.“거기 민수씨 맞죠?”하지만 입구 앞에 있던 중매인이 그를 불렀다. 안경 쓴 그녀는 사나워 보였고 그는 별다른 저항 없이 끌려 들어갔다. 안은 밖보다 훨씬 낡았다. 밖은 신경 쓴 편이었다.방은 숨쉬기도 버거울 정도로 작았다.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있었고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먼지가 풀풀 일어났다. 좀먹고 솜이 튀어나온 의자에 앉으며 그는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곧 오십이 다 되어 가는데 물불을 가리는 것도 우스웠다. 그는 자기 분수를 알아야한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처음엔 결혼정보회사에 갔었다. 세련된 인테리어에다가 편안하고 푹신한 의자가 있었고 고급 스피커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그는 세련된 미래를 생각하며 몇 장의 체크리스트에 체크를 해나갔다. 흡연 여부와 음주 여부를 체크 할 때는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소득을 적기 시작할 때 점점 불안해 지더니 부모님의 노후대비를 체크하기 시작하자 불안은 폭발했다. 얼굴이 벌개진 채로 체크를 하다보니 이것이 체크리스트라기보다는 일종의 참회문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는 간단했다. 담당자는 앞면은 보지 않았다. 앞면엔 그가 자신있어하는 음주와 흡연 여부가 있었다. 담당자는 뒷장부터 보기 시작했다. 안 되는데 앞장이 중요한데, 라고 그가 생각을 맺기도 전에 담당자는 체크리스트를 집어넣었다.“죄송하지만…”그는 더 듣기도 전에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독신으로 살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주위의 야릇한 시선들이 부담스러웠다. 그도 텔레비전의 멋있는 배우들이나 가수들처럼 당당히 독신 선언을 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못 하는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리 안 하는 것이라고 해도 못 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했다. 네 처지에 안 하는게 말이 돼? 못 하는 거지. 결혼을 안 할 수도 없고 못 할 수도 없는 처지. 친척들은 언제 결혼 하냐고 물어대었다. 하지만 가장 묻던 외삼촌은 한숨을 푹 쉬더니 그에게 만 원을 주고 떠났다. 삼촌은 은퇴했고 그는 아직 일하고 있다. 옆집 아줌마는 아저씨! 했다가 아, 총각이었지 했다. 그는 결국 독신을 포기했다.여기서도 중매인이 이것저것을 물었다.그래도 이곳에선 내가 나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꼴초, 알코올 중독자, 노름꾼, 가정폭력범 같은 사람들보단 자신이 객관적으로 훨씬 나았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아주 좋습니다.”중매인이 말했다. 휴. 그는 안도했다. 그래도 내 분수에는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 탈북민이어도 어느 정도 예쁘장한 사람이지 않을까? 아니면 나이가 많아도 돈이 조금 있거나 다리나 팔이 없어도 말은 잘 통하는 사람을 소개해 주지 않을까?그녀가 성경책보다 두꺼운 책을 이리저리 넘길 동안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소개해줄 사람에 대해
한 남자가 있었다.남자는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고, 그로 인해 소설가라는 꿈까지 갖게 되었다.소설은 그의 인생의 전부였다.중학교에 진학하고 고등학교에 올라갈 때까지도, 그는 소설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그러나 그런 노력과는 무색하게, 그는 창작에 재능이 없었다.그가 쓴 문장은 난해했고, 그가 쓴 글의 줄거리는 새롭지도 흥미롭지도 않았다.그럼에도 그는 계속 글을 썼다.그는 자신을 믿었다.비록 지금은 자신의 글솜씨가 형편없었지만,이렇게 계속 쓰다보면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리라고 그는 생각했다.그렇게 그는 계속 글을 썼다1년,2년,3년 시간은 계속 흘렀다.그는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청년이 되었다.다른 사람들이라면 취직에 힘쓰고 있을 시기에도 그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었다.그리고 그의 글도 여전히 형편없었다.그는 점점 자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갔다.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남들은 번듯한 직장에 다니면서 남부럽지 않을 인생을 사는데,나는 여전히 허황된 꿈에 집착하고 있는 게 아닐까?남자는 글쓰기를 멈췄다.그러나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그는 우리나라에서 글을 잘 쓰기로 유명한 작가들을 만나보기로 했다.그들의 조언을 들어보고 자신의 글을 고쳐보기로 했다.그러고도 자신의 글이 형편없다면, 그때 그만두어도 좋다고 생각했다......남자는 첫 번째로 자신이 즐겨 읽던 소설의 작가에게 찾아갔다.작가는 그를 친절하게 맞아들였다. “어서오세요! 제 소설의 팬이시라구요?” “아, 네 그렇습니다.” “이것 참 제가 딱히 드릴만한 게 없는데, 사인이라도 한 장 드려야 하나?” “아뇨 괜찮습니다. 사실 제가 여기에 온 이유는 작가님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데요..”남자는 잠시 망설이더니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사실 제가 꽤 오랫동안 글을 써왔습니다.저도 작가님처럼 소설가가 되고 싶었거든요.그런데 저는 글쓰기에 재능이 없습니다.