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간 푸른사상 2024년 봄호(제48호)
제주 4·3의 기억과 ‘재일’의 틈새를 통해 본 ‘비평’으로서의 서정 ― 김시종의 시
1. 분단 구조와 ‘재일’의 현실
해방 이후 재일조선인문학 논의의 주요 쟁점은 언어, 민족, 국가에 토대를 둔 이데올로기와 작품의 관련성이었다. 즉 재일조선인문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재일의 독자성과 특수성에 주목하기보다는 조선어와 일본어, 남과 북, 민단과 총련 등으로 이원화된 재일조선인 사회의 대립과 갈등에 초점을 두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재일조선인문학을 재일조선인 내부의 주체적 시선으로 이해하지 않고 남과 북에 의해 규정된 외부의 시선으로 획일화한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결과 재일조선인문학의 현재는 남과 북 그리고 일본이라는 세 지점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소통되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앞으로 ‘재일’의 현실에 대한 이해는 ‘일본에 산다’ 또는 ‘일본에 있다’와 같은 수동적 차원이 아닌 ‘재일을 살아간다’라는 능동적 차원에서 ‘재일’을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전면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재일조선인이 살아온 지난 역사에 대한 증언과 기록의 차원을 넘어서 재일조선인 사회를 주체적으로 재구성하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도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즉 남과 북이라는 이데올로기의 경계를 과감하게 허물어뜨린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재일조선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재일조선인문학의 방향성을 정립하는 데 있어서 남과 북 그리고 일본이라는 세 지점으로부터 모두 일정하게 거리를 둔 작가와 작품을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재일조선인 시문학에 한정할 때 이러한 문학적 지향성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낸 시인이 바로 김시종이다.
김시종은 부산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자랐고 광주에서 학생 시절을 거친 후 다시 제주로 돌아왔지만 제주 4·3 항쟁에 가담했다가 수배를 당하여 일본으로 밀항해 오사카에 정착했다. 식민과 해방의 역사적 소용돌이를 직접적으로 경험해야 했던 우리 민족 구성원들 대다수가 그러했던 것처럼, 김시종의 삶 역시 조국과 고향을 등진 채 유민(流民)으로서의 디아스포라적 운명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김시종은 “나를 묶고 있는 운명의 끈은 당연히 내가 자라난 고유의 문화권인 조선으로부터 늘어져 있”지만, “내게 묶인 일본이라는 나라 역시 또 하나의 기점이 되어 나의 사념 안으로 운명의 끈을 늘어뜨리고 있”다고 했다. 또한 “나는 양쪽 끈에 얽혀, 자신의 존재 공간을 포개고 있는 자”1)였다는 고백은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는 김시종이 직면했던 혼란과 모순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김시종의 시는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그 중심에서 읽어내도록 하는 중요한 텍스트로, 재일조선인의 역사적 현실과 실존적 상황에 맞선 ‘부정’과 ‘저항’의 정신은 ‘재일’의 근거이면서 시학의 근본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뒤틀린 계절 의식과 제주 4·3의 기억
김시종은 “‘4월’은 4·3의 잔혹한 달이며, ‘8월’은 찬란한 해방(종전)의 백일몽의 달이다.”2)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잃어버린 두 계절의 역사적 의미를 증언하기 위해 지금까지 ‘재일’의 근거를 찾으며 시를 써 왔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계절은 단순히 자연의 순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 이후 우리 역사의 슬픔과 고통이 오롯이 새겨진 뼈아픈 순간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자연을 찬미의 대상이 아니라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의 생활과 실존이 투영된 대상으로 인식함으로써, ‘계절어에 대한 저항’을 통해 “죽음마저도 미화되며, 그것에 의해 현실 인식이 뒤틀려버려 전해져야 할 역사적 기억의 계승이 불가능해지”3)는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고자 했다. 그의 시가 봄에서 겨울에 이르는 일반적인 계절의 순서가 아닌 여름에서 봄까지의 계절을 따라가며 그 시간에 투영된 역사를 증언하고자 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대로 다시 여름이 오고/ 여름은 다시 마른 기억으로 하얗게 빛나고/ 터져 나온 거리를 곶[岬]의 끄트머리로 빠져나갈 것인가./ 염천에 쉬어 버린 목소리의 소재 따위/ 거기서는 그저 찌는 광장의 이명(耳鳴)이며/ (중략)/ 허공에 아우성 끊어지고/ 북적거리던 열기도/ 아지랑이에 불과한 여름/ 벙어리매미가 있고,/ 개미가 꼬여드는/ 벙어리매미가 있고,/ 되쏘는 햇살의 아픔 속에서/ 한 줄기 선향(線香)이/ 가늘게 타는/ 소망일 뿐인/ 여름이 온다./ 여름과 함께/ 지나간 해의/ 끝내 보지 못한 맞꿈이여.
- 「여름이 온다」 중에서4)
김시종의 시에는 ‘벙어리매미’의 형상이 자주 등장한다. “나는 겨우 스물여섯 해를 살았을 뿐이다./ 그런 내가 벙어리매미의 분노를 알게 되기까지/ 100년은 더 걸린 듯한 기분이 든다.”(「먼 날」)5)에서처럼 그의 시에서 “벙어리매미”의 형상은 자신을 표상하는 상징적 등가물이다. 인용시에서 화자는 여름이 올 때마다 매미 울음소리에 의식적으로 귀를 기울이는데, “염천에 쉬어 버린 목소리”를 발산하고 죽어버리는 매미를 보면서 재일의 현실 속에서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다. 이러한 계절의 의미는 8월의 해방이 4·3의 봄을 초래한 원죄가 되어 부모와 고향을 등지고 일본으로 도망쳐 자신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숨기고 살아야 했던 ‘재일’의 현실에 그대로 대입된다. 김시종에게 여름은 “고향인 제주도에서 황국 소년으로 일본의 ‘패전’을 맞이하고 동포에게 뒤처졌다가 겨우 조선인이라는 자각을 되찾은 그 ‘여름’”이고, 봄은 “초목이 싹트는 일반적인 ‘봄’이 아니라 저 4·3 사건의 검은 기억과 하나가 된 ‘봄’”6)을 의미한다. 이처럼 여름에서 시작하여 겨울을 지나 봄을 거쳐 다시 여름에 이르는, 4·3에 뿌리 내린 뒤틀린 계절의 기억 속을 살아가는 것이 ‘재일’이 마주하고 견뎌야 할 참혹한 현실이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봄은 장례의 계절입니다./ 소생하는 꽃은 분명히/ 야산에 검게 피어 있겠죠.// 해빙되는 골짜기는 어둡고/ 밑창의 시체도 까맣게 변해 있을 겁니다.// 나는 한 송이 진달래를/ 가슴에 장식할 생각입니다./ 포탄으로 움푹 팬 곳에서 핀 검은 꽃입니다.// 더군다나, 태양 빛마저/ 검으면 좋겠으나,// 보랏빛 상처가/ 나을 것 같아서/ 가슴에 단 꽃마저 변색될 듯합니다.// 장례식의 꽃이 붉으면/ 슬픔은 분노로 불타겠지요./ 나는 기원의 화환을 짤 생각입니다만……// 무심히 춤추듯 나는 나비도/ 상처로부터 피의 분말을 날라/ 암꽃술에 분노의 꿀을 모읍니다.// 한없는 맥박의 행방을/ 더듬거려 찾을 때,/ 움트는 꽃은 하얗습니까?// 조국의 대지는/ 끝없는 동포의 피를 두르고/ 지금, 동면 속에 있습니다.// 이 땅에 붉은색 이외의 꽃은 바랄 수 없고/ 이 땅에 기원의 계절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봄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진달래가 숨 쉬고 있습니다.
- 「봄」 전문7)
“봄”은 분명 제주 4·3의 봄이다. 봄을 일컬어 “기원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시인에게는 “장례의 계절”일 따름이다. 봄은 “검게 피어” 있고, “해빙되는 골짜기는 어둡고/ 밑창의 시체도 까맣게 변해 있”으며, “포탄으로 움푹 팬 곳에서 핀 검은 꽃”으로 뒤덮여 있다. “태양 빛마저/ 검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 지독한 어둠을 지나가기 위해서 화자는 봄을 향한 “분노”의 감정을 드러낸다. “장례식의 꽃이 붉으면/ 슬픔은 분노로 불타겠지요”라고 하면서, “동포의 피를 두”른 듯한 “진달래”의 형상에 자신의 심리를 투영한다. “무심히 춤추듯 나는 나비도/ 상처로부터 피의 분말을 날라/ 암꽃술에 분노의 꿀을 모”으듯, 제주 4·3의 기억을 세상에 증언하는 시적 방향을 자신이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의 근거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성조기를/ 갖지 않은/ 임시방편의/ 해구(海丘)에서/ 중기관총이/ 겨누어진 채/ 건너편 강가에는/ 넋을 잃고/ 호령그대로/ 납죽 엎드려/ 웅크린/ 아버지 집단이/ 난바다로/ 옮겨진다./ 날이 저물고/ 날이/ 가고/ 추(錘)가 끊어진/ 익사자가/ 몸뚱이를/ 묶인 채로/ 무리를 이루고/ 모래사장에/ 밀어 올려진다./ 남단(南端)의/ 들여다보일 듯한/ 햇살/ 속에서/ 여름은/ 분별할 수 없는/ 죽은 자의/ 얼굴을/ 비지처럼/ 빚어댄다./ 삼삼오오/ 유족이/ 모여/ 흘러 떨어져가는/ 육체를/ 무언(無言) 속에서/ 확인한다./ 조수는/ 차고/ 물러나/ 모래가 아닌/ 바다/ 자갈이/ 밤을 가로질러/ 꽈르릉/ 울린다./ 밤의/ 장막에 에워싸여/ 세상은/ 이미/ 하나의/ 바다다./ 잠을 자지 않는/ 소년의/ 눈에/ 새까만/ 셔먼호가/ 무수히/ 죽은 자를/ 질질 끌며/ 덮쳐누른다./ 망령의/ 웅성거림에도/ 불어터진/ 아버지를/ 소년은/ 믿지 않는다./ 두 번 다시/ 질질 끌 수 없는/ 아버지의/ 소재로/ 소년은/ 조용히/ 밤의 계단을/ 바다로/ 내린다.
