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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소리
문학광장 〈문장의소리〉는
2005년부터 시작된 문학 라디오입니다.
2024년 새롭게 개편된 〈문장의소리〉는
연출 유계영 시인, 진행 우다영 소설가, 구성작가 문은강 소설가가 참여합니다.
문학집배원
그 순간을 꽤 선명히 기억한다. 백영중학교 건물은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고, 덕분에 학교 전경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운동장에는 세로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야구부 아이들이 기합을 외치며 트랙을 돌고 있었고, 담장 근처 등나무 그늘에는 늦은 시간까지 동아리 활동을 하는 방송부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 중이었다. 야구부 애들이 나아갈 때마다 그림자가 점점 길어졌다. 그 그림 같은 배경 안으로 달음박질하려던 순간이었다. 내 하늘색 컨버스화 끈이 풀려 있었다. 나는 허리를 숙여 이제는 회색에 가까워진 흰 끈을 단단히 동여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왜 이렇게 눈이 시린 걸까. 양손으로 두 눈을 비벼 보있다. 눈은 여전히 시렸고, 눈앞에는 믿기 힘든 낯선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푸르른 기운이 무성한 6월의 학교에 내리는 함박는. 그것은 그 해의 녹지 않는 첫눈이었다. 때아닌 함박눈에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운동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눈송이를 손으로 받고, 고개를 쳐든 채 방방 뛰며 팔을 휘저었다. 건물 안의 아이들은 창가에 다닥다닥 붙어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 진풍경은 화면에 고스란히 담겼다. 나는 현관에 서서 팔을 뻗어 떨어지는 눈 한송이를 받았다. 내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그 결정체는 꼭 모형처럼 딱딱했으며, 차갑지 않았다. 차갑지 않은 눈이라니. 이게 정말 눈이 맞을까? 눈송이는 높은 기온과, 내 체온에도 녹지 않았다. 6월 충순, 초여름이었고, 등교 직전 뉴스에서 본 기온은 27도를 웃돌았다. 결정체의 모양이 일반적인 눈송이와는 달리 불규칙적이었다. 그리고 훨씬 밝게 반짝였다. 꼭 진짜 눈을 흉내 내어 만든 모형처럼. 그런데 곧 눈송이를 받치고 있던 손바닥 주위로 불그스름한 반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발 늦게 가려움이 밀려들었다. “아, 따가워.” 소리가 나는 곳을 좇았다. 운동장과 이어지는 계단에 앉아 있던 두어 명이 건물 처마 밑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머리와 체육복에 묻은 눈들을 털어 낶다. 그들의 몸에서 떨어지는 눈은 눈이라기보다는 조금 입자가 큰 모래알 같아 보였다. 잔 우박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박처럼 차갑지도 부서지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녹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쌓였다. 맨 처음 따갑다고 외쳤던 단발머리가 둥얼거렸다. “왜 이렇게 따갑지? 이거 뭐야? 나 새우 먹어서 알레르기 반응 올 때 꼭 이러는데.” “내 손도 그래. 이 두드러기들 뭐야? 징그러워.” 소매 밖으로 드러난 손목과 손등이 온통 붉었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하늘 곳곳을 수 놓은 하얀 점들이 보였다. 눈송이들은 조명을 받은 보석처럼 반짝이며 떨어졌다. 그 비현실적인 풍경에 정신 팔려 잇던 나를 깨운 건 운동장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였다. 제일 먼저 뛰쳐나왔던 1학년 아이 한 명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운동장 바닥을 구르고 잇었다. 황토색으로 물든 하복 교
