귄터 그라스 [게걸음으로]와 세월호
- 작성자 neo
- 작성일 201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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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은 너무나도 유명하고 또 여러분 모두 익히 들은 바 있는 고전 문학이다. 귄터 그라스의 대표작이라 이 책만 읽어도 작가의 세계관을 모두 획득했다고 이해하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점을 가슴 깊이 깨닫게 해 주고 머릿속에 깊이 부각시켜주는 소설이 바로 그의 또 다른 명저 <게걸음으로(Im Krabsgang, 2002)>이다.
대한민국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심지어 독일에서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건인 '구스틀로프호 피란선 침몰 사건'은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당시 일어난 일이다. 9000명의 피란민을 태운 구스틀로프호가 러시아 잠수함의 어뢰를 맞고 침몰해 1000명 정도만이 살아남은 참혹한 대참사였다. 이렇게 커다란 사건을 8000명과 함께 독일 사회가 암묵적으로 은밀히 생매장했다. 귄터 그라스는 그때까지도 파묻혀있던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한 편의 소설을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낱낱이 밝혀준다.
소설의 주인공은 구스틀로프호 침몰 당시 생존자의 뱃속에 들어있던 태아로서,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에게 지긋지긋하도록 그때의 이야기를 들어 엄청난 피로와 근심을 끌어안고 살고 있었다. 항시 어머니의 지나친 경험담과 강요를 들어온 탓에 저절로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고, 아버지가 없었던 탓에 더욱 힘든 여생을 보내다 결혼을 해 아들을 낳았지만 어떻게 해야 아버지답게 행동해야 하는지 몰라 자연스레 아들과 멀어지게 된다. 결국 주인공의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의 어머니, 즉 할머니의 손에 길러져 버릇없고 막돼먹은 청년으로 자라고, 주인공은 자신의 아들마저 어머니에게 세뇌당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본다. 주인공의 아들은 할머니가 사 준 컴퓨터로 인터넷 채팅방에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 이야기를 떠들어대며 채팅방의 관련 인물들과 관계를 맺는다. 아들은 그 인물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척 하지만,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권총으로 쏴 죽여 버린다. 주인공은 이런 커다란 사건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어머니 역시 자신의 손자가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법정에서는 주인공의 아들을 징역 8년에 처하고 소년원에 감금한다. 하지만 주인공의 아들은 그렇게 됨이 마땅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오히려 태연한 태도까지 보이며 소년원에서 세월을 보낸다. 주인공은 자주 아들을 찾아가 면회하고 아들이 속히 나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린다.
그 당시 이 책이 나왔을 때 전 세계는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다. 왜냐하면 작가 귄터 그라스가 50년도 더 된 사건을 파헤쳐 베일을 벗기고 완벽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귄터 그라스의 책이 금기시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의 소설이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옆걸음치며 사건을 교묘하게 게걸음으로 파헤쳐 나아갔기 때문이었다. 귄터 그라스는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을 앞을 향해 무조건 직선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옆걸음, 즉 게걸음으로 서서히 걸어갔던 것이다. 언뜻 보면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과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소설 속은 시작부터 끝까지 사건을 촘촘하게 뜯어보고 비판하고 있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어머니에게도 구스틀로프호 사건의 후유증이 뿌리 깊게 박혀 있고, 주인공 아들의 채팅 과정에도 모두 존재하며 글자 하나하나 모두 사건의 깊은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아들이 살인할 때까지 가만히 방관한 주인공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하지만, 무엇보다도 주인공의 어머니에게 총체적인 책임이 크다고 얘기하고 있다. 애초에 어머니가 구스틀로프호 침몰 당시 충격을 받아 아들에게도 그 충격을 고스란히 전해 주었고, 어머니가 아들에게 이혼한 아버지에 대해 말해 주지 않았으며, 어머니가 손자를 데리고 가 완전히 망쳐버린 것이다. 결국 모든 책임은 어머니에게 있고 어머니의 책임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이 소설은 비뚤어진 가정사와 역사적 사건까지 모두 통합해 탁월하게 보여준다. 오직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과 그 당시 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 가족이 어떻게 파멸해 가는지를 역사를 통해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이런 뛰어난 글 실력을 뽐내는 귄터 그라스에게 경의와 조의를 표한다.
올해 2016년 4월 16일은 세월호 침몰 사건 2주기가 되는 날이다. 기념할 날도 아니고, 축하할 날도 아니다. 정부는 사건 발단 이후 2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뱃속 채우기에 바쁠 뿐이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세월호를 위해 슬퍼하고, 위로하며, 투쟁한다. 70년이 넘도록 끝끝내 아무것도 밝히지 않은 독일 정부처럼 한국도 2년이 되기까지 아무것도 밝히지 않고,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채 모른척하며 등을 돌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독일의 구스틀로프호와 한국의 세월호는 다른 점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구스틀로프호 속 수천 명의 피란민이 모두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세월호 속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두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정작 벌을 받아야 할 죄인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책임지지 않고, 상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도리어 죄책감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런 끔찍하고 고륜지해 같은 세상 속에 대통령이란 작자는 비싼 옷을 입고 방탕하게 자빠져 놀고만 있다. 우리는 오늘도 부조리한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구스틀로프호와 세월호는 이런 점에서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독일이든 한국이든, 모두 지옥같이 무섭고 잔혹한 현실에서 같은 역사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현실을 견뎌나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미래의 희망을 갖고 미래의 세상을 꿈꾼다. 우리는 언젠가 빛을 내며 나타날 새로운 세상을 믿기 때문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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