- 『니이가타』 제2부 「해명(海鳴) 속을」 중에서8)
김시종은 제주 4·3에 대한 침묵의 세월을 살아왔기 때문에 4·3을 직접적으로 형상화한 시는 거의 쓴 적이 없음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니이가타』라는 시집 안에서 한 장 정도 제주도의 해변은 모래사장이 아니라 자갈 해변인데 거기에 철사로 손목이 묶여 바다에 던져진 희생자의 사체가 밀려온 상태를 쓴 것과, 그것과 관련해 바다에 가라앉은 아버지를 아이가 찾아다닌다고 하는 것을 쓴 정도지요”9)라고 고백했을 따름이다. 인용시는 바로 그 고백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4·3의 희생자였던 제주의 수많은 아버지의 죽음과 가족들의 상처와 고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제주 4·3의 기억과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겹쳐 바라봄으로써, 해방 이후 일본에서 미국으로 식민의 주체만 바뀐 한반도의 현실이 결국 제주 4·3의 비극을 가져온 결정적 원인이 되었음을 암묵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상처와 질곡이 한국전쟁과 분단을 초래하여 재일조선인의 이데올로기 강요로 굳어졌으며, 그 결과 ‘니이가타’ 항구에서의 북송 사업으로 이어졌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시집이 바로 『니이가타』이다. 이처럼 김시종에게 제주 4·3은 해방 이후 제주의 현실에 국한되는 역사의 한 부분이 아니라 지금도 ‘재일의 현실을 규정하는 ‘근거’가 되고 있고, 제주 4·3의 기억을 증언하고 위무하는 것이야말로 재일조선인으로서 삶과 시가 지향해야 할 근원적이면서 궁극적인 가치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재일’의 틈새와 통일의 지평
김시종은 “조선에는/ 나라가/ 두 개나 있어서/ 오늘 나온 것은/ 그중 하나라네./ 이른바/ 한쪽 발로/ 공을 찬 셈이지.”(「내가 나일 때」)10)라고 재일조선인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제시했다. “두 개”의 “나라”와 “한쪽 발”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듯이 재일조선인의 삶은 언제나 남과 북 두 나라 사이에서 갈등하고 대립하는, 그래서 결국 어느 한쪽만을 선택해야 하는 “한쪽 발”의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완고한 대립과 갈등의 경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남도 북도 아닌 ‘재일’ 그 자체를 주목하는 ‘틈새’11)의 전략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는 ‘재일’의 주체성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으로, “본국을 흉내 내서 ‘조선’에 이르는 게 아니라 이를 수 없는 조선을 살아 ‘조선’이어야 할 자기를 형성”12)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당신 속의/분리된 두 사람./나눌 수 없는 간격을/서로 나누고 있어/이렇게 금을 그어놓고/만날 수 없는 만남에/울타리를 친다./나에게는 그것이 사상이지/만/당신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지조일 뿐이다./지조와/사상./어느 것도 하나를/가리키고 있고/따로 따로/완전히 같은 것을 서로 주장하고 있다./아무튼 우리에게/대극(對極)은 없다./재일 세대인/너와 내가/끝없이 증거를 표명하기 위해/같은 심(芯)을 서로 깎고 있다./나는 조선이고/너는 한국./(중략)/재일을 살고/등을 맞대고/한국이 아니지만/조선도 아닌/알다시피/서로 모르는 사이야.
- 「재일의 끝에서 1」 중에서13)
‘재일’은 “나”와 “너”라는 “분리된 두 사람”으로 표상되지만 “나는 당신”이고 더군다나 “당신 속의 분리된 사람”이 “나”라는 점에서 “나”와 “너”의 관계는 처음부터 ‘둘’이 아닌 ‘하나’였음을 말하고 있다. “금을 그어놓”기도 하고 “울타리를 친다” 해도 그것은 각자의 “사상”이고 “지조”일 뿐 근본적으로는 서로를 구분하고 경계 짓는 대립과 갈등의 논리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시종은 “재일 세대”로서 민족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너와 내가/ 끝없이 증거를 표명하기 위해/ 같은 심을 서로 깎”아야 한다면서, “나는 조선이고/ 너는 한국”이지만 “재일을 살”아간다는 것은 “등을 맞대고/ 한국이 아닌/ 조선도 아닌” ‘재일’의 근거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보았다.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지평이 있는 것이 아니다./네가 서 있는 그곳이 지평이다./틀림없는 지평이다.”14)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듯이, ‘재일’의 실존적 근거는 남과 북의 대립과 경계를 넘어선 바로 그 지점에 있다는 것이다.
봄이 늦는/ 이 땅에/배는 비에/도연히 흐린 편이 좋다./크게 휘어진/북위 38도의/능선(稜線)을 따라/뱀밥과 같은/동포 일단이/흥건히/바다를 향해 눈뜬/니이가타 출입구에/싹트고 있다./배와 만나기 위해/산을 넘어서까지 온/사랑이다./희끗해진 연세에/말씀까지도/얼어붙은/어머니다./남편이다./현해탄의 좌우 흔들림에/쉬어 버린 것은/억지로 처넣은/콩나물 시루였다./노골적으로/서로 엉킨/이별이/잡아 떼버릴 정도의 뿌리 수염을 떨며/희미한 불빛 아래/무리지어 있다./이만 번의 밤과 날에 걸쳐/모든 것은 지금 이야기돼야 한다./하늘과 땅의/앙다문 입술에 뒤얽힌 바람이/이슥한 밤에 누설한/중얼댐을/어렴풋이/어둠을/밀어 올리고/솟아오르는 위도를/넘어오는 배가 있다.
- 『니이가타』 제3부 「위도(緯도)가 보인다」 중에서15)
분단의 상징인 38도선을 넘어가는 의지적 행위를 판문점이나 비무장지대와 같은 한반도 내의 대립과 경계의 장소가 아닌 “본국에서 넘을 수 없었던 38도선을 일본에서 넘는다”고 하는 발상16)으로 형상화한 『니이가타』는, 분단 극복과 통일 지향의 재일조선인 시문학의 방향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고향이/ 배겨 낼 수 없어/ 겨워낸/ 하나의 토사물로/ 일본 모래에/ 숨어들었”던 “지렁이”와 같은 존재로 살았던 재일조선인에게, “지렁이의 습성을/ 길들여준” 일본을 떠나 조국으로 가는, 그래서 “인간부활”을 반드시 이루어내는 일은 궁극적인 목적과 지향이 아닐 수 없었다. 재일의 근원인 제주 4·3의 봄이 여전히 잃어버린 계절이듯이 “봄이 늦는/ 이 땅”, 즉 일본에서 “뱀밥과 같은” ‘지렁이’의 형상으로 살아온 재일조선인들에게 “크게 휘어진/ 북위 38도의/ 능선(稜線)을 따라” 넘어간다는 것은, 짐승과도 같은 취급을 당하며 살아온 재일조선인들이 비로소 ‘인간’으로 부활하는 절실한 과제임에 틀림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김시종은 ‘조선’이라는 기호를 끝까지 지켜내는, 즉 남도 북도 아닌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조선인으로서의 틈새에 생산적인 위치를 설정하여 분단 극복과 통일 지향이라는 역사적 장소성을 구체화하는 데 자신의 모든 시적 역량을 집중했다. 해방과 분단을 거친 재일조선인의 실존적 의미를 가장 잘 대변한 장소인 ‘이카이노’를 특별히 주목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남과 북으로 이원화된 이데올로기의 추상성과 관념성을 뛰어넘어 민족이 하나 되는 ‘재일’의 실존을 가장 사실적으로 구현하는 문제적 장소가 바로 ‘이카이노’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시종은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지점이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지평이 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이카이노의 역사 안에 갇혀 있는 재일조선인의 상처와 고통을 의식적으로 밖으로 끄집어내고자 했다. 이카이노라는 ‘재일’의 장소성에 근본적 토대를 두면서도 이카이노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즉 이카이노에서부터 이카이노를 넘어서는 ‘재일’의 실존적 근거를 실천적으로 열어나가고자 했던 것이다.
4. ‘단가(短歌)적 서정’의 부정과 ‘비평’으로서의 시학
‘재일의 시학’을 올바르게 정립하고 실천하려는 김시종의 시와 시론의 핵심은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재일’의 실존과 언어 의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이를 위해 김시종은 오노 도자부로의 『시론』에 기대어 서정시의 전통에 대한 보편적 인식과 미학적 규범에 대한 편견을 근본적으로 전복시키는 새로운 시학의 방향을 열어나가고자 했다. 즉 동일성의 세계관에 입각하여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일본 전통 서정시인 ‘단가’를 철저하게 부정하는 오노 도자부로의 시론17)을 통해, ‘재일을 살아가는’ 시인으로서 일본어로 일본어에 보복하는 저항적 언어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했던 것이다.