가정 최지은 우리는 말이 없다 낳은 사람은 그럴 수 있지 낳은 사람을 낳은 사람도 그럴 수 있지 우리는 동생을 나눠 가진 사이니까 그럴 수 있지 저녁상 앞에서 생각한다 죽은 이를 나누어 가진 사람들이 모두 모이면 한 사람이 완성된다 싹이 오른 감자였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푸른 감자 엄마는 그것으로 된장을 끓이고 우리는 빗소리를 씹으며 감자를 삼키고 이 비는 계절을 쉽게 끝내려 한다 커튼처럼 출렁이는 바닥 주인을 모르는 손톱을 주웠다 나는 몰래 그것을 서랍 안에 넣는다 서랍장 뒤로 넘어가버린 것들을 생각하면서 서랍을 열면 사진 속의 동생이 웃고 있다 손을 들어 이마를 가리고 있다 환한 햇살이 완성되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다 우리가 눈 감으면 우리를 보러 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거기 있었다 -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창비, 2021)
정오가 되자 태양이 머리 꼭대기 위에 떠올랐다. 슬슬 직장인들이 몰려와 테이크아웃을 해 갈 시간대인데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당연했다. 이런 땡볕에 에어컨도 안 트는 카페에 올 손님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 틈을 타 나는 유리와 함께 카페 테이블에 얼굴을 대고 늘어져 있었다. 평택호 바로 앞 관광단지라는 특성 때문에 원래가 직장인보다는 뜨내기손님이 더 많은 가게였다. 단골도 별로 없다. 주변에 같이 장사하는 가게 사장님들 외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라 버스나 지하철을 탈 필요가 없다는 게 유일한 장점이었다.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테이블에 반대쪽 볼을 갖다 댔다. 테이블에서 올라오는 찬기로 얼굴이 조금은 시워해져서 이러고 있으면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점장님은 이러고 누워 있는 우리를 보고 나무늘보가 따로 없다고 잔소리를 하시지만. 볼을 바꿔 대려고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던 스킨답서스 화분에서 불길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듣는 순간 테이블에 엎어져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킬 정도로 놀랐다. “부점장님,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정도로 놀란 것도 오랜만이었다. 소리가 들린 것 자체가 오랜만이긴 했다. 지난달 초에 한 번 듣고 이번 달에 처음 듣는 거니까 얼추 두 달 만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유리가 불안해할까 봐 다시 테이블에 볼을 갖다 대고 누웠다. 누운 채로 점장님이 있는 포스기 쪽을 향해 물었다. “점장님, 저희 화분 몇 개만 더 뺄 수 없을까요?” 카페 내부에는 보이는 자리마다 화분이 깔려 있다. 어스프레소는 대대적으로 친환경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펼치곤 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커피 브랜드로도 유명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플라스틱 제로가 아니라, 여기 평택 에코시티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신소재 플라스틱만 사용한다는 뜻이지만 신소재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과 달리 금방 썩는다는 특징이 있으니 크게 다른 말은 아니다. 평택이 신소재 플라스틱 시번 사용 도시, 에코시티로 지정된 지 이제 10년째였다. 평택 구도심 아래쪽, 평택호 인근 지역이 에코시티로 지정된 이후 시티 내에서는 사용하는 플라스틱 양에 제한이 없어졌다. 신소재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만큼 탄소 배출도 타 지역보다 20퍼센트까지 더 가능하다.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최근 들어 공장이나 기업의 본사가 에코시티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스프레소의 본사만 해도 에코시티 내에 있었다. 그러니까 가게 내부에 가득한 화분은 어스프레소의 친환경 브랜드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어스프레소 사장님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게 내 업무 환경을 저하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었다. 점장님에게 매일 우리 화초 좀 몇 개만 빼자고 말해도 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점장님이 말했다. “명색이 에코시티인데, 초록이 좀 많아야 보기도 좋지 않니?” 초록, 저도 참 좋아하는
