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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색정대훈 - 제1회 서울제대로도서전, 또 하나의 작은 책 축제를 만나다
[도서전 참관기] 제1회 서울제대로도서전, 또 하나의 작은 책 축제를 만나다 정대훈 프롤로그 서울국제도서전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오늘 또 하나의 도서전을 찾았다. 규모는 훨씬 작았지만, 최근 출판계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새로운 시도라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현장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행사장에 도착한 시간은 개장 약 30~40분 전. 예상했던 것처럼 행사장은 한산했다. 몇 년 전 서울국제도서전이 지금처럼 대규모 축제로 자리 잡기 전의 분위기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드문드문 모여 있었고,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도서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들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 노들섬에 도착했을 때. 서울국제도서전의 여운을 안고 또 하나의 책 축제를 찾아왔다. 맑은 하늘만큼이나 오늘은 조금 여유로운 도서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 개장 전 풍경. 아직은 사람들이 드문드문 모여 있었다. 오래전 서울국제도서전이 지금처럼 북적이기 전, 그 시절의 익숙한 풍경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느긋하게 책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작은 공간을 가득 메운 책의 열기 개장과 동시에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행사장 규모는 서울국제도서전의 대형 부스 몇 개를 합친 정도에 불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발 디딜 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붐볐다. 게다가 사람들은 빠르게 지나가지 않았다. 부스마다 멈춰 서서 책을 펼쳐 보고, 출판사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이동했다. 덕분에 행사장의 동선은 한참 느렸지만, 그만큼 책을 중심으로 한 시간이 어느 정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가족 단위 관람객과 어린이를 동반한 방문객도 많았고, 조선대학교 학생들의 단체 관람도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어린이책과 그림책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출판사 부스의 분위기였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젊은 직원들이 운영하는 부스를 많이 볼 수 있었다면, 이곳에서는 작은 출판사의 대표나 편집장이 직접 독자를 맞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책에 관한 이야기가 조금 더 깊게 이어지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 불과 몇 분 만에 달라진 풍경. 조금 전까지 한산했던 공간은 개장 시간이 다가오자, 순식간에 긴 대기 줄로 바뀌었다. ‘오늘은 여유롭게 둘러보겠구나’ 했던 기대는 이때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던 내부. 공간은 크지 않았지만, 출판사와 독자들 사이에는 끊임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발걸음은 느렸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대부분 책 위에 머물러 있었다. 도서전의 또 다른 즐거움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다. 이번에도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조선대학교 양경언 문학평론가였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그랬지만, 도서전은 책만 만나는 공간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업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근황을 묻고, 짧은 대화 속에서 새로운 소식도 듣게 된다. 책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다시 연결되는 장소라는 점에서
작성일 2026-07-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정대훈 -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와서
[도서전 참관기]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와서 정대훈 1. 다리가 아팠다, 그런데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다리가 아팠다. 서울국제도서전에 들어선 지 네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분명 책을 보러 왔는데 이상하게 계속 걷고만 있었다. 한 부스를 보고 나오면 또 다른 부스가 나타났고, 저쪽에 사람이 몰려 있어, 가보면 또 다른 줄이 있었다. 잠시 앉아 쉬고 싶었다. 그런데 앉을 곳이 없었다. 커피 한잔 마시며 오늘 본 풍경들을 정리해 보고 싶었지만, 행사장 안 카페는 이미 만석이었다. 결국 사람들이 선택한 곳은 전시장 한쪽 벽과 통로였다. 누군가는 가방을 베개 삼아 쉬고 있었고, 누군가는 오늘 받은 전단과 굿즈를 정리하고 있었다. 