확실히 일본은 자연의 혜택을 받은 나라입니다. 아름다운 사계가 있고, 노래에나 나올 것처럼 산은 푸르고 물이 깨끗한 나라입니다. 그렇기에 단가나 하이쿠는 국민적 시가의 지위를 전통적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도시화 현상 속의 과소화(過疎化)라 함은 사람의 정감을 얽매는 자연이,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야 할 자연이 흔한 곳일수록 사실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상태와 이어집니다. 그러니 그것은 그대로 소중한 자연을 소외시키고 있음에 다름 아닙니다. 그런데도 일본의 단시 형태의 문학 대부분은 그 자연에 마음을 가득 담아서 정감 넘치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정시라는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근대풍의 서정시라 함은 자연의 아픔을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기에 ‘비평’을 안고 있는 창조 의식과는 동떨어진 미의 소산입니다. 요컨대 정감이 빚어낸 ‘자연’입니다. (중략)
자연을 사랑하여 금방이라도 감정이입이 가능한 그런 일본인의 정감이 과다한 감수성은 관련을 맺기보다는 바라보고, 깊이 비평하기보다는 감상하는 방관자적인 기풍을 뿌리내리는 데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런 기풍을 밑바탕으로 해서 일본의 시적 서정성은 이어져 왔으니 사회의 동향이라든가 자기 응시라고 하는 활동적인 문제의식은 시라는 형태로는 좀처럼 익숙하지 않아 이상합니다.18)
단가적 서정의 부정은 일본어의 세계에 깊숙이 침윤된 김시종 자신과 같은 재일조선인의 경험적 현실을 의식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나에게 닥쳐온 식민지라는 것은, 아주 정다운 일본의 동요였고, 창가(唱歌)였고, 다키 렌타로[瀧廉太郞]의 ‘꽃’과 ‘황성(荒城)의 달’이었으므로”, “정감이 풍부한 일본의 노래는 내 몸을 완전히 감싸 안아, 아무런 저항도 없이 나를 신생 일본인으로 만들어 주었”19)다는 엄연한 사실을 결코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운율을 맞춘 음수율 없이는 시가 아니”라는 보편적 서정시의 미학을 그대로 따르려고 했고, “그 때문에 일본어는 아름다운 언어라고 진심으로 생각”20)하기도 했다. 그만큼 단가의 정형시적 율격은 재일조선인들이 일본 전통 서정의 미학에 무의식적으로 침윤되게 하는 아름다운 형식 미학이 아닐 수 없었다.
나무 이름도
풀 이름도
그다지 모른다.
새 이름도 곤충 이름도 모른다.
모두 잊었다.
지독히 부정확한 지식과 기억을 더듬어
野外의 초목을 본다. 농작물을 가리킨다.
작은 새들의 이름을 부른다.
자연은 대꾸하지 않는다.
나는 벌써 오랫동안 그것 없이 지내왔다.
오늘 아침 나는 저 埋立地에서
불쑥 종달새 같은 것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아마 그것은 종달새겠지)
세상에는 나무도 풀도 새도 곤충도 존재하지 않는다.
완전한 기억 상실 속에서
모리[森]라든가 노구치[野口]라든가
아유카와(鮎川)라든가
그런 이름을 많이 외웠다.
- 오노 도자부로, 「자연혐오」21)
‘자연 혐오’라는 제목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듯이 오노 도자부로의 시는 인간과 전혀 교감을 나누지 못하는 망각과 부재의 대상으로서 자연에 대한 부정과 혐오의 의미를 담고 있다. 화자가 “나무”, “풀”, “새”, “곤충”과 같은 자연의 세계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오래전부터 그것들을 부재의 대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실제로 자연이 현실 속에서 부재했거나 인간과 함께 존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모리[森]라든가 노구치[野口]라든가 아유카와(鮎川)라든가 그런 이름”이 더욱 중요한 기억의 대상으로 자신들의 내면을 억압해 왔기 때문이다. 즉 화자의 자연 혐오는 자연 그 자체에 대한 혐오라기보다는 자연을 혐오하게 만든, 그래서 “완전한 기억 상실 속에서” “세상에는 나무도 풀도 새도 곤충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극단적으로 인식하게 만든 거짓된 현실에 가장 큰 원인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화자는 자본에 의해 축적된 근대의 이면에 인간과 자연의 순수한 교감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권력적 장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레고리적으로 비판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중심 권력에 의해 소외받고 차별받는 세계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을 현대시의 방향으로 삼고자 했는데, 이것이 바로 현대시의 모든 문제를 시인의 사상을 담은 비평적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비평’으로서의 서정이다.
시를 그저 막연한 ‘음악’의 상태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비평’으로 감지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문제이다. 솔직히 말하면 현대시란 서정의 내부에 있는 이 비평의 요소를 자각하는 데서 출발하는 시라고 보아도 좋다. (중략) 지금까지의 시적 개념에서 말하면 감정에 호소하는 것, 즉 서정의 작용은 사물을 생각하는 것이고, 비판하는 작용이란 다른 마음의 질서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거기에서 이자택일 식으로 시의 본질은 서정이라는 결론이 쉽게 도출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생각하는 일, 비판하는 일은 서정의 작용 그 자체와 무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실로 그 서정의 성질을 좌우하고 결정하는 중대한 요소라는 견해가 점차 유력해지고 있다. 그리고 비평이라는 것은 사상이 암묵 속에 활동하는 상태를 의미하므로 이것은 다시 말하면 시와 사상의 관계 문제로 귀착한다고 해야 한다.22)
“오늘날에는 생각하는 일, 비판하는 일은 서정의 작용 그 자체와 무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실로 그 서정의 성질을 좌우하고 결정하는 중대한 요소”라는 것이 오노 도자부로의 시론적 입장이다. 김시종은 이러한 견해에 기대어 ‘재일’의 시학이 역사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의 성격을 표방해야 한다고 보았다. “서정의 내부에 있는 이 비평의 요소를 자각하는 데서” 재일의 시학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고 보고, 재일조선인의 삶과 유리된 허위적 자연의 세계에 포섭된 서정적 자아의 내면세계를 외부세계로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시 정신과 비평 정신이 만나는 지점에서 ‘재일’의 역사적 현실과 정직하게 마주할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시와 사상의 관계 문제”가 ‘재일’의 시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때 ‘사상’은 정치사회적 측면의 외적 문제에만 초점을 둔 것이라기보다는 역사와 현실 앞에 서 있는 서정적 주체의 내면세계를 더욱 집중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서정=비평’이라는 문제의식은 바로 이러한 내적 세계의 형상화가 보여주는 시와 사상의 관계에서 비롯된 실천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5. 김시종과 ‘재일’의 시학
김시종의 ‘재일’의 시학은 일본어가 아닌 일본어, 즉 ‘재일조선인어’라는 독특한 언어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도 상당히 문제적이다. 만일 그의 시가 여느 일본어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일본어로 재일조선인의 삶을 형상화했다면, 굳이 그의 시를 두고 ‘재일’의 시학이라고 명명할 이유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일본어로 일본어를 파괴한다는 역설적 논리 그 자체가 김시종의 시를 구조화하는 시적 방법론이므로, 그의 시에서 ‘재일조선인어’로서의 일본어는 권력화된 식민의 언어인 일본어가 강요한 일차적 기호 체계를 넘어서는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언어로 재구조화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즉 ‘재일조선인어’로서의 김시종의 시적 언어는 재일조선인 사회의 차별과 불평등을 비판하는 아주 유효한 시적 장치가 됨으로써, 재일조선인 사회 깊숙이 억압되고 은폐되어 있었던 여러 가지 문제에 균열을 내는 의미심장한 주제의식으로 구현되었던 것이다.
‘의식의 정형화’라는 이데올로기적 구속 역시 재일의 독자적인 의식과 실존적 경험을 담아내는 데 있어서 커다란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 점도 김시종의 ‘재일’의 시학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1955년 총련 결성 이후 자신이 만든 『진달래』 잡지의 시 창작 방향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도, ‘재일’의 시학을 올바르게 정립하는 데 있어서 조직의 강령에 구속된 의식화된 정형의 탈피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재일’의 시학을 이데올로기의 차원이 아닌 재일조선인의 실존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하는 근본적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김시종은 ‘재일을 살아간다’라는 명제를 통해 언어, 민족, 국가라는 ‘재일’의 ‘틈새’를 통합적으로 인식하고 사유함으로써 재일조선인의 자기정체성을 올바르게 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라고 보았다. 이러한 근본적 토대 위에서 오노 도자부로의 ‘단가적 서정’의 부정과 ‘비평’으로서의 서정을 시적 전략으로 삼아 ‘재일’의 시학을 독자적으로 열어나가고자 했던 것이다.
한 일본 연구자는 “김시종을 읽는다는 것은 그것을 읽고 있는 ‘나’의 서정과 대면하고 그것을 건드리는 일과 연결된다.”23)라고 말했다. 이는 김시종의 시가 일본인인 자신에게 ‘일본’의 의미를 끊임없이 묻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조선인으로서 일본을 말함으로써 일본을 비판해온 김시종의 시적 지향에 대한 내적 충격을 고백한 것이다.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자명하게 생각하는 일본어로 된 시집이 아니라 일본어적 세계를 안으로부터 파괴해서 바깥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가득 차 있”24)는 것이 바로 김시종의 시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김시종은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의 실존에 대한 문제를 집요하게 탐색해 왔고, 역사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재일’의 현실을 비판하고 저항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심에 두고 실천했다. 제주 4·3의 기억과 ‘재일’의 틈새를 통해 본 시적 사유와 실천 그리고 ‘비평’으로서의 서정은, 그가 궁극적으로 정립하고자 한 ‘재일’의 시학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와 방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 1) 김시종, 윤여일 옮김, 『조선과 일본에 살다』, 돌베개, 2016, 234쪽.
- 2) 윤여일, 「부재의 재」, 『조선과 일본에 살다』, 위의 책, 278쪽.
- 3) 오세종, 「위기와 지평-『지평선』의 배경과 특징」, 김시종, 곽형덕 옮김, 『지평선』, 소명출판, 2018, 222쪽.
- 4) 김시종, 이진경 외 옮김, 『이카이노시집 계기음상, 화석의 여름』, 도서출판 b, 2019, 124~125쪽.
- 5) 김시종, 곽형덕 옮김, 『지평선』, 위의 책, 47쪽.
- 6) 호소미 가즈유키, 동선희 옮김, 『디아스포라를 사는 시인 김시종』, 어문학사, 2013, 241쪽.
