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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지 문학평론

월간 현대문학 2025년 8월호(제848호)

말이 달리는 방향

사회가 충분한 대화를 연습할 겨를 없이 월드 와이드 웹 체제로 진입한 것은 어쩌면 재앙이 아닐까. 표현의 자유와 의사 개진의 평등이 얼굴을 가린 채로 재빠르게 닮은 꼴을 찾아 커뮤니티란 이름으로 뭉칠 수 있는 곳은 기어이 ‘다크’한 것을 필연적 찌꺼기처럼 만들어낸다. 특정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만 접근이 가능한 인터넷 통신망을 의미하는 다크 웹은 마약 거래...

황유지 문학평론

월간 현대문학 2025년 6월호(제846호)

비좁게 버티며 잇기 - 읽기

아무래도 삶은 고통에 가까운 걸까? ‘잘 먹고 잘살자’는 슬로건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쪽으로 옮겨가다가 아주 보통의 하루를 소명으로 살라 한다. 결코 그것을 초과하지 말라는 듯 점차 쪼그라드는 소망의 크기는 퍽 현실적이라 그건 또 트랜드라 명명된다. 노동의 자리는 차츰 더 쪼개진다. 비정규, 비전임, 하청, 임시, 기간제와 같은 용어를 앞세운 계약의 ...

황유지 문학평론

계간 딩아돌하 2025년 여름호(제75호)

생동하는 ‘것’들의 크레디트

1. 파수의 다시 쓰기 (서윤후, 『나쁘게 눈부시기』 문학과지성사, 2025, 04) 경계하여 지킨다는 뜻의 파수(把守)의 한자어를 달리하여 派收로 써볼까? 여러 번 중의 어느 한 번을 뜻하는 파수(派收)를 다시 破水로 쓰면 파문을 향해 빠져나가는 물 혹은 분만 전에 쏟아지듯 터지는 양수를 일컫는 힘찬 말이 된다. 시인이 스스로 “내 오랜 파수(把守)...

황유지 문학평론

월간 현대문학 2025년 4월호(제844호)

어떤 이야기는 쓰여지지 않는다

왜 하필 그림자였을까, 그가 상자에 차곡차곡 가두어 둔 것은. 당신에게 함이 하나 생겼다고 하자. 육면체여도 좋고 팔면체여도 상관없지만 어쨌든 내부와 외부가 구분되는 상자. 종이로 만든 것이어도 좋고 철재나 목재여도 무관한데, 뚜껑째로 열 수 있거나 경첩으로 상하부가 연결된 그 상자는, 비어있다. 당신은 무엇을 담겠는가? 그의 함에 든 그것은 말하자...

황유지 문학평론

월간 현대시 2025년 4월호(제424호)

사랑은 슬라임처럼 1인칭 슬픔을 두고

그런 염려를 한다. 나의 공감이나 이해가 뜻하지 않은 폭력을 포함하고 있지나 않을지. 해석의 욕망이 문학을 비좁게 만들지나 않을지. 부러 애써 덮어두었던 마음을 까불리고 파헤쳐 남루하게 만들지나 않을지. 그러나 염려는 금세 불식된다. 발화를 언어화라는 상징계의 지적 작업을 통과하는 일로, 발설을 입 밖으로 마음을 꺼내놓고자 하는 어쩌지 못하는 열망이라는 ...

황유지 문학평론

계간 자음과모음 2025년 봄호(제64호)

내가 애쓰면 나의 타인이 되어줘

1. 상처받을 가능성 있음 Vulnerability 한 자리에 묶인 채로 일생을 살아가는 개는 어떻게 견딜 수 있는 걸까, 이사 온 뒤로 한 번도 갈지 않은 전구의 필라멘트는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까, 냉해를 입은 고목 나무는 좀 더 견뎌줄까, 추운 날의 전동휠체어 배터리는 그가 집에 다다를 때까지 견딜 수 있을까, 길고양이는 어디서 이 겨울을 견디...

황유지 문학평론

계간 딩아돌하 2025년 봄호(제74호)

아보하는 가능할까

한때 행복의 지표로 회자 되며 최근까지도 세간의 주요 키워드로 꼽히던 소확행은 소비사회의 알리바이로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변질된 모양새다. #소확행은 행복을 소비의 정도에 대비시켜 되레 과도한 물질적 욕망에 명분을 제공하는 식이다. 그렇게 해시태그를 단 이 단어는 비교와 경쟁을 추동하고 스몰럭셔리, 행복 강박의 다른 이름이 되어 소셜미디어에서 행복의 경쟁이...

황유지 문학평론

계간 파란 2024년 여름호(제33호)

어차피 비극인 세계를 걸어가는 몇 가지 방식 ― 이지아, 『아기 늑대와 걸어가기』, 민음사, 2023

1. 서사시의 방식: 비루한 운명과 이야기 일찍이 그리스인들은 삶이 잔혹하고 무상하며 어두컴컴한 것임을 알았다. 고통에 대한 예민한 감각으로 삶의 냉혹함을 염세적으로 받아들인 이들은, 비극을 통해 염세주의와 대결하기로 한다. 삶의 비통을 극으로 올려 기어이 마주함으로써 필연적 간극의 삶을 총체성으로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1) 당연하게도 예술의 형식...

황유지 문학평론

월간 현대문학 2024년 5월호(제833호)

네가 되는 게임, '다시'의 윤리 ― 예소연, 「영원에 빚을 져서」

소설은 한 인물의 실종을 알리는 전화로 시작된다. 동이가 석이의 실종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석을 늘 행운 쪽에 서 있는 사람으로 여겨서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장례 직후라는 시점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동이는 별 고민 없이 석이를 찾는 일에 ‘연루’되는 편을 선택한다. 캄보디아에서 소식이 끊어진 석이의 행방에 대한 추적은 혜란과 동이를 자연스레...

황유지 문학평론

계간 청색종이 2024년 봄호(제11호)

‘빈’자리의 시학, 거기 있는 마음 ― 유희경론

‘빈’자리의 시학, 거기 있는 마음 -유희경 론1) 1. ( )을 잃고 나는 쓰네 원고를 준비하며 다섯 권의 시집을 읽는 동안 남쪽으로 며칠의 명절 휴가를 다녀와야 했다. 어려서 가만히 책가방을 메고 오가던 길가에는 이른 봄꽃이 피고 가족들의 온기는 그에 더해져 계절을 한껏 당겨 놓은 듯 온몸과 맘을 훈기로 휘감았다가, 나를 내려놓았다. 일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