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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소리
문학광장 〈문장의소리〉는
2005년부터 시작된 문학 라디오입니다.
2024년 새롭게 개편된 〈문장의소리〉는
연출 유계영 시인, 진행 우다영 소설가, 구성작가 문은강 소설가가 참여합니다.
문학집배원
그 순간을 꽤 선명히 기억한다. 백영중학교 건물은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고, 덕분에 학교 전경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운동장에는 세로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야구부 아이들이 기합을 외치며 트랙을 돌고 있었고, 담장 근처 등나무 그늘에는 늦은 시간까지 동아리 활동을 하는 방송부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 중이었다. 야구부 애들이 나아갈 때마다 그림자가 점점 길어졌다. 그 그림 같은 배경 안으로 달음박질하려던 순간이었다. 내 하늘색 컨버스화 끈이 풀려 있었다. 나는 허리를 숙여 이제는 회색에 가까워진 흰 끈을 단단히 동여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왜 이렇게 눈이 시린 걸까. 양손으로 두 눈을 비벼 보있다. 눈은 여전히 시렸고, 눈앞에는 믿기 힘든 낯선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푸르른 기운이 무성한 6월의 학교에 내리는 함박는. 그것은 그 해의 녹지 않는 첫눈이었다. 때아닌 함박눈에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운동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눈송이를 손으로 받고, 고개를 쳐든 채 방방 뛰며 팔을 휘저었다. 건물 안의 아이들은 창가에 다닥다닥 붙어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 진풍경은 화면에 고스란히 담겼다. 나는 현관에 서서 팔을 뻗어 떨어지는 눈 한송이를 받았다. 내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그 결정체는 꼭 모형처럼 딱딱했으며, 차갑지 않았다. 차갑지 않은 눈이라니. 이게 정말 눈이 맞을까? 눈송이는 높은 기온과, 내 체온에도 녹지 않았다. 6월 충순, 초여름이었고, 등교 직전 뉴스에서 본 기온은 27도를 웃돌았다. 결정체의 모양이 일반적인 눈송이와는 달리 불규칙적이었다. 그리고 훨씬 밝게 반짝였다. 꼭 진짜 눈을 흉내 내어 만든 모형처럼. 그런데 곧 눈송이를 받치고 있던 손바닥 주위로 불그스름한 반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발 늦게 가려움이 밀려들었다. “아, 따가워.” 소리가 나는 곳을 좇았다. 운동장과 이어지는 계단에 앉아 있던 두어 명이 건물 처마 밑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머리와 체육복에 묻은 눈들을 털어 낶다. 그들의 몸에서 떨어지는 눈은 눈이라기보다는 조금 입자가 큰 모래알 같아 보였다. 잔 우박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박처럼 차갑지도 부서지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녹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쌓였다. 맨 처음 따갑다고 외쳤던 단발머리가 둥얼거렸다. “왜 이렇게 따갑지? 이거 뭐야? 나 새우 먹어서 알레르기 반응 올 때 꼭 이러는데.” “내 손도 그래. 이 두드러기들 뭐야? 징그러워.” 소매 밖으로 드러난 손목과 손등이 온통 붉었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하늘 곳곳을 수 놓은 하얀 점들이 보였다. 눈송이들은 조명을 받은 보석처럼 반짝이며 떨어졌다. 그 비현실적인 풍경에 정신 팔려 잇던 나를 깨운 건 운동장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였다. 제일 먼저 뛰쳐나왔던 1학년 아이 한 명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운동장 바닥을 구르고 잇었다. 황토색으로 물든 하복 교
