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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집배원

안보윤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알마의 숲』

올빼미가 말하길. - 정어리를 먹어. 올빼미가 말했다. - 난 정어리에 대한 글을 쓸 작정이었다. 한 달 내내 정어리만 생각했지. 정어리, 정어리, 정어리, 매일 백 번씩 말했다. 아니, 이백 번은 말했겠군. 정어리통조림이나 정어리를 넣은 샌드위치를 생각하고, 정어리를 가공하는 공장과 정어리를 잡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정어리처럼 생긴 비쩍 마른 남자아이에 대해서도 생각했지. - 정어리를요. - 그래, 정어리다. 오로지 정어리였지. - 그래서 그건 어떤 이야기가 되었나요? 유쾌하고 흥이진진한 이야기? 건조하고 냉정한 이야기? - 못 썼다. - 왜요? - 난 정어리를 본 적이 없거든. 먹어본 적도 없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정어리, 라는 단어에 빠져 있었던 거겠지. 아이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공주나 왕자에 빠져드는 것처럼, 한 번도 보지 못한 마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나는 하필 정어리에 빠졌던 거다. 정어리에 대해 매일 생각했지만 그건 진짜 정어리가 아니었지. 내가 상상해낸, 정어리와는 전혀 다른 무엇이다. 그러니 내가 뭘 쓰더라도 그건 정어리에 대한 글이 아니게 되는 거다. -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알마가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 아저씨 때문인가요? - 남 탓을 하다니, 정말이지 촌스럽기 짝이 없군. - 역시 아저씨 때문이었군요. - 됐다. 다시 정어리얘기로 돌아가자. 아니 더럽게 재미없고 지루한 네 얘기로 돌아가지. 너는, 그런 거다. 넌 네가 죽어야 할 만큼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말하지만 정작 네가 경험한 건 아주 짧은 단어 한 개, 순식간에 스쳐지나간 장면 하나에 불과한 거다. 내가 정어리, 라는 단어를 읽고 그것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처럼 너도 어디선가 고통이나 죽음 같은 단어를 보고 거기 동화되기 시작했겠지. 나는 정어리라는 단어밖에 모른다. 정어리에 대한 책을 백 권쯤 쓴다 해도 거기 진짜 정어리는 없지. 너도 마찬가지다. 넌 아직 삶도 죽음도 논할 자격이 없지. 어떤 것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정어리를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내가 정어리가 비리다거나 기름지다거나 담백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너도 네 삶에 대해 한마디도 할 수 없을 거다. 넌 유 서를 쓰지 않은 이유가 네 엄마가 이유를 알지 못해 고통스럽길 바라서였다고 했지? 그건 거짓말이다. 너는 한 줄도 쓸 수 없었을 거다. 네가 왜 죽으려고 하는지, 뭐가 널 그리 힘들에 만드는지 너도 몰랐을 테니까. 그냥 죽어버릴까, 하고 쉽게 결심한 거지. 어린애답게 말이다. - 아저씨도 내가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 너는 그냥, 서툰 거겠지. 어린애들의 특권이다. 멍청하고 성급한 건. 어린애니까 가끔은 그런 식의 엉뚱하고 어리석은 결론을 내기도 하는 거다. 괜찮겠지, 그 정도는. 난 어설프고 서툰 것들이 싫지 않다. 그런 건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채워지거든. - 숲에 떨어지는 동물들처럼요? - 그래, 멍청한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처럼. - 난 멍청하지 않아요.

2024.12.27 천운영
마윤지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동지」

동지(冬至) 마윤지 12월에는 흐린 날이 하루도 없으면 좋겠다 그런 약속이 있으면 좋겠다 놀이터엔 애들도 많고 개들도 많으면 좋겠다 살도 안 찌고 잠도 일찍 들면 좋겠다 조금 헷갈려도 책은 읽고 싶으면 좋겠다 어디든 갈 수 있는 차표를 잔뜩 사고 안 아프면 좋겠다 30만 년 전부터 내린 눈이 쌓이고 눈의 타임캡슐 매일의 타임캡슐 다 흘러가고 그게 우리인가 보다 짐작하는 날들이 슬프지 않으면 좋겠다 묻어 놓는 건 숨기는 게 아니라 늘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지 그 무엇보다 많이 만져 보는 거지 나중엔 번쩍 번개가 되는 거지 오렌지색 같은 하늘이 된다 맛도 향기도 손가락이 열 개인 털장갑 이를테면 깍지 햇빛의 다른 말이다 - 시집 『개구리극장』(민음사, 2024)