창원 조성래 창원으로 갔다 이제 두 달도 더 못 산다는 어머니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에 서명하러 갔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일단 도착하면 나는 그곳과 너무 가까운 사람이었다 먼 곳은 먼 곳으로 남겨 두기 위하여 나는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먼 곳이 너무 싫어서 먼 곳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세상의 모든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속속들이 모든 먼 곳을 다 알고 모든 먼 곳을 파악하고 모든 먼 것들의 사정을 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전지하신 하느님께 합장하고 기도 올리는 성모마리아······ 파티마 병원에 어머니는 누워 계셨다 빗자루에 환자복을 입혀 놓은 것처럼 바싹 말라서 아직 살아 계셨다 내 손을 잡고 울다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다 조금 뒤면 자기가 죽을 것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처럼······ 내가 하나도 밉지 않은 듯이, 어제도 날 본 사람처럼 웃었다 다음 생에는 안 싸우고 안 아픈 곳에서 함께 있자고 이제 당신이 내 자식으로 태어나라고 내가 당하겠다고 당신도 당해 보라고 눈물이 끝 모르고 흘렀다 눈물 흘릴 자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식 된 사람인 것처럼······ 그 시각 모든 일이 먼 곳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선 엄마도 죽고 나도 죽고 끔찍한 날 피해 자리를 비킨 동생도 죽고 모두 죽어서 죽고 나서 웃고 있었다 모두 지난 일이라는 듯 모두 지나야 했던 일이라는 듯······ 그러나 그건 나 혼자서 듣는 소리였다 어머니는 홀로 죽을 것이며 나는 여전히 어떤 현실들에 마비된 채 살아도 되는 사람처럼 살아서 살아 있는 것 같은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닐 것이다 —시집 『천국어사전』(타이피스트, 2024)
도경이 사는 곳은 용희가 익히 경험해 본 장소였다. 대학 시절 같은 과 동기의 자취방이 꼭 저랬다. 여름에 동기의 자취방은 주변에 햇빛을 가려 줄 만한 큰 건물이 없어 작은 냉장고에 몸을 쑤셔 넣고 싶은 집으로 탈바꿈했고, 매서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는 동면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뼈 시리도록 반성케 하는 집으로 변모했다. 도경의 집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가림막 하나 없는 여름 한낮의 옥탑방은 재난 지역으로 선포해도 무방했다. 딱 한 가지 좋은 점은 상쾌한 가을밤이 내려앉았을 때 옥상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캔 맥주가 손에 들려 있으면 더 좋았다. 용희는 옥탑방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경에게 캔 맥주 한 박스를 몰래 사다 주는 것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용희는 긴 한숨을 내쉬며 언덕길을 내려다보았다. 도경이 검은 봉지와 막대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서 자신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도경이 용희를 알아보는 데 쓰인 10초는 용희에게 머나먼 북극의 바다를 두어 번 갔다 오는 시간만큼 길게 느껴졌다. 당황한 용희는 마찬가지로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도경을 향해 소리쳤다. “제가 지구에 커튼을 쳐 드릴게요!” 