가정 최지은 우리는 말이 없다 낳은 사람은 그럴 수 있지 낳은 사람을 낳은 사람도 그럴 수 있지 우리는 동생을 나눠 가진 사이니까 그럴 수 있지 저녁상 앞에서 생각한다 죽은 이를 나누어 가진 사람들이 모두 모이면 한 사람이 완성된다 싹이 오른 감자였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푸른 감자 엄마는 그것으로 된장을 끓이고 우리는 빗소리를 씹으며 감자를 삼키고 이 비는 계절을 쉽게 끝내려 한다 커튼처럼 출렁이는 바닥 주인을 모르는 손톱을 주웠다 나는 몰래 그것을 서랍 안에 넣는다 서랍장 뒤로 넘어가버린 것들을 생각하면서 서랍을 열면 사진 속의 동생이 웃고 있다 손을 들어 이마를 가리고 있다 환한 햇살이 완성되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다 우리가 눈 감으면 우리를 보러 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거기 있었다 -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창비, 2021)
정오가 되자 태양이 머리 꼭대기 위에 떠올랐다. 슬슬 직장인들이 몰려와 테이크아웃을 해 갈 시간대인데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당연했다. 이런 땡볕에 에어컨도 안 트는 카페에 올 손님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 틈을 타 나는 유리와 함께 카페 테이블에 얼굴을 대고 늘어져 있었다. 평택호 바로 앞 관광단지라는 특성 때문에 원래가 직장인보다는 뜨내기손님이 더 많은 가게였다. 단골도 별로 없다. 주변에 같이 장사하는 가게 사장님들 외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라 버스나 지하철을 탈 필요가 없다는 게 유일한 장점이었다.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테이블에 반대쪽 볼을 갖다 댔다. 테이블에서 올라오는 찬기로 얼굴이 조금은 시워해져서 이러고 있으면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점장님은 이러고 누워 있는 우리를 보고 나무늘보가 따로 없다고 잔소리를 하시지만. 볼을 바꿔 대려고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던 스킨답서스 화분에서 불길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듣는 순간 테이블에 엎어져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킬 정도로 놀랐다. “부점장님,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정도로 놀란 것도 오랜만이었다. 소리가 들린 것 자체가 오랜만이긴 했다. 지난달 초에 한 번 듣고 이번 달에 처음 듣는 거니까 얼추 두 달 만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유리가 불안해할까 봐 다시 테이블에 볼을 갖다 대고 누웠다. 누운 채로 점장님이 있는 포스기 쪽을 향해 물었다. “점장님, 저희 화분 몇 개만 더 뺄 수 없을까요?” 카페 내부에는 보이는 자리마다 화분이 깔려 있다. 어스프레소는 대대적으로 친환경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펼치곤 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커피 브랜드로도 유명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플라스틱 제로가 아니라, 여기 평택 에코시티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신소재 플라스틱만 사용한다는 뜻이지만 신소재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과 달리 금방 썩는다는 특징이 있으니 크게 다른 말은 아니다. 평택이 신소재 플라스틱 시번 사용 도시, 에코시티로 지정된 지 이제 10년째였다. 평택 구도심 아래쪽, 평택호 인근 지역이 에코시티로 지정된 이후 시티 내에서는 사용하는 플라스틱 양에 제한이 없어졌다. 신소재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만큼 탄소 배출도 타 지역보다 20퍼센트까지 더 가능하다.