- 7) 김시종, 곽형덕 옮김, 『지평선』, 앞의 책, 106~108쪽.
- 8) 김시종, 곽형덕 옮김, 『니이가타』, 글누림, 2014, 98~102쪽.
- 9) 김석범․ 김시종․ 문경수 편, 『왜 계속 써왔는가 왜 침묵해 왔는가』, 제주대학교출판부, 2007, 156쪽.
- 10) 김시종, 곽형덕 옮김, 『일본풍토기』, 소명출판, 2022, 73~74쪽.
- 11) 김시종에게 ‘틈새’는 “여러 분단선이 겹쳐 파이는 곳이다. 거기서 여러 힘이 가해진다. 따라서 틈새는 불확정적이고 유동적이다. 거기서 세계는 뒤틀린다. 김시종은 그 틈새에 몸을 두고 ‘틈새에 있음’을 내적 성찰에 나서야 할 상황으로 전유하고자 했다.” 윤여일, 「틈새와 지평」, 『재일의 틈새에서』, 돌베개, 2017, 370~371쪽.
- 12) 김시종, 윤여일 옮김, 「전망하는 재일조선인상」, 『재일의 틈새에서』, 339쪽.
- 13) 김시종, 이진경 외 옮김, 『이카이노시집 계기음상, 화석의 여름』, 앞의 책, 91~99쪽.
- 14) 김시종, 곽형덕 옮김, 「자서」, 『지평선』, 앞의 책, 11쪽.
- 15) 김시종, 곽형덕 옮김, 『니이가타』, 앞의 책, 130~132쪽.
- 16) 김시종, 곽형덕 옮김, 「시인의 말 : 장편시집 니이가타 한국어판 간행에 부치는 글」, 『니이가타』, 앞의 책, 7쪽.
- 17) 오노 도자부로는 “단가의 정형화된 31자의 음수율 속에 거대한 공룡 같은 것이 골격을 이루고 있으며, 그것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그 어떤 혁명적인 것도 그 의미를 소멸시켜 버리고 종래의 세계관과 사회관에 용해되어 버리는 강력함이 있다고 지적하며, 새로운 시는 단가적 서정에서 벗어난 새로운 서정, 즉 ‘현실로 하여금 부르짖게 한다’는 방법의 새로운 리얼리즘이어야 한다”라고 보았다. 심수경, 「재일조선인 문예지 『진달래』의 오노 도자부로 수용 양상」, 『일본문화연구』 제64집, 동아시아일본학회, 2017, 186쪽.
- 18) 김시종, 곽형덕 옮김, 「시는 현실 인식의 혁명」, 『지평선』, 앞의 책, 204~205쪽.
- 19) 김시종, 「지금 있는 장소」, 『김시종의 시 - 또 하나의 일본어』, 우카이 사토시, 「김시종의 시와 일본어의 미래」, 미우라 노부타카·가스야 게이스케 엮음, 이연숙 외 옮김, 『언어제국주의란 무엇인가』, 돌베개, 2005, 516~517쪽에서 재인용.
- 20) 김시종, 유숙자 옮김, 『경계의 시』, 소화, 2008, 9쪽.
- 21) 김광림, 「小野十三郞(오노 도자브로)의 편향성 - 정신주의 배격한 비평의식」, 『일본현대시인론』, 국학자료원, 2001, 177쪽에서 재인용.
- 22) 오노 도자부로, 「시의 본질」, 『현대시수첩』, 3~4쪽. 심수경, 앞의 논문, 185쪽에서 재인용.
- 23) 가게모토 츠요시, 「서정 - 생활의 깊이에서 연대로 - 김시종 시를 2018년 한국에서 읽는다는 것」, 『작가들』 2018년 여름호, 166쪽.
- 24) 곽형덕, 「분단과 냉전의 지평 너머를 꿈꾸다」, 『지평선』, 앞의 책,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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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한때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은 모두 ‘나’ 아닌 것들이었다. 타오르듯 싱그럽던 나무의 잎사귀 같은 것들이나 그 아래의 무수한 기척 같은 것들, 땡볕 아래 타오르듯 일렁이듯 작은 돌멩이나 창틀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 같은 것들, 혹은 녹아내리는 시간 속에 서 있던 한 사람까지. 우리가 진정 사랑했던 그 모든 것들은 나와 닮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눈길을 손쉽게 사로잡곤 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언어를 그물 삼아 ‘나’ 아닌 것들을 손에 넣고자 무던한 애를 쓰곤 했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란 참으로 무정한 것이어서, 그 숭숭 뚫린 구멍들로 정작 우리가 사로잡으려던 것들은 쏟아져버리고 그 자리에는 궁색한 언어만이 슬픈 흔적으로 남곤 한다. 그러니 ‘시’란 근원적으로 편린들, 혹은 우리가 사로잡고자 했던 바의 부스러기들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 자리에 남은 것들이란 우리가 언어를 통해 손에 넣고자 했던 바로 그 사물이 아니라, 그것을 잡고자 무던한 애를 썼으나 끝내 실패하고야 말았던 시간의 허물에 진배없으니 말이다. 영혼 잃은 육체처럼 허물어지듯 남겨진 언어의 잔해, 너무나 아름다운 것을 사로잡으려한 나머지 그에 미달하는 언어만이 남겨진 슬픈 실패의 기록.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남기는 이 언어들을 바라보며 실패의 쓴맛을 들이키며 그것을 증오하듯 사랑하고 마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추함은 단지 ‘醜’한 것이라고만은 말하지 못하리라. 적어도 그 추함은 한때 아름다움을 향해 손을 뻗었었다는 실패의 기록일테니 말이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전동균의 시가 특별한 까닭도 그와 같으리라. 그의 시에서 나타나는 무수한 사물들은 모두 망가지고 부서진, 흡사 세계의 부스러기와 같은 모습들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더는 회복할 수 없는, 그리하여 시간 속에 유폐되어 있는 듯 보이는 사물들은 제 자리를 영원토록 잃어버린 모습으로 이 시적 세계 곳곳에 허물어진 모습으로 존재한다. 아름다움을 언어로 포획하고자 하였으나 끝내 실패하고 만, 허물어지고 유폐된 시간의 기록들. 그렇기에 그의 시는 한편으로 쓸쓸하고 외로운, 홀로된 존재의 근원적인 슬픔을 아로새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을밤의 손바닥에 철철 넘쳐나는 달빛 속의 얼룩들, 몸부림치며 빛이 빠져나간 흔적 같은 내 눈이 빛을 얻고 내 입술이 말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영(靈)들이 나를 다녀갔을까 잊혀진 것들을 생각합니다 지도 밖으로 흘러나간 길들 바다에 가라앉은 화산들 육지를 처음 걸어다닌 물고기 틱타알릭과 그 지느러미 같은 것들 어딘가에 숨어 한 방울 눈물의 온기로 견디며 나를 부르는 이 모든 것을 데리고 온 운명 혹은 우연 - 「슈퍼 문」, 전문 전동균의 시에서 나타나는 정서적 특질은 많은 경우 무수한 사물들의 연쇄로부터 시작된다. 툭하니 내버려진 듯 무심히 존재하는 사물들의 모습은 그 쓸쓸함을 원인 삼아 다른 무수한 사물들로 이어지며, 화자의 진술을 통해 고독한 원환성을 완성시킨다. 위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핵심적인 정서는 사물들의 연쇄로부터 그것들에 대한 화자의 진술을 통해 완성된다. 여기에 덧붙여진 표현들, 예컨대 “빠져나간”, “다녀갔을까”, “잊혀진 것들”, “흘러나간”, “가라앉은”과 같은 표현들이 그러한 정서를 강화시킨다. 사물과 그에 대한 화자의 진술이 한 데 어울리면서, 5연에 배치된 시어들에 이르러서는 진술의 주체인 화자를 포함한 이 모든 사물들이 자신의 시간이 지나버린, 제 자리를 끝내 잃어버리고 만 존재들임을 알게 한다. 그렇기에 화자는 마지막 연에 이르러 이 모든 사물들과 자신이 하나의 “운명” 혹은 “우연”으로 묶여 있음을, 쓸쓸하고 외로운 심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하며 ‘나’를 포함한 모든 사물들이 존재론적인 고독과 슬픔의 정서 속에 유예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 쓸쓸하고 외로운 형상들을 단지 슬픔이라 말하는 것은, 혹은 그 슬픔을 단순히 일차원적인 감각적 소요라고 말하는 것은 온당치 않은 일일 것이다. 화자를 포함한 그 모든 사물들을 한 데 묶는 요소로서 ‘슬픔’이란 감정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태도로써, 보다 정확하게는 존재의 양태로써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그가 마지막 연에서 제시하고 있는 ‘견딤’에 대해 보다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 외롭고 쓸쓸한 형상들이 모두 제각기 다른 자기만의 슬픔을 견디기 위한 자세인 것이라면, 슬픔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그것을 촉발시킨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그 모든 사물들의 망가지고 부서진 형상이란, 서로 다른 시간을 경험하여 현재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이면서, 서로 다른 자기만의 슬픔과 고통을 통해 그 무수한 기억들을 독립적으로 보존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에 전동균의 시에서 나타나는 무수한 사물들의 형상, 그것들의 부서지고 망가진 모습들은 한편으로 시가 가진 본질적인 추함과 서로 공명하고 있다. 그 모든 상흔들은 결국 제 스스로 가닿을 수 없었던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실패의 자국들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전동균의 시는 그 자체로 시의 본령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일정한 메타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말해보고 싶다. 그의 시에서 나타나는 추함, 혹은 망가지고 부서진 자국들, 그 모든 상흔과 유폐된 시간들은 단순한 실패의 산물로써 자기 위로나 혐오를 위해 동원되는 수사적 사물들이 아닌 것이며, 비록 현재에 이르러서는 세계의 부스러기 같은 모습에 불과할지 몰라도 제각각의 기억 속에서 한 때나마 찬란했던 혹은 찬란하고자 했던 실패의 순간을 보존하고 있는 사물들인 것이다. 그렇기에 화자는 그러한 사물들을 향해 자신의 형제라 호명함으로써 그 무수한 사물들의 모습을 사랑의 이름으로 다시 쓰며, 찬미의 대상으로 아로새긴다. 