도경은 입을 벌린 채로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용희는 도경의 집 옥상에 놓인 평상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지난 5년간 얼핏얼핏 그려 왔던 일이, 지난 이틀간 문득문득 상상했던 순간이 눈앞에 당도했다는 기쁨에 용희는 이마에서 얼굴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방울도 잊은 채 자신의 심장 소리에만 주의를 기울였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에도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그러나 그 역시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 날뛰는 소리는 아니었다. 용희는 심장이 악보 없는 음악에 홀려 무작위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처음으로 천문대를 찾았을 때 광활한 우주를 탐사하며 느꼈었던, 거대하고 두려운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예측불가능한 불안함 속에서도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몸을 떨던 때의 심장 소리였다. 그때, 도경이 옥탑방에서 나와 유리컵 두 개와 감자칩을 담은 그릇을 평상에 내려놓았다. 도경은 평상에 편하게 앉더니 검은 봉지에 든 맥주 세 병을 꺼냈다. “병맥주 한 병을 마셨을 때 기분이 제일 좋아요. 그제 제 주량이에요. 더 마시면 정신 줄 놔요.” 용희는 물었다. 그런데 왜 세 병을 샀느냐고. “술이 술을 부르니까.” 용희는 빙긋 웃었다. 도경은 용희의 컵에 맥주를 따른 후 자신의 컵을 스스로 채웠다. 건배 없이 도경이 먼저 맥주를 들이켰다. 용희도 마셨다. 도경이 말했다. 정말 화를 참을 수 없었다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내 탓은 아닌 것 같은데, 정말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r
양동이 이린아 그해 여름 양동이 속에 머리를 넣고 살았다 양동이는 늘 밖에서부터 우그러진다 우그러진 노래로 양동이를 펴려 했다 그때 나는 관객이 없는 가수가 되거나 음역을 갖지 못한 악기의 연주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잘 보세요, 얼굴에서 귀는 유일하게 찌그러진 곳입니다 보컬 레슨 선생이 말했다 가끔 내 목소리가 내 귀를 협박하곤 했다 세모 눈썹, 불타버린 미간을 펴며 귓속과 목구멍의 구조를 샅샅이 뒤지는 소리를 내려 했던 여름 노래, 그해 여름에 배운 노래는 반팔이었고 샌들을 신었고 목덜미에 축축한 바람이 감기는 그런 노래였다 양동이 속에서 노래는 챙이 넓은 모자를 뒤집어쓰곤 했다 골똘한 눈, 꺾인 손등으로 받치고 있는 청진의 귀를 향해 벌거벗은 노래를 불렀다 양동이 속에서 듣던 1인용 노래 허밍과 메아리의 가사로 된 노래를 우그러진 모자처럼 쓰고 다녔다 - 시집 『내 사랑을 시작한다』 (문학과지정사, 2023)
글틴
잘 꾸지도 않는 꿈을 꾸면 그건 악몽이었고악몽을 꾸면 난 항상 뭔가에 쫓겼다?-도망 좀 그만 쳐꿈속에서 연인이 소리쳐도 그럴 수밖에 없었어난 무서운 걸 보다 자는 버릇이 있거든그렇지만 이상한 일이지요즘 내가 새벽마다 보는 건 워커에게 물려 죽거나 적에게 사로잡힐지언정 어지간해선 후퇴를 모르는 인간들로 가득 찬 드라마인데도그들은 항상 맞서 싸우는데 난 도망침연습들은 하다가 포기했어어제도 오늘도 -?도망침-갈고리 하나 넣어준 건 그래도 희망을 품으라고 내일은 모르잖아 그렇지?맞아.하지만 지금의 난 눈을 뜨면 단단히 걸어 잠근 일 층 화장실의 잠금장치가,시야가 흐려 눈을 깜빡이면 갓난아이 뒤집어엎듯 거칠게 시집을 엎어놓는 손가락이그런데 왜 흐렸을까, 눈물? 다시 깜빡이면 갈아엎은 인스타 친친 목록이.12월 12일에 거머쥔 종이 한 장 짜리 성취는 아직 내게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는데사실 예전부터 그게 모든걸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거 알고 있었어어차피 두 달 뒤면 똑같은 사람들 사이에 묻히게 될테니까-그때에는 적당한 방패를 또다시 찾아야겠지?그게 뭔지 아직 모르고 아니 사실 알아그러니 나는 다시 해야겠지숙련된 발레리나처럼 뒤를 도는 연습먹잇감을 노려보는 허기진 짐승처럼 표적을 응시하는 연습손에 쥔 총을 절벽에 매달린 연인의 손처럼 놓치지 않는 연습날 쫓아오는 것의 관자놀이에 마침내 시원하게 총알을 박아주는 연습을그러곤 일 층 화장실 잠금장치부터 풀어야 할 거야.-해야 할 연습들이 많네괜찮아 연습에는 이골이 나 있거든 12년의 교육과정 특히 마지막 3년의 교육이 날 이렇게 만들었지-그것 때문만은 아닐 텐데들켰네 하지만 넌 진짜 이유를 알 테니 여기엔 공백으로 남겨둘래그러니 안녕 나 다시 자러 갈게-꿈에서 만나아니다사실 자러 갈 필요도 없을 것 같아난 충분히 연습했고이제는 일 층 화장실 잠금장치를 풀 거니까