책은 느린 매체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책을 펼치고, 페이지를 넘기며 머무는 시간 속에서 완성된다. 그런데 책 축제에 온 사람들은 멈추지 못하고 계속 걷고 있었다. 그럼에도 더 이상한 것은 아무도 쉽게 나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와, 너무 많다. 어디부터 봐야 하지?” “아 힘들다.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싶은데 자리도 없네.” 힘들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은 다시 다음 부스를 향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책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다. 이 이상한 모순에서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을 바라보는 질문이 시작됐다. 2.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 책을 사러 온 사람들일까, 그냥 책 곁에 있고 싶은 사람들일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 사람들이었다. 특히 젊은 여성 관람객들이 많았다. 20대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방문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행사장 곳곳을 누볐다. 그런데 조금 걷다 보면 묘한 장면이 보였다. 길게 늘어선 줄. 그런데 그 줄 끝에는 늘 책이 있지는 않았다. “여기 줄 서 있는 거예요?” “이벤트 참여하시려면 저쪽 끝부터 서셔야 해요.” 사람들은 이벤트를 기다렸다. 한정 굿즈를 찾았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 상품 앞에서는 한참을 머물렀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조금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책 축제인데 책을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처음에는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행사장을 오래 걷다 보니 조금 다른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이들은 책을 영영 떠난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책 곁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아닐까. 과거에 비해 지금의 독자는 조금 복잡하다. 좋아하는 출판사의 세계관을 소비하고, 책 주변의 귀엽고 탐스러운 물건들을 소유하고, 작가와 연결되는 어떤 새로운 경험을 꽤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책은 목적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의 출입구가 되고 있었다. 3. 가장 작은 공간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사람들 — 어쩌면 독립 출판이 보여준 취향의 힘? 첫날. 흥미로운 것은 크고 화려한 부스에만 사람들이 몰렸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인파가 가장 천천히 움직였던 공간 중
작성일 2026-07-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정용준 - 공허 view
[레지던시 일기 – 협성마리나 G7] 공허 view 정용준 그곳에 머무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하지 않기’였다. 뭘 하려는 노력은 그만두고 뭘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일찍 일어나는 것. 까다로운 연락을 주고받는 것. 확인하고 결정하고 결심하는 것. 크고 작은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 사느라 바빴다. 어떤 이유로, 혹은 이유도 모른 채, 분주했다. 급한 일에 시달렸다. 곰곰이 따지고 보면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는데 처리하려 들었고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정작 소중한 일이나 가치 있는 일, 혹은 하고 싶은 일은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뒤로 미루었다. 이상하다. 의미 있는 일은 안 하고(못하고) 무가치한 일에 온 힘을 다하는 삶이라니. 살기와 쓰기는 겨룰 수 없다. 둘은 체급이 다르다. 쓰기는 살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살기의 눈치를 봐야 쓰기는 존재할 수 있다. 살기가 자리를 비우거나 잠이 들어야 비로소 초원에 나올 수 있는 약하고 약한 쓰기. 일상의 사각에 숨어 읽고 쓰는 것. 그것도 대단하지만, 그만큼 소중하지만, 때로는 생각한다. 삶의 운동장 전체를 다 사용해서 쓰면 얼마나 좋을까. 페소아가 그랬듯이 온종일 허구의 존재들하고만 놀면 얼마나 좋을까. 두려움을 내려놓고 나 자신을 몇 개로 가능하다면 수십 개로 분화해서 모두에게 삶을 허락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과 공상으로 사면을 채워 그 안에서 영원해지고 무한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협성마리나 G7 39층 숙소. 그곳을 떠올리면 차가운 2월의 허공이 느껴진다. 커다란 창밖으로 펼쳐지는 하늘과 바다. 1,200대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넓은 주차장. 창문에 이마를 대고 멍하니 그것들을 봤다. 그렇게 있는 것이 좋았다. 허공에 떠서 아래를 바라보는 3인칭 화자의 기분은 이렇겠지. 높은 고도와 그만큼 텅 빈 풍경. 이따금 새가 날고 몇 차례 비가 내리는 것 외엔 언제나 비어 있던 저 허공. 거기에 눈을 두고 오래 있으면 곧 공허해졌다. 나는 그 풍경을 미술관의 그림처럼 응시했고 그 작품의 이름을 ‘공허 view’라고 지었다. ‘공허’의 정의가 궁금해서 사전에서 찾아봤다. 내부 감정이 황폐해지고 환상과 소망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외부 자극에 대해 반응하지 못하거나 단순히 기계적인 반응만을 보이는 주관적인 정신 상태. 이런 상태에서 개인은 확신, 열성, 타인들과의 연결됨을 상실하고 무감각, 권태 그리고 피상적인 감정에 시달린다. 대부분의 설명과 표현에 동의하지만 ‘황폐’, ‘기계적인 반응’, ‘시달린다’에는 수긍하기 어렵다. 내부 감정의 구조와 지탱하고 있는 것들이 무너질 수는 있다. 무너질 필요도 있다. 그러나 그 풍경을 황폐하다고 할 수는 없다. 대청소를 하려고 물건을 빼놓은 빈방을, 새 물을 채우려고 물을 다 뺀 수영장을, 더럽다고 표현하지 않는 것처럼. 그 ‘뷰’는 공허했