빈집 처마끝에 매달린 고드름을 사랑하였다 저문 연못에서 흘러나오는 흐릿한 기척들을 사랑하였다 땡볕 속을 타오르는 돌멩이, 그 화염의 무늬를 사랑하였다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어 창틀에 낀 먼지, 깨진 유리 조각, 찢어진 신발, 세상에서 버려져 제 슬픔을 홀로 견디는 것들을 사랑하였다 나의 사랑은 부서진 새 둥지와 같아 내게로 오는 당신의 미소와 눈물을 담을 수 없었으니 나는 나의 후회를 내 눈동자를 스쳐간 짧은 빛을 사랑하였다 - 「빗소리」, 부분. “사랑”이라는 표현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위의 시에서, 화자는 자신이 사랑하였던 사물들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본다. “빈집 처마끝에 매달린 고드름”, “저문 연못에서 흘러나오는 흐릿한 기척들”, “땡볕 속을 타오르는 돌멩이, 그 화염의 무늬”라 호명되는 사물들은 모두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찰나의 사물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뒤이어 “창틀에 낀 먼지, 깨진 유리 조각, 찢어진 신발” 같은 부서지고 망가진 사물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사랑하였노라 말한다. 화자가 이러한 사물들을 사랑하였노라 말하는 까닭은 그것들이 모두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서 버려져/제 슬픔을 홀로 견디는 것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진술은 화자가 세상에서 버려져 깊은 슬픔에 빠져있으며, 그 슬픔을 차마 견딜 수 없어 괴로워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러한 진술들을 하나로 묶는 감정은 고통과 괴로움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사실은 전동균의 시적 언어가 슬픔은 단지 슬픔으로, 실패를 단지 실패로 쓰고 읽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우리에게 알려준다. 물론 시인의 언어를 통해 그 잔여들이 모두 자신의 자리를 비로소 갖게 되며 이야기가 끝이 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이후에도 부서지고 기울고 유예되며 미끄러지는, 존재론적 슬픔과 고통은 사물들의 역사에서 계속해서 반복된다. 하지만 시적 언어를 통해 잠시나마 자리를 가질 수 있었던 사물들의 형상은 이제 견딤의 모습으로, 자신의 찬란했던 기억을 놓지 않고자 분투하는 ‘혼자’들로 거듭난다. 그러니 전동균의 시를 읽으며 전달받는 쓸쓸함과 고독, 슬픔의 정서란 그 자체로 전부가 아니며, 늘 전부를 초과하는 감정적 잔여를 머금고 있는 것이리라. 자신의 기억을 놓치지 않기 위한 기약 없고 대가 없는 헌신이 바로 그 쓸쓸함과 고독의 정체이기 때문이다. 1 창문들은 어떻게 저렇게 환한 표정으로 지는 해를 맞이할 수 있을까 아무리 들이켜도 갈증이 나는 이 물병은 무엇일까 구겨진 휴지 같은 이 그림자는 내가 사라지면 어디로 가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2 찬미 받으소서, 먼지들은 죽은 벌레, 해진 걸레들은 빈 소주병과 노숙의 새까만 발들은 감겨진 눈의 눈물, 통증 없이는 빛나지 않는 별들은 언제 어디서나 오로지 제 몸 하나로 저의 가난과 추위를 지키는 것들은 그 가난과 추위의 이름으로 찬미 받으소서 3 밥냄새, 살냄새 좇아왔습니다 저희 피가 이끄는 대로, 저희가 저희를 잊고 깨우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희는 진흙처럼 목이 쉬었고 어느 하루도 돌을 가슴에 얹지 않고는 잠들 수 없었습니다 - 「미제레레」, 전문. 그러한 윤리성은 위의 시 「미제레레」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무수히 호명되는 저 많은 주어들은 마땅한 자리를 ‘지금 여기’에 갖지 못한 사물들이기에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유예되며 또 다른 부서지고 깨어진 쓸쓸한 것들로 이어진다. 그 속에서 화자는 “그 가난과 추위의 이름으로/찬미 받으소서”라 말하며, 이 모든 사물들이 행하는 견딤의 시간에 헌사를 보낸다. 그러한 헌사는 동시에 자신의 자리를 갖지 못한 사물들에게 마땅한 몸피를 부여하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그러한 언어를 통해 자신과의 관계성을 형성하는 주체적인 능동적 행위라 할 수 있다. 부서지고 망가진 사물들을 향한, 높은 곳에 위치한 성스러운 존재들이 아닌 낮은 곳에 위치한 비천한 사물들을 향한 그의 찬미와 사랑을 통해 그는 비로소 ‘혼자’이되, 자신과 같은 무수한 형제들을 가진 ‘혼자들’의 하나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전동균의 시에 있어 ‘견딤’이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시간의 부피를 단지 수동적으로 감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 있어 ‘견딤’이란 돌이킬 수 없는 찰나 이후의 시간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가진 고유한 쓸쓸함을, 그 고독의 시간을 감각하는 일이며, 그리하여 모든 존재가 제각기 다른 슬픔을 견디고 있음을 언어를 통해 비추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의 언어는 보편적인 찬미의 대상이 되는 태양이나 달, 별과 같이 저 높은 곳에서 스스로 빛을 내뿜는 사물들이 아니라 “먼지들”, “죽은 벌레”, “해진 걸레들”, “빈 소주병”, “노숙의 새까만 발들”, “감겨진 눈의 눈물”과 같이 유폐된 존재들에게 향하는 것이리라. 그 모든 것들이 화자에게는 “통증 없이는 빛나지 않는 별들”일지니. 이와 같은 화자의 특수한 시선은 그의 시에서 자연의 사물들을 향한 섬세한 감각들이 언어로 피어나는 까닭과도 이어진다. 가령 「천지간」에서 “흙들의 밤이 두리번두리번 몰려왔다” 말하며 자연에 새겨진 고유한 슬픔을 읽어내는 것이나, 「다대포」와 같은 시에서 바위들을 바라보며 그 속에 새겨진 영겁에 가까운 고통의 시간을 읽어내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의 시에서 무의미한 존재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각기 다른 슬픔과 고통을, 그리하여 오직 자신의 것일 뿐인 고독을 모두 다른 모습으로 시간의 부피를 견뎌내고 있는 위대한 ‘혼자’들이기 때문이다. 시궁창의 구더기다 깨진 유리 조각이다 짓이겨진 담배꽁초다 이것들을 다정한 나의 형제여, 라고 부르는 실성한 입술이다 - 「이 밤은」, 부분. 그렇기에 화자는 심지어 “시궁창의 구더기”와 “깨진 유리 조각”, “짓이겨진 담배꽁초”와 같이 한없이 낮은 존재들을 향해 “이것들을/다정한 나의 형제여”라 호명한다. 상식적인 층위에서 보자면 그것은 한없는 자기혐오에 가까운 일일 테지만, 그의 시적 세계 속에서 벌어지는 이와 같은 호명은 자기혐오를 초과하는 여분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읽혀져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자기혐오도, 자기중심적인 고백도 아니다. 모든 존재가 제각기 다른 자기만의 슬픔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로써, 그리하여 지금과 같은 형상을 취하게 된 것으로 다시 읽혀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화자의 언어란 그 모든 부서지고 망가진 사물들의 견딤을 향한 헌사이면서, 동시에 모든 존재의 삶의 양태란 결코 명확한 상징이나 명제로는 표현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견딤의 형상을 말함으로써만, 그리하여 부서지고 망가진 쓸쓸하고 홀로된 모습을 언어를 통해 비출 때에야, 사람의 양태란 초과 혹은 결여의 형태로써 우회적으로나마 말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모든 쓸쓸함은 결코 쓸쓸함만이 아닌 것이며, 그 모든 실패들은 단지 실패인 것만이 아닌 것이고, 이러한 사물들의 양태를 언어로 비추는 것은 그 고유하고도 보편적인 삶의 양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견뎌나가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행위라고 고쳐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 시적 세계에서, 모든 사물은 추하다. 그러나 그 추함은 고독하면서도 아름다움을 품고 있으며, 그렇기에 이 본질적으로 홀로된 세계는 무수한 ‘혼자’들로 충만하게 가득 차 있다. 이 모순되고도 상반된 세계의 모습. 전동균의 시적 언어가 비추는 세계의 모습이란, 그리하여 그가 제시하고자 하는 생의 긍정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흡사 그가 화자의 입을 빌려 “왜 세상 모든 곳은/무덤이며 성전인지”(「해가 지면 다시」)라 질문했던 것처럼. 그 질문 자체가 결국 대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렇기에 그의 시는 단단하지 않고 때때로 깨어지고 흩어지며 중얼거리듯 간신히 이어져 지금 여기 우리에게도 도착한 것이리라. 그리하여 다시금 깨어지고 흩어지며 때로는 바스라지듯 간신히 이어지더라도, 그 과정은 그 자체로 모든 존재의 홀로된 생에 대한 사랑이자 헌사이며 찬미이기도 할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려 하고, 사랑할 수 없는 것들을 사랑하며, 잊혀진 것들을 다시 데려오려 하는 모습으로. 때로는 기록의 모습으로, 때로는 기도의 형태로, 때로는 고백이자 슬픔의 토로와 같은 모습으로 그의 시가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란다.
