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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소리
문학광장 〈문장의소리〉는
2005년부터 시작된 문학 라디오입니다.
2024년 새롭게 개편된 〈문장의소리〉는
연출 유계영 시인, 진행 우다영 소설가, 구성작가 문은강 소설가가 참여합니다.
문학집배원
정오가 되자 태양이 머리 꼭대기 위에 떠올랐다. 슬슬 직장인들이 몰려와 테이크아웃을 해 갈 시간대인데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당연했다. 이런 땡볕에 에어컨도 안 트는 카페에 올 손님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 틈을 타 나는 유리와 함께 카페 테이블에 얼굴을 대고 늘어져 있었다. 평택호 바로 앞 관광단지라는 특성 때문에 원래가 직장인보다는 뜨내기손님이 더 많은 가게였다. 단골도 별로 없다. 주변에 같이 장사하는 가게 사장님들 외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라 버스나 지하철을 탈 필요가 없다는 게 유일한 장점이었다.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테이블에 반대쪽 볼을 갖다 댔다. 테이블에서 올라오는 찬기로 얼굴이 조금은 시워해져서 이러고 있으면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점장님은 이러고 누워 있는 우리를 보고 나무늘보가 따로 없다고 잔소리를 하시지만. 볼을 바꿔 대려고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던 스킨답서스 화분에서 불길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듣는 순간 테이블에 엎어져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킬 정도로 놀랐다. “부점장님,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정도로 놀란 것도 오랜만이었다. 소리가 들린 것 자체가 오랜만이긴 했다. 지난달 초에 한 번 듣고 이번 달에 처음 듣는 거니까 얼추 두 달 만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유리가 불안해할까 봐 다시 테이블에 볼을 갖다 대고 누웠다. 누운 채로 점장님이 있는 포스기 쪽을 향해 물었다. “점장님, 저희 화분 몇 개만 더 뺄 수 없을까요?” 카페 내부에는 보이는 자리마다 화분이 깔려 있다. 어스프레소는 대대적으로 친환경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펼치곤 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커피 브랜드로도 유명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플라스틱 제로가 아니라, 여기 평택 에코시티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신소재 플라스틱만 사용한다는 뜻이지만 신소재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과 달리 금방 썩는다는 특징이 있으니 크게 다른 말은 아니다. 평택이 신소재 플라스틱 시번 사용 도시, 에코시티로 지정된 지 이제 10년째였다. 평택 구도심 아래쪽, 평택호 인근 지역이 에코시티로 지정된 이후 시티 내에서는 사용하는 플라스틱 양에 제한이 없어졌다. 신소재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만큼 탄소 배출도 타 지역보다 20퍼센트까지 더 가능하다.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최근 들어 공장이나 기업의 본사가 에코시티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스프레소의 본사만 해도 에코시티 내에 있었다. 그러니까 가게 내부에 가득한 화분은 어스프레소의 친환경 브랜드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어스프레소 사장님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게 내 업무 환경을 저하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었다. 점장님에게 매일 우리 화초 좀 몇 개만 빼자고 말해도 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점장님이 말했다. “명색이 에코시티인데, 초록이 좀 많아야 보기도 좋지 않니?” 초록, 저도 참 좋아하는