작성일 2026-07-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최영건 - 바다는 당신의 우연
[레지던시 일기 – 협성마리나 G7] 바다는 당신의 우연 최영건 유리병 편지가 밀려오는 모래와 물, 소금과 손가락의 순간을, 당신은 떠올린 적 있으신지요? 사실 이 장면은 내게 퍽 익숙합니다. ‘동물의 숲’ 게임에 매일 찾아오는 순간이거든요. 게임 속에서 우리의 일과는 바다로부터 편지를 받는 것입니다. 열어보기 귀찮아 슬쩍 지나칠 만큼 꾸준히, 매일의 약속으로요. 부산에서 내게는 유리병은 없었지만 유리창은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그날의 윤슬로 바다가 일렁이던 창이요. 사실 이 말에는 약간의 거짓, 내가 알게 된 약간의 참이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윤슬은 매일 보이지 않아요. 저는 이걸 이번 레지던시 생활에서야 깨달았습니다. ‘물비늘’이라고도 불리는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해요. 그러나 어느 날은 바다에 반짝임이 없습니다. 어느 날은 흐려서 어두워진 바다, 묵직해진 바다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아침마다 내가 본 것은 그날의 일렁임이지 그날의 반짝임은 아닙니다. 다만 얼어붙지 않은 바다에, 일렁임은 매일 있습니다. 그것만큼은 분명해요. 유리창으로 내가 본 것은 다만 매일이었습니다. 레지던시에서 지내는 동안 매일 약속을 지키듯 창밖을 보았어요. 그리고 매일 산책을 나갔습니다. 아니지, 이것도 실은 약간 거짓입니다. 한 주에 하루이틀 정도는 안에만 머물렀어요. 소파에서 책을 읽다 보면 낮은 금세 저녁이 되었습니다. 부산역 근처엔 마침 배달비 무료 이벤트 중인 가게들도 꽤 있었어요. 어느 날엔 정말이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먹으며 책을 읽고, 그러다 씻고 잠을 잤습니다. 다만 그런 날에도 바다를 보았습니다. 내가 본 먼 곳의 다른 바다들과 이곳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4월은 내게 지난해 머물렀던 군산의 작업실을 정리한 달이기도 했어요. 한 해를 다 살기는커녕 한 계절을 살기도 전인데, 한 해 계획이 다 세워져 버렸거든요. 계획이 나보다 먼저 한 해를 삽니다. 당신도 그렇겠지요. 계획은 우리와는 다른 사람, 우리이지만 우리가 아닌 사람, 우리보다 먼저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나는 하루에 두어 번 아침저녁으로 일기를 써요. 아침에 쓰는 일기는 계획표에 가깝습니다. 나보다 먼저 하루를 사는 그 사람의 어렴풋한 모습이 To-Do List로 쓰여 있습니다. 저녁에 그 사람은 다시 내가 되어요. 글을 쓰는 사람은 여러 번의 시간을 살아갑니다. 일기라는 글도 그래요. 당신은 일기를 쓰는 사람인가요? 4월이 되면서 한 해의 계획을 거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지난해와 달리 작업실에서 지낼 시간이 별로 없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고, 월세를 아끼려면 계약을 해지해야 했죠. 운 좋게도 생각보다 더 빠르게 계약을 이어 받아줄 분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더 빠르게, 아주 조금 섭섭해질 만큼 빠르게요. 월세를 아낄 걸 생각하면 안도감이 들었지만요. 4월 레지던시 창으로 부산 바다를 내다보며 나는 아마도 내가 다시 보지 못할 군산
작성일 2026-07-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이세옥 - 문학/텍스트가 등장하는 여섯 가지 기획
[문학의 곁] 문학/텍스트가 등장하는 여섯 가지 기획 ― 웹진 《비유》 기획‧운영자가 소개하는, 문학으로 향하는 여러 갈래들(@webzineview) 이세옥 이 글은 일을 하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여러 문을 여닫으며 장소들에 드나들고, 밥을 먹고 쓰레기를 버리며 사는 한 생활인의 삶에, 문학 텍스트가 어떻게 등장하는지 살펴본다. 내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길러진 환경과 현재의 활동을 단편적으로 기록해보는 글이기도 하다. 예술과 문학은 세계에서 가치 있는 위치를 점하면서도, 사실 시급한 이슈에 해당되지 않는 편이라는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은 처음 말을 꺼낼 때는 보통 압축적으로 말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 썼다. 주민센터 한켠 작은 책장 어릴 때 살던 동네 주민센터에는 작은 책장이 두어 개가 있었다. 집에서 가깝고 생활 반경 내에서 손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공간에 있는 그야말로 ‘작은 도서관’이었다. 여러 종류의 책들이 어떤 일관된 취향을 파악하기 어렵게 꽂혀 있었는데, 그중 문학상 수상작들이 많았다. 토니 모리슨과 같은 노벨문학상 수상작들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종종 그 책장에서 책을 빌려 읽었다. 돌이켜보면, 문학상이라는 제도가, 수상작이라는 선택이, 주민센터 한켠을 경유해서 청소년 시절 나의 독서목록을 구성했다. 