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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리 문학평론

월간 현대시 2025년 2월호(제422호)

응시의 담장과 ‘멘토 콤플렉스’라는 장대

 지난 호에서 한국시가 생존에서 실존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응시'하는 주체를 빚어내는 과정을 보았다. 왜 응시하는 주체인가? 김수영이 갈파했듯이 '사물'을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그 후손으로서의 우리 마음은 뿌듯할지 모르지만 무언가를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즉 어떻게 주체는 그런 응시의 능력을 갖게 된 것일까?...

정과리 문학평론

월간 현대시 2025년 1월호(제421호)

응시와 전진 : ‘최초의 인간’의 행동 수칙

1. 응시의 실례들  지금까지 '최초의 인간'이 출현한 내력을 보았다. 최초 인간의 최초의 행동은 '응시'라는 것도 알았다. 응시는 살아남은 것에 대한 응시, 즉 생존의 확인이었다. 그 확인이 있을 때 생존의 역사(役事), 즉 실존이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응시'는 똑바로 보는 것이다. 자세히 보는 것이다. 생존의 근거를 정확하게 찾아내기 위...

김수이 문학평론

격월간 현대시학 2025년 1•2월호

‘나’를 벗어나려는 존재들의 모험

1. 비대한 자아와의 결별 스티브 테일러Steve Taylor에 의하면, 현재 인류사회에 넘쳐나는 광기와 폭력은 6천 년 전부터 진행된 인류의 ‘타락The Fall’이라는 사건의 산물이다. ‘타락’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자연/우주/공동체 및 자기 자신과도 분리된 자아ego가 폭발적으로 비대해진 데 따른 인류의 총체적인 퇴보를 뜻한다. 타락...

민가경 문학평론

월간 현대시 2025년 2월호(제422호)

감응感應과 감수感受의 디졸브

이번 오은경의 신작시 속 덤덤한 시적 자아들은 온 세계를 과거 '너'라는 상관물을 회상하기 위한 공간으로 재구성 중이며, 그 공간을 조밀한 언어로 구축하는 작업에 천착해 있다. 그 공간은 밀폐된, 그러나 거의 텅 빈 하나의 집 또는 방의 형태를 띠는 데, 인물들이 그 공허 안에 충만한 기억들을 부단히 감각하며 순정하게 읊조리는 독백은 지울 수 없는 예민함의...

유계영

월간 현대시 2025년 1월호 (제421호)

결국, 쓰는 것이 모든 일의 제자리

결국, 쓰는 것이 모든 일의 제자리1) 유계영 오래되고 낡은 여관 서윤후는 끝을 본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음을 본다. 설명하자면,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은 일에 대하여 정말로 그렇게 한다. 내가 윤후에게 자주 놀라고 믿을 수 없어 하는 부분이다. 대체로 나는 안팎에 희망을 두지 않기 때문에 작심하는 일이 드물다. 설령 작심한다 해도 3일은커녕 3시...

염선옥 문학평론

월간 현대시 2025년 2월호(제422호)

액체적 지각을 통해 비세계·비존재에 이르는 언어 ― 김안 시집 『귀신의 왕』, 변선우 시집 『비세계』

부정의 세계, 스키드마크 모든 예술이 세계가 완전하지 않다는 부정을 전제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왔기에, 시인을 비롯한 예술가들은 주어진 세계의 허물을 벗고 만료된 현재의 형상을 깔고 앉아 새로운 여정을 떠난다. 이는 낯선 미지의 세계에서 발원되는 새로운 감각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찾고 세계의 한계를 확장해 나가기 위함이다. 새로움을 창조하기 위해 ...

남승원 문학평론

월간 현대시 2025년 1월호(제421호)

고통의 바다 밑에서

한강이 이제껏 발간한 유일한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 2013)를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읽는 내내 왠지 설레이는 마음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날, 누르기 힘들었던 흥분이 계속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시집에 대해서라면 이같은 감정과 상반되는 어떤 두려움에 대해 말해야겠습니다. ...

김언 문학평론, 시

월간 현대시 2025년 3월호(제423호)

생존의 감각과 길 위의 시

김이듬의 시는 길 위의 시다. 길에서 시작하고 길에서 끝나는 시다. 편편의 시가 시작하고 끝나는 길은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끝을 모르겠는 길이다. 그럼 시작은 아는 길인가? 시작도 모르겠기는 마찬가지다. 시작을 더듬어 시작을 찾아가면 끝을 모르겠는 길처럼 끝없이 나 있는 길이 다시 보일 뿐이다. 시작도 끝도 모른 채 내던져진 길에서 김이듬의 ...

황유지 문학평론

월간 현대시 2024년 9월호(제417호)

하는 시, 하지 않는 시

하는 시, 하지 않는 시 -안태운 『기억 몸짓』(문학동네, 2024), 임정민 『펜 소스』(민음사, 2024) 서평 ‘하기’라면 저 흰 개처럼-안태운 『기억 몸짓』 이를테면 봄을 떠올릴 때 우리는 종종 그날의 벚나무를 기억한다. 벚나무는 발그레한 꽃잎을 피워올리기 무섭게 떨어뜨리는 중이다. 벚나무는 ‘흩날림’을 그림자처럼 매달고 기억을 현재라는...

황유지 문학평론

월간 현대시 2024년 1월호(제409호)

파롤의 빈손이 떨려올 때

파롤의 빈손이 떨려올 때 -김건영 신작 중심으로 파이(pie)는 조각이다. 그러면서 전체다. 김건영의 첫 시집 『파이』1)는 세계라는 조각의 언어이면서 조각들의 쌉싸래하고도 즐거운 맛이며 도무지 끝나지 않고 언제까지라도 길이를 연장하며 세계의 원을 유지하는 원주율Π(pi)이다. 『파이』에서 보았듯 그의 창작, 시-쓰기는 언어가 부조리, 불완전함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