구름은 마술사다울고 있는 고양이 모양날고 있는 용 모양이 있다나한테는 고양이처럼 보이지만누나한테는 강아지 모양이 보인다
풀잎 이슬이 서리가 되는 계절. 나는 차가운 연말의 거리를 걷는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검정 패딩을 입었다. 그것은 일종의 유니폼같이도 보여 사람에 굶주린 나는 그들을 흠모하듯 일방적인 유대에 빠졌다. 그러나 이내 처지가 처량해진다고 생각해 금방 충동적인 애정은 사그라뜨렸다.사람의 뒷모습을 보노라면 입김을 담배 연기로 착각해서 이따금 놀란다. 이런 스스로가 민망해져 괜히 추위로 빨개진 얼굴을 문지를 때였다. 손가락 사이로 눈에 익은 얼굴을 보았다. 웃으며 대화하는 옆얼굴이었다. 그것을 보고부터 나의 걸음은 어색해졌고, 빙 돌아가는 샛길을 향했다. 어차피 목적지는 같을 테지만 말이다.집에 나온 걸 후회한다. 이렇게 도망칠 거면 애초에 왜 가겠다고 한 건지.중학교 동창회 소식은 전날에 들었다. 정확히는 졸업 당일에 정해진 것이었다. 날짜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올해 크리스마스에 학교 인근 호프집에서 동창회를 하기로 했다. 중학교 근처에 술집이 있는 것이 입학 무렵부터 신입생들 사이에서 화제였기 때문에 장소는 그때부터 정해진 꼴이었다.조금 전에 본 얼굴도 나의 중학교 동창이었다. 내게 몇 없는, 친했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그로부터 모습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나는 당시와 너무 달라진 모습을 하고 있다. 중학교 3학년을 다닐 때였다. 나는 함께 다니는 친구가 두 명 정도뿐이었다. 학교 안에서는 줄곧 그들과 같이 있었다. 그중 한 명과는 같은 음악 학원을 다녔기에, 하루의 절반 정도를 그와 같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한 명을 소위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의 그 ‘한 명’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충분히 성공한 인생을 사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믿음은 겨울방학 전에 무너지게 됐다.그때는 눈이 온 뒤였다. 먼지와 섞여 불결한 회색을 띠는 눈을 밟으며 학교로 갔다. 나의 집은 학교와 꽤 떨어진 곳에 있었기에 등교를 혼자서 하는 일이 많았다. 나는 나이에 비해 순결한 정신을 가졌었다 할 수 있는데, 그날도 미끄러운 길에 대한 불평보다 친구들과 눈을 가지고 놀 생각에 설렘이 앞섰다.학교 건물이 보일 때 같은 학원의 그 친구도 같이 보였다. 혼자가 아니었다. 양옆으로 한 명씩을 끼고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인사를 하려던 찰나에 당황하고 말아, 들었던 한쪽 손을 부자연스럽게 휙 내려버렸다. 병적인 수줍음의 탓이었다. 귀 한쪽에서 들려오는 키득대는 소리가 그 병을 더욱 도지게 했다. 친구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모멸을 느꼈다.사실은 그 웃음이 나를 향한 것인지, 비웃음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건은 그날 등굣길 밟았던 눈처럼 당시의 순백한 정신을 어지러뜨렸다. 은연중에 품은 좁은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감의 결과였으리라 생각한다.그 후 나는 달라졌다. 고등학교에서는 외톨이를 자처했다. 어차피 그리될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타의보다는 자의가 되고 싶었다. 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을 잊었고, 누군가 말을 걸어와도 적당히 대답만 할 뿐이었다.그런 식의 3년을 보냈다. 어