이는 공공 인프라와 문학 제도가 연결되는 방식이다. 공공 도서관이 충분하지 않던 시기, 주민센터나 작은 도서관 같은 생활권 내 독서 공간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돌이켜보면, 문학 텍스트는 시장만이 아니라 행정과 복지 체계를 통해서도 유통되어 왔다. 읽기와 쓰기 훈련의 학교 학부 학업 과정 중에 내가 한 것은 텍스트를 읽는 훈련인 것 같다. 영문학과에서 시와 소설 그리고 희곡 등을 촘촘히 읽던 시기였다. 문장별, 단락별, 챕터별로 읽어가며 전체 작품을 조망하는 시점 이동을 학습했다. 가령 흔하지 않은 각종 식물명까지 찾아서 읽으며, 가까이서 텍스트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단어의 선택, 문장의 리듬과 속도, 단락의 호흡 같은 것들을 읽다가, 다시 텍스트의 맥락을 살펴보기도 했다.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언제 출판되었는지, 어떤 독자를 향하고 부르는지, 이 글은 어떤 제도를 기반으로 완성되었는지, 그리고 생략된 부분은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난 특정 주제에 따른 작품들을 모아 읽으며 그걸 바탕으로 창작하는 수업에도 참여했다. 그중 소설가 최윤 교수님의 성평등 글쓰기 워크숍 수업이 내게 오랜 기간 기준점이 되어주었다. 그 워크숍은 내가 창작 글쓰기를 자유롭게 전개해보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공유할 수 있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기술적인 부분들을 연습하기보다는 내게 보이는 세상을 글로 쓰는 데 필요한 태도를 다질 수 있었다. 실제로는 자기 폭로에 가까운, 표현 자체에 치우친 짤막한 글들을 쓰고 공유했지만, 이 워크숍이 끝난 한참 뒤까지 내게 이 모임은 창작 자체가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와 관계 맺는 과정이라는 것을 배운 경험으로 남
작성일 2026-07-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윤슬빛 - 자유롭게 길 잃기
[레지던시 일기-협성마리나 G7] 자유롭게 길 잃기 윤슬빛 유난히 길을 잘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난히 길을 잘 잃어버리는 사람들도 있지요. 아무래도 저는 후자 쪽이라 어딜 가나 비슷비슷해 보이는 길 앞에서 매번 난감해지곤 합니다. 누군가에게 정확한 위치를 설명할 수도 없고 이 방향이 맞는지 저 방향이 맞는지 확신할 수도 없으니까요. 다행히 “모든 길은 다 연결되어 있다!”라는 아버지의 강건한 호언장담을 들으며 자란 터라,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하는 대책 없는 낙관으로 매번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간답니다. 언제든 어떻게든 가고자 하는 곳에 다다르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이랄까요. 오도카니 앉아 지난 기억을 되새기며 레지던시 일기를 쓰자니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낯선 부산역 주위를 하염없이 빙빙 돌았던 첫날이 떠오릅니다. 분명 지도에는 길이 있는데, 거의 다 온 게 맞는 것 같은데…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어김없이, 도무지 목적지가 보이질 않았지요. 안내문을 꼼꼼히 읽지 않아 자주 곤란해지는 사람에 대해 써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자분자분 오래 걸었습니다. 무작정 헤매고 있는데도 전혀 조급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오롯이 읽고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게 그저 기뻐서 다른 건 아무래도 괜찮았거든요. 일상으로 돌아와 비슷비슷한 하루를 무심코 흘려보내다 보면 문득문득 부산역 10번 출구를 가로질러 걷던 하늘광장이 떠오릅니다. 멀리 내다보이던 희부연 바다와 거세게 불던 바닷바람과 공사장의 소음이 제 안에서 소란스럽게 되살아납니다. 흔들거리는 그 길을 빈번히 걸으며,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과 어디선가 돌아온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이 도시를 잠깐 사랑하러 온 사람들도요. 혼자, 혹은 여럿이 빚어내고 있는 찰나를 슬쩍슬쩍 엿보며 ‘다들 이렇게 흔들리면서 사는 거겠지’ 싶어 괜스레 애틋해지곤 했지요. 일부러 비워둔 시간 사이사이에 모르는 사람들의 표정과 그림자가 천천히 스며들었습니다. 차근차근 쓰다 보니 사람, 사람이란 말을 참 많이 적고 있네요. 문학을 하는 일이 삶을, 사람을 들여다보는 일과 다르지 않아서인가 봅니다. 도저히 다 이해할 수 없는 이 불가해한 세계에서 불완전하게 살아가는 모두가 무엇을 붙들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지 헤아려보려면 잠깐 멈춰야 한다는 걸 다시금 배운 날들이었습니다. 돌이켜볼수록 참 귀한 3월이었어요. 호된 꽃샘추위에 웅크리고 다니면서도 종종 등 뒤가 뭉근히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더운물이 찰랑찰랑 차오르는 것 같던 오롯한 충만함 덕분이겠죠.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잘 상상할 수 없었는데 별 의미도 없이 느긋하게 사위를 둘러보던 그 순간만큼은 ‘영원히 이렇게만 살면 참 좋겠다’ 싶기도 했답니다. 헐겁던 읽기 목록이 다시 빼곡해졌고 흘려 쓴 것과 흘려보낸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채우기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쉼표와 마침표를 들여다보고, 물음표와 느낌표의 질감을
작성일 2026-06-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하신하 - 나미나라공화국의 이야기 요정을 보았니?