창원 조성래 창원으로 갔다 이제 두 달도 더 못 산다는 어머니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에 서명하러 갔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일단 도착하면 나는 그곳과 너무 가까운 사람이었다 먼 곳은 먼 곳으로 남겨 두기 위하여 나는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먼 곳이 너무 싫어서 먼 곳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세상의 모든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속속들이 모든 먼 곳을 다 알고 모든 먼 곳을 파악하고 모든 먼 것들의 사정을 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전지하신 하느님께 합장하고 기도 올리는 성모마리아······ 파티마 병원에 어머니는 누워 계셨다 빗자루에 환자복을 입혀 놓은 것처럼 바싹 말라서 아직 살아 계셨다 내 손을 잡고 울다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다 조금 뒤면 자기가 죽을 것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처럼······ 내가 하나도 밉지 않은 듯이, 어제도 날 본 사람처럼 웃었다 다음 생에는 안 싸우고 안 아픈 곳에서 함께 있자고 이제 당신이 내 자식으로 태어나라고 내가 당하겠다고 당신도 당해 보라고 눈물이 끝 모르고 흘렀다 눈물 흘릴 자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식 된 사람인 것처럼······ 그 시각 모든 일이 먼 곳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선 엄마도 죽고 나도 죽고 끔찍한 날 피해 자리를 비킨 동생도 죽고 모두 죽어서 죽고 나서 웃고 있었다 모두 지난 일이라는 듯 모두 지나야 했던 일이라는 듯······ 그러나 그건 나 혼자서 듣는 소리였다 어머니는 홀로 죽을 것이며 나는 여전히 어떤 현실들에 마비된 채 살아도 되는 사람처럼 살아서 살아 있는 것 같은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닐 것이다 —시집 『천국어사전』(타이피스트, 2024)
도경이 사는 곳은 용희가 익히 경험해 본 장소였다. 대학 시절 같은 과 동기의 자취방이 꼭 저랬다. 여름에 동기의 자취방은 주변에 햇빛을 가려 줄 만한 큰 건물이 없어 작은 냉장고에 몸을 쑤셔 넣고 싶은 집으로 탈바꿈했고, 매서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는 동면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뼈 시리도록 반성케 하는 집으로 변모했다. 도경의 집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가림막 하나 없는 여름 한낮의 옥탑방은 재난 지역으로 선포해도 무방했다. 딱 한 가지 좋은 점은 상쾌한 가을밤이 내려앉았을 때 옥상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캔 맥주가 손에 들려 있으면 더 좋았다. 용희는 옥탑방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경에게 캔 맥주 한 박스를 몰래 사다 주는 것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용희는 긴 한숨을 내쉬며 언덕길을 내려다보았다. 도경이 검은 봉지와 막대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서 자신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도경이 용희를 알아보는 데 쓰인 10초는 용희에게 머나먼 북극의 바다를 두어 번 갔다 오는 시간만큼 길게 느껴졌다. 당황한 용희는 마찬가지로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도경을 향해 소리쳤다. “제가 지구에 커튼을 쳐 드릴게요!” 도경은 입을 벌린 채로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용희는 도경의 집 옥상에 놓인 평상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지난 5년간 얼핏얼핏 그려 왔던 일이, 지난 이틀간 문득문득 상상했던 순간이 눈앞에 당도했다는 기쁨에 용희는 이마에서 얼굴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방울도 잊은 채 자신의 심장 소리에만 주의를 기울였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에도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그러나 그 역시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 날뛰는 소리는 아니었다. 