2024.12.12 김언
조예은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스노볼 드라이브』

그 순간을 꽤 선명히 기억한다. 백영중학교 건물은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고, 덕분에 학교 전경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운동장에는 세로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야구부 아이들이 기합을 외치며 트랙을 돌고 있었고, 담장 근처 등나무 그늘에는 늦은 시간까지 동아리 활동을 하는 방송부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 중이었다. 야구부 애들이 나아갈 때마다 그림자가 점점 길어졌다. 그 그림 같은 배경 안으로 달음박질하려던 순간이었다. 내 하늘색 컨버스화 끈이 풀려 있었다. 나는 허리를 숙여 이제는 회색에 가까워진 흰 끈을 단단히 동여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왜 이렇게 눈이 시린 걸까. 양손으로 두 눈을 비벼 보있다. 눈은 여전히 시렸고, 눈앞에는 믿기 힘든 낯선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푸르른 기운이 무성한 6월의 학교에 내리는 함박는. 그것은 그 해의 녹지 않는 첫눈이었다. 때아닌 함박눈에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운동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눈송이를 손으로 받고, 고개를 쳐든 채 방방 뛰며 팔을 휘저었다. 건물 안의 아이들은 창가에 다닥다닥 붙어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 진풍경은 화면에 고스란히 담겼다. 나는 현관에 서서 팔을 뻗어 떨어지는 눈 한송이를 받았다. 내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그 결정체는 꼭 모형처럼 딱딱했으며, 차갑지 않았다. 차갑지 않은 눈이라니. 이게 정말 눈이 맞을까? 눈송이는 높은 기온과, 내 체온에도 녹지 않았다. 6월 충순, 초여름이었고, 등교 직전 뉴스에서 본 기온은 27도를 웃돌았다. 결정체의 모양이 일반적인 눈송이와는 달리 불규칙적이었다. 그리고 훨씬 밝게 반짝였다. 꼭 진짜 눈을 흉내 내어 만든 모형처럼. 그런데 곧 눈송이를 받치고 있던 손바닥 주위로 불그스름한 반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발 늦게 가려움이 밀려들었다. “아, 따가워.” 소리가 나는 곳을 좇았다. 운동장과 이어지는 계단에 앉아 있던 두어 명이 건물 처마 밑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머리와 체육복에 묻은 눈들을 털어 낶다. 그들의 몸에서 떨어지는 눈은 눈이라기보다는 조금 입자가 큰 모래알 같아 보였다. 잔 우박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박처럼 차갑지도 부서지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녹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쌓였다. 맨 처음 따갑다고 외쳤던 단발머리가 둥얼거렸다. “왜 이렇게 따갑지? 이거 뭐야? 나 새우 먹어서 알레르기 반응 올 때 꼭 이러는데.” “내 손도 그래. 이 두드러기들 뭐야? 징그러워.” 소매 밖으로 드러난 손목과 손등이 온통 붉었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하늘 곳곳을 수 놓은 하얀 점들이 보였다. 눈송이들은 조명을 받은 보석처럼 반짝이며 떨어졌다. 그 비현실적인 풍경에 정신 팔려 잇던 나를 깨운 건 운동장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였다. 제일 먼저 뛰쳐나왔던 1학년 아이 한 명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운동장 바닥을 구르고 잇었다. 황토색으로 물든 하복 교

2024.11.28 천운영
허꽃분홍 배우의 목소리로 듣는 최지은 시인의 「가정」

가정 최지은 우리는 말이 없다 낳은 사람은 그럴 수 있지 낳은 사람을 낳은 사람도 그럴 수 있지 우리는 동생을 나눠 가진 사이니까 그럴 수 있지 저녁상 앞에서 생각한다 죽은 이를 나누어 가진 사람들이 모두 모이면 한 사람이 완성된다 싹이 오른 감자였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푸른 감자 엄마는 그것으로 된장을 끓이고 우리는 빗소리를 씹으며 감자를 삼키고 이 비는 계절을 쉽게 끝내려 한다 커튼처럼 출렁이는 바닥 주인을 모르는 손톱을 주웠다 나는 몰래 그것을 서랍 안에 넣는다 서랍장 뒤로 넘어가버린 것들을 생각하면서 서랍을 열면 사진 속의 동생이 웃고 있다 손을 들어 이마를 가리고 있다 환한 햇살이 완성되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다 우리가 눈 감으면 우리를 보러 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거기 있었다 -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창비, 2021)

