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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아 문학평론
계간 문학동네 2025년 여름호(제123호)
쉼표를 그리기 위해 터뜨리는 분통 ― 황정은, 『문제없는, 하루』(창작과비평, 2025년 봄호)
황정은 소설가는 계엄 소식을 접하고 “지금 쓰고 있는 단편을 실을 지면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日記」, 『문학과사회 하이픈』 2025년 봄호, 192쪽) 생각했다고 한다. 이후 가까스로 발표된 그의 소설은 어딘가 다르게 읽힌다. 작가가 담아내려 한 문제의식을 소설 속 인물들이 직접 발화하는 방식은 충분히 미학적이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모든 ...
성현아 문학평론
계간 문학동네 2025년 여름호(제123호)
읽는 자들의 에파누이스망 ― 이주란, 『겨울 정원』(문학동네, 2025년 봄호)
매체론자이자 문학비평가인 월터 옹Walter J. Ong은 자신의 글 「The Writer's Audience Is Always a Fiction」에서, 낭독자에 의해 구술되는 소설을 듣고 향유하던 이전의 방식에서 벗어나 서술된 소설을 묵독하게 된 독자는 지속적으로 허구화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독자가 인물의 시선을 따라, 작품을 읽을 때 머무는 실제...
성현아 문학평론
계간 문학동네 2025년 여름호(제123호)
유해함의 최저선 ― 서장원, 『피루엣』(문학웹진 림 2025년 2월)
퀴어적 전환이 이루어진 문학장에서도 트랜스젠더 서사는 여전히 그 수가 적다. 더군다나 드물게 발표되는 트랜스젠더 소설은 젠더 불일치를 비극적으로 경험하는 일을 재현하는 데 더욱 집중하곤 했다. 트랜스젠더 주체의 신체는 여러 장르의 텍스트에서 은폐되어야 하는 부자연스러운 몸으로, 혹은 자연스러운 몸을 인위적으로 변형시킨 인공적인 몸으로 묘사되어왔다. 그 결...
성현아 문학평론
계간 창작과비평 2025년 봄호(제207호)
미래를 꿈꾸는 서정시는 현재의 삶을 구할 수 있는가
기후위기로 인한 지구 멸망의 시나리오는 이제 더는 황당한 괴소문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종말은 우리 곁에 바투 다가온 예측 가능한 결말이자 부대끼며 살아가야 할 반려가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 더해 2024년 말 우리는 45년 만에 다시 계엄을 경험하게 되었고 참사를 반복적으로 목격해야만 했다. 현재 우리에게 일상이란 반복되는 보통의 나날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성현아 문학평론
계간 문학인 2025년 봄호(제17호)
필화(筆禍)와 필화(筆花)의 역사 ― 『한국 현대 필화사』(소명출판, 2024)
1. 우리 삶에 침투해 있는 국가폭력으로서의 필화 2024년의 겨울밤, 반국가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명분으로 불법적인 계엄이 선포되었다. 민주주의를 지키겠답시고 어렵게 일군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는 모순적인 행태는 잡은 권력을 유지 또는 강화하기 위해 우선 폭력을 행사하고 이후에 그 정당성을 확보하려 비합리적인 근거를 들이미는 국...
성현아 문학평론
계간 문학동네 2025년 봄호(제122호)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 강화길, 「거푸집의 형태」(『문학동네』 2024년 겨울호)
말을 한다는 것은 말하지 않을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골라 제외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형언할 수 없어서 침묵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미 모두가 알고 있어 굳이 말해질 필요가 없는 것도 있다. 이를테면 강화길 소설의 여성 인물들이 구태여 토로하지 않는 억울감과 소외감 같은 것. 이 사회의 언어로 묘사할 수 없으면서 부러 말할 필요도 없는, 각기 다른 ...
성현아 문학평론
계간 문학동네 2025년 봄호(제122호)
기억과 고통의 맹점 ― 편혜영, 「남은 사람」(주간문학동네 2024년 9월)
고통은 사람을 고독하게 만든다. 수치화할 수 없어서 증명하기 어려운 통증은 느끼는 이가 홀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은 사람」의 초점 화자인 '그녀'는 정강이에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반깁스를 하게 된다. 그녀는 "가시 돋친 불덩이를 다리에 얹고 있는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을 느끼지만, 그에 비해 의사가 해주는 처치는 너무나도 간단해 보인다. 게다가 ...
성현아 문학평론
계간 문학동네 2025년 봄호(제122호)
살아 있음으로 앙갚음하는 사람들의 걷기 연합
이 글은 조경란의 단편소설 「검은 개 흰 말」(『2024년 제4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 2024), 「그들」(『2024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24) 및 소설집 『일요일의 철학』(창비, 2013),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문학과지성사, 2018), 『가정 사정』(문학동네, 2022), 장편소설 『복어』(문학동네, 2010...
성현아 문학평론
계간 문학과사회 2024년 겨울호(제148호)
들리면서, 붙들리면서 : 안태운, 『기억 몸짓』(문학동네, 2024) 김연덕, 『폭포 열기』(문학과지성사, 2024)
부끄러우므로 듣고, 들고, 들인다 ‘들리다’는 청각을 통해 소리를 알아차린다는 뜻을 지닌 ‘듣다’의 피동사다. 또한 귀신이나 영혼이 덮쳐 오는 것을 의미하던 옛말 ‘들이다’의 변형이기도 하다. 여기에 하나 더, 지니게 된다는 뜻으로 쓰이는 ‘들다’의 피동형까지 추가해볼 수 있다. 하인츠 슐라퍼는 플라톤이 시를 도취나 신들림 등 비방 조로 다룬 데에는 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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