용희는 심장이 악보 없는 음악에 홀려 무작위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처음으로 천문대를 찾았을 때 광활한 우주를 탐사하며 느꼈었던, 거대하고 두려운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예측불가능한 불안함 속에서도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몸을 떨던 때의 심장 소리였다. 그때, 도경이 옥탑방에서 나와 유리컵 두 개와 감자칩을 담은 그릇을 평상에 내려놓았다. 도경은 평상에 편하게 앉더니 검은 봉지에 든 맥주 세 병을 꺼냈다. “병맥주 한 병을 마셨을 때 기분이 제일 좋아요. 그제 제 주량이에요. 더 마시면 정신 줄 놔요.” 용희는 물었다. 그런데 왜 세 병을 샀느냐고. “술이 술을 부르니까.” 용희는 빙긋 웃었다. 도경은 용희의 컵에 맥주를 따른 후 자신의 컵을 스스로 채웠다. 건배 없이 도경이 먼저 맥주를 들이켰다. 용희도 마셨다. 도경이 말했다. 정말 화를 참을 수 없었다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내 탓은 아닌 것 같은데, 정말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r
양동이 이린아 그해 여름 양동이 속에 머리를 넣고 살았다 양동이는 늘 밖에서부터 우그러진다 우그러진 노래로 양동이를 펴려 했다 그때 나는 관객이 없는 가수가 되거나 음역을 갖지 못한 악기의 연주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잘 보세요, 얼굴에서 귀는 유일하게 찌그러진 곳입니다 보컬 레슨 선생이 말했다 가끔 내 목소리가 내 귀를 협박하곤 했다 세모 눈썹, 불타버린 미간을 펴며 귓속과 목구멍의 구조를 샅샅이 뒤지는 소리를 내려 했던 여름 노래, 그해 여름에 배운 노래는 반팔이었고 샌들을 신었고 목덜미에 축축한 바람이 감기는 그런 노래였다 양동이 속에서 노래는 챙이 넓은 모자를 뒤집어쓰곤 했다 골똘한 눈, 꺾인 손등으로 받치고 있는 청진의 귀를 향해 벌거벗은 노래를 불렀다 양동이 속에서 듣던 1인용 노래 허밍과 메아리의 가사로 된 노래를 우그러진 모자처럼 쓰고 다녔다 - 시집 『내 사랑을 시작한다』 (문학과지정사, 2023)
나는 수미를 만나러 갔다. 오로라와 나비가 생긴 발로 내가 만나러 간 사람은 2031년의 수미는 아니고 2022년의 수미였다. 2022년이 막 시작된 겨울에 수미가 내게 어떤 협곡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수미가 일러준 협곡 입구로 가서 표를 끊었다. 그곳은 남한 최북단 마을에 있는 곳이었다. 매표소를 지나 들어서자 까마득한 암반 절벽 위로 길이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천천히 걸어서 나오면 자신이 일이 끝나는 시간대와 얼추 맞을 거라고 수미가 말했다. 나는 주상절리의 무늬들을 건너다보면서 절벽에 긴 선반처럼 매달려 있는 길을 걸었다. 벼랑길 밑으로 하얗게 언 강이 이어졌고 그 위를 사람들이 일렬로 걷고 있었다. 강 위를 걷던 사람들이 가끔씩 멈춰 서서 이쪽 벼랑 위를 올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절벽 위를 한 시간 남짓 걷고 나서야 나는 넓은 공원이 보이는 곳으로 나갈 수 있었다. 공원 한쪽에 빨갛고 기다란 버스가 한 대 서 있었다. 방한 아웃도어를 입은 사람들의 줄 끝에 서 있다가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운전기사의 바로 뒷좌석에 앉고 싶었지만 누군가 이미 앉아 있어 대각선 쪽 좌석에 가서 앉았다. 버스가 몇 개의 정거장을 거치며 협곡 탐방객들을 내리고 태우는 동안 나는 룸미러로 버스 기사와 눈이 자주 마주쳤다. 그때마다 웃음을 참느라 마스크를 더 올려 써야 했다. 구독자가 2,01만명인 한 여행 유튜브 채널에 수미가 ‘친절한 기사님’으로 소개된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과연 수미는 버스가 설 때마다 승객들과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았고 트레킹 코스가 엉켜 헤매는 사람들한테 막힘없이 대안을 얘기해주었다. 버스는 몇 정거장을 더 거쳐 내가 표를 끊었던 협곡 입구로 왔다. “끝났다, 일.” 그렇게 말하고 수미는 나를 강으로 데리고 갔다. 