2024.11.14 김언
윤이안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온난한 날들』

정오가 되자 태양이 머리 꼭대기 위에 떠올랐다. 슬슬 직장인들이 몰려와 테이크아웃을 해 갈 시간대인데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당연했다. 이런 땡볕에 에어컨도 안 트는 카페에 올 손님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 틈을 타 나는 유리와 함께 카페 테이블에 얼굴을 대고 늘어져 있었다. 평택호 바로 앞 관광단지라는 특성 때문에 원래가 직장인보다는 뜨내기손님이 더 많은 가게였다. 단골도 별로 없다. 주변에 같이 장사하는 가게 사장님들 외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라 버스나 지하철을 탈 필요가 없다는 게 유일한 장점이었다.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테이블에 반대쪽 볼을 갖다 댔다. 테이블에서 올라오는 찬기로 얼굴이 조금은 시워해져서 이러고 있으면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점장님은 이러고 누워 있는 우리를 보고 나무늘보가 따로 없다고 잔소리를 하시지만. 볼을 바꿔 대려고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던 스킨답서스 화분에서 불길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듣는 순간 테이블에 엎어져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킬 정도로 놀랐다. “부점장님,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정도로 놀란 것도 오랜만이었다. 소리가 들린 것 자체가 오랜만이긴 했다. 지난달 초에 한 번 듣고 이번 달에 처음 듣는 거니까 얼추 두 달 만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유리가 불안해할까 봐 다시 테이블에 볼을 갖다 대고 누웠다. 누운 채로 점장님이 있는 포스기 쪽을 향해 물었다. “점장님, 저희 화분 몇 개만 더 뺄 수 없을까요?” 카페 내부에는 보이는 자리마다 화분이 깔려 있다. 어스프레소는 대대적으로 친환경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펼치곤 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커피 브랜드로도 유명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플라스틱 제로가 아니라, 여기 평택 에코시티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신소재 플라스틱만 사용한다는 뜻이지만 신소재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과 달리 금방 썩는다는 특징이 있으니 크게 다른 말은 아니다. 평택이 신소재 플라스틱 시번 사용 도시, 에코시티로 지정된 지 이제 10년째였다. 평택 구도심 아래쪽, 평택호 인근 지역이 에코시티로 지정된 이후 시티 내에서는 사용하는 플라스틱 양에 제한이 없어졌다. 신소재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만큼 탄소 배출도 타 지역보다 20퍼센트까지 더 가능하다.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최근 들어 공장이나 기업의 본사가 에코시티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스프레소의 본사만 해도 에코시티 내에 있었다. 그러니까 가게 내부에 가득한 화분은 어스프레소의 친환경 브랜드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어스프레소 사장님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게 내 업무 환경을 저하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었다. 점장님에게 매일 우리 화초 좀 몇 개만 빼자고 말해도 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점장님이 말했다. “명색이 에코시티인데, 초록이 좀 많아야 보기도 좋지 않니?” 초록, 저도 참 좋아하는

2024.10.24 천운영
조성래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창원」

창원 조성래 창원으로 갔다 이제 두 달도 더 못 산다는 어머니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에 서명하러 갔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일단 도착하면 나는 그곳과 너무 가까운 사람이었다 먼 곳은 먼 곳으로 남겨 두기 위하여 나는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먼 곳이 너무 싫어서 먼 곳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세상의 모든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속속들이 모든 먼 곳을 다 알고 모든 먼 곳을 파악하고 모든 먼 것들의 사정을 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전지하신 하느님께 합장하고 기도 올리는 성모마리아······ 파티마 병원에 어머니는 누워 계셨다 빗자루에 환자복을 입혀 놓은 것처럼 바싹 말라서 아직 살아 계셨다 내 손을 잡고 울다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다 조금 뒤면 자기가 죽을 것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처럼······ 내가 하나도 밉지 않은 듯이, 어제도 날 본 사람처럼 웃었다 다음 생에는 안 싸우고 안 아픈 곳에서 함께 있자고 이제 당신이 내 자식으로 태어나라고 내가 당하겠다고 당신도 당해 보라고 눈물이 끝 모르고 흘렀다 눈물 흘릴 자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식 된 사람인 것처럼······ 그 시각 모든 일이 먼 곳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선 엄마도 죽고 나도 죽고 끔찍한 날 피해 자리를 비킨 동생도 죽고 모두 죽어서 죽고 나서 웃고 있었다 모두 지난 일이라는 듯 모두 지나야 했던 일이라는 듯······ 그러나 그건 나 혼자서 듣는 소리였다 어머니는 홀로 죽을 것이며 나는 여전히 어떤 현실들에 마비된 채 살아도 되는 사람처럼 살아서 살아 있는 것 같은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닐 것이다 —시집 『천국어사전』(타이피스트, 2024)