[레지던시 일기 – 남이섬 호텔정관루] 나미나라공화국의 이야기 요정을 보았니? 하신하 편집회의까지 마치고 마감을 이미 한번 연기한 장편 동화의 원고를 머릿속에 짊어지고 남이섬으로 들어가는 배에 올랐다. 배는 물길을 헤치고 유유히 남이섬으로 다가갔다. 나는 저 섬을 거나한 술판이 벌어지는 대학생 MT 장소로, 한여름의 활기와 젊음의 싱그러움이 가득 담긴 노래가 흘러나오는 강변가요제로, 또 유명한 드라마의 한 장면을 찍어 관광객이 북적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원지로 알고 있었다. 이후 남이섬에서 국제 규모의 어린이책 축제가 열린다는 유명세는 익히 들었지만, 직접 참여한 경험은 없었다. 배 안에서 들리는 말들이 서로 다른 걸로 보아 아시아의 다양한 국적으로 짐작되는 낯선 관광객 무리 속으로 조용히 스며 들어갔다. 남이섬에 도착해 배에서 내렸을 때 나는 ‘나미나라공화국’이라는 소인국 안에서 눈을 뜬 거인 걸리버가 된 기분이었다. 언제나 함께하는 물리적인 몸의 무거움에 마감을 넘겼다는 마음의 무게까지 더해져 나는 이미 거인만큼 천근만근이었다. 내가 지낼 숙소인 YUSOF 방의 문을 열자 말레이시아의 그림책 작가 유소프가 그린 코끼리들이 나를 반겼다. 나에겐 2주 안에 원고를 마무리해서 보내야 한다는 중압감이 코끼리보다 더 무거웠기 때문에 벽을 가득 채운 코끼리 그림은 한없이 천진난만하게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 여행의 즐거움에 들떠 남이섬 안을 훑고 다니는 관광객들의 무리에 속해있었던 터라 레지던시 숙소 근처의 한적함은 다른 시공간에 들어선 듯 낯설었다. 관광객들이 배를 타고 빠져나간 밤에는 침묵과 어둠이 숙소 주위에 깊게 내려앉았다. 남이섬을 산책하는 새벽과 저녁 시간에 나는 거인국에 도착한 작디작은 걸리버가 되었다. 화려한 깃털로 있는 힘껏 자신을 뽐내는 공작과 내가 방문을 열고 나오면 아는 척을 하며 다가와 내가 가지고 다니는 견과류를 뺏어가는 토끼들. 일정한 동선으로 직원처럼 일하는 듯한 오리와 거위 무리. 뺏어갈 천적이 없는 듯한데도 무언가를 숨기느라 바쁘디바쁜 다람쥐와 청설모, 그리고 마감의 시간 또한 지나가리라며 천천히 흐르는 물과 이 모든 풍경을 내려다보며 감싸주는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서 나는 작고도 작은 사람이었다. 자연의 한구석을 차지한 작은 걸리버는 조용하고 겸손하게 다른 생명체들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으며 돌아다녔다. 식당이나 카페, 도서관이나 미술관에는 최대한 관광객처럼 위장하고 들어갔다. 하지만 잠시 머뭇거리고 있으면 어디에선가 지켜보고 있던 남이섬의 직원들이 “작가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며 반갑게 웃으며 다가온다. 어디를 가든 늘 한 사람쯤은 다가와 혹시 우리가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무리 속 위장술이 뛰어난 내가 관광객이 아니라 레지던시 작가라는 것을 남이섬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 직원들은 미소를 띠고 심리적 안정을 보장하는 일정한 사회적 거리를 두고 바라보지만, 내가 신호만 보내면 당장이라도 뛰어오겠다는 서비스
작성일 2026-06-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서윤빈 - 당신 이야기의 유령 콘셉트는 낙관적인 것이지요? 유령이란 존재 자체가 사후세계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 아니오? 그러니 낙관적이지요.