절벽 위는 걸었을 테니 얼음 위를 걷자고 하면서. 나는 수미를 따라 강으로 내려갔고 우리는 금세 얼음 트레킹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등산화에 아이젠을 착용한 사람들 틈에서 운동화를 신은 건 수미와 나뿐이었으므로 우리는 또 금세 대열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폭이 좁아지는 협곡에 다다라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걸음을 멈췄다. 양옆으로 현무암 절벽이 가파르게 서 있어 마치 하늘이 보이는 동굴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수미와 나는 눈이 희끗희끗하게 덮인 얼음 위를 걸어서 암벽 밑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나오며 좁은 협곡 안을 빙빙 돌았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운동화를 벗었고, 곧이어 양말도 벗었다. 맨발인 채로 얼음 위로 올라서자마자였다. 수미와 나는 뜨거운 불을 딛고 선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양 발을 번갈아 들어 올리다 신발을 벗어놓은 바위 위로 뛰어올라갔다. 참을성이 조금도 없는 서로가 웃겨서 한참을 웃다가 다시 맨발로 얼음 위를 디뎠고, 몇 걸음을 걷다가 또 비명을 지르며 언 강과 바위를 뛰어다녔다. 그러다 우리는 누가 더 오래 서 있는지 내기라도 하듯 얼음 위에 맨발을 고정하고 섰다. 일초가 지나고 이초가 지나
혼자 가는 먼 집 남지은 일곱 살처럼 살라고 엄마는 말하고 뭐든지 서서히 하라고 아빠는 말한다 삼 년 안에는 첫 시집을 내야지 선배가 조언하고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중요해요 치료사가 당부한다 중요한 것과 소중한 것은 어떻게 다를까 언니가 혼잣말처럼 물어오고 시를 몇 편 쓰면 시인이 되나요 시인은 시만 쓰나요 시가 아니면 안 되나요 글쓰기 수업 학생들이 열띠게 질문한다 덜 핀 작약을 안아든 귀갓길 울 데가 필요해서 찾아왔다고 뵌 적 없는 시인의 손등에 입을 맞추니 여기까지 잘 왔네, 하신다* 사랑 많은 손을 붙들고 나는 여기 무어든 받아 적는다 포장을 끄르면 사라질 신비 같은 * 2020년 10월 3일 허수경 시인의 2주기 추모제를 지내고 북한산을 내려오는 길에 김민정 시인이 건네준 말. “수경 언니는 틀림없이 지은에게 이렇게 대답했을 거다. 여기까지 잘 왔다고.” 시의 제목은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1992)에서 가져왔다. 『그림 없는 그림책』 (문학동네, 2024)
글틴
언젠가부터 바람의 방향이 변했다.너와 함께 걸었던 길 위에 늘부드럽게 불던 바람은 이제 거칠고 냉담하다.그 바람 속에서 나는 자꾸만 뒷걸음 친다. 돌아보면, 자꾸만 네가 있을 것만 같아서.하지만 너는 그 자리에 머물러있지 않았고 오직 빈 하늘만이 펼쳐져 있다.너무나도 푸르러서 가슴이 아려오는 그런 하늘.너와 나란히 걸었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아니면 얼마나 짧았는지 조차 내가 확답할 수는 없지만시간은 언제나 그렇게 모호하고 불친절하다.내게 남은 것은 단지 몇 가지의 장면이다. 유일하게 너와 내가 주인공으로 남아있는 장면.너의 웃음, 걸음걸이, 그리고 가끔씩 나를 바라보던 좋아죽겠다는 그 눈빛.그 마저도 이젠 특별하지만 되찾을 수 없는 것들임을 나도 안다.네가 떠난 후에는, 아니 내가 너를 보낸 날인가.나는 쓸쓸함과 적적함의 다른 이름들을 배웠다. 적막, 허전함, 그리고 공허.외로움. 사랑.그것들은 매일 밤 나를 찾아와 아무도 없는 방을 가득 채운다.나는 그 속에서 너를 붙잡지만 바람은 대답 대신 나의 외로운 소리만을 남긴다.가끔씩은 너를 다시 만나는 그런 꿈을 꾼다.그곳에서 너는 여전히 따뜻하고, 여전히 나를 보며 웃는다.하지만 여전히 꿈일 뿐. 나의 눈 깜빡임 하나로 인해 너는 사라지고, 나는 다시 이곳에 남는다.돌아갈 수 없는 곳을 그리워하며.나는 이제 안다. 아니 어쩌면 너에게 가라고 한 그 순간부터.어쩌면 니가 날 버린 게 아니라. 내가 널 버린 걸까.희미한 바람 한 줄기에도 니 향기가 나는 것 같고,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에도 혹시나 너일까. 주위를 살피곤 한다. 어쩌면 난 평생 그 길에 서 있을 것 같다.너의 향기가 나고, 너의 발자국 소리가 나지만, 너는 존재하지 않는,그런 길.그 길 속에 네가 돌아올 길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너의 향기를 따라, 눈을 가고 너의 발자국 소리가 나는 곳으로.