2024.10.11 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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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소설 죄와 악.

내 남편이 지독한 저주에 걸려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은 운이 나쁜거였다.그동안 나 몰래 무슨 죄를 저지른 건지 모르지만 천벌을 받았으니까. 나는 그렇게 단정지으며 그가 없는 삶을 살아가려고 다짐했다.이건, 그가 천벌을 받아도 나는 아직 신에게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한 결과였다.하루는 집에서 남은 스튜를 긁어 목구멍으로 집어넣었다.맛은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그와 있었을 때는 나름 맛있게 먹었던 것 같은데 지금 먹어본 스튜의 맛은 밍밍하고 맛이 없었다. 그냥, 입맛이 변했나보다.어제는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우리가 살고 있던 집은 상점과 멀리 있었기에 묵묵히 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나는 가슴을 쿡쿡 찌르는 통증을 무시하고 마른 흙길을 한 발짝씩 걸어나갔다.북적이는 마을로 도착하니 한 아주머니께서 말을 걸었다.“아가씨,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그 사람은 사람 좋은 미소로 날 반겼다. 나랑 반갑게 인사할 사이인가?나는 슬며시 웃었다.아니, 웃지 않았다.“무슨 일 있어?”내 표정을 확인한 그 사람은 걱정하는 투로 말을 건넸다.……오지랖은.“그러고 보니 남편도 안 보이네.”아….…….좀 한탄했나보다. 그간 있었던 일을 얼굴 한두번밖에 보지 않은 상점의 아주머니에게 탈탈 털었다. 돈 없는 주머니를 더듬듯 토로했다.아마 울었을 것이다. 뭐, 그와 같이 지낸 세월이 얼만데 그정도 눈물은 흘릴 수 있으니까.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어디까지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주머니가 가볍게 두드리는 손길을 받으면서 어리석게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나.그리고 기억나지 않는다.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왜 이렇게 됐는지도 모르겠다.도대체 왜 그렇게 나를 바라보는지 모르겠고 사람들이 왜 나한테 화를 내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마을 중앙에 서있다.손이 나무 기둥 뒤로 세게 묶어있다. 그 탓인지 손목이 아팠다. 당장이라도 밧줄을 풀고 싶을 만큼 갑갑했다.사람들은 열광했다.어쩌면 좋아했던 것 같다.그들은 단죄를 지으려는 심판자의 입장이 아니라 그 심판을 구경나온 구경꾼들의 얼굴에 불과했다.미치도록 좋아했고 즐겨했다.표정에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도 한편 속으로 안도와 기쁨의 한숨을 내쉬는 게 분명했다.나는 소리쳤다.닿지 않는다.내 목소리가 대중에게 닿지 않는다.벽이라도 세워져있듯이 가로 막혀있다.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우는 걸 멈출 수 없다.나는 새로운 세상을 맛본 갓난아이처럼 울었다.지독하게 쓰디 쓴 세상에 짠 맛이 더해졌다.나는 더욱 크게 소리쳤다.목소리가 결국 파도에 잠겼다.울음을 머금고 뱉어내기를 반복했다.숨을 쉬고 싶었다.아무도 듣지 않는다.계속해서 내 비명과 내 괴로움을 외면한다.어찌 그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같은 인간인게 부끄러울 정도였다.이윽고 한 사람이 다가온다.횃불을 들고서.아니야.하지마.하지마.제발, 하지마.그러지 마.안돼. 싫어.싫다고!눈 앞이 온통 빨갛다.들판의 여러 장미처럼, 밤하늘 수놓은 별자리처럼 시야가 일렁인다.발 끝이 뜨겁다.아아.온 몸이 달아오른다.아프다.아.아프다는 게 뭘까.뜨거운 열기 속에 갇힌 게 통증인가.비겁한 자들의 공로가 낳