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최근 들어 공장이나 기업의 본사가 에코시티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스프레소의 본사만 해도 에코시티 내에 있었다. 그러니까 가게 내부에 가득한 화분은 어스프레소의 친환경 브랜드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어스프레소 사장님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게 내 업무 환경을 저하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었다. 점장님에게 매일 우리 화초 좀 몇 개만 빼자고 말해도 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점장님이 말했다. “명색이 에코시티인데, 초록이 좀 많아야 보기도 좋지 않니?” 초록, 저도 참 좋아하는
창원 조성래 창원으로 갔다 이제 두 달도 더 못 산다는 어머니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에 서명하러 갔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일단 도착하면 나는 그곳과 너무 가까운 사람이었다 먼 곳은 먼 곳으로 남겨 두기 위하여 나는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먼 곳이 너무 싫어서 먼 곳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세상의 모든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속속들이 모든 먼 곳을 다 알고 모든 먼 곳을 파악하고 모든 먼 것들의 사정을 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전지하신 하느님께 합장하고 기도 올리는 성모마리아······ 파티마 병원에 어머니는 누워 계셨다 빗자루에 환자복을 입혀 놓은 것처럼 바싹 말라서 아직 살아 계셨다 내 손을 잡고 울다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다 조금 뒤면 자기가 죽을 것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처럼······ 내가 하나도 밉지 않은 듯이, 어제도 날 본 사람처럼 웃었다 다음 생에는 안 싸우고 안 아픈 곳에서 함께 있자고 이제 당신이 내 자식으로 태어나라고 내가 당하겠다고 당신도 당해 보라고 눈물이 끝 모르고 흘렀다 눈물 흘릴 자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식 된 사람인 것처럼······ 그 시각 모든 일이 먼 곳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선 엄마도 죽고 나도 죽고 끔찍한 날 피해 자리를 비킨 동생도 죽고 모두 죽어서 죽고 나서 웃고 있었다 모두 지난 일이라는 듯 모두 지나야 했던 일이라는 듯······ 그러나 그건 나 혼자서 듣는 소리였다 어머니는 홀로 죽을 것이며 나는 여전히 어떤 현실들에 마비된 채 살아도 되는 사람처럼 살아서 살아 있는 것 같은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닐 것이다 —시집 『천국어사전』(타이피스트, 2024)
도경이 사는 곳은 용희가 익히 경험해 본 장소였다. 대학 시절 같은 과 동기의 자취방이 꼭 저랬다. 여름에 동기의 자취방은 주변에 햇빛을 가려 줄 만한 큰 건물이 없어 작은 냉장고에 몸을 쑤셔 넣고 싶은 집으로 탈바꿈했고, 매서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는 동면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뼈 시리도록 반성케 하는 집으로 변모했다. 도경의 집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가림막 하나 없는 여름 한낮의 옥탑방은 재난 지역으로 선포해도 무방했다. 딱 한 가지 좋은 점은 상쾌한 가을밤이 내려앉았을 때 옥상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캔 맥주가 손에 들려 있으면 더 좋았다. 용희는 옥탑방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경에게 캔 맥주 한 박스를 몰래 사다 주는 것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용희는 긴 한숨을 내쉬며 언덕길을 내려다보았다. 