상승.중력을 거스르려는 도약.우주로 유영하리다.두뼘을 어루만지는 푸르죽죽한 손아귀까짓거 맞잡고 더 위로.머리. 가슴. 팔. 다리. 발.차례로 구석구석 훑고 지나간다그 손길.소름돋게 차가워 몸을 잘게 떤다가만히 감은 두 눈을 살며시 뜨면시리도록 짙은 푸르름.방울져 떨어지는 별.발 밑에 환한 대기권.하나의 온기까지 전부 내보내고흡.눅눅하고 축축한 습기가 비집으려 한다 지우자. 여긴 우주잖아.고통은 잠깐.아, 놀라울 정도로 편안하다불쾌감.이리도 포근한 적이 있었던가둥.둥.귀에 울리는 박동천천히. 더. 더.이윽고 고요.시야는 암흑. 우주로 유영하리다.
초록색의 육수가 흘러나온다초자연의 어둠으로부터푸른 촉수들이 팔을 나부낀다어느샌가목적이 불분명한 기도를 하고 있었다얻어내고자 하는 것 없이순수한 그 기도 자체에 영혼을 녹여내고 있었다어느 날 눈을 떴는데햇빛이 너무 부셨고바람은 지나치게 산뜻했다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바람 끝으로 날아오는 분꽃 냄새가 맴돌았다몸은 여전히 찌뿌둥했지만 이상하리만치 가벼웠고그러다 문득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행 싱그러운 수목 내음 그득히 생기에 벅찬 땅을 밟는 걸음 입안에서 잘근 씹히는 풀향 씁쓸함도 향기로운 바람에 선뜻 떠나지 못해 갈팡질팡 빛 닿은 잎사귀는 하늘하늘 피로는 날숨에 실어 저 멀리 간지러운 바람과 함께 간다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었다. 값이 꽤 나갔지만서도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다. 수능이 다 끝난 시점에선 꽤 이상한 날씨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상적인 가을날씨였다. 아마 올해 중 가장 가을의 향내가 깊이 느껴지는 날이었으리라. 그와 더불어 2시까지 남아있는 여유로운 점심시간의 공백. 그 모든 것들 때문에 무작정 걸었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과 눈맞춤하며 근처 공원의 산책로를 몇 바퀴째 마주했을 때, 파란색 경량패딩을 입고 길을 걷는 한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노인께서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한창 길을 걷고 있었고 쓰레기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전혀 거리낌 없이 그를 주워 쓰레기통으로 옮겨놓았다.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고 느낀 건 아마 내가 쓰레기를 주워 담는 선한 행동을 해보았던 게 초등학교 저학년 때가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직후였던 것 같다. 잠깐의 망설임 후에 “쓰레기를 주우시는 거에요?”로 이야기를 열었다. 노인은 지금 나한테 이야기한 게 맞냐는 메시지를 드러내는 듯 아리송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잠시 후 -무뚝뚝하시거나 차가운 성격이시면 어떡하지-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 대답하셨다. “쓰레기가 너무 많아가꼬. 다섯 바꾸째 도니까는 다 보이고만. 어떤 사람들은 개똥도 나무에 묶어놓고 가.” 눈에 띄지 않게 선한 행동을 행하는 것과 어울리는, 어딘가 의지가 담긴 듯한 목소리였다. 짧지만 길다면 긴 시간동안 노인과 생각을 공유하며 공원을 마저 걸었다. 끈이 끊겨있던 운동기구를 수리해달라고 나랏님께 전화하셨던 이야기, 썩어버리고 밑동만 남아있는 나무를 어떻게 해달라며 마찬가지로 구청에 전화했지만, 예산 탓으로 방치하고 있다는 이야기, 매일 아침이면 당신과 비슷한 노인들이 낙엽을 쓸어놓곤 하지만 바스락거리도록 그냥 두었으면 좋겠다는 둥의 이야기. “쓰레기를 주우시는 모습이 너무 멋있으세요.” 말씀드리니 웃으시며 내 등을 두드리곤, “어떤 사람들은 그냥 두라고 그러더라, 요즘 세상이 너무 각박해진 것 같아.” 하던 이야기, 어떤 감정을 담은 건지 나로써는 헤아리기 어려운 미소를 지으며 언제 이렇게 늙어버렸는지 몰라. 하던 이야기. 말씀 하나하나가 내 가슴속에 깊이 남았다. 노인과 나란히 공원의 산책로의 시작점을 3번째 밟던 때에 다음에 뵈면 꼭 먼저 인사드리겠다고, 악수를 청하고 천천히 그곳을 걸어나왔다. 연세가 어떻게 되시냐고 물었을 때, 한참을 고민하다 “7학년 7반이여.” 하시던 그 목소리를 잊지 못할 것 같다.