2025.01.15 적일백천
우주의 진리: 텍스트 너머에서 표상되는 없음의 감각에 대하여

2025.01.15 화자
소설 당신 자신과 유리벽

눈이 쌓인 광화문을 걸으며, 문득 내가 소설을 쓰지 않은지 어엇 일년이 다 되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코트와 목도리를 벗어던지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중인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마치 거대한 유리벽이 내 앞을 막아서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 글을 향한 막연한 열망이 내 안에서 그 무엇보다 뜨겁게 들끓고 있는데, 정작 그것들은 한 없이 투명한 유리벽 앞에서 속절없이 식어버렸고, 거대한 유리벽은 더욱 견고해졌다. 그것은 나의 의지를 한 순간 흐릿하게 만든다. 무지와 막막함이 나에게로 다가온다. 나는 이 유리벽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소설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 그걸 과연 소설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한때 난 내가 소설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질문 앞에서 사무쳤고, 무너졌으며, 아무거나 막 휘적였다. 그러나 적어도 이 질문은 나에게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건 이 질문을 통해 나 스스로를 소설가라고 명명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소설가란 무엇인가. 그들은 말 그대로 작은 이야기를 직조해내는 이들이 아니었던가. 물론 그 이야기들은 전부 거짓이다. 그것은 아무리 작가 스스로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다 하더라도, 텍스트라는 것으로부터 분절되고 붙여지는 조작의 산물인 이상 거짓임을 벗어날 수 없다. 이런 거짓구렁들이 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누군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부터인데, 텍스트란 것 자체가 ‘읽혀짐'의 행위를 전제로 만들어진 부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구의 것을 만들면서 타자를 요구하기란 얼마나 비윤리적인가. 그것보다 더 완전한 사기꾼 심보도 없을 것이다. 소설이란 것은 총체적으로 비윤리적인 의도를 지닌 혼합물인 셈이다. 나는 더 이상 소설을 쓰지 못한다. 아니, 소설을 쓰지 않는다. 나는 한 때 그러한 심보로 쓰여진 글들을 읽었다는 충격과, 그런 그들을 썼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여러 이유를 도구삼아 자위하고 있다. 나는 내가 쓴 글들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고 있다. 내 앞의 유리벽은 더욱더 견고해지고, 도저히 몇 겹의 층위로 이루어져있는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투명함을 어슴푸레 잃어버린다.그렇다고 이 글을 나의 과오에 대한 자기반성이라거나 고백, 또는 깨달은 자의 기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주었으면 한다. 난 지금 어떻게 해서든 글을 쓰고 있으므로, 지금 그건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기 때문이다. 현재 나에게 중요한 건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작품을 만드냐이다. 나는 내 앞에 주어진 이 거대하고 투명하며, 시린 벽 주변을, 조금 더 세밀히 걸어보기로 한다.예술에서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중요해진 것은, 완성된 작품이 보여주는 그것의 총합적인 풍화 너머에서 손에 잡힐 듯하지만 결코 잡히지 않는 영혼의 형체를 마주했을 때 부터였다. 나는 한명의 청자이자 관중으로서, 그런 영체를 머금은 작품들을 하나 하나 호명해보고싶다. 박서보 화백의 묘법. 블랑쇼의 소설. 드레이어와 로셀리니의 중기영화들. 박서보 화백이 그린 묘법의 풍화는 지극히 평범하