도경이 검은 봉지와 막대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서 자신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도경이 용희를 알아보는 데 쓰인 10초는 용희에게 머나먼 북극의 바다를 두어 번 갔다 오는 시간만큼 길게 느껴졌다. 당황한 용희는 마찬가지로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도경을 향해 소리쳤다. “제가 지구에 커튼을 쳐 드릴게요!” 도경은 입을 벌린 채로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용희는 도경의 집 옥상에 놓인 평상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지난 5년간 얼핏얼핏 그려 왔던 일이, 지난 이틀간 문득문득 상상했던 순간이 눈앞에 당도했다는 기쁨에 용희는 이마에서 얼굴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방울도 잊은 채 자신의 심장 소리에만 주의를 기울였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에도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그러나 그 역시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 날뛰는 소리는 아니었다. 용희는 심장이 악보 없는 음악에 홀려 무작위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처음으로 천문대를 찾았을 때 광활한 우주를 탐사하며 느꼈었던, 거대하고 두려운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예측불가능한 불안함 속에서도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몸을 떨던 때의 심장 소리였다. 그때, 도경이 옥탑방에서 나와 유리컵 두 개와 감자칩을 담은 그릇을 평상에 내려놓았다. 도경은 평상에 편하게 앉더니 검은 봉지에 든 맥주 세 병을 꺼냈다. “병맥주 한 병을 마셨을 때 기분이 제일 좋아요. 그제 제 주량이에요. 더 마시면 정신 줄 놔요.” 용희는 물었다. 그런데 왜 세 병을 샀느냐고. “술이 술을 부르니까.” 용희는 빙긋 웃었다. 도경은 용희의 컵에 맥주를 따른 후 자신의 컵을 스스로 채웠다. 건배 없이 도경이 먼저 맥주를 들이켰다. 용희도 마셨다. 도경이 말했다. 정말 화를 참을 수 없었다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내 탓은 아닌 것 같은데, 정말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r
양동이 이린아 그해 여름 양동이 속에 머리를 넣고 살았다 양동이는 늘 밖에서부터 우그러진다 우그러진 노래로 양동이를 펴려 했다 그때 나는 관객이 없는 가수가 되거나 음역을 갖지 못한 악기의 연주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잘 보세요, 얼굴에서 귀는 유일하게 찌그러진 곳입니다 보컬 레슨 선생이 말했다 가끔 내 목소리가 내 귀를 협박하곤 했다 세모 눈썹, 불타버린 미간을 펴며 귓속과 목구멍의 구조를 샅샅이 뒤지는 소리를 내려 했던 여름 노래, 그해 여름에 배운 노래는 반팔이었고 샌들을 신었고 목덜미에 축축한 바람이 감기는 그런 노래였다 양동이 속에서 노래는 챙이 넓은 모자를 뒤집어쓰곤 했다 골똘한 눈, 꺾인 손등으로 받치고 있는 청진의 귀를 향해 벌거벗은 노래를 불렀다 양동이 속에서 듣던 1인용 노래 허밍과 메아리의 가사로 된 노래를 우그러진 모자처럼 쓰고 다녔다 - 시집 『내 사랑을 시작한다』 (문학과지정사, 2023)
글틴
밤이 찾아온다나는 새벽에 있다.한 점 행해 가다가눈이 부신 밝음에 시려오는 맘, 창문.석양이 만드는 것은 쓸쓸함이 아닌벌건 빛깔의 추억내 눈에 오직 담겨오던 것은 밤이 아닌 낮어둠이 아닌 빛하늘에 떠있는 달삶은 몸부림이다.그 길은 동굴 속이다.검은 길을 걷던 와중에도 불을 붙이려던 노력이다.밤에만 보이는 별과 같고죽음을 향한 길 위 심는 꽃 한송이의 아름다움이다.찾아오는 밤을 앎에도 불구하고팔레트에는 물감이 줄지 않는다
