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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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 보면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 보면 김병호 베란다 한켠에 죽은 화분이 있습니다 겨울 내내 숨을 내놓는 동안 어찌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습니다 어둠은 여기서 피어나 끝없이 나를 두드리고 서성이는 먼 걸음을 흉내 내었습니다 숲이었다가 詩이었다가 당신이었다가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면 가만히 빛나며 꿈틀거리는 가장자리를 후회라고 부르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화분같이 깊은 구멍 속에 산산이 흩어진 눈동자 나는 그게 달 같아서 홀로 키운 마음 같아서 내내 가까스로의 날로 지웠습니다 여러 빛들이 겹쳐 봄을 흔들고 나는 얼마나 멀어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베란다 창 가득 홀로 지운 마음처럼 발자국이 생겼습니다 간곡한 마음도 없이, 조심한 마음도 없이 부르면 다시 돌아오는 이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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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여자의 지문
여자의 지문 김병호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原子)가 바뀌어도 기억이 너를 찾는 건 정체가 내 몸에 서린 것이 아니라는 수군거림이라 수긍해도 너를 조립하는 최소단위(單位)들이 모두 자리 바꾸는 석 달을 내리 숨 참으며 기다려도 항상 내게서 튕기는 네 방향성은 지구가 외면하는 방향이 46억 년 동안 변하지 않아 생긴 극성 때문이라는 건 왜 아무도 귀띔 안하는지, 물질을 원망하지 않고 정신을 원망하지 않고 생(生)이라는 흔적 없는 궤적을 흩어버리는 가을바람만 미워하니 내 주변을 휘도는 특정한 패턴의 흔들림이, 그것이 개성이라는 각각의 성깔이니 아, 너이니, 정처 없는 원자(原子)들은 몸에서 한바탕 흐느끼다가 나갈 뿐, 단지 패턴으로, 패턴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흔들림이라는데 네 패턴은 단지 지문(指紋)의 쏠림만은 아닐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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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이름의 고향
이름의 고향 김병호 잘 삭아 속에 바람을 머금은 사람의 뼈를 구하려는 이들은 먼저 골 깊은 산의 능선을 찾아 목 놓아 통곡한다 울음들이 공명하는 곳, 좋은 뼈들이 숨어 있는 곳, 태생이 심장과 가까운 뼈일수록 상처받은 사람의 이름을 정확하게 부른다 하여 악기는 만들어진다 이름이 태어난다 이름은 악기가 부르는 대로 바뀌었다 허공을 부르면 공허의 목소리로 대답했고 비를 부르면 눈물의 목소리로 떠났다 역사를 부르면 여자가 눈썹까지 이불을 끌어올렸다 닫히지 않는 창틈에 어떤 역사가 걸려 있을 때 거기에 든 바람의 이름은 필연이었다 몇 개의 계절에게 바람으로 짠 옷을 입히고 나니 스스로 사연인 것이, 필연인 것이 나를 죽였다 원래 시간은 죽음 쪽으로 골지지 않았다 오해였다 갈 곳 없이 어슬렁거리는 시간이 줄 댄 곳, 인연이었다 이름이었다 메아리가 지나간 자리 쓰레기차를 탈출한 비닐처럼 나부끼는 작은 날숨으로 새는 신음,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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