2025.01.15 화자
기원

생각에 잠긴 빨대가멸종하기 직전의 달을 건지기 위해서 늘어났어잠의 칼날로 자른 조각이 빨대 안에서 소용돌이치고식곤증과 학교에서 받은우유 푹 찔러 마셨지너는 어제 아침으로 저녁을 먹은 사람나는 먼지를 엮어서 친구의 화분에 몰래 심었지출렁거리는 흙더미 홍수가 났고씨앗이 없는데도 지애의 식물은 잘 자랐어창문에는 뿌연 달의 입김이 서려 있었다천장에 매단 히터기는 거짓말을 해서소매로 닦아버리면 미소도 하트도 이름도 없어창틀에 버려진 우유의 개수를 세다간 집에 가지 못할 것 같았던 날들빈 것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자리 넌 앉는다그네가 치솟는다너는 고개를 젖힌다 신발을 멀리 던진다아파트 옥상의 간격만큼 잘라낸 허공그 사이에서 별자리를 보기 위해행성이 기울기를 기다렸다는 걸 알아놀이터에서한 칸짜리 곡선을 쥐고 달렸어우유가 내리는 날이었지 반짝거리는 빨대와넌 역시 기다리는 사람나는 팔을 뻗어 먼저 사과를 따는 사람뉴턴이나 그런 건 잘 몰라서출렁거리는 달이 차오른다 그렇게손을 내미는얇은 중력과 함께우주는 적당하게 좁아졌지바다의 식탁에 빨대같은 동앗줄이 내려왔다우리의 접시에달은 투명하게 엎어졌다

2025.01.14 방백
편지

저기 저기요 듣게 된다면 말해주십시오. 나는 다리 밑을 살아가는 야생화입니다. 빛을 보기란 무척 힘이 들어 어느 쪽이 하늘인지도 모른 채 비틀리며 커가는 것입니다. 우연찮게 손 타지 않도록 태어났으면서 자유는 주변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조차 없게 됩니다. 뿌리내리는 방법은 금방부터 관심이 없었으니 나는 다른 것을 물어오는 겁니다. 저기요 내 옆에 당당히 사는 이에게나 내 앞에 본인을 토해내는 이에게나 어딘가에 이러한 이들에게나 대체 무엇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까. 저들은 뒤로 내몰고 이기심에 집중하고픈 마음인데도 보면 내 속에 몇 마리가 기어 다니고 꿈틀거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나는 아무래도 알 수가 없습니다. 매일을 이렇게 가꾸는 것이 맞는지를 모르고 가꾸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자신을 혼동하는 짓이 싫어 야생으로서 나를 부정시키면서 이것 또한 같은 짓이게 되니 나에게 나란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어질어질하게 끝나는 건 아니라 믿고 나는 자꾸만 없던 것들이 소리가 되도록 소리치는 것입니다. 저기요는 맞게 되는 말인가요?

2025.01.14 여기
나를 저곳으로 날려 보내줘.

나를 저곳으로 날려 보내줘. \ 나의 날개는 이미 찢어졌으니. 너의 날개를 줘. 그 날개는 단단하고 아름답잖아. 나의 심장은 이미 꾀 뚫렸으니. 너의 심장을 줘. 그 심장은 건강하고 빠르잖아. 나의 사지는 이미 존재하지 않으니. 너의 사지를 줘. 그 사지는 너의 명령을 잘 따르잖아. $ 그곳으로 나를 이끌어줘. 네 날개가 너무 아름다워서 나의 날개가 날아오를 수 없을 정도로 날아올라줘.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날아올라줘. 하늘을 넘고, 구름을 뛰어넘어서 더 멀리 가줘. 아직은 멀었어. 내가 소망하는 장소는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어려워. 화성의 공기도 토성의 고리도 모두 보고 싶은 걸. 너의 날개로 모든 것을 눈에 담아내고 싶어. *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 까. 내 눈에 그 모든 걸 다 담아낼 수 있을 까. 나는 그저 보고 싶었어. 매일 나를 올려다보는 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그 별들을 내가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지.

2025.01.14 학교라는시간
아날로그식 사랑

목소리가 떨려요잘못한 적 있나요실은아무도 모르게자릴 비웠어요너무 자주 떠났나요그만큼 많이 올 테니용서해 줘요쉼 없이 돌아가는LP식 사랑은너무 어지러운걸요그럼에도그때 생각나는 건어쩔 수 없나 봐요

2025.01.14 아기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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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jang
공지사항 2025 글틴캠프가 1월 20일, 파주에서 개최됩니다.