오후는 기울어지고친구의 손을 잡은 채 억새 들판을 보았어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의 한숨반짝이는 옆얼굴들판은 누웠다가 일어나는 일그래야 하니까라고 말했어 일종의 연극과 같다고비어버린 서글픔을 안고 있으면예언은 우리를 어둠이 가는 곳으로 밀어버려백색광 아래 녹아내린 리듬너만이 가진 리듬을 쓰라고그랬지나는 지휘봉을 삼키고 싶은 마음으로기억이 버스로 이동할 때나는 울음을 새장에 가둬불이 꺼진 버스는 달려가고창틀에 이마를 기대었다가 (은유는 쉽게 내동댕이 쳐져)소란스럽지 않은 것은 오늘의 죄를 뉘우치세요덜컹거리는 버스 바닥에 누워 속죄하고 있으면영혼은 마치 지나가듯 보았던 파란 지붕 공장에봄을 기다린다고 했었지 봄을 토하면서천사가 등 위로 악보를 휘갈기고가로등을 끌어안고 버틸 때 마침 밤이 엎질러져조명 아래서 우리는 노래하고발을 구르고 박수를 치고가슴을 들고 화음을 섞어거리에는 속수무책으로 버려진 너나팔을 불면서 인도했지 우울을 먹이려고강가에 가면바람이 긴 호흡으로 철새 무리를 기다린다나는 이것이 전부꿈이었으면겨울이 부풀고 있는 낮에 너를 보았어버스창은 스테인글라스로 갈라지고색색의 빛 아래서 가발을 벗었어음표가 성대를 때려도 너는 새장을 들고마침내 아가미가 축복처럼 내려미친 듯이 저주하는 신미끌거리는 허파마저 따귀를 때리고얼굴은여전히 알 수 없는 허물을 벗고눈이 두려워 울고 있을 때면 안녕, 방백, 드디어,손쉽게 작별저는 슬프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환호)
지붕 위로 피뢰침이 솟아있는 걸 본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피뢰침은 피뢰침이다. 내가 없어도 복도는. 죽은 벌이 맞은 편에 누워있다. 이어폰에서 새소년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사랑 나는 멀리 이곳에, 10월 복도 여기에. 난 미치지도 않았고, 적당히 불안해하지. 내게 연락한 남자애를 신경 쓰느라 옷매무새를 다듬고, 바싹 마른 낙엽을 괜히 밟아보는. 그런 내가 사랑스러워서, 그런 내가 지겨워서, 여전히 전부 미워서, 궁금합니다. 질문은 듣는 이가 있다는 믿음 왜 자꾸 벌이 죽을까요 옥상은 누가 지었나요 옥상의 이름은 누가 처음 지었을까요 자음과 모음이 흘러내리지 않게 흙을 덧바르고 색색의 물감을 칠하듯 사랑을 한 사람 누구였을까요 모든 이유와 원인을 알게 되면 마음이 좀 후련해질 것 같은데 배를 뒤집고 쓰러진 벌이 날갯짓할 때 창문은 거울이 됩니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하늘을 찌르고 싶어 하는 피뢰침이 그래, 나였어요 번개처럼 내려온 열아홉의 저주; 그리워할 걸 알고도 기뻐야 한다는 것 기쁘다 미치다 예쁘다 사랑스럽다 혀끝에 도돌이표를 달았지, 옆 반 남자애의 이름을 부를 땐 휘청이는 음정을 모른 척하면서 기쁘다 미치다 예쁘다 사랑스럽다 짧은 교복 치마를 단속하러 온 선생님도, 학교에 창문이 많은 까닭은 우리의 벌이 사방에 있었기 때문인 것도, 기쁘다 미치다 예쁘다 사랑스럽다 선생님, 나 또 누군가에게 고백하듯 얘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도망치고 말았어요 나를 살게 만들고, 나를 붙잡고, 지탱하는 것들이 저주였다면 그래도 여전히 사랑하라고 말씀하실 거예요? 죽어가는 벌이 날개를 흔듭니다 집으로 갈 시간이야 창문 너머 옥상의 말이 내겐 어떤 시인의 말보다 좋다 집으로 갈 시간이구나 엎드려 머리카락으로 커튼을 만들고 소년의 옆모습을 훔쳐보던 때가 있었어 교실의 연 하늘빛 커튼은 빌라의 정수리를 가려도 쏟아지는 빛을 가리지 못했지 비발디의 사계가 종소리였던 우리 학교 심장의 그림자가 쏟아지던 교실은 선율의 물컵 관측되지 않았던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지? 다음 교시가 시작되기 전에 태양의 음계를 맞춰봐 *새소년-눈