오늘은 수프를 나눠 마시자영혼을 맑게 해주는 따뜻한 수프를천사가 유리창에서 우리를 내려다볼 때지금의 온도가 딱 적당해겨울의 한가운데에서닭고기 요리가 없어도 아름다운 저녁성탄절의 밤불빛이 우리를 쓰다듬는다쏟아진다수프를 뜬 손이생각하듯이 멈추어 있을 때와락 하고 울어버린십이월의 어느 날하루를 가마솥에 몰아세우고펄펄 끓는 수프는 전부둥그스름한 그릇안에는 슬픔이 녹아 있어너는 맥박을 재듯이 말한다우리가 울게 되느냐고나는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울지 않았던 하루는 없어오늘만큼은 이방인의 촛대를 켜고그 위에서 달콤한 수프를 나눠 마시자눈 내리는 풍경은 점점 멀어지고마침내 진정한 조명 아래서흰겨울빛 등소리가 땅으로 잦아든다듣는 얼굴마침내 돋을새겨진 날개뼈너는, 그것이 사랑니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난쟁이다. 이것은 선천적인 불공평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난쟁이이다. 그는 철거 구역의 천대받는 노동자다. 이것은 사회적인 불공평이다. 그의 선천적 불공평이 그가 천대받는 노동자가 되도록 만들었고, 사회적 불공평을 낳은 것이다.어머니와 아버지 집안은 대대로 노예였다. 할아버지의 아버지 대에서 노예제는 사라졌으나 순진한 증조부모는 해방을 두려워했다. 할아버지는 집과 땅을 얻어 벗어났으나 교육도, 경험도 없어 그것들을 전부 잃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난쟁이이다.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공구 상자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동을 했으나 늘 가난했다. 그의 첫째 아들은 책을 많이 읽고 공부에 열의를 놓지 않았지만 결국 그를 포함한 아버지의 세 자식은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하러 다니게 되었다. 여기서도 선천적 불공평이 사회적 불공평을 낳은 것인가?아들들이 다니는 공장 사장은 일자리를 빌미로 어린 공원들을 억압한다. 사장의 정원에 있는 손질된 나무가 햇빛을 받아 무럭무럭 잘 자랄 때 어린 공원들은 탁한 공기, 소음 속에서 발육 부조 현상을 나타낸다. 사장의 나무가 ‘나무 종합 병원’에서 나온 나무 의사의 진찰을 받을 때, 어린 조역은 날마다 코피를 흘린다. 이 불공평은 사회적 불공평이 낳은 것인가, 아니면 선천적 불공평이 낳은 것인가?우리는 학생이지만 곧 노동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불공평을 허용하는 자유민주주의 세계에서 ‘좋은 노동’과 ‘열악한 노동’을 구분 짓는 것은 대부분 선천적 불공평 때문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40년이 넘은 작품이지만 21세기 철거 구역 노동자의 모습을 담아내었다 해도 할 말이 없다. 사회는 그들의 불공평함에 형평성을 얹어주기는커녕 ’오 년이 아니라 오백 년‘이 걸려 지은 집을 손쉽게 허물어버린다. 국가란 무엇인가? 오직 ’차별될 수 있는 자유‘만을 승인하거나 ’동등하게 인정받을 평등‘만을 허용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국가는 시민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회적 불공평이 선천적 불공평을 일으키는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에 위의 두 가지를 모두 보장하기 위해서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최하층의 삶에도 꿈은 존재해야 한다. 아파트 매매권으로 사업하는 자의 꿈만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안 돼요’을 말할 수 없는 입도 꿈을 쏘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안 돼요‘을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이다. 누구라도 그것을 선천적 불공평을 이유로 빼앗을 수 없다.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꿈이, 무거운 쇠공이 되도록 만든 것은 누구인가? 그 꿈을 펼치고자 한 날갯짓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악당‘은 누구인가? 영수와 영희가 죽여버리라고 한 사회는 그들의 일상을 둘러싸고 무너뜨리려 한다. 오 년이 아니라 오백 년의 일상을. 오백 년이 걸쳐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정당하다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는 불공평의 굴레를 벗어던져야 한다. 그것은 어떤 자연적인 값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착취로써 이어져 온 것이기 때문이다. 천국에 있는 사회는 낙원 구 주민들을 지옥으로 이끌었지만, 그 안의 누구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품속의 쇠공이라도