[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당신 이야기의 유령 콘셉트는 낙관적인 것이지요? 유령이란 존재 자체가 사후세계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 아니오? 그러니 낙관적이지요.1) 서윤빈 우선 하나 고백하면서 시작하겠다. 나는 여태 진실한 에세이를 써 본 적이 없다. 일곱 권의 책을 냈으니 적어도 일곱 번은 에세이 내지는 에세이격에 해당하는 작가의 말을 썼다는 뜻인데, 그중에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되지 않은 것은 단 한 편도 없었다. 아주 현실적으로 보이는 몇 편의 글에서도 나는 아무도 알지 못할 거짓말을 섞어 넣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쓸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별로 인기가 없는 사람이고, 인기가 없다는 건 내가 별로 흥미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일 테니까.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주는 건 작가로서 죄를 범하는 일처럼 느껴졌으니까. 문제는 이 글에서는 거짓말을 하기가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원고 청탁 내용 자체가 호텔 프린스 ‘소설가의 방’ 사업에 선정된 작가의 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소설가의 방’이 10년이 넘는 연식을 가진 장수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상반기, 하반기에 각각 6명의 작가가 머물렀다고 치면 대충 추산해 봐도 여태 120명 이상의 소설가가 호텔 프린스에 머물렀다는 결론이 나온다. 만약 무언가를 꾸며내어 쓴다면 그들 중 누군가는 분명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어깨가 딱딱하게 굳으면서 글이 턱 막혔다. 망상과 기현상 없는 글은 어떻게 쓰는 거였더라? 일단은 내가 벌인 조금이라도 재미있는 일들을 떠올려 보자. 틀렸다. 호텔에 머무는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유튜브 영상을 몇 편 찍은 것, 장편 소설 원고를 쓴 것, 가능한 조식을 챙겨 먹으려고 애쓴 것 정도가 전부였다. 남들 다 한다는 산책도 거의 하지 않았고, 그렇다 보니 명동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없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시트를 갈아주는 새하얀 침대의 느낌이 꽤 각별하기는 했으나… 그거야말로 120여 명의 작가가 다 아는 지루한 이야기겠지. 하지만 그게 꼭 내 잘못이기만 할까? 지금 객실에 관해 생각하면 객실의 공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먼지 냄새와 함께 감돌던 어떤 끈적한 기운. 그 기운은 내 몸에 부드러이 달라붙어 나를 잠으로 이끌곤 했다. 혹시 그 기운이 수많은 작가가 거쳐 간 흔적이었던 건 아닐까? 얼핏 깨끗해 보이는 객실의 벽지와 침대 시트에 사실 앞서 머물렀던 작가들의 땀과 한숨, 권태가 지층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다. 작가 레지던시답게 ‘소설가의 방’ 중 한 객실에는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 귀신 역시 축적의 산물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귀신은 한밤중에 슬쩍 나타나 소설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이렇게 속삭이겠지. — 특별한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아. 너도 알잖아. 물론 내 방에는 귀신이 나오지 않았으니 귀신이 정말로 어떤 스타일인지 나는 잘 모른다. 내가 오해했다면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하지만 나도 서
작성일 2026-06-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하유정 - 어디로든 데려가는 것
[문학의 곁] 어디로든 데려가는 것 ― 열심히 책과 흘러가는, 출판 마케터 ‘파도’(@pado.sil) 하유정 책만 믿고 서울로 온 지 4년이 지났다. 옷이 좋아 패션디자인학과에 진학했던 스무 살에게는 상상하지도 못할 전개라 종종 미안할 때가 있다. 하지만 더 미안한 건, 나는 항상 20대 초반의 기억을 늘 지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때는 돈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실습이 많은 과라 돈은 권력 같았는데 나는 그 한 글자가 없어서 항상 눈치를 살폈다. 필요한 재료를 사기 위해 시장에서 발품 파는 친구들 옆에서 나는 가성비를 따진다는 번지르르한 말로, 그저 저렴한 것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값비싼 브랜드를 이야기하는 대화에서도 나는 그 옷을 사기 위해 몇 시간을 일해야 하는지 계산하다 실소를 터뜨리며 꿋꿋이 생계를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패션은 얼마나 유행이 빠른지, 일주일만 지나도 비슷한 옷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혼란에서 트렌드라는 생애 주기에 맞춰 가격을 보지 않고 턱턱 사는 동기들을 보며,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흘기며 참던 날들이 계속 마음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게 죽도록 싫었던 나는 점점 작아졌고 결국 권태기가 온 연인처럼 옷과 멀어지게 되었다. 좋아하면서 관심 없는 척하는 현실이 쪽팔려서, 그 알량한 자존심이 싫어서 가장 더럽게 헤어지는 일, 옷과 잠수 이별을 택했다. 좋아하는 게 싫어지면 도망칠 구석이 없어진다. 인생에 불호만 남은 날이 이어지자,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방을 둘러보았다. 책상에 언제 산지 모르는 몇 권의 책이 있었다. 두껍고 단단한 물성,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그대로 남아 있는 글자들이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알려주는 듯했다. 