1. 구본창의 비누 사진을 본다. 말라비틀어진 비누의 갈라진 틈에 흘려보냈어야 할 때가 박혀 까맣게 굳어 있다. 더는 손 씻는 데 사용할 수 없을 작은 비누를 차마 버리지 못한 연한 마음. 한낱 비누 조각에 담긴 손때에서 세월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섬세한 시선.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말할 것이다. 아름답지만 그뿐. 스스로 빛나지 않는 것에 과할 만큼 환한 조명을 비춰 부유하는 듯 피사체를 연출한 사진술에 불과하다고. 삶은 어찌할 바 없이 낡아가기 마련이고 그 사실 자체는 대단한 가치를 보증하지 않는다고.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름다움을 동원하지 않으면 포착할 수도 간직할 수도 없는 평범하지만 놀라운 순간이 분명 존재한다. 아무리 조명을 비추고 주인공의 자리를 내주어도 메마른 비누가 다시 수분을 머금고 유선형으로 부풀어 오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저 모양과 저 색으로 머무르는 비누의 한순간이 존재하고, 때때로 예술은 부드럽고 환한 조명을 비춰 그 아무렇지 않은 순간에 영원의 빛을 부여하는 일을 해내고야 만다. 잘 짜인 베일 위에 손때 묻은 비누 조각을 올려 섬세한 조명을 비춰보는 일. 말라붙은 비누는 놀랍게도 영롱한 빛을 뿜고, 우리는 순간과 영원이 교차하는 그 모습을 아름답게 지켜볼 수 있다. 2. 백수린의 소설집 『봄밤의 모든 것』에 “작지만 분명한 놀라움이”(p.36) 자주 등장하는 건 이 때문이다. 삶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놀라움과 함께 등장한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었기에 놀랍고, 이미 지나가버린 것이라고 잊었기에 새삼스럽다. 현란한 타임라인에 무한한 현재가 피드되는 오늘날에도 소설은 삶이 연속적임을, 젊었던 내 모습은 절대 돌아오지 않고 그 비가역성이야말로 삶이 지닌 잔인하고도 엄연한 속성임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동시에 소설은 삶이 단속적이라는 것,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문득 과거의 내 모습이 내 앞에 돌아와 놀라운 기시감을 선사해주라는 것 또한 알려준다. 일흔이 넘은 노인이 “어떻게 이런 것들을 까맣게 잊었을까”(「아주 환한 날들」, p.33) 하고 작은 경악을 느끼는 것처럼, 마흔이 넘은 여자가 “일렁이던 특별한 빛”을 가졌던 한때를, 그 시절 품었던 “이제 와 돌이켜보면 부끄럽지만 무척 황홀한 감정”(「빛이 다가올 때」, p.65, 71)을 언제든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삶은 기억에 남은 몇 장면에 불과하고 그러므로 인생에 별다른 의미는 없다. 그럼에도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장면들로 엮어낸 사슬이 어떤 이야기를 빚어내는지에 달려있다. 당신은 어떤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나. ‘그 순간 이후 나는 달라졌다’라는 말은 허구에 불과할 것이다. 차라리 진실은 ‘그 순간을 떠올린 이후 나는 달라졌다’에 가까워 보인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과거의 순간을 반복해 살고, 그때 비로소 그 순간의 적확한 좌표를, 그 순간이 인생에서 차지한 위치와 의미를 뒤늦게나마 알아채게 된다. 이야기의 형태로 순간은 영원을 획득하고, 그때는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진실이 선물처럼 손에 쥐어진다. 그렇게 되찾은 시간은 우리에게 행복을 선사할 것이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내 삶을 관통해왔음을, 다시는 얻을 수 없는 환희가 그때의 내게 주어졌음을 깨닫는 순간. ‘그때 그곳’은 ‘지금 이곳’에 다시 한번 다른 방식으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고,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1) 모습으로 펼쳐진다. 오래되고 낡은 기억을 새롭게 재생하는 이 뒤늦은 행복의 수확은 예상치 못한 무언가와 마주쳤을 때, 예컨대 다시 무언가에 애정을 쏟는 일 따위는 없으리라 믿었던 노인이 앵무새를 사랑하게 되었거나(「아주 환한 날들」), 뉴욕에서 만난 마흔이 넘은 사촌 언니의 때늦은 첫사랑을 목격하게 되었을 때(「빛이 다가올 때」), 당혹과 감탄 속에서 이루어진다. 동시에 이 모든 일은 이미 충분히 고독하기에 발생한다. 아무리 후회해도 노인이 젊은 엄마였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고, 첫사랑의 추억에 무감해질 만큼 나이를 먹어버린 여자에게 뉴욕은 광채를 잃은 도시가 된 지 오래다. 그러므로 연속과 단속의 교차, 고독한 사람이 길을 걷고 서길 반복하는 모습이야말로 삶에 관한 정확한 비유로 보인다.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길은 끊기지 않고 다만 종종 정지되고 자주 되감길 것이다. 그렇게 백수린 소설의 행로는 언제나 한 곳을 향한다. 잃어버린 제 자리를 찾아서. 과거의 한 장면이 제자리를 찾아 잃어버린 조각처럼 박힌다. 원래 있던 자리는 아닌, 방금 만들어진 자리. 박히는 순간 이 자리가 바로 제자리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자리. 그렇다고 사랑이 이별로 마무리되고 삶이 죽음으로 귀결되는 지당한 진리가 훼손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점점 녹아 사라지거나 말라비틀어져 버려지는 것이 비누의 운명인 것처럼. 인생이 비극이라는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고, 비극에서 실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 소설가의 고군분투가 존재할 따름이다. 미약한 우리가 삶의 비극성에 맞설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아름다움이란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없는 인간에게 가능한 마지막 승리”임을 의심하지 않을 뿐이다. “인간의 실존이란 인간에 의해 끊임없이 망각”될 수밖에 없지만, 다행히도 예술가의 눈에 발견되어 그의 손에 의해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소설의 아름다움은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이 갑자기 뿜어내는 빛”2)에서 유래하며, 소설의 독자이자 제 삶의 독자인 우리가 책임질 수 있고 책임져야 할 유일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다. 3. 아름다움에 대한 책임은 지적인 책임 역시 저버리지 않는다. 과거를 회상하는 일은 지나간 시절의 좌표를 해독하는 일인 동시에 기억을 떠올리는 지금 이곳의 존재 양식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 물론 아름다움과 진실은 함께 지켜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기억은 재구성의 작업을 멈추는 법이 없고, 보정된 과거는 진실성을 잃는 대신 아름다움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을 돌아보는 일은 사건을 보도하는 일과 같지 않고, 어쩌면 기사를 작성하는 일조차 현장에서 써 내려간 기사가 모든 일이 끝난 후 숙고하며 작성된 기사보다 진실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숲에서 벗어나 숲을 풍경으로 바라봐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그곳에 속했던 나로서는 절대로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 시간이 빚어낸 거리를 통과하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편집과 윤색의 의혹에 자유로울 수 없을지라도 차마 거짓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무지에서 앎으로의 이행은 얼마만큼의 위험을 감수한다. 복기되지 않는 사실은 순결하지만 무의미하고, 삶은 끊임없이 복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도약을 감행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은 지나간 것을 알아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매개물”에 가깝다. 만약 기억을 탐사하는 자가 “발굴된 물건들의 목록에만 신경을 쓰고 옛것이 보관되어 있던 장소를 오늘날의 대지에 표시하”는 걸 잊는다면, “그는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3)고 있는 셈이다. 되찾은 기억은 단지 사실을 보고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솟아오르는 현재의 이 장소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이십대 시절의 보라에게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는 유타의 삶은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나 15년의 세월이 흐르자, 그녀는 더 이상 “유타의 대책 없음이 한심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이야기가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는데, 그건 어쩌면 그녀가 이제는 나이 들고 병든 개를 간병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봄밤의 우리」, p.92) 이 순간 그녀의 눈앞에 과거 유타와 함께했던 나날이 다시 한번 펼쳐진다. 타인의 말과 몸짓이 새롭게 발굴되고, 그렇게 되찾은 것들은 발굴이 이루어지는 지금 이곳의 내 삶에 대해 알려준다. 뒤늦은 앎이 전적으로 내 덕이 아닌 것처럼, 당시의 무지도 전적으로 내 탓은 아닐 것이다. 스물여덟 살의 다혜가 자신을 얼마나 성숙한 어른으로 여기든 간에, 그녀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모할머니가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이유도, 자식들의 만류에도 어깨관절 수술을 받겠다고 고집하는 이유도 짐작할 수 없다. “이제 와 무슨 의미란 말인가?” 짐짓 어른스러운 포즈로 반문한다. 그러나 마흔에 접어들자 희미한 깨달음과 후회가 밀려온다. “스무 살 때 다혜는 자신이 언젠가는 늙을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믿지 못했다. 