처음에는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제 글은 여전히 형편없습니다.혹시 작가님께서 도움을 좀 주실 수 없을까요?“ 작가는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더니 그에게 글을 보여 달라고 했다.남자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글을 보여주었다.아무리 봐도 형편없는 문장들이 남자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에게 자신의 쓰레기 같은 글을 보여주는 게 실례일까 걱정이 되었다. “흠.. 소재 자체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글을 쓴 지 꽤 오래 됐다고 하셨는데.. 표현이 좀 아쉽군요..” “작가님, 그렇다면 이 글을 어떻게 고치면 좋겠습니까?”작가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이건 도저히 고칠 수 있을 만한 글이 아니군요.글을 쓴 지 10년이 넘으셨다 하셨는데, 아직도 문장력이 이 수준이라면..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아무래도 글을 더 이상 안 쓰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요. 저도 당신 같은 시절이 있었습니다만..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이것 참, 여기까지 오셨는데.. 혹시 싸인이라도 한 장 받아 가실래요?“ 남자는 매우 실망한 채로 대답
문장소식
바로가기캠프 운영 날짜 : 1월 20일(월) ~ 22일(수) / 2박 3일 ▶신청하러 가기◀
문학광장 댓글챌린지 이벤트 2024년 한 해 동안 발행된 문학광장 콘텐츠를 보고,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추첨을 통해 참여 작가의 사인본과 캠핑 테이블 등 푸짐한 선물을 드립니다! ㅇ 참여방법 1. 2024년 발행된 문학광장 콘텐츠에 댓글을 남기고 캡처하세요! ★ 댓글 작성 가능 콘텐츠 : 김기태, 윤이안, 김중혁 소설가 및 조성래 시인의 작품 ★ 바로가기 - 김기태 소설가 : https://munjang.or.kr/board.es?mid=a40102000000&bid=0032&act=view&ord=B&list_no=101601&nPage=2&c_page= - 윤이안 소설가 : https://munjang.or.kr/board.es?mid=a40703000000&bid=0035&act=view&ord=B&list_no=103036&nPage=1&c_page= - 김중혁 소설가 : https://munjang.or.kr/board.es?mid=a40102000000&bid=0032&act=view&ord=B&list_no=103264&nPage=1&c_page= - 조성래 시인 : https://munjang.or.kr/board.es?mid=a40702000000&bid=0034&act=view&ord=B&list_no=102878&nPage=1&c_page= 2. 댓글 작성 후, 응모 폼에 설문 제출! ★ 인스타그램 피드 또는 스토리에 @munjang2005를 태그하여 댓글캡처본을 공유하면 당첨 확률이 UP! ★ 응모 폼 링크 : https://answer.moaform.com/answers/EO3oQP ㅇ 댓글 작성 플랫폼 : 유튜브, 문학광장 누리집, 팟빵, 인스타그램 등 어디든 OK! ㅇ 이벤트 기간 : 11.28(목) ~ 12.9(월) ㅇ 당첨자 발표 : 12.10(화), 개별 안내 예정 ㅇ 경품 안내 - 문학광장 작가 사인본 (16명) - 『천국어 사전』(5명), 『온난한 날들』(3명),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5명), 『영화보고 돌아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3명) - 접이식 캠핑 테이블 (5명) 지금 바로 댓글 남기고 특별한 선물을 받아보세요!
문장 ONE-PICK 이벤트 2024년 한 해 동안 문학광장과 함께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콘텐츠를 ONE-PICK 해주세요! 독자 코멘트는 문장웹진 2025년 1월호에 소개되며, 푸짐한 선물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ㅇ 참여방법 1. 2024년 문학광장 콘텐츠(문장웹진, 문장의소리, 문학집배원) 중 가장 인상 깊은 콘텐츠를 골라주세요! 2. 선택한 콘텐츠와 그 이유를 이벤트 응모 폼에 작성해 제출하세요! ★ 응모폼 링크 : https://answer.moaform.com/answers/Ev9lyN ㅇ 이벤트 기간 : 11.28(목) ~ 12.9(월) ㅇ 당첨자 발표 : 12.10(화), 개별 안내 예정 ㅇ 경품 안내 - 문학광장 작가 사인본 (4명 ): 『카카듀』 - 손난로 보조배터리 (12명) - 리싸이클 코끼리 노트 (9명) 여러분의 최애 콘텐츠를 골라 문학광장과 함께해보세요! 당첨자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숨은 문장이 찾기 이벤트 2024년 한 해 동안 문학광장과 함께 한 콘텐츠에 숨겨진 '문장이' 캐릭터를 찾아주세요! 정답을 맞히면 푸짐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ㅇ 참여 방법 1️. 2024년 문학광장 콘텐츠(문장웹진, 문장의소리, 문학집배원) 중 무작위로 '문장이' 캐릭터가 삽입된 5개의 콘텐츠를 찾아주세요! 2️. 찾아낸 '문장이' 캐릭터가 있는 콘텐츠 링크를 복사하여 설문폼에 제출하세요! ★ 설문폼 링크 : https://answer.moaform.com/answers/EKnp4g ㅇ 이벤트 기간 : 11.28(목) ~ 12.9(월) ㅇ 당첨자 발표 : 12.10(화), 개별 안내 예정 ㅇ 경품 안내 - 여행용 구급 키트(10명) - 로이텀 A5 다이어리 LEUCHTTURM 1917(5명) - 에코 키트 선물세트(손목가방, 대나무칫솔, 고체치약, 고체 3종 어메니티)(5명) 문장이를 찾아 문학광장의 재미를 더해보세요! 당첨자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