몇 장을 읽으니 내가 그토록 원했던 그 말,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라는 위로가 곳곳에 묻어있었다. 비어 있는 지갑이 티 나지 않는 곳, 모두가 공평한 자격으로 둘러볼 수 있는 서점을 자주 갔었다. 유명한 작가와 책, 출판사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아는 거 없지만 갈 곳이 없어서 틈만 나면 갔다. 그 당시 가장 놀랐던 것은, 분명 한 달 전에도 순위에 있던 책들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그 의미가 베스트셀러 혹은 스테디셀러라는 것을 알지만, 내가 알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만 지나도 흥미가 떨어지는 게 당연한 거였는데, 사람들은 책을 질려 하지 않는구나.’ 감출 수 없는 의아함을 품은 채 책 한 권을 집었고, 그때 만난 장류진 작가의 책 『달까지 가자』가 내 인생을 전혀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갔다. 나의 고향 부산은 제2의 수도라고 하지만, 결국 지방이기에 작가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고 그때는 더욱더 없었다. 책을 향한 관심이 깊어지던 어느 날, 부산 동구 초량동에 있었던 창비부산에서 ‘4인 4색 소설 토크’ 행사 진행 소식을 접했고, 장류진 작가가 온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신청하여 운 좋게 선정되었다. 더불어 출판사 측에서
작성일 2026-06-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포엠맥 - 정말뻔하고재미없는말이지만그래도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문학의 곁] 정말뻔하고재미없는말이지만그래도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배동훈 “언젠가 시가 내 인생을 구원해 주면 좋겠어.” 8년 전, 어느 군인의 일기에 적혀있던 문장입니다. 그렇습니다. 뻔하지만 사실 제가 쓴 문장입니다. 오랜만에 여름옷을 챙기러 들렀던 본가에서 오래된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공군에서 근무하던 2018년 당시에 썼던 일기장이었습니다. 아직 군대 내에서 휴대폰이 자율화되기 전이라, 매일 점호가 끝나고 10분씩 짬 내서 썼던 일기들의 조각이 모여있는 다이어리 중간쯤에 써 있는 맥없는 문장, 시가 내 인생을 구원해 주면 좋겠다. 시기를 보니 아마 일병 말에 썼던 일기 같은데요. 꿈과 희망이 없는 군부대에서 20대 청춘을 보내다 보면 정신이 반쯤 돌기 마련입니다. 저런 가엾은 문장도 그때의 파편 중 하나일 것입니다. 과연 까까머리 공군 청년은 마침내 시에게 구원 받았을까요? 그 이야기,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출발 비디오 여행 톤으로). 안녕하세요. 포엠매거진입니다. 이제는 제 본명인 배동훈보다 포엠매거진이라는 이름으로 저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 익숙하군요. 그만큼 제가 인스타그램의 망령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포엠매거진은 인스타그램에서 시를 소개하는 채널입니다. 소개한다기보다는 ‘영업’한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콘텐츠가 제 취향을 배경으로 하거든요.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시와 시가 가진 매력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마치 시식 코너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거 맛있으니 함 무봐라” 홀로 외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 저는 2년 동안 시를 영업하고 있을까요? 이유야 당연합니다. 시를 좋아하기 때문이죠. 그것도 아주 많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물론 그 일로 돈을 벌고,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경우라면 조금 다르겠지만, 저는 정말 감사하게도 어찌저찌 2년째 먹고살 만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것만큼 짜릿한 일이 있을까요? 저는 이 상황이 너무 황홀해서 매일 밤 내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 지저귀는 새에게 영어로 말을 걸곤 합니다(공주풍 레이스 잠옷을 입고 있음). 물론 포엠매거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어요. 저는 포엠매거진을 하기 위해 대기업에서 나왔거든요. 정확히 말하자면, 오직 포엠매거진을 위해 퇴사했던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많은 일의 배후에는 늘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저는 재직하던 회사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었고, 더 늦기 전에 시를 활용해서 뚜렷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무언가가 포엠매거진이라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단지 어떤 형태로든 ‘시를 알리고 싶다!’라거나, ‘최초로 시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 막연한 바람뿐. 그렇게 다니던 회사를 나오고 약 일주일 뒤에 바로 ‘@poem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1상세보기 -
모색구돌 - 토끼가 사는 섬
