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좋은데?
김보나 흔들리는 창밖으로 모래 구름이 몽개몽개 피어오른다. 오장육부가 뒤집혀서 웩, 소리 나오는데 더 쥐어짤 것도 없고. 누가 솜이라도 밀어 넣은 듯 귀는 먹먹해지고. 타이어 하나 펑, 터진다. 계속 가요? 오래된 버스가 구불구불한 흙길 오른다. 속이 빈 채 흔들리는 몸으로 시금털털한 맛이 넘나든다. 황색 구름. 나는 이만 눕고 싶은데 문이 열렸다. 나는 쏟아져 내렸다. 한낮의 열기가 방울뱀처럼 다리를 타고 올랐다. 뭐가 타오른다. 올려다보면 이글거리는 하얀 햇덩이. 땀방울을 훔치며 내가 묻는다. 이게 다예요? 흰 천을 두른 쪼글쪼글한 노인이 푸른 이를 드러내며 말한다. 이게 다야. 빛.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석간
석간 김보나 바위에는 조약돌을 올린 다른 사람의 덕담이 층층 “그런 것을 함부로 허물면 안 돼” 한때 체육복을 빌려준 사람이 내게 말했다 돌을 잇달아 쌓고 무릎을 굽혔다 펴며 두부김치 같은 말 생각했다 쌓인 기원(冀願)은 높이가 일정하고 어쩐지 종종 돌이 떨어진다 이 산은 오래전 바다였다고 한다 여기까지 오르면 시(市)의 이름이 바뀌어 뭐라도 내릴 듯한 하늘 눈이거나 빛일 것이다 계절과 상관없이 기대하면 내리지 않는 것들 매미 우는 바다 꼭대기 속살을 본 적 없는 옆 사람과 재개발된다는 마을을 보았다 돌을 주워 던지고 아무에게도 사과하지 않았다 등 뒤로 지층 솟는 소리 신은 서에서 동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첼리스트
첼리스트 김보나 죽은 사람을 장지에 묻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악기를 하나쯤 다루고 싶어서 대여점에 들러 첼로를 빌렸다 48인치짜리 첼로는 생각보다 육중하였고 나는 그것을 겨우 끌고 들어와 문을 닫았다 소파 옆에 세워 둔 첼로는 공습경보를 들은 사람처럼 창밖을 보고 있었다 첼로를 이루는 가문비나무는 추운 땅에서 자란 것일수록 좋은 음을 낸다고 들었다 촘촘한 흠을 가진 나무가 인간의 지문 아래 불가사의한 저음을 내는 순간 더운 음악회장에서 깨어난 소빙하기의 음표들이 빛을 향해 솟구치는 광경을 죽은 사람과 함께 본 적이 있었다 가슴에 첼로를 대고 활을 그었다 첼로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내 몸의 윤곽은 분명해지고 있었다 하얀 나방이 숲으로 떠나가는 깊은 밤 수목 한계선에서 빽빽하게 자란 검은 나무 아래 영혼의 손가락 끝에 홀연히 돋아나는 동심원들 숲의 한가운데에서 쉼 없이 악보가 넘어가고 있다 밤의 연주회지만 중단되지 않는다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