어둡다. 춥다. 서늘한 한기와 칠흑같은 어둠이 온 몸을 잠식했다. 점점 정신이 몽롱해지고 내가 누구인지, 또 나는 무엇을 위해 이곳까지 달려온건지 그 목적조차도 까마득해졌다. 아무리 기억해내려 해도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 순간, 어디선가 환한 빛이 내 눈동자를 영롱하게 비췄다. 꿈벅- 꿈벅- 눈이 감았다 떠지기를 반복하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안녕?" 그럴 거라고 생각은 못했는데, 신선한 충격에 뒤통수가 얼얼했다. 140cm 남짓으로 보이는 키의 깡마른 체형. 눈을 완전히 덮은 긴 앞머리,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일까 말까 하는 붉은 눈. 설핏 웃음이 났다. 길고도 긴 회귀의 여정 끝에 도달한 결말이 겨우 어린 시절의 나와의 재회라니. "크읏."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그리고 이내 그 고통은 멎어버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해야할 일을 깨달았다. 아주 오래전의 기억이 서서히 떠오른 것이었다.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 대다 겨우 나온 그때. 눈 앞에 있던 건 왠 남성이었다. 붉은 안광을 뽐내는 수려한 외모, 검은 코트 차림. 그가 눈에 선하게 비춰지고, 그의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앞으로 더 고통 받겠지만 그래도 복수를 하고 싶어?"」 내게는 너무도 달콤하지만 고통스러웠던 한 마디. 그 한마디 한마디가 모여 이곳의 나를 만들었고, 나는 내가 겪은 비극들을 다시 나에게 선사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점이, 나에게 훨씬 더 아프게 다가왔다. 「"정 그렇다면야. 절대로 후회하지 마, 이건 네 결정이니까."」 「[전용 스킬, '회귀'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이걸 잊지 마. 넌 '전달'을 꼭 해야만 해. 이 세계를 위해서라도."」 그 말들을 내가 해야 한다니. 미어지는 가슴과는 다르게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서라도 나는 전달해야만 한다. 비극을 선사해야 하고. 이 어린 아이는 그걸 이겨내야 한다. 이 하나의 세계를 위해서, 악마의 달콤한 속삭임을 해버린다. "앞으로 더 고통 받겠지만 그래도 복수를 하고 싶어?"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가슴이 미친듯이 저려왔다. 마치 금지된 행위를 세계가 막아서는 듯 온 몸이 구속당한 느낌이었다. 주륵- 똑- 이렇게 작은 아이가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험한 세상에 널 혼자 둬서. 너무도 높은 인생의 절벽에 널 밀어버려서. 나는 아이의 머리칼을 살짝 넘겨주었다. 머리카락이 넘겨지고 아이의 눈동자의 눈물이 빛났다. 고요하게 흔들리는 눈을 보고 있자니 내가 너무 이 아이에게 많은걸 넘겨준다는 생각이 들었고, 곧이어 미안하다는 말만이 정신을 지배했다. 내가 조용히 바라보자, 아이는 어색했는지 연약한 미소를 지었다. 툭 치면 부러질 듯한 아주 짧고도 약한 미소. 그럼에도 왜인지, 그 아이의 모습과 내가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뛰어놀다 넘어졌을 때 울다가도 씩 웃으며 다시 뛰어놀기 시작하던 모습이 겹쳐졌다. ...너도 이 순간이 오면, 나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끼겠지. 아이의 고개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위로, 아래로.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 녀석을 처음 봤을 때부터.그 녀석을 처음 만났던 날도 거지같은 날이 따로 없었다.월요일 아침 1교시.달콤한 주말이 끝나고 다시 찾아오는 지겨운 일주일.모두가 월요일 아침을 싫어하겠지만, 나는 특히 더 싫었다.이유는 없었다.굳이 이유를 찾자면,그냥 반복되는 일주일의 시작이 쳇바퀴 굴러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랄까.내 일상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학교 집 학원을 오가며 내 의지에 상관없이 자리에 앉아문제집 따위를 풀고 집에 오면 하릴없이 휴대폰만 바라보다가 잠드는.딱히 꿈이랄 것도 없고 장래희망 같은 것도 없는,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내 주변의 몇몇 애들은 눈에 불을 켜가며 밤을 세워 공부하는 놈들도 더러 있었지만, 나는 그 모든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다 쓸데없다.어차피 죽으면 다 끝날 것을.뭐하러 저렇게 안간힘을 다해 붙잡고 있는지 모르겠다.