내 이정표는 언제나 제멋대로였다글줄의 배열은 엇나가 있었고잉크가 다하면 탁한 회색이 묻어났다 기력에 따라 잠시 펜을 내려 두었다, 처음부터지긋지긋한 펜이 손에 잡힐 때면딱딱한 감촉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당시의 행동 하나하나를 몸으로 되뇌이며 나를 담았다내게는 씻을 수 없는 추레함을 공유할 사람이 필요했다지난 만행, 부끄러운 흑역사, 꽉찬 쓰레기통같은 것들을 듣고 싶었다그러니 나는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감정에 다다르기까지줄곧 펜을 잡았던 이야기를 글 속에 적어내렸다언젠가는, 이라는 말을 번복하며
PROLOGUE. -쨍그랑 어느 금요일 저녁, 사람들이 붐비는 도심의 한 호프집. 갑작스러운 파열음에 사람들이 모두 한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자신을 보는 시선들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무언가 중얼거리며 한 손으로는 술병 목을, 다른 한 손으로 깨진 술병 조각을 뒤적이고 있었다. “자기야, 우리 그냥 나가자. 여기 무서워.”“그래, 뭔 일 일어날 것 같아.” 남자의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커플이 조심스레 일어났다.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낡은 의자는 곧바로 바닥을 긁으며 거친 비명을 질렀고, 그 소리에 자잘하게 떨리던 남자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곧 남자의 고개가 들리며 실핏줄이 터진 그의 눈이 드러났다. 그 커플이 서로 손을 붙잡고 몇 걸음을 떼기가 무섭게 남자는 스르륵 일어났다. 누군가가 침을 삼켰다. 남자는 커플을 뚫어지게 응시하면서, 손으로는 술병 목을 고쳐 잡았다. “야, 니들 뭐냐? 내가 무섭냐? 엉? 나 너네 안 죽이는데? 이게 그렇게 무섭냐?” 가게에 적막이 흘렀다. 남자는 그 말을 하고 나서 뭔가 참는 듯 깊게 숨을 쉬며 고개를 들고 눈을 감았다. 걸음을 멈췄던 커플은 그의 눈치를 보며 허겁지겁 가게를 나갔다. 소란에 무슨 일인지 살피러 주방에서 나온 사장이 남자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계속 이러시면 저도 어쩔 수 없이 영업방해죄로 신고할 겁니다.” 남자는 그 말에 눈을 뜨고 사장을 보았다. “이만 나가주세요. 어제도 경고했잖습니까?” 사장은 남자의 손에 들린 깨진 유리병을 뺏어 들고는 빗자루를 가지고 와 바닥에 자글자글하게 깔린 유리 조각을 치웠다. 남자는 그저 가만히 서 있다 휘청이는 발걸음으로 가게를 나갔다. 남자가 나간 후, 가게 안은 다시 여느 호프집처럼 불금을 외치는 사람들의 소리로 왁자지껄해졌고, 곧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남자는 잊혔다. 다음 날 아침 7시 뉴스, [속보입니다. 어젯밤 11시경 서울 00구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빠른 신고로 피해자 박 모 씨는 발견된 직후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결국 새벽 3시경 숨졌습니다. 가해자 최 모 씨는 서0 대학병원 레지던트로.... ] “어? 저 살인자, 어제 그 남자 아니야?” 01. 내 세상은 암흑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특히 어렸을 때는, 매일 같이 흐릿한 어둠만이 감도는 거실에서 폭력을 견디는 것이 일상이었다. 맞는 건 언제나 아팠고, 짐승을 보는 듯이 애정을 담지 않은 아버지의 눈을 마주칠 때면 그냥 죽어버리고 싶었다. 아버지는 유명한 신경외과 의사였는데 난 그게 하나도 자랑스럽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게 지옥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수술 중 의도적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그 뉴스는 삽시간에 퍼졌고 아버지는 반강제적으로 사표를 내게 되었다. 회사에서 잘린 날부터 아버지는 거실에서 온종일 술을 마시며 자신의 인생을 한탄했다. 나는 그 소리에 질려갔고, 집을 나설 때마다 들려오는 시선이 두려워 나는 학교에 가지 않고 방에서만 생활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일이 일어났다. “야, 너 어딨어. 안 나와? 야!”“여보,
문장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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