불을 끄면서 키는 법이 있다고 했다 너에게 말해 보았다, 말이라는 건 너를 만진다는 것 검은 점,그런식으로 너는 답하지 한잔의 스킨 로션을 먹고야 깨달은 사실 무엇을 담아도, 사랑이며, 돈이며, 첫이며,그 모든 것이 흘려들어 가도, 결코 채워질수 없는 검은 점, 검은 점을 보고, 파고, 먹어도, 눌러도 만져도, 개미가 지나가는 길처럼,검은 점은 검은 점인채로 검은 점을 흉으로 세겼어야 했나, 잔뜩처럼 물음으로 숨을 가득 모아서고통조차 비강 속에 가두고 타자에 엄지를 올리면 내가 될 수 있는 줄 알았어 그러나 너는 항상 너였고,모스 부호를 보내는 일오그라드는 고사리누군가를 깨울까 조심히 걸었고 풀밭에 가장 낮게 누워서 개미가 쓴 시를 스치고 너는 불을 킨다 나는 불을 끄고 너에게 전해지려 발버둥
여러 번 끌어앉은 무덤 위로 술을 뿌리듯이옅은 살구색의 청진기를 네 가슴 위에 올리면 깨진 심실이 있었다망가진 우리의 삶은 망가진 것으로밖에 연명할 수 없구나나무의 큰 줄기 그늘에 이미 늘어져 있다 깨진 것들이조개껍질이 닦아지길 기다리는 듯한 것처럼불그레하다 무릎이라던가 흰 눈동자 혹은 손가락 마디뼈시험을 망치고 돌아선 지난달 네 뒷모습에서 부서져 나온 부분버리라고 했지만 버릴 수 없었던그걸크게 울렁여보라고 고물상 같은 흉곽 언저리얹힌 하고 싶은 말들이나 꿈을 밀어내는 마음으로창백한 손목은 내려두고 숨을 파도치듯이 밀물과 썰물로네가 숨을 삼킬 때 수몰지구는 끌어당겨진다 혈관 대신 잎맥이 번진 심장에는울고도 여름식물이 마실 만큼 남는 물이 필요해서네가 숨을 뱉을 때 굴러나온 호흡을 붙잡고 자근자근 씹으면 소리가 비어져 나와그곳의 사랑해는 깨진 조각들이 와장창 구르는 것과 겹쳐지면살려달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리고 무지근하다골백번을 그렇게쓰고 부서진 물건이 너무 많았다살아온 것들을 이렇게 쉽게 봐도 괜찮은 거야?선고 받은 것처럼 귀에 너무 크게 울려평생을숨을 습관적으로 참으며 짚은 손을 뗀다눌렸던 살갗이 다시 굳어오르는 멍미안해
문장소식
바로가기여러분과 함께 더 나은 문학광장을 만들고 싶어요! 문학광장 누리집 이용자 만족도 조사에 참여해주시면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이 더욱 반영될 수 있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께는 추첨을 통해 깜짝 선물도 준비되어 있으니 놓치지 마세요! ㅇ 조사기간 : 2024. 11. 11(월) ~ 20(수) ㅇ 설문링크 : http://isurvey.panel.co.kr/?Alias=9256906499
안녕하세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수상 결과를 안내드립니다. □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시) 분야 상훈 수상자명 작품명 시 장원 김ㅇ언 지우개의 행방 우수상 김ㅇ림 볼풀장 장려상 정ㅇ영 뜨개질 장려상 이ㅇ민 지우개 인간 장려상 주ㅇ영 지우개 입선 박ㅇ희 기다림 입선 정ㅇ연 영구임대 입선 박ㅇ원 공연 입선 박ㅇ정 기다림 □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산문) 분야 상훈 수상자명 작품명 산문 장원 김ㅇ애 매실의 시간 우수상 박ㅇ연 지우개 장려상 전ㅇ희 지우개는 그곳에 두고 왔다. 장려상 장ㅇ현 기다림의 순환 장려상 김ㅇ연 나는 오늘도 내일의 나를 기다립니다. 입선 박ㅇ선 그런 기억도 소중하다고 당신에게 배웠습니다. 입선 손ㅇ선 겨울 준비 입선 조ㅇ옥 두번 심은 고추(모종) '기다림' 입선 김ㅇ연 얀의 선물 □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아동문학) 분야 상훈 수상자명 작품명 아동 문학 장원 고ㅇ성 특별한 청설모 우수상 임ㅇ정 회색 꼬마 공룡 지우개 장려상 지ㅇ순 안젤라 누나 장려상 이ㅇ민 한 줄 두 줄 엮이더니 장려상 한ㅇ비 나와 너의 기다림 약속 입선 이ㅇ지 커다란 지우개 입선 김ㅇ영 당근 김밥 입선 이ㅇ희 기다림 입선 한ㅇ숙 D-15 누나가 나타났다. □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특별상) 상훈 수상자명 작품명 특별상 오ㅇ원 나와 타인 특별상 김ㅇ희 지우개