이렇게 얘기하긴 하지만,역설적이게도 나도 아예 공부를 안 하는 건 아니다.그렇다고 열심히 하지는 않고, 그냥 시키니까 하는 느낌?부모님도 나에게 딱히 큰 기대를 하시진 않는다.그냥 잘 자라서 독립하라는 말만 가끔 하신다.이렇게 말하니깐 내가 되게 친구 없는 애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사실 나는 친구가 꽤 있다.어떻게 사귀었냐고?간단하다. 어차피 요즘 학생들은 인간관계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기 보다는나에게 득이 되는 사람을 포섭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친구관계를 볼 뿐이다.그러면 뭐, 상대에게 조금의 도움만 주면,‘옳다구나 이 녀석은 나한테 도움이 되는 놈이군‘ 이라고 생각하면서 친구행세를 한다.가식이란 건 다 알고 있지만.그래도 친구가 너무 없는 건 안 좋잖아.그렇다고 내가 호구처럼 퍼주는 것은 아니고, 그냥 적당히 도와준다.참 명쾌하지 않은가?눈에는 눈. 이에는 이.받은 만큼 돌려주고 돌려준 만큼 고마워하는.그 이외에 더 무엇을 하지는 않는.세상은 지나치게 단순하다.지나치게 단순해서 이제는 지겨울 정도이다.아니 지겨울 정도였었다.그 녀석이 오기 전까지는.그 녀석은 처음 봤을 때부터 나와는 정반대처럼 느껴졌다.머리는 잉크같은 검은색에 키는 180은 되어보였고,약간 일진같은 느낌을 풍기는 녀석이었다.눈매는 매우 날카로워서 그 녀석이 나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 마음속까지 궤뚫어 볼 것만 같았다.그런데 그 녀석이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날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그 녀석을 그날 처음봤을 뿐더러, 내 자리는 뒷자리에서도 구석이어서 우연히 쳐 다보기도 힘든 위치였다. 그런데 전학왔다던 놈이 첫날부터 일면식도 없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나는 당황스러워서 선생님만 쳐다보고 있었다. " 그러면 자리는 어떻게 할까?"선생님이 그 녀석에게 물어보았다. 녀석은 "저 자리로 할게요" 라고 말하더니내 쪽을 똑바로 가리켰다.나는 너무 놀라서 선생님과 그 녀석을 번갈아 쳐다보다가내 옆자리가 하필 오늘 비어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젠장. 오늘 전학 온 놈이 하필 왜 내 옆자리에.전학생이 옆자리에 앉는 것은 썩 좋은 일이 아니었다.학교에 전학생이 왔다는 사실이 퍼지면,곧 수많은 아이들이
그 애의 방은 언제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났다. 방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트리가 우뚝 솟아 있고트리 위 별은 미약한 빛을 내뿜었다.커다란 선물 꾸러미들이 한가득 쌓여 있고 빨간 양말이 품을 벌리고 있었다.벚꽃이 피는 봄에도 녹음이 지는 여름에도 늘 그 상태.듣기로는 그 애의 생일이 12월 25일이더라.그래서 크리스마스를 가장 좋아했다더라.그 애가 없는 지금은 별이 빛을 잃고 빨간 양말의 색이 바래 가는데트리와 선물 꾸러미만이 쓸쓸히 서 있다.짭짤한 눈물만이 새로 생겼더랜다.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에도 눈송이 떨어지는 겨울에도 늘 그 상태.그 애의 방은 언제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난다.
청청 바다 수평선을태양이 붉게 물들일 때도그것은 자기를 지켰나니외랴 우리를 품고 고운 것을 간직하여 선물했나니내 삶의 기적이라면 배 한척과그 위에 물과 음식과 파도의 노랫소리일 지나니아아, 아름답고 넓은 붉은빛의 바다를 보라단아하니 주욱 뻗어진 수평을 보라품은 자의 아름다움을 그녀는 안다출렁, 배 위 해를 올리고 그것을 달래이듯이푹 자고 내일 오라며품는 자의 아름다움을 그녀는 안다내일 올 해는 우리를 비추고벼 이삭의 고개를 누르며가지지 아니한 자의 행복을 그는 안다청청 바다 수평선에해가 붉게 덮어질 때면부침개 하나 부쳐먹고 뱃놀음에아름다운 자의 행복해짐을 알려니오.
문장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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