겨우 스물여덟 살이었을 때는 이제 늙어버린 노인의 마음을 알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노인의 마음을 안다고 믿었다니. 주제넘은 오만. 어리석은 소리. 다혜는 아무것도 몰랐다.”(「눈이 내리네」, pp.208~209) 앞으로도 우리는 많은 것을 모를 것이고, 운이 좋다면 언젠가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만큼은 알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가 얻은 불완전한 앎에는 놀랍게도 아름다움이 함께할 것이다. 삶은 기억이 빚어내는 반복을 통해 의미를 발굴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고작 1인분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손안에 놓일 앎이 그리 대단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미미한 앎에 깃든 아름다움을 기만이나 허위로 폄훼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어린 딸을 잃은 엄마가 “한없이 잔혹한 인생이 얼마나 변덕스러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또다시 기쁨을 줄 수 있는지” 이야기하는 순간처럼, 차마 바랄 수도 없던 빛, 꿈에서도 허락한 바 없던 빛이 삶에 내려앉는 순간이 분명 존재한다. 그 빛이 언제 어디에서 유래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는 “아주 잠깐 동안 경외감이 어린 눈으로 그 빛이 번져가는 광경을 바라볼 수는 있”(「그것은 무엇이었을까」, pp.245~246)다. 삶의 아름다움은 감히 기다릴 수는 없지만 기꺼이 맞이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4. 그러니 이 모든 것은 어른을 위한 이야기다. 자신에게 찾아온 앎이 가까스로 맺힌 물방울 같다는 걸 알아보는 사람, 우연과 필연이 빚어낸 정교한 결정에 감탄하면서도 그 찬란함이 곧 흩어지리라는 걸 납득하는 사람의 이야기. 어른이 된다는 건 책임지는 자가 되는 것도, 힘을 갖거나 성취를 쌓은 자가 되는 것도 아니라, 오히려 포기할 줄 아는 자가 되는 것에 가깝다. 갓 성년이 되었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섬으로, 다른 이들을 파도로 여겼다. 파도가 나를 치거나 감싸며 가까워지고 멀어지길 반복한다고 믿었던 순진함. 나이를 먹고 알게 된 것은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 나는 바다 위에 고정된 섬 같은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내 삶은 나의 것’이라는 말의 허위를 깨닫게 된 순간, 인생의 많은 것을 마음 편히 포기할 수 있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 나이를 먹어야 알 수 있는 것들, 나이를 먹어야 포기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출생에서 죽음 사이를 잇는 선 위에 관측소를 세운다면 각각의 관측소에서 세상은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고 “그 사람의 나이를 이해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4) 젊은 시절을 “서정적 시기”라고 설명하는 쿤데라의 말에 동의한다. “거의 전적으로 자기 자신한테 집중하고 있어서 주변 세계를 보지도, 이해하지도, 명료하게 판단하지도 못하는 시기”가 존재한다. 그러니 성숙해진다는 건 자신만의 세계를 포기하는 일, 서정적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일과 다르지 않다. 소설은 어른의 것이고, 소설가의 탄생은 “개종에 관한 이야기”와 유사할 것이다. 다시 말해, “소설가는 자신의 서정 세계의 폐허 위에서 태어난다.”5) 여기서 백수린의 소설을 좀더 염두에 두고 말해보자면, 소설가는 그 폐허 위에 어른의 서정 세계를 세우는 사람이다. 복잡한 서정, 그러니까 무지로 빚어낸 매끈한 서정이 아닌 주름지고 비틀리고 손때 묻은 서정 세계를 발견하는 사람. 세상에는 어른만이 느낄 수 있는 비애와 충만이, 얼마만큼 나이를 먹어야 알아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작가를 가진다는 건 달라진 그의 관측소를 공유하며 새로운 어른의 서정을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마치 “다정한 공모자들처럼.”(「흰 눈과 개」, p.142) 1) 발터 벤야민, 김영옥·윤미애·최성만 역, 「햇빛 속에서」,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도서출판 길, 2007, 212쪽. 2) 밀란 쿤데라, 권오룡 역, 「소설에 관한 내 미학의 열쇠어들」, 『소설의 기술』, 민음사, 2013, p.195. 3) 발터 벤야민, 같은 책, 「발굴과 기억」, pp.182~183. 4) 밀란 쿤데라, 박성창 역, 「커튼 뒤에 숨겨진 삶의 나이」, 『커튼』, 민음사, 2012, p.204. 5) 같은 책, 「시인과 소설가」, p.124.
1. 소월이 그러하듯, 황동규 시인에 대해서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있을 것인가. 황동규는 1958년 미당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시력 67년을 지나는 시인이다. 그는 첫 시집 『어떤 개인 날』(1961)을 발표한 후 『풍장』(1995)을 거쳐 지난번 『봄비를 맞다』(2024)에 이르기까지 도합 열여덟 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1,000편에 거의 근접한 그의 시세계는 이번 근작 시편에도 등장하는 평론가 이숭원의 일전 언급대로, “황홀하고 서늘한 삶의 춤”(『꽃의 고요』 해설)이라고 일단 상징적으로 명명할 법하다. 실제로 그의 시에는 지난 세월동안 시인이 꿈꾸며 가꿔온 삶의 시간들이 때로는 황홀한 감각과 사유로, 또 서늘하면서도 생기 있는 언어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이 황홀하고 서늘한 삶의 몸짓을 극서정시가 견인하고 있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황동규 시의 독특한 구성 원리이자 시세계 전반을 추동하는 극서정시는 단적으로 말해 ‘극’을 내장한 서정시이다. 시에 극적 구조를 연출함으로써 반전이나 시적 자아의 깨달음과 거듭남 같은 내적 변화를 유도하는 시인 특유의 창작 방식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극서정시는 “극(劇)적 구조를 지니고 싶다”라는 시인의 선언적 문구가 『악어를 조심하라고?』(1986) 표사에 실리면서 한국 시사에 본격적으로 등재된다. 이후 『몰운대행』(1991), 『미시령 큰바람』(1993), 『외계인』(1997),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2000), 『우연에 기댈 있었다』(2003), 『꽃의 고요』(2006)는 물론 최근의 시집에 이르기까지 황동규의 시편들은 극서정시의 계보를 독자적으로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은 이전 그의 시가 ‘시 안에서 무슨 일인가 일어나는 시’의 방식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도 시인의 말마따나 “명칭은 나중에 붙였지만,” “극서정시는 초기부터 있었다.”고 이해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가령 황동규 시세계의 중심축을 떠받치던 일련의 사랑 시편은 기존의 전통 서정시와 달리 극적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 시들에서 ‘사랑(이야기)’는 극서정시 구조를 통해 새롭게 변주되고 그때그때마다의 정황적 의미를 획득한다. 데뷔작 「즐거운 편지」를 위시한 황동규의 사랑 노래는 재래의 수동적이고 추상화된 주제 영역을 벗어나 생활세계에서 ‘사소’하고 ‘조그만’하며 ‘비리고’ ‘쨍한’ 극적 사랑의 계기들을 만들어 온 것이다. ‘시간 속에 비치는 시간’의 감지와 ‘홀로움(외로움을 통한 혼자 있음의 환희)’의 정서, 그리고 세계의 필연성과 필연적으로 동행하는 우연성의 수용은 사랑주의자 황동규가 자신의 사랑 시편들과 함께 극서정시를 가동해온 의식/무의식의 흔적들이다. 아울러 일상의 규범을 벗어나 지각의 갱신을 이루기 위한 방안으로 선택한 여행(시)과 시인의 타고난 예술적 정열은 그의 시가 태어나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마련해왔다. 여기에 죽음에의 선주(先走)를 감행하여 확보한 삶과 죽음의 인식론적 전환 사유와 선(禪)에의 깊은 관심은 그의 시에 세계 인식의 깊이와 넓이를 확보하기 위한 시적 장치이자 방법론으로 주어져 있다. 이렇듯 황동규의 시는 일상과 탈일상의 세계를 분주하게 오가며 시와 삶이 하나 되는 극적인 순간의 풍경을 연출해왔다. 이 과정에서 시인은 마치 ‘외계인’과도 같은 낯선 시선과 호기심으로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세계의 진면목을 환하게 그려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시는 알레고리와 상징의 밀회를 적극적으로 주선하며, 황홀하면서도 서늘한 삶의 풍경들을 노래하고 있다. 2. 황동규의 주요 시편들이 극적 구조를 거느린다고 했거니와, 이는 근작시를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이번 그의 「벽오동」은 작품의 말미에 “색즉시공(色卽是空)”의 글귀를 위치시킴으로써 이즈음 시인이 생각하는 삶의 “밑그림”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주차장 건너편 축대 위에 나란히 서 있던 은행, 벽오동, 벚, 같이 물드는가 했더니 벽오동이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양편 두 나무는 옷 갈아입기 바쁜데 둘러보면 다른 나무들도 몸단장 한창인데 이틀 만에 잎 두 개만 달랑 남았다. 몸에 걸쳤던 것 낌새 못채게 털어버리고 언뜻 보면 뵈지 않는 나무 되어 서었다. 세상의 리듬과 엇박자라고? 하지만 그게 바로 우리가 잊을만하면 떠올리고 잊을만하면 꿈꾸는 색즉시공(色卽是空) 살기의 밑그림 아니겠나? 「벽오동」 전문 시 「벽오동」의 도입부에는 세 개의 나무가 등장한다. “은행, 벽오동, 벚” 나무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시의 제목이 ‘벽오동’으로 제시된 이유는 “양편 두 나무는 옷 갈아입기 바쁘”고 “둘러보면 다른 나무들도 몸단장 한창인데”, 유독 ‘벽오동’만 “잎을 떨구기 시작”했고 “이틀 만에 잎 두 개만 달랑 남았”기 때문이다. “벽오동”만이 “언뜻 보면 뵈지 않는 나무 되어” “세상의 리듬과 엇박자”를 내고 있는 형국이다. 「벽오동」의 시적 반전은 이 부근에서 준비된다. “세상의 리듬과 엇박자라고?”와 같은 화자의 의도 섞인 물음은 “주차장 건너편 축대 위에/나란히 서 있던 은행, 벽오동, 벚”의 상황 묘사로 일관했던 이 시를 급기야 세상의 이치에 대한 깨달음과 자기 확인의 지대로 인도한다. 