안녕하세요. 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수상 작가님을 다음과 같이 안내드립니다.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은 올해 2회차를 맞이하였으며, 올해 297명의 작가님께서 참여해 주셨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작가님께 감사드리며 차년도에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인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대상(1명) 상훈 성명 연락처(뒷 4자리) 대상 이*숙 0691 □ 공감상(5명) 상훈 성명 연락처(뒷 4자리) 공감상 한*희 6220 방*의 8596 장*교 3370 김*아 7073 정*선 5498 □ 소통상(15명) 상훈 성명 연락처(뒷 4자리) 소통상 김*선 9218 유*하 0913 박*영 0631 장*현 5963 김*언 8675 이*령 7811 조*숙 0875 박*롱 7714 최*숙 4557 권*현 8068 이*지 0691 정*숙 7863 최* 5552 강*은 0694 이*님 3413
안녕하십니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입니다.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에 관심가져 주심에 감사합니다.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의 등단(미등단) 작가님들의 참여와 관련하여 안내드립니다.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은 한국 문학의 저변 확대와 여성 문학인 발굴을 목표로 미등단 여성 작가님들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학계의 흐름과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여, 등단 이력이 있는 작가님도 본인이 등단하지 않은 장르(시, 산문,아동문학에 한함)에 참여하실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아래 내용을 참고하시어 참여 가능 여부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ㅇ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참여 가능여부 안내 -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은 여성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단, 등단 여성 작가님은 등단하신 장르로 참여는 불가하나, 다른 장르로는 신청이 가능합니다. -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신청 예시 1. 산문(소설) 분야 등단 작가님 → 산문 부문 신청 불가(아동문학, 시 부문 참여 가능) 2. 아동문학 분야 등단 작가님 → 아동문학 중 세부 장르의 등단 분야 신청 불가(시, 산문 참여 가능) (예시 : 아동문학_동화 등단일 경우 동화 신청 불가, 동시로는 가능 / 반대일 경우도 동일) 3. 시 분야 등단 작가님 → 시(시조) 부분 신청 불가(소설, 아동문학 참여 가능) 4. 등단 이력은 없지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동일 장르 수상 이력이 있을 경우 참여 가능 여부 → 장원 수상 이력 외 참여 가능 위와 같이 안내드립니다. 추후 사업의 경우 현재보다 더 개선된 방향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성 작가님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