캠프 운영 날짜 : 1월 20일(월) ~ 22일(수) / 2박 3일 ▶신청하러 가기◀

2024.12.13
공지사항 2024년 문학광장 이벤트 첫번째(문학광장 댓글 챌린지)

문학광장 댓글챌린지 이벤트 2024년 한 해 동안 발행된 문학광장 콘텐츠를 보고,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추첨을 통해 참여 작가의 사인본과 캠핑 테이블 등 푸짐한 선물을 드립니다! ㅇ 참여방법 1. 2024년 발행된 문학광장 콘텐츠에 댓글을 남기고 캡처하세요! ★ 댓글 작성 가능 콘텐츠 : 김기태, 윤이안, 김중혁 소설가 및 조성래 시인의 작품 ★ 바로가기 - 김기태 소설가 : https://munjang.or.kr/board.es?mid=a40102000000&bid=0032&act=view&ord=B&list_no=101601&nPage=2&c_page= - 윤이안 소설가 : https://munjang.or.kr/board.es?mid=a40703000000&bid=0035&act=view&ord=B&list_no=103036&nPage=1&c_page= - 김중혁 소설가 : https://munjang.or.kr/board.es?mid=a40102000000&bid=0032&act=view&ord=B&list_no=103264&nPage=1&c_page= - 조성래 시인 : https://munjang.or.kr/board.es?mid=a40702000000&bid=0034&act=view&ord=B&list_no=102878&nPage=1&c_page= 2. 댓글 작성 후, 응모 폼에 설문 제출! ★ 인스타그램 피드 또는 스토리에 @munjang2005를 태그하여 댓글캡처본을 공유하면 당첨 확률이 UP! ★ 응모 폼 링크 : https://answer.moaform.com/answers/EO3oQP ㅇ 댓글 작성 플랫폼 : 유튜브, 문학광장 누리집, 팟빵, 인스타그램 등 어디든 OK! ㅇ 이벤트 기간 : 11.28(목) ~ 12.9(월) ㅇ 당첨자 발표 : 12.10(화), 개별 안내 예정 ㅇ 경품 안내 - 문학광장 작가 사인본 (16명) - 『천국어 사전』(5명), 『온난한 날들』(3명),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5명), 『영화보고 돌아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3명) - 접이식 캠핑 테이블 (5명) 지금 바로 댓글 남기고 특별한 선물을 받아보세요!

2024.12.05
공지사항 2024년 문학광장 이벤트 두번째(문장 ONE-PICK)

문장 ONE-PICK 이벤트 2024년 한 해 동안 문학광장과 함께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콘텐츠를 ONE-PICK 해주세요! 독자 코멘트는 문장웹진 2025년 1월호에 소개되며, 푸짐한 선물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ㅇ 참여방법 1. 2024년 문학광장 콘텐츠(문장웹진, 문장의소리, 문학집배원) 중 가장 인상 깊은 콘텐츠를 골라주세요! 2. 선택한 콘텐츠와 그 이유를 이벤트 응모 폼에 작성해 제출하세요! ★ 응모폼 링크 : https://answer.moaform.com/answers/Ev9lyN ㅇ 이벤트 기간 : 11.28(목) ~ 12.9(월) ㅇ 당첨자 발표 : 12.10(화), 개별 안내 예정 ㅇ 경품 안내 - 문학광장 작가 사인본 (4명 ): 『카카듀』 - 손난로 보조배터리 (12명) - 리싸이클 코끼리 노트 (9명) 여러분의 최애 콘텐츠를 골라 문학광장과 함께해보세요! 당첨자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024.12.05
공지사항 2024년 문학광장 이벤트 세번째(숨은 문장이 찾기)

숨은 문장이 찾기 이벤트 2024년 한 해 동안 문학광장과 함께 한 콘텐츠에 숨겨진 '문장이' 캐릭터를 찾아주세요! 정답을 맞히면 푸짐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ㅇ 참여 방법 1️. 2024년 문학광장 콘텐츠(문장웹진, 문장의소리, 문학집배원) 중 무작위로 '문장이' 캐릭터가 삽입된 5개의 콘텐츠를 찾아주세요! 2️. 찾아낸 '문장이' 캐릭터가 있는 콘텐츠 링크를 복사하여 설문폼에 제출하세요! ★ 설문폼 링크 : https://answer.moaform.com/answers/EKnp4g ㅇ 이벤트 기간 : 11.28(목) ~ 12.9(월) ㅇ 당첨자 발표 : 12.10(화), 개별 안내 예정 ㅇ 경품 안내 - 여행용 구급 키트(10명) - 로이텀 A5 다이어리 LEUCHTTURM 1917(5명) - 에코 키트 선물세트(손목가방, 대나무칫솔, 고체치약, 고체 3종 어메니티)(5명) 문장이를 찾아 문학광장의 재미를 더해보세요! 당첨자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024.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