이때 10행의 접속 부사 “하지만”은 시적 자아가 겪는 거듭남의 여정을 노골적으로 주도하고 암시한다. 그 거듭남이란 “엇박자”와 정박자의 구분이 없는, 아니 구별하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참된 자세라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잊을만하면 떠올리고 잊을만하면 꿈꾸는/색즉시공(色卽是空) 살기의 밑그림”이라는 내용으로 정리된다. 이처럼 이 시는 평범한 생활세계의 한복판에서 “세상의 리듬”과 “같이” 하지 않은 자연생명을 통해 시적 화자의 변화된 생각을 명쾌하게 전달한다. 이를테면 우리 삶에는 우연성과 필연성이 공존한다든가, 초월은 결국 초월하지 않는 곳에 있다든가, 더하여 죽음은 삶의 시간에서 분리된 이원화된 공간이 아니라든가 등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示空空卽示色)>의 저 찬란하면서도 심오한 구문이 간직한 모든 가능태의 해석들로 말이다. 이 대목을 특히 강조해두고 싶은 것은 “색즉시공(色卽示空) 살기”에 대한 시인의 단상은 이어지는 「시에 대한 단상들」에도 재차 변주되어 나타나는 까닭이다. 가령, 최근 시에 대한 시인의 단상은 이렇다. “시 쓰는 일은” “우연 같은 우연, 우연 아니게 만나는” 길이고, “더 이상 다르게 말할 필요가 없을 때/다르게 말할 수밖에 없는 간절함이 꿈틀”대는 순간이며, “명동 간다는 게 충무로역에 내렸”지만 가끔씩은 “그런 시가 생각보다 더 실할 수 있다”는 생각. 또한 “날것 보다는 제대로 익힌 시가 그래도” 좋겠으나 “익힌 날것도 있”다는 생각. “시인과 대상과의 관계는 늘 1:1”이지만 “민들레와 달팽이/뜻밖에 창틀에 와 쉬고 있는 곤줄박이”를 “안 본다 안 본다 하면서 더 보고 싶은 사람”처럼 가끔씩은 예외적으로 기우뚱한 균형으로 이루어질 때도 있다는 생각 등등. 이렇듯 황동규에게 시는 고정불변의 규율과 법칙으로 규정되거나 강제되지 않는다. 인과론적 사유로만 구성되지도 않는다. 그에게 “시는 이 세상 모든 걸 다 맛보려”(「시가 사람을 홀리네」, 『오늘 하루만이라도』, 2020) 드는 생감각의 집결지이고, 변화무쌍한 색(色)이자 공(空)의 세계다. 삶의 실제가 그러하듯이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示空空卽示色)>의 이치가 투명하면서도 절제된 언어로 전이되어 황홀하게 펼쳐지는 구체적 장이다. 그리하여 다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앞문으로 들어가/뒷문을 찾지 못하는 시도 시다.” 그 시들 속에는 “무심히 돌다 뒤꼍에서 만나는/이끼, 환한 빛의 섬들”이 존재한다. “이크 밟을 뻔! 민들레와 달팽이/뜻밖에 창틀에 와 앉아 쉬고 있는 곤줄박이”가 우리와 함께 숨 쉬며 살고 있다. 3. 아무래도 황동규의 근작 시편을 읽다보면, 노년의 시인을 자주 만나게 된다. 노년은 많은 것들을 서서히 세상에 내려놓는 마음의 시간대다. 인간에게 죽음이 가장 확실한 미래의 사건으로 고지되듯이, 노년은 유한 존재가 어쩔 수 없이 겪는 예고된 시간의 절차이자 필연의 변화이다. 감각기관의 퇴화와 기억력의 감퇴는 필연적 변화의 대표적 항목이다. 거기에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주변 사람들의 죽음은 이 필연적 변화의 끄트머리를 실시간으로 경험하게 한다. 지난밤 꿈에 너와 나 너무 많은 말을 주고받았어. 너 어제 세상 뜨고 이제 서로 다툴 일도 척질 일도 없는데. 어제 저녁 네 빈소에 갈 때 현관서부터 가을비 추적추적 뿌렸지. 버스 타러 가는 길에 나란히 서 있던 키 엇비슷한 목련과 오동 높낮이 서로 다른 비 맞는 소리를 비긋는 한 소리로 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말보다 더한 말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 너무 많았다」 전문 「말이 너무 많았다」는 죽음을 경험한 시인의 차분한 언어들이 동원된 작품이다. 시의 화자는 “어제 저녁” 가까웠던 이의 부음을 접하고 “빈소”에 다녀왔다. 안타까운 마음일 것이다. 허전하고 쓸쓸한 심정일 게다. “이제”, “어제”의 “너와 나”는 꿈속에서만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된 것이다. “현관서부터” “추적추적 뿌렸”던 가을비는 이런 화자의 공허한 심리상태를 우회적으로 반영한다. “이제 서로 다툴 일도 척질 일도 없는데”라는 화자의 읊조림에는 ‘너’를 향한 그리움과 아쉬움의 감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너와 나”의 “어제”와 “이제” 사이에는 느닷없는 죽음이 가로 놓인 까닭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시는 ‘너’의 죽음을 처연한 슬픔의 분위기로 몰아가지 않는다. 애도의 마음을 부러 과장하지 않는다. 그보다도 시인은 “높낮이 서로 다른 비 맞는 소리를/비긋는 한 소리로 내고 있는” “키 엇비슷한 목련과 오동”을 모나지 않게 적재함으로써 “말보다 더한 말”의 의미를 조심스럽게 유도한다. 죽음을 계기로 “서로 다툴 일도 척질 일도” 많았던 “어제”를 봉합하고 “이제”의 내 삶에서 ‘너’와의 진정한 관계성을 진지하게 성찰하고자 한다. 기실 황동규에게 죽음은 더 이상 삶의 단절도, 우리의 현재와 무관한 먼 미래의 일도 아니다. 시인에게 죽음은 삶의 본원적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절대적인 계기로 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 현실적으로 작용한다. 오히려 그의 시에서 죽음은 “어제”의 일상적 시간을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사건으로 인식된다. 그러기에 시인은 죽음으로 인해 인간의 삶이 마감된다는 것을 분명히 의식하면서도 인간의 짧은 삶에 ‘그때그때마다’ 최대한의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한다. 시 「말이 너무 많았다」가 ‘너’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말보다 더한 말”의 진실을 “이제”의 삶에서 환기하는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입춘 가까워 추위 잠깐 풀린 어제 저녁 시의 혈관 건강 살피는 비평가 이숭원 교수와 사당동 조그만 횟집에서 만나 한잔하다가 그만 내 뇌혈관 상태 들키고 말았다. 운 떼려다 멈칫하게 만든 낱말, 신문이나 휴대폰에서 매일 두세 번씩 만나고 언제부터인가 가족이 모일 때 내가 그 병에 걸리면 집에 두지 말고 즉시 요양원 보내라고 여러 차례 당부한 그 말, 아무리 해도 떠오르지 않아 그만 디멘셔(dementia) 하고 말았다. 이리저리 설명하니 이교수가 치맵니다, 했지. 한평생 영어로 먹고 산 셈이지만 매일 뇌에서 영어 낱말 열 개씩 지워지는 지금, 별일은 참 별일이다. 바로 조금 전 글 쓰다 어제 그 말 넣으려 하자 이번에도 영 떠오르지 않아 할 수 없이 사전 꺼내 dementia를 찾았다. 루마니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유대 종족 말살 행한 독일인의 말로 시를 쓰며 프랑스 파리에서 살다 센강에 몸 던진 시인 파울 첼란, 그가 독일어로 마신 ‘검은 우유’가 새삼 생각나는 아침이다. 「지워버린 말을 찾아서」 전문 「지워버린 말을 찾아서」는 노년의 시인이 겪은 에피소드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시의 화자는 모처럼 “비평가 이숭원 교수와/사당동 조그만 횟집에서 만나 한잔하다가” 노년의 불편함에 난감해 한다. “아무리 해도” “그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결국 “이교수가 치맵니다,” 말하고 나서야 세월의 늙음이 “지워버린” “그 말”을 되찾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바로 조금 전 글 쓰다 어제 그 말 넣으려 하자/이번에도 영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도 “할 수 없이” “사전 꺼내 dementia를 찾았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시인이 경험하는 노년의 불편함이란 당연히 기억력의 감퇴이다. “뇌혈관”의 노화가 야기하는 이런 불편함은 사실 “참 별일이다”라며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지만, 정도에 따라 “그 병에 걸리면 집에 두지 말고/즉시 요양원 보내”야 할 만큼 걱정스런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더군다나 그 낱말이 “신문이나 휴대폰에서/매일 두세 번씩 만나”는 흔한 모국어라면 사태는 보다 심각하다. 그렇기는 하나 시의 화자는 이 난감하고 걱정스러운 국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경쾌하게 돌파하는 듯하다. “한평생 영어로 먹고 산” 대학의 영문학 교수였음에도 “매일 뇌에서 영어 낱말 열 개씩 지워지는 지금”, 영단어 “dementia”가 아니라 “치매”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분히 혼란스럽기는 하되, 이마저도 삶의 “별일”로 인정하고 기꺼이 수용하는 것이다. 이로써 “지워버린 말”의 사소함과 심각함 사이의 긴장감은 “별일은 참 별일이다”라는 시인의 무심한 독백으로 무리 없이 해소된다. 이 시가 노년의 불편함과 난처함을 호소하는 차원에서 단순히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을 소환하는 극적 계기로 작용할 수 있는 이유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어제 저녁”부터 “아침”까지 시인에게 발생한 일종의 이중 언어(정체성) 문제는 곧바로 “루마니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유대 종족 말살 행한 독일인의 말로 시를” 쓴 시인 파울 첼란의 삶으로 이월되는 것이다. 특히 파울 첼란의 「죽음의 둔주곡」(Todesfuge)이 음악적 형식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시적 모티프의 반복·변형 구조를 취한 작품임을 염두에 두면, ‘과거’ 시적 화자와의 친연성마저도 확보된다. “검은 우유가/새삼 생각나는 아침”이라는 시구가 전혀 어색하거나 새삼스럽지 않다. 이렇듯 황동규의 근작 시편들은 여전하다. 여전히 그의 시는 “밝고 생생한”(「프리지아」) 생명과 마주하고 실존의 삶을 향유하며 환한 생의 감각으로 세계를 노래한다. 만년에 들어서도 시인은 “어제”를 봉합하며 거듭나기를 꿈꾼다. 어쩌면 저 근작 시편들 뒤에서 시인은 속엣 말로 이렇게 되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노년의 필연적 변화, 하지만 그 불편함과 난처함마저도 황홀하고 서늘한 ‘삶의 맛’이고 ‘사는 기쁨’이 아니겠는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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