[레지던시 일기-남이섬 호텔정관루] 토끼가 사는 섬 구돌 남이섬은 1.4km의 직선과 그를 감싸는 호로 이루어진, 긴 달 모양의 섬이다. 본래 홍수가 나면 물에 둘러싸이던 곳이었는데, 1944년 댐이 들어서며 북한강 수위가 높아진 뒤 완전한 섬이 되었다. 모래땅이던 곳에 나무를 심고 길러 지금은 3만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숲을 이루었다. 2025년 문학 레지던시를 열었고, 나는 2026년 3월, 그곳에 보름간 머물렀다.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세 번째 작가라고 했다. 그곳 역시 나의 세 번째 레지던시였다. 첫 번째는 도시 한복판에, 두 번째는 인적 드문 산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남이섬은 유명한 관광지였다. 앞선 두 곳의 조건이 묘하게 겹쳐졌다. 야생동물과 마주치는 숲길 옆에는 갤러리와 카페가 있었고, 인파가 넘쳐나다가도 어느 순간, 나는 섬에 혼자였다. 한 시기마다 한 명의 작가만 초청하는 남이섬 레지던시의 특성은, 섬 안의 섬처럼 온전한 고립을 만들어주었다. 고립. 내가 레지던시에 들어간 목적이다. 작년 말 나는 모든 모임에서 빠져나왔다. 친구들에게도 반년간 연락이 닿지 않을 거라 말해 두었다. 그러고는 묵언수행을 하는 명상원에 들어갔다. 열흘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어느 절에서 묵언수행자의 등을 멀찍이서 본 적이 있는데, 그때의 나는 그가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지쳐 있었다. 끝까지 타 흘러내린 초의 자국처럼 책상 위에 눌어붙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낸 일은 전생인가 싶었다. 작년까지 나는 수험생 두 명과 살았고, 둘을 차례대로 대학에 보내 놓고 고립을 택한 건,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그런데 남이섬에 들어오기 전날 밤, 그중 한 명이 재수를 선언하는 게 아닌가. 나는 눈을 뜨자마자 급히 짐을 쓸어 담고 택시에 탔다. “남이섬이요! 최대한 빨리 가 주십시오.” 섬에서 눈을 뜨면 러닝화부터 신었다. 숙소의 왼쪽 길은 그대로 긴 달 모양의 외곽선과 이어져 있었다. 남에서 북으로 곧게 뻗은 직선 길을 달리다 섬의 끝에 다다르면 거대한 돌탑을 8자로 턴하며 돈다. 북에서 남으로 커다란 호를 그리며 달려 돌아온다. 해가 떠오를 무렵이라 뿌연 물안개가 수면에 낮게 깔려 흐르고 물안개를 가르며 오리 떼가 줄을 지어 따라왔다. 러닝을 마치면 아침으로 황태국을 먹었다. 황태국은 운동 후 단백질을 보충하기에 적당했고,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작업실로 출근했다가, 오후가 되면 숲길을 걸었다. 해가 질 녘의 섬은 언제나 다른 그림을 보여주었다. 낮 동안 사람의 발걸음에 맞춰 땅에서 걷던 공작새는, 어두워지면 높은 나뭇가지로 날아올라 밤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나도 작업실로 돌아와 온 섬의 불이 꺼질 때까지 책상 앞에 있었다. 작업실은 남이섬 측에 별도로 요청드린 공간이었다. 그림책 작업 중이어서, 자료를 펼쳐 놓고 볼 수 있는 커다란 책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0인용 원목 책상 맞은편 벽에 족자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는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하가람 - 내가 만났던 서랍
[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내가 만났던 서랍 하가람 2026년 2월 13일 체크아웃을 하고 탄 기차에서 내가 앉은 자리 대각선으로 전자책을 보고 있는 남자가 있다. 그가 읽고 있는 것은 ‘작가의 말’이고 첫 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만났던 서랍을 잘 잊지 못한다. 문득 던진 시선이 정지한다. 실눈을 뜨고 한참을 들여다본 후에야 내가 ‘사람’을 ‘서랍’으로 잘못 읽었음을 알아챈다. 내가 만났던 서랍.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나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글을 쓴다. 주로는 두어 개의 카페를 전전하지만 몇 년 전 팬데믹으로 카페가 폐쇄되었을 때는 호텔에 묵으며 작업하기도 했다. 집에서는 왜 글을 쓰기 어려울까. 언젠가 본 영상에서 한 요리사는 말했다. 국물이 들어간 음식에는 10시 1분의 맛과 10시 3분의 맛이 있다고. 나는 매일 그날 하루에만 쓸 수 있는 문장과 장면이 있다고 믿는다. 많은 날 나는 나룻배 위에 있다. 검은 호수의 수면은 잔잔해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늘 무언가 부유하고 있다. 헤엄치는 물고기나 신발 한 짝, 썩은 과일 같은 것들이 내 주변을 흐른다. 검은 호수에서 나는 매번 다른 것을 건져 올린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변하는 것은 없건만 내 자세는 달라진다. 한 호수에 오래 머물다 보면 바짝 세웠던 허리가 굽어지고, 어제 잡은 물고기나 오늘 잡은 물고기나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는 생각이 밀려들기 마련이다. 익숙한 공간은 나를 무르게 만든다. 몸이 고되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별수 없이 집에서 작업하지만 그럴 때조차 집을 낯설게 만드는 의식이 필요하다. 영국 성당이나 사찰 ASMR을 틀어 공간의 공기를 바꾸고 평소에 쓰지 않는 향수를 방 안에 뿌리기도 한다. 정작 호텔 같은 곳에 들어가면 나는 반대로 군다. 문고리를 돌려 방 안에 들어서는 순간 마주하는 전경―빳빳한 침구와 가지런한 가구의 배치―은 처음 만난 이의 얼굴만큼이나 서먹하다. 나는 잠시 얼어붙은 채 그 얼굴을 응시한다. 처음 만난 사람과 친밀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내 물건을 소개하는 것이다. 쪼글쪼글한 핸드크림과 아끼는 티백, 인공눈물처럼 사소한 것들을 그에게 나누어주기. 짐을 풀자마자 나는 차가운 서랍 속에 소지품을 집어넣는다. 내 속내를 내어 보이듯 그 방 곳곳에 손길을 뻗는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어떤 공간을 나는 원하는 걸까? 내가 만났던 서랍.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다 보면 꼭 서랍 속에 물건을 두고 오는 일이 생기곤 한다. 체크인 직후에는 맨 먼저 서랍을 열어 물건을 채워 넣으면서도, 체크아웃을 할 때는 방을 나서는 순간까지 서랍을 열어볼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다. 그저 눈에 보이는 물건만 챙기기에 급급한 것이다. 왜 떠나는 나는 도착하는 나보다 언제나 조금 더 무심할까. 대개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곳에 물건을 놓고 왔다는 것을 알아챈다. 아니, 확신하지는 못한다. 그것이 사라졌던 시기를 돌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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